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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첫걸음(영신봉~고운동재)-고운동(孤雲洞) 달빛! 본문

1대간 9정맥/낙남정맥 종주기

[낙남정맥]첫걸음(영신봉~고운동재)-고운동(孤雲洞) 달빛!

강/사/랑 2011. 10. 18. 11:24
 [낙남정맥]첫걸음(영신봉~고운동재)



마음의 옷을 벗고 달빛으로 몸 씻으니 / 설익은 외로움이 예쁜 꽃이 되는구나 / 해맑은 꽃내음을 한 사발 마시고 나니 / 물젖은 눈가에 달빛이 내려 앉는구나 //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 꽃들의 희망도 잠기겠지 / 새들도 말없이 떠나 가겠지 // 사랑이 사랑이 아님은 알게 되리라 / 아프게 사라지지만 산은 울지 않는다 / 외로운 구름아 어디로 떠나려는가 / 꽃과 새들의 눈물속에 산도 지쳐 돌아눕는구나 //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 꽃들의 희망도 잠기겠지 / 새들도 말없이 떠나가겠지 // 지리산 지리산아 / 사랑하는 지리산아 / 지리산 지리산아 / 아~ 나의 사랑  지리산아 //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 꽃들의 희망도 잠기겠지 / 새들도 말없이 떠나가겠지.

 

- 한돌의 노래 '고운동 달빛'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은 통일신라 말기의 대학자(大學者)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당(唐)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에 나가 당에서 활동하였다. 당시 황소(黃巢)가 난을 일으켰을 때 그 유명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썼다.


격문(檄文)이란 적을 힐책(詰責)하거나 그 뜻을 널리 알려 사람들의 의분(義憤)을 고취(敲吹)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토황소격문은 '황소를 토벌하기 위한 성명서'인 셈이다. 그 문장이 준엄하고 기세가 드높아 이것을 읽은 황소(黃巢)가 놀라 의자에서 뒤로 넘어졌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고운은 유학(儒學)에 바탕하면서도 유교(儒敎)ㆍ불교(佛敎)ㆍ도교(道敎)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ㆍ불ㆍ선 을 통합한 '풍류도(風流道)'를 우리의 고유한 전통사상으로 규정하였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 設敎之源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가르침을 베푼 근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는데, 실로 삼교(三敎)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

 

그의 마지막은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사람들 사이에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만 전해지고 있다. 또 고운은 지리산과도 인연이 깊어 지리산의 산신령이 되었다고도 전해지는데, 지리산 곳곳에는 고운에 관한 전설과 지명들이 많이 남아 있다.

 

옥천대(玉泉臺), 문창대(文昌臺), 세이암(洗耳巖), 환학대(喚鶴臺) 등 '지명(地名)'과, 고운의 친필이라고 알려진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쌍계석문(雙磎石門), 광제암문(廣濟嵒門) 등의 '글씨'가 그 흔적이다. 그중 지명(地名)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그의 호를 딴 '고운동(孤雲洞)'이 가장 유명하다.

 

고운동 계곡은 경남 산청군 시천면 반천리에 위치한 계곡으로 고운의 이름을 따서 지명으로 삼을 정도로 아름다운 계곡미를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 아름다움보다는 양수발전댐 건설을 두고 벌어진 환경과 개발의 논리 전쟁 때문에 더 유명하다.

 

고운이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고운동에 댐이 들어선 것은 2001년 9월 28일이다. 처음 이 댐의 건설이 알려지고 95년에 착공에 들어가면서 각종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이 댐의 반대를 위해 성명, 시위 등을 감행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댐 건설을 막고자 하였다. 하지만 결국 댐 건설은 완공을 보았고 현재 활발히 가동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댐은 상부와 하부  댐의 낙차(落差)를 이용하여 발전을 하는 양수발전소(揚水發電所)로써 5,888억원을 투입하여 7년여 만에 완공되었다. 70만 MW의 발전 용량을 가진 양수발전댐이다.

 

정부와 한전은 환경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이 댐이 댐 수몰 면적이 적고 환경친화적으로 건설된 발전소임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남부지역의 전력 수급에 안정을 도모하고 연간 약 12억3000만kWh의 전력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지리산 생태계의 파괴와 변화, 그리고 남강의 수자원 고갈 등을 이유로 이 댐의 건설을 반대하며 오랜 투쟁을 전개했다. 가수 신형원의 터, 개똥벌레 등의 작곡자이자 그 스스로 노래꾼인 가수 '한돌' 역시 '고운동 달빛'이란 노래를 통해 댐 건설로 사라질 고운동의 생태계를 노래했었다.

 

대규모 개발 행위에는 언제나 명(明)과 암(暗)이 존재하고 그 개발로 인해 얻어지는 경제적 효율성과 그 개발로 인한 환경적 피해 사이에 갈등(葛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멀게는 경부고속도로가 그러했고, 포항제철의 건설이 그러했으며, 가까이는 사패산 터널, 천성산 터널, 4대강 사업 등이 그러하다.

 

지금까지의 예로 보면 이런 개발행위가 있을 때마다 온 나라가 찬성과 반대로 극명하게 찬반이 엇갈리고, 그 진행 과정에서 논리(論理)와 이성(理性)은 사라지고 감정(感情)과 증오(憎惡)만이 칼날 같은 서슬을 번뜩이기 마련이다. 논리와 이성이 사라진 전장터에 더이상 상대를 향한 이해(理解)와 공존(共存)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우여곡절이야 많았겠지만 이제 댐은 모습을 갖춰 발전(發電)을 하고 있고, 목숨이라도 걸 것 같던 반대자들도 모두 다른 '반대 할 곳'을 찾아 뿔뿔이 사라졌다. 이제 격렬한 찬반의 물결 빠져나간 고운동엔 인적 끊어져 고요하고, 물가에 핀 억새만이 가을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과연 댐 건설로 인해 얻는 전력의 경제적 가치와 댐 건설의 여파로 변화한 생태계의 피해가 어느 쪽으로 경중(輕重)이 가려질지는 비전문가인 나의 판단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낙남정맥 첫 구간 종주를 마치고 한낮에 들른 고운호(孤雲湖)엔 파란 가을 하늘과 흰 구름을 곱게 담은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는데, 밤중에 들렀다면 고운동 달빛이 그 물결 위에 부서지고 있으리라 짐작되었다.

 

그리하여 내 마음가는대로만 사고(思考)하였는데 내 입에서는 선동(煽動)의 구호(口號)와 저주(詛呪)의 고함(高喊) 대신 고운 노랫소리만 흘러 나왔다.


한돌은 산속에서 노래를 캔다는 가수다. 그의 가사는 날이 섰지만 노랫가락은 아름답다. 그 노랫가락 하 아름다워 산길 걷는 이틀 내내 홀로 흥얼흥얼 거리며 산죽밭 헤치며 걸었다.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꽃들의 희망도 잠기겠지~ 새들도 말없이 떠나가겠지~"

 

노랫말과 달리 고운동 달빛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곱디 곱더라마는... 

 


고운동(孤雲洞) 달빛!


구간 : 낙남정맥 제 1구간(영신봉~고운동재)
거리 : 구간거리(22.5km), 누적거리(22.5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1년 10월 15, 16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거림(07:30) ~ 천팔교 ~ 북해도교(09:20) ~ 세석교 ~ 음양수갈림길 ~ 세석대피소(11:15) ~ 영신봉(11:40) / 점심 후 12:05 출발 ~ 세석대피소 ~ 음양수 갈림길 ~ 음양수(13:00) ~ 석문(13:50) ~ 1321봉 ~ 1246봉 ~ 1237봉(15:15) ~ 한벗샘갈림길 ~ 1278봉 ~ 1286봉 ~ 삼신봉(17:00) ~ 외삼신봉(17:50)/ 외삼신봉 지나 암봉 아래 야영(18:00).

외삼신봉 출발(08:00) ~ 산죽밭 ~ 1173봉 ~ 1088봉 ~ 묵계치(09:30) ~ 심한 산죽밭 ~ 991봉 ~ 고운동재(11:00)
           
총 소요시간 13시간 30분.

 

낙남정맥은 한반도의 제일 남쪽에 위치한 산줄기로서 옛 가야 땅을 가로질러 이어진다. 그 위치나 모양 때문에 우리 민족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는 아홉 정맥 중 막내 같은 느낌의 산줄기이기도 하다.

 

그 흐름을 보면 백두대간이 마무리하는 지리(智異)의 영신봉(靈神峰)에서 남으로 길게 가지를 쳐 삼신봉을 넘고, 고운동재를 지나 사천 곤명땅을 가로질러 태봉산, 실봉산을 솟구친 후, 진주를 지나 백운산, 봉래산을 일으킨다. 다시 고성군에 이르러 대곡산, 마산에 이르러 무학산으로 솟은 후 정병산을 거치며 창원을 가로 지르다 김해 장유를 지나 대동면의 신어산에서 낙동강으로 감기며 마감한다.

 

산경표(山經表)에는 '분산(盆山)'에서 그 맥을 다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분산의 위치는 현재 알 길 없고 대부분 그 맥을 '신어산(神魚山)'에 이어 완성 짓는다. 다만, 물길로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모아져 신어산 지나 동신어산에서 낙동강으로 잠기는 것으로 낙남의 끝을 이루곤 한다.

 

도상 거리 200여 km, 실거리 300여 km의 산줄기로 온전히 경남지방을 동서로 잇고 있어 다른 정맥과는 또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낙남은 그 위치가 백두대간의 끝자락에서 갈래 쳤다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1대간 9정맥을 하는 산꾼들이 대부분 마지막 코스로 남겨 두었다가 1대간 9정맥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많이들 걷곤 하는 산줄기다.

 

강/사/랑도 이 낙남정맥을 마지막 졸업용으로 갈 생각으로 아껴 두었다. 하지만, 현재 걷고 있는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이 홀로 정맥이 아니라 팀종주로 진행하고 있다 보니 둘 다 팀원들의 일정 맞추기가 어려워 웬만해선 산길 나서기가 쉽지 않다. 결국, 두 정맥과는 별도로 혼자 편하게 마음 내킬때 나서자는 생각으로 낙남길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2011년 10월 14일, 쇠의 날.  미루고 미루던 여름휴가를 여름 다 지난 10월 중순에야 큰맘 먹고 쉬기로 했다. 애초에 계획하기는 회사 일은 잊어버리고 지리산에 들어가 태극으로 한 4, 5일 실컷 걷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헌데, 휴가 첫날부터 전북 전주로 출장 갈 일이 생겨 하루는 날려 버리고, 뒷날부터는 비가 내려 또 산길은 물 건너가 버렸다.

 

이러다 휴가고 뭐고 아무 일도 못 하겠다 싶어 일단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지리에 들어가고 보자고 작정을 하고 짐을 꾸렸다. 남들이야 낙남은 대부분 하루 전날 세석으로 올라 세석산장에서 1박을 한 후 다음날 고운동재나 길마재까지 한 방에 가는 일정을 잡는다.

 

그러나 이번에 내가 지리에 들어감은 낙남정맥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지리의 품에서 하룻밤 보내자는 생각이 더 간절한지라 박배낭으로 짐을 꾸리기로 했다.

 

가을비 내리고 기온이 급강하하리란 기상청의 예보도 있고 해서 이것저것 짐을 많이 챙겼다. 비 예보가 있으니 우의도 챙기고, 산에서 처량하고 싶지 않아 이것저것 먹을 것도 많이 챙기고 했더니 배낭 무게가 금세 25kg에 이르고 만다.

 

2011년 10월 14일, 쇠의 날.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지만 더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짐을 챙겼다. 하지만 마눌이 계속 걱정하는 지라 집 나서지 못하고 우물우물 하다가 수원에서 출발하는 진주행 막차 예매를 놓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강남터미널에 접속해서 23시 10분 발 진주행을 예매하고 집을 나섰다.

 

철산역에서 마눌과 헤어져 전철로 고속터미널로 향하는데, 둘러멘 배낭 너머로 마눌의 걱정소리가 계속 넘어온다. "걱정 마시게! 지리에 푹 빠졌다 오겠네!"

 



낙남정맥/洛南正脈

 

지리산의 영신봉(靈神峰)에서 김해 분성산(盆城山)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의 산줄기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들 맥은 10대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산맥을 기본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의 산맥 이름이 강 이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낙남정맥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360m)에서 끝난다. 서쪽에서는 섬진강 하류와 남강 상류를 가르고, 동쪽에서는 낙동강 남쪽의 분수령산맥이 된다. 연결되는 주요산은 옥녀산(玉女山, 614m)·천금산(千金山)·무량산(無量山, 579m)·여항산(餘航山, 744m)·광로산(匡盧山, 720m)·구룡산(九龍山, 434m)·불모산(佛母山, 802m) 등으로 그 길이는 약 200㎞이다. 이 산줄기는 전라도지방의 호남정맥(湖南正脈) 남쪽 산줄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남해안지방과 내륙지방을 자연스럽게 분계하고 있다. 이 산줄기의 남쪽 해안지방은 연평균기온이 제주도 다음으로 따뜻한 14℃이며, 난온대산림대(暖溫帶山林帶)를 형성하고, 귤나무의 북한계가 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남정맥 제 1구간 영신봉~고운동재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주말을 맞아 먼길 나서는 사람들로 붐비고, 진주행 심야버스도 빈자리 없이 꽉 차서 오랜만에 여행 떠나는 맛이 난다.

 

간만의 버스 여행으로 졸다깨다 하면서 3시간 40분여 소요한 후에 진주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다. 캄캄한 고속터미널에 내려 무거운 배낭 둘러메는데 택시 기사가 오더니 중산리까지 5만원에 가자고 한다. "중산리는 되었고 일단 시외터미널까지만 갑시다."

 

택시로 이동하여 시외터미널에 들어서는데, 역시나 택시 기사 한 사람이 오더니 중산리까지 서너 명 모을테니 합승해서 가자고 한다. 거림행 6시 10분 차는 없어졌다고 하면서... "엥? 거림행 첫차가 뒤로 밀렸다구요?" 버스 시간표 확인하니 과연 그러하다. 기존에 6시 10분 중산리행 첫차가 중산리 들렀다가 거림으로 갔었는데, 몇 달 전부터 09시 05분으로 밀려 버렸다.

 

시외터미널 대합실에서 택시 기사가 동승자 모으기를 1시간 30분 넘게 기다리는데, 도저히 진척이 보이지 않는다. 터미널 앞 24시 식당에 들러 아침을 먹고 다시 대합실로 갔지만 여전하다. 몇몇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등산객들이 있긴 한데, 택시로는 안가려고 하는 모양이다. 합승하면 택시비나 버스비나 큰 차이가 없는데 쯧쯧...

 

택시를 포기하고 첫 차 타고 덕산까지 갈 요량으로 대합실 의자에 앉아 두어 시간 졸다깨다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다 간편한 배낭을 맨 젊은이 두 명과 조우해서 그들과 덕산에서 택시를 합승하기로 약속했다. 

 

06:10. 진주발 중산리행 첫차를 타고 이동했다. 한데, 승차 전 해우소에 들렀다 나오면서 서두르다가 장갑 한 짝을 그만 대합실에 두고 와버렸다.

 

버스는 명석, 원지, 단성 거쳐 덕산에 도착했다. 한적한 덕산 거리는 아직 아침 잠에서 덜 깨어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날씨가 잔뜩 흐려 있다. 그러더니 급기야 빗방울도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났다!

 

덕산택시부에 들러 택시를 호출하고 슈퍼에 들러 모범운전자 같은 하얀 장갑도 하나 구입했다. 10여 분 후 도착한 덕산 개인택시편으로 거림까지 편하게 갔다. 택시비는 2만원 가까이 나왔다. 택시 돌려보내고 준비 운동으로 잠 덜 깬 몸을 자극한 후 보따리 둘러메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끙차! 배낭 무겁구나! 07:30

 

 

 

# 주말 심야의 강남고속버스 터미널.

 

 

 

# 진주에서 거림 가는 첫차는 뒤로 시각이 밀렸다.

 

 

 

# 다음 구간 고운동재 가는 버스는 7시10분이 첫차다.

 

 

 

# 새벽에 덕산에서 비가 내렸는데, 거림에 도착하니 다행히 날이 환하게 갠다.

 

 

 

# 지리 주능 위로 낮달이 떴다.

 

 

 

배낭 무게에 허리가 휘청한다. 동행한 젊은이들이 대단하다 한마디씩 한다. 겉으로는 허허 웃지만 속으로는 힘든단 소리가 절로 나온다. 민박집들 사이로 난 들머리 따라 위로 올라가면서 올려다 본 하늘은 언제 흐리고 빗방울 뿌렸냐는 듯 맑고 청명하다.

 

공원지킴터 옆으로 난 등로를 따라 위로 올랐다. 유순한 길이 길게 이어져서 지리산 오름에 이리 편한 길이 있던가?하는 의문이 든다. 가을이 익어가는 숲속에는 가을 향이 가득해서 오르는 내내 행복감이 충만해진다.

 

한차례 올려서 땀이 밸 무렵 쟈켓을 벗어 배낭에 패킹했다. 콧노래 흥얼거리며 오르다보면 '천팔교'에 이른다. 해발고도 1,008m 지점에 설치되어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데, 고도계 확인하니 오차가 심하고 실제 고도도 1,008은 아닌 듯하다.

 

이후로 길게 고도를 높여 올라 가지만 가파르지 않아 견딜만 하고, 오히려 단풍구경, 폭포구경, 계곡구경에 시간이 걸려 지체될 따름이다. 09:20, '북해도교'에 도착했다.

 

 

 

# 코스모스가 무사 산행을 빌어 준다.

 

 

 

# 가을이구나.

 

 

 

# 등로 초입 길상사가 계곡 건너로 보인다.

 

 

 

# 덕산에서는 흐리고 빗방울 비치더니 정작 지리는 청명하다.

 

 

 

# 들머리.

 

 

 

# 한차례 올려 땀이 돌 무렵 겉옷을 벗어 패킹했다.

 

 

 

# 시방 지리의 숲은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숲향기가 너무 좋아 그걸 즐기느라 속도가 나지 않는다.

 

 

 

 

# 한참을 올랐지만 길이 편해 힘든줄 몰랐다.

 

 

 

# 오메, 단풍들겠네!

 

 

 

 

 

# 천팔교.

 

 

 

# 계곡 구경, 폭포 구경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 간간이 동무들과 같이 산행 온 산객들을 만났다.

 

 

 

# 북해도교.

 

 

 

북해도교는 참 특이한 이름을 가졌다. 자료 찾아보니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일본 북해도처럼 기온이 급강하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기온 급강하 하는 곳이 일본 북해도 뿐이겠는가? 어디선가 지리에 정통한 사람이 쓴 글에는 다른 사연이 있다고 운만 떼어놓고 실제 내용은 볼 수 없다. 궁금타!

 

어쨌거나 북해도교를 지나면서부터는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는데, 25kg이 넘는 배낭 무게 때문에 점점 숨이 가파지기 시작했다. 다만 지나치는 사람마다 대단타 한 마디씩 하는 바람에 힘들지 않는 척 하느라 오히려 더 힘이 들었다.

 

그나마 오랜만에 걸어보는 지리의 아름다운 숲길이 힘든 여정을 조금이나마 달래준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힘든것 잊고 꺼이꺼이 올라 갔다. 

 

다리를 연달아 세 개 지나고 계속 밀어 올리면 '세석교'에 이르게 된다. 다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다 보면 나중에 다시 돌아와야할 '음양수 갈림길'이 나온다. 계속 올라 세석 샘터를 지나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였다. 11:15.

 

 

 

# 아름다운 지리의 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 북해도교를 지나면서 경사가 가팔라진다.

 

 

 

# 전망대를 만났다.

 

 

 

# 저멀리 오늘 가야 할 남부능선이 보인다.

 

 

 

# 삼신봉과 내외삼신봉.

 

 

 

# 그 방향으로 구름 피어 오르고 있다.

 

 

 

# 길게 올라 세석교에 이르고,

 

 

 

# 계곡이 참 좋다.

 

 

 

 

# 숲길도 좋고.

 

 

 

# 음양수 갈림길. 나중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

 

 

 

 

 

 

# 세석에 도착했다.

 

 

 

세석의 한낮은 햇살이 강렬한데, 수리공사 중인지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열댓 명의 산객들이 그 시끄러운 망치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휴식하거나 밥을 끓이고 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 배낭 내려놓고 몸만 영신봉에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요란한 소음에 질려 그냥 세석은 통과해 버렸다.

 

이 결정때문에 금방 혼줄이 났다. 세석에서 영신봉까지는 금방 다녀올 거리였던 것 같은데, 무거운 배낭 매고 오르니 만만치 않은 거리다. 배낭 두고 오지 않음을 후회막급하면서 낑낑 영신봉을 올랐다.

 

영신봉 등로 금줄 앞에서 가야 할 낙남의 줄기를 잠시 굽어 본 후 금줄을 넘어 영신봉 정상에 올랐다. 11:40. 영신봉 정상 바위 위에 올라 서니 사통팔달 조망이 훌륭하다. 그 조망에 취해 팔 벌려 천지기운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지리에 들었음을 감사하며 또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천왕봉, 중봉, 하봉, 촛대봉, 낙남정맥의 능선, 지리의 주능, 불무장등, 노고단, 반야, 만복대 등등... 지리의 모든 능선과 봉우리들을 눈으로 더듬으며 홀로 행복하였다.

 

이윽고 아래로 내려와 간단한 제물 올리고 천지신명과 지리산 산신령께 낙남정맥 신고를 올리고 무사완주를 기원하였다. 잠시후 음복으로 마음에 점 하나 찍으며 홀로 산상만찬을 즐겼다.

 

  

 

# 햇살 헤치고 영신봉을 오른다.

 

 

 

# 무거운 배낭 매고 힘들게 오른 영신봉.

 

 

 

# 출입금지 구간 너머로 낙남의 산줄기가 보인다.

 

 

 

# 저멀리 천왕봉.

 

 

 

# 천왕봉을 땡겨본다. 작년 화대종주 때 이후 못 가봤다.

 

 

 

# 세석의 촛대봉.

 

 

 

# 낙남의 삼신봉.

 

 

 

# 영신봉 정상의 조망을 파노라마로 펼쳐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지리 주능 너머 반야가 구름 아래 우뚝하다.

 

 

 

# 반야의 독특한 산봉우리 모습.

 

 

 

# 만복대로 이어지는 능선도 보이고.

 

 

 

# 사통팔달,

 

 

 

# 거침없는 조망을 보여준다.

 

 

 

# 좌측 낙남의 산줄기와  우측 주능의 모습.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천지신명께 낙남 입산 신고를 했다.

 

 

 

12:05. 짐 챙겨 영신봉을 떠났다. 참 많이도 늦은 것이 하루 전날 세석에서 자고 출발하는 보통의 낙남꾼들이라면 이 시각쯤이면 남들은 삼신봉 정도는 가 있을 시각이다. 뭐, 평소 급할 것 없는 걸음걸이로 산길 걷는 몸이라 별 걱정 없이 세석을 향했다.

 

세석은 여전히 망치소리가 요란하고, 또 그냥 지나쳐 샘터로 향했다. 샘터에서 3리터 수낭에 물 가득 채우고 여분으로 1리터 물병을 채워 넣으니 짐 무게가 그만큼 더 늘어 허리가 더 휘청해진다. 아이구야!

 

길게 내려 음양수 갈림길로 복귀하고 이곳에서 올라왔던 거림골에서 벗어나 우측으로 갈라져 음양수로 향했다. 비로소 인적 완전히 끊어진 혼자 만의 산길을 걷게 된다. 비교적 편안한 길을 허위허위 걷다보니 음양수샘에 도착한다. 13:00.

 

 

 

# 홀로 사과를 먹고 있는 처자 앞으로 세석과 촛대봉이 보인다.

 

 

 

# 담에 비박하러 한 번 오겠소!

 

 

 

# 세석 샘터에서 물을 보충했다.

 

 

 

# 음양수 갈림길로 복귀.

 

 

 

# 음양수 위에서 바라본 가야 할 낙남길.

 

 

 

# 누군가 제단을 모셔 두었다.

 

 

 

# 삼신봉. 언제 저기까지 가나?

 

 

 

 

# 바위를 뚫고 흐르는 음양수.

 

 

 

# 우측, 좌측 음과 양의 물이 만나 샘을 이룬다고 음양수(陰陽水)라 부른다.

 

 

 

음양(陰陽)의 조화가 깃든 신비로운 물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한 모금 마셔 그 기운을 받았다. 갈등 해소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이후 길게 내렸다가 오르내리며 진행하는데, 전체적으로는 고도를 낮춰가며 가는 형국이다. 그런데 하루종일 화창한 가을날씨를 보여주던 하늘이 갑자기 우측 노고단 방향에서부터 구름이 몰려 들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어두컴컴해지며 찬바람이 강하게 일었다.

 

"아이쿠야, 큰일났다. 오늘 저녁 한 때 강한 비를 예보하더니 일기예보가 정확할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가 한 순간에 이렇게 변한단 말이냐?"

 

불안한 마음이 겹치고 찬바람이 강해서 그런가?  배낭 무게가 어깨를 더 강하게 내려 누르고 그 무게를 하루종일 받쳐 주던 무릎이 시큰 거리기 시작했다. 익어가는 가을향기에 취해 너무 희희낙락했다고 산신령께서 경고를 주시는 건가?

 

야영 싸이트가 있는 이정목을 지나 길게 진행하다보면 '석문'에 도착하게 된다. 13:50.

 

 

 

# 음양수 근처에 옛날 민가가 있었는지 돌확이 길가에 있다.

 

 

 

# 길은 아직 유순한데 갑자기 찬바람이 일며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 날씨가 이렇게 급변하는가? 

 

 

 

# 의신갈림길을 지나고,

 

 

 

# 텐트 한 동 칠만한 공간이 있다.

 

 

 

# 석문.

 

 

 

# 규모가 아주 큰 석문이다.

 

 

 

석문(石門)은 등로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바위 통로다. 지리 주능선에 있는 통천문(通天門) 보다 더 규모가 크지만, 주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통천문처럼 멋진 이름은 얻지 못하고 평범한 이름만 얻었다.

 

석문을 지나 곧바로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는데 전방으로 툭 트인 조망을 보여주는 '바위전망대'가 있다. 전방으로 가야 할 산줄기가 길게 누워 있다. 안개 속이라 그 진면목이 뚜렸하지는 않으나 오르내림은 꽤 심해 보인다.

 

찬바람에 몸을 맡겨 땀을 식히며 오래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아래로 내렸다가 암릉길을 계속 오르내리며 진행했다. 그런데, 산의 우측 사면을 통과할 때는 찬바람에 으슬으슬 떨며 가야 하고, 산의 좌측 사면으로 통과할 때는 바람이 없어 더워 땀을 흘려야 하는 희한한 상황이 길게 연출된다.

 

물을 가득 채운 배낭 무게때문에 다리가 휘청휘청하여 힘이 많이 들고 시간 지체도 점점 심해졌다. 어느 한 순간 짙은 안개 속에 숨어 있던 해가 모습을 드러내 주어서 비 걱정은 조금 덜어 주었다.

 

그러다 봉우리 하나를 길게 밀어 올려 이정목이 있는 정상에서 휴식했다. 이후 아래로 내렸다가 산죽밭을 따라 한차례 밀어 올리면 헬기장이 있는 '1237봉'에 이르게 된다. 15:15

 

 

 

# 전망대의 조망. 가야 할 낙남길이 안개속에 의미한데 꽤 오르내림이 심해 보인다.

 

 

 

# 자빠진골의 전경.

 

 

 

# 삼신봉까지는 앞으로도 봉우리가 까마득하구나!

 

 

 

# 하이구야~

 

 

 

# 헬기장이 있는 1237봉.

 

 

 

헬기장을 보니 야영 자리로 적당해 보인다. 나중에 이런 정도의 야영장은 만나야 할텐데... 오늘 일단 묵계치까지는 갈 생각이니 묵계치의 헬기장이 이 정도 수준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간절하다.

 

이후는 산죽밭이 길게 이어진다. 말로만 듣던 묵계치 인근의 산죽밭보다는 양반이지만, 박배낭 메고 걷기에는 걸리적거리기는 곳이다. 다만 지금까지 암릉길을 걷다가 푹신한 댓잎과 흙바닥이어서 무릎이 아주 편안해 한다.

 

한참을 진행해 공터와 안테나가 있는 한벗샘 갈림길을 지났다. 올록볼록 오르내리다 한차례 길게 밀어 올리면 '1278봉'에 이른다. 숲 너머로 봉우리가 우뚝한데 당시는 그 봉우리가 삼신봉인 줄 알고 기대에 차 있었더랬다.

 

잔봉을 두어 개 넘고 본격적으로 봉우리를 치고 오른다. 계단식으로 길게 밀어 올리며 숫자를 1,200개를 센 이후에 정상에 올라 서게 되지만, 어랍쇼? 삼신봉이 아니네?

 

지도에는 한벗샘에서 삼신봉까지 50분을 예상하고 있어서 이 봉우리가 당연히 삼신봉인줄 알았다. 내가 박배낭 무게에 짓눌려 시간 지체가 심했던 것을 잊었구나!  실망한 맘을 달래며 다음 봉우리를 올라 보지만 오잉? 여기도 아니네? 이후로도 너댓 개의 봉우리를 연달아 넘는데 모두들 정상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낙동정맥의 난코스인 면산 가는 길도 아니고 이게 뭔일이래? 자꾸 헛웃음만 나온다. 실성한 사람처럼 껄껄껄 웃으며 봉우리 하나를 오르지만, 정상은 또 뒤로 물러나 앉는다. 허허 참~~ 아래로 내렸다가 암봉을 치고 오르자 비로소 '삼신봉'에 이르게 된다. 17:00.

 

 

 

# 한벗샘 갈림길.

 

 

 

# 산죽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삼신봉. 아직 저 봉우리를 올라야 한다.

 

 

 

# 해가 넘어가고 있는 내삼신봉.

 

 

 

# 삼신봉.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다.

 

 

 

# 가야 할 외삼신봉.

 

 

 

# 내삼신봉.

 

 

 

# 지나온 낙남길과 그 뒤에 희미한 지리의 주능.

 

 

 

삼신봉 정상 암봉 입구에는 산악인을 추모하는 작은 추모비가 서 있다. 암봉을 올라 서자 정상인데, 정상 위에는 엄청난 바람이 불고 있다. 사방으로 조망이 좋은 곳이긴 하나 해가 늬엇늬엇 넘어가고 있고, 바람마저 차갑고 강하게 부는 데다 갈길 멀어 느긋하게 경치 구경할 겨를이 없다.

 

팔 벌려 천지기운을 받아 들인 후 정상 너머로 내려갈 길을 찾는데, 도저히 암봉 너머로는 길이 뵈질 않는다. 이리저리 정상 주변을 돌아보다가 수풀을 헤치고 억지로 정상 너머 숲으로 들어가 보았다.

 

잡목 가득한 숲속엔 누군가 낡은 표지기 하나를 달아 두었는데, 그쪽으로는 도저히 진행할 수가 없다. 한참을 숲속에서 잡목과 싸우다가 도저히 진행을 할 수 없어 숲을 빠져 나와 정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상에서는 전혀 길을 찾을 수가 없어 정상에서 도로 내려서서 입구의 추모비 있는 삼거리로 내려갔다. 뭐, 이럴 때는 SOS를 쳐야지. 먼저 두루님께 전화를 하는데 연결이 되지 않고, 백곰님 전화했더니 오래 전에 지난 길이라 기억이 가물거리는 듯 선뜻 답을 주지 못한다.

 

바람 강한 암봉 아래에서 발 동동 굴리고 있는데, 한참 뒤에 백곰님께 연락이 와서 우측 외삼신봉 방향으로 넘어 가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잠시 진행하자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청학동 방향으로 좌틀하여 가면 된다.

 

백곰님 덕분에 겨우 길을 찾아 외삼신봉을 향해 길게 진행했다. 그러다 '청학동 갈림길'을 만났다. 이곳부터 직진길인 낙남길은 폐쇄 구간이어서 나뭇가지들로 길을 막아 두었다.

 

좌측으로 우회하여 낙남길로 접어들었다. 곧바로 봉우리를 넘은 후 다시 봉우리를 두어 차례 더 넘고 전진하다 보면 '외삼신봉'에 이르게 된다. 17:50. 

 

 

 

# 정상 우측 갈림길에서 청학동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청학동 갈림길.

 

 

 

# 이곳부터 낙남길은 비지정 등산로라 폐쇄되어 있다.

 

 

 

# 비지정 등로답게 산죽들이 길을 가로 막는다.

 

 

 

# 외삼신봉.

 

 

 

#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다.

 

 

 

외삼신봉 역시 찬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있어 마음이 급하여 조망 감상 할 여건도 겨를도 없다. 정상 너머로 표지기들이 달려 있어 정상을 넘어 가는데, 갑자기 암봉 절벽이 앞에 나타나며 길이 끊겨 버린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암벽따라 내려 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뒤로 돌아 확인하니 우측으로 표지기 몇이 달려 있고 그 곳 역시 암벽 낭떠러지다. 도저히 내려갈 수 가 있는 곳이 아니어서 정상 쪽으로 돌아 가 보지만 우회로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지형을 살펴보니 우회로가 있다해도 엄청 돌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아까 그 암봉 절벽으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니 원래 아랫쪽으로 밧줄이 매달려 있었는데, 누군가 밧줄을 끊어 버렸다. 아마도 출입금지 구간이라고 국공파들이 한 일인 듯하다. 막는다고 안 갈 사람들이 아닌데 사고라도 나면 어쩔려고 저랬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래로 스틱 던져 놓고 암벽에 매달렸다. 날 밝고 가벼운 행장이라면 좀 위험하기는 해도 마냥 어려운 곳만은 아니다. 하지만, 바람 강하게 불고 등에는 25kg 박배낭, 앞에는 큰 카메라를 목에 걸고 암벽에 매달렸으니 균형잡기가 어렵다. 게다가 큰 박배낭과 카메라가 앞뒤로 바위에 닿아 무척 위험하다.

 

한순간 휘청해서 아찔한 순간을 맞았는데, 다행히 오늘 접지력이 좋은 국산 새등산화를 신고 온 덕으로 발끝으로 바위에 붙어 균형을 잡았다. 그 순간 며칠 전 설악 용아장성에서 사고 당하신 분 생각도 나고 날 걱정할 주변 사람들 생각도 나고 막 그랬다. 그만큼 사실 위험하고 아찔하였다.

 

어찌어찌해서 겨우 암벽을 내려왔는데, 아직 끝이 아니다. 한차례 더 암벽을 내려야 한다. 다행히 이곳에는 밧줄이 매달려 있어 그 밧줄을 이용해서 내려 갔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도 배낭 무게때문에 중심잡기가 참 어렵다.

 

어렵게 어렵게 암봉을 내려 조금 걷다가 전방의 암봉 하나를 더 만나 그 아래에 배낭 내려 놓고 쉬었다. 조금 전의 그 아찔했던 기억에 새삼 다리가 후덜거렸다.

 

물 마시고 간식도 하나 꺼내 먹으며 지도를 확인하니 오늘 목표지인 묵계치까지는 아직 1시간 30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평소같으면 1시간 30분이야 얼마든지 야간산행을 해도 되겠지만, 지친 몸으로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1대간 9정맥 중 가장 악명 높은 묵계치 가는 산죽밭을 헤쳐 나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공터에서 야영을 하기로 하고 짐을 챙겨 일어 섰다. 그런데 그 암봉 좌측 바로 아래 등로에 꼭 텐트 한 동 칠 정도의 공간이 있다. 기분 같아서는 한 4, 50분 정도는 더 가서 야영을 하고 싶었지만, 이후로는 엄청난 산죽밭이 길게 이어진다는데 이만한 야영자리가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그냥 이 자리에서 야영하기로 했다.

 

이 야영자리는 등로에 위치해 있고 바람도 많이 타는 데다가 누군가 응가를 해 두었는지 야릇한 냄새도 났다. 허나 현재로서는 이 보다 더 좋은 자리가 없을 듯하여 그냥 설영하였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펄럭이는 텐트 붙잡고 낑낑 거리며 설영을 마쳤다. 짐 풀어 정리하고 음식도 끓였다.

 

집에서 혼자 걱정하고 있을 마눌에게 전화해서 야영하고 있노라 전하고 음식 끓기를 기다리는데, 드디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야영을 결정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만약 욕심 내어서 계속 진행했더라면 꼼짝없이 비 쫄딱 맞을 뻔 했다.

 

찌개 끓이고 햇반 데우고, 마눌이 챙겨준 밑반찬까지 펼치니 홀로 만찬이 이만하면 충분하였다. 다만 짐 줄이려 막걸리 대신 작은 휴대용 소주를 챙겼는데, 지난 번 화대종주 때 벽소령에서 저녁 먹을 때처럼 술맛이 입에 맞지 않아 그 점만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와 웅웅거리는 바람소리를 벗삼아 한 방울씩 먹었다. 하지만 이제 이 몸은 소주맛 잃어버린 옛술꾼이라 식사 끝낼 동안 마신 술이 남들 소주 한 잔 양 밖에 되지 않았다.

 

 

 

# 어머니의 산 지리에서 나홀로 산상만찬을 즐겼다.

 

 

 

저녁 먹고 양치하고 물티슈 목욕까지 끝냈는데도 시각은 7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다. 스마트폰으로 책 좀 읽다가 내일 걸을 걸 생각해서 8시 조금 넘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고 바람은 미친 망아지 마냥 휘잉 휘잉 날뛰고 있다.

 

간밤에 잠 거의 못자고 하루종일 무거운 박배낭 무게에 시달렸더니 피곤했는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무서운 바람소리에 놀라 일어나 보니 강한 바람에 텐트 팩이 몇 개 빠져서 텐트가 펄럭이고 있다. 밖으로 나가 팩 단단히 고정하고 주변을 살피니 여전히 비는 내리고 바람도 거세다.

 

내일 산죽밭 걸을 일이 걱정이다. 이렇게 비를 흠뻑 먹은 산죽밭을 걷자면 몸이고 배낭이고 모두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될텐데... 게다가 이곳의 산죽은 모두 키가 커서 피할 방법도 없으니...

 

이런저런 걱정에 뒤척이다 다시 잠이 들었다. 밤새 바람소리 때문에 자다 깨다 여러 차례 반복하지만, 그래도 평소 집에서 비하면 긴 시간 동안 비교적 푹 잔 셈이다.

 

눈 뜨니 여섯 시인데, 나른한 피곤함이 싫지 않아 계속 게으름 피우며 해 뜨기를 기다렸다. 간밤에 그렇게 텐트를 두들기던 비가 어느새 그치고 바람만이 여전하게 불고 있다. 한참을 게으름 피우다 일출 보러 밖으로 나갔다. 숲속이라 확 트인 일출은 못보지만 숲 너머로 솟아오르는 햇님을 안고 천지기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텐트를 만져보는데, 어랍쇼? 걱정과는 달리 텐트가 뽀송뽀송하다. 간밤에 비가 아주 많이 왔는데? 주변의 산죽을 만져봐도 모두 젖지 않고 뽀송뽀송하다. 이럴 수가 있나? 비바람이 그렇게 온밤을 몰아쳤는데 숲에 물방울 하나 없을 수가 있나?


아마도 밤새 몰아친 바람이 빗물을 모두 말려 버린 모양이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불었으면 숲 전체에 물방울 하나 남기지 않고 말려버릴 수 있을까? 아무튼 숲에 가득할 물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한시름 덜었다. 아침 끓여 먹고 짐 챙겨 다시 하루의 산행을 시작했다. 08:00

 

 

 

# 이 암봉 아래 등로에서 야영했다.

 

 

 

# 간밤에 비가 그렇게 많이 왔는데 ,숲에는 물 한 방울 없다. 강력한 바람이 모두 말려 버렸다.

 

 

 

# 숲 너머로 일출이 시작된다.

 

 

 

# 트인 공간이 없어 숲에 가리기는 했지만, 그 정기는 받을 만 하였다.

 

 

 

# 하룻밤 잘 쉬었다 갑니다.

 

 

 

혹시나 해서 비옷과 배낭 커버를 배낭 제일 위에 올려 두고 출발하지만, 간밤에 바람이 얼마나 불었는지 비가 오지 않은 것처럼 숲속은 뽀송뽀송하다.

 

곧바로 산죽밭이 앞을 가로막았다.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자 앞이 트이며 저멀리 은빛 물결이 보인다. 남해바다인가? 아니면 남강 하류인가?

 

다시 봉우리 두어 개를 연달아 넘는데, 앞을 가로막는 산죽이 딱 키높이라 얼굴을 때리는 산죽과 싸우느라 걷기가 엄청 어렵다. 스틱 든 손을 앞으로 모으고 산죽을 헤치며 걸어야 했다. 이곳에서는 키가 190이 넘든지 160 이하가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봉우리 하나를 올랐다가(1173봉) 좌틀하여 내리는데, 급경사 내리막이 길게 이어진다. 스틱에 의지해 조심조심 내려 갔다. 이후 안부에서 연달아 두 개의 봉우리를 넘었다. 두 번째 봉우리가 바위 전망대가 있는 '1088봉'이다.

 

전망대에서는 좌측 너머로 지리의 주능과 천왕봉이 선명하게 조망된다. 한참을 발걸음 멈추고 조망하였다. 이후 계속 오르내리다 길게 떨어져 내린다. 이 내리막은 급경사가 길게 이어지는 데다 키 높이의 산죽밭, 그리고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다.


덩치 큰 박배낭 메고 엉금엉금 기어야 하는 순간이 여러 번 연출된다. 그렇게 내려가면 어젯밤 목적지였던 '묵계치'에 도착하게 된다. 09:30

 

 

 

# 하루의 산행을 시작하세!

 

 

 

# 저멀리 은빛 물결이 보이는데 아마도 남강의 물줄기인 듯하다.

 

 

 

# 지긋지긋한 산죽밭이 길게 이어진다.

 

 

 

# 딱 얼굴 높이라 댓잎에 따귀를 맞는 기분이다.

 

 

 

# 바위솔도 단풍이 드는구나!

 

 

 

# 숲 너머로 천왕봉이 보이더니,

 

 

 

# 땡겨보면...  어제 만났던 그 청년들은 저기에 있겠네!

 

 

 

# 바람 좋은 협곡.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바위전망대에서 지리 주능을 볼 수 있다.

 

 

 

# 제석봉.

 

 

 

# 천왕봉이여!

 

 

 

# 천왕봉에 이르는 길을 넓게 펼쳐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1088봉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길게 내려야 한다.

 

 

 

# 지리에 단풍 들다.

 

 

 

# 잡풀 무성한 묵계치.

 

 

 

묵계치엔 헬기장이 있어 가끔 이곳에서 야영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나 역시 그 얘기 듣고 어젯밤 이곳까지 야간 산행해서 올 계획을 세웠지만, 만약 그 계획대로 했다면 비 홈빡 맞고 큰 곤욕을 치를 뻔 했다. 묵계치 헬기장은 잡풀이 너무나 무성히 자라 야영 할 공간이 전혀 없다.

 

묵계치에서부터는 곧장 뾰족한 봉우리인 991봉을 치고 올라야 하는데 잡풀이 너무나 무성해 들머리를 찾을 수 없다. 키높이의 잡풀을 억지로 헤치고 등로를 찾아보았다. 곧바로 가파른 오르막과 지금까지 보다 훨씬 빽빽하고 무성한 키높이의 산죽밭을 만나게 된다.

 

악전고투! 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오르막과 지긋지긋한 산죽밭과의 전투를 치르며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너무 강력한 태클에 아이고 소리도 안나온다. 본능적으로 다리를 옮겨 위로 올라 봉우리에 오르고, 다시 잔봉을 너댓 차례 넘은 후에야  '991봉 정상'에 서게 된다. 09:40

 

그러나 정상은 산죽밭이 넘어가는 길목일 뿐 아무 조망도 공간도 없고 곧장 우틀하여 떨어져 내린다. 한참을 산죽밭과 싸우며 내려가다보니 고운동재를 넘는 차량 소리가 들리더니 드디어 지긋지긋한 산죽밭에서 벗어나게 된다.

 

순한 길을 따라 내리다 바람골을 만나 배낭 내리고 홀랑 벗어 산죽 헤치느라 땀범벅이 된 몸을 말렸다. 정말 엄청난 산죽밭이다. 이 땅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구간이고 힘든 구간이다. 몇 시간 동안 산죽밭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온몸이 땀범벅에 먼지 투성이다. 윗옷 홀랑 벗고 물수건으로 닦았다. 그 상태로 오랫동안 바람을 즐겼다.

 

그러다 짐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고운동재 거의 도착할 무렵 낙남길 졸업에 나선다는 부부 산꾼을 만났다. 그들과 낙남에 관련하여 서로 덕담 주고 받다가 작별하였다. 조금 더 내리면 '고운동재'에 도착한다. 11:00

 

 

 

# 산죽밭을 벗어나 이런 길을 만나니,

 

 

 

# 얼마나 행복하던지!

 

 

 

# 고운동재.

 

 

 

고운동재에는 따스한 햇살이 가득하다. 한 쪽에 낙남길 단체 안내 산악회에서 몰고 온 관광버스가 두 대 서 있다. 운전기사에게 물으니 경기도에서 왔고 선두조가 내려올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모양이다. 아마도 새벽부터 밤새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걸었을 것이다. 모든 안내산악회는 다 그런 방식의 산행을 한다.

기다렸다가 이들에게 묻서울로 올라갈까 하는 생각도 없진 않지만, 부탁하기 귀찮아 물만 좀 얻었다. 일단은 시간이 이르니 산행을 좀 더 해서 길마재까지 한 번 가보자는 생각이다. 쉬면서 지도 확인하고 주변 구경하고 사진찍고 하다가 아래를 보니 고운동 상부댐의 파란 물결이 눈에 들어온다.

 

고운동댐은 그 건설 과정에서의 뜨거웠던 찬반 논쟁과 한돌의 고운동 달빛이란 노래 때문에 늘 한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있던 곳이다. 도대체 어떻게 건설하였기에 그런 난리가 났을 지 궁금하였다. 때문에 그냥 오늘은 이곳에서 산행을 마치고 댐으로 걸어 내려가 댐 구경도 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차를 얻어 타고 하산하자고 결정했다.

 

산행 종료를 결정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발걸음도 가볍다. "고운동 계곡이 잠긴다네~ 고운동 달빛이 사라진다네~" 한돌의 노래 흥얼거리며 햇살 따스한 길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몇 굽이 내려가자 우측에 가는 물줄기가 흘러 내리는 계곡이 보인다.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찰랑샘인가 보다.

 

그 물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배낭 내린 후, 간밤 비에 꿉꿉해진 침낭도 말리고 배낭도 말렸다. 무엇보다 시원한 알탕으로 이틀 간의 먼지를 씻어냈다.

 

 

 

# 안내산악회의 버스가 두 대 서 있다.

 

 

 

# 용담.

 

 

 

# 고운동의 하늘.

 

 

 

# 물 졸졸 흐르는 계곡을 만나 홀랑 벗고 깨끗이 씻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깨끗이 씻고 새 옷으로 갈아 입으니 비로소 산짐승에서 인간으로 돌아 온 듯하다. 짐 챙겨 출발하려고 하는데, 고개 위에서 SUV 차량 한 대가 내려온다. 나를 보고 속도를 줄이길래 손을 들었다. 그의 말로는 이 아래로는 댐에서 길이 끊어지니 길이 없으며, 자신은 댐에 일을 보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가서 일을 본 후 반대편으로 태워 주겠노라고 한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차에 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시설관리공단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고운동댐의 시설안전진단을 담당하고 있다 한다. 수문학(水文學)을 전공한 사람이라 강/사/랑이 하고 있는 일과 연관성이 많고 서로 다시 만날 일도 있을 법한 사이다. 그 분 덕분에 고운동댐 이곳저곳을 둘러 볼 기회도 얻었다.  

 

 

 

# 고운호.

 

 

 

# 이곳은 양수댐의 상부댐이다.

 

 

 

# 그런데 그 규모가 웬만한 저수지 보다 더 작다. 뭐, 대단히 환경적 변화를 불러 일으킬 정도는 아닌 듯하다.

 

 

 

# 우측 잘록이가 고운동재다.

 

 

 

# 호숫가엔 억새꽃만 한가롭고.

 

 

 

# 댐 아래 고운동 계곡. 저 아래로 반천까지 내려가는 길이 있기는 한 모양인데, 위험하다고 댐관계자가 말린다. 이 땅의 산줄기를 찾아 다니는 홀로 산꾼이 저 계곡 정도의 위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금 더이상 땀 흘리기 싫고 차 태워주신다는 분이 계시니 편하게 하산할란다.

 

  

젊은 기술자의 일이 끝날 때까지 고운동 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한가로운 가을 정취를 즐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 규모의 댐으로 고운동 계곡이 사라지고, 고운동 달빛도 사라지고, 새들도 떠나고, 꽃들의 희망도 잠기는 환경적 재앙을 가져 오지는 않을 듯하였다. 자세한 환경 영향평가는 전문가들의 몫이지만...

 

일단 내 눈에는 고운호에 내려 앉은 파란 가을 하늘과 바람에 살랑이는 하얀 억새가 참으로 한가롭고 평화롭기만 하였다. 아마도 이틀 간의 힘든 산행 후에 깨끗이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은 새 기분과 나른하며 기분좋은 피곤함으로 느긋하게 따스한 가을햇살을 즐길 수 있어 그런 모양이다.

 

달 밝은 밤, 이 호숫가에서 가까운 이들과 막걸리 한 잔 나누노라면 호수 물결에 흔들리는 달빛을 한 잔 떠 먹을 수도 있으리라 상상도 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이곳에서 세월을 보내다 보면 어느날 고운(孤雲)처럼 지리산 신선은 되지 못할지언정 도끼자루 한두 개 정도는 썪힐 수 있으리라 싶다.

 

아무튼 홀로 오래 고운호 주변의 가을 풍광을 즐기다가 일 마치고 오신 젊은 기술자의 호의로 편안하게 고운동재를 다시 넘었다. 묵계치 아래 터널을 지나 거림, 내대와 중산리에서 내려오는 도로가 합류해서 진주로 향하는 20번 도로 타고 하부댐 근처 신천리에 도착했다.

 

친절한 사람의 호의 덕분에 편안하게 하산을 완료한 후, 그 분은 하부댐에 다시 일 보러 떠나고 혹시 모를 다음의 인연을 기약하며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 홀로 산꾼에게 친절을 베풀고 다시 일 보러 떠나는 젊은 기술자.

 

 

 

# 신천리 버스 정류소.

 

  

이후 진주 가는 버스가 곧바로 도착해서 덕산, 단성, 원지 거쳐 한 방에 진주까지 점프하였다. 내 고향 진주. 골목골목 거리거리 강/사/랑의 옛 기억이 어린 곳이다. 희미한 옛 추억의 흔적을 잠시 더듬다가 고속버스편으로 귀향하였다. 그렇게 낙남길 첫 번째 걸음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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