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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그 첫걸음(1145봉~통리역)-JUST DO IT! 낙동정맥 그 첫걸음! 본문

1대간 9정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그 첫걸음(1145봉~통리역)-JUST DO IT! 낙동정맥 그 첫걸음!

강/사/랑 2007. 8. 19. 13:45
 [낙동정맥]그 첫걸음(1145봉~통리)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우리 민족(民族)의 영산(靈山) 백두산(白頭山)에서 몸을 일으켜 한반도의 등뼈를 이룬다. 그의 여정(旅程)은 남으로 남으로 굽이치며 멀고 멀다. 그 여정 도중에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이북땅 추가령(楸哥嶺)에서 한북정맥(漢北正脈)이라는 가지 하나를 좌측으로 뻗는다. 한수(漢水)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맥이다.


그리고 자신은 계속 휴전선을 넘어 향로(香爐), 설악(雪岳), 점봉(點鳳), 오대(五臺), 두타(頭陀), 청옥(靑玉) 등 빼어난 산으로 마음껏 울퉁불퉁 하늘 높이 몸을 솟구쳐 올리며 굽이쳐 흘러내린다. 금강산(金剛山)과 설악산(雪嶽山), 그리고 오대산(五臺山)의 산군(山群)으로 이어진 산맥의 흐름이다.

그렇게 남으로 내려오던 산맥은 태백(太白)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피재(三水嶺)에서 방향을 크게 꺾는다. 지금까지 동해 축(軸)을 이루며 남하하던 몸을 한반도 내륙쪽으로 비틀어 태백과 소백을 바라보며 허리를 한껏 구부리는 것이다. 마치 용이 또아리를 튼 듯도 하고 호랑이가 도약(跳躍)을 위해 몸을 구부린 듯도 한 모양세다.


그러면서 그냥 내륙으로 내빼기에는 뒤가 허전한지 피재(三水嶺)에서 자기 몸통에 결코 뒤지지 않는 긴 가지 하나를 내 뻗어 낙동강(洛東江)의 물줄기와 동해의 해안선과 나란하게 밀어 내리게 한다. 무릇 힘이란 균형(均衡)을 이뤄야 안정을 취하게 된다. 산맥도 마찬가지이다. 곧게 뻗어 내리던 산세가 안쪽으로 굽어지게 되면 뒤가 비게 된다. 그리하여 백두대간은 해안선을 따라 산맥 하나를 뻗어 균형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그 긴 산줄기가 '낙동정맥(洛東正脈)'이다. 기존에 우리가 학창시절 지리시간에 '태백산맥(太白山脈)'으로 잘못 알고 가르치며 배웠던 바로 그 산줄기다. 그것은 개화기 우리 옛 사람들의 무지(無知)에서 비롯하였고 오늘날 우리 학자와 공직자의 무책임에 기인(起因)한 결과이다.


태백산맥은 일제 침략 초기 왜인(倭人) 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의 산맥 규정의 산물이다. 그는 땅속 지질 구조선을 기준으로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의 개념을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민족 고유의 산맥 개념이 원래부터 존재하였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백두대간과 정맥, 그리고 지맥의 개념이다. 이제 우리는 태백산맥은 버리고 낙동정맥을 바로 세워야 한다. 올바른 산맥의 개념을 사용하고 후손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해방을 이룬지 한 갑자(甲子)가 되었어도 우리는 아직 태백산맥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모름지기 이름이 바로 서야 역사가 바로 선다. 애초에 잘못 명명(命名)된 이름이어선지 태백산맥은 오랫동안 비틀려 있다. 한 때 같은 이름을 가진 소설이 한국 문학계를 지배한 적이 있다. 우리 국민 너댓명 중 한 명은 읽었다는 책이고 지금도 잘 팔리고 있는 책이다.


해방공간과 육이오전쟁 기간의 우리나라 근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뤘다는 평가와 분단의 원인이 강대국, 그중에서도 미국에 있음을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이 소설은 영화로 드라마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지금도 작가를 부자로 만들어 주고 있는 효자이다.


누구나 한 번은 읽어야 할 것 같은 사회분위기 때문에 오래 전 초판 출판 직후 전집을 구해 읽었지만, 나는 작가의 역사인식에 결코 동의할 수 없어 집어 던져 버렸다. 빨치산과 북한군은 순수한 열정의 정화(精華)이고 작가와 그의 자손을 대대손손 부자로 만들어 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모순(矛盾)의 결집으로 보고 있는 그 비뚤어진 시각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런 모순과 혼란의 근원이 잘못된 이름 탓인 듯하여 나는 낙동정맥 이외의 다른 이름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영향력 없는 소시민(小市民)의 혼자 생각이 무슨 소용있을까만 내 소신이 내 고집이 그렇다는 얘기다. 올바른 이름에 올바른 정신이 깃드는 법이다. 그리하여 이 산맥은 낙동정맥으로 영원하여야 할 일이다.


낙동정맥은 낙동강의 울타리이고 한반도 동해안의 축(軸)이다. 한반도는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때의 동고(東高)한 곳이 낙동정맥이다. 해안선을 따라 높게 솟아 있어 산맥 동쪽과 서쪽의 문화와 기후를 구분되게 한다. 산세 험하고 골 깊어 아직까지 남아있는 최후의 원시림(原始林)과 오지(奧地)의 산간지역이다.


산맥의 출발은 백두대간 피재(三水嶺)이고 그 종착지는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다대포 '몰운대(沒雲臺)'이다. 도상(圖上) 거리 410km, 실제 거리 700km로 천칠백 리에 이르는 대장정(大長征)의 산길이다. 그 먼 길 내내 산세(山勢)는 단 한 번도 약해짐 없이 높고 강인하다. 굳건한 산맥인 것이다.

지난 7월 8일에 파주 곡릉천 앞 장명산(長命山) 정상에서 한북정맥(漢北正脈)을 졸업했다. 그날 졸업은 산동무 임호빈님과 함께 마쳤다. 해 저무는 곡릉천에 손 담그고 졸업 세러머니 하면서 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옮길 것인가 의논하였다. 그때 나는 내심 100대 명산쪽으로 굳히고 있었는데,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호빈님은 낙동정맥을 강력 추천하였다.

"낙동(洛東)이냐, 명산(名山)이냐? 낙동은 워낙 오지에 위치하고 있어 백두대간 보다도 접근이 어렵고, 한번 들어 가면 중간에 탈출하기도 마땅치 않아 무조건 구간 끝까지 가야 하는데... 낙동을 지금 내 몸 상태로 혼자서 갈 수 있을까?"

아직은 완전하지 못한 내 건강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하였다. 곁에서 쳐다보는 마눌의 걱정도 많았다. 처음 내 생각은 명산 산행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낙동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산동무 호빈님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지만, 이왕 시작한 정맥 종주를 모두 마치고 싶었고, 그러자면 정맥 중 맏형이라 부를 수 있는 낙동정맥의 종주가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이었다.


그리하여 한 주일 동안의 고민을 겪은 후 일단 낙동정맥에 발을 들여 놓아 보기로 결론지었다. 걱정이야 여전히 많고 자신감도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다. 하지만 일단 시작해 보면 어떻게든 될 것이었다. 그런 낙관(樂觀)으로 한 세월 보내온 경험칙의 결론이기도했다.


원래 사는 것이 모두 그랬다. 무슨 일이든 일단 몸으로 부딛쳐 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법이고, 아무리 어려운 일도 시작하다 보면 해결책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하는 것이었다.

"JUST DO IT! 일단 시작해 보는 거다!"




JUST DO IT! 낙동정맥 그 첫걸음!



구간 : 낙동정맥 제 1구간(1145봉~통리)
거리 : 구간거리(8.2 km), 누적거리(8.2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7월 22일. 해의 날.
세부내용 : 백두대간 1145봉/낙동 분기점(10:15) ~ 피재 ~ 작은 피재(10:45) ~ 구봉산(10:55) ~ 임도 ~ 무명봉
 ~ 대박등 갈림길) ~ 대박등(11:40) ~ 초지 ~ 자작목이 ~ 묘지 ~ 서미촌재(12:48) ~ 바위전망대 있는 무명봉 ~ 922봉(13:15) ~ 17번 송전탑 ~ 갈림길 있는 무명봉 ~ 느릅산(13:50)/점심(14:20) ~ 느릅령(14:35) ~ 전망대(15:00) ~ 문관석 ~ 우보산 갈림길 ~ 계곡 ~ 통리역(15:50).

총 소요시간 5시간 35분. 만보계 기준 14,000보.

7월 22일. 해의 날. 일단 몸으로 부딛쳐 보자고 결심했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 저어하는 생각이 있었는지 미적대다가 0시를 넘겨서야 겨우 짐 챙겨 집을 나섰다. 예전 백두대간 할 때 맨날 이런 식으로 집을 나서곤 했었다.

걱정하는 마눌 안심시키고 집 나와 영동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1시간여 냅다 달리니 만종분기점 지나고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서 치악휴게소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좀 일찍 나서서 피재에 자정 이전에 도착해 거기서 자자는 생각이었지만, 출발이 늦었으니 치악휴게소 한 쪽에서 주차하고 침낭 꺼내 잠을 청했다.

오랜만에 차에서 잠을 자니 허리도 아프고 불편해서 잠들기 쉽지 않다. 대간 다닐 때는 불편한줄 모르고 잘도 잤는데... 그래도 피곤했었는지 눈 뜨니까 7시다. 씻고 먹고 다시 출발해서 제천, 영월, 사북 거쳐 태백으로 넘어 갔다. 새로 뚫린 두문동 터널 지나 태백으로 넘어 가니 길 좌측으로 백두대간이 따라오고 매봉산 풍차들이 골리앗의 팔들을 휘돌리고 있다.


그런데 운무가 잔뜩 끼어서 진면목을 전부 보여 주지는 않는다. 오늘 좋은 조망 구경하기는 힘들겠는데? 태백으로 들어 가다가 좌틀해서 고개를 올라 백두대간 피재에 주차하고 대망의 낙동정맥을 시작한다.




낙동정맥/洛東正脈

백두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려 지리산까지 내려가는 백두대간이 피재에 이르러 양분되면서 대간은 서쪽으로 꺽어지며 함백산(1573m)으로 맥을 잇고, 또 한가닥은 동남쪽으로 갈라져 나가면서 백병산(1259m)으로 맥을 이어나가는데 바로 이 줄기가 동해와 나란히 달려 다대포 몰운대 낙동강 하구까지 뻗어 나가며 낙동정맥을 일구게 된다. 낙동정맥은 국내 제일의 오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의 황지 연못과 한몸이 되어 남쪽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다. 낙동강의 수계를 형성하는 유역권 전체가 낙동강 물줄기를 중심으로 한쪽은 백두대간이고 한쪽은 낙동정맥이 된다. 낙동정맥은 경상도 전체를 가로 지르는 거대한 산줄기로 아직까지 제대로 조사나 연구된 바 없는 산줄기로 우리의 인식에서도 '미지의 세계' 로 남아있는 자연의 보고다. 지도상의 능선 거리만도 약 410km이고 고도와 기복을 감안한 실제거리는 약 700km가 넘는다.

낙동정맥의 산들

매봉산(1,145m), 백병산(1,259m), 면산(1,245m), 묘봉(1,168m), 삿갓봉(1,119m), 진조산(908m), 통고산(1,061m), 칠보산(976m), 백암산(1,004m), 독경산(683m), 맹동산(808m), 명동산(812m), 대둔산(905m), 왕거암(907m), 침곡산(725m), 운주산(806m), 도덕산(703m), 삼성산(578m), 어림산(510m), 사룡산(685m), 단석산(827m), 백운산(870m), 고헌산(1,083m), 가지산(1,240m), 능동산(983m), 간월산(1,083m), 신불산(1,209m), 영축산(1,062m), 정족산(700m), 천성산(922m), 계명봉(602m), 금정산(802m), 백양산(642m), 구덕산(550m), 봉화산(169m)

가선대부/嘉善大夫

조선시대의 종2품 아래의 관계(官階). 초기에 문무산계(文武散階)로 사용하였으나 후기에는 종친(宗親)과 의빈(儀賓)의 관계로도 사용하였다. 이 관계에는 군(君)·위(尉)·동지사(同知事)·참판·좌우윤(左右尹)·대사헌·내각제학(內閣提學)·제학·세자좌우부빈객(世子左右副賓客)·부총관(副摠管)·훈련대장·수어사(守禦使)·통제사·개성부관리영사(開城府管理營使)·군문중군(軍門中軍)·금군별장(禁軍別將) 등이 해당된다.

느릅령/楡嶺

황지지방에서 도계지방으로 넘어가는 큰 고개이다. 옛날에 삼척지방에서 경상도로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했던 고개이다. 고개 마루에 산신당이 있어서 매년 음력 4월 16일에 통리와 도계지역 사람들이 모여 산신제를 올린다. 대동여지전도(大東與地全圖)와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楡峴」으로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척주지(陟州誌)에는 「楡嶺」으로 표기되어 있는 고개이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楡嶺」으로 표기되어 있다. 큰 느릅나무(楡)가 고갯마루에 많았다고 느릅령(楡嶺)이라 불렀다고 하나 사실은 느릅나무보다는 넘어재, 넘을재에서 온 말이 아닐까 하며 또한 늘어진 고개, 즉 낮은 산등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동정맥 제 1구간 1145봉~통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두문동 터널 지나 태백으로 넘어 가노라면 백두대간 매봉산의 풍차를 볼 수 있다.

 

 

백두대간 할때 지쳐 발 끌며 내려왔던 매봉산 가는 시멘트길을 낑낑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 고랭지 채소밭에 도착하는데, 매봉산은 온통 운무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원래 계획은 매봉산에 올라 정상석 터치하고 내려 올 생각이었지만, 날씨가 이래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냥 분기점에서 산행을 시작하자고 결정한다.

밭에서 농사일 중이신 분들께 인사하고 숲으로 들어가 낙동정맥 분기점이 있는 1145봉에 오른다. 숲속은 전날 오전까지 내렸던 비때문에 축축하고 서늘하다. 잠시 후 낙동정맥 분기점이 있는 '1145봉'에 섰다.(10:15)



# 건건산악회에서 세운 낙동정맥 분기점 이정목.

 

 

분기점 이정목 쓰다듬어 낙동정맥 시작을 신고하고, 대망의 낙동정맥 첫 발걸음을 내디딘다. 이곳에서 대간은 좌측으로 정맥은 우측으로 내려 가야 하지만 정맥길은 분수령목장에 의해 가로막혀 출입을 할 수 없으므로 대간길로 도로 내려 갔다.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그 길로 도로 내려 오니 농사짓던 분들이 의아한듯 쳐다 본다. 시멘트 길 도로 내려 피재로 복귀했다.


 

 

# 삼수령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 중인 가족. 남편이 이게 무슨 비석이냐고 묻자, 부인이 이곳에서 빗물이 동해, 서해, 남해로 흘러간다고 얘기해 준다. 한 마디 해 줄까 하다가 그냥 웃고 돌아섰다. 전혀 엉뚱한 말은 아니기에..

 

 

   

# 삼수정(三水亭).

 

 

피재에서 다시 낙동정맥 신고를 하고 도로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후 '작은 피재'에 도착해서 본격적인 낙동정맥 산행을 시작했다.



# 작은 피재. 실질적인 낙동정맥의 출발점이다.

 

 
작은 피재는 철재 바리케이트가 사라지고 목재 부산물이 산처럼 쌓여 있다. 그 너머에 임도가 우측으로 산을 휘감고 정맥길은 직진하여 숲속으로 들어 가야 한다. 표지기 하나 달고 낙동의 오름에 올라 섰다.

시작부터 미역줄 나무 덩쿨이 앞을 가로막는다.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습도가 높아 아주 무덥다. 금세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린다. 곧 '구봉산 정상'에 선다. 이 산은 대부분의 지도에는 이름이 없고 한 개의 지도에만 구봉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해발 854.8m의 산이지만 길에서 조금 봉긋 솟아 있는 정도라 이름을 쉽게 얻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내리막은 짧지만 가파르게 내려간다. 내가 이름을 그냥 공짜로 얻은 것은 아니오! 이렇게 항변하는 것 같다. 비온 뒤라 아주 미끄럽다. 스틱이 없으면 낭패 당하겠다.

아래로 내리면 임도와 다시 만난다. 임도에 서면 우측 전방에 매봉산에서 흘러 내린 백두대간의 능선과 풍차, 그리고 정맥길을 가로막고 있는 삼수령 목장이 보인다.



# 백두대간의 능선과 삼수령 목장, 피재로 오르는 도로가 보인다. 

 

 

# 임도를 따라 가면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 일월비비추. 백합과이다. 어린 잎과 줄기를 식용으로 쓴다. 야생의 이 꽃을 번식시켜 조경용으로 많이 심는다.

 

 

# 층층이꽃. 잎과 줄기를 약재로 쓴다. 한방에서는 웅담초(熊膽草), 풍윤채(風輪菜)라고 해서 해열과 해독의 약재로 쓴다.

 

 

# 양지꽃. 대표적 봄꽃인 이 넘은 명색이 장미과이다. 잎과 줄기는 소화에 좋고 뿌리는 지혈제로 쓴다.

 

 

# 붉은 토끼풀. 홍차축조(紅車軸草), 홍삼엽(紅三葉), 금화채(金花菜)라고도 한다.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 짚신나물. 작고 노란꽃이 예쁜 이 꽃은 장미과의 다년생 초본이다. 이름에 나물이란 말이 들어 있다. 당연히 어린 잎은 식용으로 먹는다.

 

 

# 띠(?)

 

 

# 금마타리.

 

 

# 꽃창포.

  

 

# 붓끝처럼 생겼다.

 

 

# 낙동의 첫걸음엔 야생화가 지천이다.

 

 

# 이 계절에 벌써 네가 피냐?

 

 

# 병조희풀.

 

 

# 기린초.

 

 
# 달맞이꽃. 밤이 되면 꽃이 팍팍 소리를 내며 터집니다. 

 

 

# 잔대.

 

 

 

# 씀바귀.

 

 

# 여로.

 

 

# 미역줄나무.

 

 

 # 산앵도.

 

 

# 바위채송화.

 

 

# 짚신나물 하나 더.

 

 

# 윤기가 좔좔 흐르는 하늘나리.

 

 

# 이 넘은 색이 약간 다르다.

 

 

# 좁쌀풀.

 

 

# 엄청나게 큰 곰취.

 


# 엄청나게 많은 야생화가 저마다 맵시를 뽐낸다. 하지만 오늘 구간의 대세는 이 솔나리다.

 


# 매봉산의 풍차들. 윙윙윙 소리가 들릴 듯하다. 

 

 

야생화 구경하느라 시간 지체가 아주 심하다. 그래도 좋다. 오늘 구간은 짧거니와 나는 오래 전부터  솔방솔방 가는 게 이미 체질화 되었으니...

다시 산으로 들어가 무명봉 하나를 넘고 곧 다시 임도와 만나게 된다. 목책이 서 있는 임도를 가다 보면 정면의 산으로 올라가게 표지기들이 달려 있다. '대박등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임도따라 계속 가다가 알바하는 경우가 많은 곳이다. 임도따라 편하게 가려 하다가는 엉뚱한 곳으로 빠지는 곳이다.



#  임도를 따르다 정면 산으로 올라 가야 한다.

 

 

다시 가파르게 위로 올라 봉우리 하나를 오른다. 그리고 마루금을 따라 직진한다. 이곳부터 전형적인 동해안쪽 산지 지형인 동급서완(東急西緩)의 형태가 이어진다. 동쪽은 낭떠러지인 만큼 그 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아주 시원하고 좋다. 아직 시작단계라 거풍하기에는 이르지만 바람이 너무 좋아 가기가 싫어진다.

그러나 곧 가파르게 위로 밀어 올린다. 헉허대며 오르니 '대박등'이 나타난다.(11:40) '대박등'이란 이름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 보지만 알 수가 없다. 아마도 '大밝등(크게 밝은 봉우리)'에서 음 변화가 온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정상 바로 앞의 바위전망대에 서면 지나온 정맥길과 매봉산의 백두대간길이 한 눈에 조망된다. 아래로 내려 초지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내리며 전진했다. 임도를 따라 가게 되는데 잠시 가다가 임도에서 벗어나 좌측 숲으로 불러 들인다. 그렇게 가다가 아래로 내려 갈림길을 만났다. 지도상 '자작목이'인 듯하다.

두어 차례 오르내리다 고개를 만난다. 아마도 지도상 '키나무목이'인 것 같다. 고개를 지나 아래로 길게 천천히 내렸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오른다. 구불구불 길게 숲길을 걸어 묘지를 지나고 가파르게 아래로 내려 다시 묘지를 만나는데, "嘉善大夫安東權公 配貞夫人三陟金氏之墓(가선대부안동권공 배정부인삼척김씨지묘)"란 비석이 서 있다.

곧 몇 년째 도로공사 중인 '서미촌재'에 도착한다.(12:48)


   

#  중간중간 목초지가 있다.

 

    

# 전망대에 서면 백두대간의 능선이 손에 잡힐 듯하다.

 

    

# 매봉산의 풍차들이 건너다 보인다.

  

   

# 삼각점이 있는 대박등 정상.

 

   

# 임도따라 편하게 오른다.

 

   

# 자벌레 한마리 내 손가락 위에서 저 만의 잣대로 세상을 재고 있다.

 

    

# 고개를 하나 넘는다.

 

   

# 서미촌재.

 

 

공사장 잡석더미를 가로질러 건너편 절개지 상단 숲으로 들어갔다. 이후 한차례 가파르게 위로 밀어 올려 '바위전망대'에 오른다.(13:00) 이곳 전망대 역시 서쪽으로 개방되어 대간길을 바라보고 있다. 바위 사이 사이에는 바위채송화가 햇살에 빛나고 있다.

마루금을 따라 위로 길게 올라 간다. 잡목이 무성해서 배낭이며 옷가지를 잡아 당긴다. "놔라, 놔!!" 잠시후 뙤약볕이 강렬한 '922봉'에 오른다. 저 멀리 백두대간 '함백산'이 건너다 보인다. "반갑다, 함백아!!!"


   

# 아침에 잔뜩 흐렸던 날씨는 강렬한 뙤약볕으로 변했다.

 

 

   

# 저 멀리 여름 구름아래 함백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래로 떨어져 내려 안부에 이른다. 이곳이 지도상 '참나무내기'인 듯하다. 다시 한차례 위로 밀어 올려 정상부가 노출되어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 고도계에 900이 찍히는데 지나온 922봉과 정맥길이 조망된다.

다시 아래로 조금 내려 길게 진행하면 '17번 송전탑'을 만나고, 잠시 위로 올랐다가 앞길을 가로 막는 잡목들의 저항을 뚫고 길게 진행하게 된다. 그러다 한차례 밀어올려 920이 찍히는 봉우리에서 갈림길을 만나 '좌측길'로 진행했다.

잠시 내리는 듯하더니 다시 위로 곧장 밀어 올린다. 그렇게 위로 올라 '느릅산(楡嶺山)'에 도착했다.(13:50)


   

# 922봉.

 

 

   

# 여름 뙤약볕 아래 고요한 목초지.

 

 

   

# 지나온 정맥길.

 

 

   

# 느릅산 정상에서 천지신명께 낙동정맥 시작 신고식을 했다.

 

 

정상엔 작은 정상석이 서 있고 '유령산(楡嶺山)'이라고 적어 두었다. 산 아래 '느릅재'를 한자로 '유령(楡嶺)'이라고 음역하고 이 산도 더불어 '유령산'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런데 유령산이란 이름의 어감이 너무 좋지 않다. 느릅재란 이름도 느릅나무가 있어서 얻은 이름이라기보다는 '넘어재' '넘을재'에서 유래된 이름이란 설이 있는 만큼 굳이 어감이 좋지 않은 한자를 쓰기 보다는 '느릅산'으로 부르는 것이 옳을 둣하다.

정상석 앞에 도시락으로 간편 제물을 차리고 천지신명께 낙동정맥 신고를 드렸다. 막걸리를 준비하지 않아 쬐끔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번 백병산에서 막걸리 한잔 올리겠습니다!"

신고식 후 나도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그리고 14:20에 다시 출발했다. 정상을 내려오면 길고 가파르게 아래로 내려가라 한다. 결국 다시 길고 가파르게 오르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의외로 빨리 '느릅령'은 모습을 보여준다.(14:35)



   

# 전방에 우보산이 떡 버티고 있다.

 

 

   

# 느릅령 산신당.

 

 

   

# 느릅령도 옛날 영동과 영서를 잇는 유명한 고갯길이었다. 그렇다면 이 고개도 선질꾼들이 넘나들던 고개일 것이다. 선질꾼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넘나들며 행상을 하던 보부상의 한 형태이다.

 

 

   

# 유령산영당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느릅령 산신당 앞에서 한 숨 돌리고 사진찍고 기록하고 있는데, 동해쪽에서 사륜구동 차량 하나가 힘겹게 고개를 넘어와 지나 가더니 갑자기 차를 후진하여 돌아와 나를 힐끗 거리며 살핀다. 시커먼 복장에 완전무장하고 사진찍고 기록하는 모습이 무장공비 같았나 보다. 옛날 같으면 벌써 경찰에 간첩 신고를 했을 것이다.

고개 건너 짙은 숲속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름과는 달리 느릅나무는 안보이고 잣나무 숲이 이어진다. 청설모 한마리가 커다란 잣을 따서 물고 가다가 놓쳐 내 발아래 툭 떨어뜨린다. "오잉? 올해 첫 야생잣맛을 한번 볼까?" 스틱을 이용해 잣 솔방울을 벌려 한 알 까서 입에 넣어 보니 아직 시절이 일러 알이 영글지 않고 비릿한 냄새만 난다.

내처 위로 밀어 올리는데 가파르고 힘이 드는 곳이다. 낑낑 소리가 절로 난다. 심박을 잘 조절해 가며 위로 올라갔다. 힘들게 위로 오르다 보면 정상 직전에 동쪽 도계 방향으로 툭 트인 '전망대'가 나온다.(15:00)


   

# 립스틱을 바른 듯 예쁜 솔나리. 

 

 

   

# 무지무지 시원하고 상쾌한 바위전망대.

 

 

   

# 도계 방향으로 툭트인 조망을 선물한다.

 

 

   

# 도계쪽 오봉산의 산세.

 

 

   

# 지나온 정맥길과 뒤쪽의 매봉산과 대간길.

 

 

전망대에 서면 조망이 너무나 훌륭하고 동해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무지무지 시원하다. 경치에 취해 바람에 취해 넋을 잃고 있다가 아예 홀라당 벗고 거풍(擧風)을 즐겼다. "아~ 좋쿠나!! 이것이 바로 자연합일(自然合一), 물아일체(物我一體)로구나!"

낙동길 첫날부터 거풍을 즐겼더니 너무나 시원하고 좋다. 혹시 남들이 본다면 큰일날거지만...

전망대 바로 위에 다시 묘지 하나가 나오고, "嘉善大夫密陽朴公 貞夫人全州李氏之墓(가선대부밀양박공 정부인전주이씨지묘)"라 적혀있다. 이 동네는 가선대부 벼슬을 한 사람이 많았나 보다. '가선대부'라면 종2품의 품계인데 지금으로 치면 차관급쯤 될 것이다.

묘지 한 쪽엔 작고 특이한 모양의 문인석(文人石)이 두 개 풀속에 오똑 서 있다. 가선대부 정도의 벼슬을 한 사람의 묘지 문인석치고는 너무 소박하고 작다. 그러나 토속적이고 서민적인 그 풍모가 오히려 더 정감이 갔다.

묘지 바로 위가 '우보산 정상'인데, 볼록볼록 솟은 봉우리 몇 개 중 특별하게 표식을 해 둔 곳도 없고 특출나게 우뚝 솟은 곳도 없어 어느 곳이 정상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우보산이란 이름도 사람과 산에서 발간한 지도 외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이다.

5분여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정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꺾여 떨어져 내린다.


   

# 너무나 소박한 모습을 한 문인석.

 

 

갈림길에서 급경사 비탈길을 가파르게 떨어져 내린다. 스틱에 의지해서 조심조심 내려야 했다. 길게 내려 안부에 이르자 우측 계곡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등로를 벗어나 우측으로 가자 계곡이 있고 물이 제법 많이 흐르고 있다. 배낭 벗고 시원한 계곡물로 목을 축였다.


   

# 갈림길. 좌측으로...

 

 

   

# 수량이 풍부하고 시원했던 계곡물.

 

 

이곳에서 알탕을 즐겼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곳은 통리사람들의 상수원이라 조심해야 한다. 조심스런 세수 정도는 괜찮치 않을까?

계곡물이 너무 시원해서 여기서도 한참을 휴식했다. 오늘 구간은 시원하고 멋진 전망대에다 이렇게 맑은 물이 철철 흐르는 계곡까지 갖추고 있다. 낙동이 전부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맘 간절했다. 그러나 세상사 어디 그리 만만하겠느가?

한참을 휴식하고 능선으로 돌아 왔다. 곧 숲을 벗어나고 '통리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통리역과 건너편의 백병산, 그리고 다음 들머리인 태현사가 건너다 보인다. 밭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니 통리역이 나온다.(15:50)


   

# 조는 듯 고요한 통리 전경.

 

   

#  통리역.

 

 

# 통리역 열차시간표.

 

 

통리역에 들러 열차 시간표 확인하고 나오는데, 마침 택시 하나가 들어 오길래 얼른 타고서 피재로 차량회수하러 갔다.피재는 내 자동차에게도 낯익은 곳이어선지 삼수정 정자 앞에 얌전히 잘 있었다.

5시간 정도의 짧은 거리, 멋진 조망을 선사한 전망대, 그리고 시원한 계곡. 낙동정맥 첫 구간은 비록 반토막짜리이지만 솔발솔방 산행하는 강물사랑에게는 딱인 곳이었다. 아~~ 좋타! 이제 이 좋은 기분으로 다대포 몰운대까지 한걸음 두걸음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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