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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여덟번째(동엽령~빼재)-다시 찾은 동엽령!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여덟번째(동엽령~빼재)-다시 찾은 동엽령!

강/사/랑 2007. 6. 25. 19:02
 [백두대간]그 여덟번째(동엽령~빼재)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과 아사녀가 /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전문)

'덕유산(德裕山)' 종주 산행은 일반적으로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을 오르고 다시 정상인 향적봉(香積峰)을 찍고 중봉 거쳐 백암봉 송계 삼거리에서 빼재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아 남진(南進)하게 된다. 그 산줄기로 계속 가면 무룡산, 삿갓재 대피소, 남덕유산, 장수덕유산을 거쳐 '육십령(六十嶺)'에서 종주를 마무리하게 된다.


그 남쪽 종주코스 중 무룡산 가기 전 산꼭대기에 형성된 고개가 하나 있다. 바로 '동엽령(冬葉嶺)'이다. 품 넓은 산 덕유(德裕)가 인간세의 접근을 깊숙히 허락하여 전북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방향으로는 칠연계곡, 경남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 쪽으로는 병곡리계곡을 마루금 가까이 품어 안은 곳이다.


그 두 깊숙한 계곡을 이어주는 고개가 동엽령이다. 하늘 같이 솟은 덕유산이 남북을 가로막아 인간세의 소통이 어려운 와중에 마루금 근처까지 계곡이 이어져 안성과 북상의 옛사람들은 그 길을 연결해 왕래하였다.


옛 기록이나 지역의 여러 기록에도 그러한 옛일이 다양하게 적혀 있다. '거창군사(居昌郡史)'에 의하면, 이 고개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재이다. 재로 오르는 병곡 대하골(현재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에는 옛날 동업이재를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았다고 하는 주막터가 있다.'고 적혀 있다.


'한국지명유래집' 전북편에는 이 고개를 '동업령(同業嶺)'이라 적고 있다. 그러면서 거창군사와 마찬가지로 '동업이재'라고도 부른다고 기록하였다. 한국지명총람에서는 고개가 높고 멀어서 혼자는 못 가고 여럿이 모여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고 전한다. 함께 올라 가야 해서 '한가지 同'을 쓴 것 같은데, 모여서 올라가야 하는 고개가 여기 뿐은 아니니 그냥 한자 풀이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국토지리원의 국토정보 플랫폼에서는 '양지(陽地)라서 볕이 따뜻하여 겨울에도 나뭇잎이 핀다는 의미로 동엽령 또는 동엽재라 한다'고 적고 있다. 이것 역시 현재 한자 표기인 '겨울 冬'을 쓰는 '동엽령(冬葉嶺)' 이름을 그대로 풀이한 듯하다.


이런 여러 기록을 종합해보면 지금은 동엽령이라 부르고 '겨울 冬'과 '잎사귀 葉'을 쓰고 있으나, 예전에는 '동업이재'라 불렀고 한자로는 '동업령(同業嶺)'이라 적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동업이재라 부른 유래는 찾을 길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현지를 방문해 연세 드신 어르신들께 탐문하는 방법이 가장 나을 일이나, 그런 시도가 있었는지 결과는 무엇인지 내가 갖고 있는 정보는 없다.


동업이재가 동업령 혹은 동엽령으로 변한 연유는 알 길 없지만 '동엽령'이라고 부를 때 그 어감은 참으로 리듬감 있고 듣기 좋다. 아마도 혀를 둥글게 말아야 하는 '이응'이 모든 글자에 들어서 일 것이다.


그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동엽령을 다시 만나기 위해 덕유산을 찾았다. 하지만 어감 좋은 동엽령이 우리 부부에게는 만만치 않는 무게감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지난 5월 5일. 육십령을 출발해 덕유 1차 구간을 걸으면서 덕유의 광폭(狂爆)한 면(面)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는 삿갓골재에서 무룡산을 넘으면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바람을 만났었다. 그것은 무거운 배낭 멘 사람을 공중에 뛰울 정도의 강풍(强風)을 넘어선 광풍(狂風)이었다.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아찔한 고비를 넘겼던 터라 백두대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해야 함을 느꼈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경외감이랄까...


그러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안고 동엽령을 다시 찾았다.


다시 찾은 동엽령!




구간 : 백두대간 제 11 소구간(동엽령 ~ 빼재)
거리 : 구간거리(17.47 km), 누적거리(144.67 km)
일시 : 2005년 5월 15일
세부내용 : 빼재(08:50) ~ 1039.3봉 ~ 고사목지대 ~ 갈미봉(10:25) ~ 대봉
(11:00) ~ 월음령(11:34) ~ 못봉(12:30) ~ 전망대 ~ 송계사갈림길(12:40) ~ 점심식사 후 출발(13:40) ~ 횡경재(14:10) ~ 귀봉(14:40) ~ 백암봉(16:00) ~ 1312봉 ~ 칠연삼거리(16:35) ~ 동엽령(17:00) ~ 칠연계곡 ~ 안성매표소(19:20)

총 소요시간 10시간 30분. 만보계 기준 36,000보.

5월 둘째 주는 오래된 관리자들 교육이 잡혀 있어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통제된 생활을 4일씩이나 하려니 미칠 지경이었다. 3박 4일의 교육을 마치고 토요일날 집에 돌아와서는 간만의 달콤한 휴식을 대한민국 가장(家長)들의 공식 포즈로 즐겼다.


대한민국 가장들의 공식포즈란 거실 소파에 가로 누워 리모콘 손에 들고 이곳 저곳 채널 돌리는 자세를 말한다. 마눌은 교육받느라 힘들고 피곤했을 테니 이번 주는 백두대간을 쉬자고 했지만, 일요일에도 똑같은 공식포즈일 가능성이 높아 강행하기로 했다.

5월15일, 포근한 침대의 달콤한 유혹을 떨치고 집을 나섰다. 고속도로 세 개 갈아타고 무주IC를 거쳐 빼재를 가기 위해 37번 국도로 접어 들었다. 무주리조트 입구를 지나 경남 거창으로 넘어가는 37번 도로를 꼬불꼬불 가는데 둘러보니 안면이 많은 길이다.

옛날 십몇 년 전 초보 운전으로 고향인 진주를 가기 위해 내려갈 때였다. 지도 확인하니 무주에서 긴 고개를 넘어 거창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이 가장 가까워 보여 접어 들었다가 너무나 험하고 무서워 곤욕을 치렀었다. 그때는 지금 길과는 달리 구절양장의 길이 강원도 산길보다 더 길고 꼬불꼬불 이어져 있었다. 바로 이 길이다.

그날은 새벽에 야간운전을 하고 내려 갔었는데, 그날따라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안개 자욱한 길을 끝도 없이 꼬불꼬불 올라 가자니 무섬증이 나서 차 문을 모두 잠그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고개 정상 부근은 급격히 구부러지는 구절양장의 연속이다.


詩人 신동엽

1930년 충남 부여 출생. 전주사범, 단국대 사학과,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부터 작품 활동 시작,그 후 아사녀(阿斯女)의 사랑을 그린 장시 《아사녀》,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서사시《금강(錦江)》 등 강렬한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화(詩化)하였다. 시론(詩論)과 시극(詩劇) 운동에도 참여하며, 시론으로는 《시인정신론(詩人精神論)》등이 있고,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은 시극동인회에 의해 상연되었다. 주요작품으로 《삼월(三月)》 《발》 《껍데기는 가라》 《주린 땅의 지도원리(指導原理)》《4월은 갈아 엎는 달》 《우리가 본 하늘》 등이 있고,유작(遺作)으로 통일의 염원을 기원하는 《술을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이 있다. 1969년 간암으로 별세. 그의 시는 문학평론가 염무웅씨의 말을 빌리자면, 전후의 참담한 현실을 견디면서 토해낸 민족언어의 밝은 햇살이었고 외래문화의 홍수를 뚫고 솟아오른 맑은 공동체적 기억의 회상이라 할 수 있다.

빼재

덕유산(해발 1,614m) 산줄기와 덕유삼봉산(해발 1,254m - 전북과 경남의 경계)을 잇는 백두대간 상의 고개 이름이 빼재이다. 다시 말해, 국도 37호선 무주와 거창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고개 이름이 한자어로 명명되어 있음에도 지도상에 특이하게도 우리말인 빼재로 명기된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다.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 백제의 접경지역이었기에 전략의 요충지로서, 역사의 격동기 마다 수많은 전투가 이곳에서 치뤄졌고, 그에 따라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다. 또 숱한 국난 중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왜구와 맞서 싸울 때 이곳의 토착민들은 험준한 지형 속에서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고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 널리게 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전해진다. 어쨌든 그 뼈라는데서 유래한 뼈재라는 이름이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이를 한자지명으로 지도에 표기할 때 빼어날 수(秀)자를 써서 수령(秀嶺)이 되었다고도 한다. - YS의 갱제(경제)를 살립시다와 같은 방식 ^^* 그런데 빼재가 십수년 전 포장이 되면서 고개 마루 정상 밑에 신풍령이라는 이름의 휴게소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 후 고개 이름은 빼재라는 이름과 신풍령이라는 이름이 동시에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그런 사연이 있는만큼 신풍령보다는 빼재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11 소구간 동엽령 ~ 빼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전북 무주와 경남 거창을 잇는 37번 국도 상의 빼재. 깎아지른 절개지가 위태로와 보인다.

 

 

       

# 고개 정상에는 빼재를 한역해서 수령(秀嶺)이라 표시해 두었다. 터무니 없는 지명의 왜곡이다. 빼재의 원래 이름은 뼈재이다. 예전 이 고개가 험하고 도적도 많아 사람이나 짐승의 뼈가 많았다. 그래서 뼈재라 불렀는데, 이 동네가 경상도라 뼈재의 발음을 빼재로 부른 것이다. 그것이 이 고개가 빼재인 이유다.


그런데 뼈재가 사투리 탓에 빼재가 되었는데, 누군가 한자로 고급스레 부른다고 이를 '빼어날 秀'자로 한역한 것이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수령(秀嶺)'이란 터무니 없는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시험시간에 조각가 '로뎅'이라고 쓴 답을, 한 놈이 '오뎅'으로 잘못 보고 쓰자, 또 다른 놈이 조금 달리 쓴다고 '덴뿌라' 라고 적었다는 이야기와 같은 경우이다.

 

 

# 빼재 쉼터의 정자. 이곳에서 야영하는 재미도 좋겠다.

 

 

# 고개 바로 아래에 신풍령 휴게소가 내려다보인다. 이 휴게소 때문에 빼재는 다시 '신풍령'이란 이름도 얻었다. 역시나 터무니 없는 지명 왜곡이다. 빼재의 이름 왜곡이 점점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다. 나중에는 또 어떤 이름이 탄생할지 알 수 없다.

 

 

# 빼재 쉼터에 주차한 후 장비 챙겨 출발했다.(08:50)  대간 들머리 좌측에는 낙엽송 군락이 있다.

 

 

# 이번 구간의 첫 포스트는 갈미봉이다. 그 봉우리 오름에는 애기나리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애기나리는 백합과의 식물로 식용으로 쓰며 자양 강장 효과가 있다.




# 한차례 밀어 올리면 1039.3봉에 이른다. 정상엔 삼각점과 안내판이 있다.

 

 

# 1039.3봉에서 바라 본 투구봉. 대간길은 아니다. 대봉에서 구천동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이다.

 

 

# 헬기장. 이곳은 한두 달 뒤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곳이라 한다.

 

 

# 지금은 쥐오줌풀이 곳곳에 피어 있다. 마타리과이다. 마타리는 흰색인데 이 놈은 예쁜 보라색이다. 히스테리나 노이로제의 약제로 쓰인다. 현대인에게 딱 알맞은 약효를 가졌다. 쥐오줌이란 특이한 이름은 뿌리에서 쥐오줌냄새같은 강한 냄새가 나서 붙은 이름이다. 쥐오줌냄새 모르는 사람이 많을텐데... 어릴 때 시골집 천장엔 항상 쥐오줌 얼룩이 있었다. 밤이면 우르르 몰려 다니거나 싸우는 소리도 들렸다.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 갈미봉 가는 길은 한바탕 힘들게 차고 올라 가야 한다.

 

 

# 그래도 숲그늘이 짙어 무덥지 않아 오르기는 쉬운 편이다.

 

 

# 한차례 거칠게 밀어올려 갈미봉 정상에 도착했다.(10:25)

 

 

# 빼재에서 2.6km 거리이다. 1시간35분 걸렸다. 

 

 

 

# 이정목 꼭대기에 누군가 볼품 없다고 불평을 적어 놓았다.

 

 

# 갈미봉 구간의 숲속은 그늘사초 군락으로 저 푸른 초원이다. 

 

 

# 정상을 조금 지나면 가야 할 대간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 멀리 보이는 지봉.

 

 

# 줌인 해보니 누군가 정상에 서 있다.

 

 

#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도 보인다.

 

 

# 한차례 아래로 내렸다 올리면 대봉에 도착한다.(11:00). 이곳 이정목에도 빼재를 신풍령이라 적어두었다.

 

 

# 대봉 정상은 밋밋한 편이다.

 

                

# 대봉에선 월음령까지는 계속 내리막이다. 급경사 내리막이란 곧 다가 올 급경사 오르막을 예고하는 것이다.

 

 

# 월음령(月陰嶺). 우리말로 달음재라고도 한다. (11:34). 인간 세상에서 올려다 보면 달이 대봉과 지봉의 안부인 이곳에 걸려 있어 월음령이란 이름이 붙었나 보다. 고향 진주에도 U자 형태의 달음산이란 산이 있다. 신풍령이란 이름은 그만하여야 한다.

 

 

1,263m인 대봉에서 월음령까지 가파른 내리막을 달려 내려 온 대간길은 다시 1302.2m인 지봉(池峰)을 향해 가파르게 차고 올라간다. 이 구간은 숲이 없어 뙤약볕에 그냥 노출되어 너무나 힘이 든다.


헐떡헐떡 숨가쁘게 지봉을 올라간다. 이 봉우리를 못봉이라 이름 지은 걸 보면 뭔가 연못과 관련된 전설이 있을 것이라 예상을 해 보지만 이런 산꼭대기에 연못이라니...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못봉에는 옛날에 연못이 있어서 흰구름이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핀 연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는 전설이 있었단다. 덕유 주봉쪽에 있는 백련사는 이 흰 백[白]자와 연꽃 연[蓮]자를 따서 세운 절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 지봉(池峰) 정상(12:30). 빼재에서 3시간 40분 걸렸다. 정상석엔 못봉이라 표시되어 있다.

 

 

# 지봉에서 바라본 가야 할 대간길. 멀리 백암봉이 보인다.

 

 

# 덕유의 여러 봉우리들.

 

 

# 전망대에서 돌아본 지봉. 지봉은 정상이 노출되어 있다. 그곳에 까만 이정목이 서 있어 멀리서도 정상을 구별할 수 있다.

 

 

# 향적봉과 무주리조트의 스키 슬로프를 땡겨 본다.

 

 

# 족도리풀. 새색시의 족도리를 닮아 이름 지워졌다. 작고 여린 풀인데 독성이 강하다. 잘 법제해서 한방에서는 진해, 진통, 이뇨 등의 약재로 사용한다.

 

 

# 벌깨덩굴. 꿀풀과이다. 잎은 작은 깻잎 모양인데 냄새도, 비슷하다. 꽃잎 끝에 혀를 쏙 내밀고 있는 모양이 재미있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 고풍스런 이정목이 있는 지봉 안부에 도착했다(13:45). 이곳에서 송계사와 오수자굴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 다시 30여 분 더 걸어 횡경재에 도착했다(14:10). 여기서부터 귀봉까지 다시 한차례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 고개의 높이 만도 1,350m나 된다. 단일 산행하는 분이나 나물 캐는 분들을 여기서 조우했다.

 

 

                       

#  귀봉 정상부(14:40). 마눌이 여기서 뱀을 봤다는데, 모르고 지나쳤다. 뱀 너무 싫어!!!

  

       

# 향적봉 가는 길의 중봉. 둘다 대간길은 아니다. 덕유 종주를 하자면 설천봉과 향적봉 지나 저곳 중봉을 거쳐야 한다.

 

 

       

# 백암봉(왼쪽)과 중봉(오른쪽).

 

 

       

# 오른쪽 백암봉에서 동엽령으로 이어진 대간 마루금.

 

 

       

# 백암봉.

 

 

       

# 백암봉 앞 무명봉.

 

 

       

# 지나온 대간길.

 

 

       

# 백암봉에 도착했다. (16:00). 빼재에서 7시간 10분 걸렸다. 안내판엔 송계사 삼거리라고 표시되어있다.

 

        

# 해발 1,490m 다.

 

 

       

# 이곳에서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으로 갈라진다. 향적봉은 대간길에서 벗어나 있다. 중봉과 향적봉이 겹쳐 있다.

 

 

       

# 중봉의 사면은 수목이 없는 민둥산이다.

 

 

                     

# 중봉으로 향하는 등로. 길고 완만한 길이다.

 

 

       

# 중봉 방향의 암봉.

 

  

        

# 동엽령, 무룡산, 남덕유로 향하는 대간길이 길게 누워있다.

 

 

                     

# 백암봉에서부터 동엽령까지는 비교적 순탄한 길이다.

 

 

                     

# 허위허위!!!

 

 

                     

# 솔방솔방!!!

 

 

                     

# 오르내림 약한 그 길을 구름에 달 가듯 편안하게 진행하였다.

 

 

                     

# 칠연삼거리前 사자를 닮은 암봉.

 

 

                     

# 잡목숲으로 난 대간길.

 

 

       

# 칠연삼거리 전 전망대. 멋진 전망에 가슴이 툭 트인다.

 

 

                       

# 돌아본 백암봉 가는 길.



# 칠연삼거리. 하산길의 등로는 폐쇄되어 있다. 칠연삼거리, 동엽령, 안성매표소는 각각 직각삼각형의 한 점이어서 이곳에서 하산을 하면 안성매표소까지 직각삼각형의 빗변인 지름길로 내려 갈 수 있다. 지난주 동엽령에서 고생한 것이 기억나 그냥 내려 가버릴까 잠시 고민했다. 보는 이도 비난하는 이도 없는데... 그러나 누가 시켜서 시작한 일이 아니니 그 누구와 상관없이 자기 통제의 나사를 바짝 죄고 출발했다.

             

 

       

# 칠연삼거리 표지석은 수풀 속에 버려져 있다.

 

 

       

#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동엽령에 도착.(17:00). 공교롭게도 지난주와 동일한 시각에 도착했다. 지난주에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비바람과 광풍이 몰아쳤던 동엽령에는 오늘은 고요한 적막 만이 흐른다. 빼재에서 8시간 10분 걸렸다.

 

 

                     

# 거창군 병곡리 방향 하산길.

 

 

                     

# 반대쪽 칠연계곡 안성매표소까지는 2시간을 걸어 내려 가야 한다.

 

 

                        

# 무릎에 부담을 주는 계단길이 길게 이어진다.

 

 

       

# 칠연계곡의 참꽃마리.

 

 

                      

# 칠연계곡은 계곡물이 정말 좋다.

 

 

                     

# 계곡물에 손도 씻고 등산화 벗고 발도 담궜다. 물이 하도 차가워 발을 담궈 버틸 수 있는 최대시간이 5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내 발이여!!!

 

 

                      

# 피톤치트 가득한 숲속은 상쾌하고 서늘하다. 

 

 

        

# 절경을 자랑하는 칠연계곡. 계곡이 너무나 아름답다.

 

 

                      

# 붐비지만 않는다면 여름휴가에 그만이다.

 

 

                     

#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는 문덕소.

 

 

                     

# 물소리 만으로도 삶의 고뇌가 사라진다.

 

 

         

# 수고했소!

 

 

안성매표소에 19:20에 도착했다. 총 10시간 30분 걸렸다. 지난주에 만났던 안성택시 불러 빼재로 다시 이동했다. 지난 주는 물에 빠진 생쥐꼴이었는데, 이번 주는 지독한 땀냄새로 기사님을 괴롭혔다. 택시비 30,000원.

빼재에 도착하니 20:00. 빼재에서 차량 회수하여 대진, 경부, 영동고속도로 거쳐 산본으로 복귀하니 23:30분. 일요일인데도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쉽게 돌아 올 수 있었다.

동엽령은 광폭한 비바람 속에 한 번, 고요한 뙤약볕 속에 또 한 번 다녀 왔다. 동엽령은 그 이름의 유래는 알 수가 없고 다만 신동엽시인의 이름이 생각나 정감이 간다. 치열한 저항 정신으로 일생을 살다간 신동엽시인의 시 한 편으로 마무리 한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 맑은 그 숨결 /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 울고 간 그의 영혼 /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신동엽 '산에 언덕에'(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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