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낙남정맥]두번째 걸음(고운동재~돌고지재)-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본문

1대간 9정맥/낙남정맥 종주기

[낙남정맥]두번째 걸음(고운동재~돌고지재)-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강/사/랑 2011. 11. 14. 13:10
[낙남정맥]두번째 걸음(고운동재~돌고지재)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 테러, 기아문제(飢餓問題), 금융위기 등 오늘날 전 지구적(全 地球的)으로 우리 인류를 위협하는 많은 문제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위협적인 문제는 바로 '기후변화(氣候變化)'다.

 

경제개발, 식량 대책 같은 먹고 사는 문제에 밀려 기후변화는 평상시 일상에서 잊고 살기 쉽고 정책상 항상 뒤로 밀리기 쉽지만, 그로 인한 피해나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때문에 오늘날 우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 중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전 지구적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몰디브 등 지대가 낮은 태평양의 섬 국가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물속으로 잠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이제는 온대지방(溫帶地方)이 아니라 아열대성(亞熱帶性) 기후에 속한다고 할 정도로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해수면의 온도도 상승하였다. 그 결과 우리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지고 제주에서나 보이던 자리돔이 울릉도에서 잡힐 정도로 생태계에 큰 변화가 왔다.

 

지난 여름, 서울 등 수도권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강남역 일대가 물바다로 변하고, 우면산에서 발생한 토사 유출로 커다란 피해가 발생한 일 등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도 발생할 문제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이다.

 

이러한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태풍, 가뭄, 지진해일 등의 발생을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로 해석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 같은 사람은 지구를 무생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生命體)로 판단한다. 그에 의하면 현재의 이러한 전 지구적 변화들은 인류에 의해 파괴된 지구가 스스로 균형(均衡)을 잡아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해석되어진다.

 

제임스 러브록의 이론을 '가이아 이론(Gaia theory)'이라고 한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大地)의 여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에 의하면 가이아는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범지구적(凡地球的) 실체로서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체(有機體)다. 그리하여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능동적으로 조정되고 유지되며 이러한 지구의 무생물계와 생물계는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인간의 환경파괴 문제 및 지구온난화 현상 등 인류의 생존과 직면한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지나치게 비과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이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생명체인 지구가 인류에 의해 깨어진 균형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기후변화나 이상기온 같은 환경적 영향이 나타난다는 가설이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옛사람들은 자연을 自然, 곧 '스스로 그러한 존재'로 이해했고, 어떠한 인위적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도(道)의 근본으로 보기도 했다.

 

가이아 이론이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가 사는 이 지구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고, 우리 인류와 지구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스템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이니 지구를 살리는 일이 곧 우리 인류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제다.

 

지구의 품을 떠난 인류가 존재할 수 없고, 지구환경의 보호없이 인류의 번영은 기약할 수 없는 탓이다. 한편으로는 모든 가치의 최상위에 환경을 두어 발전이나 개발 행위 자체를 죄악시하는 극단적인 환경론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한 존재이며, 끊임없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 느리지만 거대한 자정(自淨) 노력을 하고 있는 유기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말적 비관론에 빠져 너무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다만 더 이상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막아내고, 가이아의 자정 노력을 돕기 위해 지구인으로서 각 개인들이 각자가 할 수 있는 자신의 일들을 찾아 나가고 실천하면 될 일이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고 균형(均衡)을 잡아 나가고 있으므로!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구간 : 낙남정맥 제 2구간(고운동재~돌고지재)
거리 : 구간거리(12.6km), 누적거리(35.1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1년 11월 13일. 해의 날.
세부내용 :

고운동재(07:30) ~ 배바위 ~ 902봉 ~ 862봉 ~ 875봉  ~  799봉 ~  790.4봉 ~ 길마재(10:14) ~ 555봉/산불감시초소/점심 후 11:00 출발 ~ 칠중대고지(11:45) ~ 565봉 ~ 584봉 ~ 양이터재(12:25)/20분 휴식 ~ 646봉 ~ 628봉 ~ 방화고지(13:35) ~ 654봉/ 점심 후 14:40출발 ~ 587봉 ~돌고지재(15:30).  
           
총 소요시간 8시간.

 

 

2011년 11월 12일, 흙의 날.  낙남정맥 두 번째 걸음을 위해 길을 나섰다. 애초에 낙남정맥은 전부 비박산행을 하기로 하고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거나 토요일 오전에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요근래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지 토요일 아침 늦잠 자고 일어나니 짐 꾸릴 엄두가 나질 않았다.

 

간만의 느긋한 게으름을 포기하기 싫어 쇼파에 누워 TV리모컨 붙들고 뒹굴거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 때가 지나고 짧은 늦가을 하루가 너무나 허무하게 가버리고 말았다. "이러다는 이틀 내도록 이 모양이겠다. 자리 털고 일어나자!"

 

얼른 짐 꾸린 후 옷 챙겨 입고 마눌이 태워주는 차 타고 철산역으로 향했다. 다시 전철 타고 1시간여 달려 강남고속터미널에 들어섰다. 주말 버스예매가 많아 몇시간 앞까지 예매가 다 되었는데 마침 9시 차에 딱 한 자리가 남아 있길래 얼른 표를 구매했다.

 

고속버스 맨 뒷자리 한 가운데에 여성들 사이에 끼어 네 시간을 졸다 깨다 하다 보니 눈에 익은 시가지가 보이고 올해 들어 유난히 자주 방문하게 되는 내고향 진주다.

 

 

조릿대/山竹

 

조릿대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 중턱 이하의 숲이나 개활지에서 자라는 상록 관엽 식물이다. 생육환경은 물 빠짐이 좋고 반그늘 혹은 양지에서 자란다. 키는 1~2m 정도이고, 잎은 길이가 10~25㎝로 가지 끝에서 2~3매씩 나오고 가장자리에는 가시 같은 잔톱니가 있다. 꽃은 자주색으로 포에 싸여 있고 2~5개의 꽃이 5년마다 한 번씩 피고, 꽃이 핀 다음 지상부는 죽고 없어진다. 열매는 7~8월경에 달린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열매는 식용, 잎·줄기는 약용으로 쓰인다. 조릿대는 간열을 내리고 독을 풀어 신경을 안정시키며, 가래를 없애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염증을 치료하고 암세포를 억제하면서 정상세포에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다. 여름철 더위를 먹었거나, 더위를 이기는 데에는 조릿대 잎으로 차를 끊여 마시면 좋다. 조릿대 잎은 방부작용을 하므로 떡을 조릿대 잎으로 싸 두면 며칠씩 두어도 상하지 않으며 팥을 삶을 때에 조릿대 잎을 넣으면 빨리 익을 뿐 아니라 잘 상하지 않는다. 조릿대의 항암작용은 일본에서 실험한 것에 따르면 조릿대 추출물은 간복수 암세포에 대해 100퍼센트 억제작용이 있었고, 동물실험에서 암세포를 옮긴 흰쥐한테 조릿대 추출물을 먹였더니 30일 뒤에 종양세포의 70~90퍼센트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불면증이나 신경쇠약에도 조릿대 잎차를 늘 마시면 효험이 있으며 조릿대 잎을 달인 물을 돌지난 아기에게 조금씩 먹이면 체질이 근본적으로 튼튼하게 바뀐다고도 한다.

 

횡천면/橫川面


경상남도 하동군 중앙부에 있는 면. 동쪽으로 북천면(北川面), 북서쪽으로 청암면(靑岩面), 남쪽으로 고전면(古田面), 남동쪽으로 양포면(良浦面), 서쪽으로 적량면(赤良面)에 접한다. 정안산(鄭晏山:448m)·갈미봉(397m) 등의 작은 산봉우리들로 둘러싸여 있고 횡천강이 남북으로 흐른다. 총면적의 74%가 임야이고 농작물은 식량작물 외에 참깨와 인초(忍草)·저마 등의 특용작물과, 파·상추 등이 재배된다. 순천∼진주 간 국도가 연결되어 있고 경전선이 남부를 동서로 지나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재로는 하동 남산리(南山里) 고분군, 남산리 성지(城址), 옥계사지(玉溪寺地), 월평리(月坪里) 선사유적 등이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남정맥 제 2구간 고운동재 ~ 돌고지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전철 타러 철산역에 들어서니 낯 익은 얼굴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산 동무인 장산님이다. 장산님은 이제 서울을 전부 접수해 버릴 작정이신가 보니다. 장산님과는 1980년 5월 창원 39사단에서 대학생 병영훈련을 같이 받은 인연이 있다. 물론 그때는 서로 모를 때이다. 그당시 우리가 병영 훈련을 받는 와중에 광주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척추는 인간 직립의 근간이다. 이상이 생기면 즉시 예스병원으로!

 

 

 

# 주말 고속터미널은 여행 떠나는 사람들로 붐빈다.

 

 

 

진주에 도착하니 새벽 1시. 터미널에서 다시 택시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허나 아직 첫차 시각이 일러 터미널 앞에 있는 자금성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남부터미널에서는 이곳 시외터미널로 바로 오는 차가 많이 있고, 또 그 차가 진주 오기 전에 원지에서 정차한다. 따라서 낮에 올 때는 그 차편을 이용하여 원지에서 내린 후 덕산 거쳐 고운동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

 

그러나 원지에는 찜질방이 없어서 이런 새벽 시간에 도착하면 첫차 움직일 때까지 시간 보낼 일이 큰일이다. 원지 근처 남사리 길리 마을에 참숯불가마가 있기는 하다는데, 위치도 모르겠고 얼마나 떨어져 있는 지도 알 수 없어서 오늘은 그냥 진주로 왔다.

 

찜질방에 들어가자마자 옷 갈아입고 수면실로 갔다. 하지만, 주말 버스 터미널 근처의 찜질방에서 숙면을 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곳곳에 탱크 소음을 장착한 이들이 꽈르릉 꽈르릉 자갈밭에서 탱크를 몰고 다니는 통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저렇게 심하게 코를 고는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찜질방 같은 다중이 이용하는 곳에는 오지 않는 것이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탱크 소음에 시달리며 뒤척이다 겨우 한 시간여 눈 붙이고 다섯시에 기상했다. 얼른 씻고 터미널 앞에 있는 24시 김밥집에서 아침 먹고 점심용으로 공깃밥도 하나 챙기고 반찬도 부탁해서 진공 용기에 담았다. 또 편의점에 들러 간식으로 먹을 삼각김밥과 빵, 그리고 일용할 막걸리도 하나 챙겼다. 음.. 집에서 가져온 과일과 간식까지 생각하면 먹을 것을 너무 많이 챙겼구나! 그래도 일단 양식이 든든해야!

 

첫차 시간이 급박해 응가도 못 보고 양치만 간단히 하고 중산리행 첫차에 올라타고서 덕산을 향했다. 오늘 계획은 덕산에 내려 덕산 택시를 이용해서 고운동재로 갈 생각이다. 차 안에서 지도 꺼내 오늘 걸을 산길을 점검하고 있는데, 옆자리의 중년 남자가 낙남정맥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신도 낙남하러 가는 길이라는데 오늘 계획한 코스가 나하고 똑같다. "아이고~ 잘 되었습니다. 덕산에서 고운동재까지 같이 가면 되겠군요."

 

반갑게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 보니 지난 번 첫 구간에서 하룻밤 야영하고 고운동재에 내려섰을 때 서있던 그 안내 산악회의 일행이시란다. 그 산악회가 지난주에  2구간 산행을 했는데 자신은 일이 있어서 같이 못하고 오늘 혼자 그 구간을 하러 오셨단다. 내 블로그에 들어와서 지난 번 산행기도 읽었노라고...

 

세상의 인연이란 것이 이렇게 또 이어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런저런 산길 얘기 나누다 보니 덕산에 도착하게 된다. 경기 광주에 사신다는 그분이 예약해 둔 덕산택시가 금방 도착하여 같이 고운동재로 향했다.

 

덕산에서 고운동재까지는 택시비가 24,000원이 나왔다. 같이 사이좋게 절반씩 부담하니 교통비 절약되어서 참으로 좋다. 낙남정맥은 지난번 첫 구간할 때도 덕산에서 젊은 산꾼들과 합승해서 택시비를 반으로 절약했었는데, 오늘도 그러하니 고향 근처를 지나는 산길이어서 그런가? 일단 시작 단추는 기분 좋게 끼워지는 느낌이다.

 

한 달여 만에 다시 찾은 고운동재는 계절이 깊어 가을 냄새는 사라지고 초겨울로 접어드는 형국인데, 오늘 기온은 따스해서 별다른 보온대책은 필요 없다. 이런 계절이면 준비운동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산길에서도 걸음이 느린 사람이라 같이 보조 맞추기 어려우니 그분께 먼저 출발하시라 말씀드리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경기 광주에서 오셨다는 '자연과 송정'님은 오늘 배토재까지 갈 계획을 갖고 계시고, 나 역시 1차 계획은 배토재까지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산속에서 이런저런 지체가 길어지면 돌고지재에서 끊을 작정이라 다시 뵙기 어려울 듯하다. 

 

작별 겸하여 좋은 산행을 서로 빌어주고 그분은 먼저 산으로 들어가시고 난 계속 몸을 풀었다. 잠시 후 준비 마치고 짐 챙겨 낙남 2구간으로 스며들었다. 07:30.

 

 

 

# 한 달만에 다시 찾은 고운동재. 반천 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 옛날 어떤 이가 나더러 아침 노을을 같이 보지 않겠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 지리산행 첫차 안에서 만난 자연과 송정님.

 

 

 

# 준비운동 시간 긴 나 때문에 먼저 산으로 스며든다.

 

 

 

# 이후 내가 하 쉬엄쉬엄 가는 바람에 뵐 수는 없었다. 아마도 배토재까지 마치신 듯.

 

 

 

# 고운동재. 다시 올 일이 있을라나?

 

 

 

고운동재 아침 노을 구경하다가 짐 챙겨 2구간 들머리로 스며들었다. 산삼 재배단지를 지키는 개들이 요란하게 짖고 있고 고개 너머 대안학교 아이들이 아침 운동으로 고개를 뛰어 넘고 있다. 

 

이윽고 산죽밭을 따라 위로 올리면, 곧 '배바위'를 만난다. 배바위는 고운동재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장소라 바위 끌어안고 그가 지나온 억만년 세월을 느껴보았다.

 

한차례 올려 봉우리에 오르면 좌측으로 산죽 너머 전망처가 나오고, 아래로 고운호의 물결이 보인다. 위로는 산에 가려 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아침 해가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가야 할 902봉이 우뚝하다.

 

아래로 잠시 내렸다가 좋은 등로를 따르다가 902봉 봉우리를 올려 치는데, 계속 산죽밭이 이어진다. 작년에 이곳을 지난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산죽밭이 잘 정리되어서 길이 참 좋더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일 년 사이에 산죽은 다시 등로를 모두 점령하여 인간의 손길쯤은 간단히 지워버렸다.

 

역시나 자연은 스스로 그러한 존재라 인간이 아무리 변형시키고 파괴한데도 곧 스스로 균형을 맞춰 새로운 질서를 창출한다. 아마도 내년 쯤이면 묵계치 부근의 산죽밭 못지 않게 정맥꾼들의 발목을 잡아채겠다.

 

902봉을 내려 '862봉'을 넘고 잔봉을 서너 개 연달아 넘다가 '875봉'을 치고 오르면 넓은 묘역이 나타난다. 묘지 바로 뒤에 바람골이 있어 배낭내리고 쟈켓은 벗어 패킹하고 간식 먹으며 휴식했다. 이왕 쉬는 김에 좋은 바람 버리기 아까워 홀랑 벗고 거풍도 한 번 즐겼다.

 

 

 

# 고운호 물결 위에 하늘이 내려 앉았다.

 

 

 

# 역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댐이다.

 

 

 

# 902봉 좌측으로 아침해가 떠오른다.

 

 

 

# 아침노을을 혼자 본다.

 

 

 

# 음...

 

 

 

# 1년 만에 산죽은 다시 등로를 점령했다.

 

 

 

# 902봉에서 우측으로 떨어져 내렸다.

 

 

 

# 넓은 묘역이 있는 875봉.

 

 

 

875봉 정상부는 좌측으로 우회하여 진행하고 곧 '표지기 전시장'이 나타난다. 참 많이도 매달아 두었네! 

 

아래로 떨어지는데 키높이의 산죽밭이 계속 이어져서 고개 숙이고 양손 앞으로 나란히! 해서 물결 가르듯 전진했다. 봉우리를 하나 치고 올라(799봉) 잠시 편하게 가다가 잔봉을 하나 오르고, 정상부에서 좌측으로 사면을 따라 우회했다. 곧 작은 바위가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09:00

 

처음으로 사방이 모두 트인 조망이 허락된다. 맑은 날이면 지리 주능과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조망될 터인데, 오늘은 박무가 짙게 끼어 모든 것이 희미하다. 그래도 지나온 정맥길은 눈에 들어와 한참 경치 구경을 했다. 불과 몇 주 사이에 산은 잎을 모두 떨구고 이미 겨울 채비에 들어갔다.

 

 

 

# 표지기 전시장.

 

 

 

# 산죽밭이 계속 이어지고.

 

 

 

# 아침에 동행했던 경기 광주 산꾼의 표지기.

 

 

 

# 작은 암봉에서의 조망. 지나온 정맥과 저 멀리 지리 주능이 희미하게 보인다.

 

 

 

# 지리의 숲은 이제 겨울로 가고 있다.

 

 

 

#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멋진 조망을 볼 수 있겠다.

 

 

 

# 시천면 반천리의 인간세.

 

 

 

정상 너머로 곧바로 떨어진다. 제법 가파르고 깊게 떨어져서 고도를 100m나 까먹고 나서야 안부에 이르게 된다. 곧 다시 그 각도 그대로 위로 치고 오른다. 키 작은 산죽밭을 따라 뾰족하게 밀어 올려 봉우리에 올라 서지만 뾰족했던 외모와는 달리 정상부는 특별한 이름표를 달고 있지 못하다. '790.4봉'

 

저 멀리 천왕봉이 박무 속에 희미한데 카메라도 잡아내지 못한다. 잠시 조망 구경하다가 출발하여 길게 아래로 내렸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우틀하여 떨어져 내리면 길마재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길마재 가는 길은 그냥 내리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차곡차곡 고도를 낮춰간다. 서너 차례 계단을 내리다가 가파르고 깊게 떨어지라 한다. 경사가 급하고 낙엽이 많이 쌓여 미끄러워서 무릎에 부담을 많이 준다. 시큰거리는 무릎으로 고도를 250m나 떨어뜨린 후에야 '길마재'에 내려서게 된다. 10:14.

 

 

 

# 억새가 짧게 남은 가을 햇살에 빛난다.

 

 

 

# 790.4봉.

 

 

 

# 삼각점이 있다.

 

 

 

#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떨어지면 길마재로 향하게 된다.

 

 

 

# 고도를 250이나 까먹고 내려온 길마재.

 

 

 

길마재는 정재기 마을과 궁항리 마을을 이어주는 1014번 지방도이다. 네이버 지도에는 궁항길이라 표시되어 있다. 길마재란 이름은 참 흔한 이름이라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백두대간 우두령 아래에 있는 길마재다. 저 멀리 서정주시인의 고향인 전북 고창에도 질마재가 있다.

 

길마재, 혹은 질마재란 이름은 소 멍에의 옛말인 질마, 혹은 길마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고개란 것이 본래 잘록하거나 볼록하여 소의 멍에를 닮기 마련이다.

 

길마재에서 한차례 올리면 '산불감시초소'가 나오는데, 전방으로 조망이 좋다고 하지만 오늘은 박무때문에 조망은 없다. 국토지리원 25,000지도에는 555봉이라 적혀 있다. 아직 산방기간이 안되어서 그런지 감시원은 없다. 잠시 진행하다가 낙엽 푹신하고 바람 좋은 공터에서 배낭 내리고 아점 먹으며 휴식했다.

 

 

 

#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55봉.

 

 

 

# 그 근처 공터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아침에 진주에서 준비한 막걸리와 김밥, 과일 등으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애초에 쉬엄쉬엄 가기로 작정한지라 두 시간 정도마다 한 번씩은 휴식하고 그때마다 막걸리를 곁들인 식사를 하기로 했다. 느긋한 혼자 만의 산상 만찬이 나름 운치 있다.

 

오래 쉬다가 11:00에 출발했다. 길고 완만하게 아래로 내리며 진행하는데 전화가 연달아 온다. 오늘이 시제 모시는 날인데 가고 있느냐, 혹은 오고 있느냐는 전화다. 오잉? 시제는 다음 주 일요일이라 들었는데? 이게 뭔 소리다냐? 형에게서 다음 주라 들었는데?

 

아무래도 자식 대학입시 때문에 정신없을 우리 형이 날짜 계산을 잘못했나 보다. 끄응~ 이십몇 년 동안 시제에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틀렸네. 나 지금 산속이라 하산해서 가는 동안에 시제는 이미 끝나겠다. 전화 받느라 한참을 지체하고 위로 계단식으로 서너 차례 밀어 올리면 '칠중대고지'에 이르게 된다. 11:45

 

 

 

# 숲 너머에 칠중대고지가 뾰족하다.

 

 

 

# 칠중대고지 오름 중간에 고인돌 형상의 바위가 보인다.

 

 

 

# 삼각점이 있는 칠중대고지.

 

 

 

칠중대고지는 빨치산 토벌 당시 칠중대가 주둔하여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상부엔 산죽밭 사이에 공터가 있고 삼각점도 설치되어 있다. 정상 너머로 길고 완만하게 고도를 낮춰가다가 그 추세대로 고도를 높혀 오른다. 계단식으로 두어 차례 올리면 '565봉'에 이른다.

 

565봉을 지나 잠시 내렸다가 다시 한차례 올리면 '584봉'을 넘게 된다. 이후 아래로 내리다가 절개지 위에서 급격하게 좌틀하여 휘감아 내리면 '양이터재'에 이른다. 12:25.

 

 

 

#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 양이터재.

 

 

 

양이터재는 옛날 양씨와 이씨가 터전을 잡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라는데, 청암면 하동호와 옥종면 궁항리 양이터를 이어주는 옛길이다. 지금은 지리산 둘레길이 이 고개를 통해 이어져서 길도 잘 닦여 있고 벤치와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다.

 

오늘부터 기온이 떨어질거란 예보가 있었지만, 따뜻한 남쪽나라여서 그런가 기온이 높아 얇은 집티 하나만 입고 산행하는데도 땀이 많이 난다.

 

양이터재엔 좋은 그늘과 시원한 바람, 쉼터까지 갖춰져 있으니 이런 배려를 무시하고 갈수가 없어서 벤치에 배낭 내리고 한가한 망중한을 실컷 즐겼다. 게다가 새벽에 서두르느라 근심을 풀지 못하고 왔는데 화장실까지 있으니 이곳에서 근심도 풀고 가자는 생각이지만, 웬일인지 소식이 없어 그냥 벤치에서 가을 바람만 즐겼다.

 

기분같아서는 한 잠 잤으면 좋으련만 갈 길 머니 그냥 바람만 즐기다가 20여 분 후 다시 길을 나섰다.  '646봉'을 꾸준히 밀어 올려 가는데, 정상 직전에 우틀하더니 떨어지라 한다. 곧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면 '628봉'에 이르게 된다.

 

이후 길고 완만하게 오르내리다 한 차례 밀어 올리면 '방화고지'에 이른다. 13:35. 숲 너머에 654봉이 우뚝하다. 특징없는 방화고지를 제법 급하고 깊게 떨어져 내렸다가 590 걸음을 걸은 이후에 '654봉'에 오른다. 정상에서 잠시 넘어 가면 '바위전망대'가 있어 가야 할 산줄기가 조망되고 박무 때문에 오래 머물 일은 없다. 잠시 걸은 후 바로 뒤에 있는 암릉 그늘 아래 짐 풀고 2차 점심을 먹기로 했다.

 

 

 

# 우틀!

 

 

 

# 방화고지.

 

 

 

# 654봉 바위전망대의 조망.

 

 

 

# 저 멀리 인간세가 참 평화로워 보인다.

 

 

 

# 시제에 참석하지 못해 이곳 바위에 간편한 제물 올리고 조상님께 혼자 만의 시제를 올렸다.

 

 

 

오늘 시제인줄도 모르고 산에 들어와서 이십몇 년 만에 처음으로 시제에 불참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간편한 제물 올리고 혼자만의 시제를 올렸다. "조상님, 용서하시고 부족하나마 드시고 굽어 살피소서!"

 

시제 올리고 음복으로 남은 막걸리를 모두 비우고, 아침에 진주에서 준비한 도시락도 먹었다. 마눌이 준비해 준 과일로 후식까지 먹으니 술 부르고 밥 불러 노곤하구나! 바람 좋은 바위 위에서 거풍까지 마쳐 천지기운 받은 마음에 뽀송뽀송한 몸까지 사나이 살림살이 이만하면 좋구나!

 

오래 휴식한 후 14:40에 출발했다. 깊게 떨어져 내렸다가 길게 고도를 낮춰가며 진행했다. 곧 한 차례 올라 '587봉'을 넘고 계속 고도를 낮추며 길게 진행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돌고지재로 향하는 도로가 우측에서 정맥으로 바짝 붙길래 내려 서서 도로를 따라 진행했다. 그러다 다시 산길로 붙는 지점에서 산으로 올라 억새밭을 넘어 아래로 내려가니 '돌고지재'에 이르게 된다. 15:30.

 

 

 

# 587봉.

 

 

 

# 철 모르는 철쭉이 겨울로 접어드는 이 계절에 꽃을 피웠다. 가이아의 혼돈인가?

 

 

 

# 청암에서 돌고지재로 이어지는 도로.

 

 

 

# 다시 정맥에 합류.

 

 

 

# 돌고지재에 도착한다.

 

 

 

# 공장 앞길, 옥산 가는 길로 올라가야 한다.

 

 

 

 

원래 계획보다 1시간이나 오버했다. 중간중간 너무 많이 쉬어서 그랬나 보다. 이곳에서 배토재까지는 세 시간 이상이 걸리니 6시반이나 7시쯤 되어야 산행을 마칠 수 있다는 얘기고, 요즘처럼 해 짧은 계절에는 마지막 한 시간 정도는 야간산행을 해야 한다.

 

게다가 배토재에서 옥종으로, 다시 옥종에서 진주로 가서 서울로 올라가자면 아무래도 빨라야 새벽 서너 시는 되어서 강남에 도착하게 될 것 같다. 그곳에서 집에 가는 시간 포함하면 잠을 전혀 못 자고 출근해야 한다는 얘기다.

 

좀 이르기는 하지만 여기서 끊어야겠다. 배낭 내리고 주변 돌아보니 돌고지재는 하동 옥종과 횡천을 잇는 59번 국도가 지나는 번잡한 도로이고, 차량 통행도 아주 많다. 돌고지란 이름은 돌이 많아 얻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돌고 돌아 올라야 하는 고개라 얻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나 보다.

 

고개 너머 하동 횡천은 나에게 참 추억이 많은 곳이다. 횡천(橫川)은 냇물이 마을을 가로지른다는 마을 이름에서 보듯이 너무나 맑고 깨끗한 지리산에서 흘러 내린 냇물이 마을 가운데에 흐르고 있는 동네다. 옛날 둘째누나가 이 동네에 살고 있어서 자주 놀러 와서 횡천은 친근한 동네인데, 진주에서 경전선 열차를 타고 이 곳으로 오곤 했다.

 

횡천역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마을까지 접근이 아주 불편했다. 하지만 횡천역이 내리막 끝에 위치해 있어서 마을 근처 터널에서 1차로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떨어뜨린 후 서서히 횡천역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역까지 가지 않고 터널 전에 속도를 떨어뜨릴 때 열차에서 뛰어 내리곤 했다. 지금이야 꿈도 못꿀 일이지만 당시에는 누구나 그렇게 했고 철도 당국도 알면서 묵인하고 그랬다.

 

 

 

# 돌고지재를 넘어 가면 하동 횡천이다. 물 맑고 산 좋은 동네다.

 

 

 

돌고지재는 차량 통행이 많아 몇 차례 히치를 시도해 보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옥종택시에 전화를 해보지만 30여 분 넘게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다시 히치를 시도하는데 마침 승용차 한 대가 응해 줘서 편안하게 옥종까지 올 수가 있었다. 그 분은 옥종까지 올 일도 없는데 감사하게도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고마운 산청 군청 직원 덕분에 옥종까지 한 방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소에 갔더니 진주행 차가 조금 전에 떠나고 30분을 기다려야 다음 차가 온단다. 마침 정류소 한 켠에 작은 화장실이 있길래 그곳에서 씻고 옷 갈아 입어 인간세에 합류했다.

 

이후 진주행 버스로 시외터미널에 도착했으나 이른 시각엔 좌석이 없어서 고속터미널로 이동, 역시나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서 겨우 서울행 버스에 탑승했다.

 

 

 

# 처음 가보는 하동 옥종.

 

 

 

# 옥종의 들녁은 이제 겨울로 접어든다.

 

 

 

# 낙남 때문에 앞으로 자주 오게 될 내 고향 진주.

 

 

 

휴일 귀경 정체 겪은 후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가까운데, 제일 먼저 엄청나게 찬 기운과 찬바람이 훅~ 덤벼든다. 하루종일 더워서 얇은 집티 한 장만 입고 다녔는데, 같은 강역안에서 서울과 진주가 이렇게 기온차가 날 수가 있나?

 

아무래도 올 겨울은 따뜻한 낙남길에서 보내야 할 것 같구나!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물사랑의 다음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