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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2구간(양재역 ~ 판교역)-상전벽해(桑田碧海)한 분당과 판교!! 본문

길이야기/영남대로

[영남대로]2구간(양재역 ~ 판교역)-상전벽해(桑田碧海)한 분당과 판교!!

강/사/랑 2020. 5. 31. 23:21
[영남대로]2구간(양재역 ~ 판교역)



1986년 가을. 대학 졸업반이었던 나는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서울로 상경했다. 졸업 전에 어찌어찌 직장을 구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처음에는 종로에 있는 본사에 잠깐 근무하다가 곧 성남에 있는 연구소에 발령이 나 성남으로 근거를 옮겼다.

회사 연구소는 성남 야탑동에 있었다. 당시의 야탑은 화훼농원과 갈매기살 전문식당 밀집지였다. 시골 깡 촌놈 출신인 나는 갈매기살이 진짜 갈매기를 잡아 요리한 것인 줄 알았다.

나는 군 생활을 해안에서 복무해 갈매기를 잘 안다. 갈매기는 원래 덩치만 컸지 살은 거의 없고 그 살조차 생고무처럼 질겨 식용이 불가능한 조류다. 그런 갈매기로 요리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는데, 막상 가서 보니 갈매기살은 돼지 갈비뼈에 붙은 조그만 부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일본과 거래가 있는 업종이라 신입사원에게 일괄적으로 육 개월간 일본어 과외를 시켜주었다. 내 담당 선생님은 나이 지긋한 노인이셨는데, 매일 일과 후 저녁에 숙소로 오셔서 한 시간 정도 회화 위주의 과외수업을 했다.

처음 며칠은 꽤 열심히 가르치고 또 그 가르침을 성실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꾀가 나기도 하고 일과 후 쉬는 시간에 공부한다는 것이 싫기도 했다. 그래서 선생님을 살살 꼬드겨 30분 정도 수업 후 성남 모란으로 가 둘이서 술을 마셨다. 당시 성남 모란시장 근처는 남한산성에서 내려오는 개천이 있었고 그 주변에 포장마차가 즐비했다.

그런 방탕한 과외가 몇 개월 계속되다 나는 다시 장호원의 연구소로 발령이 나 그 선생님과는 육 개월을 못 채우고 헤어졌다. 나중에 지점으로 발령이 나 일본 바이어를 부장과 함께 접대하게 되었다. 제일 최근에 일본어 과외를 했으니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부장이 나를 데려간 것이다.

사무실에서 바이어를 만났는데 너무 긴장해서 입이 딱 얼어붙어 버렸다. 엉터리 일본어 과외를 했더니 가장 간단한 초면 인사말인 "하지메마시테(はじめまして)" 조차 생각이 안났다. 그래서 나온 나의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hi! nice to meet you!"

참으로 난감한 옛 기억인데 내가 처음 근무하였던 성남 야탑동은 곧 몇 년 되지 않아 제1기 신도시인 분당신도시로 개발되어 비닐하우스 대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갈매기 집 대신 계획도시의 상가단지가 화려하게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신도시는 노태우 정권의 치적 중 하나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우리나라는 올림픽을 치른 후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뤘다. 이 시기 수도권의 인구 집중과 주택 수요는 폭발 직전의 상태였고 당시 노태우 정권은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의 1기 신도시 건설로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그중 분당은 강남의 주택 수요를 흡수하려는 목적으로 건설되어졌는데, 강남에서 1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고 경부고속도로를 통한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에 가장 큰 규모로 건설됐다.

분당신도시는 당초 556만 평으로 개발 계획하였으나 몇 차례의 조정을 거쳐 19.6㎢로 늘어났다. 공원, 녹지, 하천 시설용지 규모는 172만 평, 도로 시설 용지 규모는 119만 2,000평이며, 기타 주택 건설용지 규모는 192만 3,000평이었다. 분당 신도시의 인구 규모는 39만 명으로, 인구밀도는 ha당 210명 선이어서 기존 상계, 과천 지역보다 훨씬 낮았다.

이런 여러 조건이 결합하여 강남과의 직접적 비교는 어려우나 거의 버금가는 주거지로 평가되어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 높은 신도시가 되었다.

'분당(盆唐)'이라는 지명은 일제 시대의 작품이다. 일제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몇 개의 기본 지명을 모아 통폐합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명이 그런 방식으로 지어졌다.

분당은 당시 이 지역의 '분점리(盆店里)'와 '당우리(唐隅里, 당모루)'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분점리는 본래 이곳이 동이를 굽던 옹기점(甕器店)에서 유래한 것이고 당우리는 ‘당집이 있는 모퉁이 동네’의 의미다. 원래 한자는 ‘집 당(堂)’자 였는데 표기 과정에서 ‘당나라 당(唐)’자로 바뀌었다.

한편 1기 신도시 이후 다시 세월이 많이 흘러 다른 신도시들이 여러 곳 건설되었지만 수도권의 주택 수요는 해결이 난망하였다. 새로운 해결책은 개발 가능한 땅이 있고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은 곳에 신도시를 다시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중 하나가 '판교신도시'다. 판교는 분당 외곽에 있어 분당과 강남의 수요를 흡수할 목적으로 건설되었는데 입지 조건이 좋아 '판교 로또'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인기리에 분양된 신도시다.

원래는 청계산에서 발원한 운중천이 탄천으로 흘러내리는 곳에 분지 형태로 자리한 고장으로 개발제한 지역이라 시골 냄새 풍기던 한가한 동네였다. 예전 안양 인근에서 강원도로 나들이 갈 때 지름길로 사용되었고 벚꽃길이 예뻐 봄날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 있던 곳이다.

'판교(板橋)'라는 지명은 이곳의 옛 지명인 '널다리'에서 유래했다. 판교는 청계산에서 발원한 운중천이 흐르는 곳이다. 계곡물은 여름 한 철에 집중호우로 자주 범람한다. 이 마을주민들은 널빤지를 깔아 임시 가교로 이용했던 모양이다. 널다리라는 이름은 거기서 유래했다.

하지만, 한자 지명은 글자 해석 그대로가 진짜 이름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널다리로 해석되는 판교는 대부분 넓은 들에 있는 고장이 많다. '널'은 '넓다'는 말이다. '널다리'는 '넓은 들'이라는 의미의 '너다리' 혹은 '너더리'에서 변형된 말이기도 하다. 결국 널다리는 넓은 들이란 뜻이다. 성남 판교의 경우 이름 그대로의 널다리인지 넓은 들인지 논란이 있는데 지자체나 주변 동리에서는 널다리로 믿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신도시의 대표 격인 분당과 판교는 둘 다 경부고속도로 곁에 위치한 동네다. 경부고속도로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국토의 대동맥으로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의 필생의 역작 중 하나다. 경부 축을 잇는 고속도로이니 옛 영남대로와 큰 맥락에서의 경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나의 영남대로 두 번째 길은 양재역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남하하다가 우리나라 신도시의 대표인 분당과 판교를 지나게 된다. 분당은 86년 분당이 아직 허허벌판일 때 처음 만난 이후 96년 두 번째 직장에서 분당 지점을 맡게 되면서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때의 분당은 이미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이룬 뒤였다.

판교는 예전 강원도 가는 길에 늘상 지나던 곳이다. 고속도로 활성화되기 이전 강원도행은 언제나 교통체증과의 전쟁이었다. 따라서 눈치 빠른 대안의 길이 길바닥에 발이 묶이는 고생을 피하는 최선이었다. 그때 나는 청계산과 바라산 사이의 하오고개를 넘어 운중동 벚꽃 터널을 지나 판교로 가는 샛길을 이용하곤 했다.

두 곳 다 옛 추억 많은 곳이라 나로서는 이번 영남대로 두 번째 나들이에 여러 의미와 기대가 크다. 그 길 걷다보면 옛 추억 새록새록 할 것이다. 보고싶은 사람도 많다. 그러한 부푼 마음 안고 영남길 두 번째 순례에 나섰다.



상전벽해(桑田碧海)한 분당과 판교!!


구간 : 영남대로 제 2구간(양재역~판교역)
거리 : 구간거리(14 km), 누적거리(30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20년 5월 31일. 해의 날
세부내용 : 양재역 ~ 양재천 ~ 청계산 입구 ~ 옛골 ~ 달래내고개 ~ 판교JC ~ 금토천 ~ 화랑공원 ~ 판교역



지지난 주 영남대로 첫발을 내디딘 후 2주일 만에 다시 영남길 순례에 나섰다. 이번 구간은 양재역을 출발해서 판교역까지를 예상하고 있다. 거리는 14km쯤 된다.

가는 길은 대충 이렇다. 양재역을 지나 양재천을 건너고 청계산 입구와 옛골을 지난다. 곧 달래내 고개를 넘는데 이곳부터는 경기도 구간이 시작된다. 성남 금토동을 지나 계속 남하하면 경부고속도로와 외곽순환도로가 교차하는 판교 JC를 만난다. 이후 금토천을 따라 남하하여 판교톨게이트 아래 화랑공원을 만나고 공원 좌측 도심으로 들어가면 판교역이 있다.

달래내 고개부터는 경기도 구간이다. 경기도는 우리나라 지자체 중 유일하게 경기도를 지나는 옛 길을 일부 복원하였다. 삼남길과 의주로, 그리고 영남길이 그 대상이다. 그런데 그 길을 복원하면서 최대한 차로를 버리고 들길이나 산길로 돌리는 방안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엉뚱하게 산으로 올리거나 빙빙 도는 우회로를 택하기도 한다. 자동차 달리는 아스팔트를 버리고 최대한 인간의 두 발로 걷는 길을 택하려는 그 의도는 잘 알겠는데 너무 엉뚱한 길로 돌리는 모습은 동의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영남대로 순례길은 경기 옛길이 아니라 예전 영남대로의 역과 역을 잇는 길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일단 그렇게 걸어보고 수정 여부는 차차 생각해 볼 작정이다.



달래내 고개(月川峴)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과 금토동 사이의 고개. 달리내고개 또는 월천현(月川峴)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상적동의 옛골마을과 금토동을 지나는 이 고개는 원래 작은 도로였으나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게 되면서 성남시와 서울시 구간을 구분 짓는 실질적인 경계가 되었다. 옛날 이 마을에 ‘달아’와 ‘달오’ 라는 남매가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살아가고 있었다. 달오가 누나를 보러 시냇가까지 왔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듯이 쏟아졌다. 동생을 보고 반가워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는 달아의 모습은 비에 흠뻑 젖어 몸매가 다 드러난 여인의 모습이었다. 비에 젖은 누나의 몸매에 성적 욕구를 느낀 동생이 죄스럽게 생각하여 자신의 생식기를 돌로 찧어 죽고 말았다. 이를 안 달아는 자신의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이 동생을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차라리 달래나 보지’하며 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하여 ‘달래내고개’라고 부른다고 전해진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영남대로 제2구간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우리 집은 수원 외곽에 있어 버스 종점이 가까이 있다. 그곳에서 양재역까지 한 번에 가는 광역버스가 운행 중이다. 3~40분에 한 대 쯤 운행하는 듯하다. 뙤약볕 강렬한 정류소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 3900번 버스 편으로 양재로 갔다. 손님은 거의 없다.




# 2주일 만에 양재역에 다시 섰다. 올해는 여름이 굉장히 빨리 찾아왔다. 5월인데 기온은 이미 한여름 기온이다. 2주전 1구간 마무리하면서 찾지 못했던 양재역 표석을 다시 찾아보았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아마도 가로정비하면서 치워버린 모양이다.




# 말죽거리 안내판이 있다. 저곳은 역사 속의 역원이 있고 고생한 말에게 죽을 쑤어 먹이고 하던 말죽거리가 아니고 음식점과 술집 나래비 서있는 지금의 말죽거리다.




# 강남대로를 따라 남하한다. 햇살이 너무 뜨거워 등짝이 뜨끈뜨끈하다. 




# 기온이 너무 높고 햇살 강해 빨리 진행할 수가 없다. 길가 화단의 꽃냄새 맡아가며 흥얼흥얼 걸었다.  




# 양재천과 영동1교 통과. 




# 양재천은 산책객과 자전거족으로 언제나 붐비는 곳인데 오늘은 햇살 너무 강해 인적이 드물다.




# 내가 가지고 있는 트랙은 강남대로 대신 이 건널목을 건너자마자 건물 뒤쪽 골목으로 내려가라 한다. 아무래도 넓은 대로보다는 차량 통행 적은 뒷길 위주로 그린 듯하다. 골목으로 들어가보니 주차된 차량이 많고 방해 요소 많아 오히려 불편하다. 다시 큰길로 나왔다.




# 염곡사거리. 강남대로와 양재대로가 교차하는 곳이다.




#  좌측으로는 수서, 강동으로 연결되고 우측에는 양재IC가 있다. 영남길은 성남방향으로 직진이다.




# 염곡교차로 건너자마자 다시 강남대로를 건너야 했는데 무심코 직진하였다. 영남길은 직진하는 대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갈라진 청계산로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는 건널목이 없다. 왕복 10차선의 대로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건널목은 없어 난감했다. 차량통행 끊길 때 눈치껏 건넜다.




# 우측 너머 청계산이 우뚝하다. 저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건널목이 없다. 




# 청계산로를 따라 진행한다.




# 우측 길가에 화원이 즐비하다. 




# 향긋한 꽃향기 코를 간지럽힌다. 요즘은 수국이 제철이다.




# 길게 내려가다가 도로를 버리고 공원으로 들어간다. 




# 큰 규모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넓은 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 하나 없다. 인근 아파트 단지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성하여 그런가 보다.  




# 청계산입구역에 도착. 신분당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청계산 산행 가기 편해졌다. 우측 방음벽 너머는 경부고속도로다.




# 청계산 입구 원터골에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에 답답했던 사람들이 모두 청계산으로 모인 모양이다. 원터골에는 산행 나온 사람, 이미 산행 마친 사람, 그냥 술 먹으러 온 사람 등이 뒤섞혀 소란스럽다.




# 원터골에서 잠시 한숨 돌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옛골까지 계속 직진이다. 




# 옛골까지는 2.5km 정도 거리인데 지나다니는 자동차 외에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한다.




# 옛골에 도착했다. 옛골에 있는 이 오리집은 이 불황 중에도 손님이 아주 많다. 몇 차례 먹어보았는데 내 입맛에는 그저 그랬다.




# 옛골부터는 경기도 관할이다. 식당에는 산행 마친 사람들 술판이 너무 소란스러워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해결했다. 




# 민생고 해결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경부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여 옛골 등산로 입구 쪽으로 올라간다. 




# 영남길 리본을 처음으로 만났다. 




# 달래내고개 초입에 경기옛길에서 만든 영남길 안내판이 서 있다. 경기도는 우리나라 지자체 중 가장 적극적으로 조선의 옛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삼남길과 영남길 그리고 의주로를 복원하였고 추후 평해로 등 경기도를 통과하는 옛길을 복원할 계획이란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삼남길의 경우 원 삼남길과 큰 차이 없이 구성하더니 영남길은 너무 엉뚱한 곳으로 경로를 잡은 곳이 여러 곳 눈에 띈다. 물론 최대한 차량 통행 많은 곳을 피하고 도보로 갈 수 있는 길 위주로 복원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인정하지만, 너무 엉뚱하고 개연성이 없으면 곤란하다.




# 영남길 경기도구간은 성남, 용인, 안성, 이천을 통과한다. 전체적으로 3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는 형태다. 일단 나는 내가 확보하고 있는 원 영남대로 트랙을 따라 진행할 생각이다. 서너 구간 진행하다 보면 어떤 것이 나을지 판단이 설 것이다. 




# 경기옛길 1구간은 천림산 봉수지와 박물관 쪽으로 크게 우회하게 구성되어 있다.




# 인증 스템프가 있다고 해서 주변을 뒤졌는데 누군가 훼손하였는지 찾을 수 없다. 




#  달래내고개 초입의 옛골명가라는 오리고기집이 경기옛길 이 구간의 출발 포스트다.




# 잠시 고갯길을 올라가면 천림산 봉수지 입구가 나온다. 천림산 봉수는 부산 다대포 응봉(鷹峯)에서 출발한 봉수의 연결 봉수다. 직전 봉수는 용인 석성산 봉수이고 다음은 봉수의 최종지인 목멱산이다.

계속 고개를 올라간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기온이 무섭게 올라 대기가 불안정해진 모양이다. 전형적인 한여름 날씨다.




# 삼남길 할 때는 저 표식을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이번 영남길은 만났다 헤어졌다 할 예정이다. 




# 달래내고개는 꽤 긴 고개다. 좌측 방음벽 아래는 경부고속도로다. 저 곳 이름 역시 달래내고개다. 교통방송 듣자면 늘 거론되는 지명이다. 달래내고개는 분당, 판교, 기흥 등지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길목이다. 출퇴근 시각이면 늘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곳이다.




# 잠시 올라가면 다시 천림산봉수지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원 대로는 고개를 넘는 길이고 경기옛길은 우측으로 가서 봉수대에 오른 후 산길로 금토동 앞 판교JC로 나오게 되어 있다.

마침 고민할 필요 없게 이 길 위쪽이 공사중이라 그냥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공지가 경기옛길 홈피에 떠있다. 잘 되었다. 원래 그 산으로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 달래내 고개는 유래가 불분명하다. 구전으로 전하기는 어느 남매의 성적 유혹과 윤리 갈등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의 전설이 있다. 그러나 "달래나 보지"라는 이 구어적 유래는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전설이다. "달래 고개", "달래 강" 등등..

그러나 대부분 이 슬프고도 에로틱한 전설과는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원래 우리 고어에서 "달"은 "높다"라는 뜻이다. "달천', "달구벌", "달래뫼" 등은 높거나 넓거나, 크다는 뜻을 가진 옛 지명이다. 이곳 달래내고개 역시 그럴 것이다.

예전 한양에서 하도(下道)로 내려가자면 양재역을 지나 청계산 자락의 높은 고개를 넘어야 판교역에 이를 수 있었다. 한강진을 건넌 후 처음 만나는 고개라 체감상 높이감이 더 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높다는 뜻의 "달"을 넣어 달래 고개라 불렀지 싶다.




# 혼자서 낑낑 고개를 넘다보니 전설처럼 성적 유혹을 느낄 일도 없고 그동안 다락 같이 솟은 높은 고개를 하도 많이 보아서 이 정도고개로는 달래 고개라 부를 일도 없다. 다만 일요일인 오늘도 고속도로 달래내 고개에는 차량 통행이 많다. 달래내 고개의 옛날 다른 이름 중에 '천천령', 혹은 '천천현' 등의 이름이 있다. 모두 '뚫을 천(穿)'을 쓰고 있다.

인공 내를 뚫었다는 기록이 없는 한 이 높은 고개를 넘자면 천천히 숨 고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야 해서 '천천 고개'라 불렀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지금도 아래에 있는 경부고속도로 달래내 고개는 매일 차량들이 천천히 기다시피 해서 고개를 넘고 있으니까. 




# 비가 계속 오락가락 한다. 옷이 젖을 정도로 많이 오는 것은 아니다. 




# 고개를 넘어 길게 아래로 내려갔다. 영남길 표식은 우측 샛길로 들어가라 한다.




# 농원들 사이로 길게 내려가면 길가에 '금토정' 이라는 정자가 있다. 배낭 내리고 한숨 돌렸다.




# 용인서울간 고속도로 아래를 지난다. 조금 더 내려가면 금토지역 택지 개발 현장이 나오고 좌측 경부고속도로 아래로 영남길은 이어진다. 




# 봉수지를 넘었던 경기옛길은 이곳에서 합류한다. 




#  대왕판교 톨게이트가 좌측에 있다.




#  곧바로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비포장 흙길로 접어든다.




# 영남대로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흙길을 걸어본다. 발바닥이 편안하다. 저멀리 두 개의 고속도로 교각이 보인다.




# 제2경인고속도로와 서울외곽고속도로 두 개의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난다.  




# 곧바로 금토천 길이 나온다. 




# 상전벽해한 판교의 역사를 기록해 두었다. 판교에는 IT기업들이 많다. 이곳 기업 몇 개와 협업한 적이 있어 회의차 여러 번 왔었다.




# 판교로를 따라 진행한다. 좌측에 바이오 관련 협회와 기업들 건물이 보인다.




# 쥐똥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꽃향기가 아주 강렬하다. 쥐똥나무는 열매가 쥐똥처럼 까맣고 둥글게 생겨 붙은 이름이다. 




# 산딸나무도 하얀 꽃잎을 치마처럼 펼쳤다. 산딸나무는 꽃 가운데 있는 저 열매가 나중에 붉게 익어 마치 딸기처럼 생겨 붙은 이름이다. 열매를 식용으로도 한다는데 보기는 많이 보았지만 먹어보지는 못했다. 




# 판교테크노파크 중앙사거리에 도착했다. 아파트형 공장들이 즐비하다. 경기옛길에서는 우측으로 꺾어 판교박물관을 보고 나오라고 표시하고 있다. 그냥 직진하였다.




# 이곳은 특이하게 길가 화단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삼각점은 대부분 산 정상에 설치되기 마련이다. 




# 화랑공원에 도착했다. 이 공원은 판교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조성하였다. 내가 분당을 떠난 이후에 조성된 것이라 오늘 처음 만난다. 




# 공원에는 휴일을 맞아 가족단위로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다. 깨끗한 화장실을 갖추고 있어 손 씻고 양치도 했다. 




# 오늘 구간을 마무리하기 위해 공원을 떠나 신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 계획은 좀 더 진행하여 낙생역까지 가 볼 작정이었는데 더운 날씨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 판교에서 멈추기로 했다.




# 한두 블록 바로 안에 판교역이 있다. 그곳에서 영남길 두 번째 구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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