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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보유국]'팬더 드 까르띠에' 이야기

강/사/랑 2022. 3. 25. 18:37
[재앙보유국]'팬더 드 까르띠에' 이야기

 

1819년 프랑스 파리의 어느 화약공(火藥工) 집안에서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라는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10대 중반이 되었을 때 그는 파리의 유명한 보석 세공사 아래에서 견습공이 되었다.

 

집안 가업인 화약공이 아닌 보석 세공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세기 초 파리의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다. 당시 파리는 풍요롭고 화려한 상류층의 도시였다. '아름다운 시절', '좋은 시대' 등의 의미인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기의 전 시절이었지만 파리의 상류사회는 충분히 풍요롭고 호화로웠다. 그렇기에 까르띠에는 시류에 알맞은 직업을 선택했던 셈이다. 

남다른 노력과 재능으로 보석 세공 분야의 일류 디자이너가 된 그는 1846년 28세 나이에 자신만의 장인(匠人) 마크, 즉 브랜드를 만들어 등기했다. 이는 추후 세계적인 '까르띠에 하우스'의 상징이 되었다.

화려하고 섬세한 까르띠에의 보석 세공품은 파리 사교계의 여왕이자 패셔니스타였던 마틸드(Mathilde) 공주를 비롯한 파리 상류층을 사로잡았다. 영국의 에드워드 7세는 그를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이라 칭송했을 정도다.


오늘날 까르띠에는 롤렉스, 오메가와 더불어 세계 3대 명품 시계 브랜드로 자리 잡았고 반클리프앤아펠, 불가리, 티파니 등과 함께 4대 명품 보석 브랜드로 알려져 돈 많은 명망가들의 머스트 헤브 잇템이 되었다.

2022년 3월 대한민국은 느닷없이 '까르띠에'라는 명품 보석으로 시끄럽다. 우리네 서민들은 평생 들어보기도 구경하기도 어려워 그런 이름의 보석이 있는 줄 알 수도 없었던 그 브랜드가 시끄럽게 된 것은 어느 뚱뚱한 여성 덕분이다.

나대기 좋아하고 기품과는 거리가 먼 듯한 그 여성은 촛불 광풍(狂風)을 앞세운 좌익 백년 전쟁의 전리품으로 느닷없이 그들 부부에게 떨어진 권좌에 마음껏 취하여 흥청망청 5년 세월을 보낸 모양이다.


그녀의 남편과 졸개들은 건국 후 온 국민이 피땀으로 일으켜 세운 이 자유 민주공화국을 마음껏 파괴했다. 견제와 균형, 경쟁과 자유 시장, 법치와 공정이라는 숭고한 단어는 그들로 인하여 변질되었고 파괴되었으며 냉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바깥에서 남편이 이 나라를 거덜내는 동안 그 여성 역시 안에서 열심으로 국격(國格) 파괴에 앞장섰다. 국가 원수의 자리는 그녀의 허영심을 채우는 도구가 되었고 우리 국민은 헌정 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부인'의 모습을 5년 내내 보아야 했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은 없고 기울지 않는 달 역시 없는 법이다.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 그들에게도 퇴장의 시간이 왔다. 그러자 그동안 권력과 그에 부역한 좌익 언론에 의해 철저히 가려졌던 그 부부의 진면목(眞面目)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작은 놀랍게도 그들 스스로 자랑스럽게 내놓은 사진 자료 덕분이었다. 나대기 좋아했던 그 여성은 5년 동안 나라 안팎의 공식 석상을 참으로 열심히 누볐고 그들의 졸개들은 그것이 자랑이라고 또 열심히 사진 찍고 내걸었다. 그들은 그 자랑이 자신들의 발등을 찍는 도끼인 줄 몰랐다.

 

그들이 공포한 그 많은 사진들 속에서 그녀가 입고 다녔던 화려한 의상을 누군가 한 장의 사진으로 정리하여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뚱뚱한 그 몸에 참으로 화려하고 값 비싼 브랜드의 옷들이 형형색색 휘감겼는데 해당 브랜드의 광고 모델과의 극과 극의 옷태라 보는 이의 눈을 찌르고 싶게 만드는 사진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의 눈에 수백 벌의 옷 외에 치렁치렁 걸고 끼고 매달거나 손에 든 각종 액세서리가 포착된 것이다. 귀걸이, 팔찌, 반지, 목걸이, 브로치, 노리개를 비롯해 각종 백(bag) 종류가 그것인데, 특히나 광활한 그녀의 앞가슴판을 떡하니 장식한 표범 한 마리가 세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표범은 흰색 몸에 점박이의 보석으로 치장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바로 '팬더 드 까르띠에'의 명품 브로치였다.

팬더는 표범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까르띠에의 홈페이지에는 까르띠에의 상징적 동물로 묘사하고 있으며 1914년 플래티늄, 오닉스, 다이아몬드로 여성용 시계의 처음 사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다양한 주얼리의 상징으로 디자인되었는데 그녀 앞가슴의 브로치와 같은 형태의 것은 가격이 무려 '2억 2천만 원'이나 하는 고가품이었다. 현재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브로치는 그녀 것보다 크기가 작은 것인데도 가격이 2억 2천만 원이니 만약 그것이 진품이라면 그 가격이 얼마나 될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허~ 참~ 벌어진 입을 다물기 어렵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인간들이기에 남편은 바깥에서 나라 말아먹기에 열일을 다하고 아내는 사치와 허영으로 나라 곳간 거덜내기에 또 그렇게나 열성이었단 말인가?.

물론 그 브로치가 정품인지 아닌지는 그녀와 그녀 주변의 자금 집행자 외에 당분간 아무도 알 수는 없다. 한국납세자연맹에서 그녀의 옷값을 밝히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해 법원에서 승소하였지만, 그들은 시간 끌기용 항소를 통해 진실의 폭로를 30년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막은 전체주의적 권력의 결과는 당연히 부패로 직결된다. 일찍이 '미하일 바쿠닌'이 설파했듯이 특권을 누리는 자는 지성과 마음이 타락(墮落)하기 마련이다.

그 타락의 끝판을 2022년 3월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는 것이다. 기가 차고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19세기, 20세기의 혼돈기도 아니고 문명 발달하고 민주화 이뤘다는 대명천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어쨌거나 허영심 가득한 어떤 여성 때문에 결혼반지 제외하고 평생 손가락에 반지 하나 낄 일 없는 우리네 서민들은 '팬더 드 까르띠에'라는 명품 브랜도도 알게 되었고 가슴에 매다는 브로치 하나가 수억 원을 홋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상 공부 하나 잘 하기는 하였어도 입맛은 영 쓰디쓰다. 쩝~

 

작은 브로치 하나가 무려 2억2천만원이다.

 

 

자, 우리 모두 눈 호사나 한 번 해보자! 쩝~ 

사진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모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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