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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이야기]야영 - 의령 자굴산자연휴양림 / 진주 와룡지구 본문

산이야기/캠핑이야기

[캠핑이야기]야영 - 의령 자굴산자연휴양림 / 진주 와룡지구

강/사/랑 2023. 12. 11. 20:42
[캠핑이야기]야영 - 의령 자굴산자연휴양림 / 진주 와룡지구

 

산꾼의 삶을 수 십 년 살았다. 도시의 안락한 인공물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날것의 자연을 만난다. 그 날것의 생명력이 좋아 나는 오래 산을 찾았다.

 

산에서 만나는 날것의 자연물 중 으뜸은 바람이다. 특히 예고되지 않은 바람을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났을 때 그 충격은 강렬하고 기억은 오래간다.

 

처음 백두대간 종주 준비를 하면서 찾은 겨울 소백의 칼바람은 날카로운 칼날로 온몸을 후벼 파는 아픔과 공포의 기억이었다. 덕유산 종주 도중 무룡산 오름에서 만난 강풍은 무거운 배낭 둘러멘 성인의 몸을 공중에 띄워 올리는 괴력의 바람이었다. 종주 산행 후 육십령 주차장에서 만난 차가운 바람은 체온을 순식간에 뺏어 저체온증을 몰고 온 전율의 바람이었고...

 

그 외에도 바람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여럿 있었는데, 뜻밖에 캠핑을 하면서 색다른 바람을 만나게 되었다. 겨울이 그 기세를 점점 올려가는 계절, 의령 자굴산에서의 이야기다.

 

나는 매년 겨울 초입 시제 모시러 고향을 찾는다. 12월 첫째 주말이 늘 그 일정인데 올해는 여러 사정으로 몇 주 앞 당겼다. 야영하기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찾는 고향이라 한이틀 야영이나 하자 싶었다. 인근 야영장을 검색하다. 의령 자굴산 휴양림에 빈자리가 있어 예약 완료했다.

 

처음부터 조짐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고속도로 열심히 달려 내려가는데 휴양림에서 연락이 와서 야영 취소를 권유한다. 야영장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얼어붙어 차량 진입이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오랜만의 야영이고 이미 길을 나섰는지라 조심히 가겠다 하고 강행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과연 길이 빙판이다. 그래도 차가 못 다닐 정도는 아니어서 조심조심 고갯길을 넘어 야영장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북사면에 위치한 야영장이다. 당연히 그늘지고 바람 많은 곳이다. 가파른 산기슭에 계단식으로 조성된 야영장으로 썩 좋은 환경은 아니다.

 

집 짓고 저녁 먹고 산책하여 몸 푼 후 샤워도 마쳤다. 내일의 시제 행사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파도소리인 줄 알았다. 저 아래 골짜기에서 휘~잉 하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이윽고 숲을 흔들며 무엇인가 점점 소리를 키우며 달려왔다. 마침내는 텐트를 강하게 뒤흔든다. 바람이었다.

 

그냥 두면 텐트가 하늘 높이 날아갈 기세였다. 대응책이 필요했다. 가지고 있는 가이로프 전부를 꺼내 바람에 대비했다. 몽골텐트 바람 막듯했다. 튼튼히 대비를 해서 다행히 바람에 견뎌주기는 했다.

 

다시 침낭 속에 들어가 짐을 청했다. 그러나 쉬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여태 그런 바람을 들은 적도 겪은 적도 없었다.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파도였다. 파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철썩철썩 휘몰아치듯 바람이 일정하게 파도치듯 밀려왔다.

 

계곡 아래 깊은 곳에서 시작된 바람이 숲 전체를 흔들며 휘몰아 올라와서는 텐트를 푸드드덕 흔들고 다시 위층의 텐트를 차례로 흔들고 산정으로 사라져 갔다. 그 주기가 이십 여초쯤 되었는데 문제는 파도치듯 일정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바람이 시작되어 숲을 흔들다가 텐트를 때리는 그 일정한 주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또 예상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밤이었고 대단한 바람이었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새벽녘에 겨우 잠깐 잠이 들었다. 두어 시간 눈 붙이고 일어나니 어느새 바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바람은 늘 그렇다. 세상을 뒤엎을 듯 고삐 풀려 휘몰아치다가도 꿈결같이 고요해지는 것이 바람이다. 이곳 자굴산도 그러했다. 태풍 부는 밤 바닷가 파도가 밀려오 듯 밤새 철썩이다 나뭇잎 하나 흔들림 없이 안온하다. 거대한 계곡 북사면에 조성된 휴양림이라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대단한 경험이었다. 바람의 추억이 또 하나 생겼고...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일시 : 2023년 11월 18 ~ 19일

 

 

 

# 자굴산자연휴양림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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