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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1-1코스/우도 올레-바람의 섬, 우도!! 본문

길이야기/제주 올레길

[제주올레길]1-1코스/우도 올레-바람의 섬, 우도!!

강/사/랑 2013. 10. 21. 18:47
 [제주올레길]1-1코스 - 우도 올레

 


'섬(島)'은 물로 둘러 싸인 땅을 말한다. 섬의 옛이름은 '셤'이었다. 나중에 표기 과정에서 지금의 '섬'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자 '島(도)'로 표기하는 '섬'이 원래는 한자말이라 한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은 고려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풍속 등이 자세하게 기록된 책이다. 송(宋)나라 사람 서긍(徐兢)의 저술이다. 서긍은 국신사(國信使)의 일원으로 고려를 방문하였다가 그때 보고 들은 것을 40권의 책으로 기록하였다. 그 고려도경 34권 해도(海道)편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바다 가운데의 땅처럼 사람들이 가히 모여서 취락을 이룰 수 있는 것을 '주(洲)'라 한다. 주(洲)보다 작지만 또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도(島)'라 말한다. 도(島)보다 더 작은 것은 '서(嶼)'라 한다. 서(嶼)보다 작지만 초목이 있는 것은 '섬(苫)'이라 말한다. 섬(苫)과 서(嶼)와 같지만 그 바탕이 순수하게 돌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焦(초:암초)'라 한다."

 

섬을 크기별로 주(洲), 도(島), 서(嶼), 섬(苫) 으로 나눴다는 것이 신기하고, 섬이 순우리말이 아니라 한자말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섬은 그 크기가 어떻든 그에 따른 명칭이 어떻든 기본적으로 환해성(還海性), 격절성(隔絶性), 협소성(狹小性)을 가지고 있다. 환해성은 섬이 바다에 고립되어 있음을 말하고, 격절성은 뭍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협소성은 좁은 땅을 의미한다.

 

따라서 섬은 예로부터 불편한 교통, 부족한 자원, 척박한 환경 등으로 인해 소외되고 낙후된 변방(邊方)으로 치부되었다. 오랜 세월 지나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물자와 문화의 소통이 원활해지면서 섬이 더이상 변방이 아니게 되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오랜 세월 유지해 온 독특한 문화들이 관광상품으로 가치가 인정받기 전까지 섬은 늘 뭍을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종속적(從屬的)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섬은 지리적 격절성과 척박한 환경때문에 왕조 시대에는 유배지(流配地)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 영조때 발간된 법전인 속대전(續大典)에 의하면, "평민은 충군(充軍)하고 공사천(公私賤)은 도배(島配)한다."는 기록이 있다. 도배란 섬으로 유배보낸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섬은 '변방의 척박한 유배지'였다.

 

강화도, 흑산도, 제주도, 남해도, 거제도 등이 변방의 척박한 유배의 섬이었다. 척박한 유배의 땅에서 유배인들은 도성을 우러러 왕의 진노가 가라앉기를 기원하고, 군주를 향한 단심(丹心)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섬의 산들은 '국사봉(國思峰)', '국망봉(國望峰)' 등의 이름을 흔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섬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 격절성 때문에 아이러니하게 유토피아적 이상향(理想鄕)으로 숭배되기도 했다. 왕조시대의 일반 민중은 탐관오리의 가렴주구(苛斂誅求)에 늘 시달려야 했다. 그들에게 현실은 언제나 비루하고 척박하였다.


원래 사람은 살아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다. 비록 삶은 비루하나 꿈은 아름답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우리 옛사람들은 비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희망의 이상향을 꿈꾸었다. 그 대상은 멀고 먼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아름다운 섬, 율도국(栗島國)이었다. 홍길동전의 이야기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희망은 본래 이뤄지기 어렵기에 희망인 것이다. 민중들은 늘 율도국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의 섬은 언제나 척박하고 팍팍하였다. 따라서 섬은 유배인이 도성을 그리워하듯 늘 뭍을 동경해 왔다. 그러므로 현실의 섬은 언제나 뭍의 종속적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상대성을 갖기 마련이다. 섬이라고 언제나 종속적 존재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혹 섬이 종속적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 존재가 되는 순간도 있다. 그것은 섬 속의 섬인 부속 섬을 거느릴 때이다.

 

제주도, 거제도, 강화도, 남해도 등 규모가 큰 섬들은 그 주변에 여러 개의 작은 부속 섬을 거느리는 경우가 많다. 그때 부속 섬의 위치에서 보면 본섬은 단순히 섬이 아니라 뭍이요, 대륙이 된다. 상대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적용된 결과이다.


그리하여 섬은 이제 종속이 아닌 독립의 존재가 되고 부속 섬을 '거느리는' 존재가 된다. 종종 종속적 관계는 신분 질서가 되기도 한다. 신분은 차별을 부른다. 옛부터 이런 부속 섬들은 본섬 사람들에게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섬 여행을 가다 보면 부속 섬 사람들을 비하(卑下)하는 속담이나 전설 등이 본섬에 퍼져 있는 것을 간혹 보게 되는데, 그런 역사의 잔재일 것이다.

 

그 차별의 역사는 오래 지속되어 문명 발달하고 개발의 혜택 퍼져 나갈 때에도 투자 우선 순위에서 밀려 부속 섬들은 여전히 개발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세월 흘러 개발이 만능이 아니고, 문명의 발달이 삶의 질을 담보해 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동안 개발에 소외되었던 부속 섬들은 역설적으로 깨끗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보존하였고, 소통의 단절로 전통적 관습을 유지할 수 있어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한 섬 속의 섬 중에 '우도(牛島)'가 있다. 우도는 성산항과 연결된 제주의 부속 도서이다. 소가 머리를 들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어 '쉐섬'으로 부르다가 한자말인 '牛島'로 정착되었다 한다. '쉐'는 제주 말로 소를 뜻한다.

 

우도는 성산항에서 3.8km 정도 파도 거친 제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고, 넉넉치 않은 면적과 거친 바람에 늘 노출되어 있어 개발시대에 오래 밀려 나 있었다. 덕분에 아직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제주 본섬과는 또다른 자연 풍광과 생태환경으로 많은 외지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게다가 제주에 올레길이 생기면서 우도에도 부속 코스로 우도 올레가 개발되어 이제는 관광버스 타고 떼로 몰려드는 외지인들 말고, 고즈넉히 꼬닥꼬닥 올레길을 걷는 순례(巡禮)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가치의 탄생인 것이다.

 

다만, 올레길에 발 내디디면서 세 번째로 찾아 가 본 우도는 단체 관광객들의 소란과, 사륜오토바이들의 굉음이 뒤섞혀 차츰 원래의 한적함을 잃어가는 듯하여 우려되는 바 컸다. 우도주민들의 관광 수입 증대와 우도 본래의 생태 보전이 공존할 수 있는 묘책이 시급해 보였다.




바람의 섬, 우도!!


구간 : 제주 올레길 1-1코스(하우목동항~천진항)
거리 : 구간거리(15.9km), 누적거리(31.5km, 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3년 10월 17, 18일. 나무와 쇠의 날.
세부내용 : 하우목동항 ~ 산물통 ~ 파평윤씨공원 ~ 하고수동해수욕장/야영 ~ 비양도입구 ~ 조일리 영일동 
입구 ~ 검멀레 ~ 우도봉 입구 ~ 망동산 ~ 우도봉 ~ 천진항 ~ 성산항 

 

올레 1코스인 시흥광치기 올레 끝자락에 성산포구가 있다. 그 성산포구 앞바다에 고개를 든 소 모양의 섬이 있으니 우도이다. 우도는 예전 신혼여행때 한 번, 회사에서 직원들 데리고 또 한 번 들른 기억이 있다. 두 번 모두 우도봉과 검멀래해변을 관광객 모드로  스치듯 지나쳤을 뿐이니 우도의 속살을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 우도 올레는 우도 어느 바닷가에서 하룻밤 야영하며, 그 밤바다 곁에서 우도 바다가 전하는 말을 들어 볼 참이다.

 

우도/牛島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牛島面)을 이루는 섬. 면적 5.9㎢, 인구 1,752명(2000년)이다. 해안선길이 17㎞, 최고점 132m이다. 제주시 우도면을 이루는 섬으로 제주도의 부속도서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다. 성산포에서 북동쪽으로 3.8㎞, 구좌읍 종달리(終達里)에서 동쪽으로 2.8㎞ 해상에 위치하며, 부근에 비양도(飛揚島)와 난도(蘭島)가 있다. 1697년(숙종 23) 국유목장이 설치되면서 국마(國馬)를 관리·사육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거주가 허락되었으며 1844년(헌종 10) 김석린 진사 일행이 입도하여 정착하였다. 원래는 구좌읍 연평리에 속하였으나 1986년 4월 1일 우도면으로 승격하였다. 섬의 형태가 소가 드러누웠거나 머리를 내민 모습과 같다고 하여 우도라고 이름지었다.  남쪽 해안과 북동쪽 탁진포(濁津浦)를 제외한 모든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한라산의 기생화산인 쇠머리오름이 있을 뿐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대지이며, 고도 30m 이내의 넓고 비옥한 평지이다. 주요농산물은 고구마·보리·마늘 등이며, 가축 사육도 활발하다. 부근 해역에서는 고등어·갈치·전복 등이 많이 잡힌다. 부서진 산호로 이루어진 백사장 등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우도 8경이 유명하며, 인골분 이야기를 비롯한 몇 가지 설화와 잠수소리·해녀가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남서쪽의 동천진동 포구에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 상인들의 착취에 대항한 우도 해녀들의 항일항쟁을 기념하여 세운 해녀노래비가 있으며, 남동쪽 끝의 쇠머리오름에는 우도 등대가 있다. 성산포에서 1시간 간격으로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주 올레길 1-1코스 우도 올레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올레 1코스를 걷다가 성산포구 입구에서 올레길을 버리고 성산항으로 향했다. 우도로 입도하기 위함인데, 올레 1코스가 광치기해변에서 끝나니 1코스를 완전히 끝내지는 못한 셈이다. 나머지는 내일 우도에서 나와서 걸어야 한다. 성산여객터미널엔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아주 많다. 30여 분 기다리니 도항선이 입항한다. 

 

 

 

# 나오는 배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가득하고 들어가는 배에는 호남 어느 여학교의 여고생들로 만원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다.

 

 

 

# 어? 그런데 배가 자꾸 난바다로 나간다.

 

 

 

 

# 예전에는 천진항에만 입항하더니, 이제는 일부 배는 하우목동항에 기항하는 듯하다.  관광객이 늘어나고, 도선 수입이 증가하면서 그 이권을 둘러싼 갈등의 결과인 모양이다. 牛目洞은 '소의 눈'을 뜻하는데, 옛이름인 '우뭇개'를 한역하면서 뜻과 무관한 우목으로 변음된 듯하다.


우뭇가사리가 많이 나서 우뭇개가 되었다는 설도 있고,자 그대로 우도의 목동들이 모여 살아서 '牛牧'이 되었다가 나중에 '눈目'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항구앞 작은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먹었는데 뜻밖에 맛이 좋았다.

 

 

 

# 원래 계획은 천진항에서 출발하여 우도봉을 넘고 비양도 근처에서 야영할 생각이었는데, 하우목동에 내리는 바람에 반대 방향으로 섬을 돌기로 했다.

 

 

 

# 해안도로 바로 앞에 전통 어로 방법인 독살이 설치되어 있다. 제주에서는 독살을 '원'이라고 부른다.

 

 

 

# 잠시후 해안도로를 버리고 마을 길로 들어 가라 한다.

 

 

 

# 마을 안에서 표지기를 잃고 잠시 헤매었다. 돌담으로 둘러 싸인 골목이 워낙 많은 탓이다. 제주 돌담은 돌이 많은 제주 지형을 이용한 것인데, 돌담을 쌓음으로써 제주 농업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한다. 예전에는 돌이 섞인 척박한 땅에 그냥 농사를 지은 모양이었다. 


고려 고종 31년(1244년) 제주 판관으로 부임한 '김구'라는 이가 제주의 척박한 농토를 보고 돌을 골라 내어 담을 쌓게 한 것이 시초였다 한다. 그로써 유용한 경지면적은 늘어나고, 우마의 침입을 방지하며, 방풍의 역할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제주의 돌담은 총연장이 9,000km에 달해서 제주 해안을 30바퀴나 휘감을 수 있는 거리이다.

 

 

 

# 우도는땅콩 농사가 주수입원이다.

 

 

 

# 물빠짐 심하고 끈기 없는 토양이라 땅콩이 주로 재배되고 있다. 지금이 수확철이라 곳곳에서 수확하는 일손이 바쁘고, 남은 땅콩대를 태우는 연기가 가득하다.

 

 

 

# 집집마다 마당 가득 땅콩을 말리고 있다. 그런데 우도의 땅콩은 그 크기가 아주 작고 동글동글하다.

 

 

 

# 서광리 마을 안에서 빙빙 돌다 농로를 따라 오봉리로 접근한다.

 

 

 

# 오봉리 입구에 있는 산물통.

 

 

 

# 우도 주민의 생명수였던 이 우물은 지금은 물이 탁해서 먹을 수가 없다.

 

 

 

# 바람 강한 우도의 기후에 적응해 해국이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란다.

 

 

 

# 오봉리 마을길을 휘감는데, 들일 마치고 귀가하는 할망을 만났다. 무거운 배낭 메고 걸어 가는 우리 보고는 자기 동네에 빈집이 많으니 아무데나 들어가서 자고 가란다. 고맙지만 우리는 집을 지고 다닙니다요~

 

 

 

# 올레는 마을 안을 휘돌아 나간다.

 

 

 

# 배낭 무게에 힘겨워 한다. 뒷쪽에 우도리조트가 보인다.

 

 

 

# 해안으로 나갈줄 알았더니 들을 가로지르라 한다.

 

 

 

 

# 언덕을 넘어 섬 반대쪽으로 가야 한다.

 

 

 

# 그 언덕 위에 정자가 하나 있다. 그 곁에 파평윤씨 공원 묘역이 있다.

 

 

 

# 언덕 아래 빈 땅콩밭에 말들이 방목되어 있다.

 

 

 

# 연작으로 인해 땅심이 떨어지면 밭을 쉬게 한다. 그것을 제주에서는 '쉬돌림'이라 한다. 쉬돌림 하는 동안 밭에 마소를 몰아 넣어 방목한다. 가축의 배설물이 좋은 거름이 되고 땅심을 회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일을 '바령'이라 한다. 그런 밭을 '바령팟'이라 부르고. 참으로 독특한 풍습과 언어들이다.

 

 

 

# 처음에 경계하여 도망가더니 금세 가까이 다가와 친근감을 표한다. 펑크족 헤어스타일이다.

 

 

 

# 언덕을 넘어서자 바다 풍경보다 먼저 강력한 바람이 덤벼 든다.

 

 

 

# 지금 일본으로 방향을 꺾은 태풍의 영향이 남아있는 데다 우도는 워낙에 바람이 많은 섬이다. 특히 이 동쪽 해안은 늘 강력한 바람의 나라이다.

 

 

 

# 하고수동 포구에 도착했다. 그 포구 입구에 방사탑이 서 있다. 고수동의 옛이름은 '예물동네'이다. '예물'이란 하고수동에 있는 용천수를 말한다. '이물'이라고도 하는데 왜놈들이 발견했다 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 '옛물'이 나중에 한자로 '古水'가 되었다 한다.

 

 

 

# 육지에서는 그냥 돌탑, 혹은 서낭당으로 부르는 것을 제주에서는 액운을 막아주는 '방사탑'이라 부른다.

 

 

 

# 바다 빛깔이 오묘하다.

 

 

 

# 옥빛의 바다이다. 바다 건너로 망대가 보인다. 역사는 오래지 않아 제주 4.3사건 당시에 만들어졌다 한다.

 

 

 

 

# 하고수동 해수욕장. 철 지나 인적 끊어졌다. 예전에는 '게와당'이라 불렀다. '게와'는 호주머니의 제주 말이다.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어 호주머니 모양이라 그렇게 부른 모양이다. 내 고향에서는 호주머니를 '게비'라고 불렀다. 제주 방언과 비슷하다.

 

 

 

# 여름철 관광객들로 붐볐을 하고수동해수욕장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 하얀 카페 앞에 좌우 눈 색깔이 다른 터키산 반고양이가 졸고 있다.

 

 

 

# 인적 끊긴 해수욕장에 해녀상과 인어상만 덩그렇게 남았다.

 

 

 

# 해수욕장 뒤에 수협판매장이 있다. 저녁에 먹을 생선을 싸게 구입했다.

 

 

 

# 할망 해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서 이곳 하고수동 해수욕장에서 야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바람이 너무나 강하게 불고 있어서 마땅한 야영지를 찾기가 어렵다.

 

 

 

# 해수욕장 우측 끝에 주차장과 잔디밭이 있고 정자 하나와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바람이 심해 야영하기가 적당하지 않다. 낭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 보는데, 주민 두분이 오더니 우리 짐 무게와 바람을 걱정해 주면서 정자에서 그냥 야영하라고 한다. 


우도 면장과 청년회장이라고 하는데 친절하였다. 하지만 정자는 바람이 너무 강해 텐트를 칠 수가 없다. 마침 잔디밭 한 켠에 키 작은 수풀이 있고 그 앞에 적당한 공간이 있어 그곳에 설영하였다.

 

 

 

# 타프를 바람 방향으로 비스듬히 치고 굳건히 고정하였더니 바람이 모두 텐트를 타고 넘어가서 바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아늑하였다.

 

 

 

# 설영 마치고 준비한 음식으로 만찬을 즐겼다. 우도는 땅콩막걸리가 유명했다. 달달하고 구수하여 부담없이 먹을 수 있었다.

 

 

 

# 음식 냄새 맡고 강아지 한 마리가 찾아 왔다. 이 녀석 염치 없게 음식을 주어도 계속 더 달라고 주변을 맴돈다. 나중엔 고양이들까지 찾아 온다. 쫓아 내느라 잠시 실갱이를 벌렸다.

 

 

 

# 정자 옆에 민박을 겸한 횟집이 있는데 새벽이 되도록 불이 환하다.

 

 

 

# 지금 우도 바다에는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다. 해질녁에 하늘 가득 구름이 있었는데, 강한 바람이 구름을 대부분 쓸어 가버렸다. 먼바다에 고기잡이 배의 불빛이 밝다. 저 고기잡이 불빛을 야항어범(夜航漁帆)이라 하고 우도8경 중 하나로 꼽는다.

 

 

 

# 찬바람 가득했지만 달빛 좋고 바다 좋아 그 바람 속에 오래 서 있었다.

 

 

 

# 밤새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지만, 우리 싸이트는 고요하였다. 타프가 멋진 역할을 하였다.

 

 

 

# 하룻밤 잘 보냈다. 바람소리 굉장했지만 숙면할 수 있었다.

 

 

 

# 아침엔 간밤보다 더 강력한 바람이 휘몰아 친다.

 

 

 

# 일출 보러 나왔는데 구름 짙어 일출은 못 보았다.

 

 

 

# 아침 끓여 먹고 느긋하게 커피도 한잔 즐겨 본다.

 

 

 

#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텐트 걷다가 강풍에 휘말려 폴대가 하나 휘어 버렸다. 철영 완료하고 해수욕장으로 나가 봤다.

 

 

 

# 엄청난 바람과 파도이다.

 

 

 

 

# 편안한 하룻밤을 허락해준 하고수동 해수욕장에 감사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 바람때문에 몸이 휘청휘청한다.

 

 

 

# 우도 해안길을 따라 길게 진행한다.

 

 

 

# 그 중간에 비양도 입구가 나온다. 우도가 제주의 섬 속의 섬이라면 비양도는 우도의 섬 속의 섬이다. 비양도는 이곳 말고 한림읍에 있는 비양도가 더 크고 유명하다.

 

 

 

# 비양도 입구를 지나 검멀래로 향한다.

 

 

 

# 이곳에 이르는 동안 우도 마을엔 인적 하나 없고 강력한 바람만 가득할 뿐이다. 나는 모든 것을 말려 버리는 차갑고 강력한 저 바람때문에 우도에서 오래 살아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 농로 빙빙 돌아 검멀래로 접근한다.

 

 

 

# 검멀래 해안에 도착했다. 십몇년만에 다시 와 보는 곳이다. 해안의 모래가 검은색이어서 '검멀래'라 부른다.

 

 

 

# 석벽이 직각을 이루고 있는 이곳을 후해석벽(後海石壁)이라 부른다.

 

 

 

# 검멀래 모래사장 끝 절벽 아래 있는 수중동굴을 '검은 코꼬망'이라 부른다. 콧구멍을 제주에서는 코꼬망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 우도봉의 등대.

 

 

 

# 석편을 쌓아 올린 듯 가지런한 단층이 눈에 들어 온다.

 

 

 

 

 

# 이곳이 비로소 소의 머리를 닮아 있다.

 

 

 

#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파는 모양인데 바람 불고 파도 심하니 해녀들이 자리를 피했다.

 

 

 

# 대단한 바다이다.

 

 

 

 

# 관광버스편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들고 있어 얼른 자리를 피했다. 검멀래를 떠나 우도봉으로 올라 간다.

 

 

 

# 긴 계단길이 이어진다. 무릎이 아프니 이런 계단을 만나면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럽다.

 

 

 

# 계단길 끝에 능선마루금이 있다. 엄청난 바람이 마루금을 넘고 있다. 똑바로 서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두어 번 뒤로 휘청 밀리고서야 몇컷 남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망동산이 있는데, 올레는 그냥 우도봉을 향한다.

 

 

 

# 좌측 하고수동에서 우측 검멀래까지 넓게 그려 보았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사시사철 바람이 휘몰아쳐서 이 동네는 나무 한 그루 볼 수 없다.

 

 

 

# 우도봉에 있는 몇몇 소나무숲도 볼라벤 등 몇개의 태풍때 모두 말라 버렸다.

 

 

 

# 능선을 따라 우도봉으로 향한다.

 

 

 

# 우도봉, 즉 쇠머리 오름 안쪽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목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 가을냄새 물씬 나는 능선을 따라 오른다.

 

 

 

 

# 그제 밤, 말미오름 소망정자에서 나란히 하룻밤 보낸 백패커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어젯밤 산호해수욕장 근처에서 야영한 모양이다. 길에서 만나는 바람에 오늘도 술 한잔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 곧, 우도봉 정상부에 도착한다.

 

 

 

# 우도등대는 제주에서 처음 설치된 등대이다. 왜놈들이 러일전쟁에 대비해서 1905년에 설치한 것이란다.

 

 

 

# 이제는 2004년에 설치된 이 신등대가 우도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 선돌의 머리 부분이 내려다 보인다.

 

 

 

 

# 가을냄새나는 우도봉의 조망은 아주 훌륭하다.

 

 

 

# 천진항쪽 조망.

 

 

 

# 바다 건너 종달리의 지미봉이 우뚝하다.

 

 

 

# 우도 주민 중에 골프에 미친 사람이 있나 보다. 소똥 나뒹구는 목장에서 드라이버샷을 계속 날린다. 폼이 엉성해 보이는 것이 이제 한창 골프에 재미가 붙어 미쳐 가는 단계인가 보다.

 

 

 

# 우도봉에서 오래 조망 감상하다가 역시나 관광객들 몰려 오는 바람에 하산하였다. 중간에 아늑한 카페가 있길래 차 마시며 쉬었다.

 

 

 

# 1박2일에 나온 상근이와 같은 품종의 강아지가 있었다. 스페인 産 그레이트 피레네즈種이다. 아직 어린 녀석인데 순둥이다.

 

 

 

# 1시간 가까이 쉬다가 길을 나섰다.

 

 

 

# 참으로 바람 많은 섬이다.

 

 

 

# ㅎㅎㅎ

 

 

 

# 우도가 이 소가 누워있는 모습과 닮았나?

 

 

 

# 우도봉, 즉 쇠머리 오름을 돌아 본다.

 

 

 

#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 든다.

 

 

 

 

 

# 주차장쪽으로 내려가니 관광버스가 셀 수 없이 많이 서 있다. 연신 밀려 들고 있고... 해안로로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사륜오토바이들이 나래비를 서서 엄청난 굉음을 울리며 달려 든다. 사륜오토바이 행렬은 천진항까지 계속 이어지고 하우목동항 방향 해안도로에도 가득하다. 사륜오토바이는 소음과 매연이 심하다. 어떤 형태로든 규제가 필요해 보인다. 그 번잡함이 싫어서 하우목동까지 가지 않고 이곳 천진항에서 멈추기로 했다.

 

 

 

# 천진항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물우동이다. 맛이 나름 괜찮았다. 해물도 푸짐했다.

 

 

 

# 제주에 오면서부터 먹고 싶었던 소라물회를 비로소 맛본다. 자리물회는 철이 아니라 먹을 수 없다. 깔끔하기는 한데,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 점심 먹고 우도를 떠난다.

 

 

 

# 우도 주민들은 저 도선의 배삯이 가장 큰 이권인가 보다. 현재 우도주민들이 만든 두 개의 도선회사가 운영되고 있고, 제 3의 회사 설립때문에 갈등이 많나 보더라.

 

 

 

# 천진항을 떠난다. 우도에서의 하룻밤 황홀하였다.

 

 

 

# 우리 배낭 크기 보니 숨이 막힌다. 다음번 올레길에는 짐을 최대한 줄여야 겠다.

 

 

 

그렇게 섬 속의 섬, 우도에서의 하룻밤 야영과 우도 올레길을 마감하였다. 우도는 제주라는 독특한 섬에서도 다시 부속되어진 섬으로써 본섬인 제주와는 또다른 환경과 문화를 가진 섬이다.

 

무엇보다 우도는 바람이 많은 섬이다. 그리하여 우도봉을 제외한 모든 것이 키를 바짝 낮춰 생을 영위하고 있다. 키작은 섬에서 키 작은 집을 짓고, 키 작은 작물들을 키워 키 작은 삶을 영위하는 우도 사람들. 그러나 우리가 우도에서 만난 우도 사람들이 하나같이 넉넉하고 친절하였음은 그들이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키 큰 삶을 대대로 이어왔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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