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병상일지 5(2015년 11월)/病床日誌 5
감각(感覺), 지각(知覺)을 뜻하는 영어 단어 'sense'에서 파생한 형용사 중에 'sensible'과 'sensitive'란 단어가 있다. 학교 다닐 때 시험에 자주 나오던 단어이고 그 뜻이 헷갈려 자주 틀리던 문제이기도 하다.
우선 'sensible'은 판단 능력과 관계있는 형용사이다. '분별 있는', '현명한' 등을 뜻한다. 'a sensible man(지각 있는 사람)', 'sensible advice(현명한 충고)' 등으로 사용된다.
고어(古語)에서는 'sensible'에 '민감한'이란 뜻도 있었다는데, 현대어에서 민감함을 뜻하는 형용사는 바로 'sensitive'이다.
'sensitive'는 자극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a sensitive man(세심한 사람)', 'sensitive skin(민감한 피부)' 등의 예로 많이 쓰인다.
원래 살아있는 생명체는 자극에 민감해야 한다. 환경의 변화에 둔감하면 적응력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은 자연의 선택에서 도태되고 만다.
결국, 생명의 진화는 환경의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발달 여부가 결정되어져 왔다. 오늘날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다 예민하게 환경에 적응한 존재들인 것이다.
하지만 간혹 그 예민함이 너무 지나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주변 물질의 자극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발생하는 '알레르기'나 '아토피', 자신의 항원에 대하여 항체를 만들어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 등이 그러한 문제의 결과이다.
무엇이든 너무 예민하여 좋을 것은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약물을 계속 복용해온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아주 민감한 몸이 되어 버렸다. 조금이라도 무리했다 하면 입가에 물집이 돋거나 뜻하지 않는 질병을 쉽게 얻곤 한다.
다 같이 식사를 했는데 나 혼자 만 식중독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고, 둘이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조금 꼐름칙한 음식을 먹고는 식사 도중에 온몸에 알러지가 나기도 했다. 마주앉은 일행은 멀쩡한데도 그렇다.
허리에 뜻하지 않은 병을 얻고 나서 지나치다 싶게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 매일 10km 내외, 걸음 수로는 만오천 보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과 몇 가지 근력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남들은 허리에 탈이 나면 일단 두어 달 입원해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순서라는데, 나는 바쁜 일상 탓도 있었지만, 운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성정도 작용하여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회사에 출근했고 운동 역시 쉬지 않았다.
미친 듯이 열중한 운동 덕분인지 허리 병은 상당히 많은 차도를 보이고 있다. 아직 겁이 나서 자전거를 타거나 무거운 배낭 둘러메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못하고 있지만 작은 배낭으로는 웬만한 산행은 큰 문제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민감한 내 몸이 말썽이다. 허리 부상으로 인한 통증이나 저림 등은 거의 소멸되었는데, 이번에는 근육이나 인대가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 너무 많은 걷기운동이 문제인지, 과도한 스트레칭이 문제인지 정확지 않으나 오른쪽 허벅지에 전기가 지릿지릿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주 대학병원에서 문의하니 허리 때문은 아닌 것 같고 무리한 운동 때문에 예전에 있었던 장경인대염이 재발한 것 같다고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좀 무리한 것은 있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무거운 기구를 들거나 준비운동 없이 과도하게 근육과 인대를 늘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 민감한 몸이 한발 앞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어지간한 자극에는 좀 둔감하여서 대충 넘어가면 좋으련만 뭐 그렇게 예민할 일 있다고 조금만 넘치게 자극을 주면 금세 화들짝 반응을 보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쨌거나 내 몸이 예민하게 반응을 보여 경고를 주니 재활운동에 적당한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예민함이란 감각도 훈련을 통해 살살 달래주면 너무 지나치지 않게 반응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절해야 할 일이다.
# 병상일지.
* 11월 1일. 일요일 몸 상태 : 좌측 다리의 방사통은 거의 사라졌다. 아주 간혹 안쪽 복숭아뼈 주변이 가려울 때가 있을 뿐이다. 대신 오른쪽 허벅지 장경인대염이 재발하여 저릿저릿 전기가 자주 온다. 스트레칭을 하느라 그 쪽 다리를 잡아당기거나 늘리면 대퇴 근육에 통증이 느껴진다.
시월에 걷기 시작한 수원 둘레길을 이어가기로 했다. 둘레길은 벌써 세 번째 걸음이다. 지난주 어두운 밤중에 신대호수에서 두 번째 걸음을 멈췄었다.
제법 서두른다고 했지만, 버스 세 번 갈아타고 신대호수에 도착하니 시각은 이미 정오를 넘기고 있다. 이곳 신대호수는 예전엔 산속에 있는 한적한 저수지였는데 광교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정말 멋지게 가꿔 놓았다.
신대호수를 떠나 광교신도시를 빙빙 돌다가 고속도로 넘어 광교산으로 접근했다. 발병 이후 본격적인 산행은 처음이라 제법 긴장하였다. 둘레길 첫걸음에 칠보산을 넘기도 했지만, 광교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산행코스라 마눌도 나도 내 몸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긴 오르막도 가파른 내리막도 큰 문제 없이 잘 오르내렸다. 형제봉을 넘고 광교 정상 1km 전인 토끼재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어둑해지고 있다. 목적지인 지지대 고개까지는 아직 8km나 남았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내 성격을 잘 아는 마눌은 정상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만 탈출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얼마 전 같이 보았던 영화 에베레스트의 예를 들어가며 멈출 때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며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람에 고집을 꺾고 토끼재에서 상광교 종점으로 하산하였다.
산길 15km 정도를 걸었는데 뒷날 몸 상태는 괜찮았다. 다만 오른쪽 허벅지의 전기가 밤새 좀 강해졌지만, 뒷날에는 잦아들었다.
* 11월 4일. 수요일. 여름 휴가를 이제서야 간다...
...고 썼지만... 당일 일찍 출근했다. 뭐 대단히 중요한 업무를 맡아 지구를 구하는 것 같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지도 않지만 걱정이 되어 바로 출발을 못하였다. 8월부터 미루고 미뤄 11월이 되어서야 결정한 휴가인데 그렇다.
* 11월 5, 6, 7일. 원래는 제주 올레길을 걸을 작정이었는데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아 포기하고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먼 길을 운전해서 지난 늦봄에 종료한 함양군 휴천면 동강마을에 도착했다.
동강마을은 지리산 둘레길 5코스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 코스는 걷다보니 둘레길이 아니라 완전한 산행길이다. 상사폭포 지나서부터 산의 둘레가 아니라 마루금을 걷게 만든다. 온전하지 못한 허리의 소유자라 무척 조심스러웠다.
첫날은 수철마을까지 걷고 뒷날은 6코스 산청의 성심원까지 걸었다. 자동차에 야영짐을 싣고 갔지만 컨디션 조절을 위해 산청의 모텔을 숙소로 잡았다. 뜨거운 물에 허리를 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엔 하루종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둘레길은 그만두고 화개장터에 터전을 잡은 산동무를 만나러 갔다. 화개장터는 십수년 만의 방문이다. 산동무와의 반가운 해후는 술 없이 한 끼 식사와 사이다 한 잔으로 갈음하였다.
그리고 쌍계사로 이동하여 비오는 사찰 구경을 하였다. 불일폭포를 보고자 출발하였지만 복장이 부실한데다 비까지 많이 내려서 오름 도중에 그만두고 내려왔다.
* 11월 9일, 월요일. 휴가 뒤의 월요일이다. 무수히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스트레스 지수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오른다. 아... 힘들다...
* 11월 10~13일. 스트레스 많은 날들이 계속 된다. 월, 화, 수 연달아 아침 여덟시 반에 임원회의가 있었다. 덕분에 사흘 동안 아침 운동을 제대로 못했다. 싸우나에서 허리 지진 후 씻고 나오기 바쁘다.
한 주일 내내 오후쯤이면 허리가 묵직하고 불편하다. 틈틈이 스트레칭하고 몸을 풀어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집에 들어가면 11시가 가깝고 늦게라도 만 보 이상 채우고 들어와 샤워하면 새벽 한 시가 가깝다. 여섯 시가 못 되어 일어나니 하루 수면 시간이 다섯 시간이 채 못 된다. 좋지 않다.
통증의학 전문의인 산동무와 통화했다. 슬픈 일을 당하셨는데 내 허리 걱정부터 해준다. 오른쪽 대퇴근육의 저림 현상은 장경인대염보다는 무의식 중에 아프지 않는 다리 쪽으로 힘이 많이 들어간 반작용일 가능성이 높다 한다. 왼쪽 다리의 불편함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미세한 차이를 몸은 스스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조절과 관리가 필요하다.
* 11월 14, 15일. 11월 둘째 주말. 이번 주말은 아무 계획도 없이 특별한 일정도 없이 보냈다. 그저 늦잠 자고 오후에 호수 한 바퀴 돌며 휴식했다. 계속되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몸 이곳저곳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후부터는 오른쪽 무릎 바깥쪽 장경인대에 스물스물 통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이 참...
* 11월 16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허리도 묵직하다. 오래 앉아 있어서인지 등쪽으로도 불편하다. 정신적 힘겨움이 육체적 불편함을 불러 오는 모양이다. 오후 내내 비가 내렸다. 저녁 늦게 도림천을 따라 10km 넘게 걸었다.
도림천은 비 내리는 날에도 비를 하나도 맞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곳이다. 구로디지털역 근처 복개된 천변 지하도 구석 이곳저곳에 노숙인들이 터를 잡고 있다. 신도림역 찍고 돌아 올 무렵 무릎 바깥쪽에 역시나 반응이 온다.
약을 하루에 한 번, 저녁에만 먹기로 했다. 원래 병원에서는 두 달 전부터 약 복용이 필요없다 했다. 하지만 약 복용을 권하는 의사 산동무의 조언도 있고 나도 은근 걱정이 되어 아침 저녁 두 번만 복용해 왔다. 그것을 일단 하루 한 번으로 줄이기로 한 것이다.
* 11월 17~20일. 끔찍한 한 주일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고 몸 상태도 덩달아 나빠졌다. 허리는 늘 묵직하고 우측 대퇴부 근육과 장경인대는 스트레칭 이후 전기가 지릿지릿 온다. 게다가 좌측 골반까지 불편하다.
수요일엔 퇴근 도중 좌측 골반이 아주 불편하였다. 그래서 부곡동 체육공원 근처를 지나다 차를 돌려 공원으로 갔다. 한 시간여 체육공원을 돌며 몸을 풀었더니 조금 나아졌다.
* 11월 21, 22일. 생각이 많다. 말 수가 줄고 낯이 어두워지니 마눌의 걱정이 많아진다. 휴식이 필요하고 의욕도 저하되어 주말 이틀간 집에서 쉬었다. 멀리 가지 않고 집 근처에서만 걸었다. 산책하면서도 생각이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생각이 소용돌이 친다.
22일 김영삼대통령이 서거했다. 최고의 인기와 최악의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분이다. 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고 남다른 쟁취의 연속이었다. 선 굵고 크게 행동하는 반면 디테일 부족하여 마무리가 나빴다. 그래도 성공한 삶이다. 그 시대에 꼭 맞는 인물이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저물었다.
* 11월 23~27일. 참 힘든 날들이 계속된다. 몸도 마음도 지친다. 이번 주는 운동을 제대로 못했다. 수요일 목요일엔 처음으로 만 걸음을 못 채웠다. 아침 저녁 스트레칭도 제대로 못했다. 큰 보람 없는 일들로 그렇게 바빴다. 날씨 마저 갑자기 한파가 몰아쳐 이래저래 더 힘이 든다.
* 11월 28~30일. 일요일에 고향에서 시제를 모셨다. 우리 고향은 멀다. 그래서 전날에 출발해야 했다. 멀리 멀리 내려가 산청으로 들어갔다. 올해 들어 벌써 대여섯 번째 방문인다. 아무래도 산청과 무슨 인연이 있으려나 보다. 산청에서 저녁을 먹고 원지 강가에서 하룻밤 잤다.
원지에 도착하니 시각은 이미 11시를 넘기고 있다. 어두운 원지 강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래도 만 걸음을 못 채웠다. 일요일 시제 모시고 귀가하니 역시 11시를 넘겼다. 이래저래 11월 마지막 주는 딱 이틀을 제외하고는 만 걸음을 못채웠다. 오고가며 긴 운전으로 허리가 많이 불편하다. 큰일이다...
30일, 11월 마지막 날이다. 우여곡절이 많다. 어제는 부족했고 오늘은 혼미하며 내일은 불안하다. 걱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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