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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열두번째(돗재~예재)-징글징글한 호남의 잡목숲! 본문

1대간 9정맥/호남정맥종주기

[호남정맥]열두번째(돗재~예재)-징글징글한 호남의 잡목숲!

강/사/랑 2010. 5. 23. 21:31
 [호남정맥]열두번째(돗재~예재)

  

"구만리 장천에 떠 있는 저 달 동산에 솟았으며 / 西出東流(서출동류) 계곡수는 佳川(가천)이라 불렀다네. / 태악의 七仙人(칠선인)들 장구봉을 희롱하니 / 막대 짚고 바라보며 그 누가 仙人舞袖(선인무수)라 했는가."

  

호남정맥(湖南正脈)이 광주 무등산을 지나 화순 땅으로 깊숙이 들어가 천운산을 넘고, 돗재를 거치는 곳에 한천면 '동가리(東佳里)'가 있다. 동가리는 한글 발음으로는 '동가리', 강하게 발음하면 '똥가리'가 되어서 어감이 썩 예쁘지만은 않은 동네이지만, 한자로는 '동녘 東', '아름다울 佳'를 쓴다. 동쪽의 아름다운 동네쯤으로 해석이 되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동네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름의 한자 해석과는 달리 정작 동가리의 이름 유래는 동산의 '동', 가천리의 '가'를 합해 지은 것이라 한다. 특별한 뜻이 없는 조어(造語) 형식의 이름인 것이다.

   

동가리는 태악산(太岳山)을 품고 있다. 태악은 풍수학상 '선인무수여장구형(仙人舞袖女杖鼓形)'에 속하는 곳이라 전해진다. 이는 태악산에서 이어지는 산맥이 선인(仙人), 즉 신선이 장구를 들고 춤을 추는 모습과 닮아 그런 모양이다. 이때 태악산이 선인, 가천마을이 선인의 오른손, 현무정마을이 왼손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

 

위 노래는 이 동가리 마을에 전해오는 옛노래다. 노래에서 선인이 장구를 들고 춤을 추는 형상이라 표현한 태악산은 그 산의 형상 때문에 원래는 '대악산(大樂山)'이라 불렀다. 크게 즐긴다는 뜻이다. 아마도 풍수지리와 관련된 이름인 듯하다. 태악산(太岳山)이란 이름은 나중에 음이 강해져서 변음된 것이다.

 

태악산에서 잠시 진행하면 '노인봉(老人峰)'이 나타나는데 산꼭대기에 노인바위가 있어 얻은 이름이고, 바로 연이어 '성재봉'이 우뚝한데 성재봉은 산이 성을 둘러 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그리고 구불구불 남으로 흘러내리던 호남정맥은 산의 모양이 촛대처럼 생겨다 하여 얻은 이름인 '촛대봉'을 솟구치고 곧 해발 630.5m의 '두봉산(斗峰山)'에서 정점을 이룬다.

 

두봉산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옛날 이 산꼭대기에서 파수를 보았다 하여 '망방산'이라 불렀던 산이다. 나중에 음이 변하여 '말방산'으로 변하였는데, 이를 다시 한역하여 '말 斗'자를 써서 '두봉산'이라 표기하였다. 이렇게 동가리 일대의 정맥에는 빼어난 여러 산이 연이어 우뚝 솟아 있다.

 

개기재를 넘어 철쭉밭으로 유명한 계당산까지 포함한다면 돗재에서 예제에 이르는 호남길의 산들은 이름을 가진 산만 태악, 노인, 성재, 촛대, 두봉, 계당산 등 여섯 개에 이른다. 그 외에 이름 없는 봉우리들까지 포함하면 이 구간의 산들은 50여 개를 상회한다. 그만큼 오르내림이 많은 구간이고, 그 오르내림만큼 호남스럽게 저질 체력인 홀로 산꾼의 진을 빼먹는다는 얘기다.

 

강/사/랑이 모처럼의 3일 연휴가 시작되는 초파일날 이 구간에 들어보니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올라 호남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산 지형이 선인무수형이어서 신선이 소맷자락 휘날리며 춤을 춘다는데 탈진한 강/사/랑은 다리가 풀려 춤추듯 휘청이며 산길을 걸어야 했다. 그만큼 힘든 구간이었다.



징글징글한 호남의 잡목숲!


구간 : 호남정맥 제 12구간(돗재~예재)
거리 : 구간거리(23.5km), 누적거리(251.3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0년 5월 21, 22일. 쇠와 흙의 날.
세부내용 : 돗재(08:20) ~ 409봉 ~ 458봉 ~ 466봉 ~ 태악산(09:45) ~ 돌탑봉 ~ 전망대 ~ 암봉 ~ 노인봉
(11:08)/점심 후 11:55 出 ~ 성재봉(12:22) ~ 말머리재 ~ 463봉 ~ 467봉 ~ 촛대봉(15:15)/휴식 ~ 527봉 ~ 499봉 ~ 두봉산(16:55) ~ 598봉 ~ 579봉 ~ 537봉 ~ 468.6봉 ~ 개기(18:40)/묵곡리에서 1박.

 

개기재(06:30) ~ 남씨 묘역 ~ 388봉 ~ 511봉 ~ 철쭉군락지 ~ 헬기장 ~ 계당산(08:00) ~ 569봉 ~ 떡갈나무숲 ~ 갈림길 있는 봉 ~ 길고 먼 잡목숲길 ~ 편백숲 ~ 벌목지 ~ 예재(11:00).

총 소요시간 14시간 50분.(1일차  10시간 20분, 2일차 4시간 30분)


5월 20일. 나무의 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 시각은 이미 밤 열 시가 넘었다. 저녁 먹고 샤워하고 나니 자정이 가깝다. 호남길 간다고 보따리 싸는데, 마눌 기겁을 하며 말린다. 그래도 여러 가지 일들로 5주 동안이나 호남길에 못 나선 터라 잘 다녀오겠노라 마눌 달래고 자정이 넘은 시각에 차 몰고 집을 나섰다.

 

애초에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 호남정맥을 종주하려고 했지만, 오늘은 퇴근이 너무 늦어 부득이 자동차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또 3일 연휴이니 만큼 느긋하게 대중교통으로 접근해서 중간에 야영하고 쉬엄쉬엄 가려고 했던 계획도 주말부터 비 예보가 있어 초파일 하루만 하고 돌아오는 걸로 변경하였다. 그러자면 차 몰고 이 밤중에 길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집 바로 앞에 있는 동군포 나들목으로 진입하는 순간, 연휴 첫날의 교통정체가 자정이 넘은 이 시각에도 이어져 고속도로는 정체 중이다. 아이구야~ 대단들 하십니다~

 

영동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거쳐 호남고속도로에 접어드는데, 졸음이 밀려와 더이상 운전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호남고속도로를 한참을 달려 백양사 휴게소에 들러 의자 젖히고 피곤한 몸을 눕힌다. 04:00. 

 

 

계당산/桂棠山 

 

높이는 580.2m이다. 옛 기록에는 중조산(中條山)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현재에는 계당산으로 쓰이고 있다. 보성군과 화순군의 경계지대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 이 산에 불이 나면 반드시 비가 왔다고 전해온다.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곤 하였다.


쌍산의소/雙山義所


사적 제485호.
한말 의병활동이 한창일 때 전라남도 화순군 계당산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군에 맞서 싸운 전남 의병활동의 거점 가운데 하나이다. 예로부터 계당산 일대는 쌍산, 쌍봉 또는 쌍치라 불리었는데, 이것에서 유래하여 ‘쌍산의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07년 양회일, 임노복, 임상영, 안찬재들이 주축이 되어 쌍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다음 능주, 동복, 화순 일대로 퍼져 의병활동을 벌였다. 이백래가 주축이 되어 호남창의소에서 펼친 의병활동과 안규홍 부대가 봉기하여 펼친 의병활동 또한 쌍산의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의병활동의 일환이다. 쌍산의소에는 무기 및 탄약을 공급하는 무기 제작소와 유황의 저장고인 유황굴, 의병 방어시설인 의병성의 흔적이 남아 있어, 대규모의 의병들이 주둔하여 스스로 무기를 만들어가며 일본군에 대항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기 제작소에는 축대 위에 철을 녹이는 용광로의 벽체와 쇠부스러기들이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 약 4㎞ 정도 떨어진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화정동에 있는 철광산의 철광석을 운반하여 무기를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의병성은 높이 약 80㎝ 정도의 돌들이 돌담 모양으로 길게 쌓여 있으며, 그 내부에는 원형 또는 사각의 낮은 돌담들이 불규칙하게 늘어선 막사터가 모여 있다. 의병성과 막사터로 보아 이곳이 쌍산의병의 진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호남정맥 제 12 구간 돗재~예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06:00. 알람 소리에 눈을 뜨지만 겨우 두 시간 잠잔 피곤한 몸은 쉬이 일어나지질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휴게소에서 아침 사 먹고 화장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고속도로를 달려 광주와 화순을 거치는데,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구입할 데가 마땅치 않다. 곧 나오겠지하고 지나치다 보니 어느새 능주 쪽으로 빠져 돗재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도착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능주로 들어가지만, 하나 있는 김밥집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마침 문을 열고 있는 제과점에 들러 빵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안개 자욱한 822번 지방도를 달려 한천리와 오음리를 거쳐 구불구불 돗재고개를 올라가면 한천 자연휴양림을 만나고 그 휴양림 후문 공터에 차를 주차할 수 있다. 지난 4월 초에 이 돗재에 내려섰으니 한 달 반 만에 다시 돗재에 서는 셈이다. 예상보다 출발 시각이 많이 늦다. 얼른 짐 꾸리고 가볍게 몸 풀어 준비를 한 후 돗재를 출발했다. 08:20.

 

 

 

# 822번 지방도가 지나는 돗재.

 

 

 

기상청에서는 오늘 기온이 올해 들어 가장 높아 여름 날씨를 방불케하리라 예보했다. 그 예보가 틀리지는 않는지 벌써부터 기온이 상당히 높다. 돗재 들머리는 방호벽의 높이가 높아 철망을 잡고 매달려 올라야 한다.

 

숲으로 들어가자 바로 커다란 느티나무를 만난다. 이후 꾸준히 밀어 올려야 한다. 20여 분 후에 첫 번째 봉우리인 '409봉'에 올라선다. 곧바로 길게 아래로 내리더니 또 치고 오른다. 얼라? 시작부터 장난이 아닌데?

 

오늘 구간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는지 거미줄이 얼굴을 휘감고 송홧가루가 휘날려 온몸이 금세 노랗게 변하고 목안이 칼칼해지며 숨쉬기가 어렵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면 '458봉'에 이른다. 잠시 편하게 가나 했더니 아래로 내리고 구불구불 휘더니 다시 밀어 올린다.

 

낑낑 소리내며 올라서니 '466봉'이다. 이름도 얻지 못한 봉우리 세 개가 초반부터 쎄가 빠지게 만든다. 잠시 내렸다가 평탄하게 진행하고 곧바로 계단식으로 서너 차례 밀어 올리게 되는데, 마지막 계단은 상당히 가파르게 밀어 올리라 한다. 그 마지막 계단의 끝이 '태악산'이다. 09:45.

 

 

 

# 돗재 절개지 들머리에서 만난 느티나무.

 

 

 

# 숲속은 송홧가루가 숨이 막힌다. 소나무 수꽃이 꽃가루를 머금어 탱탱 부풀어 올라 있다.

 

 

 

# 한때 은성했던 화순탄광의 흔적. 1977년이면 내가 고교 1학년 때다.

 

 

 

# 오늘 구간의 대세는 노린재나무다. 이 나무를 태우면 누린내가 나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 국수나무도 꽃을 피웠다.

 

 

 

# 덜꿩나무.

 

 

 

# 태악산 정상.

 

 

 

태악산은 산의 모양이 신선이 장구를 치고 노는 형이라 크게 즐긴다는 뜻으로 '대악산(大樂山)'이라 하였다가 나중에 발음이 변하여 '태악산'이라 불리게 된 곳이다. 그 와중에 한자음까지 변질되어 '태악산(太岳山)'으로 표기하게 되어 지금 산이름으로는 그 이름의 유래를 알기 어렵게 되었다.

 

정상에서 보면 바로 앞에 나란히 정상과 같은 높이의 봉우리가 연이어 있어 과연 장구와 닮았다 할 수 있겠다. 정상 바로 우측 앞에는 묘지가 위치해 있고 정맥은 그쪽으로 이어져 있다. 볼록한 장구 한쪽을 넘어 아래로 내리는데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계단식으로 내려간다.

 

그러다 '돌탑이 있는 봉우리'를 올라 우틀하여 내리면 묘지가 있는 곳에서 숲 너머로 노인봉이 오똑하니 보인다. 아래로 내렸다가 본격적으로 올라 친다. 봉우리를 하나 넘고 두 번째 봉우리는 암봉의 연속이다. 한차례 올리면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올라서면 저 멀리 무등산이 뿌연 연무 속에 우뚝하다. 우측 아래로는 동가리가 내려다보인다.

 

간벌 작업을 하는지 기계톱 소리가 요란하다. 다시 길을 나서면 암봉을 만나 우회하게 된다. 암릉길을 치고 오르면 전망이 트이는데, 전방 숲속에 바위 하나가 우뚝하다. 저 바위가 노인봉의 이름을 얻게 만든 '노인바위'인가?

 

다시 암봉을 하나 치고 오르면 조망이 트여 저 멀리 두봉산에서 장제봉을 거쳐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전방에 펼쳐진다. 아래로 내렸다가 뾰족한 세 번째 봉우리를 치고 오른다. 이곳은 오르막 자체도 힘이 들지만 거미줄과 송홧가루가 입안에 가득해 숨쉬기가 힘들고 재체기가 연신 쏟아진다. 그렇게 힘들게 '노인봉 정상'에 올라섰다. 11:08.

 

 

 

# 숲너머로 뾰족한 노인봉이 건너다 보인다. 

 

 

 

#  무덤가에 핀 씀바귀.

 

 

 

# 돌탑이 있는 봉우리.

 

 

 

# 노인봉은 한 번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좌측으로 올랐다 우측으로 계단식으로 오르게 되어 있다.

 

 

 

# 바위전망대.

 

 

 

# 지나온 정맥길. 저 멀리 무등산이 보인다.

 

 

 

# 무등산을 가까이 땡겨본다.

 

 

 

# 동가리. 가천과 헌무정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 저 바위가 노인바위인가?

 

 

 

# 지나온 정맥길, 저멀리 돗재 너머 천운산이 보인다.

 

 

 

 # 지나온 정맥길을 파노라마로 펼쳤다. 저멀리 무등산이 보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지나온 정맥길과 우측에 장제봉,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노인봉 정상.

 

 

 

# 노인봉 정상에서는 우측 전방으로 성재봉에서 갈라져 나간 용암산이 건너다보인다. 그러나, 저 길은 정맥길이 아니다.

 

 

 

# 용암산을 땡겨본다. 암봉이 발달한 산이다.

 

 

 

# 지치고 힘들어 노인봉 정상 한켠에서 점심상을 펼쳤다.

 

 

 

지치고 힘들어 정상 너머 그늘 아래 배낭 내리고 점심상을 펼쳤다. 예상보다 시간 지체가 심해 걱정이 되긴 하지만, 내일 모레 이틀간 노는 날이니 천천히 오늘 밤 늦게까지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동네에서 준비한 막걸리 한 잔으로 목에 쌓인 송홧가루를 씻어 냈다. 능주에서 구입한 빵으로 어설픈 점심을 마치고 오랜만에 거풍까지 한차레 한 후 그늘 아래 누워 느긋한 휴식을 즐겼다.

 

정오에 다시 길을 나섰다. 계단식으로 길게 내렸다가 위로 밀어 올리는데, '성재봉'도 한번에 정상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전위봉을 두 개나 넘고서야 정상을 보여준다. 12:22. 성재봉 앞의 두 개의 전위봉엔 각각 광업진흥공사의 시멘트 표석이 서 있다.

 

 

 

# 화순탄광이 호황일때 사용했을 광진공의 표석.

 

 

 

# 성재봉.

 

 

 

성재봉은 조망이 전혀 없는 곳이라 잠시 한숨 돌리고 바로 출발했다. 잠시 편하게 고도를 낮춰 가더니 한순간 길고 가파르게 떨어져 내리는데, 이 내리막은 희미한 옛 고개가 있는 안부까지 이어진다.

 

고개에서 한숨 돌린 후 '419봉'과 '425봉'을 넘어 내리면 '말머리재'를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잔머리를 굴리다 심각한 알바를 경험하게 된다. 길도 없고 경사 가파른 잡목숲 속에서 1시간 이상을 사투를 벌였다. 정말 힘든 결과를 초래한 잔머리였다. 스스로 어리석음에 얼마나 한심한지 나중엔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잡목숲을 탈출했다. 마루금에 올라 정맥길에 복귀하니 완전 탈진상태에 빠져 걸음을 옮기기가 힘들었다. 배낭을 멘 채로 그냥 등로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며 패닉 일보 직전인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한참을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봉우리 두어 개를 넘어 한차례 올라서니 '463봉'에 오르게 된다. 이후 큰 오르내림 없이 길게 진행하다 '467봉'도 넘고 역시 유순하게 진행한다. 하지만 알바하면서 얼마나 체력 소모가 많았는지 이렇게 편안한 길에서도 힘이 많이 든다. 무엇보다 졸려서 견딜 수가 없다.

 

봉우리 하나를 넘고 아래로 내렸다가 본격적인 촛대봉 오름이 시작된다. 촛대봉은 촛대처럼 생겨서 얻은 이름이라지만 촛대처럼 뾰족한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서너 차례 밀어 올리는 형상이다.

 

낑낑 소리내며 밀어 올려 '촛대봉 정상'에 올라서지만,  정상은 조망도 특징도 없는 그런 봉우리일 뿐이다. 15:15.

 

 

 

# 피나물.

 

 

 

# 촛대봉 정상. 수풀이 우거져 조망은 전혀 없다.

 

 

 

너무 힘이 들어 배낭 벗어 던지고 아래 위 옷도 홀랑 벗어 젖혔다. 그 상태로 30여 분 휴식을 취했다. 오래 휴식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잠시 내렸다가 살짝 올려 '527봉'을 넘어 아래로 내려 갔다.


촛대봉이 522.4m인데, 이 봉우리는 촛대봉보다 높이는 높지만 이름은 얻지 못했다. 맞은편 숲 너머로 두봉산이 우뚝하건만 왜 이렇게 자꾸 내려가냐고 투덜대며 내리다가 다시 치고 오른다. 두봉산 역시 계단식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산이다.

 

첫 계단을 오르고 두 번째부터는 산죽밭이 이어지고, 점점 경사가 급해지더니 네 번째 계단부터는 아예 코가 땅에 닿게 가파르게 밀어 올려야 한다. 네 번째 계단을 낑낑 힘들게 올리면 정상은 저 뒤로 물러나 있고 다섯 번, 여섯 번째를 오르고 일곱 번째 계단은 길고 가파르게 올린다.


참나무 낙엽이 두텁게 깔려 있어 오름이 무척 미끄럽다. 이 힘든 오름도 졸음이 밀려와 까무룩 까무룩 졸면서 밀어 올렸다. '두봉산 정상' 역시 졸면서 올라섰다. 16:55.

 

 

 

# 숲 너머에 두봉산이 우뚝한데 등로는 자꾸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 사계청소가 되어 있는 두봉산 정상.

 

 

 

# 군 참호인지 묘지인지 알 수 없는 구덩이가 패여 있다.

 

 

 

두봉산은 해발 고도가 630.5m로 오늘 구간의 최고봉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오르기가 매우 힘이 들었다. 옛날 이 산에서 파수를 보았다 하여 '망방산'이라 불렀던 산이다. 나중에 음이 변해 '말봉산'으로 바뀌고 이를 한역해서 '말 斗'자를 쓴 '두봉산(斗峰山)'이란 전혀 다른 의미의 산이름이 되어 버렸다.

 

잠시 정상에서 머물다 다시 길을 나섰다. 곧 가파르게 내리더니 마루금을 따라 잠시 동안 평탄하게 진행하였다. 졸음이 계속 밀려와 비몽사몽으로 구름 속을 걷듯 진행하는데 살짝 봉우리 하나를 올리면 장제봉 갈림봉인 '598봉'에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정맥길은 화순과 보성을 경계짓는다. 호남길은 아직 만만치 않게 남았지만 지역 경계는 벌써 보성땅이다.

 

이후 정맥길은 큰 오르내림 없이 길게 진행한다. 그러나 너무나 졸려 중간중간 배낭 멘 채로 드러누워 까무룩 졸다 가기를 반복했다. 국립지리원 25,000 지도에 나오는 '579봉'과 '537봉'은 언제 넘었는지도 모르게 길게 진행하다가 능선을 버리고 좌측 사면으로 갈라져 떨어지는 곳을 만나게 된다.

 

 

 

# 민백미꽃.

 

 

 

# 크고 하얀 꽃잎이 인상적인 큰꽃으아리.

 

 

 

# 졸려서 배낭을 맨 채로 등로에 드러눕기를 반복했다. 누운 채 사진을 찍으니 눈높이가 바닥의 사초와 맞다. 이 시기의 숲 바닥이 나는 너무 좋다.

 

 

 

# 마루금을 버리고 좌측 사면으로 떨어지는 곳을 만났다.

 

 

 

송홧가루 가득한 숲의 사면을 길게 내려가다 한순간 앞이 툭 트이며 넓은 묘역이 나타난다. 묘지를 내려가면 넓은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따라 편하게 잠시 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직진하여 봉우리를 하나 넘는다.

 

이제 끝이겠거니 했지만 봉우리 하나가 더 나타나 앞을 가로막는다. 다시 낑낑 올라 서니 삼각점이 있는 '468.6봉'에 오르게 된다. 18:20.

 

 

 

# 조망이 트이는 묘역이 나타나 잠시 송홧가루에서 벗어나 숨을 돌린다.

 

 

 

# 삼각점이 있는 468.6봉.

 

 

 

곧바로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된다.  송홧가루가 입을 파고 들고 참나무 낙엽이 가득해 등로는 매우 미끄럽다. 그러다 '제주 양씨 묘'를 만나는데, 비석은 새것이나 봉분에는 굵은 나무가 뿌리를 내려 묵은 묘처럼 되어 있다. 후손들이 잊고 지내다 나중에야 조상 묘를 다시 찾은 건가?

 

그냥 쉽게는 못 보내겠다는 듯 돌고 휘감아 급경사 내리막을 징그럽게 길게 내리더니 결국에는 개기재 도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곳도 표지기 따라 갔더니 수풀이 우거져 내릴 수가 없고 밭둑 건너편으로 돌아 내려야 했다.

 

18:40. 드디어 '개기재 도로'에 내려섰다. 

 

 

 

# 정말 어렵게 도착한 개기재.

 

  

내일 전국적으로 비소식이 있어 원래 계획은 밤이 늦더라도 예재까지 진행을 한 후,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중간에 알바 때문에 탈진하여 개기재에 내려선 순간 더이상 산행을 할 기운이 남아 있질 않다. 개기재 도로가에 배낭 내리고 살피니 입안은 송홧가루로 서걱거리고 배낭을 비롯해 온몸이 송홧가루를 뒤집어 쓰서 완전히 노란색이다.

 

도로 가에 털썩 주저앉아 10여 분 이상을 넋을 잃고 앉아 있는데, 마침 이양택시가 지나가다가 알아서 멈춰 선다. 택시 타고 돗재로 돌아갔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속이 울렁거리고 멀미가 나서 머리가 띵하였다. 택시비 25,000원 지불하고 온몸에 달라붙은 송홧가루 대충 털어낸 후 차 회수해서 돗재를 내려오는데, 한천휴양림 초입의 계곡물이 눈에 들어 온다.

 

차 세우고 계곡으로 내려가 홀랑 벗고 물에 들어섰다. 금세 온몸이 덜덜 떨린다. 얼음같이 차가운 물로 알탕을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빠개질 듯 두통이 심하게 생긴다. 갑작스런 온도 변화에 혈관이 적응을 하지 못한 모양이다. 몸은 이미 찬물에 적응하여 훈훈하고 개운하지만 두통이 심해 얼른 닦고 옷을 갈아 입었다. 심장이 좋지 못한 나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그래도 알탕으로 하루의 피로를 씻어 개운한 기분으로 다시 차 몰고 능주로 향했다. 능주는 작은 시골 면소재지인데 꽤 큰 음식점들이 초입에 자리하고 있지만, 모두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이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침 중국 음식점 하나가 있길래 들어가 짬뽕 하나를 시켰다. 시장이 반찬이었는지 주방장 솜씨가 좋았는지 속이 확 풀리게 맛있는 짬뽕이었다.

 

 

 

# 해물이 푸짐하게 든 짬뽕. 속이 확 풀렸다.

 

 

 

다음날 먹을 점심을 준비하고 차를 20여 분 달려 개기재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개기재 아래 묵곡리 어느 마을의 정자에 헝겊집 한 채 짓고 잠을 청했다.

 

22일, 흙의 날. 새벽 4시쯤 눈이 자동으로 뜨이지만 전날 너무 무리를 했던지라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질 못했다. 1시간여 뒤척이며 미적대다 5시쯤 일어나 아침 한 그릇 끓여 먹고 개기재로 향했다. 그런데 예보에서는 오후부터 비가 온다더니 벌써 아침부터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개기재 오르는 중간에 뒤가 급해 숲속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두통이 밀려 왔다. 어제 탈진한 몸으로 갑작스레 찬 계곡물에 알탕을 해서 두통이 생겼는데, 그 이후 괜찮더니 이 아침에 다시 두통이 생긴 것이다. 혹시 뇌졸중 증세가 아닌가 걱정되고 찜찜해서 차에 들어가 의자 젖히고 안정을 취했다.


마침 비까지 제법 굵게 내리기 시작해서 산행을 해야 할지 그만 멈추고 집으로 올라가야 할지 갈등했다. 30여 분 누워있었더니 안정도 되고 빗줄기도 약해지길래 일단 산행을 하기로 하고 개기재로 올라 갔다. 06:30.  빗방울 가늘게 떨어지는 개기재를 출발했다.

 

 

 

# 개기재. 전봇대 우측으로 들머리가 있다. 

 

 

 

# 계보가 적혀 있는 의령 남씨 묘역.

 

 

 

들머리에 들어서자 잔디가 잘 자란 넓은 묘역이 나타난다. 의령 남씨 묘역인데 한켠에 안내판을 세우고 의령 남씨의 계보를 쭉 정리해 두었다. 묘역이 넓고 잔디가 푹신해 좀 찜찜한 기분만 극복한다면 야영하기엔 최고의 장소다.

 

묘역 뒤쪽으로 올라 한차례 꾸준히 밀어 올리면 '388봉'을 넘게 되고, 이후 서서히 고도를 높혀 가며 구불구불 휘감아 올리게 된다. 길게 치고 오르면서 계단식으로 고도를 높이는데, 빗방울이 굵어지지만 다행히 수풀이 우거져 빗방울을 막아주는 바람에 옷이 금방 젖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우의 꺼내 입는 걸 미루는데, 이게 또 패착이라 나중에 막상 비가 많이 와 우의를 꺼내 입을 때는 이미 온몸이 젖은 후가 되어 버렸다. 가파르게 치고 올라 봉우리 하나를 오르지만 곧 잠시 내리게 되고, 다시 한번 치고 오르면 '511봉'에 오르게 된다.

 

 

 

# 처음 봄이 되어 온 산을 노랗게 물들인 생강나무가 다 지고 산벚나무 온 산에 화려하더니 어느새 그 자리를 노린재나무가 물려 받았다.

 

 

 

# 빗방울이 굵어지며 숲속의 수풀들은 물을 흠뻑 머금고 달려 든다.

 

 

 

# 잠시 숲이 트이고 보성 복내면쪽 인간세가 내려다보인다.

 

 

 

# 511봉에 오르면 계당산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 앉는다.

 

 

 

# 계당산 정상을 땡겨본다.

 

 

 

힘들게 치고 올랐지만 계당산 정상은 한걸음 뒤로 물러나 앉는다. 돗재에서 예재까지 한번에 끊을 경우 이 511봉이 절망의 봉우리가 되겠다. 산행 막바지라 힘이 떨어질 시기인데 힘들게 봉우리를 치고 오르지만 정상은 뒤로 물러나 앉고 그나마 정상을 바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한참을 고도를 다시 낮춰야 하니...

 

511봉 정상을 넘자 구불구불 길게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계당산을 올라야 하건만 이렇게 깊게 내려가서 어쩌겠다는 거냐? 잠시 후 안부에 이르게 되고 본격적인 계당산 오름이 시작되는데, 이곳도 한 번에 정상을 치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몇 례 구불어지며 치고 올라야 하는 곳이다.


게다가잡목숲이 빗물을 흠뻑 머금고 있다가 온몸을 적셔 주는 바람에 온몸이 이미 흠뻑 젖어 버렸고 카메라 가방과 배낭도 물기 가득이다. 귀찮아서 우의를 빨리 꺼내 입지 않은 것이 화근이다. 일단 카메라를 비닐로 감싸고 지도와 메모지도 비닐팩에 집어 넣었다.

 

잠시후 넓은 철쭉 군락지가 나타났다. 상당히 넓은 규모이고 경치도 좋은 곳이라 철쭉철에 왔다면 환상의 경치를 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철쭉이 끝물이라 아쉽다. 그래도 아직 남은 꽃들이 나름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두어 주 전에 왔다면 정말 좋았겠다.

 

철쭉 군락지는 수풀에서 벗어나 있는지라 비바람이 바로 들이쳐 사진 촬영이 아주 어렵다. 판초우의 안에서 카메라 꺼내고 촬영 준비한 다음 재빨리 사진 찍고 다시 우의 속으로 카메라를 감추는 초스피드 촬영법을 사용한다.

 

잠시 오르면 벤치가 있는 넓은 '헬기장'이 나타난다. 야영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특히나 철쭉 만개한 봄밤에 이곳에서 야영한다면 꽃 향기에 취하고, 달빛에 젖는 환상의 봄밤을 즐길 수 있겠다.

 

헬기장을 지나 철쭉 군락지 사이로 꾸준히 오르는데,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혼자임이 이 순간 참으로 아쉽다. 저 꽃그늘 아래서 사랑하는 이와 술 한잔 나눴으면 참으로 아름다웠겠다 싶다. 아쉬운 마음 가득 안고 꾸준히 올라 '계당산 정상'에 오른다. 08:00.

 

 

 

# 계당산 정상부는 넓은 철쭉 군락지다.

 

 

 

# 지금은 끝물이고 두어 주 전쯤 왔으면 환상의 꽃구경이 가능했겠다.

 

 

 

# 오늘은 꽃도 끝물이고 비바람까지 가득해 아쉬움이 많은 날이다.

 

 

 

#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철쭉철에 이곳에서 야영하면 환상이겠다.

 

 

 

# 예쁜 길이 정상을 향해 이어진다.

 

 

 

# 그래도 뒤늦게 꽃을 피운 놈들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 언제 한번 철쭉철에 야영하러 와야겠다.

 

 

 

# 큰애기나리 군락이 철쭉과 함께 숲바닥에 가득하다.

 

 

 

# 정상 직전의 봉우리가 조망이 더 좋다.

 

 

 

# 지나온 정맥길.

 

 

 

# 511봉과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개기재. 그리고 어제 지나온 두봉산이 우뚝하다.

 

 

 

# 이 모두를 넓게 펼쳐 본다. 이곳에서 지리를 조망할 수 있다는데 오늘은 비바람 때문에 지리산은 볼 수 없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계당산 정상. 삼각점과 이정목, 그리고 작은 보리수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 정상으로 오르는 길. 철쭉철에 꼭 다시 한번 와야지...

 

 

 

계당산 정상엔 사계 청소가 되어 있어 사방으로 조망이 훌륭하고 지나온 정맥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원래 이곳에서는 지리의 영봉들이 조망된다지만, 오늘은 비바람 때문에 먼 조망이 좋지 않아 지리는 볼 수 없다.


애초에 계당산에서 천지신명과 더불어 막걸리 한 잔 나눌 작정이었는데, 날씨가 받쳐주질 않아 배낭은 내리지도 못하고 그냥 팔 벌려 천지기운을 받아 들이며 천지신명과 합일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비 때문에 오래 있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잠시 내렸다가 웬일로 편하게 진행하는 듯하여 호남답지 않다 생각하는 순간, 봉우리 두 개가 연달아 나타난다. 그나마 깊게 떨어졌다 올리는 형태가 아님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두 개의 봉우리 중 앞의 것이 '569봉'이고, 다음 봉우리가 지도상 '떡갈나무 군락지'인데, 정말로 떡갈나무들이 온숲에 빽빽히 들어 서 있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올라 내리면 앞이 트이며 조망이 보이고 산줄기 하나가 송전 선로를 따라 이어지지만 지도 확인하니 저 산줄기는 정맥이 아니다.

 

 

 

# 떡갈나무 군락지.

 

 

 

# 비바람 가득한 조망이 잠시 허락된다.

 

 

 

# 산줄기 하나 앞에 나타나지만 저곳은 정맥길이 아니고 517.9봉이다.

 

 

 

아래로 내렸다가 한차례 밀어 올리면 갈림길 있는 봉우리가 나타난다. 이곳이 좀 전에 본 송전탑이 있는 517.9봉과 갈라지는 곳이고 정맥길은 우틀하여 진행한다.

 

이후의 정맥길은 지겹게도 멀고 긴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잡목숲이 빽빽하게 가로막아 진행하기가 아주 어렵다. 게다가 오늘은 비까지 죽룩주룩 내려 숲속이 물구덩이 속이라 더욱 힘이 든다.


척척 휘감기며 배낭과 옷을 잡아채는 잡목숲을 헤치고 나가자니 너무나 힘이 들고 짜증이 밀려 든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이 더런 놈의 잡목숲에 확 불을 싸질러 버리고 싶다는 표현이 나오던데 그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온몸은 비에 흠뻑 젖고 신발 속에는 물이 가득차 걸을 때마다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어제 오늘 호남정맥의 단매를 제대로 맞나 보다.

 

지도상으로는 특별한 오르내림도 없고 등고선도 모여 있는 곳이 없어서 평탄하리라 생각했는데, 큰 오르내림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오르내림이 계속 이어진다. 무엇보다 잡목숲 때문에 진행이 너무 힘이 든다. 얼마나 걸었을까?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길래 이제 저 봉우리만 넘으면 끝이겠구나 싶어 기대만발하고 봉우리를 오르지만, 웬걸? 숲 너머에 봉우리 하나가 다시 우뚝하다.

 

이때부터 산행 끝낼 때까지 이런 현상이 약 10여 차례 계속된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너무 힘이 들어 희망적인 헛예상을 했고 비바람 때문에 독도를 할 수 없는 탓이었겠지만, 봉우리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잡목숲은 더욱 울창하게 앞을 가로막는 지라 나중에는 화도 안나고 헛웃음만 실실 나온다.

 

그렇게 실성한 사람처럼 허허 웃어대며 물폭탄 잡목숲을 헤치고 진행하다보니 우측 아래로 쭉쭉빵빵한 '편백숲' 언저리를 지난다. 봉우리 하나를 넘고 내리니 철길이 지나는 예재터널 위인 듯한 넓은 안부도 지나게 된다.


그러다 한순간 앞이 트이며 '벌목지'가 나타난다. 이곳은 산마루를 넘는 바람이 워낙 강해 몸을 가누기 어렵다. 벌목지를 지나 우틀하여 다시 한참을 가다가 아래로 길게 내리니 드디어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예재'에 도착하게 된다. 11:00.

 

 

#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꺾어 진행한다.

 

 

 

# 고사목 있는 곳에서 잠시 하늘구경을 했다.

 

 

 

# 백선이 무리지어 피어있던 묘지.

 

 

 

# 가까이...

 

 

 

# 예재에 이르는 길은 거의 대부분 이런 수준의 잡목숲이다. 게다가 오늘은 비까지 내려 이중으로 고생이 심하다.

 

 

 

# 잡목숲에서 오래 헤매다 드디어 벌목지를 만나 해방된다. 비바람 강하게 부는 벌목지.

 

 

 

# 끝까지 봉우리가 나타난다.

 

 

 

# 오랜 사투끝에 드디어 예재에 도착했다.

 

 

 

예재는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는 고갯길이지만, 산 아래에 터널이 뚫려 이제는 차량 통행이 없는 잊혀진 고개다. 고개 한켠에 넓은 공터가 있는데, 컨테이너가 두 개 놓여 있고 안에는 사무실로 사용한 듯 의자와 집기들이 놓여 있다. 비를 피해 볼 요량으로 문을 열어 보지만 굳게 잠겨 있어 열 수가 없다.

 

어제 이용했던 이양택시(구정인 기사:011-605-5152)호출하고 도로 숲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15분 쯤 기다렸다 택시 타고 개기재로 이동하여 차를  회수했다. 이제 또 멀고 먼 귀경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구간인 돗재~예재의 호남길은 먼 거리와 무수히 많은 봉우리, 그리고 첫날은 송홧가루, 둘쨋날은 비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빽빽한 잡목 때문에 체력소모가 많은 매우 힘든 산행길이었다. 호남정맥! 참 만만치 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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