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아홉번째(각흘고개~차동고개)-아무도 이길을 강요하지 않았다!
새벽 5시. 머리맡의 휴대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어댄다. 겨울철 새벽 5시는 아직 캄캄한 밤중이다. 커튼 드리워진 침실에는 어둠이 깊다. 잠귀신은 아직 내 몸 가득 매달려 있다. 음악을 끄고 다시 잠에 빠져든다. "조금만 더 자자!"
양 어깨에 매달린 피곤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채 먹고 화장하여 산행 출발 준비를 했다. 옷 갈아입으려다 곤히 잠든 마눌 쳐다보니 나도 몰래 따뜻한 침대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마치 커다란 자석이 끌어 당긴 듯했다. 스르르 눈이 절로 감겼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이때가 제일 힘이 드는 순간이다. 늘 그랬다. 처음 백두대간 종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도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새벽 일찍 따뜻하고 안락한 집을 두고 고생보따리 챙겨 나서야 하는 그 순간이 제일 힘이 들었다. 그래도 그때는 마눌이랑 둘이서 부부 종주로 백두대간을 진행해서 함께 짐 꾸려 길을 나섰기 때문에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맥은 혼자서 진행하다 보니 이렇게 늘 혼자 짐 챙겨 길을 나서게 된다. 둘이서 서로 격려하기도 하고 자극하기도 하면서 준비하면 게으름이 덜하는데 이렇게 홀로 가려다보니 자꾸 미련이 생기는 것이다.
구간 : 금북정맥 제 9구간(각흘고개~차동고개) 각흘고개(08:45) ~ 351봉(09:10) ~ 송전탑 ~ 385봉 ~ 390봉(09:47) ~ 봉수산갈림봉(10:42) ~ 송전탑 ~ 460봉(11:13) ~ 옛고개 ~ 천방산(12:25) ~ 옛고개 ~ 403봉(12:52)/점심 후 13:30出 ~ 부엉산(13:45) ~ 억새밭 ~ 350봉 ~ 옛고개 ~ 354봉 ~ 극정봉(14:50) ~ 묘지 ~ 옛고개 ~ 명우산 ~ 동굴 ~ 절대봉(15:55) ~ 320봉 ~ 불운리고개 ~ 340봉 ~ 서재(16:35) ~ 불모골고개 ~ 묘지 ~ 서낭당고개 ~ 294.2봉 ~ 묘지群 ~ 차동고개(17:18). 12월 8일. 해의 날. 기상청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지겠지만, 한낮엔 포근하겠단다. 날씨는 일단 긍정적이다. 감사한 일이다. 오늘 구간의 들머리인 각흘고개는 39번 국도상에 위치해 있다. 39번 도로는 집에서 5분 거리인 구반월사거리에서 곧장 각흘고개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굳이 서해안고속도로를 탈 필요가 없다.
봉수산/鳳首山
08:45. 햇살이 고갯마루에 퍼지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각흘고개를 출발했다. 각흘고개에 설치되어 있는 해태 상(像)에게 눈인사하고 오르막에 몸을 맡겼다. 기온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온몸을 꽁꽁 싸맸지만, 깜빡하고 동계장갑을 준비하지 못해 손가락이 시렵다. 워밍업을 위해 최대한 천천히 오르막을 올랐다. 곧 능선 마루금을 만나 우틀했다. (09:10), 첫 번째 봉우리인 '351봉'에 오른다. 조금 내렸다가 다시 오르면 정상 좌측에 송전탑이 있다. 오늘 구간은 산줄기의 지형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크게 한 바퀴 휘감는 형상이라 저 송전탑을 바라보고 그냥 직진해 버리면 탑곡리 마을을 지나 천방산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겠다. 그러면 두세 시간 정도는 절약할 수 있겠는데... 그러나 그런 편법은 산줄기를 벗어나고 물길을 지나게 되어 정맥 산행과는 거리가 있다.
# 해태 상이 지키고 있는 각흘고개. 유구로 넘어가는 39번 도로 상에 있다.
# 며칠 전 내린 눈이 낙엽과 뒤섞혀 팥빙수 분위기가 난다.
# 좌측 전방에 천방산이 보인다. 직진하여 마을을 가로지르면 한 시간 이내 거리이지만, 한 바퀴 휘감아야 하며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다.
10여 분 후 '385봉'을 넘고 전방에 가야 할 390봉, 380봉과 봉수산이 보인다. 편하게 진행하며 작게 오르내린다. 한 차례 오르다 정상 부근에서 우회하고 계속 편하게 진행한다. 기온은 낮으나 바람이 없어 체감온도는 좋다.
# 숲 너머로 가야 할 봉수산이 보인다.
봉수산 오름은 한바탕 찐하게 밀어올려 줘야 한다. 산행 시작한지 두 시간여 지나 몸이 풀린 데다 2주일 사이에 낙엽들이 모두 풀이 죽어 있어 그다지 미끄럽지 않아 지난 구간에 비하면 거저 먹기다. 그래도 땀을 한바탕 찐하게 흘린 후에 '봉수산 갈림봉'에 올라 섰다.(10:42)
# 정상 8부 능선쯤에 제단이 하나 있길래 무속인들 작품인가 했더니, 제단이 아니라 이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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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수산 갈림봉 정상.
# 이곳에도 이정표가 있다.
# 숲 너머로 진짜 봉수산이 보인다. 봉황(鳳)의 머리(首)를 닮았나?
고도계에 525가 찍힌다. 봉수산이 535m이니 10m 낮은 셈이다. 봉수산은 이곳에서 150m 떨어졌다고 이정표에 적혀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바빠 눈인사만 건네고 천방산을 향해 출발했다.
# 북사면엔 눈이 가득하다.
# 정상의 조망. 각흘고개에서 송전탑을 따라 봉수산까지 올라오고, 다시 우측 산줄기를 따라 천방산으로 휘감아 내려가는 금북길이 잡힐 듯 보인다.
# 가야 할 산줄기.
고만고만하게 오르내리다 한차례 불끈 밀어 올리는데 북사면의 눈 때문에 아주 미끄럽다. 아이젠을 준비 못해 계속 미끄러지며 올라갔다.
당신 같으면 홀로 산속에서 저렇게 큰 사냥개들과 마주쳤는데 가만 있을 수만 있겠습니까? 빨리 개들 데리고 가 달라고 했더니 산을 넘어 개들과 함께 사라진다.
# 봉수산과 전위에 있는 갈림봉. 10여m의 표고차를 확인할 수 있다.
# 햇살 집중된 옛고개.
묘지를 지나고 '340봉'은 우회하는데 전방에 천방산이 우뚝 가로막고 있다. 천방산 오름은 아주 빡세다. 그나마 한번에 정상을 허락하지 않고 2단으로 올라야 올라설 수 있다. (11:25) '천방산' 팻말이 매달려 있는 정상에 올라 섰다. 그러나 이곳은 천방산 정상이 아니고 전위봉일 뿐이다. 천방산 정상은 정맥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우틀하여 아래로 편하게 떨어져 내린다. 정맥은 이곳에서부터 방향을 틀어 탑곡리와 멀어진다.
점심 후 13:30에 출발했다. 봉우리 두어 개를 오르내렸다. 이 구간 참 꾸준하다. (13:45). '부엉산'에 오른다. 전방에 극정봉이 건너다보인다. 한참을 오르내려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측으로 떨어져 내리는데 지도상에 표기된 '억새밭'이 나온다. 억새밭을 지나 길게 능선 마루금을 따르는데 좌측 아래로 유구읍 머그네미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극정봉까지는 봉우리 세 개를 연이어 넘어야 한다. 무명봉 하나를 넘고 다시 '350봉'을 넘더니 급격하게 떨어져 내린다. 그러다 '이름 없는 옛 고개'에 도착했다. 공주 유구읍 머그네미 마을과 예산군 대술면 소거리 마을을 이어주던 고개다.
# 억새밭.
# 머그네미 마을.
# 송전탑 너머가 오늘 구간 출발지인 각흘고개다.
# 머그네미와 소거리를 이어주던 옛고개.
내렸으니 당연히 내린 만큼 다시 올려야 하겠지? 입에서 단내가 나게 헉헉낑낑 올라 '354봉'을 올라서면 정작 극정봉은 뒤로 저만치 물러나 앉아 있다. 그나마도 작은 봉우리를 두어 개 넘어야 안부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 극정봉.
# 지나온 정맥길. 저 멀리 봉수산이 보인다. 참 많이도 걸어 왔구나.
# 우측 각흘고개에서 송전탑을 따라 12시 방향 제일 뒷쪽의 봉수산, 다시 천방산을 거쳐 이곳까지 이어진 정맥길이 한눈에 들어 온다.
# 삼각점이 있는 극정봉 정상.
정상에서 우측으로 떨어져 내린다. 다음 포스트인 명우산 가는 길은 대여섯 차례 잔펀치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회로가 있어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
# 햇살 좋은 묘지. 명우산이 건너다보인다.
# 대문을 열어 두었다.
# 다시 옛고개를 지난다.
# 등로 한 켠에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 광산 흔적인 듯...
# 역시 동굴이 있는 절대봉 정상.
오늘 구간은 산 이름들이 굉장히 거창합니다. 봉수(鳳首), 천방(天方), 극정(極頂), 절대(絶對) 등등... 절대봉에서 건너다 본 뾰족했던 봉우리다. 이제 큰 산은 대충 다 끝난 셈이다. 아래로 내렸다가 편하게 고도를 낮추며 진행한다. (16:35). 임도가 지나는 '서재'에 도착했다.
# 340봉이 뾰족하게 서서 어서 오라고 한다.
# 힘들게 오른 340봉. 표지기들이 겨울 햇살에 단풍잎처럼 반짝인다.
고개 좌측에 천주교 묘지가 보인다. 임도가 정맥과 나란해 보여 임도를 따를까 했지만 지도 확인하니 임도는 곧 정맥과 멀어진다. 고개를 건너 봉우리를 넘고 '불모골 고개'를 지나 편안하게 진행했다. 그러다 묘지를 지나 큰 당산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 '서낭당 고개'에 도달했다.(16:50). 오늘 구간 마지막까지 꾸준히 오르내린다. 때문에 '금북스럽다'란 말을 지어줄까 한다. 그다지 높지도 않은 산이 끝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산길이란 뜻이다.
이제는 정말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우측 저 멀리 차동고개로 오르는 32번 도로가 구불구불 올라오고 있고 그 끝에 차동휴게소가 보인다. 다음 구간의 산줄기가 건너다 보이는 '묘지群'을 지나 아래로 계속 내려가자 32번 도로 상의 차동휴게소에 내려서게 된다.(17:18)
# 다음 구간의 산줄기가 보인다.
# 백두대간의 이화령 휴게소 분위기가 나는 차동휴게소.
금북스럽게 끝도 없이 오르내리는 구간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와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휴게소 한켠에서 배낭 벗고 먼지 털고 있는데, 휴게소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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