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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첫걸음(모래재~슬치)-찔레꽃 향기 가득한 호남길! 본문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반도의 등줄기이다. 그 출발은 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白頭山)이다. 갈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 북녘 땅을 돌고 돌아 남으로 내려온 대간은 금강산 향로봉(香爐峰)을 거쳐 진부령에서부터 남녘 땅 구간에 접어든다. 이제부터의 산하는 우리가 갈 수 있고 그 산줄기 확인도 가능하다. 자유로운 남녘 땅에서 마음껏 모습을 드러낸 백두대간은 설악(雪岳)에 등줄기 뾰족뾰족한 공룡(恐龍) 한 마리를 눕혀 놓는다. 그리고는 맞닿은 점봉(點鳳)을 넘고 다시 오대산(五臺山)을 굽이친다. 이윽고 태백산(太白山)을 불끈 솟아 올리며 방향을 내륙 쪽으로 우회전한 후 남진한다.
이어 온순한 이름과는 달리 크고 험하며 칼바람 쌩쌩한 소백(小白)을 형성하고, 조령산을 빗겨 내려 속리산(俗離山)으로 솟아오른 후 다시 덕유(德裕)로 넉넉하게 품을 넓힌다. 덕유의 끝 육십령(六十嶺)에서 대간은 방향을 좌측으로 꺾어 아래로 남진하다가 드디어 지리산(智異山) 천왕봉(天王峰)에서 한국인의 기상(氣像)을 발원(發源)케 하며 대단원을 이룬다.
이것이 이 땅 백두대간의 개략적 흐름이다. 이렇게 한반도의 중심을 흘러내리며 거대한 등뼈를 이루는 백두대간은 다시 여러 갈래의 가지를 이 땅 좌우로 내 뻗는다. 그 가지는 이 땅의 물줄기와 조화(調和)를 이루어 바다로 향한다. 이른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한강(漢江)과 낙동강(洛東江)은 이 땅의 대표적 물줄기다. 큰 물줄기는 큰 산줄기로 울타리를 삼는다. 북녘 땅 추가령(楸哥嶺)에서 갈래 친 한북정맥(漢北正脈)은 한수(漢水)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며 서쪽으로 뻗어 가고, 태백산 피재에서 갈라진 낙동정맥(洛東正脈)은 천삼백 리 낙동강을 따라 남으로 흘러 부산 다대포 몰운대(沒雲臺)에서 바다와 합일(合一)하는 긴 산줄기가 된다.
속리산 천황봉(天皇峰)에서 뻗은 가지는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되어 충청에서 경기로 올라간다. 이 산줄기는 안성 칠장산(七長山)에서 다시 두 개로 갈라진다. 하나는 한강 이남을 따라 경기도를 내달려 김포 보구곶리로 가는 한남정맥(漢南正脈)이 되고, 또 하나는 충청도 땅을 휘감아 금강 이북을 아울러 태안반도 안흥진(安興鎭)으로 잠기는 금북정맥(錦北正脈)이 된다.
덕유가 지리와 경계하는 육십령 아래에 영취산(靈鷲山)이 있다. 그곳 영취에서 남서쪽으로 가지 하나가 뻗어 나간다. 이른바 짧지만 강한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이다. 금남호남정맥에서는 두 개의 물줄기와 두 개의 산줄기가 발원(發源)한다. 물길은 비단강(錦江)과 뚜꺼비강(蟾津江)이고 산길은 금남정맥(錦南正脈)과 호남정맥(湖南正脈)이다. 백두대간의 대단원을 이후는 지리산이 동쪽으로 울끈불끈 산맥을 이어가는 마지막 무렵에 신령스런 봉우리인 영신봉(靈神峰)이 있다. 그 신령스런 산에서 높은 산줄기 하나가 뻗어 나가 경상도 땅 남부를 가로질러 김해 동신어산에서 낙동강으로 잠긴다. 그 산맥이 낙남정맥(洛南正脈)이다.
이렇게 백두대간은 우리 땅 남쪽에 아홉 개의 산맥을 뻗어내려 한반도의 뼈대를 이룬다. 이 산줄기들은 함께 출발한 물줄기와 조화를 이루며 이 땅의 근본(根本)을 이뤄 억만 년을 함께하였다. 하지만, 시작이 같다 하여 도중과 나중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저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니 모습도 다르다. 어떤 산줄기는 높고 험준하여 성채(城砦)를 이룬 듯하고 어떤 산줄기는 온순하여 초가집의 지붕선을 닮은 듯도 하다. 또, 어떤 산줄기는 짧고 간결한 반면 어떤 산줄기는 구불구불 인간세를 휘감아 천 리를 이루기도 한다. 산줄기가 조화를 이룬 것이 물줄기 뿐 아니라 인간세와도 조화를 이룬 결과일 것이다. 그 구맥구색(九脈九色)의 산줄기 중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것은 '호남정맥'이다. 호남정맥은 앞서 말한대로 영취산에서 발원한 금남호남정맥에서 다시 갈라진 산줄기다. 그 출발점은 진안(鎭安)의 '조약봉(鳥躍峰)'이다. 삼정맥 분기봉(分岐峰)으로 알려져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분기봉(分岐峰)을 출발한 산맥은 한반도의 곡창인 호남 내륙을 굽이굽이 휘감다가 광양 백운산(白雲山)을 넘은 후 광양만의 외망포구에서 섬진강과 함께 남해로 잠긴다. 도상거리 430km로 아홉 정맥 중 가장 긴 산줄기다.
호남지방은 김제(金堤)와 만경(萬頃)으로 대표되는 평야 지대라 예로부터 넓은 들판과 붉은 황토길로 알려져 있다. 들 넓은 곳이니 농사 발달하였고 이 땅의 곡창(穀倉)으로 역할하였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이 들 넓은 호남지방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호남정맥이라는 큰 산줄기 하나를 허락해 굽이굽이 내륙 전체를 아우르게 하였다.
평야 지대를 휘감아 도는 산줄기인 만큼 호남정맥은 고산준령(高山峻嶺)의 오지(奧地) 산들이 아니라 대부분 적당한 높이의 야산(野山) 줄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내장산, 추월산, 강천산, 무등산, 제암산, 조계산, 백운산 등 이름있고 품 넓은 산들도 품고 있어 빼어남도 잊지 않는다.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가졌으면서 남다른 개성을 가진 특징적인 산맥이다. 강/사/랑의 일곱 번째 정맥 종주는 바로 이 '호남정맥'이다. 이 산맥이 또 어떤 이야기와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지 기대만발이다.
찔레꽃 향기 가득한 호남길! 구간 : 호남정맥 제 1구간(모래재~슬치) 곰티재(06:30) ~ 560봉 ~ 오두재(07:15) ~ 제2쉼터 ~ 암봉(08:30)/휴식 ~ 만덕산 갈림봉(08:56) ~ 정각사 갈림길 ~ 암릉구간 ~ 암봉 ~ 제5쉼터 ~ 마치 ~ 상회마을 탈출로 ~ 566봉(10:52) ~ 호식총 ~ 점심(11:50~12:25) ~ 북치(슬치) ~ 416.2봉 ~ 인삼밭 ~ 430봉 ~ 478봉 ~ 신전리 ~ 신전리재 ~ 480봉 ~ 개간지/농장 울타리 ~ 밤나무밭 ~ 황산재(15:00) ~임도 ~ 갈림길 여럿/농장들 사이로 진행 ~ 박이뫼산 ~ 슬치(15:40). 2008년 11월 2일, 지난번에 전라도 진안 땅 조약봉에서 금남호남정맥 종주 졸업 신고를 천지신명께 드린 이후 정맥길은 개점휴업상태였다. 가끔 낙동길에 나서서 올해 5월에 낙동정맥 졸업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낙동정맥은 혼자서 종주에 나선 것이 아니라 동지들과 일정을 맞춰 진행한 산줄기다. 게다가 다른 팀들과 합동 졸업을 한다고 진작 졸업을 할 수 있는 데도 계속 졸업을 연장한 터라 긴장감이 좀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삼 정맥이 갈라지는 조약봉에서 금남호남정맥 졸업을 하면서 방향을 모래재 쪽으로 틀어 내려온 것은 다음 정맥길로 당연히 호남길을 선택하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호남길은 선뜻 발이 들여지지가 않았다.
9정맥 중 430km에 이르는 가장 긴 길이 때문에 쫄았나? 아니면 끊임없이 오르내린다는 호남의 산세(山勢) 때문에 겁먹었나? 것도 아니면 멀고 먼 호남길 접근 거리에 길 나서기 힘들어 그랬나? 어쨌든 지난 11월 이후 무려 7개월 동안 호남길 가려고 짐 꾸렸다가 풀었다가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사실 처음 11월에 금호남정맥을 졸업하고 나서 곧바로 다음 주에 호남길을 나섰었다. 토요일 집에서 푹 쉬다 오후에 짐 꾸려 안산터미널로 전주행 차를 타러 가는데 인근 동네인 안산 초입에서 그만 교통체증에 발이 묶여 버렸다. 안산 터미널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뛰어갔지만, 전주행 막차는 이미 떠나버린 뒤였다. 이처럼 터미널에 갔다가 전주행 막차를 못 탄 것이 그후 도합 세 번에 이른다.
그리고 짐 꾸렸다 비 소식이나 집안 행사 때문에 짐을 도로 푼 것이 다섯 번. 도합 여덟 번이나 호남길 들어가려고 짐 꾸렸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허허 참~~~
그러다 5월도 끝나가는 주말. 그날은 내가 예전에 열심히 활동했던 견지낚시 동호회가 홍천강에서 정기 출조 행사를 한다고 연락해 왔다. 후배가 회장을 맡고 있어 힘도 실어 줄 겸 이번에는 꼭 한 번 참석해서 비린내 풍기는 옛 동지들을 만나보리라 생각하고 낚시가방 꺼내 먼지를 털어냈다. 그런데 워낙 오랫동안 낚시채비를 방치한 탓에 장비가 전부 엉망이다. 게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비까지 오락가락한다.
어쩔까 고민하고 있는데 산동무인 해리님과 전서방님 내외가 호남에서 도킹했다는 사발통문이 들려 온다. 전라도엔 비는 커녕 햇살만 쨍쨍하다는 소식도... 갑자기 마음이 물에서 산으로 이동한다. 먼지 앉은 낚시 짐을 창고에 도로 밀어 넣고 산행 짐 꾸려 집을 나섰다.
그래, 이번 주는 비린내보다는 땀 냄새나 실컷 맡아보자! 그리고 천리길 호남정맥 출석부에 이름 올리고 호남정맥 천지신명께 제대로 신고를 드려보자!
낙남정맥과 함께 우리나라 남부 해안 문화권을 구획하는 경계선으로 약400km에 달하는 긴 산줄기다. 넘어야 할 산도 60여개에 이르고 명산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여느 정맥에 비하여 그 길이나 높이 등에서도 단연코 앞서고 있다.호남정맥은 금강,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보성강, 섬진강등 여러개의 강이 감싸돌고 있지만 크게 원류를 찾아보면 섬진강에 밑바탕을 두고 경천, 옥과천, 오수천, 화강천, 보성강등이 합수 하면서 그 남쪽과 서쪽이 연이어 형성돼 있으므로 섬진강과 그 원줄기를 기준으로 분류 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인 주줄산이 바로 호남정맥의 분기점이자 합치점이 되는데 주줄산은 산경표 87쪽에 '주화산(珠華山)'이라 적고 다음 88쪽에서는 주줄산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대동여지도 에서도 주줄산으로 쓰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화(華)자가 줄(茁)자의 오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산경표에 나타난 호남정맥은 주줄산에서 갈래친 후 남도의 큰산을 모두 끌어안고 백운산에서 끝나는 걸로 되어있다. 그 끝점을 백운산으로만 기재하고 그 기맥으로 여수현의 순천 동부로만 적어 백운산 이후의 정맥 마무리가 어떻게 되는지 명시 하지 않았으나 여수현의 동쪽 현재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에서 섬진강이 끝나면서 섬진강 하구를 이루고 있으므로 마땅히 여기까지로 잡아야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호남정맥의 시작을 백운산을 기점으로 하지 않고 망덕리 섬진강 하구에서 시작하면 망덕산(197.2m)을 시작으로 천왕산(225.6m), 국사봉(447.3m), 불암산(431.3m), 쫏비산(536.5m), 갈미봉(519.8m), 천황재(450m), 매봉(867.4m)을 거쳐 백운산에 이르는 기맥을 쫓아 오르면 약 37km가 늘어나게 된다
'모래내'라는 지명은 전국적으로 많다. 흔히 이 '모래내'를 '모래가 있는 시내'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래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데 예를들면 '모래고개'. '모래재'란 이름도 전국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산 고개에 모래가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이 때 '모래'란 고어 '몰'에서 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몰'+(의)+'내' '몰'+(의)+'재' 고어에서 '몰'이란 '산'을 뜻한다. 즉 '모래재'란 '산고개'를 뜻한다.'모래내'의 '내'도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닌데 '내'는 시내를 뜻하기도 하고 고어에서는 '들'을 뜻하기도 한다. 즉 '모래내'는 '산에 있는 시내'란 뜻도 되고 '산에 있는 작은 들' 정도가 되기도 한다.
웅치전적지/熊峙戰蹟地
만덕산/萬德山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성수면에 걸쳐있는 산. 높이는 762m로 일명 부처산이라고도 하는데, 만 가지에 달하는 덕을 가진 이는 부처뿐이라는 뜻에서 기인한다. 호남정맥에서 제일 먼저 솟아오른 봉우리로, 암봉과 육산으로 조화를 이룬다.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의 풍치가 펼쳐진다. 특히 동남쪽 기슭에 위치한 미륵사 일대의 경관은 일품이며, 높이 50m의 만덕폭포와 그 주변의 풍광도 뛰어나다. 만덕산의 명칭은 만덕사(萬德寺)에서 유래한다. 만덕사는 고구려 때 보덕이 산자락에 개창한 사찰이다. 임진왜란 때 웅치싸움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전적지이며, 6·25전쟁 때 빨치산의 침몰이 심했던 곰치재를 지킨 수문장과 같은 산이다. 교통편은 전주에서 마치리 및 정수리행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마치리 종점에서 하차한다. 또는 신촌리행 버스를 이용하여 월상리 종점에서 하차한다. 숙박시설이 마치리나 정수리 일원에는 없으므로 전주시내나 상관면 어두리로 나가야 한다. 인근에 화심온천·죽림온천·성수온천 등이 있어 겨울철 산행에 좋다. 전주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데다 등산코스가 다양하여 전주시민이 즐겨 찾는 산이다. 겨울철의 빙폭은 젊은 산악인들의 빙벽타기 훈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주변에 신촌리 미륵사석탑, 웅치 전적지(전북기념물 25), 월평리 성터 등의 문화재가 있다.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구글 맵(이 지도와 아래 고도표는 돌양지님 작품)
# 고도표.
일기예보에 없는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산본을 출발하여 39번 국도 타고 길게 내려갔다. 영동고속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하지만, 토요일 오전 영동고속도로는 주차장이나 다름없으니 국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39번 도로 역시 많은 차량으로 한차례 몸살을 겪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고, 청북에서 안성~평택고속도로에 올라서고 안성에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탔다.
경부고속도로는 이미 거대한 거북이 길로 변해 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아래로 내려가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거쳐 호남고속도로, 다시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무려 다섯 개의 고속도로를 거쳐야 하는구나. 소양나들목을 나와 화심 거쳐 모래재에 도착하니 이미 시각은 2시를 넘겼다.
# 모래재 휴게소.
모래재 휴게소 한켠에 주차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도 구입했다. 휴게소 박무관 사장님과도 아는 체를 한 후 보따리 챙겨 길을 나섰다. 14:20.
공원묘지 뒤쪽으로 올라 임도를 따르고 세봉임도에서 한차례 오르면 3정맥 분기점인 '조약봉'이다. 마음이 급해 정상 이정목 한번 쓰다듬고 얼른 출발했다. 해리님 내외가 아침 일찍 곰치에서 출발해서 슬치로 가고 있는 중이어서 도킹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했다. 일단 계획은 날이 어두워져서 이마에 불 밝히더라도 '마치' 지나 상회마을 도로 쪽으로 탈출할 수 있는 곳까지 가보기로 했다. 서두르자, 서둘러!
헬기장을 지나고 좌측으로 꺾어 떨어지면 '모래재'가 나온다. 잠시 후 가파르게 한차례 밀어 올리면 '고도계에 530이 찍히는 봉우리'가 있다. 15:00.
# 3정맥 분기점 사진은 에러가 나서 지난 금호남 때 사진으로 대신 했다.
# 모래재 공원묘역.
# 540봉.
갈림길이 있어 좌측으로 떨어져 내렸다가 곧바로 치고 오른다. 허물어진 옛 성터가 있는 '540봉'을 넘고 곧 희미한 옛 고개에 닿는다. 한차례 올라 봉우리에 서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그러나 곧 넓은 임도가 나타나는데, 이 임도는 바로 위에 있는 묘지 때문에 생긴 길인 듯하다.
임도 따라 우측으로 떨어져 내리면 '적천재'가 나온다. 고개 옆에 삼각점이 있어 웬일인가 의아한데, 자세히 보니 광업진흥공사에서 매설한 것이다.
# 넓은 임도를 만나 우측 아래로 내려간다.
# 적천재의 삼각점.
적천재는 '피리 笛', '내 川'을 쓴다. 적천마을 뒷산의 모양이 퉁소처럼 길쭉하게 생겼다고 얻은 이름이다. 이후 키 높이로 자란 산죽밭을 지나 서너 차례 오르내린다. 오르내림 많기로 유명한 호남 맛보기인가? 한차례 위로 올리면 봉우리가 나오는데 바위와 작고 빨간 플라스틱 표지가 꽂혀있다. 잔펀치를 연달아 몇 개 얻어 맞고 한차례 올리면 빨간 깃대가 꽂혀 있는 '514.5봉'이 나온다. 16:10.
# 산죽이 키 높이로 자랐다.
# 514.5봉.
514.5봉에서 조금 내렸다가 곧 가파르고 길게 밀어 올린다. 아이고, 소리가 나올 즈음 세 갈래로 갈라진 참나무가 있는 '571봉'에 오른다.16:21.
참나무 뒤쪽으로 직진길이 뚜렷하여 무심코 직진했다. 길게 가다가 급경사 내리막이 나타난다. 스틱에 의지해 내려가는데 벌목을 해서 정리를 않는 바람에 등로가 막혔다. 벌목된 나무들을 헤치기도 하고 우회하기도 하면서 길게 내려갔다.
얼라? 그런데 쬐끔 이상타? 표지기도 전혀 없고 길도 점점 희미해지네??? 나침반 확인하니 남쪽이 아닌 동쪽으로 가고 있다. 아이고 대형 알바다!!!
가파르고 길게 내려왔던 길을 다시 억지로 올라갔다. 욕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되었나??? 투덜거리며 낑낑 봉우리를 다시 치고 올라 참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남진 방향으로 우측 급경사 길에 표지기들이 무더기로 매달려 있다. 힘들게 낑낑 올라 오고 세 갈래 참나무에 끌려 시야가 좁아져 우측 갈림길을 보지 못한 모양이다.
# 세 갈래 참나무가 있는 571봉. 이곳에서 대형 알바를 했다. 직진 길이 이렇게 뚜렷하지만 절대로 직진하면 안된다.
# 정맥은 우측 아래로 급하게 떨어진다. 못 보고 지나치기 쉽다.
30분 알바했다. 급경사 내리막을 내렸다가 다시 한차례 올려 봉우리를 넘는데, 한순간 앞이 툭 트이며 가야 할 정맥길이 조망된다. 저 멀리 곰티재와 그 뒤에 만덕산에 이르는 정맥길이 지그재그로 길게 누워 있다. 조망처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옛 고개가 나오는데 곰티재 안내판이 서 있다. 어라? 이 고개에 왜 곰티재 안내판이 서 있지?
# 조망처의 파노라마. 우측에서 좌측으로 오르내리며 가다가 하얀 절개지가 보이는 곰티에 이르고, 뒤로 치고 올라 우측으로 길게 가다가 찐하게 올려야 하는 만덕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곰티를 땡겨보니 웅치전적비의 윗모습이 보인다.
# 만덕산의 위용.
# 곰티재 안내판.
# 이러했단다. 이곳이 옛 곰티재인가 보다.
이후 낡은 철조망을 따라 올라갔다. 몇 차례 오르내리며 임도를 지나고 길게 올라가면 '607봉'이 나온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곧 넓은 묘역이 나오고 그 아래에 '웅치전적비'가 있다. 그 옆 숲속엔 세리님과 전서방2님이 고사리를 꺾고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아래로 넓은 길 따라 내려가니 '곰티재'가 나오고 해리님과 전서방님이 차를 세우고 나를 기다리고 있니다. 17:40.
# 웅치전적비.
# 두 산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충간의담(忠肝義膽).
# 곰티재. 완주 소양면과 진안 부귀면을 이어주는 곳이다.
이마에 불 밝히고 마치까지 가겠다고 했더니 두 분이 극구 말린다. 만덕산 내리막 부분이 암봉으로 되어 있어 야간엔 위험하다는 것이다. 오늘 좀 길게 해야 내일이 편해지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산꾼들과 한잔 술 나누고 싶어 오늘은 그만 '여기까지!'를 선언하였다.
두 분 내외와 곰티재를 내려 세동리 거쳐 모래재 휴게소로 복귀했다. 모래재 휴게소 한 켠의 등나무 그늘 아래 집 세 채를 후딱 짓고 산꾼들의 情 쌓기를 했다. 해리님 내외하고는 대간할 때부터 부부 대간꾼으로 같이 호흡을 맞춘 단짝이고, 전서방님은 나하고는 홀산에서 유일한 갑장이라 이래저래 할 말들이 많다.
오가는 술잔과 이야기는 밤이 깊어지도록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내일 산행을 위해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두 부부 사이에서 홀로 잠자리에 들려니 쬐끔은 외롭기도 했다...
# 모래재 등나무 아래 하룻밤 유할 집을 지었다.
# 순식간에 뚝딱 만찬이 준비된다.
따뜻한 집 두고 한뎃잠 자기 좋아하는 우리들. 아침 일찍들 일어나 가볍게 끓여 먹고 산행 준비를 마쳤다. 나보다 하룻길이 앞선 해리님, 전서방님 내외는 슬치에서 불재까지 구간을 하고 난 곰티로 가서 슬치까지 갈 예정이다. 그리고 전서방님이 나하고 같이 가서 곰티에서 내 차를 몰고 슬치에 주차해 두기로 했다. 그러면 내가 슬치에서 산행 마치고 불재로 가서 네 분을 픽업해 오면 되는 것이다.
모래재에서 세동리로 가는 길은 메타세콰이어가 양쪽에 푸른 성곽처럼 도열한 멋진 곳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좋은 구도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급해서 그냥 막샷을 몇 방 날리고 갔다.
#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의 메타세콰이어 길.
# 푸른 성곽처럼 길 옆에 도열해 있다.
# 다음에 사진 찍으러 한번 들러야 겠다.
어제 오후에 내려온 곰티재에 복귀하여 차 몰고 떠나는 전서방님 배웅하고 짐 챙겨 산길로 올라갔다. 06:30. 아직 이른 시각인데 기온이 올라가는 것이 오늘 날씨가 많이 더울 모양이다. 시작부터 가파르게 밀어 올리는데, 길게 올라 능선에 오르고 좌틀하여 그 각도 그대로 다시 밀어 올린다. 준비 덜된 몸이 헉헉대며 오르면 '560봉'이 나온다.
그러나 아래로 곧장 떨어지더니 잔봉을 서너 개 넘고 한차례 밀어 올려 작은 바위 몇 개가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어느새 땀이 범벅이 된다. 우측 산아래에서 개 짖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정상을 넘어 잠시 가면 '하얀 바위가 등로를 막고 있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정맥은 좌측으로 90도 꺾어서 떨어져 내린다. 그러면 한순간 앞이 트이며 골짜기와 정맥 줄기가 눈앞에 나타난다.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오두재'에 닿는다.07:15
# 곰티재에 다시 섰다.
# 호남길에 표지기 하나 달고...
# 하얀 바위가 등로를 막고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떨어진다.
# 아래가 오두재다.
# 선답자의 산행기에 자주 등장하는 인삼밭이 흔적만 남았다.
오두재엔 인삼밭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고 잡풀이 무성하다. 잡목을 헤치고 숲으로 들어가 위로 치고 오른다. 그러다 우측으로 산의 사면을 가로질러 비스듬히 고도를 높이게 된다. 곧 능선 마루금에 오르고 숲 너머로 만덕산의 위용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날등을 타고 길게 진행하는데 이 지역은 555봉과 만덕산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는 형상이다. 우측 숲 너머로 고속도로 교량이 높게 설치되어 있어 차량 소리가 크게 들린다. 잠시 후 아래로 내리면 옛 고개가 나오는데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다. 07:40
# 옛고개의 이정목.
이정목엔 만덕산까지 1.7km가 남았다고 적혀 있는데, 누군가 오두재라고 매직으로 써 두었다. 지도에는 좀 전의 인삼밭이 있는 곳을 오두재라고 적어 두었던데?
어쨌든 이곳에서 본격적인 만덕산 오름이 시작된다. 계단식으로 쎄게 밀어 올려야 한다. 곧 벤치가 있는 '제2 쉼터'에 이른다.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잠시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은 만덕산으로 오르는 길이고, 좌측길은 우회로인 듯한데 확신이 없으니 그냥 직진 길로 오른다. 이후 울트라 급경사길이 길게 이어진다. 숨이 턱에 차고 종아리가 팍팍하게 땡겨 온다.
곧 암릉 구간이 이어지고 바위 붙들고 올라가면 '전망대'에 올라서게 됩니다. 쉼터에서부터 2,000걸음을 걸었네요.
# 아름다운 말이다. 실천이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원불교측에서 매단 건가 보다.
# 자주조희풀.
# 국수나무.
# 벤치가 있는 제 2 쉼터.
# 암릉구간을 지나 올라가면 전망대에 오르게 된다.
# 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조망. 암봉, 만덕산 갈림봉과 정상이 보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원불교 수련원이 내려다보인다.
# 전망대에서의 파노라마. 완주군 상관면 일대와 익산~포항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멋진 암봉이 올려다 보인다.
바위전망대는 훌륭한 조망을 선사한다. 만덕산 일대와 아래 인간세의 여러 풍광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날씨가 좀 맑고 투명했으면 멋진 그림을 얻을 수 있을텐데...
잠시 한숨 돌리고 조망 감상하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곧 이정목이 있는 갈림길을 만나고 한차례 더 밀어 올리면 '암봉'에 올라선다. 08:30
# 암봉에서 만덕산 갈림봉과 정상을 올려다본다.
# 만덕산 갈림봉과 가야 할 정맥길. 운무가 밀려든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암봉에서 호남정맥 무사종주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암봉에서의 조망 역시 일품이다. 이곳에서 간단한 제물 올리고 호남정맥 무사종주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천지신명이시여, 호남정맥 산신령이시여! 부실한 산꾼 강/사/랑이 호남정맥에 발을 내디뎠나이다. 부디 무사히 외망포구까지 갈 수 있도록 굽어 살피소서!!"
바람 좋고 풍광 좋은 암봉에서 홀랑 벗고 천지기운도 받아 들이고 몸도 말렸다. 홀로 걷는 정맥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다시 길을 나서 잠시 올라가면 곧 만덕산 갈림봉에 올라서게 된다. 08:56.
# 만덕산 갈림봉.
# 정상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거친 숨소리가 들리더니 등산객이 한 분 올라온다.
# 정수사에서 올라왔다는데 사진 찍어드린다니 이런 포즈를 취한다. 반가웠습니다.
만덕산 갈림봉엔 통신 시설과 전북지방 특유의 스테인레스 정상목이 서 있다. 만덕산은 이곳에서 뒤쪽으로 잠시 물러나 있다. 정상 탐방은 생략하고 곧 길을 나섰다.
좌측으로 잠시 가면 전망대가 나오지만 개스가 가득 차서 아무것도 뵈질 않는다. 언뜻언뜻 개스가 바람에 밀려날 때 가야 할 방향으로 암릉길과 암봉 하나가 뾰족하게 보일 뿐이다. 곧 '정수사 갈림길'을 지나고 암릉 구간을 만난다. 우측 아래에 정수사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암릉 구간을 진행한다. 좌우로 인간세가 내려다보이지만, 오늘은 개스탓에 어렴풋할 뿐다. 잠시 후 갈림길을 만나고 암봉과 우회로로 갈라진다. 곧 뾰족한 암봉을 낑낑 올라가서 정상에 서게 된다.
# 암릉 뒤쪽으로 뾰족한 암봉이 하나 보인다.
# 만덕산 여러 곳에서 조망되는 곳이다.
# 정수사 계곡.
# 반대쪽 진안군 성수면 일대의 인간세.
오늘은 개스 때문에 별로이지만 암봉은 훌륭한 조망처다. 사방 경치 구경하며 시간 보내다가 다시 길을 나서는데, 암봉 내리막은 상당히 위험한 길이다. 암봉 아래로 내려가면 우회로와 합류하고 잠시 진행하면 '제5 쉼터'에 닿게 된다.
# 암봉에서 만덕산 정상을 돌아본다.
# 가야 할 정맥길. 우측으로 구불구불 휘어 간다.
# 제 5 쉼터.
# 쪽동백.
# 산딸나무.
# 민백미.
플라스틱 의자가 있는 제 5쉼터에서 잠시 쉬다 출발했다. 이곳에 갈림길이 있는데 정맥은 우측 길이다. 아래로 내리면 '정수사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마치'인가 보다.
다시 봉우리를 하나 넘고 평탄하게 가다가 한차례 밀어 올려 또 봉우리를 넘는다. 그러자 숲 너머로 뾰족한 봉우리 하나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도로가 구불구불 올라오고 있다. 관촌에서 상회부락으로 올라오는 도로다. 원래 어제 야간산행을 해서 저곳으로 탈출하려고 했었다. 아래로 내려가면 '큰 느티나무가 있는 고개'에 서게 된다.10:35
# 숲 너머로 뾰족한 봉우리와 도로가 보인다.
# 슬치가 있는 관촌에서 상회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다.
# 안내글 하나 남기고.
# 큰 느티나무가 있는 고갯길.
이 고개에서 좌측으로 탈출이 가능한데 우측으로도 표지기들이 매달려 있다. 지도 확인하니우측으로 탈출하려면 아주 많이 산비탈을 걸어야 하는데...?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시 찔레꽃 향기를 맡으며 휴식했다. 오늘 구간의 대세는 '찔레꽃'이다. 구간 전체의 등로를 따라 하얀 꽃잎을 만개한채 강렬하고 찬란하며 슬픈 향기를 내뿜고 있다. 자연스레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가 산행 내내 입에 맴돈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직진하여 봉우리를 치고 오르는데 잡목의 저항이 아주 심하다. 게다가 뙤약볕에 노출되어 아주 힘이 든다. 10:52, '566봉'에 올라섰다.
# 윤판나물.
# 고광나무.
# 덜꿩나무. 밤꽃향이 난다.
# 백선.
# 오늘 구간의 대세(大勢) 찔레꽃.
# 산행 내내 입에 맴돌던 노랫구절이다.
# 상회마을로 올라오는 도로.
아래로 내려 잔봉 하나를 넘고 곧 한차례 밀어 올려 봉우리에 오르는데 좀 전 봉우리와 고도가 같다. 그러더니 큰 오르내림 없이 편하고 길게 진행하게 만든다.
길게 가다가 돌무덤이 있는 봉우리에 이른다. 호식총(虎食塚)인가? 곧 벌목지를 지나고 바람 좋은 숲이 나타나 짐 내려놓고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11:50~12:25)
# 호식총.
점심 후 짐 챙겨 출발했다. 잠시 후 숲을 벗어나 '벌목지'에 도착했다.(12:35) 벌목지는 산수유 농장이다. 곧 다시 숲으로 들어가고 희미한 옛 고개가 연달아 나타난다. 그러다 다시 햇볕에 노출되어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오름 중간에 파란 안내판이 서 있고 고도계엔 400이 찍힌다.
이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떨어지고 숲을 벗어나 인삼밭 상단에 올라서게 된다. 좌측으로 상월리 마을이 보인다. 인삼밭을 지나 우측으로 내렸다가 다시 위로 올라가면 삼각점이 있는 416.2봉이 나온다.(13:15)
# 숲을 벗어나고.
# 산수유농장 상단에 서게 된다.
# 추울 때 지난 반더님, 더울 때 지나는 해리님과 강사랑.
# 인삼밭 상단에 서면 상월리가 내려다보인다.
# 인삼밭을 따라 오르고...
# 416.2봉.
우측으로 내렸다가 다시 치고 오른다. 430봉이다.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떨어진다. 안부에서 다시 찐하게 치고 오르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13:45) '478봉'을 넘고 잠시 진행하여 옛 고개인 '신전리재'에 도착했다. 잠시 후 봉우리 하나에 오르면 가야 할 정맥길이 조망된다. 전체적으로 우측으로 돌아야 하는 형상인데 478봉이 위용이 대단하다.
작게 오르내리다 한차례 밀어 올리면 '480봉'에 오르게 된다.(14:16) 정상 못 미쳐 좌측으로 떨어졌다 길게 진행한다. 이어 숲을 벗어나면 개간지가 나타난다. 개 3마리가 나타난다. 개 짖는 소리 요란하다.(14:35)
# 큰 서어나무가 서있는 신전리재.
# 개간지의 견공들!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들을 호통으로 제압하고 농장 울타리를 따라 올라갔다. 그러다 숲으로 들어가 봉우리를 넘는데 잡목의 저항이 아주 심하다.
잠시 후 숲을 벗어나고 햇볕 따가운 '밤나무단지'를 힘겹게 치고 오른다. 아이구 죽갔구나! 누가 이 구간이 쉽다고 했는가??? 낑낑 위로 치고 오르면 '황산재'가 나타난다.(15:10)
# 이 동네는 산을 개간한 곳이 많다.
# 농장 울타리를 따라 올라갔다.
# 가파르게 치고 올랐던 밤나무 밭.
# 황산재.
황산재부터는 넓은 임도가 쭈욱 이어진다. 그러다 숲을 벗어나자 앞이 툭 트이며 가야 할 정맥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잠시 가다가 우측길로 갈라져 진행하고 아래로 내려가면 고추밭들이 좌우에 도열해 있다.
다시 갈림길이 나와 포장된 길을 버리고 좌측 임도로 진행한다. 뜨거운 햇볕에 노출되어 걷자니 힘이 많이 든다. 이후 갈림길이 여러 개 나오지만 표지기들이 잘 되어 있어 길찾는 데는 문제 없다.
농장들 사잇길로 쭈욱 진행하다가 봉우리를 만나 포장도로를 버리고 산길로 올라간다. 묘지들을 지나고 파란 물통이 있는 박이뫼산에서 '비닐하우스가 있는 고갯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우틀하여 아래로 내려가는데, 임도를 누군가 나뭇가지로 막아 두었고, 우측 숲으로 들어가라고 표지기들이 많이 매달려 있다.
숲길로 들어가 잠시 아래로 내려가면 슬치 모텔단지가 나타나고, 바로 아래에 있는 오늘 구간의 종점인 '슬치'에 내려서게 된다. (15:40)
# 햇살 뜨거운 전라도 황톳길.
# 앞이 툭 트인 곳을 만나고 곧 우측길로 꺾어 들어간다.
#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 전봇대 있는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
# 바람에 파랗게 춤을 추고 있는 밀밭을 만난다.
# 박이뫼산 중턱 비닐하우스가 있는 고개에서 우측으로 떨어진다.
# 임도 따라 내려가다가 우측으로 꺾어 숲으로 내려간다.
# 슬치 모텔단지.
# 슬치의 관촌 휴게소.
전주와 이어진 17번 국도가 지나는 슬치에 내려서며 호남정맥 첫 구간의 산행을 마쳤다. 고개 우측 옆에 관촌 휴게소가 있다. 우리들 자동차 세 대가 뙤약볕 아래 지글지글 끓고 있다. 얼른 흙먼지 대충 털어내고 차 시동 걸어 해리님팀 픽업하러 출발했다. 불재로 나는 듯 달려갔더니 해리님 부부와 전서방님 부부는 벌써 산행 마치고 불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두 팀으로 나눠서 한 구간 간격으로 산행을 하니 차량 회수가 쉬워서 좋다. 슬치로 다 함께 돌아와 휴게소에서 다슬기 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이로써 7개월 동안 짐을 꾸렸다 풀었다 반복하며 재기만 했던 호남길에 드디어 첫걸음을 내디디게 되었다. 이제는 꾸준히 발걸음 보태 천릿길 전라도 산길을 걷는 일만이 남았다.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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