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간 9정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네 번째(석개재~답운치)-참으로 어렵게 돌문을 열다(石開)!!

강/사/랑 2007. 10. 16. 10:20
 [낙동정맥]네 번째(석개재~답운치)



1대간 9정맥을 걷는 산꾼들은 기본적으로 홀로 산꾼이 많다. 1대간 9정맥 종주라는 것이 길게는 십 년, 짧게는 사오 년이 걸리는 장거리 여정(旅程)이라 단체나 무리를 지어 그 긴 세월동안 낙오없이 마음 맞춰 가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나 역시 그러하여서 마눌과 함꼐 한 백두대간 종주를 제외하고 아홉 정맥은 혼자서 줄곧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팀을 구성하여 정맥을 종주하는 것에도 장점은 많다. 정맥 종주에는 교통비나 숙박비, 식비 등에 꽤 많은 경비가 소요된다. 여러 명이 그 비용을 분담하면 경비 절감의 효과가 크다. 또 동무가 있으니 산길이 심심하지 않고 만약의 경우에 발생할 사고에 대한 대처도 용이하다.


반면에 혼자 걷는 산길은 일단 계획의 수립이나 수정이 쉽다.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중간에 멈추면 된다. 다른 이의 보폭에 맞출 필요 없으니 자신 만의 리듬으로 산길을 걸을 수 있다. 나처럼 걸음 늦고 체력 약한 사람에게 딱 알맞은 방식이고 나같이 남의 간섭 받기 싫어하고 남에게 부담주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맞춤의 방법이다.


그런데 몇 년을 이어오던 그 산행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산동무 두 명과 낙동정맥 종주대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낙동정맥은 우리나라 최후의 오지(奧地)인 강원과 경북 낙동강 일대의 산 마루금을 더듬어 내려가는 여정이다. 접근하기도 멀고 산길 걷기도 어렵고 한 번 들어가면 구간 끝날 때까지 벗어날 방법이 없는 곳이다.


지난 8월말 폭염의 날씨 속에 죽을 고생을 하며 엉금엉금 기어서 낙동정맥 최고의 난코스인 면산(綿山)을 넘어 석개재에 내려 선 후 몇 차례 다음 구간인 석개재~답운치 구간을 걷기 위해 산행 짐을 꾸렸다. 하지만, 올해들어 유난히 비가 잦은 날씨 때문에 정작 산행길은 나서지 못하고 고생보따리를 꾸렸다 풀었다만 반복했다.

지난 추석 연휴 첫날엔 다섯 시간을 운전해 석개재에 올라 갔으나, 석개재를 뒤덮은 갑작스런 비바람 때문에 산행을 포기해야 했다. 그날 먼 길 운전하여 찾아간 것이 억울해 다음 구간인 답운치~애미랑재 구간을 짧게 먼저 하는 것으로 낙동 갈증을 달래야 했다.

정맥꾼들은 한 번 느낌이 오면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렵다. 9월이 가기 전에 석개재에 꼭 다시 가야겠기에 미리 산행짐을 꾸려 두었다. 이번 구간은 거리가 꽤 멀다. 따라서 야영이 필수이다. 혼자 야영산행한다고 걱정이 태산인 마눌은 가지 말라고 만류한다. 하지만, 그녀도 나도 만류에도 불구하고 산행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을 알고 있다.

금요일 퇴근하려고 하는데, 언제나 남들 못 챙겨 줘서 안달이 난 산동무 해리님에게서 손전화가 왔다. 나 혼자 낙동하러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은 모양이다. 혼자 가서 야영하지 말고 산동무인 뚜버기님과 뱌그라님이 같은 구간을 한다고 하니 스케줄 맞춰 같이 가라고 권한다. 그러더니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와서는 뚜버기님과 얘기 끝났으니 약속 잡으라 한다. 허허~ 참!!

그렇게 해리님의 적극적 주선으로 작은 낙동 종주대가 결성되었다. 이름도 규칙도 없는 이 종주대는 일단 첫 번째 산행을 진행해 보기로 약속했다. 대원인 뚜와 뱌 두 분과 토요일 아침 8시에 사당역에서 만나 같이 첫 낙동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홀로 산꾼 강/사/랑이 처음으로 동무들과 팀을 구성해 정맥종주를 하는 낙동종주대의 첫 출발이다.

 


참으로 어렵게 돌문(石開)을 열다!!


구간 : 낙동정맥 제 3구간(석개재~답운치)
거리 : 구간거리(24 km), 누적거리(61.4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9월 29, 30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석개재(13:05) ~ 임도 ~ 정맥 마루금(13:30) ~ 묘봉갈림길(14:20) ~ 용인등봉(15:10) ~ 997.3봉(15:50) ~ 문지골 6폭포 갈림길(16:00) ~ 1095봉(16:30) ~ 삿갓재(16:55) ~ 임도 ~ 숲 ~ 임도 ~ 임도삼거리(17:54) ~ 소광, 전곡 삼거리/물 보충 휴식(16:30~16:50) ~ 임도 끝(17:10)/야영.


익일 출발(07:40) ~ 습지/속새군락 ~ 폐헬기장(08:33) ~ 934.5봉(09:40) ~ 헬기장2 ~ 헬기장
3 ~ 헬기장4(10:35) ~ 한나무재(10:53) ~ 헬기장5 ~ 헬기장6(11:15) ~ 진조산(11:45) ~ 굴전고개(12:35) ~ 금강송군락 ~ 낙엽송군락 ~ 송전탑 ~ 헬기장7 ~ 답운치(13:55).

총 소요시간 12시간 20분.(1일차 6시간 5분, 2일차 6시간 15분)

 


9월 29일 흙의 날. 사당역에서 뚜, 뱌 두 분을 픽업해서 석개재를 향해 출발했다. 예정보다 출발이 30여 분 늦었더니 이미 영동고속도로엔 정체가 시작되었다. 서초에서 경부 타고 내려가다가 분당으로 빠져서 다시 외곽순환도로에 올리고 하남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다시 호법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 탔다.

차량이 많긴 하지만 그럭저럭 달릴만하고 만종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다시 바꿔 탔다. 여기서부턴 비행기로 변신을 시도해 속도를 좀 올려 풍기나들목으로 빠져 나갔다. 좌측의 소백산 주능에 눈길 한 번 주고 36번 도로 타고 영주 거쳐 울진 방향으로 내 달렸다.

출발이 늦어 마음이 급한데 봉고차 한 대가 앞에서 계속 얼쩡거린다. "에잇 못 참겠다!" 속도를 높여 추월을 하는데, 바로 그 순간 우측 갓길 코너링 부분에 함정 단속을 하는 이동 속도 단속 카메라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제길슨!!! 급히 속도를 낮추며 계기판을 보니 100km가 넘었다. (닷새 뒤 잘 생긴 까만 내 차 사진 한 장과 국고에 8만원을 보태라는 편지 한 통이 집으로 날라 왔다.) 함정단속 나빠요~~~

현동, 육송정 거쳐 석포면으로 접어드는데 날씨가 영 수상하다. 기상청에서는 오늘 내일 비는 없고 흐리기만 하겠다고 했는데...  올해 유난히 기상청의 구라가 기승을 부리니 믿을 수가 있나? 아니나 다를까? 석포에 접근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거 석개재는 열라는 돌문은 열지 않고 하늘문만 열었나? 올 때 마다 비가 내리니 이게 무슨 조화일까?

한 달여 사이에 세 번째 석포면을 찾았다. 석포면은 울진 쪽 석개재가 열리기 전에는 그야말로 산속에 푹 파묻힌 오지 산골이었다. 석포 사람들이 바깥 구경을 하기 위해서는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나와 석포천을 건너고서야 태백이나 영주 쪽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다 석개재가 열리면서 비로소 산맥 넘어 삼척 쪽으로 또 하나의 숨구멍을 틔게 된 것이다.

 

석개재는 석포면의 경계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한편으론 석개(石開)는 글자 그대로 "돌문이 열린다"는 뜻으로 돌이 많은 산으로 사방이 막혀 있는 석포(石浦)에서 이 돌문이 열리면 이곳에 1만 가구 이상 살게 될 것이라는 전설도 전하고 있다.

그러나 돌문이 열린 현재에도 1만 가구는 고사하고 2천 여명인 인구가 더 이상 줄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그나마 아연제련소가 있어 지역 경제를 버텨 주지만, 그로 인해 공해가 생기는 부작용도 감수해야 할 몫이다.

구불구불 구절양장 고갯길을 올라 석개재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짐을 챙기는데 뱌그라님이 우의를 준비해 오지 않았단다. 마침 차 안에 옛날 낚시 다닐 때 입던 바람막이가 하나 있어 뱌그라님께 드리고 출발을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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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송정/六松亭

오래 전부터 삼거리 지점에 아름드리 소나무 여섯 그루가 병풍처럼 자라서 마치 정자의 모양을 이루어 서 있다 하여 육송정이라 불렀다. 그후 18세기말경 이곳의 소나무를 베어서 낙동강 물로 운반하여 경복궁을 지을 때 기둥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온다. 또한 1985년에는 소나무가 자라던 그 지점에 육각형 정자를 신축하여 관광객이나 주민들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다.

용인등봉/龍仁登峰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소재. 높이는 1,124 M이다.용인등봉은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마을에서 볼 때 문지골과 괭이골 사이에 솟아 오른 산릉의 최고봉으로 착한(어진)龍이란 뜻을 담고 있다. 용인등봉의 시발점인 산봉우리는 515m봉으로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족발봉으로 통한다. 산세가 마치 수캐의 생식기처럼 보여 개족발봉이라 부르는데 한자로 拘腎岩이라고도 한다. 개족발봉 동쪽 아래에서 문지골과 용소골의 물이 합수되는데 이곳에 패어든 용소골안 제 1용소는 옛부터 제를 지내는 신성한 구역이었다.

승부/承富

안동군에 속했던 지역이며 광무 10년(1906년)에 봉화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승부리가 되었다. 옛날 전쟁 때 승부가 이곳에서 결정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10여 가구가 대추, 당귀 등 특히 옥수수를 다량으로 재배하며 마을전원 전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동정맥 제 4구간 석개재~답운치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13:05. 산행준비를 마치고 석개재 임도에 들어섰다. 배낭이 무거워 허리가 휘청휘청 거린다. 1박 배낭을 1년 6개월 만에 멨더니 20kg이나 나가는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다.

 

게다가 배낭마저 몸에 착 달라 붙지 않고 어깨사이즈가 맞지 않는 놈을 메고 왔서 더욱 힘이 든다. 석개재 임도엔 가랑비가 오락가락한다. 춥다.

 

# 한달새 세 번째 찾은 석개재.
 

 

 

 

# 오늘은 철저히 임도파가 되기로 했다.

 

 

 

맨날 혼자서 산에 들어 가다가 오늘은 산동무가 있어 색다른 산행이 된다. 혼자서 산행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산행하는 날이면 온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걷기 일쑤인데, 오늘은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같이 야생화 사진도 찍고 하며 재미나게 갔다. 그렇게 진행하는 도중에 다행히 비도 그쳐 주었다.

 



# 낙동은 언제나 야생화들과 함께 시작한다. 이고들빼기.

 

 

 

# 정영엉겅퀴.

 

 

 

# 함박꽃의 열매. 새들의 훌륭한 먹이가 된다. 기품있는 꽃에 비해 열매는 영 볼품이 없다.

 

 

 

# 수리취.

 

 

 

# 산박하.

 

 

 

# 가을의 대표 주자 구절초. 찬서리가 내린 뒤까지 피는 가을 자생화의 대표격인 구절초는 5월 단오에는 줄기가 5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이 되면 아홉 마디가 된다 하여 '구절초(九節草)'라 불린다. 구절초와 닮은 국화과 중에는 개미취·쑥부쟁이·벌개미취 등도 있는데, 모두 국화과식물로 생김새도 비슷해 보통 소국(小菊)으로 통한다. 그러나 쑥부쟁이 등이 줄기가 많이 갈라져 그 끝에 모두 꽃이 피는데 반해, 구절초는 꽃을 줄기 끝에 한 송이만 피어 올린다. 또 구절초는 선모초(仙母草)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희고 단아한 꽃잎이 신선의 풍모보다 더 돋보인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 산비장이.

 

 

 

# 뱀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참배암차즈기'

 

 

 

야생화 구경하며 배낭의 무게를 잊고 한참을 진행하다보니, 임도가 우측으로 돌아 나가는 지점에서 좌측 산속으로 불러 들이는 표지기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13:30). 임도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 갔다. 곧바로 위로 고도를 높이는데 산죽밭이 길게 이어진다. 잠시 내렸다 다시 위로 올린다. 배낭 무게 때문에 힘이 들어 땀이 뻘뻘 난다.

그러나 곧 다시 내리고 안부에 이르더니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된다. 가파르고 힘이 든다. 짐은 너무 무겁고...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려 다 왔나 싶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상은 뒤로 물러난다. 다시 낑낑 위로 밀어 올리자 '묘봉 갈림길'이 나온다. (14:20)

 

 


# 이제 임도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 간다. 올해는 버섯이 풍년이라 버섯 채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 차도 버섯채취꾼의 흔적이다.

  

 
# 묘봉 갈림길.

 

 

 

# 배낭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 막걸리 한 잔을 나눴다. 이런 모습이 우리 낙동종주대의  일상이 될 듯한 느낌이다.

 

 

 

이 무거운 배낭 둘러메고 묘봉 갈 일은 없다. 묘봉의 유래나 알면 된다. 옛날 풍곡리 쪽의 문지골에 고양이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문지골 막장에 고양이 형상의 바위가 있어 묘봉(猫峯)으로 불렀다고 자료를 찾아 볼 수 있다.

뚜벅의 배낭 속에서 맛난 막걸리가 나온다. 아~ 달고 맛나다!!! 20여 분 푹 쉬며 무게에 놀란 어깨에 휴식을 주었다. 잠시 쉰 후 끙차! 다시 보따리 둘러메고 출발하였다. 아래로 길게 내리다 산죽밭을 따라 길게 두어 차례 오르내렸다. 빗방울이 다시 떨어져 오늘 내일 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보한다. 갈림길을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면 다시 산죽밭을 만나 길게 올라가게 되고 한차례 내렸다 밀어 올리면 '용인등봉'이 나온다. (15:10)


 


# 용인등봉(龍仁登峰).

 

 

 

용인등봉은 어진(仁) 용(龍)에 관련된 전설이 있나 본데, 어진 용이라면 '용인'이 아니라 '인룡'이 되어야 하지 않나? 지도 상에는 용인등봉에서 야영이 가능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1인용 텐트 한 동도 치기 어렵게 좁고 울퉁불퉁하다.

잠시 한숨 돌리는 사이 좌측 삼척 쪽에서 짙은 개스가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숲을 가득 채운다. "비야,비야,비야! 오지 말아라, 우리 누나 시집간단다~" 옛 노래가 절로 나온다.

한숨 돌리고 출발하였다. 아래로 내렸다가 고만고만하게 오르내리며 길게 진행한다. 키 높이로 자란 산죽밭이 길게 이어진다. 서그럭 서그럭 산죽을 헤치고 진행하다 보면 오름 하나 나타난다. 위로 힘들게 밀어 올렸다. (15:50). '997.3봉'에 올라섰다.

이곳에서 정맥길은 좌측으로 약간 꺾어 가야 된다. 이번에는 싸리군락지가 나타나고 이 넘들이 배낭을 계속 잡아챈다. 길게 오르내리며 가다보면 좌측 숲 너머로 운무 가득한 산들이 언뜻언뜻 보인다. 그러다 한차례 길게 밀어 올려 '문지골 6폭포 갈림길'에 도착했다. (16:00)

 

 


# 금강송들이 도열해 있다.

 

 

 

# 쭉쭉빵빵하다.

 

 

 

# 키 높이의 산죽밭이 길게 이어진다.

 

 

 

# 997.3봉에서 좌측으로 꺾인다.

 

 

 

# 문지골 6폭포 갈림길.

 

 

 

문지골 갈림길은 1,025m가 찍힌다. 아래로 내려서 길게 가다가 고만고만하게 오르 내리는데, 마루금 좌측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다. 우측도 가파르긴 마찬가지다. 길게 가다가 전방에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서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렸다가는 이후 천천히 고도를 높여 갔다. 힘들다 소리가 절로 나올쯤 1095가 찍히는 봉우리에 올라섰다. (16:30)

다시 아래로 내리는데 전방에 더 높은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아이구, 힘들다! 임도는 언제 나오냐?"  축축히 젖은 숲길 걷자니 너무 힘이 든다. 계단식으로 고도를 계속 높여 가더니 1130을 찍고 나서야 아래로 내린다. 그 아래에 드디어 임도가 나타난다. '삿갓재'다. (16:55)

 



# 오랜만에 무거운 배낭 메고 산을 오르자니 영 힘이 든다.

 

 

 

# 비에 젖어 숲은 어둡고 축축하다.

 

 

 

# 드디어 삿갓재에 도착했다.

 

 

 

삿갓재는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과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경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조금 아래에 있는 삿갓봉부터는 좌측 아래도 완전히 강원도를 벗어나 경북지방으로 넘어 가게 된다. 우측으론 벌써 경북지방으로 내려 왔었다.

삿갓재는 해발 1,119m의 높은 고개다. 옛날 큰 홍수로 침수되어 정상을 삿갓 모양만큼 남겨 놓고 인근 모두가 물에 잠겼다 하여 이 봉우리를 삿갓봉이라 부르고 재의 이름도 삿갓재라고 불렀다.

1,000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삿갓만큼 남으려면 얼마나 큰 홍수가 났다는 말일까? 아마도 노아의 방주 시대 이야기인가 보다. 그렇다면 노아가 유대사람이 아니고 이곳 삼척사람이었단 말인가? 사실 대홍수에 관한 설화나 전설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인류 공통의 이야기이다.

임도를 만났으니 임도파인 우리는 다시 임도를 따른다. 임도에도 개스가 가득해서 어둡고 음산하다. 이후 임도를 따라 길게 진행하였다.

정맥을 가로지르는 희미한 고개가 나와 살펴보지만 모두들 임도를 따랐는지 숲속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임도 따라 길게 진행하다 보니 '기름통이 쌓여 있는 곳'이 나오고 다시 정맥을 가로지르는 고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임도는 정맥 마루금과 멀어져서 우측으로 멀리 우회하여 나간다. 좌측 표지기들이 손짓하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17:21)

 



# 희미한 옛 고개가 나오지만 숲엔 길이 없다.

 

 

 

# 개스 가득한 임도.

 

 

 

# 임도를 버리고 다시 숲으로 복귀했다.

 

 

 

숲으로 들어가 봉우리 하나를 넘고 잠시 가다보면 다시 '임도'를 만나고, 임도는 마루금과 나란히 간다. 그러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고 임도는 저 멀리 산 아래로 내려간다. 숲길로 잠시 진행하면 이번엔 '좌측 영동 쪽에 임도'가 나타난다. (17:42)

임도 따라 길게 진행하는데 좌측 아래 영동 쪽으로 조망이 있을 법한데, 오늘은 개스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잠시 후 '임도 삼거리'에 도착했다. (17:54)

 



# 임도가 우측으로 빠지는 곳에서 숲으로 들어갔다.

 

 

 

# 정맥 좌측 임도를 따른다.

 

 

 

# 맑은 날엔 조망이 좋았겠다.

 

 

 

# 임도 삼거리에 도착했다.

 

 

 

출발이 늦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숲에 들어갈 일 없으니 어두워져도 문제없다. 이곳에서 임도는 소광, 석포, 전곡으로 갈라진다.

자전거 타고 낙동정맥하는 도깨비님이 이곳에서 무심코 석포 쪽으로 내려가는 알바를 했다고 한다. 주변 지형이 그런 알바를 할 만하다. 석포 쪽으로 내려가면 불심골을 거쳐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끊는 사람들도 있나 보다. 임도 차단기가 잠겨 있지 않으면 이곳까지 차가 올라 올 수 있으니 가능한 구간 설정이다.

잠시 한숨 돌리고 간식도 먹고, 우리는 전곡 방향으로 갔다. 마루금파들은 숲으로 들어갈 테지만, 임도파인 우리는 그냥 임도를 따랐다.

 



# 석포로 내려가는 알바를 할 수도 있다. 산그림자님, 똥벼락님의 흔적이 보인다.

 

 

 

# 전곡 방향으로 가야 한다.

 

 

 

길고 긴 임도길이 이어진다. 셋이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주변 경치구경도 하며 진행했다. 좌측 임도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인데, 그 너머로 울진 방향의 산줄기와 동해바다에서 고기잡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불빛도 보인다. 30여 분 임도를 걸어 '소광, 전곡 삼거리'에 도착했다.

 



#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갔다.

 

 

 

# 간간이 트인 조망지가 나오지만, 개스 탓에 답답한 조망이다.

 

 

 

# 구불구불 임도 따라 걸어서 저 멀리 마루금과 만나는 곳까지 가야 한다.

 

 

 

# 울진 앞바다의 오징어 잡이 불빛이 벌써 보인다.  

 

 

 

# 소광, 전곡 삼거리.

 

 

 

삼거리 이정표 아래 배낭 벗어두고 좌측 소광천 쪽으로 물 구하러 내려갔다. 20여 미터 아래에 계곡이 나오고 계곡에 설치된 토관에서 물이 꽤 많이 흐르고 있다. 비가 계속 잦았던 탓에 물이 많은지 평소에도 물이 흐르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는 알탕도 가능하겠다. 그러나 갈길이 아직 멀어 알탕은 생략했다.

이곳에서 야영을 한다면 느긋하게 알탕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내일 갈길을 생각해서 임도 끝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알탕의 호사는 못 누렸다. 춥기도 했고.

물주머니 있는 대로 가득 채우고 간식 먹고 휴식도 취했다. 그동안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져서 각기 이마에 불을 밝혔다. 저마다의 짐을 다시 끙차 짊어지고 임도길에 다시 나섰다. 20여 분 더 진행하는데 우측 산위에서 이어지는 계곡이 나오고 거의 폭포 수준의 물줄기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그냥 저 아래 서 있기만 해도 알탕이 가능하겠다.

석개재에서 좀 일찍 출발한다면 이곳에서 물 보충하고 알탕도 하고 조금 더 걸어서 임도 끝이나 헬기장에서 야영하면 되겠다. 다시 길을 나서 드디어 임도와 정맥 마루금이 교차하는 곳에 도착했다. 19:10.

얼른 임도 한 켠에 집 두 채 세우고 저녁 준비도 했다. 난 뜨거운 물 부어서 그냥 비벼 먹는 즉석비빔밥과 주식인 야채를 준비했고, 뚜버기님네는 햇반과 꽁치찌개를 끓였다.

뚜버기님 배낭에서는 작은 야외용 소주가 줄 지어 나오고 나도 간만에 두 잔을 마셨다. 아, 야영 재미가 이런 것이다. 이럴 때는 취하도록 마셔 주는 게 좋은데... 그렇지만 우리 산하에 취하고 산사람의 정에 취하면 그 또한 취생몽사(醉生夢死)에 다름 아니다.

 

 


# 집 두 채 세우고 야영의 재미에 빠져 보았다. 

 

 

 

# 꽁치찌개. 든 것은 별로 없어도 최상의 맛이다.

 

 

 

나는 이번에 대간할 때 구입해서 딱 한 번 사용했던 부산 동우산악사의 비박텐트를 가져 왔다. 저 넘 엄청 가볍고 스틱 이용해서 간편하게 설치가 가능한 기특한 놈이지만, 텐트 안에서 비가 내린다는 결정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앞뒤 출입구를 모두 열어 두고 잠을 잤는데, 통풍이 잘돼 다행히 텐트 안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다만. 하늘에서 밤새 비가 오락가락 했다. 1년 6개월 만에 야영을 했더니 잠자리가 불편하고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걱정이 돼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데, 옆 집에서는 눕자마자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부럽다, 나도 어서 자자!! 양한마리양두마리양세마리양네마리....


토요일 잠깐 흐리고 일요일엔 개인다고 하더니 구라청은 역시 구라청이다. 아침에 텐트 밖에 나오니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다. 저 멀리 강원도 쪽 하늘은 파랗게 맑아 보이는데 이곳은 비가 내린다. 오늘도 만만치 않겠구만...

그러나 밤새 잠자리가 불편해서 자다깨다를 반복했는데도 별로 피곤하질 않다. 대자연의 품안에서 자서 그런가 보다. 누룽지 끓이고 국 데우고 해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짐 꾸려 출발 준비했다. 비가 쏟아지는 분위기는 아니라 배낭커버만 씌우고 출발했다. (07:40)

 


# 이제부터는 임도와는 완전히 헤어지게 된다.

 

 


곧바로 숲으로 들어가 올라갔다. 편하게 오르내리다 아래로 떨어지는데 전방에 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그런데 그 봉우리 쪽에서 계속 사람을 찾는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산객 한 사람이 내려오더니 여자분을 못 봤냐고 묻는다. 간밤에 헬기장에서 야영한 울산 산꾼들인데 여자분이 길을 잃었나 보다. 우리가 임도에서 왔는데 그쪽으론 오질 않았으니 아마도 소광리 쪽으로 내려 간 듯하다. 몇 분이서 연달아 내려오며 여자분을 찾아 나선다. 여자분 포함하면 모두 여섯인데 어제 우리가 헬기장에 야영하러 갔으면 주택난을 겪을 뻔 했다.

붕우리를 넘자 다시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 앞 안부 우측은 '고산습지'이고 '속새군락'이 펼쳐져 있다.

 

 


# 속새군락이 있는 습지. 

 

 

 

습지 너머 아래에 계곡이 있는지 물소리가 들린다. 전방의 봉우리를 넘자 다시 봉우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잔펀치를 연속으로 얻어 맞다가 봉우리 하나를 오르자 '묵은 헬기장'이 나타난다. (08:33). 935가 찍힌다.

이후 잔 펀치를 연달아 날리더니 곧 제대로 된 어퍼컷 한 방을 길게 쳐 올린다. (09:00) '910이 찍히는 봉우리'에 올라 섰다.

 

 


# 첫 번째 헬기장. 그 기능은 상실했다.

 

 

 

# 약간의 조망이 있어 돌아보면 정맥에서 갈라져 나간 백병산이 보인다.

 

 

 

910봉은 벌목이 되어 있어 약간의 조망을 허락하는데, 저 멀리 낙동에서 갈라져 나간 산줄기에 구름꽃이 피어 오르고 있다.

전방으로 능선을 따라 잔 펀치 세 개가 기다리고 있는데, 정확히 세 개를 얻어 맞고 나서야 950이 찍히는 봉우리에 오른다. 등로 주변엔 잣 껍질이 지천이다. 간혹 다람쥐나 청설모들이 흘린 놈들이 있어 두어 개 껍질을 까보니 잣열매가 가득하다. 두어 번 더 오르내리고 나서 '934.5봉'에 오른다. (09:40)

 

 


# 910봉, 벌목이 되어있어 약간의 조망이 허락된다.
 

 

 

 

# 산 넘어 산, 또 산 넘어 산이 이어진다. 낙동은 참으로 오지의 산동네다.

 

 

 

# 오늘 최고의 조망을 보여 주는 934.5봉.

 

 

 

# 울진 방향의 조망이다.

  

 

 

# 산넘어산넘어산넘어산넘어 구름꽃 피어 오른다. 아마도 통고산으로 짐작된다.

 

 

 

934.5봉은 전방으로 툭 트인 훌륭한 조망을 선사한다. 낙동에서 이런 조망은 손을 꼽을 정도다. 전방 좌측으로는 낙동에서 갈라져 나간 울진 쪽 산줄기들이 첩첩이 솟아 있고, 우측 전방으로 가야 할 정맥길과 이미 지난 주에 먼저 지난 통고산이 우뚝 솟아 있다.

오늘 구간 최고의 조망지라 한참을 휴식하며 조망 구경을 했다. 홀로 산행이었으면 홀랑 벗고 거풍을 즐겼을텐데... 한참을 쉬고 출발했다. 한나무재까지는 아직 1시간 30분을 더 가야 한다.


아래로 내렸다가 곧바로 한차례 밀어 올리니 '헬기장'이 나온다. 두 번째 헬기장이다. 크기가 아주 작아 도저히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 애초부터 전시용(展示用)으로 만든 건가? 아님 공사한 사람들이 돈만 받아 먹고 대충 만들었나?

다시 아래로 내리는데 길게 내려가야 하고, 조금 올리면 자세히 살펴봐야 알 수 있는 '폐헬기장'이 나온다. 이후 길게 오르내리며 가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내리막길이다. 잡목들의 저항이 심해서 옷이며 배낭이 마구 긁힌다.

길게 진행하다 보면 앞이 조금 트인 곳이 나오고 건너편에 한나무재와 진조산이 조망된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잡목을 헤치고 낑낑 올리니 '헬기장4'가 나온다. 역시나 크기가 작은 녀석이다.

아래로 내렸다가 좌측으로 휘감아 돌아 잘록이 하나를 지나고, 잡목을 뚫고 나가서 아래로 급하게 떨어지니 '한나무재'에 내려서게 된다. (10:53)


 


# 한나무재로 이어진 임도와 저 멀리 통고산이 건너다보인다.

 

 

 

# 기능을 전혀 발휘할 수 없게 작은 헬기장이 연속으로 나타난다.

 

 

 

# 저기가 한나무재다.

 

 

 

# 자작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 헬기장4. 이런 곳이 많아 이 구간 야영장소는 충분하다.

 

 

 

 

# 한나무재.

 

 

 

# 한나무재에 내려서는 뚜.

 

 

 

한나무재는 승부와 소광리를 이어주는 임도가 정맥을 가로질러 넘어 가고 있다. 고대 부족국가시대의 실직국(悉直國) 마지막 왕인 안일왕(安逸王)이 피난 중에 피곤하고 목이 말라 이 고개에 있는 자작나무 물을 받아 먹었다 하여 한나무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좀 전에 본 자작나무 군락지의 나무들은 그 옛날 안일왕이 수액을 마셨던 그 자작나무의 후손인가?

또 한나무재의 우측 아래는 승부리(承富里)란 이름을 갖고 있다. 그 옛날 전쟁에서 승부가 이곳에서 결정되어 승부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아마도 실직국이 망한 전쟁을 말하는가 보다. 한나무재는 고대 실직국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답운치까지는 지도상 3시간 40분을 예상하지만, 정맥꾼 대부분 2시간 이내에 주파하는 곳이다. 이제 여유를 부리고 좀 쉬었으면 하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이고 쉬기는 틀렸다, 출발!

곧 바로 진조산 오름에 몸을 맡긴다. 시작부터 세차게 밀어 올린다. 한차례 진하게 밀어 올리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폐헬기장'을 지나 완만하게 고도를 올리다가 다시 위로 밀어 올리면 '헬기장6'이 나온다. 11:15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위로 밀어 올린다. 이쯤에서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우의를 점검하고 낑낑 계단식으로 두 번 밀어 올리자 '진조산'에 오르게 된다. (11:45)


 


# 한나무재에서 시작부터 가파르게 밀어 올린다.

 

 

 

# 한나무재에서 한 차례 밀어 올리면 잠시 작은 조망을 허락한다. 

 

 

 

# 조망이 생겨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산산산...

 

 

 

# 노루궁뎅이 버섯.

 

 

 

# 묘지 두 기가 있는 진조산 정상.

 

 

 

진조산 정상엔 큰 묘 두 개가 앞뒤로 몸을 맞대고 있다. 벌초가 잘 되어 있는 걸로 봐서 지난 추석에 후손들이 다녀 간 모양이다. 이 높은 낙동정맥 산꼭대기에 조상묘를 모신 사람들은 누굴까? 정성이 대단한 건지, 욕심이 대단한 건지...

묘지를 제외하고는 정상 주위에 나무들이 울창해 조망은 전혀 없다. '진조산(眞鳥山)'이면 참새산인가?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법 한데 자료를 찾을 수 없다.

비가 많이 내려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올라온 길의 반대 쪽에 희미한 길이 있어 모두들 무심코 그 쪽으로 내려 갔는데, 곧 길이 사라지고 표지기도 전혀 없다.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사방 출구를 찾아 보지만, 표지기도 길도 전혀 없다. 특히 벌초를 하고 그 잔재물들을 정상 사방에 빙 둘러 쳐 놓아 더욱 길을 찾을 수 없다. 선답자의 산행기 꺼내 확인하니 '후진보법'을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올라 온 방향으로 도로 내려가라는 말이었다. 허허 참~ 후진보법이라!

올라온 입구로 도로 내려가니 올라오는 방향에서 우측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좀 전에 올라 갈 때는 왜 이곳이 뵈질 않았을까?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갔다. 이곳에서 굴전고개까지도 한번에 내려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서너 차례 오르내린 후 '굴전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12:35)

 


# 굴전고개 갈림길. 이곳이 올라 갈 때는 잘 뵈질 않았다.

 

  

# 역시 임도가 정맥을 가로지르는 굴전고개.

 

 

 

비에 흠뻑 젖어 모두들 꼬질꼬질 하다. 이제 거의 막바지이니 휴식이 필요하다. 간식 먹고 쉬면서 주변 경치구경도 하는데 다행히도 비가 그치고 곧바로 햇살이 난다. 이 넘의 구라청! 오늘은 전혀 비 소식이 없다고 예보했는데... 용서치 않겠다!!

비는 그쳤지만 수풀이 온통 물범벅이므로 우의는 그냥 입고 출발했다. 특별히 가파르게 오르내리지는 않지만 길게 오르고 길게 내리기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멋진 '금강송 군락지'를 지나고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지'를 지나 길게 오르더니, 우측으로 꺾여 진행하다 떨어져 내리자 임도가 나오고 그 끝은 '송전탑'으로 이어진다.

 

 


# 굴전고개에서 바라본 정맥 좌측의 쌍전리 방향.

 

 

 

# 노린재나무 열매.

 

 

 

# 송전탑을 지난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햇살이 난다. 송전탑을 지나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키 높이의 산죽밭이 이어진다. 다시 위로 낑낑 올라 계단식으로 몇 차례 올라 '일곱 번째 헬기장'에 오른다.

이제는 정말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바로 아래에서 차소리가 들린다. 얼른 갑시다!! 가파르게 아래로 내려가서 드디어 '답운치'에 내려섰다. (13:55)

 

 


# 빗물 가득한 산죽밭.

 

 

 

# 마지막 헬기장.

 

 

 

# 묘지가 나오고 다음 구간의 조망을 볼 수 있다.

 

 

 

# 통고산에 구름이 피어 오르고 있다.

 

 

 

# 비에 젖은 답운치.

 

 

 

'답운치(踏雲峙)'란 이름은 고개가 높아 구름을 밟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해발은 619m로 대간 정맥의 고개들 중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구름을 밟고 선다는 멋진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나는 구름 구경은 못하고 두 번 모두 축축히 젖은 몸으로 서게 되었다. 뚜버기님과 뱌그라님과 셋이서 이틀 간의 노고를 서로 격려하고 무사한 산행을 자축했다.

 

 


# 답운치에 내려서는 뱌그라님.

 

 

 

# 뚜버기님.

 

 

 

#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이틀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 산적 같은 모습의 강/사/랑. 동행이 있으니 증명사진을 남길 수 있다.

 

 

 

이제부터 석개재로 돌아갈 일이 큰 일이다. 이곳에서 석개재까지는 택시비만 오만원을 달라고 하는 먼 길이다. 답운치는 울진으로 넘어가는 36번 도로 상에 있어 차량 통행은 아주 잦다.

울진 쪽에서 산악회 버스가 하나 넘어 오길래 뚜버기님이 손을 번쩍 들어 보지만 외면하고 그냥 내빼버렸다. 같이 산 타는 사람들끼리 너무하네! 마침 타이탄 트럭 한 대가 그 뒤에 오길래 미소 가득 머금고 손을 들었더니 흔쾌히 짐칸을 허락해준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현동까지만 부탁드립니다." 꾀죄죄한 몰골과 냄새로 호의 배푼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산꾼들 최고의 승차 장소는 바로 트럭 짐칸이다. 시원한 바람 맞으며 씽씽 답운치를 내려갔다.

 



# 뱌그라님.

 

 

 

# 뚜벅이님. 추워서 사진이 흔들렸다.

 

 

 

# 낙동 동지들.

 

 

 

고마운 트럭 기사님 덕분에 현동까지 한 방에 내려 왔다. "춥고 배고프니 일단 배부터 채웁시다." 현동 삼거리에 작지만 깔끔해 보이는 민물 매운탕집이 보여 들어 갔다. 비에 흠벅 젖고 꾀죄죄한 무장공비 같은 남자 셋이 무거운 짐을 지고 들이닥치니 주인 아주머니 놀란 표정이다.

그래도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것까지 허락했다. 날 추워 계곡에서 알탕 못한 것을 매운탕집 화장실에서 더운 물로 샤워하는 호사로 충분히 보상 받는다. 더운 물로 샤워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후 인간의 모습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이 집 민물매운탕이 너무너무 맛있다. 배가 고픈 탓도 있겠지만 매운 국물과 감칠맛이 일품이다. 맛있다고 칭찬을 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송이버섯을 가지고 와서는 매운탕에 듬뿍 넣어 준다. 송이버섯 들어간 매운탕은 또 처음 먹어본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

 

 


# 우측 첫집 매운탕집으로 갔다.

 

 

 

# 맛이 기가 막혔던 민물매운탕.

 

 

 

#  민물고기 중 가장 맛있는 축에 속하는 마자가 들었다.

 

 

 

# 맛있다고 칭찬했더니 귀한 송이버섯을 넣어 준다.

 

 

 

# 돌아오는 길에 봉화에 들러 송이축제 구경도 했다.

 

 

 
언제나 혼자서 산행을 하다가 해리님 덕분에 뚜버기님과 뱌그라님과 같이 이틀 동안 낙동에서 같이 걷고 같이 먹고 같이 자면서 산꾼들의 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낙동중주대의 첫 산행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혼자 하는 산행도 의미가 있지만, 또 이렇게 같이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면서 같이 하는 산행도 참 맛있네요! 뚜버기님, 뱌그라님! 같이 한 산행 참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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