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간 9정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열한번째(645번 지방도~여주재)-크리스마스날 홀로 걸은 금북길!

강/사/랑 2008. 1. 15. 00:22
 [금북정맥]열한번째(645번 지방도~여주재)

 
금북정맥(錦北正脈)은 충청도의 강역(疆域)을 굽이치는 산맥이다. 산맥이 지나는 곳의 고장은 안성, 천안, 연기, 공주, 예산, 청양, 홍성, 서산, 태안 등이다. 안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충청의 땅이다.


경기도 안성을 출발한 산맥은 천안에서 충청도로 들어선다. 이후 예산, 공주를 거치다가 645번 지방도가 지나는 '어실리 고개'에 이르러 새로운 고장으로 접어든다. 산맥은 이 고장의 북쪽 울타리를 이룬다. 그곳이 바로 충청의 유서깊은 고장 '청양군'이다.


청양군은 한자로 '푸를 靑',' 볕 陽'자를 쓰고 있다. 이름처럼 푸르고 따스한 동네다. 하지만, 자료 찾아보니 청양이란 이름은 예상과는 달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청무군(靑武郡)과 정양군(定陽郡)이 합병하면서 각 군의 글자 하나씩을 합쳐서 그 이름을 만든 것으로 나온다. 푸르고 따스한 동네여서 얻은 이름이 아니란 것이다.

 

특별한 고장 이름 유래를 기대했는데 실망스럽다. 그리하여 자료를 더 찾아 보았다. 일부 자료에서는 청양(靑陽)이란 이름이 그 역사가 아주 오래 되어 신라 시대까지 기원이 올라 간다고 나와 있다. 신라 경덕왕때 '월명사(月明師)'가 쓴 '산화가(散花歌)'란 향가에 청양과 관련된 내용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내용을 찾아보니 '청양루(靑陽樓)'에 올라 도솔가를 지어 바쳤다는 내용이다. 청양루는 신라시대 때 일관(日官)이 하늘을 관찰하던 누각이다. 신라 때 왕이 자주 행차하던 누각이니 경주에 있었을 것이다. 결국, 충청도의 청양과는 아무 연관이 없고 다만, 청양이란 말이 예전부터 전해져 왔다는 내용을 말한 것이다.

 

청양의 기원이 약간 실망스럽기는 해도 이름처럼 푸르고 따스한 동네라 청양은 농작물이 성(盛)한 고장으로 구기자와 그 이름도 유명한 '청양고추'가 많이 난다. 청양군에서는 청양고추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축제를 개최해 타지역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하지만, 청양고추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견(異見)이 많다. 청양군에서야 청양이라는 이름 그대로 청양에서 나는 매운고추가 청양고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양고추는 생산되는 지역명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라 육종된 지역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청양고추는 '중앙종묘'라는 종묘 업체에서 1983년에 개발한 매운 고추다. 제주산과 태국산 고추를 잡종교배하여 만든 것으로 경북 청송군와 영양군 일대에서 임상재배하여 육종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청송의 '청(靑)'과 영양의 '양(陽)'자를 따서 '청양'이라 명명하고 품종 등록한 것이다.


기원이야 어디든 세상사 목소리 큰 사람이 늘 우세하고 좋은 자리 선점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이이서 청양고추하면 충청도 청양이 떠오르고 청양에서 하는 축제에 놀러가고 청양에서 나는 고추를 사기 쉽다.


청송과 영양 사람들에겐 억울한 일이겠지만, 세상 사람 느낌을 일거에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니 어쩔 도리 없다. 청양이 농작물 잘 되고 고추 또한 맵싸하게 맛나니 그 또한 어쩔 방법 없는 일이다.


청양고추의 원조가 어디든 산길은 억만 년 그 자리에 있었고 정맥꾼인 나는 그 산길 더듬어 마루금을 걷는다. 그 산줄기 중 하나인 금북정맥은 청양의 북쪽을 가로지른다. 천안과 예산, 공주를 지나온 금북은 청양에 이르러 어실리 고개를 만난다.


그리고 한번 불쑥 솟아올라 '문박산(文博山)'을 이룬다. 문박산은 그 높이가 337.8m에 불과하지만, 청양지방의 각종 전설이나 이야기에 곧잘 등장하는 청양의 진산(鎭山) 중 하나다. 청양의 진산으로는 콩밭 메는 아낙 때문에 더 유명한 칠갑산(七甲山)이 더 유명하기는 하나, 문박산도 지역 주민들에겐 뺄 수 없는 진산이다.

 

청양의 진산이라 역사 깊을 듯 한데,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문박이란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이름이 넓은 지식(文博)을 나타내는 걸로 봐서 이 산이 위치하고 있는 학당리(學堂里)와 효제리(孝悌里)와 관련이 있지 않나 짐작할 뿐이다.

금북정맥 열한 번째 걸음은 645번 지방도가 지나는 어실리고개에서 문박산을 넘고 학당고개(아리고개)를 거쳐 그 옛날 도둑이 많아 여든 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었다는 여주재까지 가는 11.2km거리의 비교적 짧은 구간이다. 그 구간 내내 푸르고 볕 좋은 청양 땅 관내에 머물게 된다.

 


크리스마스 날 홀로 걸은 금북길!!

구간 : 금북정맥 제 11구간(645번 지방도~여주재)
거리 : 구간거리(11.2 km), 누적거리(142.0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12월 25일. 불의 날.
세부내용 :

645번 지방도(10:05) ~ 안어실리고개 ~ 205봉 ~ 산불감시초소 ~ 문박산(10:55) ~ 자작나무숲  ~ 임도 ~ 9번 철탑 ~ 시멘트도로 ~ 219번 철탑 ~ 시멘트도로 ~ 225봉(12:07) ~ 철탑 ~ 묘지/폐축사 ~ 학당고개(12:30) ~ 청양장례식장 ~ 매일유업 ~ 철재펜스 ~ 2번 철탑(13:15) ~ 고개/임도 ~ 4번 철탑(13:28)/점심 후 출발(14:00) ~ 참호 있는 고개 ~ 철탑 ~ 185봉 ~ 무곡고개(14:38) ~ 260봉 ~ 9번 철탑 ~ 305봉 ~ 334봉(15:33) ~ 280봉 ~ 315봉(16:05) ~ 290봉 ~ 여주재(16:20).

총 소요시간 6시간 15분.   만보계 기준 23,170보.

  

12월 25일 불의 날. 예수님 생신날이다. 회사 업무 특성 상 매년 이 날은 근무를 했어야 하는데, 올해는 보직에서 벗어나 입사 후 처음으로 쉴 수 있다.


평일에도 교회 못 가서 안달인 마눌이 당연히 교회에 갈 것이므로 난 금북 한 구간 하기로 했다. 대신 짧게 한 구간 하고 빨리 오겠노라 약속하였다.


학댕이와 독서골, 대학유치운동

학댕이라는 동네이름과 선비가 앉아 글을 읽는 형국의 독서골이 있어 공부하기에 좋은 곳으로 청양대학 유치운동에 힘을 모았던 청양읍 학당2리는 청양읍과 비봉면의 경계를 이룬다. 보기에는 얕으막한 언덕 같은 아리고개(학당주유소와 에덴모텔 사이), 그러나 차령산맥이 문박산을 거쳐 구봉산, 성주산을 이어 멀리 서천, 장항까지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예전에는 비봉과 청양읍을 나눴다. 그런 까닭으로 지대가 높아 한 마을이라도 이 고개에서 물줄기가 갈라지면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으며 겨울바람이 매서운 곳이다. 백제때는 고랑부리현, 통일신라때는 청정현, 고려와 조선초에는 청양현, 조선말에는 청양군 서하면의 지역으로 글을 배우는 학당이 있어 학댕이라 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읍동, 아리현, 건곡리와 안부동, 원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학당리라 해서 비봉면이었다가 1973년 청양읍에 편입되었다.

봉황의 알이 떨어진 아리고개(학당고개)

원학당은 아리고개 지나 에덴모텔 안쪽 마을이다. 원학당에 있는 독서골은 선비가 탕건쓰고 앉아 글을 읽는 형국이라 대학유치에 큰 힘을 쏟았는데 실패해 지금 학댕이 사람들의 가슴은 허전하고 서운하다고 한다. 원학당과 방죽골을 나누는 아리고개는 일설에 비봉산 봉황의 알이 이곳에 떨어졌다는 말이 있다. 학댕이 사람들이 소직이(소젖)라 부르는 곳에 지금 목우촌우유공장이 들어서 있으며 아리고개 줄기에 청양읍 공동묘지도 있다.

여주재/여드재/여티

장승리에서 화성면 신정리로 넘어가는 고개. 예전에 고개가 험하여 도둑이 많았으므로 약 여든 명이 모여야만 이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금북정맥 제 11구간 645번 지방도~여주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24일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마눌 이렇게 하고 기다리고 있다. 

 

 

# 육고기 못 먹는 이를 위한 파티 음식이라 연어로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 촛불도 밝히고,

 


# 와인도 한 잔 곁들였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마눌과 단촐한 만찬을 즐기고, 다음날 일찍 짐 꾸려 집을 나섰다. 서해안 고속도로 타고 가다가 당진나들목으로 나와 32번 도로 타고 합덕, 예산을 지나 유구 못 미쳐 신양에서 우틀하면 645번 지방도를 타게 된다.


잠시 후 며칠 전 이마에 불 달고 내려왔던 어실리고개에 도착했다. 10:05. 가볍게 몸 풀고 산행을 시작했다. 밭두렁 타고 전방 마루금의 송전 철탑을 기준으로 올라갔다.


      

# 645번 지방도 상의 어실리고개.

 

       

# 전방 소나무숲이 정맥길이다.

 

 

 

# 묘지에서 돌아보면 늦은 시각인데 아침 운무가 피어 오르고 있다.

 

 

 

# 아직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이름 모를 풀 끝에 서리꽃이 피었다.

 

 

 

# 씨앗 형태로 겨울을 나는 놈도 있다.

 

 

 

묘지를 지나 능선에 오르고 철탑 우측에 있는 소나무숲 언덕을 하나 넘으면 작은 마을이 좌측 아래에 나타난다. 효제골 안어실리 마을이다. 정맥길은 마을 뒷산을 한 바퀴 휘감아 돌아야 하나 보다.


바위군(群)을 지나 원두막이 있는 고개에 이른다. 원두막 뒤로 본격적이 오름이 시작된다. 한차례 올라 '205봉'을 넘고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을 만났다. 문박산 오름은 숲을 간벌해 두었는데, 간벌한 잔해물을 그냥 등로에 방치해 두어서 정맥길이 사라지고 없다.

 

덕분에 사면을 치고 올라야 했다. 잡목이 많아 연신 아야 아야 소리를 반복해야 했다. 한차례 올라 '산불감시초소'를 지나고 삼각점과 정상 표식이 있는 '문박산'정상에 섰다.(10:55)
 


# 철탑은 대부분 정맥과 나란히 간다.

 

 

 

# 안어실리 마을 뒷산을 휘감아 문박산으로 오른다.

 


# 우리나라는 가는 곳 마다 산이 참으로 많다.

 

 

 

# 간벌 잔해물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다.

 

 

 

# 버려진 산불감시초소.

 

 

 

# 문박산 정상.

 

 

 

문박산(文博山)은 이름이 참 좋다. 어느 글에서 이회창씨의 선영이 이 문박산에서 발원한 산줄기에 위치해 있다는 걸 본 적이 있다. 문박(文博)의 기운이 끼친 가문이니 애초에 제왕이 되기는 틀린 운명인데, 세 번씩이나 제왕이 되어보겠다고 애를 썼다 생각하니 안타깝다. 그 자신뿐 아니라 그를 따랐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문박의 기운을 따라서 학자의 길로 나섰으면 세계적인 석학이 되어서 노벨상을 받았을 지 뉘 알겠는가?

삼각점이 있는 곳이니 고도계 셋팅하고 길게 내려갔다. 가파르지 않아 편하게 내려갔다. 밤나무 과수원을 만나 전방이 툭 트인다. 우측 사면은 하얀 자작나무가 넓게 조림되어 있다. 전방엔 소나무 숲이 잘 가꿔져 있고 임도가 좌측으로 내려가 길게 이어지고 철탑들도 이어지고 있다.

 

 


# 파란 잎줄기를 만나 춘란인가 반가워했더니 맥문동이다.

 

 

 

# 화살나무의 빠알간 열매.

 

 

 

# 화살나무는 줄기가 화살깃을 닮아 얻은 이름이다.

 

 

 

# 청양 대치면쪽 조망.

 

 

 

# 좌측 전방으로 임도가 길게 이어진다.

 

 

 

# 문박산의 지세가 풍수지리학 상 매의 머리 부분이라고 하는데, 정말로  문박산 상공에 매 한마리 정지비행을 하고 있다.

 

 

 

# 문박산 우측 사면은 온통 하얀 자작나무 식재지다.

 

 

 

표지기가 전혀 없어 잠시 헤매다가 지도 확인하고 임도에 내려셨다. 이후 임도를 따라 길게 진행했다. 문박산 내리막에서 바라본 임도길이 장관이더니, 임도에서 돌아본 문박산도 경치가 아주 좋다. 파란 하늘과 하얀 자작나무숲이 잘 어울린다.


임도를 따라 길게 올라갔다. '9번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를 넘어 아래로 내려가면 시멘트 도로가 가로지르는 고개를 지나고 전방의 임도를 계속 따른다.

소나무 조림지 사이로 올라갔다. 전방에 고개와 좌측에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우측 밭'으로 올라갔다. 밭 꼭대기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가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소나무숲을 지나자 가시덤불 사이로 길이 어렵게 이어진다.

'219번 송전탑'을 지나 전방의 역시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를 오른다. '225봉'이다. 다시 시멘트 도로를 만났다. 결국, 좀 전 시멘트도로가 있는 고개에서 길 따라 내려오면 이곳으로 연결된다.


      

# 임도를 따라 길게 올라갔다.

 

  

      

# 문박산.

 

  

      

# 벌목지 상단의 이쁜 소나무들.

 

 

 

# 문박산 일대를 파노라마로 돌아 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사진을 보실 수 있음)  

 



# 임도를 길게 따른다.

 

 

 

# 임도에서 동전 한 닢을 주웠다.ㅎㅎㅎ

 

 

 

# 219번 송전탑을 지난다.

 

 

 

# 송전탑이 있는 225봉.

 

 

 

# 다시 시멘트 도로를 만났다.

 

 

 

225봉 초입은 밭을 지나게 되는데, 요 며칠 기온이 올라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진창길이 되어 있다. 새 신발 무게가 배로 무거워졌다. 잠시 후 숲으로 들어가니 참 걷기 좋다. 한차례 밀어 올리는데 정상 부근은 허물어진 옛 성터 흔적이 있다. (12:07) '225봉'에 오른다.

  


# 225봉 오름에서 돌아 본 모습. 중간의 고개에서 도로 따라 그냥 와도 된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음)  

 

 

 

간식 먹고 잠시 휴식한 후 225봉을 내려 가는데 이곳 역시 벌목하고 그 잔해물을 그냥 방치해 두어서 등로가 사라져 버렸다. '철탑'을 지나자 '묘지'가 나오고 다시 '밭'과 '폐축사'를 만난다.

 

표지기들이 모두 좌측에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 표지기를 따랐다가 엉뚱하게 마을로 내려가서 우회했다. (12:30) 29번 도로가 지나는 '아리고개(학당고개)'에 내려섰다.

 

 


# 묘지 위에 서면 모텔이 있는 학당고개와 그 너머에 매일유업공장이 보인다.

 

 

 

# 밭과 폐축사를 만났다.

 

 

 

# 모텔과 주유소, 장례식장이 있는 학당고개.

 

 

 

학당고개엔 29번 국도가 지나고 있어 차량 통행이 많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대충 읽고 왔는데 청양장례식장 우측으로 올라 갔다고 하길래 그대로 따라 올라갔다.

결론적으로 이 길이 아니다. 나중에 선답자의 산행기 확인하니 그도 이 길로 올라가서 고생을 했다는 얘기였다. 산행기를 자세히 읽지 않은 덕분이다.

장례식장 우측 절개지를 치고 올라가면 묘지들이 나오는데, 그 이후론 더이상 길이 없다. 잡목을 헤치고 좌측 봉우리를 목표로 치고 올라갔다. 잡목에 긁히며 정상으로 올라가자 좌측에서 올라오는 정상적인 등로와 만난다.

 


# 학당고개에 있는 장례식장 위에서 돌아본 모습.

 

 

 

정상에서 우측으로 꺾어 떨어져 내리자 '공동묘지'와 '매일유업 공장'이 보인다. 이 산을 오를 필요 없이 학당고개에서 바로 매일유업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매일유업 공장 뒷산 녹색 철재 펜스따라 위로 오른다. 중간에 묘지가 나타나 숲을 벗어나니 문박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 공동묘지와 너머에 매일유업 공장이 보인다.

 

 

 

# 펜스를 따라 올라갔다.

 

 

 

# 좌측 맨 뒤 문박산에서 출발해서 우측 공동묘지 상단을 돌아 왔다.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음)  

 

 

 

그런데 표지기를 따라 숲 밖으로 나왔는데 더이상 길이 없다. 억지로 길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덤불 때문에 진행이 어렵다. 지도를 확인하니 펜스를 따라 계속 가야한다. 다시 펜스 쪽으로 접근하였다. 빤히 보이는 거리인데 가시덤불 때문에 한참을 혼자서 난리부르스를 친 후에야 다시 펜스에 합류해서 진행했다.

펜스를 따라 길게 진행하는데, 다들 자신이 없었는지 표지기가 전혀 없다. 잡목이 우거져 걷기도 어렵다. 혹시나 또 알바일까 불안불안하였다. 펜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 지점에 표지기가 잔뜩 매달려 있다. 이제서야 다들 자신감이 생겼나?? 뻔한 길에서 계속 고생을 했다.

'2번 철탑'을 지나고, 호젓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정맥은 곧장 이 길이 아니고 우측으로 빠지라고 한다.
곧바로 숲을 벗어나고 질척한 황톳길이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고개'가 하나 나타난다.

 

고개 한 가운데에서 너구리 한 놈이 얼음 녹은 물을 마시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친다. 미안타!!!  너구리가 도망간 쪽으로 임도를 따라 위로 오르다가 우측으로 꺾어 위로 올라가는데, 돌아보면 지나온 정맥길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문박산에서부터 S자 형태로 길게 구부러져 있는 형상이다. (13:28). '4번 송전탑'을 만나고 이곳에서 마음에 점 하나를 찍었다.

 


# 잠시 호젓한 소나무숲 길을 걷다가 곧장 우측으로 꺾인다.

 

 

 

# 물 먹다가 놀라 도망치는 너구리.

 

 

 

# 문박산과 문박사, 그리고 자작나무 조림지를 땡겨본다.

 

 

 

# 요즘 내 점심 메뉴는 두부 김치와 캔 막걸리다.

 

 

 

(14:00) 거풍까지 한 차례 즐긴 후 출발했다. 아래로 내리자 '참호가 있는 고개'가 나타나고, 묘지들을 지난다. 한차례 올려 새로 조성된 송전탑을 지나 '180봉'에 오른다.

 

녹아서 질척한 넓은 임도따라 내리면 역시 새로 만든 송전탑이 나오고, 그 옆에 고개가 있다. 다시 한차례 올려 송전탑이 있는 '185봉'을 넘었다. 능선을 따르다가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꺾어 잠시 올랐다 내리면 '무곡고개'에 내려 서게 된다.(14:38)

 


      

# 넓은 임도를 따른다.

 

 

 

# 질척한 고개를 지난다.

 

 

 

# 이제 곧 새잎을 틔우겠다.

 

 

 

# 무곡고개.

 

 

 

넓은 고개엔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고, 벌목 작업차량 한 대가 고개를 올라온다. 트럭에서 내린 인부들이 나를 보고 무장공비 보듯 잔뜩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방죽골과 오류골을 이어주는 무곡고개를 지나 한차례 위로 밀어 올렸다. 이곳 역시 벌목을 했지만 잔해물 정리를 하고 등로를 확보해 두었다. 작업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14:55) '260봉'을 넘고 편하게 가다가 한차례 작게 오르내렸다. 그러다 '9번 송전탑'을 지나고 계단식을 빡세게 밀어 올리면 고도계가 265를 가리키는 봉우리를 넘고 다시 한차례 더 밀어 올려 '275봉'을 넘었다.

 

잠시 내렸다가 다시 밀어 올리면 묘지가 있는 '305봉'을 넘는데, 다시 내렸다가 제대로 또 한차례 밀어 올린다. 오늘 구간 짧지만 결코 거저 먹기가 아니다. (15:33) '334봉'에 오른다.

 


# 334봉이 힘 좀 써봐라 하고 떡 버티고 서 있다.

 

 

 

# 이곳은 벌목작업 후 정리를 잘 해 두었다.

 

 

 

# 삼각점이 있는 334봉.

 

 

 

잠시 한 숨 돌린 후 올라온 만큼 길게 내려갔다. 잘록이에 이르러 완만하게 고도를 높여 280봉을 넘고 다시 아래로 내렸다. "아니, 315봉을 넘어야 하는데 또 내려가면 어떡하냐?" 투덜거리며 내렸다 다시 위로 올리는데 등로가에 멧돼지 털이 잔뜩 널려 있다. 만져보니 꺼칠꺼칠한 게 철사처럼 억세다. 오늘 산행 초기 문박산 오름에도 멧돼지 흔적이 많던데, 이 동네 돼지 개체수가 많은 모양이다.

한차례 올라 '295봉'을 넘고 다시 위로 밀어 올려 '315봉'에 오른다.(16:05).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잠시 오르면 '290봉'을 넘게 되고, 이제부터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길게 진행하여 오늘 구간 종착지인 '여주재'에 내려섰다.(16:20)

 


# 철사처럼 거친 멧돼지털.

 

 

 

# 구봉휴게소와 주유소가 있는 여주재.

 

 

 

# 청양과 보령을 이어주는 고개다.

 

 

 

# 휴게소는 문을 닫았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두 차례나 알바하고 금북정맥답게 끊임없이 오르내려야 했던 구간이다. 은근히 힘든 구간이었다.

여주재는 그 옛날 도둑이 많아 여든 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 해서 얻은 이름이다. 백두대간 덕유산 초입인 육십령은 장정 육십 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 했는데, 이곳은 무려 여든 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었다 한다. 고개가 꽤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육십령에 비하면 고개 축에도 못 끼는데 이 지방 사람들이 허풍이 심한 건가? 아니면 이곳 산적들이 훨씬 더 흉악했었나?

고개 정상 휴게소는 구봉산 휴게소라고 지도에도 없는 이름을 달고 있다. 대간길 빼재가 고개 정상에 있는 신풍령휴게소 때문에 신풍령이라고 왜곡된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하던데, 이곳도 나중엔 구봉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곳은 휴게소 장사가 시원찮았는지 지금은 문을 닫았다. 화장실도 같이 잠가 두어서 간혹 뒤가 급해 들러는 사람들이 건물 뒤로 돌아가서 노상방뇨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나저나 저 휴게소 임대해서 정맥꾼들 쉼터를 만들어 볼까? 하지만 금북정맥 하는 사람들이 100명이나 되겠나? 굶어 죽기 딱 알맞겠다. 청양 택시 불러 차량 회수하러 어실리고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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