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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열네번째(곰재~피재)-긴 여름! 본문

1대간 9정맥/호남정맥종주기

[호남정맥]열네번째(곰재~피재)-긴 여름!

강/사/랑 2010. 9. 29. 17:49
 [호남정맥]열네번째(곰재~피재)
 

  

전북 진안 땅 모래재에 있는 3정맥 분기봉(分岐峰)에서 금남정맥(錦南正脈)과 헤어져 서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전북의 진안, 임실, 순창, 정읍을 내달리던 호남정맥(湖南正脈)은 강천산과 추월산을 지나며 전라남도의 강역(疆域)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후 정맥은 장성과 담양을 거쳐 광주에서 무등산(無等山)을 넘은 후 화순 땅 구석구석을 휘감다가 드디어 839번 지방도가 지나는 '곰재'에 이르러 장흥 땅에 접어든다.

 

장흥(長興)은 남으로는 남해바다에 닿아 완도, 고흥반도 등과 접하고, 북으로는 제암산, 가지산 등 호남정맥의 높은 산봉우리들이 꿈틀거리며 휘감아 돌며, 안으로는 전라도 3대 하천 중 하나인 탐진강(耽津江)이 군 전체를 아우르며 적셔 주어 산, 강,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남도의 멋스런 고장이다.


장흥(長興)이란 이름은 고려 인종(仁宗)의 하사(下賜)로 된 작명(作名)이란 전설이 전해진다. 인종은 고려 제17대 왕이다. 1122년부터 1146년까지 24년간 재위에 있었는데, 그가 왕위에 오르는데는 권신(權臣)인 이자겸(李資謙)의 공이 컸다. 이름은 '왕해(王楷)'였다. 성품이 어질고 효성스러웠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왕은 이자겸의 3녀와 4녀를 왕비로 맞았으나 이자겸의 난(亂) 이후 폐위시켰고 중서령(中書令) 임원후(任元厚)의 딸 공예왕후(恭睿王后)와 병부상서(兵部尙書) 김선(金璿)의 딸 선평왕후(宣平王后)를 비(妃)로 맞아 들였다.


공예왕후는 장흥군 관산읍 출신이다. 이자겸의 몰락으로 왕후가 되었고 인종의 뒤를 잇는 의종, 명종, 신종을 낳았다. 인종은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권신(權臣) 이자겸의 손에서 벗어나 맞이한 왕후가 예뻤을 것이다. 게다가 왕자까지 계속 생산하니 더욱 그랬으리라.


부인이 좋으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하는 법이다. 공예왕후를 총애하였으니 왕후의 고향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 장흥(長興)이란 고을 이름을 하사하고 오래오래 번창하기를 바랐다.


왕의 바람처럼 장흥은 이후로도 오래 번창하였다. 군(郡)으로는 드물게 장흥읍, 관산읍, 대덕읍 등 세 곳의 읍을 가지고 있으며 한 때 인구가 14만에 이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 흘러 산업화, 도시화, 집중화 등이 대세가 되면서 이촌향도(移村向都)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고 장흥 역시 예외는 아니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지고 산업사회를 이끌만한 여건을 갖추지 못해 많은 다른 지방 고장들이 그러하듯 조용하고 한적하게 인구 노령화를 맞이하고 있는 외지고 한가로운 곳이 되어 버렸다.

 

근래 들어 정동진(正東津)이란 유명한 관광 브랜드를 벤치마킹해서 '정남진(正南津)'이란 테마를 발굴하여 고장 알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그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정남진이란 서울 광화문에서 측정하여 정남 쪽에 위치한 고장이란 의미인데, 그 테마가 성공하여 브랜드화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각인될만한 이슈를 발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정동진에게 모래시계란 온 나라를 뒤흔들만한 유인 요소가 있었듯이...

 

어쨌든 지지부진하기 이를 데 없는 강/사/랑의 호남길 열네 번째 걸음은 곰재에서 화순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이곳 정남진 장흥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지난 6월 때 이른 폭염주의보 하(下)의 무더위에 완전히 탈진하여 곰재에 내려선 이후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호남길을 접어 두었다가 추석 연휴를 맞아 다시 짐을 꾸려 나서니 무려 3개월 만에 나서는 호남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산행에서도 남도 지방을 며칠째 뒤덮은 늦더위 때문에 산행 내내 비실거리다 계획했던 산행을 마치지 못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갈수록 힘이 드는 호남길은 강/사/랑에게 가장 힘든 정맥길로 남으려나 보다.

 

"으째야 쓰까잉~"

 

 


긴 여름!


구간 : 호남정맥 제 14구간(곰재~피재)
거리 : 구간거리(12.9km), 누적거리(280.4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0년 9월 18,19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곰재(17:20) ~ 476봉 ~ 백토재(19:28) ~ 헬기장 ~ 국사봉(19:50) ~ 깃대봉(20:50)/
깃대봉 정상에서 1박.

 

깃대봉(07:50) ~ 땅끝기맥 분기봉(08:15) ~ 가짜 삼계봉(08:50)/30분 휴식 ~ 삼계봉 ~ 장고목재(10:10)/30분 휴식 ~ 433봉 ~ 철탑 ~ 가짜 가지산(11:45)/점심 후 12:30출발 ~ 가지산 갈림길 ~ 503봉 ~ 암봉 전망대 ~ 장평 우산 갈림길/1시간 휴식 ~ 바위전망대/휴식 ~ 427봉 ~ 피(15:50).

 

총 소요시간 11시간 30분(엄청 많은 휴식시간 포함).


9월 18일 흙의 날. 긴 추석 연휴의 시작이다. 간밤에 마눌과 생일 자축한다고 막걸리를 몇 통 나눠 마셨더니 숙취로 머리가 무겁다. 막걸리 몇 잔에 머리가 아프다니... 소주 몇 병을 마셔도 끄떡없던 옛날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일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산행 보따리를 챙겼다. 요근래 갑작스레 기온이 많이 떨어져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길래 본격적인 가을 장비들로 보따리를 챙겼다. 이것저것 챙겨 넣다 보니 배낭 무게가 무려 25Kg이나 나간다. 아이구야, 이걸 메고 어떻게 정맥길을 걷나?

 

배낭 내려 놓고 고민하였다. 이번 구간인 곰재~감나무재 구간은 구간 거리가 25km나 되고 오르내림도 심한 곳이라 한 방에 끊기가 부담스러운 곳이다. 그래서 중간에 1박을 하고 이틀에 걸쳐 진행할 생각인데, 이렇게 짐이 무거워서야 제대로 걸을 수가 있나? 차라리 간단한 짐 꾸려 곰재모텔에서 하룻밤 자고 새벽 일찍 출발해서 하루에 끊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에 머리가 아픈데, 무엇보다 산속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 그냥 짐 무겁더라도 강행을 해보기로 했다. 걱정이 태산인 마눌의 배웅받으며 수원 버스터미널에서 광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추석 연휴의 시작이라 교통정체를 걱정했는데, 긴 연휴 때문인지 고속도로가 평상시 주말보다도 한산해서 막힘없이 광주에 도착할 수가 있다. 14:30. 

 


가지산/迦智山

 

가지산은 유치면 봉덕리에 위치 하면서 장평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1시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는 산이다. 511m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부 일대가 우뚝 솟은 다섯 개의 바위봉우리로 되어 있고, 길지는 않지만 보림사 쪽으로 노송과 어우러진 바위등성이가 뻗어있어 경관이 좋고 아기자기해서 재미있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정상부의 기암은 높게 솟아 있어 너른 공간은 없으나 십여 명이 않아서 쉴 수는 있다. 언제든지 이곳에 오르면 북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인근 월출산과 수인산, 국사봉, 제암산, 무등산까지 관망하면서 피로를 풀 수 있어서 좋다. 곳곳에 안내표지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손쉽게 산행을 할 수 있다. 산중턱 조망이 좋고 한적한 곳에 정자(망루) 까지 세워져 있어 여름철에는 시원한 바람을 받으며 낮잠을 청해도 좋은 공간이다. 또 임간교육장도 있고, 비자림과 소나무숲 두 군데에 체육시설도 있다. 가지산은 2시간 30분 정도의 길지 않은 산행시간과 그리 힘들지 않은 산행으로 보림사에서 시작하여 보림사에서 끝나는 원점회귀성 산행을 할 수 있어 편리하다. 신라 말 원표대사(元表大師)가 인도에 계실 때 신이한 기운이 삼한의 밖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비쳐와 그 기운만을 바라보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오묘한 곳을 찾아내 자리를잡으니 산세가 인도의 가지산, 중국의 가지산과 같아서 가지산이라 명하고 지어진 절이 바로 천년고찰 보림사(寶林寺)이다. 보림사의 유래와 불교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기회로도 삼을 수 있고, 보림사에 있는 여러 점의 국보와 보물들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산행에서 쌓인 피로를 이곳에서 깨끗이 씻을 수 있다. 특히 보림사를 중심으로 주변에 50~60년 이상 된 비자나무가 자생하고 있고 그 비자림과 소나무 밑에 야생녹차가 빼곡히 자라고 있어 꽃이 피는 봄철이나 늦가을이면 그윽한 녹차와 솔향기가 한층 정취를 더해준다. 가지산 남쪽자락 보림사 뒷편에 보림사 삼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삼림욕장은 요사이 각광받는 건강법으로서 울창한 숲에서 나무의 향내와 살균성 물질(피톤치드)이 가득한 신선한 공기를 심호흡하며 심신을 건강케 하는 자연 건강법이다. 삼림욕장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로 누구나 정신안정, 피로회복,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가지산 정상에 서서 서남쪽을 바라보면 잔잔한 장흥호가 보인다. 가지산은 장흥호의 뒷 모습을 바라보고, 수인산은 장흥 댐을 정면에서 장흥 호와 가지산을 바라본다. 또한 남도의 훈훈한 바람을 받으며 남쪽으로 용두산과 맥을 잇고 탐진강 발원지라 할 수 있는 봉덕계곡 물줄기는 가지산 서쪽자락을 적시며 장흥으로 들어간다. 여름철 이 봉덕계곡은 물이 깨끗해서 야유회나 피서지로 북새통을 이룬다. 가을철에는 산 전체가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그 아름다움은 극치에 달하고 정상부의 바위들은 돌을 깎아 세워 놓은 듯 자연의 조화를 이룬다.

 

탐진강/耽津江


길이는 55.07km,  유역면적은  508.53㎢에 달한다. 전남 3대강(섬진, 영산, 탐진)의 하나인 탐진강은 장흥군 유치면과 영암군 금정면의 경계에 있는 국사봉(613m)에서 발원하여 유치면 부산면 장흥읍 등을 지나면서 유치천 부산천과 합류한뒤 강진군 군동면 강진읍을 지나 강진만으로 흘러든다. 심한 곡류와 급경사 지역이 많으며 많은 토사를 하류로 운반하기 때문에 유역에는 부산평야 장흥평야 강진평야 등 충적평야가 발달되었다. 하구에는 간척사업으로 하도(河道)가 정리되고 넓은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신라 문무왕때 탐라국 고후(高厚)형제가 내조할 때 상륙하였다고 하여 탐라와 강진의 한글자씩 따 탐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원래 예양강으로 불렀는데 탐라도 사람이 육지에 처음으로 배를 대어 올랐다하여 탐진강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호남정맥 제 14 구간 곰재~피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어차피 야간산행을 계획한지라 느긋하게 터미널 지하 식당가에서 청국장 한 그릇 사 먹고 양치까지 하고 한가로이 터미널 광장으로 걸어나갔다.

 

광천터미널 광장은 뙤약볕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고, 한여름 날씨처럼 굉장히 무덥다.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니 현재 남도지방은 며칠째 30도가 넘는 무더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란다. 하이구야~ 이게 무슨 일이래...

 

광장으로 걸어나가자 한 켠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어느 고교 브라스밴드가 음악회를 하고 있다. 한참을 음악 감상하다가 광장을 벗어나는데,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 뭔가 해서 봤더니 영화배우 문모씨가 뙤약볕에 벌겋게 익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사람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몇몇 사람이 든 피켓을 보니 야권 통합을 주장하는 글이 적혀 있다. 지금 야당이 분열되어 있나? 통합해서 무얼 하고자 하는 걸까?  열변을 토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 다시 찾은 광주 광천터미널 광장.

 

 

 

# 고교 브라스밴드의 부드러운 선율과,

 

 

 

# 정치적 배우의 열변이 공존하고 있다.

 

 

 

터미널 앞 버스 정류소에서 곰재 가는 218-1번 버스 시각을 확인하니 오후 4시 30분이라, 아직 1시간이나 넘게 남았다. 어쩔까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데, 마침 218-1번 버스가 들어오고 있다. 곰재는 가지 않지만 가까운 이양면까지는 간단다. 얼른 짐 챙겨 올라 탔다. 이양면까지는 1시간 30분 가량 걸리는 거리다.

 

광주시내를 길게 관통하고, 화순의 마을 곳곳을 다 들른 버스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이양면에 도착했다. 초가을 오후의 따스한이 아닌 늦더위가 강렬한 이양면의 거리는 인적 하나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 조용하기만 하다. 동네 가게에서 막걸리 한 통 구입하고 바로 곁에 있는 택시부에 들러 낯익은 구정인 기사님 차편으로 곰재로 올라갔다.

 

 

 

# 화순의 온 동네를 다 돌고 이양면에 도착한 218-1번 버스.

 

 

 

# 햇살 뜨거운 이양면의 거리.

 

 

 

# 석 달 만에 다시 찾은 곰재. 사람 좋은 이양택시 구정인 기사가 날 내려 주고 돌아가고 있다.

 

 

 

가볍게 몸 풀고 배낭을 둘러메는데 무게 때문에 허리가 휘청한다. "오늘 또 이 무게 때문에 고생 좀 하겠구나!  일단 계획은 세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장고목재'까지 가서 야영하는 걸로 하고 가보자! 그렇다면 9시쯤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힘들면 중간에서 멈추고!"

 

표지기 하나 매달고 천지신명께 무사산행을 빌며 곰재들머리로 올라 호남정맥에 스며들었다. 17:20.

 

 

# 들머리 반사경 바라보며 혼자놀기!

 

 

 

# 호남정맥 14구간 곰재의 들머리.

 

 

 

# 이 동네는 호남정맥에 대한 이해가 좋다.

 

 

 

들머리에서 한차례 가파르게 밀어 올리면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은 묘지 때문에 생긴 길이고 좌측 길로 올라가야 한다. 한차례 올려 봉우리에 올라섰다. 봉우리 하나에 허리가 휘청한다. 아이구~ 배낭 무거워! 

 

배낭 무게 때문에 휘청휘청하는데, 등로엔 거미줄이 가득해 스틱으로 휘저어며 전진해야 했다. 오늘 구간의 거미줄은 유난히 질겨서 얼굴에 휘감기면 뜯어내기도 힘들다.

 

이후 비교적 평탄하게 구불거리며 진행하다 묘지를 만나 비로소 앞이 조금 트였다. 전방에 쐐기 모양의 산이 우뚝하다. 아래로 잠시 내렸다가 계단식으로 치고 오르면 멀리서 본 모양 그대로 뾰족하고 가파르게 치고 오르게 된다. 배낭 무게 때문에 종아리가 팽팽하게 땡긴다. 이렇게 이름도 없는 산이 어찌 이리 힘들게 만드냐고 불평이 절로 나온다.

 

힘들게 오르니 정상엔 이정목이 서 있는데, 선답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오늘 구간의 이정목은 대부분 믿을게 못 된다고 하니 그냥 참고하는 정도로만 지난다.

 

잠시 가면 같은 높이의 봉우리가 나와서 그곳에서 처음으로 배낭을 내리고 휴식을 취했다. 날씨는 한여름처럼 더워도 시절은 이미 가을로 접어든 터라 숲속엔 금세 땅거미가 찾아들어 등불 꺼내 어둠을 대비했다.

 

한숨 돌린 후 다시 보따리 둘러메고 출발했다. 가파르게 떨어져 내렸다가 진행하게 되고, 잔봉을 두 개 넘더니 고갯길을 지나 가파르게 밀어 올리라고 한다. 이 오르막은 잡목이 우거져 등로를 찾기 힘들 정도여서 스틱에 의지한 채 온몸으로 수풀을 헤쳐 나가야 했다.

 

얼마나 그렇게 힘들게 올랐을까? 갑자기 왼쪽 무릎이 따끔한다. 벌레가 물었나? 아니면 쐐기벌레에 쏘였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오르는데 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 혹시 뱀에게 물렸나 싶어 바지를 걷고 확인해 보니 뱀 이빨 자국은 보이지 않고 작고 빨갛게 물린 흔적이 있다. 무슨 벌레인데 다리가 뻣뻣해질 정도로 통증이 생기냐? 그래도 뱀이 아니어서 다행이구나!

 

다리 좀 주무르고 침 한번 발라 주고 계속 올랐다.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무명봉'에 올라서게 되고 이정목이 서 있는데 '깃대봉'이라고 적혀 있다.

 

 

  

# 곰재 들머리엔 습해서인지 물봉선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 묘지에서 처음으로 조망이 트인다.

 

 

 

# 깃대봉이라고 엉터리 이정목이 서 있는 '476봉'. 

 

 

 

지도 확인해보니 이곳은 깃대봉이 아니라 '476봉'이다. 깃대봉은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하고 당연히 적혀 있는 거리 표식도 다 엉터리다.

 

한숨 돌린 후 다시 길을 나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숲 속은 이미 캄캄해져 이마에 등불을 밝혀야 하고 약간 스산해진 기분으로 내려가는데 숲속에서 불빛이 움직이고 있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반딧불이들이 날아 다니고 있다. 괜찮네, 괜찮네 하면서도 혼자서 하는 야간산행은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인가 보다. 반딧불이 불빛 보고 놀래니...

 

잔봉을 두 개 넘고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 이정목이 있는 '백토재'에 내려서게 된다. 19:28. 백토재는 옛날 이곳에서 사기그릇을 만들 때 쓰는 백토가 많이 나와서 얻은 이름이다. 오늘은 캄캄한 밤중에 들러 확인을 할 수가 없다.

 

백토재에서 국사봉 까지는 군더더기 없이 고도 120m를 곧장 올려야 한다. 낑낑 대며 그 고도를 극복하며 올라 치는데 배낭 무게때문에 영 속도가 안나고 힘에 부친다. 아무래도 이 정도의 배낭 무게를 극복하기에는 내 체력이 요즘 너무 부실하다! 체중을 줄이고 운동으로 근력도 보충해야 할 일이다!

 

잡풀이 무성한 '헬기장'을 지나 잠시 더 밀어 올리면 '국사봉'에 올라서게 된다. 19:50.

 

 

 

# 추석 직전인데 아직 달은 둥글지 못하다.

 

 

 

# 이정목이 서 있는 백토재. 운곡마을로 내려가는 고갯길이다.

 

 

 

# 힘들게 올라온 국사봉.

 

 

 

무거운 배낭 내리고 한참을 휴식한 후 다시 길을 나서면 곧장 아래로 떨어져 내리라 한다. 등로 좌우로 멧돼지의 흔적이 낭자하다. 길게 내렸다가 봉우리 하나를 넘는데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표지기가 하나도 뵈질 않는다. 설마 설마 하면서 봉우리를 계속 내려가지만 표지기는 계속 나타나질 않는다.

 

일반적으로 정맥길의 경우 5분 이상 표지기를 못볼 경우가 거의 없는데, 10여 분을 걸어도  표지기가 나타나질 않으니 이건 알바가 틀림없다! 어디서 길을 잘못 들었지?

 

한숨 쉬며 내려왔던 봉우리를 다시 치고 오른다. 언제나 알바는 맥이 빠지고 기분이 그래서인지 더욱 힘이 들게 하는 법이다. 낑낑대며 봉우리를 다시 올라 한참을 국사봉으로 복귀하는데, 안부에 이르러 내가 걸어온 길 그 방향 그대로 표지기가 하나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알바가 아니고 제대로 맞는 길이다! 그런데 왜 표지기가 이렇게 없지? 괜히 20여 분 시간만 낭비하고 그나마 없는 체력만 소비했잖아!"

 

투덜거리며 다시 봉우리를 넘어 길고 길게 아래로 내려가니 비로소 표지기가 달랑 하나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온다. 아까 알바라고 착각하고 돌아선 지점에서 조금만 더 내려갔어도 이 표지기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나저나 선답자들이 이 구간에서는 왜 이리 표지기에 인색했냐?

 

길게 내려 안부에 이르고 이후 까마득히 치고 오른다. 좀 전의 알바 소동 때문인지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너무 너무 힘이 든다. 가다쉬다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봉우리를 올라서니 까만 '깃대봉' 정상석이 반겨 준다. 20:50

 

  

 

# 힘들게 도착한 깃대봉.

 

 

 

원래 계획은 바람봉과 삼계봉을 넘어 장고목재 넓은 임도에서 야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배낭 무게에 짓눌려 진행이 너무 느린 바람에 이제 겨우 깃대봉에 올랐을 뿐이다. 굳이 가자고 하면 원래 계획대로 장고목재까지 못 갈것도 없지만 무슨 영화를 얼마나 보겠다고 이 밤중에 그런 무리를 하나 싶어 그냥 이곳에서 멈추기로 했다.

 

깃대봉은 좀 전의 국사봉처럼 참 흔한 이름 중 하나인데, 대부분 일제시대 이후 측량을 하면서 기준점으로 깃대를 꽂아 생긴 이름들이다. 이곳 깃대봉도 고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군더더기 없이 뾰족하게 솟아 있어 기준으로 삼기에 적당한 산이다.

 

정상엔 이 지역 특색인 까만 정상석이 서 있고 한켠에 텐트 한 동 칠 정도의 공간이 있다. 주변 정리 간단히 하고 얼른 호간 텐트를 설영했다.


오늘은 가을 준비를 한답시고 그동안 들고 다니던 타프 대신에 바우데 호간텐트를 들고 왔다. 호간은 가볍고 설치가 빠르며 결로도 거의 없는 데다 작긴 하지만 전실도 갖추고 있어 장점이 많은 텐트다. 단점은 요근래 가격이 많이 올랐고 자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텐트 설치 후 자리 깔고 침낭도 풀어 부풀게 만들었다. 침낭 역시 그동안 가지고 다니던 구스 다운 400g 대신 900g 짜리를 챙겨 왔다.

 

짐을 다 풀어 놓고 살펴보니 오늘 힘들게 산길 걸은 이유가 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 대비한다고 텐트와 900그램 침낭을 챙긴 데다 갈아 입을 옷도 두 벌이나 챙겼고, 양말은 세 켤레, 수건도 세 장, 바람막이에 우모복, 하다못해 예비 건전지도 6개나 되고 휴대용 비데도 실수로 두 개나 챙겼다. 이래 놓으니 제대로 걸을 수가 있나...

 

짐 정리하고 저녁 끓여 먹으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좌측 어깨죽지가 따끔한다. 살펴보니, 어머나! 커다란 진드기 한 마리가 팔 토시 위로 살갗에 이빨을 박아 넣고 있다. 놀래서 잡아떼는데 얼마나 깊게 물었는지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아미 나이프를 펼쳐서 칼끝으로 겨우 떼어 냈다. 이넘, 얼마나 굶주렸는지 몸이 납작하다.

 

어릴 때 시골에서 이 진드기란 놈이 황소의 엉덩이나 *랄에 매달려 피를 많이 빨아 먹어서 우리 동네에서는 이넘을 '가운다리'라 불렀었다. 이넘이 피를 많이 빨아 먹으면 몸이 땡땡하게 부풀어 올라 아주까리 열매처럼 변한다. 그때 놈을 잡아서 터뜨리면 피가 얼마나 퍼지든지...

 

진드기는 쯔쯔가무시 등 여러가지 질병을 일으킨다는데, 기분이 영 찝찝해져서 놈을 버너 불속에 넣어 버렸다. 음... 별일 없어야 할텐데...

 

 

 

# 깃대봉 정상에서 더이상 진행을 못하고 야영하였다.

 

 

 

# 깊게 이빨을 박아 칼로 떼어낸 진드기. 굶주려서 몸이 납작하다.

 

 

 

# 진드기에게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찌개 하나 끓이고 전라도 생막걸리로 홀로 객고를 달랬다.

 

 

 

# 저녁 식사후 MP3로 음악 감상을 하며 외로움을 이겨 냈다. 우측의 조그만 나무상자가 이번에 구입한 미니 스피커다. 덩치가 작아 대단한 사운드는 못 들려 주지만, 작고 앙증맞아 홀로 야영 시 외로움을 달래기엔 그만이다.

 

 

 

음악감상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검색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는데, 밤이 되어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아 옷을 완전히 벗어 젖히고 있어야 했다. 당연히 오늘 준비한 텐트나 침낭은 완전한 오버 스펙이다.

 

그래도 3개월 만에 스며든 호남정맥의 산 정상에서 야영하는 기쁨에 충분히 행복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보통 산에서 잘 때는 새벽 일찍 일어나 서두르기 마련인데,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끓여 먹고 차까지 한 잔 마시고 자리를 정리했다.

 

배낭을 다 꾸리고 카메라를 챙기는데 오른쪽 어깨가 따끔한다. 보니까 어젯밤처럼 진드기 한 마리가 이번엔 오른쪽 어깨를 물어뜯고 있다. 내가 하룻밤 보낸 이 깃대봉 정상이 진드기 운동장인가 보다.

 

놀래서 어제처럼 칼로 놈을 떼어내고 그대로 없애 버렸다. 하룻밤새 두 번이나 진드기에게 물렸는데 별일 없을라나 걱정이 앞섰다. 또다른 녀석이 있을까봐 걱정이 되어 몸 구석구석을 털고 배낭도 털어낸 후 끙차 짊어지고 다시 하루의 산행을 시작했다. 07:50.

 

 

  

# 아침에 눈 뜨고 텐트에서 내다 본 호남의 숲.

 

 

 

# 깃대봉 정상엔 텐트 한 동 칠 공간이 있지만 진드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야영은 절대 비추다.

 

 

 

# 진드기 때문에 공포스럽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한 밤을 보냈다.

 

 

 

# 깃대봉 정상은 진드기 서식지다. 조심!

 

 

 

두 끼분의 식량이 줄어들어 약간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기본 내용물 때문에 여전히 배낭은 무겁다. 오늘도 엄청 무더울 모양인지 얼마 움직이지 않아 벌써 온몸이 끈적끈적해졌다. 수도권에선 아침 저녁으로 추워서 두꺼운 이불을 꺼내는 판인데 이 동네는 여름이 다시 찾아 오는 건지 기온이 30도를 넘고 꽉 막힌 숲속엔 바람 한 점 없다.

 

완만한 내리막을 길게 내려가다가 폐헬기장을 지나고 운곡마을로 갈라진다는 이정목이 있는 고개를 만났다. 이후는 원래 좋은 등로인데 잡목이 자라나 등로를 감춰 버렸고 억센 거미줄과 가시덤불이 앞을 가로막아 진행하기가 엄청나게 어렵다.

 

잡목이 마구 자란 벌목지를 힘들게 지나는데, 그래도 벌목지였다고 잠시나마 트인 조망을 허락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 가시덤불과 거미줄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야 했다. 그렇게 낑낑 힘들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역시나 잡풀 우거진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이 '땅끝기맥 분기봉인 바람재 삼거리'다. 08:15.

 

 

 

# 운곡마을 고개.

 

 

 

# 폐헬기장을 지났다.

 

 

 

# 잠시 좌측으로 트인 조망을 허락받았다.

 

 

 

# 땡겨보면 가야 할 가지산 능선이 보인다.

 

 

 

# 슬로 시티로 지정되었다는 운곡마을 위로 아침 안개가 느릿느릿 피어 오른다. 평화로와 보인다.

 

 

 

# 오늘의 대세는 참취꽃이다.

 

 

 

# 금마타리.

 

 

 

# 땅끝기맥 분기봉.

 

 

 

# 장흥군에서는 '바람재 삼거리'라고 적어 두었다.

 

 

 

이곳은 흔히들 '노적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노적봉 산악회라는 곳에서 땅끝기맥 분기봉 표석을 세우면서 자기들 맘대로 노적봉이란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산 이름이 이렇게 자의적으로 불리워도 되는지 의문이다. 그들이 표지석을 세운 공을 앞세워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부를 자유는 분명히 있는 것이긴 하나, 공식적으로 통용할 때는 '땅끝기맥 분기봉'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 땅끝기맥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바람재가 나오니 장흥군에서 세운 이정목처럼 '바람재 삼거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땅끝기맥 쪽으로도 표지기들이 많이 매달려 있지만 정맥길은 좌측으로 떨어져 내려야 한다. 이곳 내리막도 잡목숲이 거친데 수풀 헤치느라 스틱을 내미는데 꽃뱀 한 마리 쏜살같이 스쳐 도망간다. 아이구, 놀래라! 이후 잔봉을 두 개 넘고 다시 봉우리를 하나 치고 오르니 '삼계봉'이라 적힌 정상석이 서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08:50.

 

 

 

# 햇살이 드는 곳은 모두 이렇게 잡목이 자라 등로를 막고 있다.

 

 

 

# 정상석이 있는 삼계봉.

 

 

 

수풀 헤치느라 힘이 많이 들어서 이 봉우리에서 배낭 내리고 휴식을 취했다. 30여 분 체력 보충을 한 후 다시 길을 나서 잠시 가파르게 내렸다가 잔봉 하나를 넘고 다시 봉우리를 치고 오르니, 얼라? 이 봉우리에 삼각점이 있고 '삼계봉'이란 이름표도 달고 있네?

 

고도계 확인하니 500이 나오니 삼계봉의 정식 높이인 503.9m와 맞아 떨어지고 국립지리원의 25,000 지도 확인하니 역시나 이곳이 삼계봉이 맞다. 오늘 구간은 이정목만 엉터리가 아니라 정상석도 엉터리로 세워져 있구나!

 

 

 

 # 삼각점이 있는 진짜 삼계봉.

 

 

 

# 삼계봉이란 이름표도 달고 있다.

 

 

 

 

# 전방으로 가야 할 가지산이 우뚝하다.

 

 

 

 

삼계봉엔 조망이 트여있어 전방으로 가야 할 가지산이 우뚝하다. 아이고~ 저기까지 가야한단 말이지... 곧 다시 길을 나서면 로프가 설치된 급경사 내리막이 나타난다. 경사가 급해 아주 미끄럽고 배낭 무게 때문에 중심잡기가 어려워 휘청휘청 흔들리며 길게 내려갔다.


잔봉 하나를 넘고 봉우리 하나를 낑낑 오르면 고도 475가 찍히는데 이곳에도 '삼계봉'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이정목이 서 있다. 결국 세 개의 산이 서로 삼계봉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대간 정맥을 수 년 간 해 오면서 이런 곳은 또 처음이다. 두 번째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삼계봉이니 앞뒤의 정상석과 이정목은 자리 이동을 해야 할 것 같다.

 

삼계봉(三界峰)은 산봉우리에 내린 비가 하나는 영산강으로, 하나는 탐진강으로, 또 하나는 보성강으로 흘러서 얻은 이름인데, 실제로 삼계봉에서 세 개의 강이 발원하는 것은 아니다. 삼계봉이라 세 개의 봉우리가 서로 자기가 진짜 삼계봉이라고 주장하는 건가?

 

이 봉우리의 하산길도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내리막을 길게 내려야 하고 두어 차례 구불거리며 진행하다가 다시 길게 내려가면 드디어 '장고목재'에 도착하게 된다. 10:10.

 

 

 

# 로프 설치된 가파른 내리막이 연속으로 나타난다.

 

 

 

# 세 번째 봉우리도 자기가 삼계봉이라고 주장한다.

 

 

 

# 가지산은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

 

 

 

# 장고목재. 장고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해서 얻은 이름이다.

 

 

 

# 원래 어젯밤에 이곳까지 와서 야영하려고 했었다.

 

 

 

애초에 계획대로라면 이곳 장고목재에서 야영하고 이른 아침에 피재에 내려선 후 감나무재까지 해지기 전에 도착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장고목재에 도착했으니 오늘 갈 일이 큰일이다. 해지기 전에 감나무재에 도착하려면 얼른 서둘러야 하는데, 배낭 무게에 짓눌려 몸이 무거워 일어나기가 싫다. 결국 이곳 장고목재에서 다시 30여 분 넘게 한참을 휴식했다.

 

오랜 휴식을 한 후 다시 길을 나서 숲으로 올라 가면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올라야 하는데, 위에서 세 분의 산꾼이 내려 온다. 사람 만나기 힘든 정맥길에서 산꾼을 만나니 반갑기 이를 데 없는데, 한편으론 서로 거미줄을 치워 두어서 걷기 편할 거라는 현실적인 인삿말도 나눴다. 

 

봉우리 두세 개를 더 넘고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봉우리 정상 부근에서 우측으로 우회하게 하다가 우틀해야 한다. 전방에 철탑과 그 너머로 가지산의 뾰족한 모습이 나타난다.

 

커다란 철탑을 지나 숲으로 다시 들어가 봉우리를 치고 올랐다. 오르막이 힘이 많이 든다. 로프가 설치된 암봉 구간을 만나 낑낑거리며 로프에 의지해 올라가면 '가지산'이란 이름표를 단 이정목이 서 있다. 11:45.

 

  

 

# 철탑과 가짜 가지산이 보인다.

 

 

 

# 철탑 공사하느라 사계 청소를 해 두어 좌측으로 조망이 트였다.

 

 

 

# 로프가 설치된 암봉을 낑낑 오른다.

 

 

 

# 봉우리엔 가지산이라 적힌 이정목이 서 있다.

 

 

 

# 그러나 진짜 가지산은 맞은편 봉우리다.

 

 

 

이 동네엔 도대체 누가 이렇게 엉터리 이정목을 일부러 틀리게 세워둔 것처럼 정확한 곳이 하나도 없게 세워 두었는지 의문이다.

 

가지산은 원래 정맥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암봉인데, 그 전위봉에 가지산이란 이정목이 서 있다. 어쨌든 정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가지산에 올라 가 볼 생각 없었는데 이곳에서 가지산 기분이나 내 보자! 가짜 가지산이라도 정상에 섰으니 마음에 점이나 하나 찍자!


원래는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먹으려고 했지만 이렇게 더운 날에 뜨거운 라면을 먹는다는 게 땡기지 않아 어제 광주에서 산 빵과 간밤에 먹고 남긴 막걸리, 그리고 마눌이 챙겨준 과일로 점심을 대신했다.

 

12:30.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아래로 내렸다가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 우측 전방에 진짜 가지산이 보이고 잠시 내리면 '가지산 갈림길'이 나온다.


가지산은 이곳에서 십 분만 오르면 가볼 수 있지만, 지금 내 몸 상태로는 돌아볼 여유가 없다. 정맥길은 좌틀하여 아래로 떨어진다. 잠시 내리더니 산의 사면을 휘감으며 길게 진행하여 내려가게 되고, 옛 고개를 지나 한차례 치고 오르면 '암봉 전망대'에 올라서게 된다.

 

 

 

# 가지산 갈림길.

 

 

  

# 가지산과 우측의 가짜 가지산을 돌아본다.

 

 

 

# 가지산 정상부를 땡겨본다.

 

 

 

 

# 가지산 일대의 파노라마.(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가야 할 정맥길. 저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피재에 이른다.

 

 

 

봉우리를 넘어 아래로 길게 내려가면 잘록한 고개가 하나 나오는데, 좌로는 장평 우산, 우로는 보림사 쪽으로 갈라져 내려가는 곳이다. 고개 마루금이라 그런지 희미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바람 냄새를 느낄 수 있어 배낭을 내려 놓았다. 평소 정맥 산행을 할 때 점심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배낭을 내려 놓질 않는데, 오늘은 쉴 때마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게 된다.

 

처음엔 잠시 쉬었다 가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내 몸 상태와 이 무거운 배낭으로는 감나무재까지 갈 자신이 없다. 게다가 땀을 많이 흘려 사타구니가 쓸려 걷기가 힘들고 1시간여 전부터 물도 다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산행을 피재까지만 하기로 작정을 하고 깔판을 깐후 아예 옷을 홀라당 벗어 젖히고 드러누웠다. 옷 벗고 확인하니 오늘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양쪽 사타구니가 땀에 젖은 팬티에 쓸려 완전히 까져 버렸다. 오늘 착용한 팬티가 기능성 의류이고 그동안 한여름에 열댓 시간을 땀 흘리며 산행을 해도 멀쩡했던 옷인데, 오늘은 어찌된 건지 양 사타구니를 다 쓸어버렸다. 아이구~ 아파라!!!

 

 

# 장평 우산 고개에서 자리 깔고 쉬었다 갔다.

 

 

 

무려 한 시간 동안이나 누워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옷 챙겨 입고 보따리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 피재까지는 427봉 하나만 넘으면 된다. 잔봉을 두 개 넘고 길게 봉우리를 치고 오르면 우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 전망대에서 오늘 구간 최고의 조망이 펼쳐진다.

 

사실 오늘 구간은 오르내림도 심하고 무더운 날씨에 꽉꽉 막힌 숲속만 걷게 되어 있어 바람 구경하기 힘들고 조망도 전혀 없어 내도록 불만이었는데, 이곳 전망대에서의 경치 때문에 하루종일 가졌던 불만이 한 방에 날아갔다.

 

 

 

# 멋진 조망을 보여준 바위 전망대.

 

 

 

 

# 탐진호와 주변의 산하가 눈앞에 펼쳐진다.

 

 

 

# 탐진호를 당겨본다.

 

 

 

# 넓게 펼쳐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흐미.... 참말로 경치 좋네잉....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아주 오랫동안 전망대에 머물면서 경치 구경을 하다가 목이 너무 말라 더 머물지 못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전망대를 나와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걸음걸이는 사타구니가 쓸려 어기적 어기적거리고 목이 말라 입은 타고 급한대로 사탕 하나 꺼내 입에 무니 갈증이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다.

 

한차례 치고 오르면 오눌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427봉'에 올라 서게 된다. 배낭 내리고 그 속을 뒤져보니 마침 마눌이 챙겨준 포도즙이 하나 나오고 수낭 바닥에 딱 반 모금의 물이 바닥에 깔려 있다. 일단 포도즙으로 타는 입안을 적시고 반 모금의 물을 오래 입안에 머금어 그 맛을 즐겼다. 옛날 백두대간할 때는 특히 겨울에 물이 떨어진 경험이 몇 번 있긴 하지만, 정맥길에 물이 떨어진 것은 또 처음이다.

 

 

 

# 427봉. 배낭을 뒤져 타는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달랬다.

 

 

 

427봉에서부터는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내리막 길을 길게 길게 내려가다가 묘지에서 좌틀하여 넓은 임도를 따른다. 다시 우측의 소나무 곁으로 꺾어 떨어져 내려가면 넓은 임도를 만난다. 이후 경작지와 표고버섯 재배지 사이를 통과해서 내리니 오늘 구간의 종점인 '피재'에 도착하게 된다. 15:50.


 

 

# 우측 소나무 곁으로 내려가면 피재로 내려가게 된다. 맞은편의 야트막한 산이 당시엔 무지 높은 장벽처럼 느껴졌다.

 

 

 

# 820번 도로가 지나는 피재.

 

 

 

820번 도로가 지나는 피재는 편도 1차선 지방도인데, 차량 통행이 가끔 있고 뜨거운 뙤약볕이 작렬하고 있다. 일찌감치 감나무재까지 가는 것을 포기하고 놀며쉬며 왔지만, 막상 이곳에서 끊으려고 하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일단 싸리나무집에 가서 물을 보충하고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좌측으로 장평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 싸리나무집에 들어갔다. 싸리나무집 마당에 들어서자 진돗개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달려든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스틱을 앞세워 살살 달래서 돌려 보내고 수염 기른 주인에게 물을 청했다.

 

집 옆의 수도를 쓰라고 하기에 일단 뱃속이 그득해지게 물을 마시고 수낭에도 가득 채워 넣었다. 1시간 넘게 목이 타듯 말랐다가 한꺼번에 물을 양껏 마셨더니 시원하긴 한데 아무 생각도 안드는게 멍해지는 기분이다. 그러다가 맞은 편 산을 올려다보니 도저히 더이상 산에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 미련을 접고 여기서 멈추자!

 

싸리나무집 주인이 들어와서 차나 한잔 마시라고 하는데, 물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마셨더니 아무 생각이 안들었다. 다음에 와서 식사를 하고 가겠노라 인사하고 싸리나무 집을 나와 버스정류소 쪽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그런데 SUV차량 한 대가 나를 지나쳐 가다가 저만치서 서더니 날더러 타라고 한다. 안을 봤더니 아까 산속에서 만났던 광주에서 왔다는 산꾼들이다. 그분들 덕분에 장평면까지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 이 집에서 식사나 숙박을 할 수 있다.

 

 

 

# 장평면 소재지.

 

 

장평면에 도착해서 그분들은 식사를 하려 가시고 나는 파출소 건너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 두 개와 이온 음료 한 개를 뚝딱 해치웠다. 이 슈퍼는 버스 매표소를 겸하고 있어 광주행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1시간이나 넘게 남았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바로 곁에 개울이 흐르고 있고 다리 아래 은밀한 곳이 있다. 얼른 내려가 땀에 절은 몸을 씻어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으니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그런데 오늘 이 남쪽지방의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찬물에 시원하게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은 후 움직임 없이 그늘 아래 쉬고 있는 데도 땀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참 올해는 날씨가 희한하게도 사람살이를 힘들게 한다. 봄철 늦게까지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지 않나, 여름내내 지겹게 많은 비를 뿌리지 않나, 폭염에 열대야에 길게도 여름을 끌고 가더니 추석 직전인 지금까지 이렇게 무더위를 남기며 물러 갈 생각을 안 한다. 참으로 길고 긴 여름이다.

 

장평면에서 한적한 시골마을 구경하다 광주행 버스로 광천터미널까지 다시 수원행 고속버스로 귀경하는데, 추석 연휴 시작의 휴일임에도 정체 한 번 없이 쉽게 도착하였다.

 

그나저나 계획대로 산행을 마치지 못해 다음 구간이 애매하게 남았는데 이 일은 또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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