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백두대간]아홉번째(천왕봉~성삼재)-한국인의 氣像이 發源한 智異山!!!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아홉번째(천왕봉~성삼재)-한국인의 氣像이 發源한 智異山!!!

강/사/랑 2007. 6. 25. 19:08
 [백두대간]그 아홉번째(천왕봉~성삼재)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산맥(山脈) 개념이다. 백두산을 조종(祖宗)으로 하는 산줄기가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며 지리산까지 이어지는데, 그 흐름을 단 한차례도 잃지 않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하여 물길과 산길을 가르고 있다.


산길과 물길이 이 산맥에서 기원하고 구분되니 우리 민족의 역사(歷史)도 그 산맥의 흐름 따라 오천 년 영고성쇠(榮枯盛衰)하였다. 그러나 이 산맥의 개념은 일제시대를 거치며 사람들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잊혀졌던 백두대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몇몇 선각자(先覺者)들의 앞선 혜안과 노력 덕분이고 그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우리나라 산악인들의 백두대간에 대한 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작용한 탓이다.


원래부터 존재하였던 것이 다시 세상에 나타났으니 산꾼들의 끌림이 컷던 것인데, 어쨌든 백두대간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많은 뜻있는 이들이 우리 산하(山河)의 제일 중심 근간(根幹)인 대간길을 땀으로 점(點) 찍으며 두 발로 누벼 왔다.


급기야 나같은 얼치기 산꾼도 겁없이 백두대간 종주 한답시고 나서는 판이다. 나는 평생을 비린내 폴폴 풍기며 우리나라 곳곳의 강계(江界)를 찾아 다니던 낚시꾼이었다. 당연히 백두대간 같은 장거리 종주는 물론이고 산행 자체에 문외한이었다. 산행에 있어서는 하수 중 하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누군들 처음부터 고수(高手)로 태어났으랴? 지금 내공 깊은 고수들도 처음에는 어리바리한 초심자였을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니 이 얼치기도 차츰 백두대간의 품 속에서 부딪히고 깨지다보면 성숙해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세월 흘러 내공 쌓일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아픈 무릎에 힘 집어 넣고 대간길에 나선다.

원래 백두대간은 천왕봉에서 위로 더듬어 올라가는 것이 정코스이지만, 일부 산악인들은 진부령에서 거꾸로 천왕봉쪽으로 내려오는 남진 코스를 선택하기도 한다. 정말 지독한 이들은 천왕봉에서 연속 종주로 진부령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천왕봉까지 내려오는 왕복 종주를 하기도 한다.

나는 조선일보 간(刊) '실전 백두대간'에서 정한 55 소구간별 코스를 기본 개념으로 하고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 시점이 국립공원 산불방지기간이었다. 당연히 지리산은 입산금지 상태였다. 때문에 부득이 지리산이 끝나는 남원의 여원재에서 출발 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는 중간에 소백산 구간을 잠시 한 것을 제외하고 매주 대간길에 나서 덕유산 구간인 빼재까지 올라 온 상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지리산이 빠져 있으니 항상 아직 출발을 안한 듯한 미진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지리산 구간은 백두대간 종주의 첫구간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전체 구간 중 가장 중요한 구간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지리산 종주 경험 자체를 산꾼의 자격을 논하는 잣대로 삼기도 한다니 그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드디어 지리산 입산금지가 끝난 5월. 그 달 첫주에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다. 하지만, 매년 5월이면 '금강(錦江) 지수리'에 끄리떼가 올라 와 비린내를 풍겨댄다. 강/사/랑은 불과 얼마전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열혈 낚시꾼이었다. 따라서 아직은 끄리떼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5월 첫주는 백두대간이 아닌 맑은 비단강의 여울 속에서 살찐 끄리의 앙탈거림을 실컷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5월 지수리의 끄리는 그 몸놀림이 남다른 데가 있다. 오랜만에 맡는 물고기 비린내와 끄리의 바늘털이가 황홀하였다.


결국, 오래 준비했던 지리산 종주 계획은 5월 세째 주로 미뤄졌다. 그것은 아마도 지리산이란 상징적 존재가 주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고, 오래 만나고 싶었던 지리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기도 하였다. 좋은 것은 아껴야 하니까...




한국인의 氣像이 發源한 智異山!!!


구간 : 백두대간 제 1, 2 소구간(천왕봉 ~ 성삼재)
거리 : 구간거리(37.83 km), 누적거리(182.5 km)
일시 : 2005년 5월 21일, 22일(1박 2일)
세부내용 : 성삼재(1070m, 07:30) ~ 코재 ~ 노고단산장(08:30) ~ 노고단
(08:45) ~ 돼지령 ~ 임걸령(10:10) ~ 노루목(11:00) ~ 삼도봉(11:25) ~ 화개재(11:50) ~ 토끼봉(13:10) ~ 1463봉(13:50) ~ 총각샘 ~ 명선봉 ~ 연하천대피소(14:35)/휴식 후 출발(15:15) ~ 삼각고지(15:35) ~ 형제봉(16:00) ~ 벽소령대피소(17:15)/ 벽소령 대피소에서 1박

벽소령대피소 출발(04:40) ~ 1426봉 ~ 선비샘(06:00) ~ 칠선봉(
07:08) ~ 1556봉 ~ 영신봉(07:50) ~ 세석대피소(08:15)/조식 후출발(09:50) ~ 촛대봉(10:20) ~ 삼신봉(10:50) ~ 1167봉 ~ 연하봉 ~ 장터목대피소(12:00) ~ 제석봉(12:45) ~ 통천문 ~ 천왕봉(13:25) ~ 장터목대피소 복귀(14:30)하산 ~ 칼바위(17:15) ~ 중산리매표소(17:50) ~ 중산리 버스정류장(18:00).

총 소요시간 1일차:9시간 45분. 2일차:13시간20분. 합계:23시간5분. 만보계 기준 78,000보.


5월 20일, 금요일. 지점장 모임이 있어 금요일 저녁에 일찍 출발하려는 계획엔 일단 제동이 걸렸다. 회의 끝내고 회식을 하지만 술을 마실 수가 있나? 소주 한 잔으로 끝까지 버티다가 1차만 마치고 먼저 빠져 나왔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배낭 패킹하려고 짐을 늘어 놓으니 이거 장난이 아니다.

대피소에 예약을 못한 관계로
비박 장비들을 전부 챙겼더니 60리터 배낭이 꽉 차버린니다. 침낭, 침낭커버, 메트리스 등을 이럴 때를 대비해서 거금을 주고 장만했지만 막상 배낭에 챙겨 놓고 나니 마음이 심란하다.

배낭을 시험삼아 거실에서 매는데 허리가 휘청한다. 마눌과 둘이 약속이나 한 듯이 침대에 드러 누웠다. 우리 오늘 가지 말까? 6월에 대피소 예약하고 짐 무게 줄여서 그때 갈까? 오늘은 그냥 빼재, 덕산재 구간을 하고 지리산은 다음에 힘 좀 키워서 할까?


둘이서 온갖 핑계로 지리산이란 두려운 무게에서 벗어나 볼려고 했다. 그러나 답은 분명하다. 또한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다. 일단 부딪혀라.

12시30분, 자동차 시동 걸고 산본을 출발. 영동과 경부고속도로 거쳐 대진고속도로에 접어들어 덕유산 휴게소에서 식사, 양치 등 해결했다. 준비성 부족한 탓에 차량 회수에 대한 계획이 없다.

성삼재휴게소의 주차료가 엄청나다는 말을 들은 지라, 구례에 주차하고 택시로 성삼재로 올라 갈까도 생각해 보지만 그것 역시 중산리로 내려 갔을 때 진주 거쳐 하동 거쳐 구례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중간에 내려 오면서 대전역에 주차하고 열차를 이용할 것을 생각했으나, 새벽 당직자가 없는지 대전역은 내내 불통이어서 그것도 제외.

결국 돈보다는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는 방안으로 선택하기로 하고 114에 물어 단성택시에 전화를 하니 오히려 덕산택시 번호를 가르쳐 준다. 단성IC 입구에 주차해 놓고 잠시 기다리니 덕산택시가 도착한다. 그 택시편으로 성삼재로 향했다. 단성에서 성삼재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택시비는 미터기로 78,000원 나왔다.





지리산 각 지역 이름의 유래


지리산/智異山
지이산(智異山)이라 쓰고 지리산으로 부르는 이 산은 옛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는 三神山의 하나로 方丈山이라 일컬어왔다. 방장이란 중국에서 먼 옛날부터 동해 가운데 신선이 살고 불로초가 많다고 전해지는 미지의 신비경인 봉래, 방장, 영주 삼신산의 이름을 하나 따온 것이다. 불교에서는 지리산을 문수도장으로 불렀다. 지혜의 문수대성이 이산에 머물며 불법을 지키고 중생을 깨우치는 도량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지리산이라 함은 신의 땅에 오묘한 이치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 즉 특이한 지혜를 간직한 산이란 뜻이다.

노고단/老姑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으로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렸던 성단의 의미로 노고단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성삼재/姓三峙
삼한시대에 마한군에 밀리던 진한왕이 전란을 피하여 지리산 심산유곡으로 찾아들어 달궁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피난할 때 북쪽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으므로 팔랑재(八郞峙), 서쪽 능선은 정 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으므로 정령재(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으로 맡아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령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姓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하게 하여 성삼재라 부르게 되었다.

임걸령/林傑嶺
高嶺인데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능선이 동남풍을 막아주니 녹림속에서 천혜의 요지이며, 샘터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조선 명종 때의 초적두목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임걸령이 되었다. 이곳에 진을 치고 말을 길렀다고 하고 실제로 마구와 철촉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삼도봉/三道峰
경남,전남,전북의 3도가 경계를 이루는 데서 유래가 된 암봉으로 날라리봉이라고도 하는데 삼도봉의 바위모양이 낫날같다고 하여 낫날봉이라 하였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이 되었다.인간 못된 날라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장터목/場基項
천왕봉 남쪽의 시천 주민과 북쪽의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이곳에 장을 세우고 생산품을 물물교환 한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제석봉/帝釋峰
6,25 이후 까지만 하더라도 전나무 구상나무들이 울창하였으나 자유당 말기 농림부장관의 삼촌 되는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석단에 재제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내면서 말썽이 생기자 증거를 인멸한 양으로 제석봉에 불을 질러 나머지 나무마저 지금과 같이 횡사시켜 버렸다고 한다.

반야봉/般若峰
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로 반야(般若)란 불교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지혜를 뜻하는 말이니 지리와 二言同意로 상통하는 말이다.정상에서 600미터 거리에 있는 북봉은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의 상록 원시림지대를 이루고 있어 창연한 경관속에 태고의 정적이 깃들어 있고 반야봉 정상에서 동쪽으로 가면 절벽아래 묘향대가 있다.

연하천/烟霞泉
명선봉의 북쪽 가슴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고산지대 임에도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속에서 흐르고 있다고 하여 연하천(烟霞泉) 이라 부르게 되었다.

피아골
옛날 속세를 버리고 한적한 선경을 찾던 선객들이 이곳에 오곡 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연고로 자연히 피밭골 이라 부르게 된 것이 그후에 그 발음이 피아골로 전화된 것이라고 한다.

뱀사골
뱀사골 초입에 있는 석실 건너편에 배암사라는 사찰이 있었던데 따른 것으로 배암사골이란 이름이 변하여 생겼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고, 뱀이 많고 적음과는 무관 한다. 하지만 뱀이나 용에 관한 명소가 많다. 요룡대, 탁용소, 뱀소 등

달궁/達宮
마한의 한 부족이 심원계곡에 들어와 궁전을 짓고 살았는데, 달궁은 그 궁궐터고, 정령치는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장군을 지키게 했고, 성삼재는 각성받이 장군 세 명이, 팔랑치는 병사 여덟이 지키던 수비성터라는 얘기가 전한다.

토끼봉/兎峰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정상이 밋밋한 초원지대와 구상나무, 상록수림 지대로 정연하게 구분되어 있어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훌륭한 정원처럼 그 경관이 우아할 뿐 아니라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이 서쪽에 솟아있고 북쪽은 뱀사골 동남쪽은 화개골의 광활한 지역을 덮고 있는 울창한 수해의 전망이 누구나 잠시 쉬어가기 알맞은 고봉이다. 정상에 지보초가 군생하고 있어 지보등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벽소령/碧宵嶺
광대한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룩한 고개로서 그 주위가 높고 푸른 산릉이 겹겹이 쌓여 유적한 산령을 이루고 있다. 달밤이면 푸른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인다 하여 옛부터 이곳을 벽소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종석대/鍾石臺
노고단과 성삼재 사이에 위치한 봉우리로 거센바람이 바위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돌종소리 같다고 하여 종석대라 붙여 졌다 하며 종석대와 이어지는 끝봉우리를 합쳐 차일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석평전/細石平田
잔돌평전이라고도 부른다.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하여 옛부터 세석평전이라 불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고원으로 그 주위가 12킬로나 된다고 하며 상중하로 식물분포가 구분된다. 상층은 초생종류인 지보초, 좁쌀풀, 산새풀등이 군락을 이루고 중층은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관목지대, 하층은 구상나무를 비롯한 상록수와 활엽수가 혼유림을 이룬다.

천왕봉/天王峰
지리산의 최고봉 천주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지리산의 웅대한 기상을 상징하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 보아도 아무 거칠 것 없는 천왕봉 정상에서의 전망은 장엄하기 이를데 없으며 특히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석양낙조의 풍광도 좋거니와 새벽동녘 하늘가에 끝없이 펼쳐지는 구름바다의 운평선에서 떠오르는 천왕봉 해돋이의 장관은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은 천하의 장관으로서 지리산 최고 명소로 꼽힌다...

<이곳저곳>

<"F11"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1, 2 소구간 천왕봉 ~ 벽소령 ~ 성삼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덕산택시편으로 도착한 성삼재 휴게소(07:30)

 

 

# 성삼재에서 구례로 가는 861번 지방도.

 

 

# 코재에서 바라 본 지리의 품과 옷자락. 산자락이 끝나는 부분의 하얀 곳이 화엄사. 멀리 섬진강의 구불구불한 흐름이 보이고 사진에는 표현이 되지 않았지만 무등산도 조망된다.

 

 

# 코재에서 바라 본 노고단과 KBS중계소.

 

 

# 지리산의 길들은 토양유실을 막기 위해 전부 돌을 박아 놓아 무릎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

 

 

# 노고단 대피소(08:30).

 

 

# 사람 붐비는 노고단 대피소는 그냥 지나쳐서 노고단으로 향했다.

  

 

# 노고단 고개(08:45).  하늘색이 좋다.

 

# 노고단. 자연휴식년제로 입산 금지이다. 노고단(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이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며 예전부터 고산 휴양지로 알려졌다. 신라의 화랑이 이곳에서 심신 수련을 했고, 일제시대에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피서용 별장을 50여 채나 건립하고 이 곳에서 여름을 났다고 한다.

 

 

# 노고단에서 돼지령을 향해 출발. 본격적인 지리 주능 종주의 시작이다.

 

 

# 돼지령에서 본 큰앵초.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앵초는 한방에서 거담제로 쓴다.

 

 

# 미나리아재비. 노란 꽃잎에 윤기가 좔좔 흐른다. 습한 곳을 좋아하는 녀석이다.

 

 

# 풀솜대. 꽃이 하얀 솜처럼 보인다고 얻은 이름이다.

 

 

# 돼지령에서 본 만복대. 얼마 전 연무 가득했던 날 다녀온 곳이다.

 

 

# 아직은 등로가 평탄하다.

 

 

# 돌아본 노고단. 산세가 순하다.

 

 

# 피아골 전 안부.

 

 

# 피아골 갈림길(09:50).

 

 

# 임걸령 샘물. 지리산에서 물맛이 가장 좋기로 유명하다.

 

 

# 이틀 내내 어깨를 짓눌러 힘들게 만든 고생보따리. 임걸령 샘터에서 배낭 벗고 휴식을 취했다.

 

 

# 임결령 샘터에는 동의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인 식물. 항상 동의(同意)만 한다.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독초이다. 잎이 곰취나물을 닮았는데 실수로 먹었다간 큰일난다.

 

 

# 삼도봉을 향해 다시 헉헉대며 올라 간다.

 

 

# 매화말발도리. 꽃이 매화와 닮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 반야봉 갈림길. 노루목이라고도 한다(11:00). 칠순을 훨씬 넘기신 어르신 세 분을 여기서 뵈었다. 종주를 하신다고 한다. 오늘 벽소령까지 가신다했다.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았는데 나중에 벽소령에 안 오신 걸로 봐서 아마도 연하천산장에서 멈추신 듯하다. 유쾌하게 노년을 즐기시는 분들이셨다.

 

 

#  삼도봉 정상(11:25). 경남, 전남, 전북 삼도가 여기서 나뉜다. 날나리봉이라고도 한다. 산 정상이 낫날같이 생겼다고 낫날봉이라고 이름지워 졌는데 나중에 변하여 날나리봉이 되었다. 상석 대신 묘하게 생긴 청동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 삼도봉에서 외국인 두 명을 만났다.아마도 독일인인 듯. 나중에 벽소령에서 나란히 잠을 잤는데 어찌나 수다를 떨든지 잠을 자기 힘들었다.

 

 

# 삼도봉에서 바라 본 반야봉. 성삼재에서 부터 같이 온 스님은 반야봉으로 가셨다.

 

 

 

# 삼도봉에서 토끼봉으로 가는 길.

 

 

# 화개재로 내려가는 550 계단. 무릎이 시큰시큰 하다. 천왕봉쪽에서 시작하여 이 계단을 올라 온다면 엄청난 인내를 요할 것 같다.

 

 

# 화개재(11:50). 자연 복원 사업 중이다. 옛날 이곳에서 화개사람들의 물물교환 시장이 열렸다고 한다.

 

 

# 이 길은 뱀사골 대피소로 내려 가는 길이다.

 


# 화개재에서 점심을 먹다 요놈을 만났다. 배낭 옆에 밤톨처럼 생긴 키세스 초콜릿이 떨어져 있었는데, 다람쥐란 놈이 나타나 능숙하게 하얀 은박지를 벗겨내고는 갉아 먹는다.

 

 

# 카메라를 들이대니 멋지게 포즈도 취해 준다.

 

 

# 병꽃나무. 인동과이다.

 

 

# 구상나무 군락.

 

 

# 명선봉 사면의 나무계단. 굉장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구간이다.

 

 

# 명선봉 주위는 온통 얼레지 군락이다.

 

 

# 날아 오를 듯한 얼레지의 자태.

 

 

#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했다.(14:35).

 

 

# 연하천산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40분 동안 푹 쉬고 15:15에 출발했다.

 

 

# 연하천 산장 주변은 주목 보호를 위한 철책이 설치되어있다.

 

 

# 한차례 올려 삼각고지에 오른다(15:35).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고사목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 삼각고지에서 바라 본 천왕봉과 중봉.

 

 

# 삼각고지 사면의 암봉 구간을 내려간다.

 

 

# 영화 반지의 제왕이 생각나는 광경이다. 나무의 요정 앤트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 갖가지 모양의 고사목들이 모여있다.

 

 

# 나무는 죽어서도 그 품위를 잃지 않는다.

 

 

# 형제봉(16:00). 행정구역상 하동군 악양면에 속한다.

 

 

# 형제봉은 웅장한 암봉으로 되어있다.

 

 

# 형제봉 사면의 풍광.

 

 

# 한순간 전망이 트이며 벽소령대피소가 보인다. 가까워 보이지만 아직 1시간을 더 가야 한다.

 

 

# 암릉 구간을 길게 오르내려 드디어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17:15).

 

 

# 벽소령대피소에서 바라본 지리의 영봉들.

 

 

벽소령은 안부를 휘감아 넘어가는 바람이 아주 차갑다. 추워서인지 사람들은 모두 취사장에서 제각기 준비해 온 음식을 끓이고 굽고 부산하다. 우리도 취사장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햇반, 카레와 라면 끓여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처음 정신없이 올라 오느라 소주를 준비 못해서 오는 내내 아쉬웠는데, 다행히 연하천산장에서 조그만 팩소주 하나를 살 수 있었다. 
저녁 먹으면서 조금씩 아껴 먹었다.

저녁 먹고 취사장 바닥에 자리 깔고 앉았는데, 갑자기 한기가 밀려오며 극도로 피곤해진다. 배낭에서 옷을 하나 더 꺼내 입어 보지만 약간 덜할 뿐이다. 빨리 자리 잡고 침낭 속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 뿐이다. 옆자리 분들이 고기 굽고 소주 돌려 가며 재미있게 노시지만 같이 어울릴 힘이 없다.


7시 지나 방송으로 예약을 못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마눌이 대신 줄 서러 가고 난 후 배낭 끌어 안고 꾸벅꾸벅 졸았다. 생각해보니 간밤에 잠을 한숨도 못자고 운전해서 내려왔고, 무거운 배낭 메고 10시간 가까이 걸었더니 몸이 아우성을 지르는 모양이다.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질적인 예약문화 매너 탓에 우리에게도 자리가 돌아와서 각기 자리를 배정 받을 수 있었다. 벽소령은 '벽소명월(碧宵明月)'이라고 달빛이 지리 10경에 들어가는 절경을 자랑한다. 옆자리의 독일인들도 어슬픈 관리인의 토막 영어 안내를 받고 달빛 구경을 나갔지만, 손가락 하나 꼼짝 하기 싫어 담요 덮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한 탓인지 정신은 가물가물하는데 도통 잠이 오질 않는다. 앞 침상의 몇 사람이 합창으로 코를 골아 대는데 이건 거의 고함지르는 수준이다. 옆자리의 외국인들은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대고... 사내 녀석들이 왜그리 수다스러운지. "Be quiet, please!" 한 마디 해 주었다.

겨우 조금 눈 붙이고 마눌과 약속한 4시에 일어나 짐 챙겨 나왔다. 여자들 방 앞에서 마눌 불러 깨워 스트레칭하고 이마에 등불 매달고 04:40에 출발했다.


대피소 마당에서 몇몇 산객들이 떠나면서 우리 보고 어느쪽으로 가는지 묻는다. 천왕봉 쪽으로 간다고 하니 고생 좀 하겠다며, 반은 걱정 반은 놀리는 기분으로 말하곤 성삼재 방향으로 가버린다. 오늘 구간은 하루종일 오르내림을 반복해야 한다. 그래도 한 번 가 보~입시다!!!


        

# 여명 속의 푸른 지리산.

 

 

# 1426봉 지나 덕평봉으로 헐떡헐떡 올라갔다. 사면을 차고 오르는 동안에 이미 해가 돋아버려 지리의 일출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멀리 천왕봉 위로 빛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 선비샘. 물이 콸콸 나오고 있다. 참으로 맛나고 시원한 샘물이다.

 

 

# 지리종주 산행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고사목.

 

 


# 칠선봉(七仙峰). (07:08). 이정표 주위로 일곱 개의 암봉이 각각 기묘한 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데, 마치 일곱 선녀가 노니는 모습 같다고 해서 칠선봉이라 한다.

 

 

# 칠선봉에서 두어 차례 암봉을 오르내리면 1556봉에 이른다.

 

 

# 겨울철에는 미끄러워 아주 위험하다.

 

 

# 그러나 전망이 아주 좋아 누구나 쉬어가게 된다.


 

# 홀로 지리 종주 중인 아가씨. 자기 몸무게 만한 배낭을 지고 혼자서 씩씩하게 다닌다. 장하도다!

 

 

# 나도옥잠화. 백합과이다. 제비옥잠화라고도 한다.

 

 

# 다시 꾸준히 오르내려 영신봉에 이른다.(07:50)

 

 

# 촛대봉, 세석평전과 세석대피소를 조망한다.

 

 

# 대피소에서 바라본 세석평전(08:15). 군데군데 철쭉이 피어나고 있다.

 

 

세석고원(細石高原)은 가히 '남녘의 개마고원'이라고 불리울 만큼 특이하고 인상적인 지형을 나타내는 고원지대이다. 그 주변 둘레가 12km, 약 30만 평에 달하는 드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에 남향으로 완만하게 펼쳐져 있다.

작은 돌밖에 없는 토양지대라 해서 잔돌고원, 그것의 한자표현으로 세석평전(細石平田)이라고 하는데 평전이라는 말은 일본식 표현이라고 한다.

세석은 철쭉이 단연 유명한데 소설가 문순태는 "온통 산에 붉은 물을 뿌려놓은 것 같은"이라고 세석 철쭉을 표현했다. 아직 세석 철쭉은 만개하지 않아서 군데군데 조금 피어있기만 하다. 과거 빨치산들이 이곳에 김일성대학을 세웠다고 한다.

세석대피소에는 등산객들로 무척 붐빈다. 그런만큼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다. 우리도 한 쪽에 자리 잡고 늦은 아침을 끓여 먹었다. 그런데 앞에 앉아서 식사를 하시던 50대 부부가 신문지, 부탄개스 등 쓰레기를 잔뜩 남긴 채 그냥 가버린다. 
너무 황당해서 뭐라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산에 와서도 이런 짓을 하는 인간들이 있다니... 그동안 백두대간을 하면서 발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자부심과 앞으로도 반드시 지키리라 다짐을 그들을 보고 다시 한번 해 본다.


#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 식사 후 다시 짐 챙겨 세석대피소를 출발했다.(09:50).

 

 

# 한차례 꾸준히 밀어 올려 촛대봉 정상에 도착했다.(10:20). 

 

 

# 촛대봉은 세석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한바탕 힘들게 차고 올라야 한다.

 

 

# 바로 앞에서부터 삼신봉, 연하봉, 제석봉, 천왕봉이다.촛대봉에서 4.4km 남았다.

 

 

# 아래로 내렸다가 한차례 올려 삼신봉(10:59). 멀리 천왕봉이 보인다.

 

 

#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주목. 나무 대부분이 고사했으나 뿌리에서부터 길게 한줄기 표면만 살아 푸른 잎을 피웠다.

 

 

# 귀룽나무. 장미과여서 찔레꽃을 닮았다.

 

 

# 연하봉 오름. 길이 넓찍하다.

 

 

# 가로본능.

 

 

# 되돌아 본 지리 능선. 멀리 반야봉의 위용이 보인다. 반야봉은 그 특이한 모습 때문에 우스개 소리로 반야똥꼬라 불린다.

 

 

# 연하봉으로 향하는 등로.

 

 

# 연하봉(烟霞峰). (11:40). 촛대봉에서 연하봉에 이르는 길은 연하선경(烟霞仙境)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구간이다.

 

 

# 연하봉 너머의 무명봉.

 

 

# 역시 지리산 사진에 단골로 나오는 고사목.

 

 

# 무명봉의 고사목 지대.

 

 

# 제석봉과 천왕봉을 땡겨본다.

 

 

# 아름다운 길을 걸어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 이틀간 걸어 온 지리의 마루금. 멀리 독특한 모양의 반야봉이 보인다. 여인의 둔부를 닮았다 알려져 있다.

 


장터목 산장은 그야말로 장터를 방불케 한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제각기 다양한 차림으로 쉬거나 움직이고 있다. 장터목은 옛날 산청군 시천면 주민들과 함양군 마천면 주민들이 물물 교역을 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선 장(場)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은 시장이 아니라 천왕봉을 오르기 위한 사람들로 옛날보다 더 붐비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장터목 산장 한 쪽에 배낭 벗어 두고 생수 한 통만 챙겨 천왕봉으로 향했다.



# 천왕봉을 목표로 출발. 제석봉 사면을 치고 오른다.

 

 

# 제석봉의 고사목 지대.

 

 

# 제석봉의 황폐한 모습은 산꾼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 제석봉(12:45). 민둥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천왕봉까지는 마지막으로 힘들게 차고 올라야 한다. 상봉 오르막이 까마득하다.

 

 

# 수문장처럼 천왕봉 입구를 지키고 있는 고사목. 언제까지 저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 천왕봉의 기암들.

 

 

# 우뚝 솟은 입석.

 

 

# 역시 지리산의 주요 모델인 천왕봉 입구의 고사목 삼형제.

 

 

# 통천문(通天門). 하늘로 통하는 입구이다.

 

 

# 천왕봉의 대문처럼 만들어 놓은 돌탑.

 

        

#  천왕봉 역시 인산인해다.

 

 

#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했다.(13:25). 남한에서 한라산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곳이다. 기념사진 한 장 남겼다.

 

 

# 한국인의 기상(氣像) 여기서 발원(發源)되다!!!

 

 

# 멀리 남해 바다가 보인다.

 

 

# 반야봉쪽 조망. 저기서 여기까지 걸어 왔다.

 

 

# 다정히 식사중이신 분들. 최고봉에서의 만찬이다.

  

 

# 산사태로 산이 완전히 절단된 듯한 모습. 중봉이다. 이제 저 잘려진 계곡은 당분간 중봉의 이미지가 되겠다.

 

 

이틀간의 강행군 끝에 드디어 천왕봉에 올랐다. 진정한 백두대간의 출발은 이제부터다. 천왕봉 정상석앞에서 잠시 각오를 다져 본다. '어느날 문득'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 이제는 내 삶의 중요한 도전 목표가 되어 버렸다. 자, 힘내서 한걸음 한걸음 진부령까지 나아가보자!



지리산 詩 몇 편 적어본다.

지리산

눈 쌓인 산을 보면 / 피가 끓는다 / 푸른 저 대궁을 보면 / 노여움이 불붙는다 ./ 저 대 밑에 / 저 산 밑에 / 지금도 흐를 붉은 피 // 지금도 저 벌판 / 저 산맥 굽이굽이 / 가득히 흘러 / 울부짖는 것이여 / 깃발이여 / 타는 눈동자 떠나던 흰옷들의 그 눈부심 // 한 자루의 녹슨 낫과 울며 껴안던 그 오랜 가난과 / 돌아오마던 덧없는 약속 남기고 / 가버린 것들이여 / 지금도 내 가슴에 울부짓는 것들이여 // 얼어붙은 겨울 밑 / 시냇물 흐름처럼 갔고 / 시냇물 흐름처럼 지금도 살아 돌아와 / 이렇게 나를 못살게 두드리는 소리여 / 옛 노래여 //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 푸른 저 대궁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 아아 지금도 살아서 내 가슴에 굽이친다 / 지리산이여 / 지리산이여.

- 김지하

벽소령 내음

이 넓은 고개에서는 저절로 퍼질러 앉아 / 막걸리 한 사발 부침개 한 장 사먹고 / 남쪽 아래 골짜기 내려다본다 / 그 사람 내음이 뭉클 올라온다 / 가슴 뜨거운 젊음을 이끌었던 / 그 사람의 내음 / 쫓기며 부대끼며 외로웠던 사람이 / 이 등성이를 넘나들어 빗점골 / 죽음과 맞닥뜨려 쓰러져서 / 그가 입맞추던 그 풀내음이 올라온다 / 덕평봉 형제봉 세석고원 / 벽소령 고개까지 / 온통 그 사람의 내음 철쭉으로 벙글어 / 견디고 이울다가 / 내 이토록 숨막힌 사랑 땅에 떨어짐이여 / 사람은 누구나 다 사라지지만 /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떨어어지지만 / 무엇을 그리워하여 쓰러지는 일 아름답구나! / 그 사람 가던 길 내음 맡으며 / 나 또한 가는 길 힘이 붙는다.

- 이성부 

春山底處無芳草 (춘산저처무방초)
只愛天王近帝居 (지애천왕근제거)
白手歸來何物食 (백수귀래하물식)
銀河十里喫有餘 (은하십리끽유여)


- 남명 조식(南冥 曺植)

봄산 어딘들 향기로운 꽃과 풀이 없으리오 / 다만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천왕봉을 사랑하여 이곳에 있노라. / 빈손으로 자리를 잡아 먹을 거야 없겠지만 / 맑은 물이 10리나 흐르니 마시고도 남겠네.

請看千石鍾 (청간천석종)
非大扣無聲 (비대구무성)
爭似頭流山 (쟁사두류산)
天鳴猶不鳴 (천명유불명)


- 남명 조식(南冥 曺植)

천석의 거대한 종은 / 큰 것으로 치지 않으면 울리지 않듯 / 지리산의 기상인 천왕봉은 / 하늘이 울지라도 울리지 않는다.


# 장터목대피소로 복귀했다.(14:30).  장터목 대피소의 빨간 우체통.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향해 편지를 띄우는 기분이다.  
잘들 계시죠? 여기는 지리산이랍니다.

 

 

# 장터목에서 등짐 다시 챙겨 메고 중산리쪽으로 하산했다. 그러나 이후 하산길은 죽음이다. 

 

 

# 길고 긴 하산길에 배낭 무게가 그대로 무릎으로 전해져 걸음 옮기기가 쉽지 않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중산리 하산길.

 

 

# 아픈 무릎을 질질 끌고 긴 하산길을 내려갔다. 중산리 계곡 바윗돌이 즐비하다.

 

 

# 골짜기 골짜기에서 모이고, 

 

 

# 모여서, 

 

 

# 폭포를 이뤘다. 유암폭포의 물길 장하다.

 

 

# 폭포에서 올려다 본 천왕봉 가는 마루금.

 

  

# 힘들게 내려온  칼바위(17:15).  장터목에서 2시간 30분, 천왕봉에서 3시간 30분 내려왔다.

 

 

# 너무 힘들어 칼바위 옆 너럭바위에 철버덕 누웠는데  아, 하늘에 초록 별들이 총총하다.

 

 

# 아이구, 무릎이야! 비명을 연신 내지르며 사투를 벌이고 하산하기 4시간 5분. 드디어 중산리 매표소에 도착했다.(17:50) 법계교 앞 계곡에 맑은 물 가득하다.  그러나 버스정류소까지는 아직 2km를 더 걸어 가야 한다.

 

 

# 버스를 기다리며 산채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천왕봉 오른 흥분에 점심 먹는 것도 잊었다. 옆자리 단체 산행객들이 먹는 동동주가 너무 맛있어 보여 침을 흘렸더니 식당 아가씨가 서비스로 한 잔 주었다. 너무너무 맛있는 동동주! 복 받으소서!!!

 

 
드디어 길고 긴 지리종주가 끝났다. 지리 종주를 하였으니 이제 나도 산꾼으로 이름표를 단 셈이다.
두려움과 흥분으로 시작했던 지리 종주. 이틀 동안 78,000 걸음을 걸어서야 끝낼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줄곧 1,000m 이상의 고지에서 보냈고, 한반도 남녁 땅 가장 높은 곳에서 천하를 관망했으니 몸과 마음이 정화되었을라나?

중산리에서 버스로 40분 달려 단성IC에 도착해서 차를 살펴 보니 앞바퀴 바람이 많이 빠져 있다. 펑크 수리한 곳에서 계속 바람이 조금씩 새 나오더니 결국 말썽을 부린 거다. 단성읍에 들러 카센터에서 바람 보충하고 내려온 길 더듬어 다시 올라 가는데, 중부 지방부터는 비가 내린다. 마눌과 교대로 운전하며 무사히 집에 도착하니 24시 30분. 정확히 48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다.

몇 시간 눈 붙이고 출근하려고 주차장에 가니 에그머니 앞바퀴가 완전히 주저앉아 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한다. 만약 어제 올라 올 때 고속도로에서 바퀴가 주저 앉았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지리산 산신령께서 도와 주셨나보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의 다음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