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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한 수(首)]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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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한 수(首)]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강/사/랑 2015. 12. 8. 19:21


 [시(詩) 한 수(首)]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은 입으로만 진보(進步)인 者들이다. 입만 열면 정의, 평등, 진보, 서민, 복지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들은 단 한번도 정의롭지도 평등스럽지도 않았던 인물들이 그들이고, 단 한 번도 서민이었던 적이 없던 자들이 그들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굽 닳고 구멍 뚫린 구두를 일부러 신고 양복에 백팩을 메고 다니면서 서민 코스프레를 하지만, 그의 집은 늘 강남의 고급 아파트였고, 그의 아들은 외국 유학을 갔으며, 그의 아내는 늙기 싫어 돈으로 세월에 저항하고 있다.

 

반미를 외치는 자들이 자식들은 모두 미국에서 공부를 시키고 있고, 서민과 복지를 입에 달고 살지만 일생 동안 단 한번도 피땀 흘리는 노동을 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이 그들이다. 환경운동을 한다면서 감시하던 기업의 사외이사로 억대 연봉을 받고, 재벌 해체를 주장하면서 그 재벌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자들이 그들이다.

 

정의와 평등과 진보를 주장하는 자들이 패거리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자신들 그룹 외에는 배척하고 공격하며 차라리 적에게 모든 걸 내줄 지언정 당내 반대파에게는 헤게모니를 주지 않는 자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오늘 아침 자신의 정치적 속내를 한 수(首) 시(詩)로 갈음하여 내걸었다. 평소 그의 협량(狹量)과 무리 패권주의를 끔찍이도 싫어했는데 오늘만은 생각이 좀 달라진다.

 

비록 포기할 수 없는 그의 정치적 욕심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지라도 그 한 수의 시가 건내주는 울림이 컷던 탓이다. 그로써 잠시동안 그에 대한 싫어함을 접어둘 참이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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