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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네번째 걸음(원전고개~비리재)-그해 가을, 다솔사! 본문

1대간 9정맥/낙남정맥 종주기

[낙남정맥]네번째 걸음(원전고개~비리재)-그해 가을, 다솔사!

강/사/랑 2011. 12. 26. 18:17
 [낙남정맥]네번째 걸음(원전고개~비리재)  

 

 

그해 가을. 젊은 그들은 사랑의 열기에 들떠 있었다고 합니다. 어렵고 조심스레 시작한 사랑이라 그 사랑의 기쁨은 더욱 컸고 하루하루 꽃을 가꾸듯 사랑을 키워 나갔답니다.

 

그러던 어느 청명한 가을날, 60억 인류 중 단 한 사람만 보이던 시절이라 젊은 그들은 그 단 한 사람과만 같이 하고자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했답니다. 부산에서 목포까지 이어지는 경전선(慶全線) 완행열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던 그들에겐 완행열차 안의 많은 승객도, 그들이 토해내는 시끌벅적한 소음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고 오직 곁에 있는 단 한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만 보이고 들리더랍니다.

 

꼭 잡은 손으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서로의 심장박동을 맞추던 그들은 목적 없이 어느 시골 간이역에 내렸는데, 그곳이 천년고찰 다솔사(多率寺)가 있는 곤양(昆陽) 다솔사역이었답니다.

 

한적한 휴일 한낮 시골 간이역 광장엔 인적은 드물고 코스모스만 만발하였답니다. 하늘에 별이 빛나듯 세상에 사람이 빛나듯 제각각 화려하고 아름다운 코스모스에 반한 그들은 코스모스 꽃길을 따라 다솔사로 향했고 얼마후 맑은 물 돌돌돌 흐르는 시냇가에 이르게 되었더랍니다.

 

애초에 몇 시까지 가겠노라 작정이 없던 길이라 코스모스 꽃잎 떠 가는 시냇가에서 쉬어가기로 했는데, 물수제비도 뜨고, 시냇물에 꽃잎도 띄워보고, 가만가만 노래도 불러보고... 그렇게 둘만의 밀회(密會)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러다 안아도 보고, 업어도 보고, 입도 맞춰 보고... 춘향전의 사랑가처럼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건너편 강둑에 동네 꼬마 서너 녀석이 낮은 포복으로 엎드려 이쪽을 훔쳐보고 있더라네요, 글쎄!

 

야아~ 뽀뽀한다. 뽀뽀! 아냐, 임마! 저건 키스라는 거야! 지네들끼리 요딴 말을 속삭여 가며 말이지요. 기가 막혀 놈들을 쫓아 보냈는데, 어느새 살금살금 기어 와서는 다시 훔쳐보기를 반복하더랍니다. 제 놈들 눈에는 이 젊은 연인들의 사랑 행각이 마냥 신기하고 재밌는 구경거리가 되었나 보지요.

 

그리하여 녀석들을 앞세우고 다시 다솔사를 향해 길을 나서는데, 길가의 코스모스가 어찌나 아름답고 무성하던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코스모스 꽃 천지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꽃향기에 취해 있었다고 하네요. 아마도 꽃향기도 꽃향기지만 서로의 소중한 사랑에 취해 가야 할 목적지도 가야 할 시간도 잊어버린 거겠지요.

 

그러다 어느새 해가 져 버리고 목적지였던 다솔사는 근처에도 못 가보고 그냥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다시 다솔사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고 하네요. 뭐, 애초에 다솔사에 가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둘만이 있고 싶었던 터라 서로의 손 꼭 잡고 흔들리는 완행열차 안에서 서로의 눈만 바라보며 돌아왔다 하지요.

 

그렇게 그들의 다솔사 여행은 미완(未完)의 여행으로 남게 되었고,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삶의 소용돌이 속에 둘의 사랑도 미완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하지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 두 사람은 그 이후 누구도 다솔사에 가보지를 못했다 하네요.

 

오랜 세월이 흘러 생활이 삶을 지배하고 사랑이란 말은 덮어 둔 낡은 일기장처럼 퇴색하였지만, 어느 날 문득문득 간이역에 코스모스처럼 피어있는 옛 기억의 편린(片鱗)들을 달리는 열차 차창 밖으로 내다보듯 흔들리며 보게 되어 가슴 밑바닥을 스치는 찬 바람 소리를 느끼기도 하였다지요.

 

다솔사는 가보지도 못했고 언제 한번 가볼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다 하면서요...


그해 가을, 다솔사!

구간 : 낙남정맥 제 4구간(원전고개~비리재)
거리 : 구간거리(20.3km), 누적거리(70.22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1년 12월 25일. 해의 날.
세부내용 :

원전고개(08:15) ~ 무덤있는 봉우리 ~ 임도 ~ 145.5봉(09:15) ~ 53번 송전탑 ~ 갈림길 ~ 옛성터 ~ 245.9봉 ~ 234.9봉/사립재(10:20)/휴식후 10:45 出 ~ 임도 ~ 교회수련원 ~ 외딴집 ~ 과수원 ~ 딱발골재(11;25) ~농가 ~ 205봉 ~ 외딴집 ~ 공터/휴식 ~ 183.9봉 ~ 1001번 지방도(12:44) ~ 40번 송전탑 ~ 공터(13:10)/점심 후 13:50 出 ~ 나동공원묘지 ~  2번 국도 내평교차로(14:45) ~ 솔티고개 ~ 태봉산(15:35) ~ 2번 국도 ~ 유수교(16:20) ~ 축구장 ~ 171봉 ~ 임도(17:10) ~ 파란물통봉우리 ~ 비리재/유수고개(17:30)  
           
 총 소요시간 9시간 15분.


 

2011년 12월 24일, 흙의 날. 꼬박 한 달 만에 낙남길에 다시 나섰다. 그동안 회사일이 너무 바빠서 매일 야근에 주말 출근에 정신없이 휘둘렸더니 급기야 몸까지 고장이 나서 일 주일 넘게 아팠고 이래저래 산행은 꿈도 못꾸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마눌과 철산역 근처에서 저녁 식사하고 마눌은 집으로 나는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여러 사연 때문에 더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는 마눌은 크리스마스 날에 산에 간다고 투덜거리지만, 그동안 바빠서 산에 못 가 안달이 난 내 사정을 잘 아는 지라 두어 번 투덜거리는 걸로 참아 주었다.

 

작별하고 돌아서는데, 오늘 서울이 영하 11도로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고 한파주의보까지 내렸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마눌의 걱정이 태산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노라 걱정말라 일러 주고 전철에 올랐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고속터미널은 먼길 떠나는 사람들로 붐빈다. 진주행 심야고속버스에 몸 싣고 책 좀 보다 음악 좀 듣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솔사/多率寺

 

경상남도 사천시(泗川시) 곤명면(昆明面) 용산리(龍山里) 이명산 기슭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 511년(지증왕 12)에 조사(祖師) 연기(緣起)가 영악사(靈嶽寺)라 하여 처음 세웠고, 636년(선덕여왕 5) 새로 건물 2동을 지은 뒤 다솔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676년(문무왕 16) 대사 의상(義湘)에 의해 영봉사(靈鳳寺)로 바뀐 뒤 신라 말기에 국사 도선(道詵)이 다시 손질하여 고쳐 짓고 다솔사라 하였다. 1326년(충숙왕 13) 나옹(懶翁)이 중수한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전화로 불탔으나 숙종 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의 건물은 1914년의 화재로 타버린 것을 이듬해 다시 세운 것이다. 절 안에는 경상남도유형문화재 83호로 지정된 대양루(大陽樓), 대웅전, 나한전, 천왕전(天王殿), 요사채를 비롯한 10여 동의 건물이 남아 있다. 대양루는 1749년(영조 25)에 세워져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2층 맞배집으로 건평이 106평에 이르는 규모가 큰 건축물이다. 또한 대웅전 후불탱화 속에서 108개의 사리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불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9호인 보안암(普安庵) 석굴, 부도군(浮屠群) 등이 있다. 보안암 석굴은 고려 말기에 세웠다고 전해지며 석굴암과 비슷한 모양이다. 부도군은 도명(道明), 낙화(樂華), 성진(聖眞), 세진(洗塵), 풍운(風雲) 등 5인의 부도가 보존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용운(韓龍雲)이 수도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 소설가 김동리(金東里)가 한동안 머물러 《등신불》을 쓴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전/院田

 

조선조 때 완사역에 딸린 봉계원(여관)이 있었으므로 원골 또는 봉계원, 봉계라 하였는데 일명 완사에서 15리의 거리에 있는 원이라 하여 십오리원(十五里院)이라고도 한다. 충무공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 삼가(三嘉)에서 노량(露梁)쪽으로 행여(行旅)할 적에 수군패보(水軍敗報)를 들은 십오리원(十五里院)이란 곳이 오늘의 원전(院田)이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남정맥 제 4구간 원전고개~유수고개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서울 지하철은 요새 이렇게 시정(詩情)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사스래나무는 자작나무과라 자작나무 특유의 종잇장처럼 벗겨져 나풀거리는 피부를 가진 나무다.

 

 

 

# 요새처럼 고속터미널에 자주 나와 본 적은 없다.

 

 

 

이제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곧잘 잠을 잘 잔다. 옛날엔 꽤 까다로운 성격이라 편치 않은 잠자리에선 잠을 잘 못 이뤘는데... 진주 고속터미널에 내리니 시각은 새벽 1시를 넘기고 있다. 곧장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찜질방으로 향했다.

 

지난번엔 의외로 조용하여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오늘은 코 고는 사람, 요란하게 떠드는 사람 등등 소음이 많아 쉽게 잠을 못 이뤘다.

 

겨우겨우 잠이 들려고 할 무렵 건너편 젊은 남녀 한 쌍에게서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린다. 20대 남자아이인데 그 나이에 세상에 무슨 원한이 그렇게 많은지... 여자 친구로 보이는 아가씨가 잠을 못 이루고 난감한 표정으로 남친을 내려다보다가 흔들어 깨운다. 마눌의 얘기에 따르면 나도 코는 골지 않지만, 이는 가끔 간다고 하는데... 나 역시 이 세상에 불만이 많았었나?

 

 

6시쯤 일어나 씻고 찜질방을 나섰다.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지만 찾을 수가 없어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끓는 물 부어서 익혀 먹는 떡국과 어묵으로 아침을 해결하는데, 냄새 엄청나게 나는 노숙자 두 사람이 새벽 댓바람부터 깡소주를 마시며 따뜻한 편의점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 이 추운 겨울에 노숙하기 쉽지 않을 텐데...

 

일용할 양식 챙겨 택시편으로 원전고개로 향했다. 택시기사는 완전무장한 차림으로 지리산이 아닌 곤양 쪽으로 가는 내가 신기한 듯 이런저런 질문이 많은데, 그의 상식에 의하면 산은 관광버스에 수십 명이 탑승하여 단체로 유명산에 가는 것이지 나처럼 혼자서 이름도 알 수 없는 산길을 가는 것은 아니란다.

 

잠시 내달리니 지난번 내려섰던 오량동 고개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량동 고개로 내려가던 택시기사가 원전고개는 이쪽이 아니라며 후진으로 2번 국도에 다시 합류한다. 이 길이 맞는 듯하다 하여도 자기가 이쪽 지리는 잘 안다고 원전고개는 다음 나들목으로 나가야 된단다.

 

확신에 찬 택시기사의 말에 부정을 못 하고 얼떨결에 그 택시기사가 이끄는 대로 다음 나들목으로 나갔다. 그의 말대로 그곳이 원전마을이 맞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했던 낙남정맥 들머리 원전고개는 아니다. 이런~!

 

원전삼거리에 내려준 택시는 진주로 가 버리고 주변 둘러보니 이곳에서 조금 더 가면 다솔사역이고, 좌틀하여 도로를 따르면 다솔사로 가게 되어 있다.

 

잠시 주변 살피다가 좌측의 산줄기 근처로 접근했다. 지도 확인해보니 오량동과 이곳 원전 사이에는 따로 산줄기가 없으니 아마 이 산줄기가 정맥일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산 바로 아래에 곤명면사무소가 있어 그 마당에 짐 내리고 가볍게 준비운동과 산행 준비를 했다.

 

08:15. 곤명면사무소를 떠나 산속으로 스며들었다.

 

 

 

# 곤명면 사무소.

 

 

 

지역 주민들이 다니는 희미한 산길 따라 한차례 올려 능선에 올라 서자 주변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도에는 산줄기가 하나만 보였지만 실상은 산줄기가 여럿이고, 정맥은 건너편에서 우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작부터 알바이구나!

 

정맥과의 합류점을 목표로 우틀하여 오르막을 계속 치고 오른다. 계단식으로 두어 번 고도를 높이면서 구불구불 방향을 바꿔 올리는데, 시작부터 엉뚱한 산길을 헤매여서 그런가 힘이 든다.

 

그렇게 낑낑 올라 서니 아주 자그마한 봉분으로 된 묘지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 다행히 표지기들이 보인다. 지도상 '201봉'ㅇ다. 20여 분 헛질을 한 끝에 정맥에 합류하게 되었다. 08:35.

 

 

 

# 아주 작은 봉분이 있는 봉우리(201봉). 비로소 정맥에 오르게 되었다.

 

 

 

오량동에서 출발했다면 금방일 거리이고 힘들 일도 없는데, 확신이 지나친 택시기사 때문에 시작부터 엉뚱한 산줄기를 치고 오르느라 고생만 했다.

 

소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감상 잠시 즐기다가 정맥을 따라 길을 나섰다. 가볍게 아래로 내린 후 편하게 진행하는데, 표지기들이 전혀 없어 잠시 긴장하게 만든다. 시작부터 헛질을 했는데 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침반 확인하니 방향은 맞는 지라 계속 진행했다. 한참을  간 이후에 비로소 표지기를 발견하였다. 잘게 오르내리며 가다가 숲을 벗어나 임도에 내려서게 되어 지도 확인하니 오량동에서 이 임도 타고 오면 힘들 일 없이 금세 이르게 되어 있다. 아깝다!!

 

일요일, 그것도 크리스마스인데도 임도 포장공사하는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가볍게 인사하고 임도를 따라 진행했다. 원정맥은 임도 우측 마루금인데 임도와 고도차가 별로 없다.

 

잠시 임도를 따르다 임도는 정맥을 가로 질러 우측 산 아래로 내려 가버리고 정맥은 좌틀하여 숲으로 들어 가야 한다. 지도에는 이 임도에 내려서기 전 봉우리를 '245.5봉'으로 기록하고 있다.

 

 

 

# 햇살 좋은 묘지를 만났다. 기온은 차지만 바람이 없어 서울과는 체감온도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 임도를 만났다. 우측 숲으로 들어가라 하지만 고도차가 별로 없어 그냥 임도를 따르면 된다.

 

 

 

# 임도가 산을 넘어 가고 정맥은 그대로 숲으로 들어간다.

 

 

 

# 잘 가꿔진 묘지와 시묘를 위한 움막이 있다.

 

 

 

임도를 버리고 슾으로 들어가는데 그곳도 길은 넓고 좋다. 잠시 진행하면 '53번 송전탑'을 지나게 되고, 송전탑 이후로는 좁은 숲길이 이어진다. 잠시 후 다시 송전탑을 만나고 우틀하여 진행하여 편하게 가다가 한차례 올려 '239봉'에 오르게 된다.

 

잠시 진행하다 보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표지기들이 없어서 우측길에 표지기 하나 달고 진행했다. 길게 가다가 햇살 좋은 묘지를 만나 한참을 해바라기하며 휴식했다. 다시 길을 나서 잠시 편하게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넘어가는 좋은 길을 버리고 '무너진 성터'를 넘어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지도상 '길주의 구간'이다.

 

잔봉을 하나 넘고 다시 한 차례 올리면 바위가 있는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울산 모 산악회에서 '245.9봉'이라고 지도에 없는 이름표를 달아 두었다. 이 인근에는 245m 쯤 나가는 봉우리가 없는데?? 아마도 224봉인 듯하다.

 

잠시 가다가 살짝 올리면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이름표가 없어서 구분이 어렵다. 잠시 내렸다가 봉우리를 하나 올리니 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나타난다. 비로소 '234.9봉'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10:20.

 

 

 

# 53번 송전탑.

 

 

 

# 갈림길을 만나 우측길로 갔다.

 

 

 

# 갈림길에 표지기가 없어 하나 달아주고.

 

 

 

# 햇살 좋은 묘지에서 휴식을 하는데 숲 너머로 산이 하나 우뚝하다.

 

 

 

# 땡겨보니 하동 노량에 있는 금오산인 듯하다.

 

 

 

# 무너진 성터를 따라 내리고.

 

 

 

# 지도에 없는 245.9봉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봉우리도 지난다.

 

 

 

# 갈매기 한 마리 날아가듯, 승리의 V자 처럼 손가락을 벌린 억새꽃이 햇살에 빛나고 있다. 승리를 위하여!

 

 

 

# 삼각점 봉우리. 이름표가 없다.

 

 

 

# 넓은 평전을 지나,

 

 

 

# 다시 봉우리에 오르면,

 

 

 

# 234.9봉에 오르게 된다.

 

 

 

234.9봉은 사립재라고도 하는데, 봉우리가 재라는 이름을 얻은 경우다. 한자로 '벼슬할 仕'자를 쓰고 있으니 벼슬길에 나아간다는 의미인데, 그 유래는 찾을 길이 없다.

 

햇살 따스하고 좋아 이곳에서 짐 내리고 쉬어가기로 했다. 삼각점 앞에 막걸리 한 잔 올리고 먼저 생일 맞으신 예수님께 축하 인사 올리고, 이어서 천지신명께 두루두루 인사를 올렸다. 음복으로 나도 막걸리 한 잔 들이키고 간식 먹으며 휴식타가 10시 45분에 다시 짐 꾸려 길을 나섰다.

 

 

 

# 사립재에서 막걸리 한 잔 올려 예수님 생신을 축하드렸다.

 

 

 

사립재는 원전고개에서 남쪽으로 내달리던 정맥길이 V자를 이루며 방향을 꺽는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좌틀하여 떨어져 내리면 곧 넓은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라 좌측 산정상쪽 길로 올라 갔다.

 

산 봉우리를 넘어 내리면 임도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고 이곳에서도 좌측길을 따른다. 임도는 산을 휘감아 떨어져 내리게 된다. 곧 '진주 모교회의 수련원 건물'을 지나게 되고 계속 임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우측 산길에 표지기들이 많이 달려 있다. 저 쪽으로 가야 하나 싶어 숲으로 들어 가보는데, 도로 산으로 올라 가는 길이라 원위치하게 되는 곳이다. 아마도 좀 전의 산봉우리쪽에서 이 산길로 내려오는 길이 있었나 보다.

 

계속 임도 따라 전방의 넓은 고개를 치고 올라 가면 정상에 있는 '외딴집'에 이르게 된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지나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듯 인기척이 없다. 농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갈림길이 나오고 그냥 농장길 따라 가면 될 듯하지만 표지기들은 좌측 농장 속으로 들어 가라고 손짓한다.

 

혹시나 싶어 표지기를 따라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과 마찰을 빚을까 많이 조심스럽다. 농장 상단 봉우리를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과수원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우측 아래로 아까 그 길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결국 마루금 고집한다고 농장 주인들과 마찰 빚을 것이 아니라 그냥 도로 따라 가야 할 길인 듯하다.

 

낙남정맥은 겨울철에 진행하는 것이 정답인 듯하다. 산줄기가 옥종, 곤명, 곤양 쪽으로 오면서 계속 농장이나 과수원을 지나게 되어 있어서 농사철에는 농장주인들과 마찰이 불가피해 보였다. 과수원 사이로 길게 아래로 내려가면 포장도로가 지나는 '딱밭골재'에 이른다. 11:25.

 

 

 

# 넓은 임도를 만나 이후 계속 임도를 따랐다.

 

 

 

# 임도에서는 좌측으로 툭 트인 조망을 볼 수 있다.

 

 

 

# 사천시가 보인다.

 

 

 

# 저 멀리 바다를 향해 길게 누운 산줄기가 보인다.

 

 

 

# 땡겨보니 와룡산이다.

 

 

 

# 다시 갈림길을 만나 좌측길로 진행했다.

 

 

 

# 잔차 타고 왔으면 한 방에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 진주 모교회 수련원 건물을 지난다.

 

 

 

# 원점회귀할 가능성이 있는 곳.

 

 

 

# 넓은 고갯길을 치고 오른다.

 

 

 

# 인적 끊긴 외딴집을 만났다.

 

 

 

# 저 멀리 사천만의 바다와 너머에 남해 창선이 보인다.

 

 

 

# 와룡(臥龍)은 계속 따라온다.

 

 

 

# 그냥 도로를 따르는 것이 정답인 듯한데 표지기들은 좌측 농장 안으로 올라 가라 한다.

 

 

 

# 농사철에는 주인과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 딱밭골재.

 

 

 

딱밭골재는 성방리와 묵곡리를 이어주는 이름도 없는 지방도다. 포장도로인데다 차량통행도 많다. 노선버스도 지나고 있다. 딱밭골이란 이름은 그 유래를 찾기 어렵지만, 다른 지역의 딱바실, 딱밭실 등의 이름 유래가 종이 만드는 닥나무가 많아 닥밭, 닥바실 등에서 변음되어 된 경우가 많으므로 이곳 역시 닥밭골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듯하다.

 

고개 정상엔 농장이 위치해 있고 그 농장 좌측으로 올라 가야 한다. 이곳 역시 과수원 사이로 올라 가야 해서 마음이 영 편하지 않다. 한 차례 밀어 올려 과수원을 벗어나게 되고 편백나무 조림지를 지나 숲으로 올라 간다. 제법 가파르게 밀어 올리면 잠시 후 '205봉'에 이르게 된다.

 

이 봉우리는 국토지리원지도에는 201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지 정상에는 누군가 노각나무 한 그루에 '별악산'이란 근거 찾기 어려운 이름표를 달아 두었다.

 

정상을 넘어 진행타가 아래로 내리면 또 과수원을 지나게 되고 다시 '외딴집'을 만난다.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텅 비어 있다. 도로는 집을 지나 직진하게 되는데 집 좌측으로 올라 가라고 표지기들이 손짓한다.

 

이곳 역시 그냥 도로를 따르는게 정상인 듯하지만 혹시나 해서 표지기를 따른다. 한 차례 위로 밀어 올려 봉우리에 올라 보지만, 아니나 다를까 아무 의미도 조망도 없고 그냥 묘지들 사이로 꺾어 다시 아래로 내려가라고 한다.

 

에이~ 뭐냐? 투덜거리며 길게 아래로 내려가니 좀 전에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난다. 이 곳에서 정말로 임도는 좌측 성방리로 내려가 버리고 정맥은 전방으로 직진하여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숲길 직전에 넓은 공터가 있고, 햇살이 좋아 이곳에서 한참을 쉬었다 갔다.

 

숲으로 들어가 한 차례 밀어 올리면 '183.9봉'에 이른다. 곧 아래로 길게 내려 희미한 옛고개를 지나고 다시 한차례 밀어 올려 봉우리를 넘었다. 좌측 숲 너머로 진양호의 물결이 보인다. 이후 길고 길게 내려 '1001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12:44.

 

 

 

# 딱밭골재 농가 좌측으로 올라 갔다.

 

 

 

# 별악산이란 근거 희박한 이름표를 달고 있다.

 

 

 

# 보리 파릇하게 자라고 있는 외딴집을 지났다.

 

 

 

# 그냥 임도를 따르면 되는데 굳이 이곳으로 올라 가라 한다.

 

 

 

# 이름없는 봉우리를 넘어 다시 이 임도와 만난다.

 

 

 

# 햇살 좋고 전망 좋은 공터에서 휴식했다.

 

 

 

# 1001번 지방도.

 

 

 

# 솔티고개까지는 4.5km를 더 가야 한다.

 

 

 

# 번호있는 이 고개가 번호를 얻지 못한 딱밭골재 보다 더 초라하니다.

 

 

 

1001번 도로는 신흥리, 완사를 지나 덕천강을 넘는 1차선 지방도다. 지금은 얼음이 얼어 굉장히 미끄럽다. 번호도 얻지 못한 딱밭골재에 비하면 초라한데, 그래서인가 고개 이름도 없다. 그래도 내가 잠시 머문 몇 분 동안 차량 서너 대가 연속으로 고개를 넘어 가기는 한다.

 

이곳에서 솔티재까지는 5.4km를 더 가야 한다. 고개 지나 숲으로 올라 갔다. 길게 내려 온 만큼 다시 길게 밀어 올려야 하고, 고도를 100m 올린 후에야 봉우리에 올라 서게 된다. 정상에는 '40번 송전탑'이 서 있다.

 

봉우리에서 좌틀하여 잠시 진행하면 억새 우거진 넓은 공터를 만난다. 공터 너머로 나동공원묘지가 건너다 보이는데, 이곳에서 짐 내리고 점심을 하기로 했다. 13:10

 

 

 

# 고도 100을 올려 40번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 억새 우거진 넓은 공터.

 

 

 

# 너머로 나동공원묘지의 모습이 보인다.

 

 

 

# 마음에 점 하나 찍고.

 

 

 

억새밭 한 켠에서 마음에 점 하나 찍고, 거풍도 즐긴 후 다시 짐 챙겨 길을 나섰다. 곧 나동공원묘지 상단에 이른다. 이 묘역은 그 규모가 상당하여 우측 전방으로 툭 트인 조망을 보여 준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조상을 찾아 온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나동은 한자로 '내동(內洞)'으로 표기하여 이곳을 내동공원묘지라 표기한 지도도 간혹 있다. 묘지 상단에서 보는 조망은 훌륭하여서 낙동정맥의 대규모 공원묘지가 있는 정족산 정상에 선 듯하다. 이곳 역시 전방으로 산첩첩하고 저 멀리 진주 인근의 산들이 낯익어 보인다.

 

공원묘지 상단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고 곧 길게 올려 봉우리에 올랐다. 지도엔 '184봉'이라 적혀 있다. 봉우리를 넘어 아래로 내려 희미한 옛고개를 지나고, 다시 내려온 만큼 길게 밀어 올려 봉우리를 넘는다. 이후 고만고만하게 오르내리며 길게 진행하다가 아래로 내려가면 2번 국도가 지나는 '내평교차로'에 이르게 된다. 14:45.

 

 

 

# 나동공원묘지, 너머로 지나온 길.

 

 

 

 

# 공원묘지 상단의 조망. 저멀리 진주 방향으로 산첩첩.(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봉화대를 만들어 두었다.

 

 

 

# 2번 국도가 지나는 내평교차로. 좌측 너머의 산이 옥녀봉.

 

 

 

내평교차로는 진주 가는 2번 국도가 지나고 있어 차량통행이 엄청 많다. 길 건너에 SK 주유소와 낙동강 오리알이란 특이한 이름의 식당, 라스베가스란 모텔이 있고, 길 이 쪽에는 찜질방과 스파가 있다. 처음 산행계획 할 때 이곳을 1차 목표로 했는데, 아직 시간도 이르고 오랜만에 나선 정맥길이라 좀더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도로 건너 태봉산을 올랐다 다시 이 2번 국도로 내려와야 하는 인근 정맥길의 특성상 그냥 이곳에서 우틀하여 도로 따라 진행해 버릴까도 고민했지만, 진양호의 푸른 물결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산길을 따르기로 했다.

 

신호 따라 도로를 건너고 잠시 길을 못찾아 헤매다가 하동 방향으로 잠시 내려가면 우측 산 초입에 '옥녀봉 등산로'란 이정목이 서 있다. 지도 확인하니 옥녀봉은 정맥에서 떨어져 있다. 옥녀봉이란 이름이 전국적으로 흔한 산이름인데다 모두 비슷비슷한 전설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 역시 춘향전 비숫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옥녀라는 아름다운 베짜는 아가씨가 민도령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민도령이 과거시험 보러 간 사이에 고을 사또가 그녀를 탐하여 강물에 투신하여 죽고, 사또도 죽고 과거에 급제한 민도령도 따라 자진하였더라... 블라블라... 

 

옥녀봉이란 이름도 흔하고 전설의 내용도 흔하지만, 다만 고향 진주 근처의 '완사'란 동네 이름이 옥녀가 짠 베를 덕천강에 씻어서 얻은 이름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浣紗=빨래를 함)

 

옥녀를 만나러 갈 일은 없으니 마을 길 따라 고개를 넘어 갔다. 곧 옥녀봉 뒤로 돌아가는 '솔티재'를 만난다. 그런데 이 곳에서 들머리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전방의 터널 공사장 좌측 사면을 따라 숲으로 올라 갔다.

 

동네 사람들이 옛날 나무하러 갔을 법한 희미한 옛길을 더듬어 사면을 치고 오르면 얼마뒤 마루금에 오르게 되고, 표지기들이 정맥길에 들어섰음을 알려 준다.

 

등로를 따라 길게 밀어 올리는데 좌측 숲 너머로 진양호가 보이기는 하지만, 숲에 가려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 이 산을 오른 이유가 진양호의 푸른 물결을 보기 위함이라 이러면 곤란한데... 길게 올리면 무너진 성터를 지나게 되고, 그 뒤에 '태봉산' 정상이 있다. 15:35

 

 

 

#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내려갔다.

 

 

 

# 옥녀봉 등산로. 정맥길은 아니다.

 

 

 

# 솔티재.

 

 

 

# 한바탕 길 없는 숲속을 헤맨 후 정맥에 복귀했다.

 

 

 

# 진양호를 보러 일부러 이 산을 올랐는데, 숲에 가려 볼 수가 없다.

 

 

 

# 등로가 좌측으로 휘감는 부분에서 숲을 헤치고 진양호를 보러 갔다. 학교 다닐 때 진양호에서 낚시를 참 많이도 했었다. 그때는 한 번 배 타고 낚시하러 섬에 들어가면 일 주일은 기본으로 머물며 낚시를 했었는데...

 

 

 

# 태봉산 정상.

 

 

 

# 진양호 근처에 태봉산이란 산이 있는 지 처음 알았다.

 

 

 

정상 너머 잠시 가면 허물어진 성터가 다시 나타나는 걸로 봐서 이 태봉산 자체가 원래 작은 성이였던지 아니면 봉화대였던지 그랬나 보다.

 

성터를 내려 아래로 내렸다가 봉우리를 하나 오르고, 우틀하여 깊고 깊게 떨어져 내렸다. 길게 내려가면 2번 국도 아래 지방도와 철길이 만나는 곳에 이르게 된다.

                       

 

 

# 태봉산은 무너진 성터다.

 

 

 

# 경전선 철길가에 내려서게 된다.

 

 

 

# 옛날 고교시절, 저 경전선 철길을 따라 목포까지 걸어 가겠노라고 길을 나선 적이 있었다. 이른바 '철길 걷기 여행'이었다.

 

 

 

# 첫 번째 역에서 역무원에게 붙잡혀 스톱해야 했지만... 철길을 따라 걷는 것이 불법인줄 그때 처음 알았다.

 

 

 

2번 국도 아래를 통과해 절개지에 접근했다. 이곳부터는 절개지 배수로를 치고 올라서 봉우리 하나를 넘고 과수원 두 개를 지나서 곧바로 다시 이 도로와 만나야 한다. 별다른 조망없고 특징없으며 또 과수원을 두 개나 지나야 하는 곳이라 이곳에서는 그냥 도로를 따르기로 했다.

 

정동마을을 휘감는 도로따라 잠시 진행하면 좌측으로 가화강을 가로 지르는 유수철교가 보이고, 곧 산길로 갔을때 과수원을 지나 이 도로와 합류하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도로따라 오면서 한 20여 분 절약했나 보다. 갈림길 10m 전방에 유수교가 있다.

 

 

 

# 2번 국도가 지나는 정동교 아래를 통과했다.

 

 

 

# 가화강을 가로지르는 유수철교.

 

 

 

# 산길로 왔으면 이 과수원 날머리로 나와야 한다.

 

 

 

# 유수교.

 

 

 

이곳에서 정맥길은 가화강을 가로 질러 건너야 한다.  즉, 산은 물길을 건너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이 무너지는 곳이지다. 그 이유는 이 가화강이 자연 하천이 아니라 진양호의 축조와 함께 진양호의 홍수조절용 물길로 만들어진 인공의 강이기 때문이다.

 

이 가화강을 따라 올라가면 조절지댐이 나오고 그 아래에 넓은 유수지가 있다. 옛날 학교다닐 때 낚시꾼으로 지내던 시절에 이곳에서 도둑 낚시를 많이 했다. 조절지 아래 유수지에는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가 댐에 막혀 그곳에 갇힌 고기들이 그야말로 물반 고기반으로 많았다. 이곳이 낚시 금지구역이라 밤중에 낚싯대 하나씩만 들고 몰래 침투해서 청원경찰에게 적발되기 직전까지 단시간에 낚시를 하다가 댐 위에서 청경이 등장하면 챙겨 도망가는 벼룩시장 같은 도둑낚시를 하곤 했었다.

 

가화강을 가로지른 유수교를 건너면 우측에 풋살경기장이 있고, 그 옆으로 난 소로길을 따라 산으로 접근했다. 대밭옆으로 해서 밀어 올리는데, 홍수범람을 자동 경보하는  '홍수예경보시설' 이 나타난다. 이후 능선에 이른 뒤 좌틀하여 길게 올라 가면 '168봉'에 이르게 된다.

 

이 봉우리는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168봉, 사람과 산 지도에는 171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상을 넘어 살짝 내렸다가 잔봉 하나 넘으면 넓은 과수원 단지가 나타난다. 다시 복숭아 나무 사이로 난 넓은 길을 따라 길게 내려가면 '이정목이 서 있는 고개'에 이르게 된다. 17:10.

 

 

 

# 산자분수령의 원칙이 무너진 가화강.

 

 

 

# 풋살경기장 옆으로 올라 갔다.

 

 

# 이 동네는 소나무재선충 피해를 많이 입었다.

 

 

 

# 지나온 168봉.

 

 

 

# 포장 임도가 있는 고개에 도착했다.

 

 

 

이 고개는 과수원에서 관리용으로 만든 도로이기 때문에 한쪽 방향으로만 생긴 고개다. 아랫 동네이름이 유동마을이라 어떤 이들은 '유동고개'라 말하지만, 옛부터 있던 고개가 아니라 근거는 희박해 보인다.

 

고개 한 켠에 서 있는 이정목에는 와룡산까지의 남은 거리를 적어 두었다. 와룡산이라면 사천에서 삼천포 방향으로 누워 있는 산이라 낙남과는 거리가 먼 산이다. 웬일일까 생각했는데, 지도를 보니 그 와룡산이 아니라 진주 부근에 있는 낮은 산 이름이다.

 

고개를 지나 한 차례 밀어 올려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를 넘고 아래로 내리면 다시 농장을 만난다. 그곳에서 전방의 봉우리를 올리면 정상은 농장의 꼭대기이고, 파란 물통이 놓여 있다.

 

아직 봉우리 하나가 더 남았는데 뒤돌아보니 해가 길게 누워 하루를 마감하려 한다. 아래로 내리면 농가와 가까워지는데 개 한 마리가 자지러지게 짖어댄다. 남의 농장 근처를 지나는 불편한 마음에 얼른 봉우리를 향해 뛰어 갔다.

 

역시나 농장의 상단인 봉우리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 유수에서 사천 축동으로 넘어가는 '비리재'에 도착하게 된다. 17:30.

 

 

 

# 이정목이 서 있다.

 

 

 

#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를 넘고,

 

 

 

# 파란 물통이 있는 봉우리도 넘었다. 외로운 산꾼의 그림자가 물통에 새겨졌다.

 

 

 

# 돌아보면 지나온 정맥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다.

 

 

 

# 파란 수공 구조물이 있는 비리재.

 

 

 

# 사천 축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비리재는 '유수고개'라고도 부른다. 차량통행은 잦은 편이다.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히치를 시도하는데, 차량들이 어찌나 속도를 내어 달리는 지 차 잡기가 쉽지 않다. 20여분 시도한 끝에 곤명쪽으로 넘어가는 트럭 한 대를 겨우 얻어 타고 가화강을 도로 건너 정동마을까지 갈 수 있었다.

 

정동마을 버스 정류장에 내려 주변 확인해보니 진주행 버스는 이미 지나 가버렸고 택시 잡기도 어렵다. 그래서 진주콜택시에 전화를 걸어 콜택시를 부른 후 스마트폰으로 서울행 고속버스도 예매했다. 

 

아침에 진주에서 원전까지는 2만원을 지불했는데, 약간 가까운 거리인 정동에서는 미터기로 그 절반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굉장히 열심히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완사출신의 택시기사와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보니 금세 터미널에 도착한다.

 

옆자리 승객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깨끗이 씻고 옷도 갈아 입어야 하는데,  고속버스 시간이 급박한데다 터미널 화장실에 온수가 나오질 않아 물티슈로 대충 닦아내고 옷만 새옷으로 갈아 입었다.

 

다행히 옆자리 승객이 젊은 남자라 쬐끔 덜 미안한 마음이 들고, 더 다행인 것은 귀경길 고속도로가 전혀 막히지 않아 10시쯤에 강남에 도착을 했다는 것이다.

 

 

 

# 지하철 역에서 시 한 首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남 고속터미널에 내려 서니 엄청난 추위와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남쪽나라 진주와의 기온차를 절감하게 된다. "그래, 올 겨울엔 아무래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놀아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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