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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융건릉/隆健陵 본문
강/사/랑네는 서울에서 명절을 쇠는 관계로 남들 겪는 귀성 전쟁을 치를 일이 없다. 그 얘기는 다르게 보면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고향집을 찾아가는 가슴 설레는 기쁨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해마다 설날이면 마눌은 하루 먼저 용산에 있는 큰집으로 가서 명절 음식을 준비한다. 설 연휴가 설날 전으로 하루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는 잔차 타고 한강 한바퀴 돌아 땀 좀 흘린 후 큰집으로 가선 형제들끼리 술 한잔 나누며 설 준비를 한다.
하지만 올해 우리 집안엔 가슴 아픈 일이 하나 생겨서 설 전날에 모이는 것을 생략하기로 했다. 덕분에 하루의 여유가 생겼는데 갑자기 결정된 일이라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융건릉이 생각이 났다. 명절 전날 차 막히는데 멀리 가기는 어렵고 가까이 있으면서 제법 걸을만 하게 산책도 가능한 곳이기 떄문이다.
융건릉은 정조대왕 내외와 그의 아버지인 비운의 왕세자 사도세자 내외가 묻힌 왕릉을 말한다. 정조는 조선 후기 문화를 융성시킨 문예부흥의 군주이기도 하지만 효심이 지극하기로도 유명한 왕이다.
명절을 맞아 효심 지극했던 정조대왕의 묘역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리라.
융건릉/隆健陵 <이곳저곳>
사도세자는 조선 왕가 역사상 가장 비운했던 인물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욍위 계승자로서 그 아비로부터 죽임을 당한 유일한 인물이고, 그 방법 또한 유일무이하여 뒤주에 갇힌 채 굶어 죽었으니 그러하다.
괴팍하고 의심많으며 편집증적 성격을 가진 영조로부터 끊임없는 질책과 견제를 받아 정신병을 앓기도 했던 그는 노론 소론으로 갈라진 당파싸움에까지 휘말려 결국은 어릴때의 총명을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세자 신분으로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고 만다.
다행히 그 아들 이산이 온갖 어려움을 견뎌낸 후 왕위를 이어 받았고 총명한데다 효심까지 뛰어났던 덕분에 사후에 곧 복원이 되기는 하였다. 그리하여 효심 깊은 아들 정조의 지극정성으로 왕릉에 버금가는 능으로 봉헌됨은 물론 장헌(莊獻)이라는 시호까지 받게 된다. 훗날 대한제국의 설립 이후 고종에 의해 장종(莊宗神文桓武莊獻廣孝大王)으로 추존되어 왕의 반열에 오르게도 된다.
효심 지극했던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에 모시고 화성을 지어 보호케함은 물론 수시로 화성능행을 하여 사도세자의 묘를 찾았다. 그가 사도세자의 묘를 찾아 행차를 했던 길이 시흥, 안양, 의왕, 지지대고개를 거치는 지금의 1번 국도이다.
정조는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는 사도세자의 묘를 친히 풍수지리를 검토한 끝에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여 모셔 융릉(隆陵)이라 이름지었고, 나중에 자신의 능(健陵)까지 그 곁에 마련하여 부친을 끝까지 모시는 효심을 보여 준다. 이 두개의 능을 합하여 융건릉이라 부른다.
# 풍수지리 상으로는 융릉이 더 명당이라 한다. 산이 감싸 안은 모습이 더 아늑한가? 잘 모르겠다.
# 능의 입구는 소나무숲이 울창하다. 정조연간에 융릉에 송충이가 창궐하여 융릉의 소나무가 많이 말라 죽었는데,정조가 송충이를 하나 잡아 꿀꺽 삼키며 솔잎 대신 내 창자를 갉아 먹으라고 하니 그 효심이 통하여 송충이가 다 없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입구 중앙에서 길이 양갈래로 갈라진다.
# 먼저 사도세자의 묘역인 융릉으로 향한다.
# 설 전날이라 묘역은 인적 끊겨 고요하다. 솔숲길은 아늑하고.
# 송충이 대신 참나무시듬병이 덮쳤나보다.
# 융릉의 좌측 입구에 원형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하나 있다.
# 곤신은 방향을 일컫는 말이다. 그 방향이 길지였나 보다.
# 동그란 연못은 또 처음 본다.
# 올 겨울은 예보와 달리 포근하였다. 융릉의 입구는 땅이 녹아 질척거린다. 이 융건릉은 겨울에 하얀눈으로 뒤덮혔을 때가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 호사를 누리기 어렵다.
#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후에 왕의 지위를 얻는 것을 '추승'이라 하는가 보다.
# 능이 단촐하나 엄숙한 기운이 감돈다.
# 능의 소나무 역시 기품이 넘친다.
# 묘역 정면에 정자각이 크게 서 있고 우측에 비각이 위치하고 있다.
# 정자각.
# 능은 큰 언덕 위에 모셔져 있다. 울타리로 막아 두어 가까이 갈 수 없으니 진면목을 친견하기는 어렵다. 부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정신병증까지 앓았던 사도세자는 주변사람을 꽤 많이 죽였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 비석에는 '조선국 사도장헌세자현융원'이라 전각체로 적혀 있다. 추운 겨울날인데도 비석이 땀을 흘리고 있다.
# 옆에서 보니 능이 조금 더 잘 보인다. 사도세자와 비인 혜경궁 홍씨가 합장되어 있다.
# 입구의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는 신의 길인 신도(神道)와 임금의 길인 어도(御道)가 나란히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임금의 길로 들러 갔다가 신의 길로 돌아 나갔다.
# 오늘 이곳엔 아들 딸을 데리고 온 가족과 우리 뿐이다.
# 융릉을 돌아 나와 건릉으로 향한다.
# 건릉으로 가는 길은 참나무 숲이다.
# 구조는 융릉과 똑 같이 생겼다.
# 이곳 역시 정조대왕과 부인인 효의왕후를 함께 모신 합장릉이다.
# 역시 임금의 길로 걸어 들어갔다.
# 계단엔 구름문양이 새겨져 있다.
# 정조대왕의 능은 아래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 고종 때 황제로 추존되어 대한정조황제건릉이라 적혀 있다.
#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 건릉도 옆에서 보면 조금 더 잘 보인다.
# 능의 좌측에 있는 수라각이다. 저곳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했나 보다.
# 능 좌측의 숲으로 올라가 한바퀴 휘감아 돌았으면 했는데, 해 지면서 찬바람 일어나니 그냥 나가자고 한다.
# 솔방솔방 걸어 왕릉의 입구로 돌아 나왔다.
# 한양 도성을 중심으로 역대 임금들의 능이 산재해 있다.
2014년 설 전날 특별한 일정이 없어 다녀온 융건릉의 모습이었다. 다음에 꽃피는 계절에 맞춰 다시 한번 와 봐야겠다. 그때는 왕릉 전체를 한바퀴 휘감아 돌아 볼 작정이다. 비운으로 생을 마감한 어버이를 향한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도 차근차근 되짚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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