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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봄, 춘란(春蘭)이 꽃을 피우다!

강/사/랑 2017. 3. 20. 10:37

 [일상]봄, 춘란(春蘭)이 꽃을 피우다!


 

 

해마다 겨울이면 고향 선산에서 시제(時祭)를 모신다. 뭐 대단히 효심(孝心)이 깊은 사람이 아니고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首丘初心)에 목말라 있지도 않은 인물인데, 해마다 시제에는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총각 시절에도 그러했으니 특이한 일이기는 하다.


십수 년 전 이 산 저 산 흩어져 있는 조상님 산소에 시제 모시고 꽤 높은 비탈길에 있는 산 중턱의 산소에서 마지막 순서로 시제를 모셨다. 시제 말미에 산신제 모시느라 산소 주변을 둘러보는데 숲속 이곳저곳에 야생 춘란이 아주 많이 자생하고 있었다.


그중 몇몇 군락은 겨우내 굶주린 멧돼지들이 뿌리를 캐어 먹느라 파헤쳐 뿌리를 허공에 내놓은 채 드러누워 있었다. 흙 털어내고 상태를 확인하니 줄기를 조금 다듬기만 하면 살릴 수 있을 듯하였다. 그 춘란 가져오는 김에 모양 좋아 보이는 몇 그루도 함께 채취하여 집으로 가져왔다.


꽃가게에서 난 화분과 난석을 구입하여 모양 잡고 심어 놓으니 꽤 볼만하였다. 하지만 평소 고상한 난(蘭) 취미를 가진 인물은 아니어서 그러고는 가끔 물이나 주지 특별한 관리를 하지는 않았다. 난(蘭)이란 것이 원래 물 주고 거름 주어 힘을 북돋우고 벌레 잡아 병들지 않게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인데, 집으로 옮겨만 두고 제대로 된 관리는 못 한 것이다.


그렇게 그 난들은 십수 년을 우리 집 베란다에서 뿌리를 내렸는데 왕성하지는 못해도 시들어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긴 세월 동안 꽃을 피워내지는 않았다. 난은 원래 겨울에 추운 한파를 이겨내야 꽃을 피우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아파트 베란다란 곳이 영하로 기온이 내려가는 환경이 아니어서 우리 집 난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 겪어야 할 시련을 겪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나 난초나 모두 시련(試鍊)을 겪어야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시련이 없었으니 우리 집 난들은 야생에서 아파트 베란다로 거처를 옮긴 이후 한번도 꽃을 피워내지 못했다.


그랬는데 몇 주 전 이른 아침에 운동하다가 문득 베란다를 바라보니 난 화분 하나에서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저 난초들이 집 베란다로 이주한 지 십 오륙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번 겨울이 특별하게 추웠던 것도 아니고 우리 집 베란다 환경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저 스스로 꽃대를 밀어 올린 것이다.


그로부터 두어 주 후 가늘게 올라온 꽃대 끝에 십자로 갈라진 꽃을 피워내더니 곧 베란다 가득 난향(蘭香)을 풍기기 시작한다. 그 자태 곱고 아까워 거실로 화분을 옮겼다. 이내 거실 곳곳에 난향이 묻어나고 한 송이 난초의 꽃으로 우리 집이 품격(品格)을 얻은 듯한 느낌이다.


기뻤다. 그리고 가상하였다. 꽃 피울 조건도 맞지 않고 알뜰한 돌봄도 없었는데 춘란은 저 혼자 긴 세월을 이겨내고 드디어 꽃을 피워낸 것이다. 꽃 피운 한 송이 춘란으로 인해 올봄 우리 집은 그윽한 난향의 품격 가득하다!



 

 

# 십 오륙년 만에 처음 꽃을 피운 우리 집 춘란. 야생의 산속에서 우리 집 베란다로 이주한 이후 열악한 생육 환경을 이겨내고 저 홀로 꽃을 피워냈다.




# 이 한 송이 춘란의 꽃으로 인해 올 봄 우리 집은 난향만당(蘭香滿堂)의 품격(品格)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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