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세번째걸음(명상길~옛성길)
우리 옛 조상들은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유두(流頭)와 탁족(濯足)'을 즐겼다 한다. 유두(流頭)는 머리 감기를 뜻한다. '東流水頭沐浴(동류수두목욕)'의 약자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하면 부정이 가신다’하여 유월 유둣날에 널리 성행하던 우리 고유의 피서법이다. 한편, 탁족(濯足)은 더운 여름날 시원한 계곡으로 찾아가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가 더위를 쫓는 피서법으로 법도를 중시하여 함부로 몸을 드러내지 못하던 선비들이 즐기던 피서법이다. 조선 후기 정조, 순조 때 사람인 홍석모(洪錫謨)가 우리 민족의 세시풍습을 자세히 기술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란 책이 있다. 그 책에는 음력 6월이면 남산과 북악 골짜기의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이 유행했다 하였고, 또한 서대문 밖 천연동에 있는 천연정(天然亭), 삼청동의 탕춘대(蕩春臺)와 정릉의 수석(水石) 등에는 술과 문학을 즐기는 자들이 많이 모여들어 피서를 한다고 적혀 있다. 유난히 춥고 눈 많이 내린 2013년 겨울날에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유두와 탁족을 거론한 이유는 '탕춘대(蕩春臺)' 때문이다. 탕춘대는 조선조 최악의 임금으로 비난받는 연산군(燕山君)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연산군은 재위 11년 차인 1505년, 물 좋고 산 좋은 세검정 인근에 돈대(墩臺)를 쌓아 탕춘대라 이름하고 앞 냇가에 수각(水閣)을 지어 미희(美姬)들을 불러 모아 연회를 즐겼다 한다. 세검정(洗劍亭)이란 이름은 연산주 이후인 인조반정 시대로 내려와야 되나, 연산주 당시에도 이곳은 삼각산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모래내(지금은 홍제천)이 휘감아 흐르는 산자수려한 곳이었나 보다. 악인(惡人) 중에는 그냥 단순무식하여 거칠고 폭력적이기만 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나름 지적(知的) 토대를 갖추고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세우고 있는 확신범적(確信犯的)인 악인들도 있다. 이들은 탄탄한 지적 소양을 바탕으로 흔히 세상을 비웃듯 위악적(僞惡的)인 언행을 일삼기 일쑤인데, 연산군도 그러한 인물이었다. 남들 같으면 비록 술 먹고 계집질하기 위해 경치 좋은 곳에 대를 쌓고 정자를 만들었다 하여도 그 이름만은 고상하고 멋스럽게 풍류를 즐기듯 거연(居然), 세심(洗心) 등등 위선(僞善)을 부리겠지만, 확신범 연산주는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백일하에 드러내 버린다. 이름하여 '탕춘(蕩春)'이라 '蕩'은 '방탕할 탕', '방자할 탕, ''광대할 탕'이요, '春'은 자연의 봄은 물론이고 여색(女色)을 의미하니 방탕의 끝을 보고 화끈한 놀이의 지극을 맛보자는 의미이다. 물론 탕춘이란 말이 봄날을 즐기자는 의미로 온건하게 해석도 가능하겠으나, 스스로 악인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연산군의 심성으로 짐작건데 "그래, 나는 이렇게 화끈한 사람이야, 나를 깔려면 까봐!" 하는 위악적인 선언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탕춘이란 이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든지 후일 영조는 이곳에 군사 훈련장을 만들고, 그 이름조차 군사를 조련한다는 의미인 연융대(鍊戎臺)로 고쳤다 하니 강/사/랑의 해석이 마냥 엉터리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세월 흘러 옛일을 모르는 뒷사람들은 연융대란 이름보다 탕춘대란 이름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으니, 만약 연산군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혼자 빙그레 웃으며 "봐라, 이놈들아, 고상한 척 위선 떨지 말고 나처럼 솔직하게 사는 게 어떠냐?"하고 세상을 비웃을 것만 같다. 여름날 탕춘대 아래 모래내 계곡에 발 담그고 탁족 즐기며 쉬엄쉬엄 가야 딱 맞을 듯한 북한산 둘레길 탕춘대구간을 눈 내리는 엄동에 지나면서 길 위에서 스친 생각들이다...

눈 내린 날 둘레길! 
구간 : 북한산 둘레길 제 5,6,7구간(명상길~평창마을길~옛성길) 거리 : 구간거리(10km), 누적거리(31.8km) 일시 : 2013년 2월 3일. 해의 날.
원래 북한산 둘레길은 비 내리는 날에만 진행할 작정으로 시작했더랬다. 홀로 산꾼이자 종주 산꾼인 강/사/랑의 산행은 대부분 먼 지방의 인적 드문 산길이어서 집에서 접근 거리도 멀고 기상 조건도 맞아야 나서기 쉽다. 하지만 기상이란 것이 늘 협조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꼭 주말이나 휴일에 비가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비 내려 산 허기 지는 날에 가깝고 길 좋아 우산 쓰고도 갈 수 있는 둘레길을 가보자 시작한 것이 작년 여름이었고, 두 차레 비 내리는 휴일에 진행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같은 종주 산꾼에게 둘레길은 그다지 매력적인 산길은 아니어서 해가 바뀌도록 딱 두 번 진행했을 뿐이고 다시 언제 갈 수 있으려나 기약도 없다.
그러다 올해 초. 첫 주말에 야영산행을 다녀 온 이후 뜻밖에 병 하나를 얻어 한 달 넘도록 산행은 물론이요, 출퇴근도 자전거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운동부족으로 살만 자꾸 불어나고 몸이 굳어 이곳저곳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무엇보다 산 갈증이 심해 주말에 쇼파에 누워 TV보고 있자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이래선 안 되겠다. 먼 곳의 산은 못 가더라도 가까운 둘레길이라도 가야겠다! 이봐, 마눌! 짐 챙겨라, 산에 가자! 비 대신 눈 내린다니 둘레길 가기 딱 좋은 날이구나!
탕춘대/蕩春臺
종로구 신영동 136번지에 있던 돈대로서, 연산군 11년(1505) 이곳에 탕춘대를 마련하고 앞 냇가에 수각을 짓고 미희들과 놀았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영조 27년(1751) 가을에 영조는 탕춘대에 거둥하여 활쏘기로 무사를 뽑고, 29년(1753)에 탕춘중성(蕩春中城)을 새로 쌓고, 30년(1754)에 탕춘대를 고쳐 연융대라 하고 홍상서(洪尙書)를 시켜 신영동 172번지 세검정 위 길가에 있는 바위에 ‘연융대(鍊戎臺)’ 석자를 새겼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북한산 둘레길 개념도.




지난 번 멈추었던 명상길 구간을 이어가자면 국민대학교까지 가야 하는데, 집에서 마을버스, 1호선, 4호선 전철, 그리고 다시 택시를 갈아 타야하니 도착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 국민대학교 바로 지나 북악터널 가기 전 우측에 북악매표소 들머리가 있다. 
# 이정표 좋으니 특별히 지도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 
# 한 달 이상을 산행은 고사하고 완전 돌부처 마냥 움직이지 않았더니 들머리 작은 오르막에도 숨소리가 증기기관차처럼 거칠게 나온다. 
는가 하면, 나름 지적(知的) 토대를 갖추고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세우고 있는 확신범적(確信犯的)인 악인들도 있다. 이들은 탄탄한 지적 소양을 바탕으로 흔히 세상을 비웃듯 위악적(僞惡的)인 언행을 일삼기 일쑤인데, 연산군도 그러한 인물이었다.
# 두어번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넓은 오르막길을 가로지르는 둘레길과 만나게 된다. 
# 좌틀하여 형제봉 방향으로 오른다. 

# 그러다 갈림길을 만나고, 
# 북악갈림길에서 평창동 방향으로, 
# 다시 한차례 올려 갈림길을 만나 좌틀해서 떨어진다. 
# 형제봉 갈림길이다. 직진하여 계속 오르면 형제봉 방향이고, 둘레길은 계속 평창동 방향. 
# 잠시 내려 가면 우측 사찰 방향으로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서 있다. 아마도 산 정상부에서 이탈하여 굴러 내려 온 듯 하다. 
# 한번 밀어 봐라, 혹시 굴러 갈런지... 
# 지난 겨울, 무시무시하게 춥더니 입춘 지나자 계곡엔 이미 봄기운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 아래로 계속 내려 명상길이 끝나고 평창마을길이 시작된다. 
# 탕춘대 암문을 지나, 
# 독바위역까지 가볼 생각이다. 
# 그런데 평창마을길은 내도록 아스팔트길이 이어진다. 
# 우측엔 형제봉 능선, 정면 멀리는 탕춘대 능선과 족두리봉이 보인다. 
# 족두리봉을 땡겨 본다. 
# 평창동은 부자들이 많이 살기로 유명한 곳이다. 
# 한 며칠 기온이 엄청나게 올라 계곡엔 물소리가 가득하다. 
# 설마설마하던 평창마을길은 5km가 넘게 인간세를 계속 지나게 된다. 
# 대성문 갈림길을 지나고... 대성문까지는 빡세고 길게 올려 쳐야 한다. 
# 구불구불하고 오르내림 많은 동네라 눈 내리면 완전 쥐약이겠다. 
# 올려다 본 형제봉엔 등산객들이 조망 감상중이다. 
# 인간세의 아스팔트길이 아쉽기는 하지만 경치는 제법 볼만 하다. 
# 평창동은 집들이 성곽처럼 이어져 있다. 
# 산길만 한 운치는 없지만 나름 걸을 만은 하다. 
# 조망처가 나와 넓게 펼쳐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이 동네 사람들은 공기 좋고 언덕 많아 걸어 다니기만 해도 건강이 좋아지겠다. 
# 갈림길을 다시 지나고, 

# 아래로 내려 구기동으로 내려 간다. 
# 평창마을길 5km를 걷는 동안 밥 먹을 만한 곳이 하나도 없어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에야 겨우 점심을 먹을 수 있다. 
# 선지해장국은 별로이고 들깨해장국은 먹을만 했다. 산에서 먹으려고 챙겨 온 막걸리를 이곳에서 비운다. 
# 식사 후 구기터널쪽으로 올라 가는데, 이곳 해장국집도 꽤 유명한 모양이다. 
# 터널 우측 빌라들 사이로 올라, 

# 구기터널 위로 오르면 옛성길이 시작된다. 
# 비로소 산길다운 산길이 시작된다. 곧 탕춘대성을 만나 좌틀. 
# 탕춘대성 암문에 이른다. 

# 둘레길 중 유일하게 성곽의 암문을 통과하는 곳이다. 
# 연산군이 탕진하려고 했던 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색(色)이기만 했을까? 좋은 임금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당파로 똘똘 뭉친 조정 신하들에 대한 분노 등이 극악한 마성으로 나타나 인간성의 탕진을 가져오게 한 것은 아닐까? 
# 편안한 산길을 오르내리게 된다. 
# 그러다 홍은동 갈림길을 만난다. 
# 홍은동 일대와 그 뒤로 북악산이 보인다. 저 너머에 청와대가 있을 것이다. 
# 잠시후 바위 두 개 놓여 있는 봉우리에 이른다. 
# 향로봉, 문수봉 등이 건너다 보인다. 
# 간식 먹고 휴식하고 있는데 삼각산쪽에서 눈구름이 몰려 들기 시작한다. 
# 족두리봉. 
# 흩날리는 눈발 속에 역시나 편안한 산길을 지난다. 
# 그러다 전망대 봉우리에 이른다. 
#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 족두리봉 일대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모양이다. 
# 날씨 맑았으면 저 조망을 보았을 것이다. 
# 눈발이 점점 굵어져 얼른 길을 재촉한다. 
# 이내 불광봉 쪽으로 하산하게 된다. 
# 오르내림 적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사람도 별로 없고 한가하기 이를데 없다. 
# 불광 생태공원 건너편에 있는 장미공원에서 짐을 내렸다. 
아직 시각도 이르고 길도 편안하니 조금 더 걸어서 애초에 계획했던 독바위역까지 가자고 했는데,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주위가 어두워지자 마눌은 더 가기가 꺼려지는 모양이다.
좋다, 여기서 스톱하자! 비록 짧게 걸었고 산길보다 평창동 인간세를 더 많이 걷기는 했지만, 겨울 둘레길은 사람도 별로 없고 오랫만에 산냄새, 물소리를 적당히 맡고 들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길 건너 버스 타고 한 정거장 거리인 불광역으로 이동하여 전철 두 번, 다시 마을버스 한 번 갈아 타고 갈 때와 역순으로 집으로 돌아 갔다.
그날 밤, 서울 전역은 폭설주의보가 내려졌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물사랑의 Daum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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