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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두번째(통리~석개재)-다래미 눈물 찌기미! 강/사/랑 눈물 찌기미 본문

1대간 9정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두번째(통리~석개재)-다래미 눈물 찌기미! 강/사/랑 눈물 찌기미

강/사/랑 2007. 9. 2. 14:18

 [낙동정맥]두번째(통리~석개재)



옛날 옛날에! 간 날 간 적에!   many times ago!   long long ago! 강원도 땅 백산에 살던 한 처녀가 어찌어찌해서 시집을 가게 되었더란다.


이웃 동네 좋은 청년들과는 눈이 안 맞았는지 백산 땅 산골짜기에는 총각이 씨가 말랐는지 가까운 동네 마다하고 하늘 같이 솟은 낙동정맥을 넘어 삼척군 동활리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시집가는 낙동정맥의 고갯길이 어찌나 높고 가파르고 험한지 시댁에 줄 떡함지를 이고 가던 사람이 그만 고갯마루에서 발을 헛디뎌 떼구르르 구르고 말았단다. 당연히 떡함지도 고개 아래로 떼구르르 굴러버리고 떡함지를 뒤져보니 떡이 딱 한 개가 남았더란다. 그래서 그 고개를 '한개고디'라 불렀다 한다.


'고디'는 높은 고개를 이르는 말이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까풀막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개고디에서 떡을 다 흘려 버리고 단 한 개의 떡만 가지고 다시 시집을 가는데, 삼척 동활리 쪽에 더 급하고 가파른 고갯길이 나타났다.


이 놈의 고개가 또 얼마나 가파른 고갯길인지 올라갈 때는 코와 땅의 거리가 한 뼘도 안되는 그런 길이더란다.  그래서 새색시를 태우고 가던 가마꾼들이 모두 너무나 힘들어 눈물을 흘리며 울고 넘었다고 한다.


그때 말 잘하는 한 가마꾼들이 말하길 "나무 잘 타는 다래미(다람쥐)도 이 길을 올라갈라 카모 눈물 꽤나 흘릴 끼라"  탄식했는데, 그 말이 너무 맞아 떨어져 모두 맞장구를 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 가파른 고개를 '다래미 눈물 찌기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참, 백산 처녀 시집 한 번 가기 힘들었겠다. 시집에 갖다 줄 떡 다 흘려 버리고 가마꾼들은 눈물 콧물 찔찔 짜게 만들고... 이래 힘들게 시집을 갔으니 그 험한 고개 넘어 친정 나들이나 한 번 마음대로 올 수 있었겠는가? 그냥 죽으나 사나 시댁 귀신이 될 수 밖에.


위의 이야기는 이 지역 지명 유래 두 개를 묶어서 강/사/랑이 각색한 것이다. 원래 없는 이야기인데, 지명 유래를 듣고 상상해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 조상님들 어휘력이 너무나 절묘함을 알 수 있다. '한개고디', '다래미 눈물찌기미'. 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연 절절한 이름인가?

그런데 오랜 오랜 세월이 지난 2007년 8월 25일 날. 혼자 산길 솔방솔방 걷기 좋아하는 강/사/랑이 낙동정맥 산길을 홀로 걷다가  점심 잘 먹고 느닷없이 체력이 뚝 떨어져서는,
"아이고, 한개고디~~",
"아이고, 다래미 눈물찌기미~~",
"아이고, 강/사/랑 눈물콧물찌기미~~~"


요래 탄식하며 발을 질질 끌며 코를 땅에 쳐 박고 산을 넘어 넘어 석개재에 내려섰더란다. 시집가는 처자도 아니면서.



다래미 눈물 찌기미! 강/사/랑 눈물 찌기미!!



구간 : 낙동정맥 제 2구간(통리~석개재)
거리 : 구간거리(17.1 km), 누적거리(25.3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8월 25일. 흙의 날.
세부내용 : 통리역(07:00) ~ 태현사 ~ 송전탑 ~ 산성터 ~ 1090봉(08:18) ~ 훅찌이밭재
(09:00) ~ 1154봉(09:28) ~ 면안등재 ~ 고비덕재(09:45) ~ 백병산 갈림길 ~ 백병산(10:20) ~ 갈림길 복귀 ~ 1064봉(11:25) ~늪목 ~ 송전탑(11:42) ~ 방화선 ~ 일출전망대 갈림길(12:20) ~한개고디 ~ 토산령정상(12:35)/점심 후 13:20 出 ~ 수직굴 ~ 토산령(14:05) ~ 1010봉/갈림길 ~ 구랄산(15:00) ~ 면산 전 1봉(15:31) ~ 2봉(15:49) ~ 3봉(16:14) ~ 4봉(16:35) ~ 5봉(16:57) ~ 면산(17:12) ~ 1000봉(18:49) ~ 1009.3봉(19:11) ~ 석개재(19:20)
                

총 소요시간 12시간 20분. 만보계 기준 37,600보.



8월 24일. 쇠의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보따리를 챙겼다. 같이 낙동길 못 나서는 마눌은 산행 준비를 열심히 해 주는 걸로 자신의 역할을 대신 하려고 한다. 도시락도 아침, 점심 것을 정성껏 아주 많이 담아 준다.

기상청에서 토욜날 폭염주의보를 발했으니 물도 3리터 듬뿍 준비했다. 혹시 몰라 등불도 하나 챙기고 바람막이도 하나 챙기고 졸리면 자야 하니 깔판도 챙기고... 그랬더니 엄마야, 배낭이 10kg이나 나간다. 배낭 무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먹을 것을 줄이는 건데 마눌 서운해할까봐 그냥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아이고, 무거워라!!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라 용인, 마성터널, 여주 부근에서 일부 정체가 있었지만 쉬지 않고 밟고 또 밟았더니 집 나선지 세 시간 만에 통리역에 도착했다. 거리계는 250km를 가리킨다. 새벽 한 시다. 의자 뒤로 젖히고 침낭 덮고 잠을 청한다.

백병산/白屛山

높이는 1,259m이다. 백산이라고도 부른다. 매봉산에서 시작하는 낙동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정상 서쪽의 병풍바위 등의 암봉이 병풍을 두른 듯하고, 갈수기 때 하얀 암봉으로 보여 백병산이라고 부른다. 병풍바위에 올라서면 청옥산에서 두타산, 매봉산, 함백산, 태백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보인다. 산길이 험하여 등산할 때 주의해야 하며, 병풍바위는 암반 코스이므로 암벽등반 경험이 없이 오르는 것은 위험하다. 산행은 통리에서 시작하여 원통골을 지나 고비덕재에 올라 정상에 쉽게 오르는 코스와 한보탄광영업소를 지나 남동쪽 능선길을 따라 촛대바위와 병풍바위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있다. 원통골을 지나 정상에 오르는 코스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긴 마고할미바위와 시야가 탁 트인 촛대바위를 지나 하산하면 된다.

통리/桶里


마을의 사방에 산이 높고 그 가운데로 길게 골짜기가 형성되어 흡사 구이[구유]처럼 생긴 곳이라 하여 '통(桶)', 마을 '이(里)'라 하여 통리(桶里)라 부르게 된 동네이다. 일설에는 옛날 이곳에 속이 빈[구새먹은] 통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통나무 '통',마을 '이'라 하여 통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 때는 통의(通義) 또는 통리(通里)라고도 불렀는데 마을의 동쪽에 있는 통골을 넘어가면 삼척시 원덕면쪽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고 해서 통할 '通'자를 써서 통리 또는 통의(通義)라 불렀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우보산 (牛甫山 一名 楡嶺山) 동쪽에 臥牛形局의 명당이 있는데 원심(源深) 부근이 소의 여물통처럼 생겨서 와우형국에 부합되므로 구유 '桶', 마을 '里'하여 통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면산/免山, 綿山

동점동 방터골 안쪽에 있는 산이다. 옛날 난리 때 사람들이 이 산으로 피해와 火田을 일궈 농사를 지으며 亂을 면(免)했다고 면산(免山)이라 하였다. 그후 「免山」이「綿山」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경북 봉화군과 태백시의 경계에 솟은 산으로 마당뜨리 처럼 넓은 땅이 많다.


토산령/兎山嶺

철암동의 토산골 끝에 있고 삼척군 풍곡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이다.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오솔길이 되었으나 옛날에는 큰 길이었다.「兎」는「卯」와 같은 뜻으로 12지(十二支)에서 동쪽을 의미한다. 「兎山」은 「卯山」이니 「東山」이요 「兎山嶺」은 동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이다. 철암이나 태백(上長面)에서 동쪽에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어떤 지도에 「土山」으로 표기된 것이 있으나 잘못 기재된 것이다.

늪목

백산에서 삼척 땅으로 가는 고개이다. 삼척군과 경계에 습지대가 있고 물이 질펀한 늪이 있다. 고개를 넘으면 삼척군 동활리 빙수촌으로 간다. 고개 너머 삼척땅 산비탈에는 석회동굴이 많고 곰굴이라 하여 굴속에 곰이 누운 자국과 곰발자국이 바위에 찍혀 있는 곳도 있다. 늪이 있는 목(고개)이라고 늪목이라 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동정맥 제 2구간 통리~석개재 지형도. 


 

 

5시30분에 기상했다. 부지런한 통리 어르신들은 벌써 기침하셔서 움직이고 계신다. 차안에서 마눌이 싸준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고 통리역 화장실에서 세수도 했다. 통리역 화장실은 아주 깨끗하다. 근대화 이후 우리나라가 질적으로 발전한 대표적인 곳이 공공화장실이다.

5일과 10일이 통리 장날이라 장터에서는 벌써 장 준비가 한창이다. 철길 건너 태현사쪽으로 올라가 오늘 산행을 시작했다.(07:00)


태현사 이정표와 민박집 간판 옆으로 올라가는데 큰 개 한마리가 잡아먹을 듯 컹컹 짖으며 덤벼든다. "네 이놈~" 호통 쳐서 멀리 쫓았다.


시멘트 도로 따라 올라 태현사 입구를 지나면 옥수수밭이 나오고 멧돼지 접근을 막기 위해 쳐둔 그물을 넘어 묘지 좌측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 이 식당 좌측으로 올라간다.

 

  


# 태현사 입구 정자 사이로 올라갔다.

 

 

   

# 옥수수밭에서 돌아 본 통리마을과 지난 구간의 우보산.

 

 

 

통리역에서 열차 워밍업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그 소리를 만만치 않은 오늘 구간 잘 다녀 오란 응원소리로 듣고 오름에 몸을 맡긴다. 시작부터 대단한 각도로 치고 오른다.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리니 '송전탑'이 나온다. 그리고 그 각도 그대로 유지하며 밀어 올려 845가 찍히는 지점에서  한숨 돌리게 만들더니 곧 다시 치고 오르게 한다.

고도 910에서 한숨 돌리게 하더니 다시 밀어 올려 940에서는 잠시 편하게 가게 한다. 그러나 고도를 천천히 높여가는 형상이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 오는 갈림길이 있다. 태현사 건너 산줄기로 올라오는 갈림길인가 보다.

군데군데 허물어진 '산성 흔적'이 있다.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무엇을 방어하기위해 성을 쌓고 전투를 했을까? 산줄기 자체가 이미 첩첩요새일텐데...

작은 봉우리 두어 개를 오르내리더니 980에서 편하게 간다. 전방에 1090봉이 우뚝 솟아 있다. 저 산 오르자면 한 땀 제대로 흘리겠군! 곧 오름에 붙어 빡세게 밀어 올린다. 고도를 110m 올려야 한다.


중간중간 쉬면서 올라 가는데 다행히 바람이 많이 불어 준다. 한차례 찐하게 올려 '1090봉'에 올랐다. 고도계도 정확하게 1090을 가리킨다.(08:18)




#  오늘 구간의 대세는 바로 이 넘이다. 새며느리밥풀꽃.

 

 

갈림길이 있지만 우측길에 표지기들이 많이 달려 있다. 그 표지기 중에 '약무글 산악회'의 표지기가 눈에 확 띈다. "아차! 아침 약을 안 먹었구나, 마눌이 신신당부했는데!" 배낭 벗고 아침 약을 먹었다.

저 산악회의 표지기는 대간 종주할 때 단목령 가는 길에 처음 봤었다. 저 산악회는 약 무글 일이 있는 사람들만 가입하나? 뭐 이런 우스개소리를 했었는데, 어쨌건 저 산악회 리본 덕에 아침 약을 거르지 않고 찾아먹었다.


갈림길로 내려서는데 등로에 녹슨 동전 하나가 버려져 있다. 낙동하면서 돈 주은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잠시 내려 마루금을 진행하며 작게 오르내린다. 잡목이 계속 잡아 당긴다.(08:47) 무너진 참호가 있는 1110이 찍히는 봉우리에 오른다. 산성 흔적이 있다.

아래로 길게 내려 잘록이 하나를 지나고 바로 다음에 산죽으로 뒤덮힌 잘록이 하나가 더 나온다.아마도 '훅찌이밭재'인가 보다.(09:00)


자료에는 '훅찌이'라는 산나물이나 약재가 많이 나는 곳이란 뜻이라 적혀 있다. 하지만 훅찌이가 뭔지 또 정확한 어원이 뭔지는 설명이 없다. 경상도 사투리에 '훌찌이'란 말이 있다. 훌찌이는 밭을 가는 도구인 쟁기를 가리키는 옛말이다. 혹시 고개가 쟁기처럼 생겨 훌찌이라 불렀던 것은 아닐까?

산죽 사이를 헤엄치듯 헤쳐 나가면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서너 개 넘게 되는데 전방에 산 하나가 버티고 서 있다. 이곳이 '면안등재' 이다.


습하고 축축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데 역시나 습한 곳을 좋아하는 물봉선이 많이 피어 있다. 면안등재도 유래를 찾을 수 없다. 위로 계속 밀어 올려 '1154봉'에 오른다.(09:28). 오늘 처음으로 전방이 조금이나마 트인 조망을 허락한다.



# 아침 약을 잊지 않게 해준 약무글 산악회 리본.


 


                     

# 훅찌이밭재.

 


                      

# 솔바람이 너무 좋아 사진을 찍었다. 소나무는 찍혔지만 그 소나무 뒤흔든  바람은 안찍혔다.


                             

# 처음으로 나무 사이로 쬐끔 트인 조망을 허락한다.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백병산이다. 

 

 

내리막 길의 사면을 간벌해 두어 오늘 처음으로 작은 조망을 구경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햇볕을 만나게 되는데, 이 넘이 또 아주 강렬하다. 오늘 기상청에서 폭염경보를 내렸고 연중 최고 기온을 예보했으니 오죽할려고...


조망없이 숲길로만 걷는 것도 오늘 같은 날엔 다행이다 싶다. 내리막길엔 야생화가 지천이다. 참취, 씀바귀, 궁궁이, 수리취, 배초향, 엉겅퀴 등이 저마다 향기를 뽐내고 있고 꽃가루를 가득 품고 있다가 옷에다 확확 뿌려 댄다.



   

#  참취꽃 뒤에서 셀프샷으로 이런 장난도 해 본다.

 

   

# 쑥부쟁이.

 

   

#  기름나물. 구별이 어려운 산형과 식물이다. 나물이라 부르니 당연 어린 잎은 식용으로 한다. 중국에서는 인삼대용을 복용했다 한다. 뿌리를 석방풍(石防風)이라 부르고 기관지염, 해수, 천식의 약으로 쓴다.

 

 

#  며느리밥풀 못지 않게 많았던 단풍취. 국화과이다. 잎이 단풍잎을 닮아 단풍취라 부른다. 새순이 올라올 때 하얀 털이 보송보송하여 게발짝주하고도 부른다. 봄에 나물로 먹는다.

 

 

#  갈참나무.

 

 

#  구절초가 어느새 꽃을 피웠다.

 

 

#  뚝갈. 마타리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잎 양면에 흰색털이 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 달린 전초(全草)는 패장(敗醬)이라 하며 청열과 해독의 약재로 쓴다.

 

   

#  물봉선.

 

 

#  수리취, 만지면 엄청 아프다.

 

 # 배초향. 이걸 경상도에서는 방아잎이라 부르는데, 김치, 부침개, 매운탕 등에 향신료로 넣어 먹으면 기막힌 맛을 선사한다.

 

 

# 오랜만에 만난 오이풀. 장미과로 검붉은 꽃이 특징적이다. 뿌리는 지유(地楡)라고 하며 해열, 설사, 지혈, 피부병 등에 사용한다. 17%의 타닌과 사포닌이 함유되어 있다.

  

   

# 까실쑥부쟁이. 국화과이다. 곰의수해라고도 부른다. 나물로 먹는다. 뿌리 달린 전초는 산백국(山白菊)이라 부르며 거담 진해의 약재로 쓴다.

     

# 고려엉겅퀴. 곤드레나물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구황식물(救荒植物)로 춘궁기 산골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식량 대용이었지만 지금은 별미로 가치가 높다.

 

 

# 산박하. 꿀풀과이다. 박하라는 이름은 있지만 허브로서의 향은 거의 없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 종소리가 들릴 것 같은 잔대. 딱주 혹은 사삼(沙蔘)이라 한다. 사포닌 성분이 있어 강장, 청폐, 진해, 거담 등의 약재로 쓴다.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는다.

 

 

# 동자꽃. 석죽과이다. 산지의 반그늘이나 습한 곳을 좋아한다. 주황색 꽃 색깔이 예뻐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

 

  

야생화 향기에 취해 한참을 지체했다. 아래로 천천히 내려 오니 갈림길이 나오고 수풀을 헤치고 나가자 '넓은 헬기장'이 있다. '고비덕재'다.(09:45).


헬기장엔 햇살이 아주 강렬하여 머리 꼭대기가 뜨끈뜨끈하다. 넓은 헬기장에는 오이풀, 까실 쑥부쟁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잠자리 하늘 가득 날아 다니고 있고...

야생화 사진 찍고 노느라 시간 지체가 아주 심했다. 숲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오름이 시작된다. 고도를 250이나 올려야 한다. 오름 초입엔 무너진 성터의 흔적이 보이고 그 돌로 계단을 만들어 두었다. 동절기 안전을 위해 로프도 설치해 두었다.


오르막에서 힘들때는 언제나 하는 숫자세기를 하며 올라가자 이번엔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가파른 오름이 끝나자 키낮은 산죽밭이 이어진다. 완만하게 고도를 높여 올라 가자 '백병산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 배낭 벗어두고 카메라만 들고 백병산으로 향했다. 마눌이 잔뜩 챙겨준 점심과 3리터에 이르는 물 무게, 각종 장비 때문에 10kg이나 나가는 배낭을 벗어 버리자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다.

김밥 한 줄, 물, 수건 한 장이면 하루 산행 짐으로 충분할텐데 혹시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언제나 배낭 무게는 10kg에 육박한다. 잠시 후 자그마한 공터로 된 '백병산 정상'에 오른다.(10:20)



   

# 고비덕재의 헬기장.

 

   

# 900m 올라 가라 한다.

                       


# 가파른 오름이 이어진다.

 

    

# 수풀을 헤집고 오느라 바지에 풀씨가 잔뜩 붙었다.

 

 

# 백병산 갈림길.

 

   

# 백병산 정상.

 

 

 

백병산은 해발 1,259m로 낙동정맥의 여러 산들 중 가장 높은 산이다. 산 꼭대기가 흰 바위절벽으로 되어 있어서 '백산(白山)'이라고도 한다. 통리쪽 사면에 바위가 있는 모양인데 잡목이 너무 무성해서 조망 보러 가는 걸 잊어버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병풍바위가 가물 때는 흰빛을 내고 비가 올 때는 검은 빛을 내어서 아랫 동네 사람들은 이 바위의 색깔을 보고 가물지 비가 올 지를 알아냈다고 한다. 백병산이란 이름은 일본놈들이 지도 제작을 하면서 '백병산'이라 왜곡되게 기록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원래 이름인 '백산'으로 불러야 할텐데 한번 바뀐 이름을 바로 잡기는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백산 정상석 앞에서 제물 없는 산신제를 지냈다. "천지신명이시여! 낙동정맥 무사히 종주할 수 있게 굽어 살피소서!!!" 정상석 한 번 안아주고 백산을 나와 다시 갈림길로 복귀했다. 백산 갈림길을 출발했다.(10:40).

길고 완만하게 내려갔다. 산죽밭이 빽빽하게 나타난다. 누군가 등로가에 마구 자란 잡목들을 베어서 등로를 확보해 두었다. 작업한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는지 나무는 시들었는데 톱밥냄새가 강하게 난다.

그러나 산죽은 워낙 빽빽하고 양이 많아 어쩔 수 없었는지 손을 대지 못했고 산죽 키는 점점 커져간다. 산죽잎과 줄기가 온몸을 마사지한다. 차르르 쏴아 소리도 점점 커진다. 비온 날이나 젖었을때 여길 지나면 온몸이 금방 물 구덩이가 되겠다.

오늘은 마사지 받는다 생각하고 지나가지만, 다만 발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으니 걱정된다. 뱀만 없기를 바랄 뿐이다.

고만고만하게 오르내리며 진행했다. 그러나 모두 고도는 1,000m이상이다. 1,150이 찍히고 큰 소나무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자 아래로 제법 가파르게 떨어져 내린다. 산죽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길게 내리자 잘록이가 나오는데 좌우로 희미한 길이 보인다. 지도상 '큰덕'인가 보다.

다시 산죽밭을 헤엄치며 산마루금을 오르내린다. 그렇게 길게 가다가 '1064봉'에 도착했다.(11:25).

                      

# 큰소나무가 있는 봉우리.

 

                       

# 산죽밭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 오늘 두 번째로 허락된 작은 조망. 백병산을 돌아본다.

  

   

# 홀대모,홀산에서 두 번째로 엽기적인 닉의 소유자인 똥벼락님.

 

 

1064봉에 서면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백병산의 줄기가 쬐끔 보인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홀대모, 홀산에서 '두 번째'로 재미있는 닉네임을 가진 '똥벼락'님의 표지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대전에 사는 발걸음이 번개같은 젊은 산꾼인데 왜 닉을 저렇게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똥벼락을 맞은 적이 있나? 아님 똥벼락이 쏟아지듯 내달려서 그런가?

똥벼락님의 닉 때문에 기억나는 어릴적 우리 동네에서 있었던 똥벼락 이야기 하나. 옛날 우리 동네에선 무, 배추농사를 많이 지었는데 그때는 무, 배추 심기 전에 거름으로 인분을 많이 주었다. 지금이야 기생충 감염 우려때문에 큰일날 일이지만 그때는 모두들 그렇게 했다.

그런데 넓은 농장에 뿌릴 인분은 자체 조달이 어렵기 때문에 도시에서 푸세식 화장실에서 수거한 인분을 똥차가 와서는 밭에 소방차 물 뿌리듯 뿌려대곤 했다. 청소업체 입장에서는 도시에서 똥 푸면서 돈 받고, 시골에서 밭에 거름주며 돈 받는 이중으로 남는 장사인 셈이다.

초등학교 시절이니 삼십오륙 년이 훌쩍 넘은 그때 어느날 친구들하고 들에서 놀고 있는데, 똥차가 하나 와서 동네 아저씨 배추밭에 인분을 뿌리고 있었다. 냄새가 아주 지독했지만 놀거리가 없어 심심했던 우리는 코를 막고 소방차 물뿌리듯 쏟아지는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똥줄기가 멈추며 차 엔진 소리만 웽웽 들리는 것이다. 똥차 운전수가 호스를 두고 확인을 해보는데, 뭔가가 탱크 입구를 꽉 막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푸세식 화장실을 모두들 싸리 빗자루로 청소를 했는데, 오래되서 닳아 자그마해진 싸리 빗자루가 화장실에 빠졌다가 빨려 들어갔고 그것이 탱크 입구를 꽉 막아 버린 것이다.

사건은 이때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차 엔진을 끄고 집게를 가져온 운전수가 옆으로 비껴서서는 한 손으로 구멍에 막힌 빗자루를 빼내려고 잡아 당겼다. 그런데 인분탱크의 작은 호스구멍을 꽉 막은 빗자루가 그런 힘으로 빠질 리가 있나? 한참 애를 쓰던 운전수, 이번에는 양손으로 집게를 잡고 당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정면으로 서서 한쪽 발은 탱크에 대고 양손으로 집게를 꽉 잡고 거의 차에 매달려 빗자루를 확 잡아 당겼다.

자기 딴에는 확 잡아 당기고 옆으로 잽싸게 피한다는 생각이었겠지만, 탱크 안에 가득 찬 매탄가스 때문에 탱크내 압력이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는데 폭발하듯 쏟아지는 똥벼락을 피할 도리가 있나?

그 다음 광경은 상상초월이었다. 그건 바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똥줄기. 그걸 정면으로 뒤집어 쓰고 있는 한 사내. 으아~

처음 똥벼락님의 닉을 보고 나는 이 사람이 그 때 그 광경을 봤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삼십오륙 년 전 경상도 진주 변두리의 시골에서 있었던 일을 젊은 총각이 봤을 턱이 있나?

그건 그렇고 똥벼락님이 '두번째'로 엽기적인 닉네임이라면 '첫번째'는 과연 누구일까?
그 사람은
바로
.
.
.
우리 동네 산본에 사신다는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는...
"甲乙面竹音二里"님입니다.
난 이 분 앞에서는 절대 안 까분다.


   

# 전방에 송전탑과 산이 하나 버티고 서 있다. 

 

 

1064봉을 내려 아래로 떨어지는데 약간 터진 숲 너머로 송전탑과 산이 하나 버티고 있다. 한개고디인가 보다. 가파르게 아래로 내리는데 산죽은 끝나고 싸리나무 군락이 비탈면에 발달해 있다.


안부까지 떨어지더니 다시 산죽밭을 만나 위로 오르고, 다시 아래로 내리는데 산죽 사이로 우측으로 내려 가는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지도상 '늪목'인 듯하다. 하지만 습하고 어둡기는 해도 늪은 보이지 않는다.

두어 번 오름을 넘고 커다란 참나무가 있는 안부를 지나 위로 치고 오른다. 한바탕 찐하게 밀어 올리는데 가을이 익어가는 숲에서는 향기로운 숲내음이 가득하다. 베어진 나무에서 나는 나무 냄새도 너무 좋고...

정상 근처에서 좌측으로 우회하더니 날등으로 진행한다. 좌측 아래는 천길 낭떠리지다. 숲을 벗어나자 뙤약볕이 기다렸다는 듯이 확 덤벼 든다. 곧 커다란 '송전탑'이 나타난다.(11:42)


   

# 송전탑과 뒤로 한개고디, 일출전망대 거쳐 토산령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보인다.

 

 

송전탑을 지나면 방화선이 길게 이어지는데, 이 길은 아마 송전탑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작업도로인 것 같다. 방화선은 햇살에 노출되어 후끈한 열기가 땅에서 올라오고 있다. 오늘이 올해들어 가장 더운 날이라더니 과연 그 열기가 대단하다. 방화선 너머로 한개고디가 올려다 보인다.


                      

# 열기로 후끈한 방화선과 한개고디 가는 길.

 

 

   

# 한개고디에서 일출전망대 거쳐 토산령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나무가 베어진 안부에서 다시 숲으로 들어가 곧장 위로 치고 오른다. 아마도 이 비탈길 위가 '한개고디'인 듯하다. 도대체 이 비탈길을 언제 다 오르나? 중간에 한번 굴러서 배낭 안에 뭐가 남나 한번 볼까?

그러나 다행히 비탈의 좌측 사면으로 우회로가 있어 편하게 가게 만들어 준다. 대신 바람이 하나도 불지 않아 후끈한 열기는 여전하다. 오늘은 우측 태백쪽에서 좌측 동해쪽으로 바람이 낙동정맥을 넘어 부는데, 이런 사면이나 우측으로 꺾이는 부분에서는 바람 혜택을 볼 수 없다. 그럴 때는 후끈한 열기에 시달려야 했다.

한참을 걸어 산의 마루금에 복귀하자 비로소 바람이 반겨준다. 아이구, 좋타!. 시원타!!

잠시 날등을 바람 맞으며 가다가 다시 전방의 산은 좌측으로 우회했다. 습하고 무더워 헉헉대며 가는데, 좌측 숲 아래서 "푸르르 푸르르~~"하는 짐승의 콧김 소리가 가까이서 난다. 그러더니 우두두두 내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구 놀래라!! 나도 냅다 내 달렸다.

낙동 두 번째 만에 멧돼지를 만났다. 다행히 놈이 내 헉헉대는 숨소리를 먼저 듣고 도망치는 바람에 얼굴을 마주 대하지는 않았다. 마루금에 뛰어 올라 가면 '일출전망대'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12:20)


   

# 일출전망대 갈림길.

 

 

멧돼지 때문에 놀라 뛰어 올라 왔더니 숨이 가빠 일출전망대로 올라갈 엄두가 안 난다. 그냥 좋은 바람 다시 맞으며 진행했다. 길게 오르내리며 진행하면 전방에 산 하나 나타나지만 이번에는 우측으로 우회한다.


우측으로 우회하니 바람이 계속 불어준다. 다시 날등으로 길게 오르내리며 가는데 '토산령정상'이라 적힌 팻말이 나온다. 이른바 '가짜 토산령'이다.(12:35)
 


   

# 가짜 토산령.

 

 

이곳은 사람들이 모두들 가짜 토산령이라고 흥분하는 곳이다. 그런데 '토산령'이 아니라 '토산령 정상'이라 했으니 마냥 가짜 만은 아닌데... 그러나 토산령이 아니라 토산령 정상이라고 하기에도 토산령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기둥에 누군가 좌표를 적어 두었다. "N 37.08.10, E 129.05.49" 지도 꺼내 확인해보니 한개고디와 돌무더기 사이의 정중간쯤 되어 보인다. 우측으로 큰덕거리 통해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곳에서 자리 깔고 점심식사를 했다. 마음에 점 하나 찍고 바람이 너무 좋아 훌훌 벗어 재끼고 거풍도 즐겼다. 13:20에 출발.

출발부터 산죽밭이 이어진다. 오름 하나를 오르면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숲 너머로 검은 산줄기가 언뜻언뜻 보인다. 구랄산인가?

이 내리막만 내려 가면 토산령인줄 알았는데, 계속 오르내리라고 한다. 암봉 하나를 넘어 조금 가자 동해쪽으로 작게 트인 곳이 나오고,천길 낭떠러지로 이어진 '수직굴'이 나온다. 


계속 오르내리다 길고 가파르게 내려갔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 아래에 산죽밭 가운데 섬처럼 동그마니 떠있는 진짜 '토산령'이 나온다.(14:05)



                      

# 곧장 가슴높이의 산죽밭이 시작된다.

 

 

# 수직굴. 화장실로 쓰면 되겠다. 저 아래로 곧장 떨어지니 냄새도 안 나겠고...

 

 

# 이런 작은 조망도 오늘은 고마을 따름이다.

 

    

# 작은 공터인 토산령.

 

 

오늘 일차 목표가 이곳 토산령이었다. 여기서 우측으로 1시간여 내려가면 '태백 고원 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어떡한다?
계속 진행해 석개재까지 가느냐? 아님 이곳에서 멈추고 탈출하느냐?" 잠시 고민하였다.

점심 때까지는 전혀 힘들지가 않았고, 점심 후 여기 토산령까지 오는 40분 동안 다리가 조금 후들거리는 정도였는데 그냥 스톱하기가 조금 꺼려졌다. 나중에 다시 이곳으로 올라 오기도 만만치 않고... 에이, 그냥 가보자!

토산령을 지나자 산죽높이가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키높이로 솟아 앞을 가로막았다. 산죽을 헤치며 위로 올라가는데 점점 힘이 든다는 느낌이 왔다.

(14:29). 1,010이 찍히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갈림길'이 나온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꺾어 떨어졌다. 잠시 내려 안부에 이르더니 다시 위로 한 차례 밀어 올려 마루금을 타는데 좌측으로 트인 곳이 나와 작으나마 조망을 허락한다.


   

#  바로 앞 잘록이가 토산령이고 돌무더기, 가짜토산령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 한개고디에서 삼척으로 떨어져 내리는 산줄기.

 

 

잠시 진행하면 등로 우측에 텐트 한 동 칠 정도의 작은 공터가 나온다. 바람을 많이 탈것 같아 좋은 장소는 아니다. 계속 진행하는데, 면산 오름이 무시무시하다는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많이 본지라 잔뜩 긴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구랄산조차 한 번에 정상을 허락하지 않고 모두 세 개의 봉우리를 넘고 나서야 짙은 수풀 속에 갇힌 좁은 정상을 보여 준다. '구랄산' (15:00)



#  구랄산 정상.

 

 

아이고~ 힘들다!! 구랄산, 이거 완전히 구라치는 '구라산'이구만!! 오늘 내 고도계는 너무나 정확하다. 구랄산이 1071.5m 인데 1070을 딱 찍어 준다.

구랄산을 지나 이제부터 본격적인 면산 오름이 시작된다. 면산 정상까지는 모두 7개의 큰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는데... 구랄산 오르는 도중에 갑자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걱정이다. 아마도 지난 1년여 동안 채식만 했더니 지구력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토산령까지는 컨디션이 너무나 좋았었는데...

구랄산에서 가파르게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데 전방 좌측 숲 너머로 엄청난 산 하나가 떡 버티고 서 있다. 보기만 해도 질리는데, 문제는 저 산이 면산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970까지 고도를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고도 100m를 까먹었다. 그러나 곧 위로 치고 올라 까먹은 고도 100m를 모두 회복하고 1090이 찍히는 봉우리에 올라 섰다. '면산 전 1봉'이다.(15:31)

갈림길이 있는데 직진하여 다시 떨어져 내린다. 950까지 고도를 다시 까먹고 갈림길이 있는 안부를 지나고, 작은 봉우리 하나는 우회했다. 그래서 면산 전위봉 세는 것에는 생략했다. 다시 오름에 붙어 위로 밀어 올리는데 발이 천근만근이라 잘 떨어지질 않았다.


갑자기 이렇게 체력이 떨어지다니 오늘 남은 구간이 걱정이다. 숨이 가쁘거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데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사점(死點)이 온 것이다. 겨우겨우 980이 찍히는 '2봉'에 올랐니다.(15:49)

이후 사진을 찍을 엄두도 안나고 주변 돌아볼 생각도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그러나 가다쉬다 가다쉬다를 반복했다. 쉴때마다 물을 마셔 물 소비도 많고 배도 출렁거린다. "내가 이 산길을 왜 걷고 있나?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 죽을 고생을 하고 있나?" 힘이 너무나 드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일단 지금은 걸어야 한다. 걷다 쉬다를 반복할 지언정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한다. 걷자, 걷자!"

'3봉' 1090m. 16:14
'4봉' 1175m. 16:35
'5봉' 1195m. 16:57

여섯 번째 봉우리를 오르다 너무 힘이 들어 배낭 벗고 간식 먹으며 쉬고 있는데 해리님과 대명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여기 전화가 터지네? 내 상태 이야기를 듣더니 걱정을 많이들 했다. 나중에 들으니 119를 부를까 고민했단다.

다시 배낭 둘러 매고 위로 낑낑 올라갔다. 숫자세기에 집중하자! 하나 둘, 헉헉, 셋 넷, 낑낑... 그렇게 발을 질질 끌며 오르다 보니 하늘이 뻥 뚤리며 드디어 '면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여섯 번째 봉우리다.(17:12)


   

# 면산 정상석. 저것 끌어 안고 가슴으로 울었다.

 

 

# 갈림길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올라왔건만 면산 정상은 조망이 뛰어나거나 대단한 감흥을 주는 곳은 아니다. 그냥 악명 높게 힘들기만 한 산이다. 아직까지는. 나중에 이 산을 좀 더 탐구하면 진면목을 알 수 있겠지. 다만 지금까지의 내가 겪은 면산은 높이가 1245.2m로 낙동정맥의 많은 산들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는 산기도 하고.

정상석 끌어 안고 기도했다. "그대, 왜 이리 나를 힘들게 했습니까? 그렇지만 무사히 올라 오게 해 줘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원래 이 시각쯤에 석개재에 내려설 생각이었는데, 체력 고갈로 이제서야 면산 정상이니 갈길이 걱정이다. 이마에 불 밝히는 불상사는 없어야 할텐데...


휴식 취하느라 지금이 17:30이고 지도에는 석개재까지 2시간 10분을 예상하니 19:40 이 되어서야 석개재에 내려설 수 있다. 그럼 영락없이 산 속에서 어둠을 맞이해야 한다, 얼른 출발하자!!


   


# 숲 너머로 면산이 올려다 보인다.


 


(17:30). 면산 정상을 지나 아래로 내렸다. 정상에는 갈림길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한데 우측은 삼방산으로 가는 길이고,정맥은 직진하면 된다.

드넓은 산죽밭 사이로 내려 간다. 고요한 숲속에 산죽헤치고 전진하는 소리만 쏴르르 쏴르르 들린다. 면산을 넘었다 생각하니 힘이 다시 솟구쳐서 발걸음을 최대한 빨리 하며 내달렸다. 어느새 산그림자가 길어져 나보다 저 만치 앞서 가고 있다.

마음 급해 뛰다시피 달려 갔다. 그러나 이 길은 마냥 내려 가는 것만 아니라 오르락 내리락 한다. 오르막을 만나면 다리가 다시 아프지만 면산 오를 때와는 사정이 다르다. 간혹 산의 사면을 우회하기도 하고 길게 오르락 내리락 하더니 갑자기 아래로 급하게 떨어져 내린다. 건너편에 높은 산 하나가 버티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냥 보내 주질 않는군! 그나마도 그 봉우리를 한번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삼중으로 계단식으로 올라야 한다. 대단하다, 오늘 구간!! 얼라? 그런데 여기가 아까 본 그 봉우리의 정상이 아니네?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 안부를 만난다. 우측 아래는 너뱅이라 부르는 '광평'이다.

낙엽송 군락이 길게 이어지고 다시 위로 밀어 올린다. 하지만 정상은 저 뒤로 물러 서 버린다. 왜 그러냐??? 3봉은 넘고 4, 5봉은 다행히 우회한다. 6봉은 낑낑 올라 가는데 이 넘도 정상이 아니다. 뭐 이렇냐?


세기도 귀찮아 포기하고 가는데 키보다 높은 산죽밭을 실컷 헤엄치게 만들더니 7봉인지 8봉인지 헷갈리는 봉우리가 정상이다.(18:49).

아무 볼품이 없고 삼각점도 없어 이상하다 싶어 고도계 확인하니 1,000이 나온다. 아이고, 미치겠구나! 그렇다면 다시 1009.3봉을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아니나 다를까, 건너편에 높은 봉우리 하나가 더 버티고 서 있다. "이런~~ 제길슨!!!"

정상에서 급하게 떨어져 내렸다. 산의 안부 널따란 평지를 가로질러 가더니 위로 치고 오른다. "틀림없이 이곳도 한 번에 정상이 나오지는 않을꺼야!" 역시나 이곳도 봉우리 세 개를 넘어야 정상을 보여 준다. '1009.3봉' (19:11).

손바닥만한 정상에 삼각점이 수풀 속에 설치되어 있다. 이제는 정말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가파르게 아래로 내려 숲을 벗어 나니 그렇게 멀고 멀었던 석개재에 내려섰다.(19:20)


   

# 마지막 등로엔 산죽밭이 계속 이어진다.

 

     

# 끝까지 진을 빼게 만든 1009.3봉.

 

   

# 너무나 힘들게 도착한 석개재.

 


열 시간을 예상했었는데, 열두 시간 이십 분이 걸려서야 석개재에 내려 설 수 있었다. 그러나 면산에서 석개재까지 지도에는 두 시간 십 분이라 적혀 있지만, 지친 몸으로도 한 시간 사십 분 만에 내 달렸다. 덕분에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 올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낙동의 천지신명이시여!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천지신명께 올리는 감사 인사가 절로 나온다.

석개재엔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어 땀이 금방 다 식어버린다. 석포리의 이학형기사(011-538-6272)에게 전화 걸어 통리로 돌아와 차량회수했다. 목이 너무 말라 오시는 길에 물 좀 가져다 달랬더니 자기 집 냉장고에 넣어둔 차가운 음료를 가져다 주셨다. 감사한 분이다. 석개재에서 통리까지는 택시로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택시비 30,000원)

원래 오늘 계획은 석개재까지 낙동 한 구간하고 영월 동강으로 가서 견지낚시 동호회 정기 공동출조에 참석하려고 했었는데 산속에서 너무 고생을 해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미안합니다, 낚시꾼 동지들, 다음에 이 빚을 갚지요!"

통리에서 차량 회수해서 고속도로로 올라 오는데,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휴게소에 들러 차박하고 뒷날 아침에야 집에 돌아왔다. 너무너무 힘이 들었지만 무사히 면산을 넘었다는 기쁨에 뿌듯하였다. 그렇지만, 정말 대단타! 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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