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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세번째(염암부락재~솔개재)-여우치에서 만난 여우비! 본문

1대간 9정맥/호남정맥종주기

[호남정맥]세번째(염암부락재~솔개재)-여우치에서 만난 여우비!

강/사/랑 2009. 6. 8. 00:33
[호남정맥]세번째(염암부락재~솔개재)

  

여우비


시간 속에 늙어온 남자가 / 후드득 후드득 비를 맞는다. / 둔해 가던 감각들이 / 깜짝깜짝 놀라면서 비를 맞는다. / 
탯줄에 매달린 / 애처럼 / 애호박이 점점 살찌는 여름 / 물로 가득한 줄기들은 / 꿈틀거리며 태양을 향해 기어오르고 / 자라나며 굵어지던 등뼈 속에 / 점점 커지던 얼굴 속에 / 쭈굴쭈굴 시들던 꿈의 떡잎, / 체념이 / 충동을 억누르며 / 글썽이는 땅 위에서 / 두꺼운 체념을 뚫고 / 충동이 화산처럼 불을 뿜지 못하는 / 마그마 같은 가슴, / 가슴이 점점 식어 굳어가는 땅 위에서 / 결실도 없이 늙어온 남자가 / 후드득 후드득 비를 맞는다. / 커다란 초조 속에 / 깜짝깜짝 놀라면서 비를 맞는다.

 

- 최승호

 

여우비는 볕이 있는 날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를 말한다. 여름철은 대기가 불안정하다. 그래서 순간적인 소나기가 쉬 발생하는 것이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은 여우를 변덕이 심하고 요사스러운 동물로 여겼다. 볕 있는 날 내리는 변덕스럽고 요사스런 비라 여우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옛사람들이 생각한 요사스런 여우의 극치는 구미호(九尾狐)이다. 구미호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이다. 꼬리가 아홉 개나 달렸으니 요물(妖物) 중의 요물이다. 요물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리하여 구미호에 관한 전설이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천 년 동안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다가 사랑에 빠지거나 다른 형태의 실수로 인하여 꿈을 이루지 못하는 가슴 아픈 얘기들로 이뤄져 있다. 여우가 단순한 공포의 대상 만은 아니고 연민의 느낌까지 공유한 존재였던 모양이다.

 

우리 어릴 때에도 여우가 사람을 홀리는데, 사람을 세 번 뛰어넘으면 혼이 빼앗긴다고 어른들이 겁을 주곤 했다. 우리 동네 아랫녘에 6.25 때 인민군이 사람들을 집단학살한 곳이 있었다. 그곳엔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파란 인불이 날아다닌다 하였다. 그럴 때면 어른들은 여우가 사람뼈를 물고 다녀서 그렇다고 해서 그 근처는 얼씬도 못하게 했다.

 

전해지는 이야기 속의 여우는 교활하고 간악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인간을 홀리고 간을 빼먹는 공포의 존재가 여우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우는 아주 겁이 많고 조심성이 강한 소심한 동물이다. 야생(野生)에서도 먹이 사슬 중 상위 포식자에 속하지 못하고 중간 포식자로 늘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한다.


문명 발달하면서 인간의 영역은 넓어지고 야생동물의 영역은 줄어든다. 원래 위태로운 중간 포식자의 위치에 있던 여우의 영역은 더욱 쪼그라들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선 이미 여우가 멸종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여우는 그렇게 희귀한 동물이 아니었다. 여름밤 모깃불 피워놓고 마당 평상에 누워 있노라면 뒷산에서 여우가 캑캑 우는 소리가 늘 들리곤 했다.

 

어느 해인가? 초등학교 3, 4학년이나 되었나? 설날에 쓸 떡을 윗동네에 있는 떡방앗간에서 만들어서 할머니랑 어머니랑 같이 리어카에 싣고 캄캄한 산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 길옆 숲속에서 여우가 계속 따라오며 짖어대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우리는 겁이 나서 나는 듯 달려 도망을 쳤다. 그 와중에 그래도 나는 남자라고 중간중간 숲으로 돌을 던지곤 했던 기억이 난다. 혼비백산하여 집에 왔더니 한겨울인데도 땀이 범벅되어서 온몸에 김이 무럭무럭 났었다.

 

이렇듯 여우는 오랜 세월 우리 이야기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져 왔고 최근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동물이었다. 다시 여우비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고향에서는 이 여우비를 호랑이 장가간다고 표현했다. 산중의 왕 호랑이가 장가 가는 날에 하늘이 감응(感應)하여 비를 잠깐 내린다고 생각했나 보다.

 

우리 조상님들이야 여우를 요사스럽고 변덕 심한 동물로 보아 햇볕 난 날 내리는 비를 여우비라고 표현했지만, 여우비는 감성 메마른 오늘날 우리네 가뭄 든 가슴에 잠깐잠깐 내려주는 감성의 감우(甘雨)이자 희우(喜雨)다.

 

호남정맥 세 번째 구간 묵방산 내리막엔 '여우치'란 고개와 '여우치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여우란 이름 때문에 꼬리 아홉 달린 여우와 관련된 아련한 옛이야기가 있을 법하지만, 실상은 한자로 '如牛'라고 기록한다. 즉, 고개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것처럼 생겨서 얻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산행 도중 현지에서 만난 어느 촌로(村老)는 고개가 소 코뚜레처럼 생겨서 여우치라고 한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실제는 여우와 관련된 옛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한자화하면서 여우치(如牛峙)라고 표기했고, 후세에 이를 해석하면서 소를 닮아 여우치라고 한다고 왜곡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현지 어르신의 증언을 듣고도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호남정맥을 홀로 종주하다 어느 시골마을에 내려섰다. 그 마을은 여우치 마을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여느 시골이 다 그렇듯 여우치마을도 이제는 폐가가 늘어 텅텅 비어가고 있었다. 가슴 아픈 농촌의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순간 갑자기 여우비가 쏟아졌다. 하늘 높이 해가 쨍쨍한데 고개 위에만 비가 내렸다. 여우치 고개에서 여우비를 만난 것이었다.

 

이 신비한 체험에 잠시 나는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멍하니 마을을 돌아보고 있었다. 비록 이제는 포장이 되어 있는 고개이지만, 여우치 아래에서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 한 마리 재주를 팔딱팔딱 넘으며 나타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 여우 나를 빙빙 돌며 혼을 빼앗고자 할 것 같았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잠시 멍하였다. 실물 여우가 아닌 이름과 이미지의 여우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호남정맥이 나에게 전하는 이야기인 듯하였다. 그랬다. 여우비 내리는 여우치에서 강/사/랑이 맞은 것은 단순한 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日常)에 찌들어 메마른 내 감성(感性)을 두드리는 호남정맥의 속삭임이었다. 

 


여우치에서 만난 여우비!

 

구간 : 호남정맥 제 3구간(염암부락재~솔개재)
거리 : 구간거리(16.3 km), 누적거리(59.5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9년 6월 6, 7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염암부락재(15:10) ~ 481봉 ~ 520봉(15:50) ~ 벌목지 ~ 365봉 ~ 소금바위재 ~ 2봉(17:05)
 ~ 3봉(17:47) ~ 4봉/국사봉 갈림길 ~ 전망대 ~ 오봉산(18:20) ~ 갈림길 ~ 덤불지대 ~ 749번 지방도(19:05) -~ 운암삼거리(20:00)/옥정호 쉼터에서 야영.

운암삼거리(08:15) ~ 350봉(08:50) ~ 묵방산(09:43) ~ 여우치마을 ~ 여우치 ~ 283.5봉 ~ 가는정이(11:00) ~ 알바 ~ 벌목지 ~ 성옥산(13:50) ~ 솔개재(14:10).

           
총 소요시간 10시간 45분.


6월 6일 흙의 날.
유월 첫 주말이어서 그런가 수도권을 빠져나가는 모든 도로는 아침 일찍부터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내가 서식하는 산본에서 호남정맥 염암재까지는 한 개의 지방도와  두 개의 국도, 그리고 네 개의 고속도로를 거쳐야 한다. 모든 도로에서 극심한 정체를 겪은 끝에 염암재에 도착하니 집에서 꼬박 다섯 시간이 걸렸다.

 

그 다섯 시간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운전을 했고 점심도 굶었다. 에휴~~ 정맥이 뭔지....



염암/鹽岩(소금바우)


앞 산에 소금바우라는 바위가 있었다고 하고, 앞 산 이름이 소금산 또는 속음산 또는 속금산이었으니 속금산 바위의 뜻에서 온 말이라고도 한다

 

오봉산/五峰山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과 임실군 운암면, 신덕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513m로, 전주에서 구이면 운암대교 방면 20km 지점에 다섯 봉우리가 육산과 골산으로
어우러져 소모부락을 U자로 둘러싸고 있다. 활짝 핀 연꽃 모양을 한 연꽃봉, 떡시루 모양을 한 시루봉,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 모양을 한 병풍바위, 치마모양을 한 치마바위, 베틀바위 등 각기 다른 모양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옥정호와 모악산이 가깝게 보이고, 멀리 북쪽으로 경각산, 고덕산, 운장산, 마이산이 보인다. 산행에는 여러 코스가 있다. 제1코스는 오봉산휴게소, 백여주유소 동쪽 소모마을에서 시작한다. 논길를 따라 계곡 소폭포를 지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감나무숲을 지난다. 제5봉, 제4봉, 제3봉을 차례로 돌아 오른쪽 비탈길로 정상에 오른 뒤 남능절벽지대로 내려온다. 대모마을을 지나 정자마을 버스정류장으로 하산하면 4시간 30분 걸린다. 제2코스는 오봉휴게소, 백여주유소 동쪽 소모마을에서 시작해 계곡길을 따라 오른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 정상에 닿은 뒤 제3봉을 거쳐 갈림길에서 동북능선을 탄다. 급경사길을 내려와  내량마을을 지나 운암면소재지로 하산하면 5시간 걸린다. 제3코스는 운암댐휴게소에서 운암상회를 거쳐 호반길로 둔기자연산장 앞을 지난다. 마암리 백암마을, 갈궁절을 지나 국사봉 남쪽 능선을 타고 국사봉, 제3봉, 제2봉을 거쳐 주봉에 오른다. 계곡길로 오봉산장을 지나 소모마을로 하산하면 6시간 걸린다. 대중교통편은 전주시에서 운암, 강진, 순창행 시내버스를 타고 백여주유소 앞에서 하차한다. 승용차로는 전주인터체인지에서 전주서부우회도로를 경유해 평화동 사거리에서 강진, 순창 방면 27번 국도로 진입해 백여주유소 앞, 오봉산 입구를 지나 소모마을, 오봉산장 앞까지 간다.


갈담저수지/葛潭貯水池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과 정읍시 산내면(山內面)에 걸쳐 있는 저수지. 면적  768㎢ . 옥정호(玉井湖), 운암저수지, 섬진저수지, 산내저수지라고도 한다. 유역면적 768㎢, 만수면적이 26.5㎢, 하천길이 212km, 총조수량만도 4억 3천만 톤에 이른다.섬진강 상류의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龍水里)와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宗聖里)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목적댐 건설로 이루어졌다. 담양호(潭陽湖), 장성호(長城湖)와 함께 농업용수를 인근 평야에 공급하며, 내장산국립공원에 인접한 낚시터이기도 하다. 북서 방향으로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옥정리/玉井里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서부에 있는 리(里)이다. 조선시대 중엽 밀양손씨가 정착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며 옛 이름은‘손실’이었다. 어느 스님이 마을을 지나가다가 머지않아 이곳이 옥정(玉井)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정리라는 지명으로 개칭되었다. 1965년 옥정리와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사이의 섬진강 상류를 가로 막아 축조한 섬진댐이 완공되었다. 섬진댐으로 인해 형성된 호수는 마을 이름을 따서 옥정호(玉井湖)라 하는데 운암저수지(운암호) 또는 섬진호라고도 불린다.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마을 주민 일부는 전라북도 부안의 계화간척지로 이주하였고, 마을은 수몰선 위쪽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른다. 옥정호는 저수면적 26.5㎢, 총저수량 4억 3,000만t에 이르는 커다란 호수로, 경치가 수려하여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호남정맥 제 3구간 염암재~솔개재 지형도(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염암재 고개 꼭대기 한 쪽에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하는데 맞은편 경각산에서 산꾼 한 사람이 달려 내려온다. 그러더니 다음 들머리를 촬영하고는 고개 넘어 염암 쪽으로 내려간다. 차림으로 봐서는 정맥꾼 같은데... 520봉이 엄청 빡센데 혹시 우회로가 있나??

 

산행준비 마치고 그 사람이 갔던 고개를 넘어 가보지만 눈에 띄는 우회로는 보이질 않고 그 산꾼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어디로 갔을꼬? 그냥 일반 등산객인가?  궁금증 물리치고 얼른 산행준비를 마친 후 염암재를 출발했다. (15:10)

 

 

# 염암재 들머리.  

 

 

# 깎아지른 절개지 사이의 염암재.

 

 

들머리 숲길을 잠시 가면 우측 능선으로 올라가라고 표지기들이 나부끼고 있다. 능선 따라 잠시 가면 좌측 사면에 폐허가 된 비닐하우스 가옥이 있다. 작년에 이곳을 지나간 선답자의 사진엔 사람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오더니 거주자가 떠났는지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다.

 

곧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된다. 경사가 어찌나 급한지 코가 땅에 닿을 지경이다. 종아리가 팍팍해질 무렵 '481봉'에 오른다. 이름도 얻지 못한 봉우리가 시작부터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구나.

 

숲 너머로 520봉이 우뚝 솟아 있다. 우측 숲이 터진 곳으로 가야 할 정맥길이 보이는데, 지형으로 보아 염암재 우측 너머로 지름길이 있을 법해 보인다. 아래로 잠시 내렸다 또 한차례 쎄가 빠지게 밀어 올리면 '520봉'에 올라서게 된다.(15:50)

 

 

# 살던 사람이 떠나고 폐허가 된 비닐하우스 가옥.

 

 

# 481봉 우측 너머로 가야 할 정맥길이 보인다. 아래로 내렸다가 밀어 올려야 한다.

 

 

# 520봉 정상.

 

 

# 2봉에서 5봉으로 흐르는 산줄기.

 

 

520봉 내리막은 대간 정맥길 중 손가락에 꼽을 만한 울트라 급경사 내리막이다. 급경사 내리막에 잔돌들이 깔려있어 경사에 서기만 해도 자동으로 미끄러져 내린다. 스틱으로는 버티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무들을 붙들고 매달려 내려가야 한다. 비탈의 나무들을 지그재그로 붙들고 미끌어져 내려가는데, 어찌나 힘을 주었던지 무릎이 시큰시큰하다.

 

길게 내려가면서 520봉 올랐던 고도를 모두 까먹었다. 곧 잡목숲이 앞을 가로막는다. 억지로 헤치며 내려가면 임도가 나타난다. 아마도 520봉을 우회하는 길이 있는 듯하다. 깨끗하게 정리된 묘지가 나타나면서 내리막은 끝이 난다. 520봉에서 고도를 200m나 까 먹었다.

 

 

# 경사가 어찌나 급하던지 그냥 죽죽 미끄러져 내린다.

 

 

# 쥐똥나무 꽃. 향기가 강렬하다.

 

 

# 개망초 하얗게 피어있는 묘지에서 520봉을 돌아 본다. 이름도 없는 봉우리가 오르막, 내리막 모두 악명을 떨친다. 

 

 

묘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16:20). 계단식으로 서서히 고도를 높여 간다. 곧 '벌목지'가 나오면서 우측으로 산을 휘감는 임도가 보인다.

 

조금 오르면 '정읍 국유림 100'이라 적힌 노란 표지기가 나온다. 이 표지기는 염암재에서 1번으로 출발하더니 어떤 곳은 10m정도, 어떤 곳은 20m 정도의 간격으로 계속 매달려 있다. 바로 위에 삼각점이 있는 '365봉'이 나온다. 봉우리라기 보다는 능선 마루금이다. 지도에는 이곳을 '소금바위재'라고 적어 두었다.(16:30)

 

 

# 정맥을 따라 계속 매달려 있던 국유림 표지기.

 

 

# 꼭대기가 아닌 능선 도중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 365봉. 

 

 

소금바위는 능선 너머에 있는 모양인데 가시거리 밖이라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잠시 올라 봉우리에 서고 우틀하여 내리면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임도에서 돌아보면 520봉의 위용이 드러난다.

 

잠시 임도 따라 오르다 임도가 끝나고 급경사 오르막이 이어진다. 호남의 단매를 단단히 맞았다. 한차례 빡세게 밀어 올리면 넓은 공터가 있는 '2봉'에 올라서게 된다.(17:05)

 

 

# 벌목지가 나타나고 벌목지 상단을 걸어 우측 산으로 올라간다.

 

 

# 2봉을 펼쳐서...(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2봉을 오르다 돌아보면 쎄가 빠지게 오르고 가파르게 미끄러져 내린 481봉과 520봉의 위용이 보인다.

 

 

# 펼치면 지나온 정맥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2봉 정상.

 

 

# 조망 없는 곳이지만 배낭 내리고 천지신명께 신고를 했다.

 

 

2봉 정상은 넓은 공터다. 배낭 내리고 막거리 한 잔, 사과 한 알로 천지신명께 입산 신고를 했다. 20여 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짐 둘러메고 출발했다. 1봉은 정맥 우측에 벗어나 있다.

 

잠시 내려가면 이정목이 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후 길고 완만하게 고도를 높여 간다. (17:47), 지도에 '518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3봉'에 오른다. 3봉은 2봉과는 달리 아무 표식도 볼품도 없는 무명봉이다.

 

직진하여 내려가다 곧 평탄하게  진행한다. 넓은 공터를 지나고 중간중간 갈림길이 여러 개 나타나는데 완만하게 고도를 높여가는 추세다. 그러다 우측으로 우회하는 갈림길을 만나는데 잠시 고민하다 직진하여 4봉을 오른다. 4봉에서 우틀하여 그냥 떨어지는 지형이기 때문에 바쁠 때는 그냥 우회하는 것이 좋다. 한차례 올리면 국사봉 갈림봉인 '4봉'에 오르게 된다.

 

 

# 소나무 숲길을 편하게 진행한다.

 

  

# 이정목이 있는 갈림길. 

 

 

# 우측으로 전망대가 있어 병풍바위를 올려다 보게 된다.

 

 

# 첩첩 산그리메도 감상한다.

 

 

# 국사봉 갈림길인 4봉. 정맥은 우측으로 곧장 떨어진다.

 

 

4봉은 옥정호 물가에 우뚝 솟아 있는 국사봉으로 갈라지는 분기봉이다. 정맥은 우측으로 곧장 떨어져 내린다. 안부에 이르면 좀 전에 만났던 우회로와 다시 만나고, 좌측 옥정호반쪽의 소모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도 있다.

 

직진하여 밀어 올리는데 계단식으로 힘을 나누어 쓰게 된다. 이번엔 좌측으로 전망대가 연달아 나타난다. 좌측의 조망은 모두 옥정호반이다. 5봉에서 바라보는 옥정호는 환상적인 포토 포인트이지만, 지금은 다리 공사 때문에 물을 모두 빼버려서 기대했던 조망을 볼 수는 없다.

 

물이 가득하던 호수엔 풀이 파랗게 자라 골프장처럼 변해 있다. 그나마 개스가 짙게 깔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올라 공터와 전망대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한차례 더 올리면 '오봉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18:20)

 

 

# 소모마을 갈림길.

 

 

# 물이 말라버린 옥정호.

 

 

# 그나마 개스가 짙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아쉽다! 이곳은 멋진 사진촬영장소로 유명한 곳인데...

 

 

# 정자가 있는 쉼터를 땡겨본다. 나중에 저곳에서 하룻밤 유해야지...

 

 

# 공터가 있는 봉우리.

 

 

# 전망대가 계속 나타난다. 

 

 

# 오봉산 정상.

 

 

# 오봉산 정상에서의 파노라마. 좌측 산줄기 타고 올라와서 우측 산줄기 타고 내려갔다. 우측 정면 봉우리에서 우틀하여 내려가야 한다. 좌측 끝에 뾰족한 봉우리가 국사봉이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오봉산에서 바라보는 옥정호의 조망은 정맥길 중 손꼽히는 뛰어난 조망처다. 특히나 물안개 피어나는 아침 무렵의 옥정호 풍광은 환상 그 자체다.


그러나 오늘은 공사 때문에 물을 빼버려 물안개는 고사하고 물은 한 방울도 구경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짙은 개스가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우고 있어 온통 흐릿한 조망뿐이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잔뜩 기대하고 오봉을 올랐는데... 어쨌거나 오봉을 다시 한번 찾아야 할 명분이 생긴 셈이다.

 

정상을 내리자 곧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가파르게 떨어져 내리게 된다. 그러다 봉우리 하나를 살짝 오르는데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런데 양 방향 모두 표지기가 전혀 없다. 일단 좌측길을 선택해서 아래로 내려가는데 계속 표지기가 전혀 나타나질 않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아니다. 이렇게 내려가지는 않는다! 다시 봉우리를 낑낑 올라 복귀하고 우측길로 내려가보는데 저 아래 표지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잠시 후 엄청난 '잡목숲'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냥 알바하여 편한 길로 내려가 버릴 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그 정도로 이 하산길은 지독한 덤불이 앞을 가로막는다. 긁히고, 넘어지고, 아야 아야 비명 지르고... 뙤약볕 아래 이 길을 지난다면 곧바로 쓰러지겠다.

 

잡목숲을 악전고투하며 길게 내려가면 '시멘트 임도'를 만나고 잠시 더 가면 옥정호 주위를 지나는 '749번 지방도'에 내려서게 된다. (19:05)

 

 

# 백여리쪽 계곡과 가야 할 정맥길.

 

 

# 잡목숲이 앞을 가로막는다.

 

 

# 잡목숲과 악전고투하며 싸워 내리면 749번 도로에 서게 된다.

 

 

잡목과 가시덤불에 긁히고 찔려서 이곳저곳 따가운 곳이 많다. 몸 대충 털고 주변을 살피니 도로 건너편 야산으로 올라가라고 표지기들이 나부끼고 있다. 그러나 그 야산으로 올라가서 100여m진행하다 다시 이 도로로 내려와야 한다. 그곳을 올라갈 내가 아니쥐~~

 

도로 따라 잠시 걸으면 고개가 나오고 정맥은 도로와 나란히 진행하며 200m급 봉우리 서너 개를 올록볼록 오르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곳 역시 잡목이 많고 이미 날이 어둑해져서 어두운 숲길을 잡목과 싸울려고 하니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그냥 도로를 따라 운암삼거리로 향했다.

 

그러나 이 도로도 그냥 평탄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산의 오르내림과 맞춰 올랐다내렸다를 반복한다.  에이~ 지나가는 차 세워 얻어 타고 가세! 그러나 이 749번 도로는 옥정호 주변을 따라 구불구불 도는 관광도로라 늦은 시각에 다니는 차가 거의 없다. 어쩌다 있는 차들도 인적 드문 밤길에 중무장하고 차를 세우는 수상한 사람에게 베풀 인정은 없나 보다. 그렇게 터덜터덜 길게 도로를 따라 걷다보니 '운암삼거리'에 도착한다.(20:00)

 

 

# 정맥은 고개 우측 야산으로 올라 길게 진행해야 한다.

 

 

# 운암삼거리.

 

 

# 정맥꾼들에게 유명한 어부집.

 

 

 

캄캄한 운암삼거리엔 매운탕으로 유명한 어부집 불빛이 밝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1인분으로 먹을 식단도 없고 일단 염암재에 세워둔 차량 회수가 먼저다.

 

삼거리에서 지나는 차량을 한 대 세웠는데 운 좋게 전주로 가는 분들이어서 한 방에 염암마을 입구까지 순간 이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염암재는 낮에도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곳이고 대중교통은 전혀 연결되지 않는 곳이다. 삼거리에서 한참을 기다려보지만 염암고개 쪽으로 방향을 꺾는 차는 전혀 없다.

 

결국 걸어서 염암고개를 오르는 수밖에 없다. 염암마을에서 염암재 정상까지는 구불구불한 구절양장의 고갯길이 아주 길게 이어진다. 어두운 밤길을 터벅터벅 걸어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올라 갔다. 그렇게 한 30여 분 이상을 걸었나? 불빛 하나가 고갯길을 구불구불 올라온다. 다행히 그 차가 세워주어서 고개 중간에서 차를 얻어타고 염암재 정상까지 오를 수가 있었다.

 

두 번의 히치와 30여 분의 고갯길 탐방 끝에 차를 회수하였다. 이후 운암삼거리로 복귀하여 다리를 넘어 막 불을 끄는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그리곤 749번 도로를 다시 달려 잠자리를 찾아 옥정호 정자로 향했다.

 

그러나 옥정호 정자의 진입도로를 포크레인으로 파헤쳐 두어 올라갈 수가 없다. 게다가 이곳에서 좋지 않은 일들이 여러 번 있었다고 저녁을 먹은 식당 주인이 그곳에서 자지 말라고 말렸다. 음...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을 어찌하지는 않을 테지만 굳이 이곳에서 잠자리를 고집할 일은 없다.

 

국, 옥정호 정자의 화장실에서 간이 샤워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산행 중 오봉산 정상에서 봐둔 국사봉 아래 쉼터로 이동하였다. 그곳 정자에 집 한 채 짓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생각이 많아서인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번 깨기를 반복하며 긴 밤을 보낸 후 아침을 맞았다. 간단하게 아침 끓여 먹고 다시 옥정호 정자로 이동하여 화장하고 운암삼거리로 복귀했다.

 

 

 

# 혼자서 외로운 밤을 보낸 국사봉 아래 쉼터. 

 

 

# 옥정호 정자. 진입로가 파헤쳐 있어서 이곳에서 밤을 보내진 못 했다. 무서운 이야기도 몇 가지 들리고...

 

 

# 저 다리 공사 때문에 옥정호 물을 다 빼 버렸다.

 

 

# 운암삼거리로 복귀하여 산행준비를 했다.

 

 

운암삼거리는 749번 지방도와 27번 국도가 만나는 곳인데, 27번 도로는 전주에서 구이, 순창을 거쳐 강진으로 이어지는 국도다. 삼거리 우측 마을이 초당골이어서 일부 산행기에는 운암삼거리 대신 초당골이라고 호남정맥 구간표시를 해 두었다.

 

초당골 입구 공터에 주차하고 가볍게 몸을 푼 후 산행을 시작했다.(08:15). 어부집 좌측으로 올라가면 묘지들이 있고 곧 산길이 이어진다. 시작부터 찐하게 밀어 올린다. 호남은 이름도 없는 봉우리들이 곳곳에서 사람을 고생시키는구나...

 

20여 분 쉼 없이 올려 부치더니 봉우리에 오르고 잠시 편하게 진행했다. 다시 조금 오르면 봉우리가 다시 나오고 우측으로 내렸다 다시 잠시 오르면 '350봉'이 나온다.(08:50)

 

 

# 들머리에서 올려다보니 묵방산이 운무 속에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 가파르게 계속 밀어 올려 350봉에 오른다.

 

 

이 350봉은 만경강과 동진강의 분수봉(分水峰)이다. 그냥 무작정 가파르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이 정도의 이름은 갖춰야 가파르게 오른 이름값을 하는 것이다.

 

정상에는 전북 산사랑회의 스테인레스 정상목과 백곰님의 안내판이 걸려있다. 이정목에는 묵방산 1.3km/ 모악산 15.8km 거리라고 적어 두었다. 이 산줄기를 타고 우측으로 가면 모악산으로 이어지는 모양이다.

 

좌틀하여 내리다 서서히 고도를 낮춰가며 길게 진행한다. 숲 너머로 묵방산의 위용이 언뜻언뜻 보인다. 고도계 확인하니 280이 찍힌다. 그렇다면 앞으로 250m를 더 밀어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하나둘 숫자를 세며 오름에 몸을 맡긴다. 1,018걸음을 세자 봉우리 하나에 오르는데 고도계는 아직 430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아직 100m를 더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아이구야~

 

좌측으로 잠시 내렸다가 다시 계단식으로 가파르게 밀어 올린다. 헉헉대며 올라 숫자를 1,980을 세자 '묵방산 갈림길'에 도착할 수 있다.(09:38). 이곳에서 정맥은 좌측으로 꺾이지만, 우측으로 조금만 더 진행하면 '묵방산 정상'에 설 수 있다.(09:43).

 

 

# 묵방산 갈림봉.

 

 

# 묵방산 정상.

 

 

배낭 벗어두고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가는 바람이 불지만 거풍까지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정상을 도로 나와 묵방산 갈림길로 복귀했다. 이후는 고도를 낮춰 가며 하산을 하게 된다.

 

그러다 능선에서 좌틀하여 가파르고 길게 떨어져 내린다. 길게 아래로 내리면 대밭을 만나게 되고 잠시 후 '여우치 마을'에 내려선다.

 

 

# 어제보다 더 짙은 개스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 여우치 마을 우측의 계곡.

 

 

# 여우치 마을 대밭의 죽순. 저넘을 삶아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나물로 무쳐 먹으면 아주 맛나다.

 

 

# 여우치 마을.

 

 

여우치마을은 정맥의 강한 기운을 이기지 못 했는지 빈집이 많다. 퇴락해 가는 한국 농촌의 전형적인 모습인 듯하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헤매다가 역시나 폐허가 되어가는 마을회관 우측으로 돌아가니 표지기들이 손짓하고 있다. 잠시 후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를 만나고 잠시 더 가면 '여우치 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 문을 잠궈둔 마을회관 우측으로 돌아가면 정맥길이 이어진다.

 

 

#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를 만나 꼭 끌어안고 기(氣)를 얻었다.

 

 

# 다시 소나무를 지나 여우치고개로 향했다.

 

 

# 여우치 고개. 

 

 

여우치는 여우와 관련된 오랜 전설이 있을 법 하지만, 이곳저곳 자료를 찾아봐도 마땅한 대답을 얻을 수가 없다. 다만 현지에서 만난 촌로에게서 이곳이 한자로 '같을 如', '소 牛' 자를 써서 '如牛峙'이고 이 고개의 모습이 소 코뚜레를 닮아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여우치란 이름은 분명 여우와 관련된 옛 얘기가 있을 것인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소를 닮아 여우치라 불렀다는 엉뚱한 해석으로 와전되었을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대간길 거창의 '뼈재'는 동물뼈, 사람뼈와 관련된 전설을 가진 곳인데, 이 지역 사투리로 '빼재'라고 부른 것을 한자로 '빼어날 秀' '고개 嶺' 자를 써서 '수령(秀嶺)'이라 왜곡하여 기록하고 이 고개가 빼어난 경치를 가져 빼재라고 불렀다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의 여우치는 농촌 인구가 고령화되고 줄어들면서 마을엔 전설은 고사하고 산 사람조차 그 수가 급감하여 빈집이 이곳저곳 눈에 들어오고 한낮인데도 인기척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여우치 고개에 서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늘 한쪽엔 햇살이 비치고 있는데, 비가 내리다니? 여우치 고개에서 여우비를 만난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래! 여우치는 틀림없이 여우와 관련된 전설이 있는게야! 이렇게 여우비가 내리는 걸로 봐선...

 

좍좍 내리는 수준은 아니지만 꾸준히 비가 내린다. 그래서 얼른 짐 챙겨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숲속은 이미 빗물에 젖어 수풀들이 흠뻑 젖어 있다. 금세 온몸이 축축해진다. 한차례 낑낑 올리면 '283.5봉'이 나오고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어 아래로 내려가면 '가는정이'에 도착한다.(11:00)

 


# 여우치엔 매실 과수원이 있다.

 

 

# 여우비 내리는 여우치에서 돌아본 묵방산.

 

  

# 여우비에 흠뻑 젖은 숲.


 

 

# 칡잎사귀에 맺힌 은방울들.

 

 

# 묘지와 소나무숲을 지나 내리면 좌측에 옥정호가 보이고 가는정이에 도착한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비로소 옥정호의 물을 볼 수 있다.

 

 

# 묘지 한 켠을 노랗게 뒤덮은 고들빼기 군락.

 

 

# 가는정이.

 

 

가는정이는 옥정호를 돌아온 479번 도로가 산내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삼거리의 '옥정호 산장' 간판 쪽으로 올라가면 정맥길을 이어갈 수 있다.

 

여우비는 그야말로 여우 짓이라 금세 그치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다. 그러나 젖은 수풀 탓에 몸은 완전히 척척하게 젖어 버렸다. 삼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물 털고 몸을 말리고 있는데, 사진 장비를 둘러멘 사람이 옥정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에 의하면 옥정호의 원래 포토 포인트가 오봉산인데, 지금은 물이 말라 이곳 하류의 장자골 쪽으로 가야 사진을 건질 수 있다고 한다. 오봉산에서 좋은 사진을 기대하고 왔는데, 물 마른 옥정호 때문에 실망이 컸던 터라 그 사람을 따라 옥정호 쪽으로 걸어갔다.

 

 

# 옥정호산장 간판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 이곳도 수량이 적긴 하지만 그래도 물구경은 할 수 있다.

 

 

 

# 물길이 그려낸 흔적도 볼 수 있다.

 

 

# 장자골 쪽으로 가면 이런 조망을 볼 수 있다.

 

 

# 호수 물결이 만들어 낸 특이한 형태의 지형이 나타난다.

 

 

# 골프장 그린을 닮았다.

 

 

# 물결이 만든 흔적이 나이테를 닮았다.

 

 

사진 찍기 좋은 곳 찾아 걷다 보니 너무 많이 걸어 들어와 장자골까지 와버렸다. 다시 가는정이까지 돌아가려니 왠지 억울한 듯해 지도 꺼내 지형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이 포장도로가 옥정호 주변을 휘휘 감아 돌아가는데, 운정리에서 고갯길 하나가 정맥을 넘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래 물에 흠뻑 젖은 숲길 다시 들어가느니 일단 도로 따라 가다가 고개를 만나거든 정맥에 복귀하자! (이 결정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어느새 여우비 그치고 뙤약볕 강렬한 도로를 따라 진행하였다. 이곳은 호숫가 일주도로라 구불구불 참 멀고 길게도 간다. 지도상으로는 1, 20분만 걸으면 될 듯했는데, 무려 한 시간 가까이 걸어도 고갯길이 나오질 않는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지도 꺼내 주변 지형 확인하는데 와도 너무 많이 와버렸다!

 

옥정호 호숫가에 있는 범머리 마을까지 와 버렸다. 중간에 산으로 올라가는 고갯길이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었는데, 보질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그것도 한참 한참 전에... 다시 도로 따라 돌아가는데 산으로 올라가는 넓은 임도가 보인다.

 

엄청나게 많이 지나왔기 때문에 저 임도가 애초에 계획한 고개가 아닌 것은 확실한데 뭐에 씌웠는지 그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한차례 밀어 올리니 넓은 묘지가 나타난다. 임도는 이 묘지 때문에 만든 도로다. 다시 돌아 내려가야 하는데 간략하게 표기된 지도를 너무 믿고는 산줄기를 타고 가 보기로 했다.

 

묘지 뒤 숲으로 들어가는데, 곧바로 길은 사라지고 잡목들이 빽빽하게 앞을 가로막는다. 정맥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북진해야 하기 때문에 방향을 북쪽으로 잡고 숲을 헤치며 계속 전진했다. 빽빽한 잡목 숲을 헤쳐 나가자니 너무나 힘이 든다.

 

얼마나 갔을까? 우측 아래에 뭔가 희미한 길이 보인다. 올타쿠나! 그쪽으로 억지로 길을 내며 내려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타? 내려서서 확인하니 좀 전에 걸어 왔던 그 호숫가 도로에 도로 내려서 있다. 이럴수가!!!

 

온몸에 땀범벅이 되어서 잡목숲 속을 헤엄쳤는데 도로 길가로 내려오게 되다니... 정신을 차리자! 다시 도로를 따라 돌아가다가 지도 확인하고 능선 하나를 목표로 산을 치고 오른다. 역시나 길은 없는 곳이다. 일단 능선 마루금에 올라 서서 판단하자!

  

 

# 큰뱀무.

 

 

# 인동덩굴. 

 

 

끈질기게 앞을 가로막는 잡목들을 헤치고 헐떡헐떡 올라갔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람? 그냥 가는정이에서 정맥길로 순하게 가면 되는데, 사진은 무슨 사진이고 샛길은 무슨 샛길이람?? 혼자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화가 막 난다.

 

그렇게 쎄가 빠지게 밀어 올려 마루금에 오르지만, 숲이 우거져 능선의 흐름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일단 직감을 믿어 보기로 하고 좌측으로 무조건 최고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갔다. 이곳 역시 길은 전혀 없는 곳이다.

 

한차례 밀어 올려 봉우리에 오르자 비로소 방향 감각이 조금 생긴다. 이곳에서 나침반 정치하고 북쪽으로 이어진 마루금을 따라 진행했다. 한차례 올려 봉우리에 오르자 반가운 표지기들이 나타나고 정맥길에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너무 지치고 어이없고 화가 나서 반가운 줄도 모르겠다.

 

 

# 알바한 궤적.(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좌측으로 잠시 진행하자 '벌목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비로소 밝은 세상 구경을 좀 했다. 저 아래 인간세도 보인다. 벌목지를 지나 한차례 길게 밀어 올리면 '성옥산'에 올라서게 된다.(13:50)

 

 

# 벌목지.

 

 

# 깨끗이 밀어 버렸다.

 

 

# 종산리쪽 조망.

 

 

# 악전고투 끝에 도착한 성옥산.

 

 

1시간 반 정도면 족할 거리를 무려 2시간 50분이나 걸렸다. 하지만 누굴 탓하리! 다 내 어리석은 탓인걸!! 오늘 구간 마지막 봉우리의 감격이나 기쁨 그딴걸 느낄 여유가 없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성옥산을 물러났다. 잠시 진행하면 역시나 벌목지가 나온다. 벌목한 지 좀 되었는지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 중인데, 지금은 독초인 미국자리공이 우점종이다.

 

벌목지 끝으로 나오면 본격적인 내리막이 시작되는데, 오늘 구간 종착지인 솔개재가 저 아래 보인다. 길게 내려가면 많은 묘지들을 지나게 되고 경작지를 지나 '솔개재'에 도착한다. (14:10)

 

 

# 미국자리공이 무성한 벌목지 상단을 지난다.

 

 

# 저 아래 솔개재와 외목마을이 보인다.

 

 

# 경작지를 지나 솔개재에 내려서게 된다.

 

 

#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솔개재.

 

 

솔개재는 길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곳인데, 우측으로  가는정이에서 산내면으로 이어지는 749번 도로와 만난다. 그러나 한적한 시골길이라 대중교통의 연결이 안되는 곳이다.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승합차 한 대가 고개를 넘어온다. 얼른 손 들고 세우니 고맙게도 세워 주신다.

 

조금 아래에 있는 749번 도로까지만 태워주십사 부탁했는데, 친절이 지나쳐  계속 달려 산내면 소재지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곳에서 가는정이로 가는 버스가 있다면서. 그런데 산내면에서 가는정이로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하지만,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단다. 아이구야~

 

게다가 산내면 택시는 모 심는다고 운행 중단이고, 칠보택시는 먼 외곽에 나가 있어서 올 수 없단다. 이런! 과잉 친절해 주신 게 오히려 독이 되었구나!

 

그냥 749번 도로에 세워 주셨으면 히치를 할 수 있을 텐데... 별 수 없다. 운암삼거리까지 걸어 가든지 가다가 지나는 차를 히치하는 수 밖에...

 

 

# 산내면은 소고기로 유명한 곳이다. 면소재지 전체가 소고기 집으로 가득하다.

 

  

산내면은 한우로 유명한 곳이라 시골 면 소재지에 불과하지만 아주 번화하다. 걸어서 면 소재지를 벗어나고 삼거리에서 가는정이 방향으로 우틀하여 749번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도로 우측에 수로가 이어지는데, 옥정호에서 방류한 물이 포말을 일으키며 우당탕탕 빠르게 흐르고 있다. 옥정호에 물이 마른 이유가 여기 있다.

 

뙤약볕 아래 20여 분 헉헉대며 걸어가는데, 마침 트럭 한 대가 접근한다. 손 들고 세우니 가는정이까지는 안 가고 중간에 종산리까지만 간다고 한다. 일단 가시는 데 까지만 부탁을 드리고 타고 나서 이단으로 기름값 드릴 테니 운암삼거리까지 부탁을 드였다. 다행히 승락해 주셔서 운암삼거리까지 한 번에 복귀했다.

 

운암삼거리에 복귀하여 짐 내리고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는데, 옷에 소금기가 하얗게 피어 있다. 비로소 오늘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실감이 난다. 옥정호는 이래저래 기억에 많이 남을 곳이다.

 

이제는 또 오래 운전해서 귀경하는 일이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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