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일곱번째(육십령~동엽령)-德裕는 넓고 컷으나 매우 광폭했다!
'덕유산(德裕山)'은 군대 제대 말년 때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84년 7월. 제대를 한 달여 남겨 둔 시점이었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의 위세가 대단했던 때였다. 집권과정의 여러 사건 때문에 두려웠든지 아니면 최고권력자의 권위를 세우고자 했는지 그때 대통령의 경호는 상상초월이었다. 예를들어 전씨(全氏)가 어느 지역에 시찰나온다 하면 지역 군부대는 무기고를 봉인하고 심지어 소총의 격발장치인 공이까지 분리하여 보관하곤 했었다.
그때 우리를 구원했던 단 하나의 위안은 수련회 진행본부에서 안내방송을 하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시끄러운 소음 중간중간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안내방송하는 그 목소리가 어찌나 예쁘던지 모두들 넋을 잃고 지냈다. 특히 방송 말미에 "캄샤합니다!"라고 속삭이듯 인사를 하면 다들 쓰러질 정도로 전율하곤 했다. 피 끓는 청춘들이 산속에서 짐승처럼 웅크려 지낼 때이니 오죽하겠는가? 음... 그때 우리는 상상력의 깊이가 극(極)에 달할 때는 그냥 상상 속 세상에서만 지내는 것이 더 나음을 알 수 있었다. 뭐 그랬다는 얘기다. 그렇게 덕유산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은 강렬하고도 웃음 입가에 번지는 개그 느낌의 추억이었다. 이제 오랜 세월 흘러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두 번째로 덕유산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덕유는 엄청난 강풍과 비바람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그 바람 어찌나 광폭하던지 자칫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아... 덕유는 여전히 강렬하였다. 德裕는 넓고 컷으나 매우 광폭했다! 구간 : 백두대간 제 10 소구간(육십령 ~ 동엽령)
덕유산/德裕山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10 소구간 육십령 ~ 동엽령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새벽 여명속의 육십령 휴게소. 입간판 있는 쪽이 9소구간 날머리이다.
# 육십령 표지석. 새벽 한기에 추워 보이는 마눌. 육십령 들머리에서 5시 30분에 출발했다.
잠을 한 시간 밖에 못자서인지 컨디션이 별로이다. 게다가 긴 구간을 생각해서 초반에 너무 오버 페이스가 되지 않도록 쉬엄쉬엄 속도조절 해가며 천천히 갔다. # 온 몸에 땀이 한 바퀴 돌 즈음에 헬기장에 도착했다.(06:15)
# 육십령 고개 부근의 대표적인 백두대간 훼손 현장. 골재 채취를 위해 산이 통째로 깎여 나가고 있다.
# 골프장 건설을 위해 온통 파헤친 모습. 육십령 장계쪽 사면.
# 멀리 할미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 기묘한 암봉이 절경을 자랑한다.
헬기장에서 '할미봉'까지는 급한 오름의 연속이다.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고 일부 구간은 로프를 잡아야 올라 갈 수 있다. 따갑게 내려 쬐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헉헉헉헉 할미봉 정상에 도착했다.(6:45). 육십령에서 1시간 15분 걸렸다.
# 할미봉 정상의 조망안내판.
# 날씨가 하도 맑고 화창해 기상청을 마음껏 비웃었다. 나중에 큰코 다쳤지만...
# 할미봉 하산길은 아슬아슬한 절벽 구간이 많다. 동계에는 상당히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다.
# 왼쪽 할미봉 정상에서 오른쪽 암반지대의 정 중앙 절벽지대로 하산하여야 한다.
# 잠시 진행하면 기묘한 모양의 대포바위를 만난다.(07:10).
# 그 유래와 별칭이 재미있다.
# 멀리 지나온 할미봉이 보인다. 산세 참 예쁘다.
# 가야 할 백두대간 길. 저멀리 장수덕유가 보인다.
# 등로엔 둥글레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 연달래.
# 우산나물.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비슷한 종류인 삿갓나물은 독초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 사거리로 갈라지는 곳.(07:50)
# 표지기를 따라 가야 한다.
# 숲바닥은 연초록 잔디밭이다.
# 대간길도 연초록으로 옷을 갈아 입었다.
# 교육원 삼거리.(08:20). 육십령에서 5.22km(2시간 50분 소요)를 걸어 왔다.
# 교육원 삼거리를 지나 한바탕 차고 오르면 헬기장에 도착한다.(08:35)
# 헬기장은 조망이 좋아 지나온 백두대간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멀리 할미봉이 보인다. 할미봉까지 힘들게 차고 오르고 이후 오르락 내리락한 대간의 마루금이 일목요연하다.
# 다시 차고 올라 가야 할 대간. 뒤쪽의 장수 덕유산이 보인다.
# 언제나 그렇듯 오르막엔 산죽밭이 이어진다.
# 장수덕유산 오름 직전에 전망대 암봉을 만났다.(09:05)
# 그림이 제법 나온다.
# 코 큰 짐승의 두상같은 바위.
# 장수덕유산 앞 암봉을 올려다본다.
# 육십령에서 6.8km를 걸어 왔다.
# 기묘한 모습의,
# 암봉들.
# 장수덕유는 경관이 아주 좋다.
# 장수덕유의 정상부는,
# 암봉을 힘들게 차고 올라 가야 한다.
# 정상부는 대문을 열어 놓은 듯하다.
# 높은 고도 탓에 뒤늦게 꽃망울을 터뜨린 진달래.
# 남덕유산 쪽에서 갑자기 연무가 밀려 오기 시작했다.
# 장수덕유산 정상(10:05). 육십령에서 4시간 20분 걸렸다.
# 해발 1,510m. 서봉이라고도 한다.
# 간만에 등장한 姜某氏. 장수덕유 정상에 서다. # 장계 쪽으로 연결되는 1,082봉의 헬기장들. 백두대간길이 아니다.
# 남덕유산 쪽으로 연결되는 대간길.
# 갑자기 짙은 연무가 덮쳐온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남덕유산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 장수덕유 하산길의 철계단. 동계엔 얼어 붙어 아주 위험한 곳이다. 경사가 무지무지 급하다. 난간을 붙잡고 옆으로 걸어 내려 가야 한다.
# 철계단 중간엔 죽어 천 년을 사는 주목 고사목이 있다.
# 정상 사면은 주목 군락지다.
# '박새'라고 독성이 있어 뿌리는 살충제로 쓰인다.
# 박새는 이후 빼재까지 덕유 구간 내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큰 놈은 거의 큰 배추통만 하다.
# 남덕유 갈림길(11:00). 남덕유산은 대간길이 아니다.
# 11시 30분. 월성치에 도착. 육십령에서 6시간 걸렸다.
# 연무와 바람이 강하게 일면서 기온이 급강하하여 아주 춥다. 월성치 안내판 뒤에서 벌벌 떨면서 식사를 했다. 오늘따라 따끈한 국물을 준비해 오지 않아 추위가 더 심하다.
# 너무 춥고 힘들어 1시간 15분이나 지체한 후 12시45분에 출발했다. # 산죽밭에 연무가 끼어 신비롭게 보인다. 산죽밭은 동엽령까지 중간중간 이어지는데, 나중엔 아랫도리를 흠뻑 젖게 만드는 주범이 된다.
# 전망바위. 해발 1,340m다. 연무 탓에 아무것도 전망할 수 없다.
# 삿갓봉 갈림길.
# 대간길은 삿갓봉을 우회한다.
# 드디어 삿갓골재 대피소에 도착.(13:45)
삿갓골재 대피소에서 따끈한 캔 커피 한 잔으로 추위를 녹였다. 할미봉에서 만났던 분들은 아직 도착을 하지 않고 있다. 평소 우리의 산행속도는 언제나 평균 속도보다 구간별로 한두 시간 정도 늦게 진행된다. 사진 찍느라 중간중간에 지체하는 데다 식사 시간도 길고 체력도 떨어지니... 그런데 이분들 우리보다 더 늦게 진행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들은 오늘 여기에서 1박을 한다니 걱정은 없을 것이다. # 황점 방향 하산로. 이곳에서 탈출했어야 했다.
# 우리는 무룡산을 향해 출발.(14:05). 아직 주위는 안온하다.
# 첫 번째 헬기장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시련은 시작되었다. 시정거리는 10m를 넘지 않고 강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두 번째 헬기장에서 연세 지긋하신 분들 세 분을 만났다. 설천봉 쪽으로 하산하셔야 하실 분들이 길을 잘못 들어 몇시간째 산을 헤매고 계시단다. 우리가 동엽령까지 가니 같이 가서 안성매표소 쪽으로 하산하자고 하니 그쪽으론 가기 싫다고 한니다.
# 무룡산 사면.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오른 구간이다.
# 좌측으로 몇 걸음만 밀리면 세상을 하직 할 듯하다. 그 정도로 강풍이 심하게 불어재겼다. 이거 이러다 큰일날 수도 있겠다 싶다.
# 그 와중에도 생명의 꽃을 피운 호랑버들.
# 그나마 수목이 있는 곳은 바람이 적어 걸을 만하다.
# 그야말로 사투를 벌여 도착한 무룡산(15:05). 해발고도 1491m이다.
# 살아서 왔구나, 마눌이여.
무룡산 오름 사면에서 갑자기 강풍과 비바람을 만난 탓에 비옷과 스패츠를 준비했지만, 미처 착용도 못 해보고 아랫도리는 완전히 젖어 버렸다.
# 무룡산 하산길의 산죽밭. 산죽은 물을 듬뿍 머금고 있다가 허리 아래쪽을 완전히 적셔준다. 마눌은 완전히 질린 표정이다.
# 돌탑이 있는 무명봉.(15:55)
돌탑이 있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55분을 비바람, 강풍과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17:00에 동엽령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엽령은 해발 1,260m의 산 꼭대기에 있는 이름만 고개인 곳이다. 게다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강풍과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으니... 한 구간을 끝냈다는 기쁨보다는 다시 두 시간을 걸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 가야 한다는 걱정이 더 크게 일어난다.
# 동엽령. 당일날은 비바람 때문에 카메라를 꺼낼 수 없어서 1주일 뒤 다음 구간을 끝내면서 찍은 사진으로 대신했다.
동엽령에서 안성매표소까지 내려가는 길 역시 악전고투의 연속이다. 팍팍한 돌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가 하면, 나무 계단이 무릎을 지끈지끈하게 만들고, 흙길에서는 쭉쭉 미끌어지고... # 그래도 이 폭포 만은 너무 멋져 보여서 잠시 눈을 즐겁게 한다. "문덕소"
# 그야말로 악전고투끝에 도착한 안성매표소(18:50).
5시 30분에 육십령을 출발하여 오후 6시 50분이 돼서야 하산을 완료할 수 있었다. 총 13시간 20분이 걸렸다. 만보계를 보니 44,000걸음을 걸었다.
차이는 자켓이었다. 마눌은 고어텍스 재질의 자켓을 입었고 나는 일반 자켓을 입었다. 산행 마칠 때까지 마눌은 몸이 젖지 않았고 나는 무룡산 오르기 전에 이미 속옷까지 모두 젖은 상태였다. 그 차이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었다. 장비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리고 지난 겨울 소백산에서 눈보라와 칼바람 때문에 비박 도중 저체온증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했던 사건의 이야기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혼자서는 어떻게 대처하기가 힘든 순간이었다. 철저한 장비의 준비와 상황 발생 시의 대비가 절실하였다. '덕유(德裕)'는 "크고 넉넉한 산"이란 뜻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덕유는 무시무시하고 광폭(狂暴)한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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