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랑 2012. 12. 17. 17:18
순이를 보내주다!

 

 

2주 전. 순이가 떠나가고 슬프고 황망한 와중에도 주변을 수소문하여 광주에 있는 애견화장장에서 순이를 화장하였다. 워낙에 작고 여린 녀석이 마지막에 곡기까지 끊는 바람에 체중이 겨우 2kg에 불과하여 화장을 하고나니 한 주먹은 고사하고 남은 게 거의 없다.

 

주위에서는 평소 순이가 뛰놀던 산책로 주변에 뿌려 주라고 하지만, 그렇게 보내버리기엔 순이와의 추억이 너무나 많고 아쉬움이 남아 좋은 장소를 찾아 묻어 주기로 했다.

 

순이는 우리와 처음 만난 꼬맹이 시절부터 산본에서 쭉 살아 왔고 수리산을 뒷동산처럼 늘 오르내리며 뛰어 놀았기에 그곳에서의 추억이 가장 많을 수 밖에 없어 수리산에 묻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을 듯했다.

 

그래서 마눌과 같이 수리산 이곳저곳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올 겨울 들어 가장 극심한 한파가 찾아 온 날이라 대여섯 시간 산길 헤매는 동안 우리 둘다 완전히 동태가 될 정도로 꽁꽁 얼어 버렸다.

 

수리산은 산본, 안양, 안산에 걸쳐 위치하고 있어 평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라 아늑하고 양지 바르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적당한 장소를 찾기가 너무나 어렵다. 게다가  평소 우리 순이가 많이 뛰놀던 곳이어야 하니 더욱 마땅한 장소가 귀하다.

 

그러다 밤이 완전히 어두워 기온이 더욱 급강하하고 우리도 완전히 지쳤을 무렵 감사하게도 눈이 번쩍 뜨이는 좋은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파주의보가 내리고 기온이 영하 12도를 가리키는 와중에도 그곳은 바람 한 점 없고 땅도 얼지 않아서 호미와 작은 부삽으로도 쉽게 땅을 팔 수가 있다.

 

그 밤에 순이를 안장하고 준비한 소품들로 작고 아담한 묘지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쩍쩍 달라 붙는 강추위 속에서도 희한하게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부드럽고 안온하다. 우리 순이가 자기 쉴 곳을 제대로 찾은 모양이다...

 

 


  


# 뒷날 아침에 순이를 만나러 다시 갔다. 수리산 슬기봉이 올려다보인다.

 

 

 

# 우리 순이가 예전에 여러차례 산책을 나왔던 임도이다.

 

 

 

# 소나무숲이라 아늑하고 깨끗하다.

 

 

 

# 햇살 잘 드는 남향으로 묘지를 만들었다.

 

 

 

# 녀석이 좋아하던 과일과 고구마 등도 올려 주고...

 

 

 

# 벽돌을 두르고 하얀 자갈을 깔아 주었다.

 

 

 

# 영하 12도의 강추위에도 이곳은 따스하고 안온하다. 한 가지 희한한 것은 간밤에 수리산 일대의 모든 땅이 꽁꽁 얼어 있었는데 이곳만은 얼지 않고 부드러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이곳도 땅이 얼어 있다. 순이가 이곳을 자기 쉴 곳으로 선택한 모양이다.

 

 

 

# 순이 혼자 겨울 차가운 숲속에 누워 있는 것이 안타까워 순이 곁에서 하룻밤 보내기로 했다.

 

 

 

# 토요일 저녁에 짐 꾸려 수리산을 찾았다. 산길 걸어 순이에게 들렀다. 잠시 순이와 함께 있다가 전에 봐 두었던 정자로 향했다. 이곳은 순이가 잠든 곳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정자다.

 

 

 

# 몇 해 전 여름에 산꾼 동지 모임인 홀산 식구들과도 함께 왔던 곳이다.

 

 

 

# 이곳 역시 바람 한 점 없고 아늑하다.

 

 

 

# 마눌과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순이와의 추억을 밤 늦도록 되새겨 본다.

 

 

 

# 10월달 하조대에 갔을 때 순이도 저 텐트에서 잤구나! 순이는 산꾼 집의 강아지라 야영 경험이 많았다.

 

 

 

# 둘이서 밤을 보냈지만 순이와 함께 한 듯 추억을 나눈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 다른 이들이야 이런 우리 마음을 유별나다 할 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특별한 녀석이었고 특별하게 보낸 밤이었다.

 

 

 

# 비온 뒤라 눈이 모두 다 녹았다.

 

 

                                  

# 겨울 솔숲이 청량하다.

 

 

 

# 아침 끓여 먹고 짐을 꾸렸다.

 

 

 

# 수리산은 수도권 MTB의 메카라 아침 일찍부터 잔차족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 임도 따라 내려가다가,

  

 

                                

# 소나무숲으로 올라간다.

 

 

 

# 소나무 숲길 너머에 있는 우리 순이에게 다시 왔다.

 

 

 

# 순이야, 사랑하는 우리 순이야!

 

 

 

# 편안히 잘 쉬렴. 이제 너를 보내 줄께! 너와 함께 한 지난 세월 참으로 행복했다!

 

  

                               

# 양지바르고 따스한 곳에 순이를 쉬게 하였단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구나.

 

 

 

# 마눌은 아직도 순이 생각에 매일매일 눈물이지만, 역시나 순이를 편안하게 쉬게 했다는 생각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렇게 산꾼 주인을 만나 산꾼 강아지로 살다 간 우리 순이를 산꾼 방식으로 추모하고 영면의 길로 보내주었다. 예전에 자신의 추억이 어린 아늑하고 따스한 장소에 묻어 주었으니 우리 순이도 편안하게 쉴 수 있으리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보고싶을 땐 짐 꾸려 그 산자락에서 하룻밤 같이 보내 주는 것도 쉬울 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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