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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두번째(슬치~염암마을재)-부부 산꾼들! 본문

1대간 9정맥/호남정맥종주기

[호남정맥]두번째(슬치~염암마을재)-부부 산꾼들!

강/사/랑 2009. 5. 31. 22:31
 [호남정맥]두번째(슬치~염암마을재)

  

이 넓은 세상 수많은 인간 군상(群像) 중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부부(夫婦)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다. 흔히들 부부가 한 10년 이상 살다 보면 애틋한 사랑보다는 끈끈한 정(情)으로 살아간다 말한다. 쉬 타올랐다 불꽃처럼 스러지는 사랑보다는 은근한 체온처럼 따뜻하고 오래 가는 정(情)의 온기(溫氣)를 말하고 싶었나 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부부를 이어주는 힘은 사랑과 정(情)도 있지만, '동지애(同志愛)' 란 말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문 열고 나가면 그곳이 곧 전쟁터인 세상에서 종일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싸우다가 상처투성이 몸으로 귀환했을 때, 상처를 씻어주고 약을 발라주며 또다시 전쟁터로 나갈 용기를 복돋워 주는 든든한 동지가 바로 부부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서의 동지(同志), 상처 입고 지쳐 쓰러질 때 말없이 상처를 닦아주고 감싸 안아주는 전우(戰友). 21세기 대한민국의 부부는 전쟁터 같은 살벌한 일상(日常)을 강한 동지애로 싸워 이겨나가는 눈물겹게 아름다운 전사(戰士)들이다.

 

우리 부부도 꽤 오랜 세월 함께 살아 온 터라 사랑과 정이 동지애로 변한 상황 쯤 된 듯하다. 처음 백두대간을 시작할 때 마눌에게 동행(同行)을 권유했고 마눌 역시 흔쾌히 동의를 했었다. 부부가 함께 힘든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는 것은 남들에겐 경이(驚異)의 대상이고 우리에겐 자부심(自負心)이자 서로에게 힘이 되는 강한 결속(結束)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백두대간 종주의 지난 2년 동안 매 주말 피곤한 몸 이끌고 먼 길 나서는 순간과 열 시간씩 열두 시간씩 힘든 산길 걷다 보면 매순간 신경이 날카로워져 사소한 일에도 다툴 일이 많았다. 특히나 산행을 준비하거나 집을 나서는 순간에 그럴 일이 참 많았다.


남들이 볼 때는 부부가 백두대간을 같이 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대단해 보여서 찬사를 보내고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당사자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산행 준비하면서 티격태격하다가도 막상 산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관계는 급속히 친밀해진다. 하루종일 힘든 산길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하고, 혹시나 지쳐 쳐질까 봐 보조 맞춰주고, 암릉 구간 만나면 발 디딜 확보를 해주기 위해 기꺼이 어깨를 내어준다. 아마도 위기 상황(危機 狀況)이 서로의 동지애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인 듯하다.

 

돌아보면 마눌과 같이 보낸 20여 년의 세월 중에 백두대간을 같이 종주한 2년 간이 가장 우리 부부 사이를 강하게 결속시켜 준 기간이었던 것 같다. 이른바 동지애의 결속인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산꾼 중에는 우리처럼 이렇게 부부가 같이 산길 걸으며 인생을 공유하는 짝들이 꽤 많이 있다. 우리보다 앞 시기엔 전수배 진희자님 부부, 산사자님 부부, 초록 부부, 조진대님 부부가 일단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와 같은 시기에 대간을 종주한 이들은 해리님 부부, 다정님 부부, 황악바람님 부부가 있고 아직 대간은 졸업하지 못했지만 9정맥을 거의 끝낸 백곰님 부부가 유명하다. 그리고 호랭이님 부부, 파키라님 부부가 대간을 졸업했거나 현역으로 산길을 걷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시방 강/사/랑 부부는 따로 국밥이다. 대간을 졸업하던 그해, 장모님의 영결(永訣)과 나의 갑작스런 발병(發病)으로 큰 충격을 받은 마눌이 종교 쪽으로 급선회하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한 사람은 교회로, 한 사람은 산으로 방향이 달라져 버렸다.

 

이번 호남정맥 두 번째 걸음은 슬치에서 불재를 거쳐 염암재까지다. 첫 번째 구간과 마찬가지로 해리님 부부와 전서방님 부부가 한 구간 앞에서 같이 산행을 하고, 나는 한 구간 뒤에서 홀로 산길을 걸었다.

 

홀로 산길 걷는 거야 늘상 하는 일이니 힘들 것도 외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산행 마치고 세 팀이 같이 야영하면서 홀로 침낭 속으로 들어가는데, 옆 텐트에서 두 부부가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걸 들으니 쬐끔 외롭기는 하였다.

 

또 둘째 날 불재에서 출발해서 활공장을 지나고 607봉을 향해 가는 길에 전주 사는 소머즈 부부를 만났는데, 순간 부럽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부인의 코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힘들면서도 행복한 산꾼 부부의 사랑을 보는 듯하여 더욱 그러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오래 가려거든 같이 가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 오래 가려거든 같이 가야 한다. 목숨 걸듯 앞만 보고 내뺄 것이 아니라 솔방솔방 주변도 돌아보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면서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래오래 같이 갈 수 있다.

 

두 손 꼭 잡고 산길 함께 걷는 산꾼 부부들이여!

오래오래 같이 그 길 가시옵소서!

그리하여 코끝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만큼 아름답고 많은 이야기를 만드소서!

 

음... 솔사랑! 자네도 다시 산길로 컴백하시오!

그대의 예수님도 산상수훈(山上垂訓)을 하지 않으셨소?

산(山) 위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는 법이라네!

 


부부 산꾼들!


 

구간 : 호남정맥 제 2구간(슬치~불재~염암마을재)
거리 : 구간거리(19.9 km), 누적거리(43.2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9년 5월 30, 31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슬치(12:40) ~ 실치재 ~ 벌목지 ~ 469봉(14:05)/점심 후 14:40 出 ~ 장재 ~ 철조망 ~ 갈미봉
(15:23) ~ 쑥재(16:10) ~ 옛고개 ~ 전망대 ~ 옥녀봉 갈림길(17:12) ~ 옛성터 ~ 효간치(18:25) ~ 경각산 전위봉 ~ 경각산(19:20) ~ 전망대 ~ 불재(19:55)/불재 아래 신덕리에서 야영 

불재(07:55) ~ 활공장 ~ 옛고개 ~ 봉수대 ~ 607봉(09:50)/휴식후 出 ~ 갈림길 ~ 작은불재(10:50) ~ 벌목지 ~ 바위전망대 ~ 염암마을재(12:10).

           
총 소요시간 11시간 30분.(1일차 7시간 15분, 2일차 4시간 15분)

 

2009년 5월 30일 흙의 날. 오늘도 나의 정맥길은 출발이 늦다. 9시에 집을 나서 39번 도로 타고 청북나들목까지 달리고, 그곳에서 안성~평택 간 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익산~장수 간 고속도로 합하여 다섯 개의 고속도로를 갈아 타고 완주 나들목으로 나갔다.(흐미~ 징한거~)


다시 17번 국도 타고 전주 시내 거쳐 죽림온천을 지나 한참을 달리니 목적지인 슬치재가 나온다. 12:30. 집에서 꼭 3시간 30분이 걸렸다. 멀다!


 

슬치/瑟峙

 

슬치는 저 옛날 도인이 비파를 뜯으며 고개를 넘어왔다 하여 비파 瑟, 고개 峙 슬치라 하였다. 하지만 다른 의견으로는 노령산맥의 지맥이 뻗어 나와 완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섬진강, 전주천의 분수령으로 지형이 마치 비파와 같다고 하여 '슬치'라고 불렀다 설도 있다.
 

관촌/館村

 

관촌면은 삼국시대 운수현의 상북방에 속하였다가 고려시대에 와서 운수현의 하북방으로 조선시대에는 운수현을 상북면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에는 임실군 상북면으로 바꾸고 1903년에는 상,하북면을 통합하여 오천면으로, 1935년에는 오천면을 관촌면으로 개칭되었다. 관촌의 유래는 옛지명인 오원(烏院)에서 신원(新院-새원이라 하여 지금의 신리)을 가려면 상관문 거리를 지나야만 하는데 성문은 비상시에 파수 또는 군사기지로 쓰였으나 평상시에는 불량배나 도적들이 밤늦게 통행하는 자들에게 피해를 주어 왔으므로 이곳 선천리에서 숙박을 해야만 했다. 이른바 객사마을이었는데 여관관(館)자를 붙여 관촌이라 하였으며 또한 전라선 철도를 개설 할때도 이곳에 사무기지를 두고 많은 사람이 머물었기에 관촌이 되었다.
 

경각산/鯨角山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에 있는 산. 높이 660m이다. 신라 말 견훤이 나라를 일으켰던 근거지인 모악산을 마주 보고 구이저수지 동북쪽에 솟은 암산(岩山)이다. 운암산 줄기가 마이산을 분기점으로 하여 동남쪽으로 장안산, 백운산을 일구고 서남쪽으로 만덕산, 경각산을 빚어 놓았다. 북쪽으로 고덕산, 동쪽으로 옥녀봉과 갈미봉이 있고 전주시가지와 구이저수지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전체적으로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모악산이 부드럽고 여성적인 산이라면 경각산은 이름 그대로 남성적인 느낌을 준다. 바위산 위로 펼쳐지는 겨울의 뛰어난 설경, 가을의 운치 있는 풍경이 모악산과는 또 다른 색깔을 지닌 산이다. 구이면 청명마을에서 경각산의 허리를 휘감고 불재를 넘어 운암으로 빠지는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경각산 서쪽 기슭에 고려 말기에 창건된 태고종 사찰로 원효대사를 비롯한 많은 고승들의 수도처였던 정각사가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호남정맥 제 2구간 슬치~불재~염암마을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슬치휴게소에 주차하고 얼른 산행 준비를 했다. 휴게소엔 막걸리가 없어서 캔맥주 하나를 챙겼다. 12:40. 슬치휴게소를 출발했다. 슬치는 '비파 瑟' 자를 쓰는데, 옛날 어느 도인이 비파를 뜯으며 이 고개를 넘었다고도 하고 고개의 형상이 비파를 닮아 얻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하긴 비파의 울림통을 엎어 놓으면 고개처럼 볼록하기는 하다.


한낮의 슬치엔 뙤약볕이 너무나 강렬하다. 슬치를 건너 안슬치 마을로 갔다. 지도 확인하니 원정맥은 745번 도로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모두들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오르나 보다. 나는 일단 745번 도로를 따르기로 했다.

 

잠시 도로를 따르다가 좌측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와 그곳으로 올라갔다. 산중턱의 밭들 위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다가 위로 올라갔다. 잠시 진행하면 동물 이동통로가 있는 '실치재'가 나타난다.



 

 

# 비파의 울림통처럼 볼록한 슬치.

 

  

#  일단은 도로를 따른다.


 

 

# 강렬한 파스텔 톤의 색감을 자랑하는 허수아비를 만났다.

 

 

# 실치재 동물 이동통로.

 

 

# 아래 도로는 절개지 경사가 가팔라 거의 협곡 수준이다. 

 

 

실치재는 슬치에서 변형되어 얻은 이름인 듯하다. 대간의 마늘봉 옆에 만월봉이 있고, 금북의 간대산(艮大山) 옆에 양대산(良大山)이 있듯이 같은 이름의 재가 나란히 있다가 하나의 음가(音價)가 변형되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동물 이동통로를 지나 넓은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임도 중간에 뱀 한 마리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가 낯선 인기척에 놀라 슬그머니 숲속으로 자리를 피한다.

 

뙤약볕이 강렬한 임도를 계속 따르는데, 이 임도는 방향이 곧장 북쪽을 향한다. 지도 확인하니 전주에서 타고 내려왔던 17번 국도를 우측에 두고 계속 북상하는 형태다. 이 임도는 넓고 평탄하여 자동차를 타고 진행해도 무방하겠다. 아니면 잔차를 타고 가도 좋겠고...

 

임도 주변에 야생화가 만발한데 지난주처럼 찔레꽃 향기가 제일 압권이다. 그 강렬한 찔레꽃 향기에 실어 홀딱벗고는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계속 "홀딱벗고! 홀딱벗고!" 울어댄다.

 

 

# 으아리.

 

 

# 덜꿩나무.

 

 

# 유채꽃 노란 꽃을 피웠다.

 

 

# 산딸나무. 

 

 

임도를 길고 길게 따르다가 한순간 앞이 툭 트이며 넓은 '벌목지'가 나타나는데, 이 벌목지는 마루금 좌우를 모두 벌목해 두어 좌우로 조망이 모두 좋다. 우측 아래로 17번 도로가 보이고 전방으로 469봉과 좌측으로 꺾어 휘어지는 가야 할 정맥길이 보인다.


벌목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갔다. 잡목의 저항이 아주 심하다. 잠시 후 봉우리 하나를 넘고 조금 내렸다 한차례 올리면 '469봉'이 나타난다.(14:05)

 


 

 

# 한순간 앞이 트이며 벌목지가 나타난다.

 

 

 

#  벌목지 상단에서 우측으로 본 파노라마.(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가야 할 정맥길.

 

 

# 이 지역은 군데군데 벌목을 많이 해 두었다.

 

  

# 469봉. 백곰님이 매단 안내판을 누군가 A/S해 두었다.

 

 

# 이곳에서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469봉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14:40 에 출발했다. 아래로 길게 구불구불 내려가면 폭발물 경고판이 서 있는 '장재'가 나온다. 장재는 고개가 길고 높아서 얻은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과 잡목 속에 묻혀 잊혀진 고개다. 희미한 고개를 지나 고도를 높여가며 길게 올라갔다.


지도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다는데 찾을 수가 없다. 완만하고 꾸준하게 올라 가면 새로 조성된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탄약부대에서 설치한 것 같다.  철조망을 따라 좌측으로 한차례 밀어 올리면 '갈미봉'에 도착한다.(15:23)

 

 

                             

# 묘지가 나와 전방을 보면 장재 너머 갈미봉이 우뚝하다.

 

 

# 폭발물 경고판이 있는 장재.

 

 

# 신설철조망을 만나 좌측으로 올라갔다. 

 

 

# 갈미봉.

 

 

# 정상은 헬기장이다.

 

 

장재에서 좌틀하여 서진(西進)하던 정맥길은 이곳 갈미봉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철조망은 정상을 넘어 계속 이어지고 철조망 좌측에 넓은 길이 형성되어 있다. 그 길로 따라 내려가는데, 낙엽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걷기가 불편하다. 지금 시기에 이 정도인데 늦가을엔 어떨까?

 

낙엽 때문에 걷기 힘들어 숲으로 들어가 숲길을 따라 내려갔다. 아래로 내렸다가 잠시 올라 봉우리 하나를 오르자 정맥은 철조망과 헤어져 좌틀하여 떨어져 내리게 된다. 무심코 철조망을 따르다가는 알바하기 십상이겠다.

 

평탄하고 길게 진행하다가 한차례 올라 봉우리를 넘었다. 급하게 떨어지더니 다시 평탄하고 길게 진행하게 한다. 갈미봉에서 쑥재까지는 2km거리다. 16:10. '쑥재'에 도착했다.

 

 

# 잡풀 무성한 쑥재.

 

 

지도에 넓은 수랫길로 표시되어져 있는 쑥재는 그러나 잡풀이 무성해 도로의 기능은 상실했다. 고개 아래로 내려가는 도로 옆에 산을 휘감는 갈림길이 있고 그곳에도 표지기가 몇 개 매달려 있지만, 정맥은 직진하여 올라야 한다. 

 

저 갈림길이 우회로가 아닐까 짐작해 보지만 확신이 없어 그냥 오르막을 오른다. 계단식으로 올랐다가 좌측으로 꺾더니 깊게 떨어진다. 옥녀봉 오름이 매우 힘들다던데 이렇게 떨어지면 어떡하냐??

 

아래로 내리면 '희미한 옛고개'가 나오고 이곳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계단식으로 밀어 올리는데, 갈수록 경사가 급해지더니 마지막엔 암릉구간이 나타나고 암릉을 낑낑 올라서자 '전망대'가 나온다. 우측 너머로 뾰족한 봉우리가 보이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휘감는 가야 할 정맥길도 조망된다. 조금 더 오르면 '옥녀봉 갈림봉'이 나온다. 옛고개에서 1,600걸음 올랐다. (17:12).

 

 

# 오디나무.

 

 

# 작은 열매이지만 달콤하다.

 

 

# 백선.

 

 

# 금난초.

 

 

# 고광나무.

 

 

# 이름 없는 옛고개.

 

 

# 전망대의 조망. 저 봉우리를 또 올라야 한다.

 

 

# 옥녀봉 갈림봉.

 

 

이곳이 玉女의 우측 어깨쯤 되는 곳이다. 옥녀의 얼굴을 가 보는 것은 생략하고 우측 몸을 따라 떨어져 내렸다. 그러더니 좀 전에 전망대에서 본 뾰족한 봉우리를 치고 오르라 한다. 옆으로 누은 옥녀의 둔부쯤 될라나?

 

안부에서 낑낑 오르는데 8부 능선쯤에서 좌측 사면으로 우회하여 진행하라고 한다. 옳타쿠나! 기분 좋게 우회하여 능선에 올라서는데 갑자기 정상을 향해 꺾어 오르라고 한다. 이런 제길슨!! 웬일로 쉽게 가나 했다. 낑낑 올라 정상에 서지만 아무 이름도 표식도 없는 무명봉이다.


이름도 없는 봉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만드냐? 정상에서그냥 직진하면 알바이다. 뒤로 물러나와 좌측으로 떨어져 내리게 된다. 이 봉우리는 '허물어진 옛성터'다.

 

이후 4개의 잔봉을 차례로 넘는데, 1봉은 역시 옛성터이고, 2봉은 편백나무 숲이 펼쳐진다. 3봉은 좌측으로 우회하는데, 이곳부터 방향을 남쪽으로 잡게 된다. 4봉은 암봉이다. 조망이 좋은 곳이라 맑은 날이면 기가 막힌 조망을 선사했겠지만, 오늘은 개스 가득하게 흐리고 바람만 쌩쌩 불고 있다.

 

 

# 힘들게 오른 무명봉. 정상 너머로 조망이 있지만 개스가 짙어 오리무중이다. 

 

 

# 뭐, 이런 정도...

 

 

 

 

# 옛성터가 이어서 나온다. 

 

 

# 편백나무 조림지.

 

 

# 쭉쭉 뻗은 기상이 훌륭하다.

 

 

# 4봉은 암봉이다.

 

 

# 맑은 날이면 기막힌 조망을 허락하겠다.

 

 

# 가야 할 경각산이 우뚝하다.

 

 

# 아직 봉우리를 몇 개 더 넘어야 한다. 그런데 경각산 앞에 우뚝한 저 놈은 뭐냐? 

 

 

# 경각산 좌측의 파노라마(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좋은 바람이 너무 아까워 홀랑 벗어 재끼고 거풍을 즐겼다. 금세 온 몸이 뽀송뽀송해진다. 전방으로 조망이 열렸다. 오늘 구간의 주요 포스트인 경각산과 우측의 완주군 구이면 일대와 구이저수지, 모악산 등이 짙은 개스 속에 희미하게 조망된다.



옷매무새 추스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암봉을 내려 길게 내려가면 '효간치'에 도착한다.(16:25). 효간치는 이제 다니는 사람 없는 희미한 옛고개다.


효간치를 지나 잔봉을 두 개 넘고 전방을 우뚝 막아선 검은 산을 오른다. 경각(鯨角)이란 이름을 쓰더니 고래의 뿔인가? 암봉이 우뚝하다. 뾰족한 암봉을 죽을똥 살똥 기어 올라 정상에 서서 환호하지만, 경각산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다. (18:55)

 

그러나 이 암봉은 조망이 아주 훌륭한 곳이어서 사방으로 멋진 조망을 선사한다. 갈 길이 바쁘지만 암봉 정상 좌우로 돌아다니며 조망 구경을 했다. 이렇게 조망 좋은 곳을 그냥 지나치면 산에 대한 모독이다.

 

정상을 지나 아래로 내렸다가 안부에서부터 치고 오르라 한다. 계단식으로 가파르게 밀어 올리게 되어 있어 아주 힘이 많이 드는 곳이다. 헉헉 낑낑 안부에서부터 1,350걸음을 세고서야 헬기장과 국가 통신시설이 있는 '경각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19:20)

 

 

 

# 효간치

 


 

# 효간치의 투박한 안내도.

 

 

# 가파른 암릉길이 이어진다.

 

 

# 경각산 전위봉의 조망. 

 

 

# 지나온 정맥길. 저 멀리 뾰족한 옥녀봉.

 

 

# 경각산은 뒤로 물러나 있어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

 

 

# 정맥 우측 구이저수지 뒤에 있는 모악산이 건너다보인다. 모악산은 도립공원이다. 나중에 저 산정에서 하룻밤 머물며 달구경하여야 겠다.

 

 

# 국가통신시설이 있는 경각산 정상. 

 

 

# 삼각점은 정상 지나 바위 위에 설치되어 있다.

 

 

최대한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해야 한다. 오늘 구간 최고의 포스트인 경각산에서 성취감을 오래 느끼지도 못하고 정상을 물러났다. 이곳에서 불재까지는 1.7km의 긴 하산길이니 이마에 등불 밝히지 않기 위해 거의 뛰다시피 하산하였다.

 

그러나 이곳 하산길은 무작정 내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두어 차례 올랐다가 내려간다. 그러다 '전망대'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기가 막힌 조망을 선사받는다.

 

 

# 어느새 숲속에 석양이 물들기 시작한다.

 

 

# 하산길에 만난 멋진 소나무. 

 

 

# 전망대를 만나는데 완주군 구이면쪽 조망이 훌륭하다.

 

 

# 구이면의 들판은 모심기를 위해 물을 가득가득 담고 있다.

 

 

# 첩첩 산그리메 위로 노을이 진다.

 

 

# 어허~  불 붙는다!!

 

 

봉우리 하나를 잠시 오르면 또 기막힌 '바위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방으로 불재와 다음 구간의 정맥길, 그리고 구이저수지와 모악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해야 하지만, 저 멋진 광경을 두고 그냥 갈수가 없구나! 바위위에 앉아 한참을 조망 감상을 하였다. 그러다 어슬어슬 추워질 무렵 다시 길을 나섰다.

 

이후 불재까지 무릎 걱정하지 않고 그냥 냅다 뛰어 내려 버렸다. 일단은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하는 것이 제일 관건인 때문이다. 1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30분 만에 뛰어 내렸다. 19:55. 오늘의 종착지인 '불재'에 내려섰다.

 

 

# 전망바위에 올라서면 불재가 바로 눈앞에 드러난다. 

 

 

# 불재의 참숯가마. 불재에 숯가마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절묘하다. 불의 기운이 서린 산에 불 피워 땀 빼는 숯가마가 있는 것이다.

 

 

# 불재 우측의 모악산.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이란다.

 

 

# 땅거미 내려 앉은 모악산과 구이저수지.

 

 

# 모악산쪽 조망의 파노라마.(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내일 걸어야 할 불재에서 염암재까지 이어지는 정맥길.

 

 

# 불재. 내 차가 갓길에 서 있다.

 

  

불재엔 내 차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고맙게도 해리님이 슬치에서 가져다 두었다. 대충 먼지 털고 시동 걸어 신덕리 방향으로 내려갔다. 지난번에 봐 두었던 신덕리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서 이미 야영준비 마치고 계시다니 얼른 내려가서 합류해야 한다.

 

바람같이 달려 내려가니 두 부부가 이미 저녁식사도 마치고 입가심으로 쐬주 한잔씩 드시고 계시는 중이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일주일 만에 이렇게 또 만나는군요. 한 켠에 집 한 채 짓고 막걸리 한 잔 돌리며 일주일 만의 해후를 즐겼다.

 

이렇게 오늘도 해리님 부부와 전서방님 부부, 그리고 깍두기로 강사랑, 이렇게 세 팀의 정맥꾼들이 호남의 밤을 함께 도란도란 얘기꽃 피우며 보냈다.

 

 

# 신덕리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

 

 

이곳 신덕리 새터마을의 느티나무 있는 쉼터는 넓은 정자가 몇 채 있고, 화장실도 두 개, 무엇보다 수도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최고의 야영지다. 저녁 먹고 두 부부가 자러 들어간 사이 수돗가에서 홀라당 벗고 간이 샤워도 즐겼다. 경각산에서 달려 내려 오느라 열 받은 발바닥이 시원해진다.

   

그렇게 두 부부 사이에서 외로운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끓여 먹고 정비한 후 나는 불재로, 두 팀은 운암삼거리로 이동하여 또 하루의 산행을 시작했다.

 

 

# 시설이 넓고 좋아 1개 소대는 문제없이 야영할 수 있는 곳이다.

 

 

5월 31일, 해의 날. 오늘 우리 호남팀들의 산행거리는 단거리다. 나는 불재에서 염암재까지, 두 팀은 운암삼거리에서 가는정이까지만 하기로 했다. 애초에 너무 무리하지 말고 솔방솔방 하자는 것이 호남정맥 종주의 사전 묵계이다. 불재 숯가마 정문옆 공터에 주차하고 짐 꾸려서 산행을 시작했다.(07:35)

 

 

# 불재 참숯가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 구간의 들머리는 불재 참숯가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불재는 풍수지리학상 이곳에 불무혈이 있어 얻은 이름이다. 한자로는 '화치(火峙)'로 표기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불재에 숯불가마가 들어 서 있고 그 옆엔 도예전시장이 있다. 풍수학상 불의 기운이 여전히 활발히 꿈틀대고 있나 보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불의 기운이 약한지 기온이 제법 쌀쌀한 편이다. 얇은 바람막이 하나 꺼내 입고 산행을 시작했다. 숯불가마 안으로 올라가면 뒷쪽에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산으로 올라가면 숯가마에서 만들어 놓은 산책로가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좌틀하여 잠시 가면 유명한 '불재 활공장'이 나온다.

 

 

# 숯불가마 뒤로 들머리가 있다.

 

 

# 숯가마 뒷쪽 능선에 위치한 활공장.

 

 

# 활공장의 파노라마. 전방에 모악산과 구이저수지, 멀리 전주시가지까지 보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모악산과 구이저수지. 모악산은 도립공원이다.

 

 

# 전주시가지도 보인다.

 

 

# 활공장에 있는 거울도 찍어보고...

 

 

 

활공장에서의 조망은 아주 훌륭하여서 전방으로 모악산과 구이저수지, 저 멀리 전주 시가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 활공장은 새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는데, 오늘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한참을 조망 구경하며 혼자 놀기를 하다가 다시 출발했다. 잠시 진행하여 묘지를 지나고 넓은 임도를 따라 오르다 우측으로 올리면 사계청소가 되어 있는 무명봉이 나온다.

 

잠시 가다가 좌틀하여 편하게 진행하는데, 그곳에서 맞은편에서 오는 정맥꾼 부부를 조우했다. 전주에 사시는 '소머즈 부부'라고 한다. 홀대모에도 적을 두고 계시다고 하는데, 정맥 진행 상황이 나와 비슷하다. 부부가 같이 1대간 9정맥 종주를 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부럽기도 하고. 그래, 이렇게 같이 가야 한다. 그래야 오래오래 같이 갈 수 있는 것이다.

 

 

# 사계청소가 되어 있는 무명봉. 가야 할 정맥길이 보인다.

 

 

# 소머즈 부부의 보기좋은 뒷모습. 

 

 

같이 산길 걷는 행복한 부부와 헤어져 각자의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아래로 내렸다가 한차례 치고 오르면 '작은 전망처가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 그러나 곧 올라온 고도를 모두 까먹고 아래로 떨어진다. 잠시 편하게 간다.


그러다 '옛고개'를 지나 오르막을 치고 오르라 한다. 길게 밀어 올리는 곳이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힘들게 치고 올라 능선 마루금에 오르고 좌틀하여 다시 올라 가면 '봉수대'가 나온다.

 

봉수대는 수풀이 우거져 아무 흔적도 보이지 않고 다만 정상부의 봉수대 기초만이 이곳이 과거에 봉수대였음을 알려줄 뿐이다. 우틀하여 다시 조금 올라가면 '607봉'이 나타난다.(09:50)

 

 

# 엉겅퀴.



 

# 산골무.

 

 

# 봉수대.

 

 

# 607봉.

 

 

# 607봉의 헬기장.

 

 

# 이곳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을 달랬다.

 

 

정상 너머에 헬기장이 있고 그 옆 숲속에 바람이 너무 좋아 짐 내리고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을 달랬다. 거풍까지 즐기고 20여분 휴식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호남정맥은 끝까지 올렸다가 끝까지 내리기를 반복한다더니 이곳도 그러하다. 급경사 내리막을 끝도 없이 내려간다. 북진하는 이들은 이곳에서 곡소리 꽤나 내겠다.

 

길게 내리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양쪽 모두에 표지기가 매달려 있다. 직진하여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는데 좀 전 607봉에서 마신 막걸리가 잘못 되었는지 온몸에 맥이 탁 풀리고 도저히 힘을 쓸 수가 없다. 봉우리 정상에서 우측으로 꺾더니 또다시 급격하게 떨어져 내린다.

 

내리막 중간에 잠시 트인 곳이 나온다. 저 아래 작은 불재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 가야 할 정맥길도 조망된다. 길게 내려 '작은 불재'에 도착했다.(10:50)

 

 

# 소머즈 부부의 표지기.

 

 

# 저 아래 작은 불재가 보인다.

 

 

# 작은 불재.

 

 

고개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오르는데 다리가 풀려 휘청거리며 억지로 올라갔다. 봉우리에서 좌틀하여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이내 아래로 내렸다 봉우리 두 개를 연달아 넘었다. 그러다 한차례 길게 올리는데 너무 힘이 들어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사선대 막걸리' 다시는 먹지 않으리!

 

억지로 봉우리에 오르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아래로 내리면 '벌목지'가 나오고 다시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올라야 한다. 흐미~~. 낑낑 거리며 봉우리를 넘으면 '바위전망대'가 나타난다.

 

 

        

# 벌목지 상단을 오른다.

 

 

# 좌측으로 방길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바위전망대는 기가 막힌 조망을 허락한다. 전방으로 다음 구간의 산들, 우측으론 구이면 계곡리 일대의 인간세, 그리고 그곳에서 구불구불 구절양장으로 정맥을 넘는 염암재가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바위 위에서 마음껏 조망 구경을 마치고 아래로 길게 내려가면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염암재'에 내려서게 된다.(12:10)

 

 

# 전망대에서의 파노라마. 우측 계곡리에서 구불 구불 올라오는 염암재, 그리고 가야할 정맥길이 보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저 길고 구불구불한 구절양장의 고갯길을 다음 주에 걸어서 올라오게 된다.

 

 

# 염암재에 도착했다.

 

 

# 깎아지른 절개지가 나타난다. 장마철이나 해빙기엔 붕괴 위험이 높아 보인다.

 

 

염암재엔 일찍 산행을 마친 두 부부가 마중을 나와 있다. 오늘도 두 부부 산꾼들 덕분에 차량 회수가 고맙게도 손쉽다. 오늘은 모두 짧게 구간을 마쳐서 시간 여유도 많고 여러 가지로 여유만만이다. 원래 계획은 옥정호 근처로 가서 민물 매운탕 맛을 보기로 했지만, 일요일 상행길의 교통 정체를 생각해서 얼른 출발하기로 했다.

 

이렇게 두 부부 산꾼과 함께한 호남길 두 번째 나들이를 마감했다. 그동안 여섯 개의 정맥을 대부분 혼자서 진행했는데, 이번 산행길에서 그 방식에 심한 회의가 생겼다. 이 집, 저 집 부부가 같이 정맥길 걷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부럽던지... 정맥길을 잠시 쉬는 한이 있더라도 마눌을 다시 정맥길로 불러내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여!

같이 손잡고 산으로 가십시오!

그리하여 한방울 한방울 흘리는 땀방울로 오래 같이할 약속의 증표를 삼으십시오!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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