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야기/북한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두번째걸음(순례길~명상길)-장마철 비님 오시니 또 둘레길로!

강/사/랑 2012. 7. 16. 13:06
[북한산 둘레길]두번째걸음(순례길~명상길)

 

 

"革(혁)" 은 가죽을 뜻하는 한자어다. 예로부터 가죽은 인류가 생명을 유지하고 문명을 일궈나가는 의식주 중 의(衣)와 주(住)의 바탕을 이룬 중요한 자원(資源)이었다.


옛사람들의 의식주는 수렵활동(狩獵活動)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수렵을 통해 사냥한 짐승은 일차적으로 먹거리가 되었지만, 그를 통해 얻은 가죽 역시 훌륭한 자원이 되었다. 그들은 사냥한 짐승의 껍질을 벗겨 추위를 막을 옷감을 만들고, 비바람을 피할 집을 덮기도 했으며, 때로는 물을 담는 용기로 쓰기도 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북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죽은 짐승의 껍질을 벗겨낸다고 해서 그냥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죽을 벗겨 그냥 두면 남아 있는 고깃덩이 때문에 썩어 버리고, 딱딱하게 마르거나 오그라들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만다.

 

따라서 벗겨낸 가죽은 먼저 안쪽에 남아 있는 고깃덩이들을 모두 제거해 내고 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화학처리를 하고 잘 두들겨 부드럽게 만들어 원하는 용도로 가공(加工)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무두질'이라고 한다.

 

그냥 두면 썩거나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 쓸모없는 짐승의 가죽이 무두질이란 정성 깃든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옷감이 되기도 하고, 구두가 되기도 하며, 지붕도, 그릇도, 북도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가죽이 무두질을 통해 전혀 다른 성질의 재료로 변화하는 속성이 있듯이 '혁(革)'이란 글자에는 '고치다(改)'. '새롭게 하다(更)'란 다른 뜻도 들어 있다. 그로서 나온 말이 '혁명(革命)'이다. 혁명은 하늘의 뜻, 곧 천명(天命)을 바꾸는 일이다.

 

혁명은 주역(周易)에서 비롯된 말로 '天地革而四時成 湯武 革命 順乎天而應乎人(천지혁이사시성 탕무 혁명 순호천이응호인)' - '하늘과 땅이 바뀌어 사계절을 이루듯 탕과 무의 혁명은 하늘의 뜻을 따라 사람들의 요청에 응한 것이다.'란 말에 그 어원(語源)을 두고 있다.


'탕왕(湯王)'은 고대 중국의 은(殷)나라를 세운 임금이다. 은(殷)나라 이전의 중국은 하(夏)나라의 세상이었다. 하(夏)의 마지막 왕은 폭군인 걸왕(桀王)이었다. '탕(湯)'은 폭군인 '걸(桀)'을 무력으로 몰아내었다. 역사상 최초의 혁명(革命)이었다. 역사는 원래 반복된다. '무왕(武王)'은 주(周)나라의 임금이다. 은나라도 오래 되니 혼미해졌다. 은의 마지막 왕은 '주왕(紂王)'이다. 그도 폭정의 대명사 중 하나였다. '무(武)'는 또다른 혁명을 통해 은(殷)의 '주왕(紂王)'을 무너뜨렸다.

 

탕과 무의 혁명이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이다. 맹자(孟子)는 이 고사(古事)를 들어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어서 인의(仁義)를 해친 왕은 이미 왕이 아니라 필부(匹夫)이다. 때문에 그를 갈아치우는 것은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일이다."는 것이 맹자의 설명이다.


맹자는 공자와 더불어 동양 사상의 태두(泰斗)이다. 맹자의 주장이니 정당성은 최고였다. 이에 바탕하여 많은 야심가(野心家)들이 기력이 다한 전 왕조(王朝)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명분을 세우고 천하를 도모(圖謀)하였다.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맹자의 논리와 명분에 편승하여 역성혁명을 이뤄낸 사례(事例)가 다수 있다. 고려(高麗)의 왕건(王建)이 그러했고 조선(朝鮮)의 이성계(李成桂)가 또한 그러했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천명(天命)이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들의 하늘은 모두의 하늘이 아니고 그들만의 하늘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진정으로 민심이 천심을 대신하여 힘을 모으고 그 민심(民心)의 힘만으로 혁명을 이뤄낸 일은 '4.19 혁명'이 전무후무하다 하겠다. 그것은 그 이전의 혁명들은 왕조시대라는 전제정치와 계급사회라는 시대적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월 혁명은 1960년 이승만, 이기붕 일당의 독재집권 연장을 위한 3.15부정선거와 그에 항거하는 민중들의 자발적인 의거(義擧)였다. 혁명은 시위대의 일원으로 나섰다 실종된 후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시신으로 떠오른 '김주열 사건'으로 도화선이 발화(發火)되어 일파만파(一波萬波)로 전국적 힘을 키워 마침내 혁명으로 승화(昇華)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직화되지 못한 민중의 힘과 그에 무임승차(無賃乘車)하여 혁명의 과실만 즐긴 민주당 정권의 무능함으로 인해 혁명은 그 온전한 결실을 보지 못하고 군사정권에 의해 다시 역풍을 맞아 좌절하는 미완(未完)의 혁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민중의 힘으로 부패한 독재정권을 몰아냈다는 점과 가열찬 민주투쟁의 경험으로 민주주의의 힘을 경험하고 키워내는 역사를 이뤘다는 점에서 4.19혁명은 그 가치가 충분하였다. 그로인해 오늘날 우리나라는 더이상 군사독재를 두려워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과정을 믿어 의심치 않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혁명은 그의 토양(土壤)이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먼 곳 정맥길이나 종주길에 나서지 못하는 대신 가까운 북한산 둘레길을 솔방솔방 다녀보자 작정한 강/사/랑 일행이 2구간인 순례길을 걷다가 어느 전망대에서 바로 아래 4.19묘역을 보게 되었고, 그 묘역에 안장된 민주열사들의 묘를 보면서 '혁명'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더란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현실은 혼란 그 자체다. 절차적 실질적 민주화를 이뤘다고 하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곳곳이 썩고 왜곡되어있다. 혁명의 피와 눈물로 쟁취한 민주주의지만, 아직 우리의 민주주의는 미완성인 것이다. 하늘의 뜻을 세웠으되 그 뜻을 유지하고 키우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4.19 묘역 앞에 서니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하늘의 뜻을 바꾸는 일이 어찌 쉬울 것이며, 그 바꾼 천명을 새로운 하늘의 뜻으로 부합시키고 유지해 나가는 일이 어찌 아니 어려우리오!  云云...

 


장마철 비님 오시니 또 둘레길로!


구간 : 북한산 둘레길 제 2,3,4,5구간(순례길~흰구름길~솔샘길~명상길)
거리 : 구간거리(10.9km), 누적거리(21.8km)

일시 : 2012년 7월 14일. 흙의 날.

 

4월 22일 비 오는 일요일에 북한산 둘레길을 처음 시작한 이후, 비 와서 멀리 산행길 못 나설 때는 이 둘레길을 걸어보자고 묵시적 약속이 되어 있었더랬다.

 

그것은 북한산 둘레길이 우리네 종주 산꾼들이 평소에 걷는 인적 드물고 가시덤불 많으며 무지막지하게 오르내리는 종주 산길과는 달리 넓고 편안하며 중간중간 급유(여기서는 급주給酒이다.)할 곳 많아 비가 오더라도 별 불편 없이 솔방솔방 산책하듯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년과는 달리 지독한 가뭄 뒤에 찾아온 올해의 장마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이틀 비를 뿌리다 물러나고 또 한 이틀 찾아오기를 반복하는데 이번 주에는 그 찾아오는 요일이 용케 주말이다.

 

그 비 오는 주말, 먼 길 못 가니 가까운 북한산 둘레길로 스며들기로 한다. 

  

국립4·19민주묘지/國立四一九民主墓地 
  
국립4·19민주묘지(國立四一九民主墓地)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4·19 혁명 희생자를 위한 국립묘지이다.
1961년 제2공화국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1960년 발생한 4·19 혁명 기념 공원묘지 조성에 대해 의결하였다. 그해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면서 재건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하여 1962년 기공식을 가졌다. 준공일은 1963년 9월 20일이며 이날 기념탑 제막식을 가졌다. 묘지의 부지는 처음 조성 당시에는 약 3천 평이었으나 1990년대에 김영삼 정부가 성역화 작업을 추진하여 조형물을 추가하고 약 4만 평으로 확장했다. 1995년에는 국가보훈처로 관리가 이전되었다. 목조 건물인 유영봉안소와 묘지, 4·19혁명기념관, 사월학생혁명기념탑, 상징문과 그밖의 상징조형물로 이루어져 있다. 성역공간과 사용공간은 상징문으로 구분된다. 묘지 가운데 사월학생혁명기념탑이 서 있다. 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한 이 탑은 화강암 탑주 일곱 개를 중심으로 주위에 수호자상과 만장을 두른 형태이다. 탑문은 이은상이 다음과 같이 작성하여 김충현의 글씨로 새겨졌다.


"1960년 4월 19일 이나라 젊은이들의 혈관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만명 학생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라."

 

<이곳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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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둘레길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순례길

 

# 흰구름길

 

# 솔샘길

 

# 명상길

 

 

 

금요일 퇴근해서 늦은 저녁밥 먹다 문득 내일 비오는 산길이나 걸어보자 생각하고 홀로 산꾼들에게 북한산 둘레길 사발통문을 돌렸다.

 

갑작스런 사발통문 때문이어서인지 선약이나 경조사때문에 못간다는 문자가 몇몇 들어오더니 딱 세 명으로 일행이 결성되는데, 재미있게도 지난번 4월 비올 때 둘레길 걸었던 그 맴버가 그대로 재집결하기로 한다.

 

7월 14일.

평소 출근하는 시각 그대로 일어나 씻고 먹고 짐 챙겨 집을 나선다. 마을버스 타고 석수역으로 가서 1호선 타고 가다가 동대문에서 4호선으로 갈아 타고 목적지인 수유역에 도착하니 시각은 약속시간인 10시을 조금 넘기고 있다. 집에서 두어 시간 가까이 걸렸다. 

 

전철역을 나서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어느 상점 처마 밑에서 일행 두 분이 이미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반갑게 인사하고 다시 120번 버스 타고 10여분 더 가서 덕성여대앞에서 하차한다.

 

그곳에서 도로 건너 잠시 오르면 지난 번 비올 때 내려왔던 솔밭근린공원에 도착하게 된다. 

 

 

# 솔밭근린공원.

 

 

# 좌측으로 올라가니 순례길 구간 들머리가 나온다.

 

 

# 우산에 비옷까지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비는 금세 멈춰버린다.

 

 

# 비에 젖은 숲속이 보기에는 싱그러운데, 습도가 높아 땀은 줄줄 흐른다.

 

 

# 그래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설렁설렁 걷는다.

 

 

# 그러다 전망대를 만나는데,

 

 

# 바로 아래 4.19묘역이 나타난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존재하게 만든 선열들이 잠들어 계신다. 순국선열들이여, 편안히 쉬옵소서!

 

 

# 둘레길은 이정목이 잘 되어 있어 지도가 필요없다.

 

 

# 우산이 스틱 대용이 된다.

 

 

# 그러다 순례길이 끝나는 무렵에 물소리 시원한 곳을 만난다.

 

 

# 이 시원한 물소리를 그냥 두고 갈 수 있나? 그 곁의 숲속으로 들어가 막걸리 전을 펼쳤다. 북한산 둘레길 순례팀이 되어버린 O2님과 산냄시님.

 

 

# 오래 쉰 후 길을 나서면 곧 순례길이 끝나고 국립공원 수유분소의 탐방센터 정문으로 나간다.

 

 

# 둘레길은 통일교육원 담벼락으로 이어지고,

 

 

# 3구간 흰구름길이 시작된다.

 

 

# 잠시 숲길 걷다가 다시 노인전문병원 있는 곳에서 도로를 만난다.

 

 

# 이정목 아래 한 숨 돌리고,

 

 

# 비 맞으러 왔는데 비가 그치고, 기온이 올라 간다.

 

 

# 화계사 가는 길 따라 숲길을 오르내린다.

 

 

# 장마철이라 계곡의 수량이 풍부하다.

 

 

# 그러다 화계사 입구로 나온다. 배고파 둘레길을 벗어나 화계사 아래로 내려간다.

 

 

# 손두부집에서 두부찜 안주로 식사와 급유를!

 

 

# 벌써 막걸리가 각 2병씩인데, 나는 이미 취기가 올라 알딸딸해졌다. 다시 화계사 입구로 올라가 둘레길에 복귀.

 

 

# 칼바위 매표소방향으로 고고!

 

 

# 이렇게 길이 좋으니 비 오는 날 둘레길을 찾게 된다.

 

 

# 그러다 전망대를 만나는데 삼각산이 올려다 보인다.

 

 

# 구름에 가린 인수봉.

 

 

# 잠시 더 진행하니 인공으로 조성된 전망대가 나타난다. 이름이 구름전망대란다.

 

 

 

# 올라 가보니 지금까지 둘레길하면서 만난 전망대 중에서 가장 훌륭한 조망을 보여 준다.

 

 

 

 

# 칼바위 능선에서 삼각산의 백운대와 인수봉, 우이령 너머 도봉산, 그리고 우측의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까지 서울 북부의 모든 주요 산들이 한 눈에 들어 온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삼각산의 주봉들을 땡겨본다.

 

 

 

# 도봉산과 사패산.

 

 

# 수락산.

 

 

 

# 불암산. 불암산 좌측에 희미한 산이 축령산이다. 우측은 천마산이고.

 

 

 

# 정말 조망이 좋은 곳이다.

 

 

 

 

# 삼각산에서 수락산까지.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도봉산에서 불암산까지.(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한차례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 다시 편안하게 진행한다.

 

 

 

# 흰구름길 끝무렵의 빨래골.

 

 

# 가끔은 계단따라 위로 오르기도 한다.

 

 

# 그래도 설렁설렁~

 

 

# 길 참 좋다.

 

 

# 간간이 전망대도 만나고,

 

 

# 북한산 생태숲 근처로 나온다.

 

 

# 조금 더 가면 흰구름길이 끝나고,

 

 

# 솔샘길이 시작된다.

 

 

# 솔샘길은 2.1km거리인데,

 

 

# 대부분 인간세 언저리를 걷게 된다.

 

 

# 체육시설도 지나고,

 

 

# 쉼터에서 쉬기도 한다.

 

 

# 그러다 공원을 벗어나더니,

 

 

# 정릉동쪽으로 내려가,

 

 

# 시가지 도로를 따라 가게 된다.

 

 

# 둘레길이니 이 정도는 감안해야지.

 

 

 

# 그러다 국립공원 정릉매표소 앞에서,

 

 

# 주차장 좌측으로 올라 가는데, 5구간 명상길의 시작이다.

 

 

 

# 법륜사 위쪽의 산길로 올라 간다.

 

 

# 전망대를 만나 올려다 보니,

 

 

 

# 형제봉 능선이 올려다 보인다.

 

 

# 길 좋고 쉴 곳 많고,

 

 

 

# 정맥할 때와는 180도 다른 산길이다.

 

 

# 막걸리를 다시 급유하는데, 이제 취해서 더 못마시겠다!!

 

 

# 명상길은 북악터널 위쪽을 지나 형제봉입구에서  마치게 되어 있으나 그쪽에서 끊으면 전철 연결하기가 어려워 국민대쪽으로 내려 가기로 한다.

 

 

 

# 그 전에 인적 없는 숲속으로 스며 들어 찬물에 한 번 담궈본다.

 

 

# 아이고, 시원하고 조타~!

 

 

# 계곡에서오래 쉰후 국민대쪽으로 하산했다.

 

 

# 다 내려오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고, 길 건너에서 버스 타고 길음역으로 향한다.

 

 

 

의례이 길음역 근처에서 뒷풀이로 막걸리 한 잔 더 할 분위기이지만 갑자기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오늘따라 둘레길 걸으며 마신 막걸리가 심하게 취하게 만들어 오늘은 다들 그만하고 각자의 서식지를 찾아 가기로  했다.

 

어쨌거나 장마철 비님 오시는 날 약속대로 걸은 북한산 둘레길은 먼 데 정맥길 못간 산꾼들의 산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하고, 중간중간 급유처가 많아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며 걷기에 딱이었다.

 

다음 번 비는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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