[호남정맥]다섯번째(추령~내장산~밀재)-내장산, 멧선생에게 쫓기다!
한반도에는 원래 호랑이나 표범 같은 맹수(猛獸)가 많았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대대적인 밀렵과 사냥이 이뤄지면서 모두 멸종하였다.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마지막 호랑이가 잡힌 이후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호랑이는 사라졌다. 세월 흘러 경제 성장과 함께 산림 녹화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제 한국의 숲은 호랑이 수백 마리쯤은 너끈히 품을 만한 울창한 숲으로 변모하였다. 하지만 한 번 사라진 호랑이와 표범 같은 멸종 동물은 복원이 불가능하다. 상위 포식자 사라진 숲에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초식 동물이 번성하게 되었다. 숲 우거지고 포식자 사라지니 초식동물의 개체수가 급증하였다. 숲 속에도 먹이 경쟁은 치열하다. 경쟁에서 밀려난 동물들은 인간세 가까이 내려온다. 그리하여 고라니와 멧돼지는 대표적인 유해조수(有害鳥獸)로 지정되어 다시 인간들에게 사냥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수렵으로 구제(驅除)되는 동물의 수는 극히 일부라 숲에는 여전히 야생동물이 넘쳐난다. 해마다 수 많은 인간 지정의 유해조수가 수렵되지만, 여전히 숲 속에는 엄청난 개체의 멧돼지와 고라니가 활발히 번식하고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숲 환경이 우수해진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지도에 줄 그어 오지(奧地)의 산길을 걷는 우리네 종주 산꾼들은 평소 산 속에서 사람 만나기보다는 야생동물 만날 일이 더 많다. 인간의 영역이 아닌 자연의 영역으로 들어갔으니 당연한 일이다. 호랑이 같은 대형 고양이과 동물이나 늑대 같은 개과 동물이 멸종한 숲에는 인간을 공격할 야생동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게다가 야생동물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만나면 먼저 피하는 경우가 많아 야생동물의 공격으로 피해를 당하는 산꾼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야생동물이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野生性)을 기본 속성으로 한다. 야생성이란 생존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남을 말한다. 때문에 생존에 위협을 느낀 야생동물은 항상 위험한 존재이다. 특히 멧돼지는 성체(成體)의 경우 이삼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덩치와 날카로운 견치(犬齒)로 무장한 데다 위협을 느꼈을 때는 강한 공격성을 보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 숲속에서는 야생동물 중 가장 위협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이런 멧돼지도 기본적으로 인간과의 조우를 두려워하는 습성이 있어 숲속에서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면 먼저 피하고 본다. 따라서 어지간해서는 멧돼지와 정면으로 맞닥뜨릴 기회는 드물다. 나 역시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 종주를 하면서 멧돼지를 여러 차례 만나기는 하였지만, 대부분 먼저 도망치는 멧돼지 무리를 먼 발치에서 만난 것이 전부였다. 강/사/랑의 호남정맥 다섯 번째 구간은 호남의 명산 내장산(內藏山)을 지나게 된다. 내장산이야 우리나라에서 단풍이 아름답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동네다.
그래서 많은 정맥꾼들이 이곳은 아껴두었다가 단풍철에 좋은 날 택해 지나곤 한다. 나와 비슷하게 호남정맥을 종주하고 있는 해리님과 전서방님 부부팀도 단풍 질 때 내장산 구간을 하겠다고 내장산을 점프해서 감상굴재로 건너 뛰어 진행했다고 한다.
이 구간을 계획하면서 잠시 고민을 했다. 나도 참았다가 가을 단풍철에 같이 지날까? 그러나 단풍철 행락객들 틈에 끼어 정맥길을 간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흔들어 진다. 내장산 단풍이야 언제든 구경 올 수 있으니 그냥 순서대로 진행하자! 그리고 호남길 나선 지도 오래되었으니 얼른 짐 꾸려 가 보자! 그런 생각으로 무더위 절정이었던 8월 둘쨋주에 내장산으로 스며들었다. 엄청나게 더운날이었다. 땀을 많이 흘렸다. 산 봉우리 하나 넘을 때마다 체중 1kg쯤 빠지는 기분이었다. 날씨 너무 덥고 체력 감소 급격하여 진행이 더뎠다. 그리하여 백암산(白岩山)에서 날이 어두워졌다. 이후 홀로 어두운 산길을 걸었다. 그러다 녀석을 만났다. 새끼를 키우고 있는 어미였다. 녀석은 새끼 때문에 공격적으로 변해 있었다. 마침 곁에 높은 바위가 없었다면 크게 다칠 뻔 했다. 녀석은 나를 바위 위에 쫓아 놓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산죽밭을 좌우로 뛰어다니며 무력 시위하는 녀석 앞에 바짝 쫄아 떨어야 했다. 이십여 분 이상 바위 위에서 녀석과 대치한 후 슬그머니 사라진 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캄캄한 산길을 마라톤 선수처럼 한 시간 반 동안 뛰었다. 목적지인 감상굴재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가 되었다. 불빛 없고 인적 없는 감상굴재 길바닥에 누워 오래 전율하였다.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아찔한 경험이었다. 휴우~~ 내장산, 멧선생에게 쫓기다! 구간 : 호남정맥 제 5구간(추령~내장산~감상굴재~밀재)
집 나서면서 정보 확인하니 휴가철 교통 정체가 전국 고속도로를 모두 메우고 있다. 최대한 정체를 피해서 국도, 지방도,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며 오래오래 내달려 호남고속도로 정읍 나들목으로 나갔다.
곧바로 29번 국도 타고 정읍을 통과해서 순창 방향으로 구불구불 구절양장의 추령고개를 올라 고개 정상에 도착했다. 집에서 꼬박 네 시간이 걸렸다.
내장산/內藏山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정읍시 입암면과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741m로, 내장산, 입암산(1,107m)과 함께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한 산이다. 백학봉·사자봉 등의 봉우리는 기암괴석으로, 산세가 험준하나 웅장하다. 이곳에 비자나무숲·굴거리나무숲이 각각 천연기념물 제153호와 91호로 지정되어 있어 유명하다. 산 기슭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18교구 본사인 백양사가 있다. 632년(무왕 33)에 여환이 창건하여 백암사라고 부르다가, 조선 선조 때 환양이 중창하고 백양사라 고쳐 불렀다. 환양이 백학봉 아래에서 제자들에게 설법하고 있을 때 백양 한 마리가 이를 듣고 깨우침을 얻고 눈물을 흘렸고, 이에 사찰의 이름이 백양사로 된 것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극락전과 대웅전은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2호와 제43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예로부터 봄에는 백양, 가을에는 내장이라는 말이 전해오는데, 백양사의 비자나무숲과 벚꽃나무를 두고 생긴 말이다. 산행은 산세에 비해 등산로가 순탄한 편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고, 거리도 짧아 당일에 등산을 즐길 수 있다. 산행은 백암산을 등산하는 코스와 내장산 자락의 내장사까지 횡단하는 코스가 있다. 백암산에 오르는 코스는 백양사와 청류암에서 각각 시작할 수 있다. 백양사에서 약사암, 영천굴을 거쳐 백학봉에 오른 다음 정상에 도착한다. 영천굴에서 백학봉까지는 급경사의 산길이지만 백학봉에서 정상까지의 능선은 경사가 완만하여 오르기 쉽다. 정상에서 운문암을 거쳐 백양사로 하산하면 약 10㎞ 거리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청류암에서 시작하면 사자봉, 상왕봉을 거쳐 백학봉에 오른 후 정상에 도착하여 백양사로 하산하면 약 14㎞ 거리이며, 5시간 정도 소요된다. 내장사까지의 횡단 코스는 백양사에서 출발하여 약사암을 지나 백학봉에 이어 정상에 오른 다음 순창새재, 소죽엄재, 까치봉, 신선봉을 지나 내장사에 도착한다. 이 코스는 16.5㎞ 거리로, 8시간 정도 소요된다. 백양사에서 곡두재, 덕흥, 화양저수지, 화양리, 유군치를 거쳐 내장사로 가는 10.4㎞ 거리의 코스도 있다. 백암산에서 입암산으로 연결되는 코스는 백양사를 출발하여 금강폭포, 운문암터를 지나 정상에 오르고 몽계폭포, 남창골을 거쳐 입암산성에 도착한다. 입암산성은 입암산 기슭에 쌓은 둘레 5㎞의 산성으로 고려시대 이전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 관광객들로 붐볐던 추령(秋嶺)은 경기가 나빠져서 찾는 이가 적어서인지 대부분 업소들이 문을 닫고 몇몇 식당과 모텔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뙤약볕 내리쬐는 8월 염하(炎夏)의 추령엔 움직이는 거라곤 개미 새끼 한 마리 볼 수 없다. 오늘이 올여름 들어 가장 더운 날이라고 예보하더니 더더욱 그러한가 보다.
텅 빈 주차장 한 쪽 나무 그늘 아래 주차하고 짐 챙겨 내장산으로 스며들었다. (12:15). 출발이 이렇게 늦으니 틀림없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한여름 야간산행은 견딜만 하다 생각하고 내장산으로 들어갔다.
# 추령 주차장 한쪽 구석에 철문이 있다. 그곳이 호남정맥 5구간 들머리다.
곧바로 오르막이 이어지고 봉우리를 작게 두 개 오르게 된다. 두 번째 봉우리는 '바위 전망대'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추령으로 오르는 고갯길과 지난 구간의 추령봉이 조망된다.
그러나 기상청에서 오늘 기온이 35도까지 오르는 올여름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가 될 거라고 예보했고 게다가 폭염주의보까지 내린 날이라서 그런지 대기가 불안정해 뿌연 개스가 끼어 있어 조망은 별로다. 전망대에 서 보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금세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잠시 내렸다가 길게 치고 오른다. 군데군데 갈림길이 나오는데 아마도 산림박물관 쪽에서 올라오는 길인 듯하다. 이 구간도 출입금지 구간인지 국공파가 세운 표지판이 서 있다. 길게 올라가면 국립공원 표지석이 있는 '440봉'에 오르게 된다.(12:55)
# 산길에서 만난 야생 도라지.
# 아직 완전히 피지 않은 등골나물.
# 오늘 구간의 대세는 닭의 장풀이다.
# 닭의 장풀이 피어있는 바위전망대.
# 전망대에서는 추령으로 오르는 고갯길과 지난 구간의 추령봉이 건너다보인다.
# 영지버섯. 구간 내내 자주 만나게 되는데 만약 채취했으면 봉지 하나는 채웠을 듯하다.
# 440봉.
# 내장사 관광단지와 서래봉이 건너다보인다.
# 개스 때문에 깨끗한 조망은 아니다. 440봉의 파노라마 조망. 좌측에 가야 할 장군봉, 정면 너머로 서래봉.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내장사 단지의 케이블카 출발지를 땡겨 본다.
440봉엔 지역 등산객 몇 사람이 자리를 깔고 휴식하고 있다. 장군봉까지는 엄청 치고 올라야 한다고 겁을 준다. 예~ 그런데 그대들이 힘들었다고 하는 그 장군봉이 겨우 시작일 뿐이라오.
440봉은 맑은 날이었으면 멋진 조망처였을 터인데, 오늘은 개스 때문에 흐릿할 뿐이다. 그래도 내장사 주변의 관광단지와 그 뒷쪽에 웅장한 서래봉의 위용은 충분히 볼 만하다. 지역 산꾼들에게 작별하고 아래로 제법 내려갔다. 그러다 한차례 올려 평탄하게 마루금을 따르다 보면 '유군치'를 만나게 된다.(13:10) 전설에서 말한 군대가 머물기에는 턱없이 좁아보이는 유군치에는 작은 고개가 정맥을 가로지르고 있다. 장군봉까지는 곧장 1km를 치고 올라야 한다. 무덥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턱 막힌다. 힘이 많이 들어 가다쉬다를 반복했다.
길게 밀어 올려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에 이른다. 거기서 우틀하여 산죽밭을 따라 100여 m 더 오르면 '장군봉'에 오르게 된다.(13:50)
# 유군치.
# 희묵대사의 사적인 모양인데, 적을 유인(誘引)해 물리쳐 유군치라는데, 정작 한자는 군대(軍)가 머물러(留) 유인하는 誘軍峙가 아닌 머문 留軍峙가 되어 있다.
# 장군봉까지는 1km를 밀어 올려야 한다.
# 장군봉.
# 이곳 역시 희묵대사와 관련된 유래를 갖고 있다.
장군봉 정상은 헬기장으로 되어 있다. 뙤약볕이 강렬하여 오래 있기가 어렵다. 잠시 한숨 돌리고 정상을 나서는데 바로 뒤에 멋진 '전망대'가 나온다.
가야 할 정맥길과 좌으로 뻗어 나온 내장산의 산줄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록 개스 때문에 깨끗한 조망은 아니지만, 그 경치가 아까워 배낭 내리고 이곳에서 마음에 점 하나 찍기로 했다. 막걸리 한 잔으로 천지신명께 입산 신고를 하고 마음(心)에 점(點)도 하나 찍었다. 전망대 끝에 서서 홀랑 벗고 거풍을 해 보지만 바람 한 점 없어 땀을 식힐 수는 없다. 그나마 아래에서 노인 산객 한 분이 올라오셔서 얼른 옷을 다시 입어야 했다.
한차례 가파르게 내렸다가 마루금을 따라 평탄하게 진행했다. 잠시 골이 지는 곳이 나욌다. 산의 사면을 타고 넘어온 바람이 이곳에서는 작게나마 불어 주고 있다. 이곳에서 점심 먹을 걸...
곧 암릉길이 나오고 조망 좋은 암릉길이 길게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중간중간 멋진 전망대가 계속 나타난다. 단풍철 이 암릉길에서 보는 불타는 내장산이 참으로 볼 만 하겠다.
여러 전망대 중 암봉 하나를 오르면 '675봉'이 나온다. 사방 조망이 좋아 팔 벌려 천지기운을 마음껏 받아들였다. 철계단을 지나 한차례 밀어 올리면 '연자봉'이 나온다.(14:55)
# 전망대의 파노라마 조망. 가야 할 연자봉과 내장산의 주봉인 신선봉, 그 너머로 좌틀하는 정맥길이 보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을 달랜다.
# 전망대가 계속 나온다. 지나온 장군봉.
# 암릉길이 이어지고 철계단 길도 나온다.
# 뿌연 개스 너머로 서래봉이 건너다보인다.
# 서래봉.
# 서래봉을 가까이 땡겨 본다.
# 백련암도 땡겨본다.
# 관광객들을 실은 케이블카가 오르내린다.
# 지나온 장군봉.
# 연자봉.
# 좌측은 연자봉, 우측은 장군봉, 건너편은 서래봉이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가야 할 연자봉과 그 너머 우뚝한 내장산의 주봉인 신선봉.
# 신선봉 뒤에 좌측으로 희미하게 내뻗은 산줄기가 백암산에서 곡두재로 이어지는 정맥길이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연자봉.
# 언제 이곳에서 글을 한번 써봐야겠다. 입신출세는 아니라도 좋은 글 하나 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연자봉은 사방 조망이 좋을 곳인데, 오늘은 개스 때문에 별로이다. 조망 없으니 오래 머무를 일 없어 잠시 머물렀다 다시 길을 나섰다. 곧 나무계단을 타고 내렸다가 작게 오르내리며 진행한다. 중간에 부부산객 두 팀을 만났다. 정맥꾼은 아니고 내장산 산행온 분들인데 부부가 다정히 산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아래로 길게 내려가자 '통신중계 안테나'가 있는 고개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금선폭포 계곡으로 탈출할 수 있다. 신선봉까지는 다시 20여 분 치고 올라야 한다. 급경사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 폭염주의보 속에 바람 한 점 없는 산길을 치고 오르자니 땀이 너무 많이 난다. 자연히 체력히 급격히 떨어진다. 길게 오르자 산불감시초소가 나오고 바로 위에 내장산의 주봉인 '신선봉'이 나온다.(15:50)
# 신선봉까지는 1.13km를 더 가야 한다.
# 부부 산객들을 만난다.
# 통신 중계 안테나가 있는 고개.
# 신선봉.
# 층꽃나무.
# 짚신나물.
# 신선봉은 내장의 주봉이다.
신선봉은 내장(內藏)의 주봉(主峰)인데, 헬기장이 있는 정상은 뙤약볕이 강렬하고 역시나 바람 한 점 없다. 그래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내 출발했다. 암릉길을 내렸다가 국공파들이 세운 출입금지 표지판을 만난다. 정맥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우회하게 되어 있다.
아래로 내리면 안부가 나타나고 약하게나마 바람 냄새가 난다. 얼른 배낭 벗고 훌러덩 벗어 재꼈다. 바람이 약해서 땀이 쉬 마르지는 않고 그저 증발만 한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혼자 희희낙락하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들려 얼른 옷을 주워 입었니다. 홀로 산객이 허둥대는 날 보고 웃으며 인사하고 지나간다.
보따리 다시 둘러메고 한차례 위로 밀어 올리면 '전망대'가 나오고 지나온 정맥길의 신선봉과 장군봉에 이르는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조금 더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그 뒤에 '까치봉 갈림길'이 있다.(16:35).
# 이 표지목에서 좌측으로 우회한다.
# 한차례 가파르게 밀어 올린다.
# 전망대가 나와 지나온 정맥길을 조망할 수 있다.
# 저 멀리 장군봉도 보인다.
# 원추리가 아직도 남아 있다.
# 까치봉 갈림길.
까치봉 갈림길에서 좌측 소등근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이 깊고 깊고 깊게 내려만 간다. 이거 어째 좀 이상한데??
소등근재까지는 2km 거리다. 계속 고도를 낮춰 내리는데 무작정 내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너 차례 올록볼록 오르내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마지막 봉우리는 제법 높게 솟구치더니 정말로 깊고 깊고 깊게 내려간다.
(17:35). '소등근재'에 도착했다. 그런데, 얼라리요? 어찌 된 것이 계곡이 나타나고 물길을 두 개나 건너게 되네? 정맥이 물길을 건너? 지도 꺼내 확인하니 정맥길을 벗어나 좌측 계곡 쪽으로 내려왔다. 정상적인 정맥길은 까치봉 지나 올록볼록하다가 마지막으로 볼록 솟아오른 591봉에서 마루금을 따라 소죽엄재를 지나 순창새재로 향해야 하는데, 591봉에서 마루금이 아니라 계곡길로 내려와 버린 모양이다.
591봉에서 뚜렷한 길 따라 온 게 이쪽으로 왔으니, 마루금이 위험해 선답자들이 정맥길을 돌렸거나 이 길이 지름길이라 이쪽으로 길을 낸 듯하다.
그런데 소등근재 계곡의 물이 수량도 풍부하고 너무나 시원해 보인다. 지금 바쁘게 내달려도 몇 시간은 불 밝히고 밤길 걸어야 하지만, 이왕 늦은 것 느긋하게 가기로 했다. 배낭 벗고 간식도 먹고 에라이~ 홀랑 벗고 아예 계곡에 드러누워 버렸다.
# 사진으로는 완만해보이나 깍아지른 절벽지대. 오늘 처음으로 시원한 바람골을 만났다.
# 소등근재.
# 산에서 산화한 산악인의 추모비가 서 있다.
# 계곡물이 너무 좋아 홀랑 벗고 알탕을 마음껏 즐겼다.
이왕 늦은 것 천천히 가자 마음 먹으니 급할 것도 없고 시원한 계곡물에 몸 담그고 마음껏 알탕의 호사를 누렸다. 청사안리~ 벼억계에수야~ 수이이이감을~ 자라앙 마아라~.
실컷 알탕 호사를 누린 후 다시 짐 챙겨 순창새재를 향해 치고 올랐니다. 어느덧 계곡엔 어둑어둑한 기운이 스며든다. 길게 치고 오르니 '순창새재'다.(18:15). 그동안 대간과 정맥하면서 산행 도중에 알탕을 해 보기는 처음이다. 어쨌든 알탕의 호사 덕분에 시간은 지체되었지만, 컨디션은 많이 회복되었다.
다시 선 정맥길을 따라 길게 올라갔다. 꾸준히 밀어 올려 마루금에 오르고 다시 길게 진행했다. 숲 너머로 가야 할 백암산 상왕봉이 우뚝하다. 길게 가다가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리면 '상왕봉'에 오르게 된다. (19:20)
순창새재에서 2.35km이고 1시간 5분이 걸렸다. 정상 입구에 갈림길이 있고 좌측으로 정상을 우회하는 길이 정맥길이다.
# 순창새재 가는 길에 귀한 뻐꾹나리를 만났다.
# 우주선처럼 생겼다.
# 순창새재.
# 소등근재를 거치게 등산로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정맥꾼이 나처럼 헷갈렸음도 알 수 있다.
# 상왕봉 가는 길에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 정상 직전 갈림길. 구암사 방향이 정맥길이다.
# 상왕봉.
# 노을이 지고 있다.
# 이제부터는 내장산이 아니라 백암산이다.
# 정상 너머의 전망대에서 본 사자봉. 저곳은 정맥길이 아니다.
상왕봉에서부터는 백암산의 품이다. 정상에서 도로 나와 갈림길로 돌아왔다. 잠시 걷자 이내 어둠이 찾아온다. 배낭 내리고 이마에 등불 달고 짐을 추스렸다.
어두운 숲길을 혼자 걷자니 이런저런 상념이 교차하는데, 갑자기 좌측 아래 산죽밭에서 "푸르르 푹푹"하는 짐승의 콧김 소리가 요란하다. 아이구! 놀래라! 돼지닷!! 놀래서 등로 곁에 있는 바위 위로 신속히 기어 올라갔다.
처음 추령에서 출발할 때부터 등로 주변으로 멧돼지의 흔적이 낭자하더니 그예 돼지를 만났다. 보통의 경우 돼지들은 인기척이 느껴지면 스스로 먼저 피하게 마련인데, 이 넘은 도망을 가지 않고 오히려 나를 향해 돌진해온다. 놀래서 등불을 비춰보니 커다란 돼지의 눈이 불빛에 파랗게 타오르고 있다. 놈은 잔뜩 화가 나서 내가 서 있는 바위의 좌우로 산죽을 가르고 마구 내달리고 있다. 푸르르~~ 내뿜는 콧김 소리가 경운기 시동 거는 소리 같다.
평소 산에서 돼지를 만나면 사진을 찍어야지 생각을 했지만, 막상 컴컴한 밤중에 홀로 돼지를 만나니 공포에 쫄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양손에 스틱을 꽉 움켜쥐고 만약의 경우 휘둘러야지 하는 생각 뿐이다. 그런데, 이 녀석 산죽밭을 좌우로 마구 내달리기만 하고 도망갈 생각을 안 한다. 바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더이상 접근도 안 하고...
아마도 주변에 새끼들이 있나 보다. 새끼를 키우는 어미가 갑자기 사람을 만나 저 역시 몹시 놀래고 화가 나 있는 듯하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호각을 꺼내 물고 연속으로 강력하게 불고 스틱으로 바위를 마구 내려쳤다. 혼자서 얼마쯤이나 호각 불고 난리를 쳤을까? 소리를 멈추고 산죽밭을 둘러보니 돼지란 넘이 도망을 갔는지 조용하다. 등불을 비추며 휘휘 둘러보지만, 돼지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안심이 되질 않아 얼른 출발할 수가 없다. 다시 한번 호각 불고 난리를 쳐 보지만 숲속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때다 싶어 바위에서 뛰어 내려와 냅다 뛰기 시작했다.
이후 사진도, 기록도, 휴식도 없이 마구 내달리기만 했다. 혹시나 다시 돼지를 만날까 봐 그냥 그냥 잰걸음으로 내달리기만 했다. 아무 생각도 감흥도 없이 힘든 줄도 모르고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도집봉'을 넘고 아래로 내렸다가 봉우리 하나를 밀어 올려 '729봉'을 넘고 헬기장을 지나 아래로 내렸다.
안부 갈림길을 지나 한차례 밀어 올리면 '693봉'이고, 이 암봉에서부터는 로프가 설치된 암릉길을 깊고 깊게 떨어져 내렸다. 철제 펜스를 따라 길게 진행하면 '곡두재'가 나온다.
우측으로는 천진암을 거쳐 백양사로 내려가고 좌측으로는 덕흥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덕흥마을 쪽은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수렛길이 이어지는데, 그쪽으로 탈출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진행했다.
# 돼지에게 쫓겨 캄캄한 산길을 미친 듯 달려온 곡두재.
곡두재를 지나 한차례 올려 봉우리 하나를 넘고 다시 위로 밀어 올리면 '406봉'을 지난다. 아래로 내렸다가 봉우리 하나를 오르고 우측으로 꺾어 잠시 더 오르면 '439봉'이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역시나 휴식도 없이 진행했다. 아래로 내려가면 묘지들이 연속으로 나타나고 곧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용산마을로 연결되는 도로이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다시 산으로 올라 강선마을 쪽으로 휘감아야 하지만 그냥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했다.
잠시 후 도로공사가 한창인 49번 도로에 이르게 된다. 이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잠시 진행하자 강선마을 표지석이 있는 '감상굴재'에 도착한다. 22:00.
# 초죽음이 되어 도착한 49번 도로.
# 감상굴재 표지목. 반갑다!
감상굴재 표지목 확인하고 나자 비로소 극심한 피로와 함께 제정신이 되돌아온다. 상왕봉 하산길에서 돼지를 만난 이후 아무 생각 없이 공포에 절어 2시간 이상을 내달리기만 했다. 지금껏 대부분의 정맥길을 혼자서 진행해 왔는데, 이렇게 공포스럽고 정신없어 본 적은 또 처음이다.
감상굴재 표지목 아래 땅바닥에 배낭 벗고 한참을 드러누워 정신을 추스렸다. 이제는 추령에 세워둔 차를 회수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런데 복흥면 택시는 오늘 영업을 하지 않는다 하고 개인택시는 전화를 받질 않는다. 할 수 없이 정읍 택시를 불렀는데 고약한 택시기사를 만나 바가지를 제대로 뒤집어썼다. 정읍 택시와는 벌써 세 번째 악연이다.
어쨌거나 추령으로 복귀해서 차 회수하고 잠자리를 찾았다. 감상굴재에는 선답자들이 숙박을 해결했던 신화회관이 있었다는데 이제는 철거해 버리고 공터만 남았다. 그리고 강선마을 정자가 바로 길옆에 있지만 가까이 가니 동네 개들이 너무 난리를 쳐서 도저히 하룻밤 보낼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백양사 야영장으로 이동하여 여름휴가를 즐기는 행락객들 틈에 집 한 채 얼른 지었다. 너무 지쳐 밥하기가 귀찮아 문 닫으려고 하는 백양사 관광단지 식당에 부탁해서 산채 비빔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리고 계곡으로 내려가 간단히 알탕으로 땀범벅이 된 몸을 씻었다. 개운하게 옷 갈아입고 텐트 속에 드러눕자마자 바로 잠에 골아떨어졌다.
# 강선마을 정자. 개들이 요란스럽게 짖어 하룻밤 쉬어가기가 어렵다.
밤새 멧돼지한테 쫓기는 꿈을 꾸며 뒤척이느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새벽녘에 비로소 잠시 깊은 잠을 좀 자고 덕분에 해가 떠오르고 나서야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간단하게 아침 끓여 먹고 화장하고 짐 꾸려 출발했다.
49번 도로 타고 고갯길 하나 높게 구불구불 넘어가면 간밤에 탈진하여 도착한 감상굴재에 이르게 된다. 어젯밤엔 어둠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한 주변 지형지물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감상굴재는 감나무가 많아 얻은 이름이라는데 감나무는 구경하기 힘들다. 이제는 건물이 철거되어 버리고 주차장 공터만 남은 신화회관 주차장 한 쪽에 주차하고 짐 꾸려 산행을 시작했다. 08:10.
# 49번 도로가 지나는 감상굴재. 전북 순창군 복흥면과 전남 장성군 북하면의 경계이다.
# 감상굴재 들머리.
감상굴재 신화회관 터 옆에 있는 독립가옥 좌측의 농로를 따라 위로 올라간다. 이른 아침인데도 햇살이 벌써 뜨겁다. 기상청에서는 어제가 올해들어 가장 무더운 날이었고, 오늘은 또 그 기록을 갱신하게 될거라 예보했다.
일교차가 심해서인지 수풀들이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그런데 농로가 우측으로 꺾이다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데, 산행 들머리를 찾을 수가 없다. 10여 분 들머리를 찾아 헤매다가 왔던 길로 다시 원위치하여 올라가 보니 칡넝쿨과 잡풀들로 길이 사라진 그 너머로 표지기 몇 개가 흔들리고 있다. 시작부터 알바를 했다.
# 감상굴재에서 돌아본 모습. 강선리 마을과 어젯밤에 정신없이 내려온 곡두재 너머의 693봉과 좌측의 백학봉.
# 수풀이 우거져 들머리를 놓쳤다.
수풀을 헤치고 들머리로 진입하는데, 순식간에 아랫도리가 이슬로 축축하게 젖어버린다. 大角山은 큰뿔산이라는 이름답게 오로지 뾰족하게 올라치게 만든다. 금세 몸에서 수도꼭지 틀듯 땀이 줄줄 흘러 내린다. 대각의 표면을 가파르게 치고 올라 봉우리 하나를 오르는데 아직 정상은 아니다.
주변 둘러보니 건너편에 산 하나가 우뚝하다. 우틀하여 가다가 한 번 더 볼록 밀어 올린 후 다시 위로 치고 오르니 비로소 '대각산' 뿔끝에 서게 된다. (09:00). 대각산은 소뿔처럼 한 가지가 외뿔로 뾰족한 것이 아니라 사슴뿔처럼 곁가지를 가진 뿔산이다. 정상을 넘어 하산길에도 두 차례 더 볼록거린 후 비로소 급경사 내리막을 내리게 된다. 대각산 주위도 돼지 흔적이 낭자하다. 가파른 경사면을 길게 내려가면 '칠립재'에 도착한다. (09:30)
# 가을 냄새를 풍기는 잠자리.
# 대각산 정상의 삼각점.
# 이곳 역시 돼지 흔적이 많다.
# 꽃무릇.
# 쑥방망이.
# 칠립재와 칠립마을.
# 이정목이 서 있다.
칠립재는 역시나 전북과 전남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그 옛날 옻나무가 많아 '옷갓'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음역되어 칠립으로 불려졌다. 콘크리트 포장길인 고개를 지나 야산 하나를 넘어 아래로 내려가면 '강두재'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마을 농로를 잠시 따라야 하는데, 건너편에 산 하나 우뚝하고 송전탑이 그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렇다면 정맥길은 저 송전 선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우측 강두제 저수지 방향으로 올라가면 잠깐이나마 질러 갈 수 있다.
강두재는 고개라기 보다는 넓은 들판이다. 농로를 따라 맞은 편 산자락으로 접근하고 송전탑이 지나는 산오름을 버리고 직진하여 농로를 따른다. 잠시 후 강두제 저수지를 지나고 임도를 따라 올라서면 다시 마루금에 합류하게 되고 우틀하여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어은고개'에 내려선다.(10:25). 어은고개에는 30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고개를 지키고 있고 은색 저수조와 잘 가꿔진 묘역이 있다. 고개 우측 아래로 어은동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300년 세월 동안 고개를 지켜온 느티나무의 그늘이 너무 좋고 바람 또한 서늘하여 배낭 내리고 20여 분 휴식을 취했다. 충분히 쉰 후 다시 짐 챙겨 길을 나섰다. 곧장 찐하게 한차례 밀어 올리면 '도장봉'에 올라서게 된다.(11:00)
# 강두재. 정맥길은 맞은편 산으로 올라야 하지만 우측의 농로를 따라 올라가 버린다.
# 이질풀.
# 싱아.
# 술패랭이.
# 강두제 저수지.
# 어은고개.
# 300년 세월을 이겨온 장한 느티나무.
# 어은동 마을.
# 도장봉.
도장봉은 해발 459m인데 정상을 지나 다시 도장봉보다 더 밀어 올려 봉우리 하나를 넘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길게 아래로 내려가면 '분덕재'에 이른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나오던 이정목은 없어졌는지 수풀에 가렸는지 뵈질 않는다.
곧 가파르게 치고 오르게 되는데, 무더운 날씨 탓에 땀이 비오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숲 너머로 526봉이 우뚝하다는 것이다. 길고 길게 아래로 내려간다. 수풀이 우거져 진행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오늘도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날씨라 숨이 턱턱 막힌다.
안부에서 곧장 위로 치고 오른다. 너무 힘이 들어 가다쉬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봉우리를 치고 오르면 정상인 524 지점에 못 미쳐 큰 바위와 묘지가 있는 약 500여m 지점쯤에서 우측으로 꺾어 떨어져 내리게 된다.
오른 고도 그만큼 깊게 떨어져 내리더니 묘지와 대밭을 지나 봉우리 두 개를 연달아 넘으면 거대한 老巨樹가 서 있는 '항목탕재'에 이르게 된다. (12:35).
# 아래로 내렸다가 저 봉우리를 다시 올라야 한다.
# 이 바위가 있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꺾어 떨어진다.
# 모싯대.
# 항목탕재의 노거수.
항목탕재 노거수 그늘 아래에서 다시 한참을 휴식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금방동 마을로 내려가게 된다. 당산나무에게 작별하고 한차례 밀어 올린 후 비교적 평탄하고 길게 진행했다. 그러다 한차례 올려치더니 정상을 버리고 우측 사면으로 가라한다. 봉우리 하나를 넘는데, 숲 너머로 520봉의 위용이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520봉은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데, 빼어난 암봉으로 그 위용이 대단하지만 녹음기라 수목이 우거져 그 진면목을 볼 수가 없다. 전위봉은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오르고 520봉은 가파른 급경사 오르막이 길고 길게 이어진다. 경사가 급해 코가 땅에 닿을 듯하다. 바람 한 점 없어 무지무지 힘이 들고 온몸에 물이 줄줄 흐른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여 밀어 올리니 (14:10) 드디어 정상에 서게 된다.
# 땅속에서 보낸 7년 세월을 보상받기 위해 7일 간의 생을 마음껏 울어 재끼는 매미.
# 520봉은 급경사 오르막이 내내 이어진다.
# 모기와 날파리가 어찌나 극성스럽게 달려 들던지 모기장을 뒤집어 쓰고 걸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이틀 동안 땀을 너무나 많이 흘렸고 야간 산행에 돼지에게 쫓기는 등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눈이 퀭하고 표정이 영 말이 아니다.
# 520봉 정상의 삼각점.
정말 어렵게 올라온 520봉 정상이다. 이 올라 오기 힘든 급경사 산 정상에 누군가 조상의 묘역을 꾸며 놓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정상 바로 앞에는 바위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서면 지나온 정맥길이 한눈에 들어오고 호남의 산그리메가 눈앞에 너울거린다. 그 좋은 풍광이 아름다워 팔 벌려 천지기운을 마음껏 받아들였다. 흐흐흡~~~ 한참을 풍광에 취해 있다가 짐 챙겨 마지막 봉우리를 내려갔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암릉길을 가파르게 내렸다가 길고 길게 내려갔다. 구불구불 길게 내리면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밀재'에 내려서게 된다. 14:25.
# 520봉 정상의 바위전망대.
# 전망대의 파노라마.(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장성호인가? # 하산길의 암릉.
# 우측으로 트인 곳이 나오며 담양의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 담양의 인간세.
# 지나온 정맥길. 백암산과 내장산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
# 묘지 때문에 앞이 트인 곳이 나타나며 다음 구간인 추월산이 건너다보인다.
# 드디어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밀재에 도착했다.
밀재는 순창 복흥에서 담양 월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숲이 우거져 '빽빽할 密' 자를 얻었다. 뙤약볕 강렬한 고갯마루에서 히치를 시도해 보는데, 10여 대가 지나도록 성공을 못 했다. 결국, 포기하고 복흥 택시에 전화하니 마침 한 번에 연결이 된다. 간밤에 그렇게 전화를 받지 않더니... 고갯마루에서 이틀간의 산행으로 찌든 먼지를 털어낸 후 복흥 택시로 감상굴재로 이동하여 차량을 회수했다.
이번 추령 ~밀재 구간은 이틀 연속 올해 여름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의 기록을 연달아 갱신한 폭염주의보 속에 산길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뜻하지 않게 밤중에 멧선생을 만나 3시간여 동안 공포에 떨며 내달려야만 했던 힘든 산행이었다. 이틀 동안 땀을 얼마나 흘렸던지 집에 돌아와 몸무게 측정하니 무려 3kg이나 체중이 빠져 있었다..
이래저래 참으로 기억에 오래 남을 호남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