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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이옥봉(李玉峰) 이야기

강/사/랑 2018. 12. 6. 11:49

 [옛사람]이옥봉(李玉峰) 이야기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떠하시나요? /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걸요.


이옥봉(李玉峰)의 '몽혼(夢魂)'


이옥봉은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이다. 본명은 이숙원(李淑媛)이다. 조선은 여성이 글을 익히고 문집을 남겨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그런 남성 중심의 폐쇄사회에서 이옥봉 같은 여류 시인의 글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사회 규범으로도 막을 수 없는 천재성 때문이다.


옥봉의 생몰연대(生沒年代)는 분명치 않다. 전해지는 기록을 조합하면 선조 때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庶女)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시를 잘 지었고 독서량도 많았다. 비록 서녀이지만 총명하고 시를 잘 지으니 아비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그 재능이 아까워 책을 많이 구해 주었을 것이다.


서녀 신분이라 정실은 되지 못하고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인 운강(雲江) 조원(趙瑗)의 부실이 되었다. 결혼 조건은 시를 절대 짓지 않겠노라는 맹세였다. 그녀의 천재성이야 이미 알려졌을 것이고, 여인의 이름이 담장 밖으로 알려져 좋을 일이 없던 시절이라 그랬을 것이다.


결혼 생활 10년쯤 뒤 사건이 터졌다. 그 사건으로 옥봉은 남편에게 소박을 맞았다. 그 내용은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전한다.


어느 날 이웃 여인이 옥봉에게 억울한 일을 하소연하였다. 그녀의 남편이 소도둑이라는 누명을 쓴 것이다. 이에 옥봉은 소장(訴狀)을 써줘서 여인의 남편이 풀려나게 만들었다. 그 소장의 말미에 시 한 수를 부기하였는데, 그 시가 결정적이었다. "첩의 몸은 직녀가 아닌데 남편이 어찌 견우이겠습니까(妾身非織女 郞豈是牽牛)"


약속을 어긴 이 일로 옥봉은 남편에게 소박을 맞는다. 옥봉의 재능에 질투한 것인지 아니면 여인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이 싫었든지 남편은 매정하였다. 그 이후 둘은 만난 적이 없고 옥봉은 10년쯤 홀로 외로이 살다가 임진왜란 때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시는 중국에서 더 유명하였다. '명시종(明詩綜)', '열조시집(列朝詩集)', '명원시귀(名媛詩歸)' 등 중국의 시집에 그녀의 시가 수록되어 전해졌다.


확실치는 않으나 그녀의 시가 중국에 전해진 것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희일(趙希逸)은 조원(趙瑗)의 아들이다. 희일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명의 원로대신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보고 "조원을 아느냐?"고 대신이 물었다. 부친이라고 하자 명 대신은 서가에서 시집 한 권을 보여주었다. '이옥봉 시집'이었다.


수십 년 전 중국 동해안에 여자 시신이 한 구 발견되었는데, 건져보니 온몸이 종이로 둘러싸인 채 노끈으로 묶여있었다 한다. 노끈을 풀고 종이를 보니 그 뒷면에 빽빽하게 시들이 적혀있었다. 내용이 뛰어난 시여서 그 시들을 묶어서 시집을 만들었고,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는 이름이 있어 그 시가 조원의 소실인 옥봉의 시(詩)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기구한 사연과 뛰어난 시재(詩才)를 안타까이 여긴 뒷사람들의 창작이겠지만, 그녀의 천재성과 작품이 해동(海東)을 넘어 중국까지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그녀의 시는 조씨 가문의 문집인 '가림세고(嘉林世稿)'에 옥봉집(玉峰集)이라는 이름의 부록으로 33편이 전해진다. 그 시들이 나중에 중국까지 알려졌을 것이다.


비록 여인의 글이지만 그의 천재성은 당대에도 칭송을 받았다. 허균(許筠)은 그녀의 시가 "맑고 장엄하여 아녀자의 연약한 분위기가 없다"고 평했고,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에서 "이옥봉이 국조(國朝) 제일의 시인"이라 칭송하였다.


남편에게 소박맞고 긴 세월 님을 그리며 읊었을 '몽혼(夢魂)'은 수백 년 세월 흐른 지금에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그 시적 감성이 물 흐르듯 유려하다. 대단하다.


若使夢魂行有跡 / 門前石路半成沙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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