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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다섯번째 걸음(비리재~돌장고개)-고향땅에서 길을 잃다! 본문

1대간 9정맥/낙남정맥 종주기

[낙남정맥]다섯번째 걸음(비리재~돌장고개)-고향땅에서 길을 잃다!

강/사/랑 2012. 1. 16. 16:25
 [낙남정맥]다섯번째 걸음(비리재~돌장고개)

 


飛鳳山前飛鳳樓 (비봉산전비봉루)

樓中宿客夢悠悠 (누중숙객몽유유)

地靈人傑姜河鄭 (지령인걸강하정)

名興長江萬古流 (명흥장강만고류)


비봉산 앞 비봉루에

잠든 객의 꿈길이 머네.

지세 좋고 인물 걸출하니 강하정이요,

그 명성 긴 강과 같이 만고에 흐르네.

 

- 圃隱 鄭夢周

 

위 시(詩)는 고려말 충절의 상징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선생의 작품이다. 선생은 고려 공민왕 23년인 1374년에 경상도 안렴사(按廉使)를 지냈다. 안렴사는 조선조의 암행어사와 같은 직책이다. 이 시는 안렴사로 경상도 지역의 민심을 살피던 도중 진주에 들렀을 때 남긴 글이다.

 

당시 포은은 비봉산(飛鳳山) 자락에 있는 비봉루(飛鳳樓)에 머물렀다. 자료에는 이 곳이 포은의 장구지소(杖求之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구지소는 '한가로이 머무는 곳'이란 뜻이다. 공무 수행 중에 한가로이 머문다는 것이 어폐가 있지만, 기록에는 그렇게 나온다.


비봉루는 현재도 비봉산에서 볼 수 있다. 현 건물은 포은의 후손인 정상진이란 이가 일제 강점기인 1939년에 포은의 뜻을 기리기 위해 당시의 비봉루를 복원 건설한 것이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 건물이 고풍스런 이 건물은 도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진주 시가지의 전경이 일품이라 진주의 대표적 문화재로 사랑받고 있다.

 

강/사/랑의 고향인 진주(晉州)는 봉황(鳳凰)과 인연이 깊은 고장이라 봉황에 관련된 지명이나 옥호(屋號) 등이 많다. 지명에는 산이름이나 동네이름, 그밖에 자연물의 이름이고 옥호는 사당이나 누각 등이 있다.


지명의 대표는 비봉루가 있는 비봉산(飛鳳山)이다. 비봉산은 진주의 진산(鎭山)이다.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얻은 이름이다. 강/사/랑이 나온 고등학교가 비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늘 오르내리고 바라보던 산이기도 하다.

 

또, 봉황이 살던 골짜기라 하여 봉곡동(鳳谷洞), 봉황이 살던 곳의 윗동네인 상봉동(上鳳洞), 봉황이 알을 품었던 곳이라 하여 봉알자리(鳳卵臺), 봉황이 앉은 바위라 하여 봉암(鳳岩), 봉황이 물을 먹던 봉지(鳳池) 등이 있다.


옥호로는 진주 강씨의 시조인 고구려 강이식 장군을 모신 봉산사(鳳山嗣)가 대표다. 그 외에도 봉강재(鳳降齋), 봉명루(鳳鳴樓) 등등의 사당, 그리고 다양한 가옥(家屋)들이 진주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진주의 상징으로서 봉황(鳳凰)의 위상을 말해 주고 있다.

 

진주는 진주 강씨(晉州 姜氏)의 본향(本鄕)이다. 진주 강씨는 봉황을 가문(家門)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이는 강씨의 본향인 진주에 봉암(鳳岩)과 대봉산(大鳳山)이 있고  그 기운으로 강씨가 융성하였던 데 기인한다.


강씨 문중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인종 때 최고 권력자인 이자겸의 아들인 이지원이 강씨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봉암을 파괴하고 강씨의 진산인 대봉산(大鳳山)을 비봉산(飛鳳山)으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봉이 날아갔으니 제왕의 기운도 날아갔다는 의미다.


이런 여러 역사가 있어 봉황은 강씨 일문의 상징이 되었다. 지금도 진주 강씨는 모임이나 책자의 이름과 상징으로 꼭 봉황을 활용한다. 진주는 강씨가 집성촌을 이룬 도시라 강/사/랑이 나온 학교의 대부분 교가(校歌)에도 비봉(飛鳳)이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

 

봉황은 용(龍)과 더불어 옛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동물이다. 용과 마찬가지로 상서러움의 상징이어서 군왕(君王)을 상징하는데, 성군(聖君)이 나타나거나 시절이 태평성대(太平盛代)일 때 모습을 나타낸다고 전해지고 있다.

 

옛사람들의 상상에 의하면 봉황은 용(龍)과 학(鶴) 사이에서 태어난다. 머리는 닭, 턱은 제비, 목은 뱀, 다리는 학, 꼬리는 물고기, 깃털은 원앙, 등은 거북, 발톱은 매를 닮았다. 오색찬란한 빛으로 빛나는 몸에 다섯 가지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내는 신비의 동물이다. 오동나무에만 깃들고, 예천(醴川)을 마시며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대나무의 열매만을 먹고 산다고 한다.

 

원래는 군왕의 상징이었으나 용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왕비의 상징이 되기도 했었다. 현재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휘장(徽章)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현직 대통령이 뛰어난 리더이고, 현재가 태평성대이기를 희망하고는 있다.


하지만 희망은 배신을 잘 한다. 희망은 늘 희망일 뿐인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이 땅에는 그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 차례도 조용하거나 태평성대였던 적은 없었다. 대통령 권위의 상징인 봉황의 슬픔이요, 우리 국민의 불행이다.

 

강/사/랑의 낙남길 다섯 번째는 고향 땅 진주를 지나게 된다. 그런데, 그 첫 번째 포스트에 '실봉산'이 있다. 진주는 봉황이 상징이다. 실봉산이란 이름을 들으니 자연히 진주의 상징인 봉황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하여 이 실봉산도 봉황과 관련이 있는 전설을 가지고 있나 싶었다. 그러나 자료를 찾아보니 실봉산은 '열매 實, 봉우리 峰' 을 쓰고 있어 봉황과는 관련이 없는 산이다.

 

어릴 때 늘상 봉황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온 터라 대단한 기대를 했는데 실망스러웠다. 뭐, 우찌되었건 실봉산 덕분에 오랜만에 고향 땅 지명 공부는 잘 하였다. 그것으로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딴 곳에 있었다. 실봉 덕분에 지명 공부는 잘 했는데, 정작 산길 공부는 제대로 못했던 모양이다. 이번 낙남길에서는 알바 때문에 고생 좀 하였다. 정확한 정맥길을 잃고 엉뚱한 산길을 헤맨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고향 땅에서 길을 잃고 한 시간여 엉뚱한 곳을 헤맸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한참을 뻘짓한 이후 정확한 정맥에 복귀하니 심한 자책감이 들었다. 그리하여 길가에 털석 주저앉아 한마디 남겼다. "우째 이런 일이..."

 

 

고향땅에서 길을 잃다!

구간 : 낙남정맥 제 5구간(비리재~진주분기점~돌장고개)
거리 : 구간거리(23km), 누적거리(93.22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2년 1월 15일. 해의 날.
세부내용 :

비리재(07:55) ~ 128봉 ~ 과수원 ~ 찜징발/갈림길 ~ 도로 ~ 166봉 ~ 179봉 ~ 임도삼거리(09:03) ~ 실봉산(09:22) ~ 해돋이 공원 ~사거리 ~ 임도 알바 ~ 신률리 율곡마을 알바 ~ 화개교차로 ~ 도로공사 고개/정맥복귀 ~ 와룡산 전봉(11:45)/ 점심 후 12:35 出 ~ 마을고개 ~ 와룡산(12:40) ~ 대숲 임도 ~ 임도삼거리 ~ 산불감시초소 ~ 농장 ~ 죽봉굴 고개 ~ 포장도로 ~ 농장 ~ 마을고개 ~ 112봉 ~ 고미동고개(13:45) ~ 3번지방도 ~ 계리재(14:25) ~ 진주축협시험장 ~ 과수원 ~ 170.1봉 ~ 166봉 ~ 217봉 ~ 225봉 ~ 봉전고개(15:57) ~ 무선산(16:25)/ 휴식 ~ 274봉 ~ 185봉 ~ 200봉 ~ 돌장고개(17:40)  
           
총 소요시간 9시간 45분.


 

2012년 1월 14일, 흙의 날. 다섯 번째 낙남길에 나섰다. 이번 주도 토요일 저녁에 심야버스 타고 진주에 도착해서 찜질방에서 잠깐 자고 일요일에 산행하는 코스다.

 

금요일 저녁에 내려가서 토, 일요일 이틀간 산행을 하든지, 아니면 토요일 산행을 하고 느긋하게 일요일 오전에 올라오는 방식이 바람직하지만, 매번 금요일 퇴근이 늦어져 일찍 출발이 어렵다. 그래서 피곤하고 번거롭기는 하지만 토요일 심야에 출발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집에서 저녁 먹고 마눌이 태워주는 차편으로 철산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전철 타고 고속터미널로 향하고, 진주행 심야우등버스에 몸을 실었다. 진주 가는 고속버스를 이렇게 자주 타 보기도 처음이다. 자다깨다음악듣다하다보니 어느새 진주에 도착했다.

 

 

 실봉산/實峰山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三溪里)와 정촌면 대축리(大丑里) 사이에 있는 산. 백두대간 낙남정맥(洛南正脈)의 한 부분을 이루는 높이 185m의 산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三溪里)와 정촌면 대축리(大丑里)의 경계에 있다. 과수원이 많은데 특히 밤나무가 많다.

 

석계/石界

 

석계는 돌곶이 또는 돌곶이라 불리어진다. 석계라는 뜻은 진양군과 사천군사이의 경계돌로서 표시를 하고 큰돌을 꽂아 둔데서 돌로 경계를 표시했다는 뜻으로 석계라 하고 돌을 꽂아 두었다는 뜻으로 돌꽂이 마을 또는 돌곶이라 불리어진다고들 한다. 또는 마구 할머니 물레돌이란 전설도 있다. 옛날 마구 할머니가 물레돌을 하려고 두 개를 갖고 오다가 하나는 작아서 구암마을 앞에 버리고 큰 것은 현위치에 두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청태산마구(靑台山馬駒) 할머니는 여장사(女壯士)였는데 힘이 얼마나 세었던지 동해바다에서 물레돌을 할려고 돌 두 개를 가져온 것이 하나는 구암마을 앞에 꽂힌 작은 것이요, 나머지 하나는 돌꽂이 고개에 꽂힌 큰 돌이다. 1977년에 사천 공군부대에서 이 돌을 뽑아 가버린 것을 알고 석삼수(石三壽)가 진양군청에 항의하여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게하여 현재에 이른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남정맥 제 5구간 비리재~돌장고개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습니다.)




 

# 심야의 고속터미널 승차장.

 

 

 

# 소박한 진주 고속터미널. 긴 야간 여행 끝에 도착했다.

 

  

따뜻한 물로 씻고 찜질방으로 올라가니 새벽 두 시인데 명절 전이라 그런가 손님이 별로 없다. 한 켠에 자리 깔고 다른 이들 코 고는 소리 들으며 양을 수천 마리 세다가 잠이 들었다. 여섯 시에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새벽 시간에 손님들이 밀어닥쳤는지 찜질방에 발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이 많다.

 

욕실로 내려가 샤워하고 카운터에 맡겨 둔 배낭을 찾는데, 긴 머리와 근육질 몸매를 가진 묘한 분위기의 종업원이 아는 체를 한다. 낙남하면서 여러 차례 드나들었더니 안면이 트였나 보다. 이제 본인은 이곳을 그만둔다고 작별 인사를 겸하면서...

 

근처 편의점에서 간편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에 먹을 음식과 막걸리도 한 병 준비했다. 그리고 짐 챙겨 택시를 타고 유수고개로 향했다.

 

07:55. 유수고개에서 가볍게 몸 풀고 산행을 시작했다. 따뜻한 남쪽나라라 춥지는 않지만, 날씨가 잔뜩 흐려 오늘 조망 구경하기는 어렵겠다.

 

 

 

# 사천과 진주를 잇는 비리재(유수고개).

 

 

 

한차례 올려 마루금에 이르면 과수원 상단에 이른다. 봉우리를 넘어 내렸다가 다시 치고 오르면  '128봉'에 도착한다. 좌틀하여 내렸다가 올려 편하게 진행하는데 앞이 트이더니 다시 과수원 상단에 선다.

 

전방으로 과수원이 펼쳐지고 외딴 농가와 도로, 그리고 건너편에 낙남으로 추정되는 산줄기가 가로로 길게 누워 있다. 과수원을 지나 아래로 내리면 외딴 농가에 이르게 되는데, 개들이 자지러지듯 짖어재껴 한바탕 호통을 쳐야 했다.

 

농가 아래는 갈림길이 있는 고개이고 좌측 아래에 '찜질방'이 영업 중이다. 표지기들이 없어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포장도로를 따라 길게 위로 올라갔다. 도로 좌우는 모두 과수원이다. 길게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도로는 고개를 넘어가고, 정맥길은 고개 정상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 편안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 전방이 트이며 과수원 상단에 서는데, 건너편에 낙남 능선이 가로로 누워 있다. 

 

 

 

# 외딴 농가 통과.

 

 

 

# 그 집 개들이 낯선 나그네를 보고 난리가 났다.

 

 

 

# 포장도로 고개를 만나고,

 

 

 

# 실봉산까지는 7.5km를 가야 한다.

 

 

 

# 영업 중인 황토찜질방.

 

 

 

# 갈림길에서 잠시 주변 살피다가 길게 도로를 따른다.

 

 

 

# 한참을 도로를 따라야 하고 고개 정상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긴 도로 탐험을 마치고 숲으로 들어가 한 차례 올리면 봉우리에 도착한다. (08:40), 우틀하여 살짝 내렸다 다시 봉우리를 넘는데, 안부에서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따를까 잠시 고민타가 숲길로 들어갔다. 한 차례 올려 봉우리를 넘고 우틀하여 다시 한차례 치고 오르면 '179봉'에 이르게 된다.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정상부에 잡목이 무성해 찾을 수가 없다. 정상을 지나 이후 길게 구불거리며 내려가면 좌측 아래에 아까 그 임도가 따라 오고 있다.. 이런~. 길게 아래로 내려 '임도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09:03.

 

 

 

# 179봉.

 

 

 

# 임도삼거리.

 

 

 

# 실봉산까지는 600m를 더 가야 한다.

 

  

우측 심대마을로 이어지는 임도다. 실봉산까지는 600m 거리다. 산으로 올라가 계단식으로 치고 오른다. 두 번째 계단은 제법 헉헉 소리가 나게 가파르다. 15분 정도 오르면 '실봉산 정상'에 이른다. 09:22

 

정상에는 삼각점과 스테인레스 이름표가 세워져 있고 묘지도 두 개나 있다. 정상을 지나 잠시 진행하면 앞이 툭 드이며 두릅나무 농장 상단에 선다. 평소에는 멋진 조망터일 듯하지만 오늘은 날이 흐려 별로이고, 건너편에 해돋이 쉼터가 건너다 보인다. 농장 상단을 걸어 정자와 운동시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해돋이 쉼터'에 도착했다.

 

 

 

# 실봉산

 

 

 

# 홀로 산꾼의 모습이 찍혔다.

 

 

 

# 정상을 지나 잠시 가면 조망 좋은 두릅농장 상단에 서게 된다.

 

 

 

# 조망을 넓게 그려본다. 흐린 것이 흠이지만...(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농장 상단을 진행했다.

 

 

 

# 해돋이 쉼터.

 

 

 

# 정자와 운동시설, 그리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쉼터에 서면 전방으로 진주 외곽지대의 모습이 일목요연한데, 날씨 맑을 때는 꽤 볼만 하겠다. 진주에 오래 살았었지만,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한 바퀴 빙 돌며 경치 구경을 하며 내 고향의 새로운 모습을 느껴봤다. 이 정자에 하룻밤 머물며 막걸리 잔을 나눠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아침이면 일출 감상도 가능하겠고. 한참을 휴식한 후 길을 나서는데, 산불감시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한다.

 

좌측 철망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사거리 갈림길'이 나타나고, 직진하여 넓은 임도를 따른다. 길게 올라 고개 정상에 이르면 우측 숲에 표지기들이 매달려 있다.

 

 

 

# 진주 초입의 시가지들이 보이는데 날이 흐려서 깨끗한 조망은 아니다.

 

 

 

# 저멀리 금곡면 거쳐 고성 쪽으로 넘어가는 낙남길이 보인다.

 

 

 

# 파노라마로 감상한다. 맑은 날이면 제법 경치 구경할 만 하겠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임도사거리. 직진.

 

 

 

숲길로 올라가 보니 잡목이 우거져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 임도와 단차가 1m도 채 안되는데, 누군가 산길 고집한다고 표지기를 달았나 보다. 그래서 일단 임도를 계속 따르기로 했다.

 

이 임도는 근래에 만들어진 듯 절개지 황토 흙이 붉고 새 것인데, 잠시 진행하면 좌측으로 산길이 보인다. 주변엔 표지기가 전혀 없어 일단 좌측 산길로 가 보니 넓은 길이 이어지기는 하는데, 농막 형태로 지어진 외딴 가옥이 있고 출입을 막아 두었다.

 

아무래도 그 길은 아닌 듯하고 주변 둘러보아도 표지기는 없고 해서 다시 좀 전에 표지기를 본 언덕으로 다시 '빠꾸 오라이'를 했다. 그러나 그 표지기 주변을 다시 둘러보지만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뭐냐, 이거?

 

아무래도 오늘 헛질 좀 하겠는데? 임도가 새로 조성되면서 표지기들이 모두 사라졌나 보다고 판단하고 임도를 따르기로 했다. 다시 아래로 내려 임도를 따르고 좀전에 헤맨 산길도 지나치고, 아래로 길게 내려갔다. 잠시 후 임도가 산 우측으로 휘감아 내려가는 곳이 나타나 주변 지형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좌측 건너편 산줄기가 정맥일 듯하였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그 산줄기와 내가 서 있는 산줄기 사이 저 쪽 끝에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고 그 아래에 지하통로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지하통로를 목표로 산 사면을 치고 내려가 계곡 골짜기로 미끄러져 내렸다. 잠시 뒤 골짜기 밭 근처에 이르고 작은 소류지를 지나 고속도로 아래에 이르게 된다.

 

 

 

# 엉뚱한 곳으로 내려와 고속도로 통로를 지났다. 저 고속도로와 통로 때문에 이곳을 정맥길로 착각하고 헛짓을 시작했다.

 

 

 

고속도로 아래엔 내가 목표로 진행했던 지하통로가 있는데, 아무 표지기도 보이지 않아 무엇인가 잘못 되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이 정맥길이면 이렇게 적막강산일 리가 없다. 그렇다고 다시 돌아 갈 수도 없고 일단은 지하통로를 지나기로 했다.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자 시멘트 농로가 고속도로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 우측 아래로 마을이 보이고 그쪽으로도 도로가 가로지르는 것이 보인다. 지도를 꺼내 보지만 주변 지형과 영 맞지가 않아 위치 파악이 어렵다.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지도를 작동시켜 위치 확인을 하니 비로소 내가 정맥보다 한참 좌측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결국 아까 그 임도 언덕에서 우측 숲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았던 것이다. 잡목이 무성해서 길이 안보였던 모양이다. 아무리 잡목이 많아도 길이 보이는 법인데, 왜 그냥 지나쳤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임도를 그냥 길게 따랐어도 되었을 건데 엉뚱한 고속도로와 통로를 보고 헛짓을 했다.

 

일단 고속도로와 나란한 농로를 따라 길게 내려갔다. 새로 공사한 듯한 도로 아래를 지나자 신률리 '율곡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지나 한참을 진행하는데 주변 지형이 지도와 일치 하지 않는다. 다시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인하니 좀 전에 지나온 신설도로는 종이지도에는 나오지 않고 스마트폰 지도에만 나온다.

 

이렇게 헤매기만 하다가는 이곳에서 시간 지체가 너무 많을 듯하여 정확한 위치 파악을 한 후 와룡산을 목표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율곡마을을 다시 통과해서 신설도로에 이르고 도로 사면을 치고 오르는데, 잡풀이 무성하고 도꼬마리, 도깨비 바늘 등이 온 몸에 달라 붙어 꼭꼭 찌르고 난리가 아니다.

 

낑낑대며 도로 위에 올라섰다. 이 도로는 건설한 지는 오래된 듯한데 공사가 중단되어 차량이 다니지는 않는 도로다. 저 멀리 고속도로와 교차하는 교차로가 보이는 걸로 봐서 제대로 길을 잡은 듯하다.

 

 

 

# 엉뚱한 지하통로를 통과.

 

 

 

# 한 시간여 엉뚱한 곳을 헤맨 후 이 신설도로 위에 올라섰다. 길이 끊긴 곳이다.

 

 

 

폐쇄되어 차량 흐름 없는 도로 한 가운데를 걸어 진행했다. 처음에 새 도로인 줄 알았는데 아스팔트 상태나 도로 구조물 상태를 보니 건설된 지 한참된 듯하다. 어찌하여 사용하지 않는지 의문이고, 사용 못함으로써 생기는 예산낭비는 누가 책임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도로 따라 터덜터덜 가다보면 이 도로를 설계하면서 고속도로와 연결되도록 만든 램프가 나오고, 아래로는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뒤쪽으로 '진주분기점'이 보인다. 저 쪽 아래 통로를 통과해야 되는데, 영 엉뚱한 곳으로 오고 말았다. 그래도 어차피 도로 때문에 끊긴 산길이니 어디로 오든 상관은 없어 보인다.

 

10여 m 뒤 아래에 '화개교차로'가 있고, 그 도로는 진주 시내로 이어지고 있다. 화개교차로 위부터는 도로공사가 멈춘 상태인데, 아마도 예산 확보에 문제가 있어 몇 년째 방치된 공사구간인 듯하다. 공사구간을 지나 진행하면 저 멀리 절개지 고개가 나온다. 정황상 그 곳이 모산재와 와룡산을 이어주는 정맥길인 듯 느껴졌다.

 

공사 지역을 지나 가까이 가보니 과연 표지기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아이고~ 다행이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고향땅에서 길을 잃고 한 시간 동안이나 엉뚱한 곳을 헤매다니...

 

 

 

#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곳에서 공사가 중단되어 있다.

 

 

 

# 고속도로가 지나는 진주분기점.

 

 

 

# 저 멀리 절개지가 정맥길인 듯하다.

 

 

 

# 가까이 가보니 과연 좌측 절개지에 표지기가 있다.

 

 

 

빙고!

절개지를 따라 올라 가서 한차례 올리면 봉우리에 올라 서는데, 이곳을 와룡산이라 착각하였다. 애초에 임진년 용의 해, 와룡산(臥龍山)에서 용신(龍神)께 술 한 잔 올릴 계획이었으므로 이곳에서 짐 내리고 간단한 산신제를 지냈다. 11:45

 

음복으로 나도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마음에 점도 하나 찍었다. 50여 분 휴식한 후 짐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좌틀하여 아래로 내리면 농가들과 고개가 나타난다. 수도꼭지가 있어서 야영 산행을 할 때는 이곳에서 물 보충이 가능하겠다.

 

고개를 지나 묘지들 사이로 올라 가면 넓은 임도가 나오고, 전신주에 삼각점 안내글이 써 있어 우측 숲으로 올라가 보니 이곳이 진짜 '와룡산'이다. 이크!

 

 

 

# 오, 얼마나 반가운 표지기인가?

 

 

 

# 봉우리에 올라 낙남정맥 팻말을 보고 이곳을 와룡산으로 착각했다.

 

 

 

# 용의 해, 용신에게 무사한 산길과 만사형통(萬事亨通)을 기원했다.

 

 

 

# 아래로 내리니 농가와 고개가 나오고 건너편에 진짜 와룡산이 보인다.

 

 

 

# 좌측으로 경상대가 보인다.

 

 

 

# 땡겨 본다. 저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원해서 들어간 곳이 아니라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출석도 잘 안했고... 국립대라 등록금은 저렴해서 집에 부담은 덜 끼쳤다. 등록금이 12만원이었던가?

 

 

 

# 수도꼭지가 있으니 이곳에서 물을 보충할 수 있겠다.

 

 

 

# 진짜 와룡산. 진주에 오래 살았지만 와룡산이란 산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와룡산은 사천에 있는 와룡산이 유명해서...

  

 

진짜 와룡산에 왔으니 용신에게 다시 고개 숙여 기원을 올렸다. 정상에서 돌아나와 우틀하면 대숲 속으로 등로가 이어진다. 이후 서늘하고 편안한 대숲길을 길게 진행했다.

 

잠시후 '갈림길'이 나타나 좌측길로 들어섰다. 이윽고 '임도삼거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외딴집이 있는 좌측길로 다시 접어들라고 한다. 포장도로를 길게 따른다. 좌측으로 조망이 트이며 남해고속도로 진주나들목이 건너다 보인다.

 

도로를 따르다 언덕 위에서 역시나 좌측 길로 접어들게 되고, 전방의 봉우리를 목표로 길게 밀어 올리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

 

 

 

# 대숲 속으로 난 길을 길게 진행했다.

 

 

 

# 갈림길에서 좌틀.

 

 

 

# 임도삼거리에서 외딴집이 있는 좌측길.

 

 

 

# 시멘트 포장도로를 길게 따른다.

 

 

 

# 좌측 멀리 진주나들목이 보인다.

 

 

 

# 봉우리를 목표로 길게 올라갔다.

 

 

 

# 산불감시초소에 이르게 된다.

 

 

 

표지기들이 나래비를 서 있는 언덕을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사방 조망이 툭 트이는 곳인데, 역시나 흐린 날씨와 박무 탓에 조망은 한계를 보인다. 그래도 저 멀리 진주시가지와 좌측으로 경상대 등이 건너다보인다. 초소 주변은 온통 두릅나무 농장이다.

 

봉우리에서 주변 경치 감상을 하는데, 산불감시요원이 쉬고 있다가 놀래서 모자 챙겨 쓰고 밖으로 나온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니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수고하신다 인사드리고 정상을 물러 났다.

 

우측 농장 쪽으로 진행하여 농장 가옥에서 우틀하여 떨어져 내리는데, 표지기가 없어 길 찾기가 조금 어렵다. 과수원 사이로 길게 내려가면 표지기가 많이 매달려 있는 '죽봉굴고개'에 이른다.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농장의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다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길게 올라 계속 포장도로를 따른다.

 

그러다 작은 장승과 컹컹 굵은 바리톤으로 짖는 도사견이 있는 농장을 지나게 된다. 이 집 주인이 진주 산꾼 객선생 친구집이라는데 농장 안에서 일하고 있는 농장주를 보았지만 무심코 지나고나서 생각하니 객꾼 친구집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친구 외모가 객선생보다는 좀 연상으로 보이는데...?

 

잠시 후 '고마동 고개'에 도착했다. 주변은 온통 과수원 지대다. 과수원을 따라 전방의 봉우리를 치고 오르면 '112봉'에 이른다. 다시 아래로 내려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3번 지방도'에 도착했다. 13:45  .

 

 

 

# 두릅나무 너머로 진주 초입의 시가지가 보인다.

 

 

 

 

# 경상대도 보이고.

 

 

 

# 농장을 목표로 밭둑길을 걸어갔다.

 

 

 

# 농장에서 우틀하여 과수원을 가로지른다.

 

 

 

# 죽봉굴 고개.

 

 

 

 

# 갈림길에서 좌틀.

 

 

 

# 진주 산꾼인 객꾼의 친구가 운영한다는 농장을 지났다.

 

 

 

# 전방의 112봉을 넘어야 한다.

 

 

 

 

# 3번 도로에 내려섰다.

 

 

 

이 도로는 정촌면과 문산읍을 이어주는 3번 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도로 건너 가족농장이라고 적힌 감나무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 과수원 안으로 길게 치고 올랐다.

 

외딴집과 노란물통을 지나 과수원 상단으로 진행하다가 소나무 숲길을 길게 진행했다. 한차례 올려 묘지가 있는 봉우리를 넘어 아래로 길게 내려가면 '3번 지방도'에 다시 내려서게 된다. 이 곳에서 정촌면과 금곡면이 이어진다.

 

이곳이 계리재인가 했는데 지도에는 이곳에서 이어지는 다음 고개를 계리재라고 적어 두었다. 도로 건너 나무 계단을 올라 봉우리를 하나 넘어 아래로 내려 다시 이 3번 도로가 이어지는 계리재에 내려서야 하지만, 그냥 도로를 따르기로 했다.

 

잠시 도로를 따르면 산에서 내려오는 날머리와 만나게 되는 '계리재'에 이은다. 정맥길은 곧바로 산으로 올라 가는 것이 아니라 도로를 따라 약 100여m 아래로 내려가라 한다. 잠시 후 스피커를 통해 노래소리가 크게 들리는 '진주축협 생축시험장'을 지나게 되고, 우측 숲으로  들머리가 보인다.  

 

 

 

# 3번 도로(계리재)에 내려선다. 지도에는 다음 날머리를 계리재라 적어 두었지만, 이곳에서 그곳까지 모두가 계리재라 할 수 있겠다.

 

 

 

# 이정목이 서 있다.

 

 

 

# 우측 전방 숲으로 올라가야 한다.

 

 

 

# 진주 축협시험장을 지나고,

 

 

 

# 전봇대 뒤로 들머리가 있다.

 

 

 

들머리로 들어 서면 과수원 울타리를 따라 오르게 되고, 한 차례 밀어 올려 봉우리에 이른다. 잠시 편하게 가는 듯 하다가 다시 위로 밀어 올린다. 좌측으로 밤나무 단지가 있는 마루금을 걷는다. 전기울타리를 따라 진행하다가 가파르게 한차례 밀어 올리면 삼각점이 있는 '170.1봉'에 이른다.

 

이후 오른만큼 깊게 떨어져 내려 희미한 옛고개에 이른다. 우측으로 농가가 내려다 보이는데 곧바로 치고 올라 봉우리에 이르더니 이후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계속 오르내리게 된다.

 

낙남길이 돌고지재에서부터 진주에 가까워 오면서 야산으로 변하고 전체적으로 산책하듯 편안한 길이 계속 이어져서 만만하게 보았는데, 이제부터 점점 오르내림이 반복되면서 정맥다워지려고 하는 모양이다.

 

'116봉'을 치고 오르면 너머에 묘지가 나타나고 약간 트인 공간 너머로 가야 할 정맥길이 보이는데, 올록볼록한 것이 정맥을 만만하게 보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이후 서너 차례 더 올록볼록 오르내리다 한차례 올려 '217봉'을 넘고 아래로 내렸다 한차례 더 치고 오르면 허물어진 성터가 있는 '225봉'에 이르게 된다.


다시 깊게 떨어졌다가 '24번 송전탑'을 지나고 정촌면과 금곡면을 잇는 '봉전고개'에 내려선다. 고도를 85m나 떨어뜨렸다. 15:57.

 

 

 

# 시멘트 표석이 중간중간 보인다.

 

 

 

# 170.1봉

 

 

# 이런 편안한 길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오르내림이 많다.

 

 

 

# 가야 할 정맥길. 제법 오르내림이 많다.

 

 

 

# 허물어진 성터가 있는 225봉.

 

 

 

# 깊게 떨어져 내려 봉전고개에 이르게 된다.

 

 

 

# 무선산은 아직이다.

 

 

 

# 금곡면 방향.

 

 

 

봉전고개에서 무선산까지는 고도를 137m나 올려야 한다. 아이구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들머리부터 가파른 계단길이라 다리에 힘이 절로 들어 간다.

 

무선산 오름은 계단식으로 이어지고 4단으로 찐하게 밀어 올리는데, 헉헉 낑낑 신음소리를 계속 질러야 겨우 이정목이 서 있는 정상 직전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정상은 정맥에서 약간 빗겨 나 있는데, 이정목에는 100m 우측에 있다고 적혀 있다. 잠시 고민하다가 정상을 보기로 하고 우틀하여 갔다. 다행히 100m가 아니라 20m쯤 가니 정상이 나타난다. 16:25.

 

 

 

# 힘들게 올라 온 무선산 갈림길.

 

 

 

# 무선산.

 

 

 

선녀가 춤추는 형상이라는 무선산(舞仙山) 정상엔 스테인레스 정상 표지판과 나무 벤치, 그리고 선녀 대신 태극기가 춤을 추고 있다. 마지막 봉우리에 이르렀는데 그냥 갈 수 있나? 벤치에 짐 내리고 남은 막걸리로 홀로 만찬을 즐겼다.

 

30여 분 넘게 간식 먹으며 휴식한 후 다시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무선산에서 돌장고개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를 지나야 한다.  3km 거리에 지도상 예상 시간이 1시간 10분 거리다. 그렇다면 6시 10분쯤에야 도착할 수 있고 요즘같은 동절기에는 2, 30분 정도 밤길을 걸을 각오를 해야 한다. 큰일났다!!

 

따라서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기 위해 이후는 뛰기로 했다. 긴 산행으로 지친 몸이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 겠다는 생각과 막걸리 반 통의 힘을 믿고 빠른 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아까 지나온 갈림길을 다시 지나 아래로 깊게 떨어져 내렸다가 안부에서 다시 치고 올랐다. 계단식으로 밀어 올려 '274봉'을 넘고 계속 오르내리며 진행하다 한차례 올려 '185봉'에서 우틀하여 떨어졌다. 이후 다시 오르내리며 진행했다.

 

'200봉'은 언제 지났는지 구별도 못 하겠고, 계속 뛰면서 진행하다 아래로 떨어져 내리니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돌장고개'에 이르게 된다. 17:40.

 

 

 

# 무선산 정상에서 홀로 만찬.

 

 

 

# 어두워지기 전에 산행을 마치기 위해 무조건 뛰기로 했다.

 

 

 

# 다행히 어두워지기 전에 돌장고개에 내려설 수 있었다.

 

 

 

 

# 돌장고개 아래엔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1시간 10분 예상한 거리를 냅다 뛰는 바람에 40분 만에 주파할 수 있었다. 돌장고개에 이르러 배낭을 벗고 털썩 주저앉으니 비로소 다리가 아프고 숨도 가빠져 오기 시작했다. 온 몸이 땀범벅에 먼지 구덩이가 되었다. 그래도 덕분에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돌장고개는 여러가지로 금북정맥 천안의 '덕고개'와 비슷하다. 본격적인 오르내림이 시작되는 곳에 고개가 위치해 있는 점과, 그 고개가 고속도로에 의해 가로 막혀 있고, 고개 좌측에 면소재지가 위치한 점 등등...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땀 닦아낸 후 다시 짐 둘러 메고 도로를 따라 금곡면 소재지쪽으로 길게 걸어 갔다. 무선산에서부터 뛰어오느라 팍팍해진 다리가 딱딱한 아스팔트길을 걷노라니 많이 힘이 들었다. 무릎도 시큰거리고...

 

이윽고 금곡면에 도착하여 진주에서 온 옛친구의 택배로 진주 고속터미널로 복귀한 후,  예약해 둔 버스편으로 서울로 귀경했다. 이제 낙남길도 고향 진주를 지났으니 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 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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