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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그 첫걸음(칠장산~옥정현)-다시 선 칠장산! 금북(錦北)의 시작! 본문

1대간 9정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그 첫걸음(칠장산~옥정현)-다시 선 칠장산! 금북(錦北)의 시작!

강/사/랑 2007. 8. 21. 16:39
 [금북정맥]그 첫걸음(칠장산~옥정현)

 


백두산에서 몸을 일으킨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남으로 내달리며 1개의 정간(正幹)과 13개의 정맥(正脈)으로 가지를 내 뻗어 한반도를 지탱하는 뼈대를 이루고 있다. 척추와 뼈대 굳건하여 오천 년 역사가 그 산하에서 면면(綿綿)하였다. 그러나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 산길을 가로막아 현재 우리가 갈 수 있는 남녘 땅의 정맥은 모두 아홉 개다.

남으로 내려오던 백두대간은 이북 땅 추가령(楸哥嶺)에서 가지를 하나 뻗어 한수(漢水)의 이북(以北)를 감싸는 '한북정맥'을 이루고,
아래로 더 내려 태백에서 곧장 아래로 뻗는 '낙동정맥'을 가지 쳐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까지 뻗어 내리게 한다.

태백에서 내륙 쪽으로 몸을 튼 백두대간은 소백을 넘어 속리(俗離)에서 다시 서해 쪽으로 긴 가지 하나를 뻗었다. 이것이 '한남금북정맥'인데, 이 정맥은 홀몸이 아니라 충청도를 지나 경기도 안성땅 칠장산(七長山)에서 갈래를 쳐 두 개로 나누어진다.

그중 하나는 '한남정맥(漢南正脈)'이다. 이 산줄기는 한수(漢水)의 이남(以南)을 감싸며 경기도 땅을 가로질러 가서 김포 문수산(文殊山)에서 서해바다로 잠긴다. 다른 하나는 곧장 충청도 땅으로 들어가 금강 이북을 따라 태안반도 안흥진(安興津)에서 서해로 스며들게 된다. 그것이 '금북정맥(錦北正脈)'이다.

그 아홉 개의 정맥 중 한남정맥은 2006년에 백두대간보다 먼저 졸업을 했고, 한북정맥은 우여곡절 끝에 올해 7월에 완주를 했다. 그럭저럭 두 개의 정맥은 마친 셈이다.

처음 백두대간을 마치고 다른 정맥은 하지 않더라도 낙동정맥만은 꼭 하겠노라 다짐을 했기에 지난달에 일단 그 정맥에 발을 들여놓기는 했다. 낙동정맥은 우리가 예전에 태백산맥으로 알고 있던 한반도의 중추적 산줄기다. 그 상징성이 큰 탓에 정맥 종주를 한다면 꼭 낙동만은 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낙동은 우선 접근 거리가 너무 멀고 워낙 오지라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대처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쉽게 다음 구간을 이어 가지를 못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장마 끝난 이후에 계속 주말마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어 더욱 낙동길을 나서기 어렵다.

결국, 맨 먼저 끝낸 한남정맥과의 연결 문제도 있고, 집에서 가까워 접근이 쉬운 데다 중간중간 고개가 많아 짧게 끊기가 쉬운 금북정맥을 낙동과 병행해서 하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대간 졸업하면서 낙동은 마눌과 꼭 같이 하기로 했는데, 요즘 마눌이 산보다는 신앙생활에 푹 빠져 있는 지라 마눌을 낙동으로 인도하기 위한 시간과 전략이 필요하다.

좋아, 금북아!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그대와 사랑에 한번 빠져 보자!!



다시 선 칠장산! 금북(錦北)의 시작!


구간 : 금북정맥 제 1구간(칠장사~옥정현)
거리 : 구간거리(11.8 km), 누적거리(11.8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7월 30일. 달의 날.
세부내용 :
칠장사(10:50) ~ 삼정맥 분기점 ~ 헬기장 ~ 칠장산(11:35) ~ 헬기장/삼정맥 분기점 ~ 헬기장 ~ 중현/부부탑 칠순비(12:17) ~ 칠현산(12:56)/점심 후 13:40 出 ~ 곰림 정상 ~ 덕성산갈림길(14:20) ~ 454.9봉(15:20) ~ 무티고개 ~ 사장골 정상(16:14) ~ 소나무와 바위 있는 무명봉 ~ 무이산 갈림길 ~ 만디고개 ~ 고라니봉 ~ 우회로 ~ 옥정재(18:20).

총 소요시간 7시간 30분.  만보계 기준 17,600보.


7월 30일. 달의 날. 여름휴가 삼 일째 되는 날이다. 여느 해 같으면 바닷가나 계곡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이지만, 올해는 다른 형제들과 스케줄이 맞지 않아 주 중에 약속이 잡혀 있다. 게다가 휴가가 시작되는 토, 일요일엔 내도록 주룩주룩 비가 내려 낙동길도 막아버렸다.

주말 이틀 동안 비를 뿌리던 하늘이 오늘은 잠깐 눈물을 멈추고 나들이를 허락한다. 한남, 한북처럼 금북도 일단은 아침에 느긋하게 출발해도 좋다.

여유 부리며 할 일 모두 다 하고 출발하며 고속도로 정보 확인하니 전국 모든 고속도로는 휴가 차량으로 주차장이 되어 있다. 결국, 국도를 빙빙 돌아 칠장사로 접근했다. 


용인에서 죽산으로 넘어가며 고개 하나를 넘는데, 안면이 많아 확인하니 마침 한남정맥 마지막 구간의 들머리인 두창리 고개다. 오늘 한남 마지막 구간의 들머리와 날머리 모두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금북정맥/錦北正脈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七長山:492m)에서 태안반도(泰安半島)의 안흥진(安興鎭)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 길이는 약 240km이며,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이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의 끝인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칠현산(七賢山:516m)·청룡산(靑龍山:400m)·성거산(聖居山:579m)·차령(車嶺)·광덕산(廣德山:699m)·차유령(車踰嶺)·국사봉(國師峰) 등 충남을 가로질러 청양의 백월산(白月山:395m)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서북으로 뻗어 오서산(烏棲山:790m)·보개산(寶蓋山:274m)·월산(月山:395m)·수덕산(修德山:495m)·가야산(678m)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팔봉산(362m)·백화산(白華山:284m)·지령산(知靈山:218m)·안흥진으로 이어진다.

칠장사/七長寺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사찰. 경기문화재자료 제24호.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10세기 경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1014년(현종 5)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건했다는 설이 있다. 사찰의 이름은 혜소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고려시대 1383년(우왕 9)에 충주 개천사에 있던 고려역대실록을 이곳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389년(공양왕 1)에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된 것을 조선시대 1506년(중종 1)에 흥정이 중건했다. 대웅전, 사천왕문, 원통문, 명부전, 나한전 등을 비롯하여 12동의 건물이 있으며, 혜소국사탑, 탑비, 철제당간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혜소국사는 속성은 이씨이며 이름은 정현인데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 때 광교사 총회에게서 구법하고 17세에 영통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28세에 왕명에 의하여 대사가 되었으며, 칠현산에서 아란탑(阿蘭塔)을 세워 홍제관이라 하고 좌선하였다. 1054년 83세로 입적했다.

칠현산/七賢山

높이는 516 m이다. 덕성산, 칠현산, 칠장산 세 산은 능선상으로 바로 이웃하여 연결되어 있어 세 산을 이어 종주할 수도 있는 산이다. 이곳은 산을 즐겨찾는 메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호젓한 산으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산은 아니다. 칠현산, 칠장산은 걸미 삼거리에서 신대 마을로 들어가는 도중에 우측으로 지름길이 있어 이용할수 있으며, 신대마을에서 칠장사까지는 약 40분이 소요된다. 커다란 노송이 있는 원효암에서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칠현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정상에서 칠장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산죽과 수림이 연이어진 한적한 길이며, 도중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조금 내려가면 고찰 칠장사가 위치하고 있다. 절간 서쪽 능선을 통해 오른 칠장산에서는 북쪽 관해봉으로 가는 길이고, 서쪽 능선으로 내려가다 십자로에서 북쪽 길로 가면 신미 마을로 내려가게 된다. 신미 마을에서 서쪽 국도에 나가면 안성행 버스가 수시로 있고 20여 분이 소요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금북정맥 제 1구간 칠장산~옥정현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2006년 6월 6일. 한남정맥 졸업하면서 내려섰던 칠장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한남 졸업하던 날 버스가 끊겨 주차장에 있는 가겟집 주인이 자가용 알바를 했었는데, 오늘은 외출했는지 보이질 않는다. 짐 챙겨 칠장사 안으로 올라갔다.(10:50)

 



# 칠장사 철제당간.

 

 

 

# 칠장사 일주문.

 

 

 

# 범종각과 안양루(安養樓). 안양은 극락정토를 의미한다.

 

 

 

# 혜소국사비. 임진왜란 때 왜놈 장수인 가토 키요마사가 이 절에 왔는데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어 베었다고 한다. 그런데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려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단다. 비석 가운데가 갈라져 있는 것이 그 흔적이다. 이상 전설따라 삼천리~~~

 

 

 

한남정맥 졸업 때 내려왔던 칠장사 뒤 등로 입구에 신고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가파른 산죽길이 길게 이어진다. 기온이 높고 습도까지 덩달아 높아 아주 후덥지근 하다. 기상청에서는 오늘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를 발령했다. 금방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다.

계속 낑낑 올라 몸이 부드러워질 무렵 능선에 오르게 되고 이곳이 '칠현산 갈림길'이다. 여기서부터 좌측으로 가면 금북정맥 길이 시작되지만 일단 칠장산 정상에 올라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

잠시 위로 올라가면 '삼정맥 분기점'이라 팻말과 표지석을 세워둔 곳이 나온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팻말 한번 어루만져 주고 칠장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칠장산이라 적힌 정상석을 가진 헬기장이 나온다.

막상 칠장산 정상은 조망이 전혀 없고 이곳 헬기장에 서야 이곳저곳 조망을 허락한다. 그러나 오늘은 개스가 많아 금북쪽 조망이 명쾌하지는 않다. 잠시 조망 감상하다가 잡목터널을 헤치고 올라가면 잡목 속에 푹 파묻힌 칠장산 정상에 선다. 11:35

 


# 한남정맥 이후 다시 만난 삼정맥 분기점.
 

 

 

 

# 정상석이 있는 헬기장.

 

 

 

# 가야 할 금북정맥의 능선. 저 멀리 칠현산이 보인다.

 

 

 

# 1년 만에 다시 선 칠장산 정상.

 

 

 

칠장산 정상은 역시나 조망이 전혀 없다. 그래도 1년 만에 다시 서니 감개가 무량하다. 정상석 한번 만지고 주변을 돌아 보는데 작년 한남 졸업하면서 매달아 둔 내 표지기가 벌써 빛이 바래서 희미하게 되어 있다.

자연에 해를 되도록이면 적게 끼칠려고 너무 튼튼하지 않은 걸로 제작했더니 아주 확실하게 비바람에 풍화가 되어 있다. 그래도 1년 만에 이렇게나 빛이 바래다니 쬐끔 서운한데... 천지신명께 금북정맥의 출발을 고하고 무사종주를 기원하며 새 표지기 하나를 옆에다 매단다.

이곳 칠장산이 삼정맥의 분기점이니 다음 번 한남금북정맥 졸업하면서 표지기 하나 더 매달면 나란한 세 개의 표지기에서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겠다 싶다.

 

 


# 1년 만에 빛이 바래 희미해진 한남정맥 때의 표지기와 금북 출발 기념 표지기. 이곳은 세 개의 정맥이 분기하는 곳이니 최종적으로 세 개의 표지기가 달리게 될 것이다. 호빈님은 찬조 출연.

 

 

 

호흡 한번 크게 가다듬고 본격적인 금북정맥 종주의 발걸음을 내 딛는다. 헬기장, 삼정맥 분기점을 다시 지나고 칠장사 갈림길에 복귀했다. 이제부터는 처음 가는 길이 시작된다.

 

편안하게 가다가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서너 개 오르내리다 다시 위로 조금 올리면 헬기장이 다시 나타난다.(12:08)

 


# 등골나물.

 

 

 

# 싸리버섯.

 

 

 

# 맥문동. 소염, 강장, 진해, 거담, 강심제로 쓴다.

 

 

 

# 큰애기나리. 이 넘의 뿌리는 폐결핵, 대장출혈, 치질 등에 좋다.

 

 

 

# 슬픈 전설을 가진 꽃며느리밥풀꽃.

 

 

 

# 산죽들이 꽃을 피우곤 모두 말라 죽어 버렸다.

 

 

 

# 막바지에 이른 원추리.

 

 

 

# 이끼 종류인지 버섯인지 잘 모르겠지만 색이 너무 이뻤다.

 

 

 

# 영지버섯.

 

 

 

# 누리장 나무. 오늘 구간의 대세이다.

 

 

 

# 향기가 아주 강렬했다.

 

 

 

# 송장풀.

 

 

 

# 흰여로.

 

 

 

# 햇살 강렬한 헬기장.

 

 

 

헬기장을 나와 아래로 계속 내린다. 지도 확인하니 등고선이 길게 굽이쳐 안부를 이루도록 되어 있다. 길게 내려 '중고개(中峴)'에 이른다.(12:17)

중고개엔 돌로 쌓은 '부부탑 칠순비'가 세워져 있다. 광혜원에 사시는 김성기, 임경순 노부부께서 칠순 기념으로 쌓은 모양이다. 돌 하나하나에 두 노부부의 칠십 평생과 같이 보냈을 50여 년의 세월이 느껴진다. 칠순을 이렇게 기념한다는 것도 참 의미가 있다 싶다. 그냥 자손들이 보내 주는 여행이나 다녀오고 부페에서 음식 먹고 노는 것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마눌에게 알려 주고 우리도 본 받자고 얘기해 줘야지! 그러자면 건강하고 아름답게 잘 늙어 가야 한다! 돌 하나 보태서 두 분의 백년해로를 기원해 드리고 다시 출발했다.

 


# 부부탑 칠순비.

 

 

 

중고개는 고도가 390이 나와서 칠현산까지는 고도를 126m나 올려야 한다. 힘 좀 들겠군! 각오하고 오르는데 의외로 완만하게 고도를 높인다.

길게 조금씩 고도를 높여 가며 좋다고 희희낙낙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럼 그렇지, 명색이 오늘 구간 최고봉인데? 헉헉 소리가 절로 난다. 이 구간엔 바람 한점 불지 않고 푹푹 찌기만 한다. 계속 쉬면서 심박을 조절하며 올라 갔다.

빡세게 한차례 밀어 올리지만 봉우리를 이루지 않고 그 각도대로 밋밋하게 가다가 조금 위로 오르자 '칠현산 정상'이 나온다.(12:56)

 


# 자기 사랑에 빠져 중간에 한몸이 되어 버린 나무.

 

 

 

# 칠현산 정상. 술 없는 제(祭)를 올렸다.

 

 

 

칠현산 정상은 제법 널찍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높이가 516.2m인데 고도계 확인하니 515로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칠현산 정상석 앞에 술 빠진 간이 산신제를 지내고 자리 깔고 마음에 점 하나를 찍었다.


그런데 이곳은 모기가 너무너무 많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모기가 얼굴이며 팔다리에 까맣게 내려 앉았다. 밥 한 숟갈 먹고 모자 휘둘러 모기 한번 내쫓고를 반복해야 한다.

워낙 무덥고 습도가 높아 점심 후에 한잠 자고 갔으면 하는 맘 굴뚝같지만 모기들 등쌀에 불가능하다. 그래도 한시간 가까이 모기 쫓아가며 쉰 후 13:40에 출발했다.

그런데 칠현산 정상부터 덤벼들기 시작한 모기떼들이 끝도 없이 덤벼 든다. 그동안 산행하면서 모기나 날파리들 때문에 고생한 적이 많지만 이렇게 극성스런 놈들은 또 처음이다. 아무리 내 쫓아도 그때 뿐이고 눈 속으로 입 속으로 귀 속으로 마구 파고 든다.

이대로는 도저히 않되겠다 싶어 나뭇가지를 꺾어 모자 양쪽에 꽂아 방어막을 쳤다. 아, 그랬더니 모기들이 나뭇잎에 걸려 비행하기가 어려워 그런지 더이상 접근을 못하고 일정 거리 밖에서 윙윙 거리기만 한다.

 

 


#  모기떼 퇴치에 아주 효과적이다. 남들이 보면 무장공비인줄 알겠지만...

 

 

 

 

무장공비 복장으로 위장하고 가자니 처음에는 나뭇잎이 시야를 방해하지만, 사람이란 동물이 원래 적응하는 데는 천하제일이라 금방 익숙해진다.

편하게 가다가 잠시 위로 올라 '곰림정상'에 이른다.(13:50)

 


#  곰림정상.

 

 

 

누군가 자연석을 세워두고 흰페인트로 '곰림정상'이라고 적어 두었다. 좌측 아래 광혜원쪽에 '곰내미'란 마을이 있는 걸로 봐서 곰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동네인가 보다. 곰림정상이란 지명도 이 마을 사람들의 구전일 것이다.

우측으로 꺾여 떨어져 내렸다가 길게 오르내리며 진행하는데 전체적으로는 고도를 낮춰가는 형국이다. 길게 가다가 안부에 이르고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고도를 올린다.

 

숲이 우거져 뙤약볕은 면하는데 대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게다가 습도까지 높으니 엄청나게 무덥다.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그렇게 길게 위로 올려 '덕성산 갈림길'에 도달했다.(14:20)

 



#  덕성산 갈림길.

 

 

 

갈림길엔 이정목이 서 있는데 직진 방향은 '병무관', 우측은 '무술마을'이라 적혀 있다. 兵武館은 광혜원 구암리에 있는 마을인데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화랑도를 훈련시키기 위해 지었던 집이 있던 곳이라 '병무관'이라 한다.

무술마을은 한자로 '무수(無愁)마을'이라고 한다. 없을 '無 자'와 근심 '愁 자'를 써서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아무 근심없이 피란하였던 고장이다. 또 한편으론 호반 '武 자'와 재주 '術 자'를 써서 병무관처럼 옛날 이곳에서 무예(武藝)를 닦던 곳이라 얻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양 방향 모두에 표지기가 매달려 있는데 정맥길은 무술마을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잠시 아래로 떨어졌다가 봉우리 두 개를 연속으로 넘고 길게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 방향에 표지기들이 매달려 있는데, 좌측 방향은 아마도 무술마을로 내려가는 길인가 보다. 우측으로 급하게 떨어져 길게 내렸다가 안부에 이르러 오르내리며 길게 진행했다. 무더워 땀이 비오듯 하는데 모기떼들이 아우성을 치며 덤벼들지만 방어막 때문에 얼굴에 내려 앉지는 못하고 왱왱 소리만 내지른다.

오늘 구간은 가파르게 오르거나 내리는 것은 없지만 길게 진행하며 잔 펀치를 계속 날린다. 평소에는 별로 어려울 것이 없는 구간이겠지만 오늘처럼 무덥고 바람 한점 없는 날엔 너무나 힘이 드는 구간이다.

잔 펀치만 계속 날리던 정맥길은 이번엔 제대로 길게 한 펀치 날린다. 낑낑 대며 올라가니 '갈림길이 있는 무명봉'이 하나 나온다. 우측 하산길에도 표지기 두 개가 매달려 있지만 정맥길은 직진이다. 다시 숏펀치 맞아 휘청대며 올라 서니 삼각점이 있는 '454.9봉'이 나온다.(15:20)

이곳 역시 조망도 바람도 없는 곳이다. 바로 뒤에 또 '갈림길이 있는 무명봉'이 나와 좌측길로 갔다. 이후 계속 잔 펀치를 두세 차례 날리더니 아래로 급격히 떨어져 내린다. 제대로 된 주먹 하나 날리려나? (15:50). 돌탑이 있는 '무티고개'에 도착했다.

 



# 두 번째 부부탑이 있는 무티고개.

 

 

 

무티(無峙,武峙)는 충청도 무술마을에서 경기도 옥정마을로 넘어 가는 옛고갯길이다. 지금은 다니는 사람없어 낙엽에 파묻혀 잊혀진 고개다.

가파르게 내려 온 것을 감안해 깊숙하게 내 뻗는 스트레이트 한 방을 기대하며 고개 건너 오름에 붙는데, 의외로 짧은 펀치 하나 날리고 한참 뜸을 들인다. 괜한 걱정을 했나 할쯤에 제대로 된 어퍼컷 한 방을 쳐 올린다. 아이고~~ 헉헉대며 오른 어퍼컷의 끝은 '사장골 정상'이다.(16:14)

 


# 사장골 정상.

 

 

 

이 산 아래 골이 사장골이고 더 내려가면 병무관으로 연결된다. 정상 너머 길게 내렸다가 다시 위로 길게 올라 봉우리 하나를 헉헉대며 넘고, 다시 위로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면 '소나무와 바위가 있는 무명봉'이 나온다.

 

잠시 한숨 돌리고 아래로 깊숙히 떨어져 내렸다가 무명봉 하나를 힘겹게 밀어 올리는데 뒷쪽에 제대로 된 산 하나가 버티고 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름에 붙는데 다행히 산의 사면을 따라 우측으로 우회하게 한다. 아마도 '무이산 갈림길'인가 보다.

우회가 끝나면 산마루금 날등을 타고 고도를 낮춘다. 등로 좌우는 깎아 지른 비탈길이다. 보통 이런 지형에서는 바람이 추울 정도로 비탈 사면을 타고 불어오기 마련인데, 오늘은 완전 무풍지대(無風地帶)이다. 덥다, 더워!! 아래로 내려가자 세 번째 돌탑이 있는 '만디고개'가 나온다.(16:58)

 



# 소나무와 바위가 있는 무명봉.

 

 

 

# 만디고개.

 

 

 

경상도 방언으로 산꼭대기를 뜻하는 '산만디'에서 따온 이름인가? 아님 뙤놈들 성격처럼 '만만디'여서 얻은 이름인가?

충청도 땅에 경상도 이름을 지을 리도 없고, 뙤놈들 성질머리를 빌려 올 일도 없지만 만디란 이름의 유래는 알길 없다. 단지 낙엽 무성하고 잡목 우거져 고개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칠순을 아름답게 기념하는 노부부의 사랑 만이 남아 있다.

이후 무명봉을 하나, 둘, 셋 연이어 넘는데 공통적으로 조망도 바람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모든 봉우리에 갈림길이 있어 헷갈릴만 하지만 표지기를 따르면 문제없다. 희미한 옛고개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낑낑 오르는데 하루종일 땀을 너무 많이 흘렸더니 발이 천근만근이다.

짙은 색의 뱀 한마리가 발 바로 앞에서 등로를 가로질러 풀숲으로 들어간다. 빨리 걸었으면 밟을 뻔했다. 17:40. 435가 찍히는 봉우리에 오르는데 역시 갈림길이 있고, 조망, 바람은 없다. 쓰러진 나무로 벤치를 만들어 두었다. 이곳이 '고라니봉'인가?

 



# 여치 한마리 발길을 멈추게 한다.

 

 

 

# 고라니봉(?)

 

 

 

가파르게 아래로 내려 안부에 이르러 작은 봉우리 두 개를 넘으면 이제는 길게 내려간다. 전방에 차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옥정고개가 바로 코앞이다.

그러더니 직진 능선을 버리고 우측으로 우회하게 길이 나 있다. 직진이 가팔라서 우회시키는가? 그런데 우회길은 곧바로 엄청나게 가파르고 미끄러운 하산길로 변해 버린다. 아니, 우회길이 이렇게 가파르고 위험한데 왜 이 길로 우회시킬까? 직진은 더 위험한가?

스틱에 의지해서 조심조심 내려가는데 몇 번이나 휘청 휘청하게 된다. 충분히 아래로 떨어져 내리더니 이번에는 빙 돌아 위로 올라 가게 한다.

18:00. '옥정현'에 올라 선다.

 



# 충북의 마스코트인 고드미와 바르미가 서 있는 옥정고개.

 

 


옥정현은 아래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에 있는 옥정리(玉井里)에서 따온 이름이다. '옥정'이란 이름은 옛날 진천 장꾼들이 안성장에 갈때 주막집 우물물의 맛이 좋다 해서 붙힌 이름이라 한다.

옥정고개를 오르내리며 보니까 구불구불 어찌나 멀고 험하든지 강원도 고갯길에 못지 않아 과연 옛날에 장꾼들이 저 고개를 걸어서 넘어 갈려면 엄청나게 땀 꽤나 빼야 가능했겠다. 그렇다면 목마른 그들에게 왠만한 우물물은 꿀맛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원래 계획은 배티재까지 가보려고 했지만 휴가철 교통체증 때문에 출발이 너무 늦었고, 폭염주의보 속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 더이상은 무리다.

그런데 옥정고개는 경기도와 충청도를 잇는 주요 고개중 하나라 차량통행은 많은데 대중교통은 전혀 없다. 고개 이쪽 저쪽을 넘는 차들에게 손을 들어 보지만 30여 분 동안 차 백 대는 지났겠건만 한 대도 세워 주질 않는다. 거참, 인심 한번....

그러다 안성 쪽으로 넘어가는 승용차 한 대를 겨우 얻어 탈 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고개 아래 금광면까지만 간단다. 금광면에서 버스 타고 안성으로 가서 안성에서 다시 버스 타고 삼죽면으로, 거기서 택시 타고 칠장사로 돌아가서 차량회수 했다.

낙동길 멀어 못가고 만만하게 덤벼든 금북인데, 정맥이란 이름을 거저 얻은 것이 아니란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준 구간이었다. 그러나 걱정은 안한다. 한걸음 한걸음 느림보 걸음으로, 솔방솔방 산 이야기 동네 이야기 더듬으며 가다보면 어느날 안흥 바다 푸른 물에 손 담글 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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