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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세번째(배티고개~우물목고개)-차령산맥은 없다! 본문

1대간 9정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세번째(배티고개~우물목고개)-차령산맥은 없다!

강/사/랑 2007. 8. 27. 23:20
 [금북정맥]세번째(배티고개~우물목고개)


  
차령산맥 (車嶺山脈)

태백산맥의 오대산(五臺山)에서 갈라져서 충북의 북부, 충남의 중앙을 남서 방향으로 뻗은 산맥. 길이 250 km. 평균고도 600 m. 마식령(馬息嶺)·광주(廣州)·소백(小白)·노령(蘆嶺)산맥 등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중생대 말의 습곡산맥으로 편마암과 화강암으로 구성된 구릉성 산지이다.
또 차령산맥은 최한월(最寒月) 평균기온 -3 ℃의 등온선과 일치하여 한국의 기후구를 남부의 온대와 북부의 냉대로 크게 구분하는 경계가 되고 있다. 산맥 중에는 차령·백운산(白雲山)·만뢰산(萬山)·칠갑산(七甲山)·금계산(金鷄山)·서운산 (瑞雲山) 등이 솟아 있고 금·은·중석 등이 매장되어 있다. 특히 칠갑산을 중심으로 한 일대는 경치가 아름다워 1973년 충남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위 글은 '차령산맥(車嶺山脈)'에 대한 백과사전의 설명이다.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2차 산맥이고, 오대산에서 시작되어 경기도와 충청도를 남서 방향으로 뻗어 보령, 서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백과사전의 기록이니 학계, 업계 등 사회 전반의 표준(標準)이 되었다. 옛날 지리 시간에 "차령산맥이 대나무의 북방한계선(北方限界線)이다." 등등을 외운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 차령산맥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산맥이다. 우리나라의 산맥 개념은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라는 왜인(倭人) 학자에 의해 정립되었다. 고토 분지로는 왜국 메이지(明治) 시대의 대표적 지질학자(地質學者)이다. 1856년 왜국 시마네현(縣) 출신으로 독일 라이프치히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유학하였고 도쿄 제국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고토 분지로가 우리나라 산맥(山脈) 개념을 완성한 것은 1901년의 일이다. 지원팀은 망아지 네 마리 분량의 짐과 여섯 명의 인부가 전부였다. 그 팀을 이끌고 일 년 두 달 간의 답사 끝에 우리나라의 산맥(山脈) 개념을 완성하였다. 삼천리 우리 강산을 망아지 끌고 일 년 만에 태백산맥, 소백산맥, 낭림산맥, 차령산맥 등 14개의 산맥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교통 환경 열악했던 시절에 한반도의 전역을 매일 5리를 걸어 266일 동안 1,575리를 답파(踏破)하였고, 두 차례 겨울을 나면서 한반도를 양쪽 해안까지 동서로 여러 차례 왕복하였으니 그의 학문적 노력과 열정은 인정할 만 하다. 그의 그런 열정적 노력은 '조선산악론(朝鮮山岳論)'으로 결실을 맺었는데, 그 결과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한국의 산맥 개념이다.

1903년이면 일본이 한창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고 음모를 진행하던 시절이다. 이것으로 그의 연구 목적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자명해진다. 조사 내용을 보면 우리 산맥의 구분을 산줄기의 흐름이나 물줄기와의 조화(調和)로 따지지 않고 지질학적 바탕으로 다루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자원(資原)과 이 나라 강산을 강탈하기 위한 사전 조사의 목적이 컷을 것이다.


또 고토분지로는 우리 국토의 외형이 토끼와 흡사하다고 표현하였는데, 이런 그의 주장에 대해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직접 호랑이 그림을 그려서 반박하였다 전해진다. 여러가지로 고토의 연구 목적이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차령산맥이란 개념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도 나오지 않는 개념인데, 고토 분지로는 땅속의 지질학적 연속성만 따져 산맥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최근 KBS에서 항공 촬영을 한 결과 차령산맥은 치악산을 지나면서 맥이 끊기고, 남한강에 막혀 그 여맥을 다한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국토연구원 지리정보시스템 연구센터에서 위성사진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도 차령산맥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우리에겐 우리 고유의 산맥 개념인 백두대간(白頭大幹)과 정간(正幹), 그리고 정맥(正脈)의 개념이 있다. 이 백두대간의 개념은 산맥이 땅속 지질의 연속이 아니라 산길이 물길과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구분하고 그 언저리에 보금자리를 튼 인간의 삶과 어우러져 있는 산줄기의 개념이다.


그리하여 백두산에서 발원한 산줄기가 국토의 중앙 뼈대를 이루며 남으로 이어져 지리산에 이르는 동안 단 한번도 물길을 침범하지 않고 물길은 모두 산길에 의해 나뉘어진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대원칙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또 대간에서 갈래친 열세 개의 정맥이 국토의 큰 뼈대가 되고, 다시 그곳에서 가지 쳐 나온 무수한 기맥과 지맥들이 잔뼈를 이루어 우리 국토를 지탱하게 된다.


이러한 우리 고유의 산맥 개념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100년 전 한 왜인이 망아지 타고 다니면서 연구한 잘못된 결과가 아직도 수정되지 않아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태백산맥, 차령산맥 등등을 딸딸 외우고 있고, 금북정맥 종주하고자 지도 검색을 하니 아직도 우리나라 지도에는 차령산맥이라는 말이 등재되어 있다.


한번 왜곡된 역사를 다시 되돌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우리 학계의 정체성이나 연구 자세의 문제이기도 할 것인데, 그동안 숱한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아직 완전한 청산(淸算)과 재정립은 요원하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 땅 백두대간과 아홉 개의 정맥을 두 발로 온전히 모두 걸어보자 길을 나선 산꾼의 눈에는 이런 왜곡된 이 땅의 산맥 개념과 잘못된 채 방치된 산 이름과 고개 이름 등이 늘 발견되어져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오늘 구간의 서운산 자락에도 여지없이 차령산맥이란 글자가 굵은 글씨로 적혀 있다. 차령산맥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령산맥은 없다!


구간 : 금북정맥 제 3구간(배티고개~우물목고개)
거리 : 구간거리(13.9 km), 누적거리(34.0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8월 18일. 흙의 날.
세부내용 :

배티고개(11:10) ~ 무명봉 ~ 무명 순교자묘 갈림길 ~ 배티성지 갈림길 ~ 석남사 갈림길 ~ 서운산(12:20) ~ 알바 30분 ~ 갈림길 ~ 청룡사 갈림길(13:28) ~ 420봉/점심 후 14:10出 ~ 묘지 ~ 소나무 두 그루 있는 무명봉(15:20) ~엽돈재(15:45) ~ 459.1봉(16:30) ~ 헬기장 ~ 임도 ~ 부수문이 고개(17:00) ~ 420봉 ~ 갈림길 ~ 위례산 정상(18:10) ~ 전망 좋은 무명봉/갈림길(18:30) ~ 임도 ~ 서낭당 ~ 송전탑 ~ 무명봉 ~ 송전탑 ~ 우물목 고개(19:05).

총 소요시간 7시간 55분.  만보계 기준 24,800보.


8월 18일. 흙의 날. 연일 찜통 같은 더위가 계속된다. 기상청에서는 오늘도 연중 최고치의 기온을 경고하고, 오후 늦게 소나기도 예보하고 있다. 국도와 두 개의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안성 시내로 들어가 진천군 백곡면으로 넘어가는 325번 지방도로 접어들었다.

안성은 물이 많은 고장이다. 고삼지, 금광지 등 대형 저수지를 비롯해 금북의 산줄기 아래 곳곳에 물을 가득 담은 저수지들이 산재해 있다. 배티고개 올라가는 입구에도 마둔지란 저수지가 파란 물을 가득 담고 있다. 바깥 날씨 쳐다보니 산보다는 오늘은 저 저수지에 낚싯대 담그고 오랜만에 붕어 비린내나 실컷 맡아 봤으면 좋겠다 싶은 심정이다.

금북으로의 발길이 계속되면서 느낀건데 예로부터 이 금북이 수도권과 지방을 구별 짓는 자연적인 분기점이 되고 있는 듯하다. 금북은 비록 고도가 사 오백에 불과하여 강원도의 산들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 그 고도감이나 단절감은 결코 강원도의 1,000m급 산들에 못지않다.

그러다 보니 예로부터 차령 이남과 이북은 중심과 변두리, 주류와 비주류로 갈라져 서로 알게 모르게 경원시해 왔다. 며칠 전 신문 기사에 보니 차령 이남의 대학들이 취업률에서 극심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다.

 

시공간적 개념을 초월해 살고 있는 정보화 사회라는 오늘날에도 그 오랜 차별의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백두대간과 13개의 정맥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나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강원도 어느 고개에 못지않게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배티고개를 한참을 올라 고개 정상 직전 공터에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마쳤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서운산/瑞雲山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547m이다.
경기도의 최남단인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을 경계로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다. 아담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가졌다. 4월초가 되면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가 피고 5월이면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청룡사, 석남사 등의 산사와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호), 청룡사 삼층석탑, 명부전, 관음전 및 조선 현종 때 주조한 무게 약 5톤의 동종 등의 문화재가 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년)에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로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건하면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여 산 이름은 서운산, 절 이름은 청룡사로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에 홍계남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던 산성이 있는데, 반면식 토축산성으로서 서쪽 능선에서 남방향으로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까지 펼쳐져 있다.

부소문이 고개(扶蘇門 ; 부수문이 고개)

충청남도 천안시의 동남구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양대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이다. '팔도군현지도'와 '조선지도'에서 직산, 안성과의 경계부에 부소치(扶蘇峙)가 나타난다. '조선지형도'에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양대리 경계에 부소령(扶蘇岺)이 있다. 백제 온조왕이 처음 도읍한 위례성에 대하여는 광주위례성설과 직산위례성설이 있다. 이곳은 직산 위례성설의 그 위례성과 가까운 곳으로서 온조왕이 처음 도읍하였을 때 이곳에 문을 세웠으므로 부소문이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위례산/慰禮山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호당리와 북면 운용리 사이에 있는 산. 높이는 523m이다. 직산위례성·검은산·신산(神山)이라고도 한다.차령산맥의 연봉을 이루며 북쪽 비탈면이 급경사를 이루어 천연 성벽 역할을 한다. 산 정상의 위례성터에는 둘레 550m, 높이 약 3m의 흙으로 쌓은 산성을 비롯하여 식수로 사용한 듯한 우물 '용샘'과 문받침돌로 여겨지는 큰돌 반쪽이 남아 있다. 이 산성과 마주하여 안성의 서운산성이 남향으로 축조되어 있어 주목된다. 일부 학자는 서운산성은 고구려 장수왕의 남쪽 끝 기지였고, 위례성은 백제 문주왕의 북쪽 끝 방어선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서남쪽으로 오르는 계곡의 경관이 수려하고 산기슭에는 금성사라는 사찰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주변에 독립기념관, 유관순열사 유적지, 천안상록리조트 등의 관광지가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금북정맥 제 3구간 배티고개~우물목고개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11:10. 금북은 집에서 가깝고 중간중간 끊을 수 있는 고개가 많다는 생각에 출발이 늘 늦다. 배티고개 돌이정표 뒤쪽으로 오늘 구간의 들머리가 시작된다.


시작부터 화끈하게 밀어 올린다. 배티고개 절개지가 깎아 지르게 높은 이유를 알겠다. 거미줄이 많아 계속 얼굴을 닦아 내야 했다. 지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얘기다. 모기떼들이 덤벼 들기 시작하지만 아직 견딜만 해서 방충망은 생략했다. 곧 온몸이 흠뻑 젖어 460이 찍히는 봉우리에 올라섰다.(11:28)



 

# 배티고개. 우측 고개 정상석 뒤로 올라간다.

  


물 한 모금 마시고 곧 조금 내렸다가 편하게 진행했다. 안부에 이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무명순교자 묘' 가는 갈림길이라는 이정목이 서 있다.



길게 편하게 진행하면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배티성지 갈림길'이다. 우틀하여 편하게 오르 내리다 조금 밀어 올려 '소나무 두 그루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고, 편하게 진행하면 곧 좌측으로 '벌목지'가 있어 조망이 트이는 곳에 이른다.

 


# 절개지 위에서 올려다 본 정맥길.

 

  

# 건너편 산줄기. 정맥에서 진천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인데 군부대가 있다.


 

 

# 무명순교자 묘 갈림길.

 

 

# 벌목지 상단부를 걷는다.

 

 

# 벌목지에서 본 진천쪽 조망.

 

 

 

이 등로의 좌측은 충청도 진천이고 우측은 경기도 안성이다. 뙤약볕이 강렬한데, 종류를 알 수 없는 제법 큰 뱀 한마리가 발 바로 앞에서 황급히 숲속으로 몸을 숨긴다.

중간중간 갈림길이 나온다. 모두 '석남사 갈림길'이다. 서운산이 안성의 진산이라더니 중간중간에 산행나온 지역주민들을 만난다. 금북길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다.

계속 위로 밀어 올려 가다보니 등로가에 설치된 '삼각점'을 지나게 되고, 정상 직전 '삼거리 갈림길'을 지나니 막걸리 장수가 반갑게 인사한다. 아, 나 역시 막걸리가 반갑소이다! 한 잔 달래서 시원하게 목을 축였다.

이 막걸리 장수도 산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고 정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같이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한참 쉬다가 바로 뒤에 있는 서운산 정상에 오른다.(12:20)

 


#  등로가에 설치된 삼각점.

 

 

# 서운산 옥수수 막걸리. 저것 마시고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먹을 때는 너무 시원하고 맛나서 좋았는데...

 

 

# 서운산 정상.

 

 

# 정상의 서운산성 안내판.

 

 

 

서운산은 해발 547.4m다. 지역주민들이 많이 찾고 있는 산이다. 산 높이에 비해서는 참 고상한 이름을 가졌다. 상스러운(瑞) 구름(雲)이 서려 있는 산이란 뜻이다.

정상에서 다시 한참을 휴식하였다. 정상에서 도로 나와 막걸리 장수와 작별하고, 삼거리 갈림길에서 (정상 방향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 갔다. 표지기가 전혀 없길래 하나 부착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조금 뒤 '좌측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길이 더 뚜렷하다. 양 방향 모두 표지기가 전혀 없다. 그래서 일단 직진하여 아래로 내려 갔다.

 

곧 '헬기장'이 하나 나오고 다시 아래로 내려 가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헷갈리는 '이정목'이 하나 서 있다. "직진(은적암)/좌측(청룡사)/우측(좌성사)" 이렇게 적혀 있다. 이럴 수가 있나? 지도에는 청룡사와 좌성사가 같이 정맥 우측에 있는데 왜 청룡사가 좌측에 있냐? 아무리 지도를 들여다 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오르내리는 지역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겠단다. 이럴 때는 무조건 원위치 해야지!

다시 위로 낑낑 올라 갈림길을 만나고 좌측으로 떨어지는 길을 살펴보지만 아래로 급하게 떨어지는 것이 능선이 아니고 계곡으로 떨어지는 형상이다. 다시 도로 나와 아예 서운산 정상쪽으로 완전 원위치했다. 막걸리 장수 나를 보더니 놀란다. 왜 아직 여길 헤매고 있냐고? 좌측으로 떨어지는 길이 정맥길 맞단다.

다시 막걸리 장수와 작별하고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떨어져 내렸다. 급하게 아래로 떨어져 내려 이 길이 아닐 경우 다시 올라올 일이 꿈만 같다. 마침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지역주민에게 지도 보여주며 이 길이 능선으로 가는 길이냐,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이냐고 물으니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이라며 엽돈재 가는 길이 아니란다.

그러면서 자꾸 이 길로 내려가면 배티고개가 나온단다. 아니 배티고개는 내가 좀 전에 올라 왔고 건너편 산 능선인데 무슨 말이냐 해도 자기가 맞다고 고집을 부린다. 일단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계속 내려 가 본다.

계속 아래로 내리니 안부에 이르고, 우측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청룡사 갈림길'이다. 제대로 맞게 내려 왔다.(13:28)

 


# 정상 직전 갈림길. 정상방향에서 우틀해야 한다.

 

 

# 헬기장을 지나 이 이정목을 만나면 알바이니 다시 Back 하셔야...

 

 

# 청룡사 갈림길.

 

 

 

뻔한 곳에서 한 시간 가까이 헤맸다. 서운산 정상부는 지역주민들이 표지기를 모두 제거해 버린 모양이다. 청룡사 갈림길에서 비로소 표지기들이 직진 방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곧바로 길게 치고 오르면 바람이 아주 시원한 '420봉'이 나온다.(13:40) 알바하느라 너무 지쳐 이곳에서 마음에 점 하나 찍고 휴식을 취했다. 지나 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래 시원한 바람 맞으며 '거풍(擧風)'도 한번 즐겼다.

(14:10). 출발하여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가 곧바로 가파르게 한차례 밀어 올렸다. 식사 직후라 힘이 많이 든다. 400m대의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진행하다 보면 묘지가 하나 나타나고 잠시 전방으로 트인 조망을 허락한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아마도 '위례산'인가 보다.

 


# 묘지에서 바라 본 위례산.

 

 

 

계속해서 작게 오르내린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와 아주 좋다. 그러나 기온 자체가 워낙 높아서인지 땀은 줄줄 흐른다. 언제부턴지 두통이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서운산 정상에서 마신 막걸리 탓인가 보다. 대간할 때는 반드시 막걸리 한 통씩 가지고 다니면서 정상주를 마셨는데,이제는 막걸리 한 잔에 이렇게 두통이 심하니...

노란 파이프가 박혀 있는 갈림길이 나오지만 표지기가 많아 걱정이 없다. 무명봉을 하나 만나 오른쪽으로 우회하더니 우측으로 꺾여 간다. 피부가 매끈하고 근육질인 서어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좌측 산 아래로 골프장이 언뜻언뜻 보인다.지도에는 없는 걸로 봐서 최근에 건설된 건가 보다.

쉴 때마다 바람이 너무 좋아 가기가 싫어진다. 참으로 고마운 바람!!! 자리 깔고 한 잠 늘어지게 잤으면 좋겠는데 왜 그렇게 못하는지... 길게 오르내리며 진행하다가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15:20)

 


# 서어나무 군락지. 좌측 아래는 골프장이다.

  

 

# 소나무 두 그루 서 있는 무명봉.

  

 

좌측 산 아래로 엽돈재로 올라 오는 도로가 보이고, 차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엽돈재는 봉우리 예닐곱 개를 더 넘어야 모습을 나타낸다. 신행 막바지에 이런 지형을 만나면 고생 꽤나 하게 된다. 엽돈재 절개지는 아주 가파르고 높다. (15:45) 엽돈재에 내려섰다.

 



# 절개지가 아주 가파른 엽돈재.

 

 

# 절개지 위에서 본 충남 천안의 대평리 방향 조망.

 

 

# 엽돈재, 생거진천 비석 뒷쪽이 들머리다.

 

 

# 반대편은 천안 입장으로 넘어 간다.

 

 

# 고개 위에 수준점이 서 있다.

 

 

# 우리네 산꾼들은 고도에 민감하다. 그런데 고도는 적혀 있지 않다.

 

 

 

엽돈재는 이름이 많다. 엽둔고개, 엽둔티, 엽전리, 율둔티하고도 하는데, 옛날에 도둑이 많아서 엽전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모두 빼앗겼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아니, 이곳 강도들은 엽전만 빼앗았나? 그럼 패물만 빼앗으면 패물고개, 쌀만 빼앗으면 쌀고개인가?

엽돈재는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삼도의 경계다. 지리산, 거창, 영동에 있는 삼도봉처럼 이곳도 삼도가 나눠지는 곳이니,이름을 '삼도령(三道嶺)'이라 부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돈 빼앗는 엽돈재 보다는 어감이 좋지 않나?

엽돈재 '생거진천'이라 적어 둔 정상석 뒤쪽으로 들머리가 이어진다. 숲으로 들어 가자마자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절개지 위에 서면 건너편 산과 천안쪽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 천안 입장과 안성쪽으로 흘러 내리는 산줄기.

 

 

# 엽돈재 건너편의 모습.

 

 

# 사위질빵. 사위사랑이 담겨 있는 이름이다.

 

 

# 산딸나무 열매. 열매를 보면 이름의 유래를 금방 알 수 있다.

 

 

# 자주조희풀.

 

 

# 아주 작고 이쁜 넘인데... 산박하인가?

 

 

# 원추리는 꽃을 떨구고 열매로 남았다.

 

 

# 뚝갈.

 

 

# 여뀌.

 

 

# 청미래덩쿨.

 

 

 

숲으로 들어가 계속 밀어 올린다. 봉우리 하나를 올라 서서 우틀하더니 계속 고도를 높혀 올라 가게 만든다. 459.1봉 까지는 꾸준히 밀어 올린다. 중간에 두어 번 갈림길이 있는 무명봉이 나타나지만, 표지기가 많아 걱정이 없다. 땀이 범벅이 될 무렵 '459.1봉'에 오른다.


459.1봉은 잡목에 파묻혀 아무 특징도 조망도 없다. 삼각점이 잡풀에 가려 있다. 정상에서 도로 나와 우측으로 떨어져 내린다. 부수문이고개까지는 내리막만 남았지만 두 개의 무명봉을 작게 넘어야 한다.

정상 바로 아래에 묵은 헬기장이 있고 계속 떨어져 내리면 중간중간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러다 공사 중인 임도가 나오고 459.1봉이 올려다 보인다. 차소리가 들리는데 봉우리 하나를 더 넘고 계속 떨어져 내리자 2차선 포장도로인 '부수문이 고개'가 나온다.(17:00)


 


# 잡목에 싸인 459.1봉.

 

  
# 임도에 서면 459.1봉이 올려다 보인다.

 

 

# 부수문이 고개.

 

 

 

부수문이고개는 '부소문령(扶蘇門嶺)'이라 하고 백제 시대에 이곳에 부소문을 세웠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편도 1차선의 좁은 산길인데 의외로 차량통행은 많은 편이다.

원래 계획이 부수문이에서 멈추는 것이었는데, 자꾸만 눈길이 다음 들머리로 간다. 지도상 우물목 고개는 작은 산길인데 차가 올라올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이 5시인데 어두워지기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망설이는데 발길이 어느새 다음 들머리로 향하고 있다. 이~런~~

 


# 위례산 들머리.

 

 

 

들머리를 올라 서면 임도가 이어지고 꾸준히 위로 올라간다. 오늘 땀을 너무 많이 흘린다. 내 건강에는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이 좋지 않은데... 산꾼이 땀을 많이 흘리지 않으면 또 산을 어떻게 가누?

20여 분 꾸준히 올라 420이 찍히는 봉우리를 넘고 다시 조금 편하게 가다가 고도를 높인다. 오르는 도중에 하산하는 지역 등산객들을 몇 사람 만났는데, 우물목고개에 차가 올라 온단다. 다행이다!! (18:00).  '위례산 갈림길'에 오른다.


입장(양대리 2.1km)/위례산(0.3km)/부수문이(1.9km)라고 적힌 이정목이 서 있다. 좌로 꺾어 정상을 향해 올라 갔다. 힘들어 걸음수를 세며 가는데 200걸음 걸어서야 정상에 오른다.(18:10)


 


# 잡목 터널 속으로 길게 올라 갔다.

 

 

# 위례산 갈림길.

 

  


# 위례산 정상부.

 

 

# 정상에는 돌탑이 있다.

 

 

 

위례산 정상부는 허물어진 산성터다. 정상엔 성터에서 나온 돌로 돌탑을 세워 두었다. 물 한 모금으로 한숨 돌리고 정상을 돌아 나오면 바로 뒤에 위례산성 정상이란 팻말과 비스듬하게 세워 멋을 부린 정상석이 서 있다.

안내판엔 위례성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백제의 도읍지인 위례성이 이곳이냐 하남위례성이냐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정상을 나가는 입구 쪽에 좌측으로 조망이 트여 지나온 정맥길을 돌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또한 그 옆에는 그 옛날 성에서 사용되었을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이 풀속에 누워 있다.

 


# 위례성 소개.

 

 

# 정상 표시가 이쪽에 서 있다.

 

 

# 지나온 정맥길을 돌아본다.

 

 

# 용도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유물. 문 받침돌로 여겨지나 보다.

 

 

 

위례산 하산길 역시 마냥 내리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길게 고도를 낮춰 가다가 두어 번 작게 오르내리더니 한 차례 제대로 밀어 올린다. 낑낑대며 올라서니 '조망이 휼륭한 무명봉'이 나온다.(18:30).


'유성농장 갈림길' 이다. 직진(유성농장 2.9km)/우측(우물목 1.5km)라고 적혀 있다. 이곳에서는 전방으로 막힌곳 없이 툭 트인 조망을 보여 준다. 위례산에서 못 본 조망을 이곳에서 보상 받았다.

시각이 늦어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다. 입장 가는 길에 있는 시장저수지와 들판, 그리고 천안쪽 산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노을에 취해 있다가 정상을 넘어 갔다.


정상을 넘어 가파르게 내려갔다. 이젠 내려 가는 일만 남았다. 그럴~까아~~? 길고 가파르게 내려가자 임도를 만나게 되고, 임도 따라 조금 내려가자 임도가 갈라지는 곳에 서낭당이 나타난다. 그런데 정맥은 이곳에서 다시 전방의 산으로 올라 가라 한다. 그럼 그렇지! 그냥 보낼 리가 있나?

 


# 조망 좋은 유성농장 갈림길 있는 무명봉.

 

 

# 시장저수지와 입장 들판.

 

 

# 노을이 서서히 모습을 갖춰 간다.

 

 

# 지나온 위례산을 올려다 본다.

 

 
# 숲을 벗어나 임도를 만난다.

 

 

# 서낭당이 나오고 좌측 전방 산으로 다시 올라 간다.

 

 

 

임도따라 그냥 가 버릴까 고민하다 임도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 수가 없어 그냥 전방 산으로 올라 갔다. 지치고 힘들어 낑낑대며 능선을 올랐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더 넘자 '송전탑'이 나타난다. 송전탑을 지나 고개 위에 올라 서서 지나온 정맥길을 돌아다 보며 잠시 한숨 돌렸다.

뒤쪽에 또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 올라서면 정상엔 풍화가 진행 중인 바위가 있다. 잠시 내리면 두 번째 송전탑이 나오고 저 멀리 성거산이 건너다보인다. (19:05) 우물목 고개에 내려섰다.

 


# 송전탑을 만나고,

 

 

# 고개 위에 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 본다. 저 멀리 위례산이 보인다.

 

 

# 두 번째 송전탑. 저 멀리 성거산이 올려다 보인다.

 

 

 

# 성거산 자락에 외로이 파묻힌 외딴집.

 

 
# 포장도로인 우물목고개.

 

 

 

의외로 우물목고개는 포장도로다. 성거산 군부대 때문에 포장되어 있나 보다. 고개를 넘어가면 맛있는 샘물이 있다는데 오늘은 구경할 수 없다.

고개 한쪽엔 철봉 등 체육시설이 있고 코너용 볼록거울도 있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랜턴도 준비해 오지 않았는데 산속에서 어두워졌으면 어쨌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물목고개는 부수문이고개와는 달리 지나 다니는 차가 전혀 없는 곳이라 이제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걱정이 태산인데, 마침 산 위에서 트럭 한 대가 내려왔다. 얼른 뛰어 나가 손을 드니 포도 농사 짓는 부부가 타고 계시고 앞에는 자리가 없고 짐칸에 타라고 한다. 아이고~ 저야 감지덕지지요!!!

 


# 트럭 짐칸에 앉아 이런 장난도 해 본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아주 한참을 내려 갔다. 택시를 부르면 요금을 꽤 줘야 할 것 같다. 두 부부 덕분에 입장까지 감사하고 편하게 내려 갔다. 이후 버스 타고 안성으로 가서 다시 택시 타고 배티고개로 올라가 차량을 회수했다.

오늘 구간은 비록 짧은 구간이지만, 강원도 고갯길에 결코 뒤지지 않는 배티고개, 엽돈재, 부수문이고개, 우물목고개와 안성의 진산인 서운산과 역사의 중심 위례산이 있는 금북의 진수인 곳이었다. 대단한 산길이고 금북정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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