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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여섯번째(성삼재~여원재)-향기 가득한 5월의 숲!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여섯번째(성삼재~여원재)-향기 가득한 5월의 숲!

강/사/랑 2007. 6. 21. 23:11
[백두대간]그 여섯번째(성삼재~여원재)

 

 
드디어 5월이다. 흔히들 5월을 일러 '계절의 여왕(女王)'이라고 한다. 꽃 피어 만발하고 그 향기 가득하니 그만큼 찬란한 계절이라는 의미일테지만, 돌아보면 나의 5월은 언제나 안타까움이 더 많았던 기억이다.

83년 군생활할 때 나는 경남 남해(南海)의 바닷가 절벽 위 해안초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모든 걸 손으로 써는 수작업(手作業) 시대였다. 군대는 항상 지침(指針)이나 구호(口號) 같은 뭔가를 써 붙이고 챠트로 작성하여 보고하거나 문서 작업 하는 일이 많다.


당시 나는 챠트병이란 보직을 갖고 있었다. 특별히 필체가 좋거나 뛰어난 달필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대학생 수가 많지 않아서 학교 다니다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보직을 받게 되었다. 


어차피 군대 글씨란 네모 반듯한 고딕체가 기본이어서 각 잡히고 질서정연하게 작성하면 되었다. 마냥 무식쟁이이거나 엉터리는 아니어서 기억하기로 내가 만든 결과물이 욕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차트병은 기본적으로 야간 매복근무가 열외(列外)였다. 대신 부대 부착물 재정비 기간 또는 새로운 지침이 내려오거나 챠트 만들 일이 있으면 밤샘 작업하는 일이 예사였다.


일반병들은 전부 야간 매복근무 서고 오전시간 동안 취침하는 오침(午寢)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밤에 내무반에서 홀로 챠트를 그렸다. 그리고 오전에는 남들 오침하는 시간에 상황실에서 상황근무를 섰다. 상황실은 바다가 관측되는 깎아지른 해안 절벽 위에 있다.


5월의 남해 바다는 마치 잔잔한 호수를 연상시킨다. 파도도 없이 조용한 바다는 푸른 색이 아닌 은빛으로 반사되며 고요하기만 하고, 바닷가 높은 절벽에서 자란 풍란(風蘭), 석란(石蘭)이나 각종 야생화들이 풍기는 꽃내음이 온 대기를 가득 채운다.

전우들이 전부 잠들어 부대는 쥐죽은 듯 고요하다. 파도 없고 바다 고요하니 모든 것이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문다. 다만 그 정지된 화면 속으로 꽃향기만 가득하다. 그 찬란하고 광활하며 고요한 자연 앞에 홀로 서 있노라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꽃잎처럼 날아 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그 찬란한 계절을,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홀로 견뎌내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그때 나는 피 끓는 청춘이었고 계절은 찬란한 5월이었다.

아, 다시 5월이다.



향기 가득한 5월의 숲!!


구간 : 백두대간 제 3,4 소구간(성삼재 ~ 여원재)
거리 : 구간거리(20.6 km), 누적거리(103.64 km)
일시 : 2005년 5월 1일. 해의 날.

세부내용 : 성삼재(09:35) ~ 작은 고리봉(10:15) ~ 묘봉치/헬기장(1108m) ~ 만복대(12:25)/점심(13:10) ~ 길주의구간(10:26) ~ 산불 감초소 ~ 정령치(14:15) ~ 휴게소 휴식(14:30) ~ 고리봉(14:55) ~ 고기삼거리(16:14) ~ 노치마을(16:40) ~ 노치샘(16:50) ~ 노송지대(17:00) ~ 수정봉(18:05) ~ 입망치(18:48) ~ 무명봉(19:20) ~ 주지사 갈림길 ~ 여원재(20:15).


총 소요시간 10시간 40분. 만보계 기준 40,000보.


5월 1일. 드디어 국립공원 산불방지 입산금지가 풀리는 날이다. 올해는 봄철 산불이 크게 발생하여 국가적 손실이 막대하다. 식목일에 양양지역에 큰 불이 나더니 며칠 전 또다시 양양지역에 산불이 재발하였다. 도대체 누가 뭔일로 불을 내는 건지?

일요일 새벽 눈을 떠니 새벽 4시. 12시에 잠들면서 시계, 휴대폰 자명종을 2시부터 2시 40분까지 10분 간격으로 네 개나 맞춰 놓고 잤는데 10분 간격으로 차례로 누르고는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피곤하였던 모양이다.


마눌을 흔들어 깨웠더니 도저히 못 일어 나겠다며 오늘은 가지 말자고 한다. 마침 일기예보에서 일요일에 남부지방에 20mm 이상의 큰 비를 예상했다. 오늘 구간도 길고 비도 온다는데 이왕 늦었으니 다음주에 가자고 한다. 침대끝에 앉아 잠시 고민했다. 온몸이 찌뿌드하고 잠도 덜 깼는데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굴뚝 같다.

아, 언제나 유혹은 달콤하다. 그러나 이런 핑계에 지기 시작하면 백두대간 종주는 결국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무슨 일이든지 실패에는 반드시 강하고 당연해 보이는 변명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작은 타협이 결국엔 큰 원칙을 허물어버리는 경우를 주변에서 허다하게 볼 수 있다.


"무조건 간다. 비가 오면 비옷 입고 간다. 늦어서 저물면 헤드랜턴 밝히고 간다. 난 갈테니 알아서 하시오!" 샤워하고 옷 갈아 입으니 마눌도 짐 챙겨 따라 나선다.

경부, 대진, 88 고속도로를 그야말로 고속으로 달려 지리산 IC를 거쳐 인월, 운봉 거쳐 여원재에 도착했다. 지난 3월 처음 백두대간을 시작하면서 산불방지 입산금지 때문에 지리산을 들어가지 못해 이곳 여원재에서부터 백두대간을 시작했었다. 55개 소구간 중 첫 번째 시작에서 출발해 이제 여섯번째 도전이자 7, 8번째 소구간을 여기 여원재에서 끝내야 한다.

여원재에서 미리 예약해둔 남원택시 김성수 기사님 만나 오늘 구간 시작점인 성삼재로 이동했다. 성삼재 가는 길은 여원재에서 운봉으로 가서 60번 지방도를 타고 주촌마을을 거쳐 절양장(九折羊腸)의 737번 지방도를 꼬불꼬불 올라가 정령치를 넘어간다.


정령치를 넘어 한참을 가다 달궁에서 올라오는 861번 지방도와 합류하여 다시 꼬불꼬불 올라가야 비로소 해발 1,070m에 위치한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다. 오는 동안 졸다가 깨다가 기사님과 얘기하다 비몽사몽으로 일관했다. 택시요금은 40,000원

성삼재는 짙은 연무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하늘에서는 곧 비가 쏟아질 듯하여 시작부터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도 스트레칭하고 쉼호흡 크게 한번 하고 출발했다. "자, 한번 가 보입시다!!!"



고리봉/鶻回峰

전북 남원에 있는 고리봉은 지리산을 지척에 두고도 그 맥을 달리하는 바위산이다. 남원시를 벗어나 곡성쪽으로 서진하다 보면 금지들이라 불리는 평원에서 눈앞을 가로막고 솟은 바위산이 바로 고리봉(1304.5m)이다. 고리봉이란 이름은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배를 묶어 놓았던 고리가 어딘가에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주릉에서 정상까지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날카로운 암릉을 이루고 있어 주의해야 하며 정상부는 북면과 동면이 단애를 이루고 있어 아래로 굽어보는 전망이 더욱 멋스럽게 다가 온다.

만복대/萬福臺

전라남도 구례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사이의 도계를 이루는 산. 높이는 1,437m이다. 노고단(老姑壇:1,507m)·반야봉(盤若峰:1,732m)과 함께 지리산 국립공원의 서부를 구성한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만복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산 전체가 부드러운 구릉으로 되어 있어 산 높이에 비해 산세가 부드러운 편이며, 고리봉(1,305m)까지 3km에 이르는 남능선에는 지리산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억새 군락지가 있어 주변의 정경과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다.정상에서는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1,915m) 등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북쪽에 있는 정령치(1,172m)와 남쪽에 있는 성삼재(1,090m) 고개에는 도로가 나 있어, 두 고갯마루를 잇는 당일 산행을 할 수 있다.

정령치/鄭嶺峙

정령치(鄭嶺峙, 山內面 德洞里, 해발 1,172m)의 표기는 정령치(正嶺峙)로 표기하기도 한다. 아직도 옛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에는 넓은 산상 주차장과 휴게실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만복대(1,420m)의 등반기점이기도 하다. 정령치는 서산대사(西山大師)의 《황령암기(黃嶺岩記)》에 의하면, 기원 전 84년(기원전 74년에 이 곳에 성을 쌓았다고 기록됨)에 마한(馬韓)의 왕이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장군(鄭將軍)을 이 곳에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다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황령치가 있는데, 황장군(黃將軍)으로 하여금 이 곳을 지키게 하여 황령치라 하였다. 지금은 그 위치를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덕동리 뒷산 '황나드리'라는 곳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노고단 입구의 성삼치(姓三峙)와 바래봉 남쪽의 팔랑치(八郞峙)도 각각 각성받이 3명의 장군과 8명의 병사들이 지키던 수비성터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백두대간 3, 4소구간 성삼재 ~ 여원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기상청에서는 남부지방에 20mm의 비를 예보했다. 저기압 강하니 지리산엔 짙은 연무 가득하다. 그 연무에 가려 지척거리에 있는 성삼재 휴게소가 뵈질 않는다.

 

 

# 성삼재 구간 들머리. 철제 펜스 두른 곳에 문이 열려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다.

 

 

# 사냥꾼의 그물에 이슬이 맺혔다. 오늘 이 구간에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은 없나보다. 숲 가득 거미줄이 난무하고 있다.

 

 

# 싸구려 똑딱이카메라로 그 미시의 세계를 표현해 내기가 쉽지 않다.

 

 

 

# 연무 가득한 숲길을 걸어 작은 고리봉 우회로에 도착했다. 성삼재에서 2km를 걸어왔고 40분 경과하였다. 만복대까지는 4km가 남았다.

   


# 연무가 온 산을 휘감아 돈다. 바싹 마른 낙엽길을 걷자면 먼지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한데, 간밤에 내린 비로 등로가 촉촉하게 젖어 있어 현재 등로는 쾌적한 상태이다. 다만 나무뿌리나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 연무로 시야가 나빠 지리의 절경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 거시적(巨視的)인 시야가 사라지면 자연히 미시적(微視的) 시야가 대두된다. 성삼재 구간에는 각종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특히 얼레지는 정령치까지 가는 내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늘 구간의 대세이다.

 

 

# 날렵한 몸매의 얼레지. 핑크빛 예쁜 이 작은 야생화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가재무릇'이라고도 한다. 얼레지란 이름은 꽃과 잎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어린 잎을 나물로 먹는데, 비늘줄기에 질 좋은 전분이 들어 있어 지사제나 건위제 등의 액재로도 쓰인다.

 

 

# 돌양지꽃. 이른 봄 노란 꽃을 피우는 이 작고 앙증맞은 꽃은 이래뵈도 장미과이다.   

 

 

# 개별꽃. 석죽과의 이 작고 귀여운 꽃은 위장약의 약재로 쓰이는데 인삼과 비슷한 효능이 있다 하여 '태자삼'이라고도 부른다.

 

 

# 노랑 제비꽃.

 

 

# 현호색. '玄胡索'이라는 한자 이름의 꽃이다. 북방계 식물이라 '오랑캐 호(胡)'가 들어간 이름을 얻었다.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어혈을 제거하며 통증을 없애주는 약효가 있다.

 

 

# 풀솜대. 중앙에서 꽃대가 올라 와 하얀 꽃이 점점이 길게 피어난다. 백합과이다. 이른 봄 어린 순을 데쳐 나물로 먹는데 가난했던 옛시절 구황식품으로 쓰여 '지장보살'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보살이기 때문이다.

 

 

# 쥐오줌풀. 아직 꽃이 피기 전 모습이다. 뿌리에서 쥐오줌 냄새가 나서 얻은 이름이다. 혐오스런 이름과는 달리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약재로 쓴다.

 

 

# 묘봉치 헬기장. 누군가 작은 고리봉 표시를 돌려서 큰고리봉쪽으로 방향전환해 두었다.

 

 

# 연무에 싸인 만복대 앞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 연무는 한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바람이 부리는 조화이다.

 

 

# 지나온 대간 길. 작은 고리봉과 무명봉들.

 

 

 

# 만복대 사면은 수목이 사라진 억새밭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커다란 무덤처럼 보인다. 억새밭 하단은 산죽이 점령하였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고산지대는 산죽밭으로 변해 가는 중이다. 산죽이 우점(優占)하면 다른 식물이 살 수 없어 식물 다양성이 사라지게 된다.

 

 

 

# 달궁 건너 지리의 영봉들이 운무 속에 숨은 채 수줍게 보인다. 지나 온 길과 가야 할 길. 다음 주에 지리 주능 저 길로 걸어야 한다.

  

 

# 만복대는 지리에서 억새가 가장 유명한 곳이다.

 

 

       

# 오늘은 억새보다는 잡목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봉우리 위에 바위 하나 댕그러니 얹혀 있다. 멀리서 보면 여인의 젖가슴을 연상시킨다.

 

 

                      

# 만복대까지는 1km를 더 가야 한다.

 

 

# 만복대로 오르는 등로는 억새밭 사이, 로프로 구획지어져 있다.

 

 

# 억새밭 길게 걸어 만복대 정상(1433.4m)에 도착했다. 성삼재에서 2시간 50분 소요되었다.

 

 

만복대 정상에는 몇몇 산꾼들이 휴식을 하고 있다. 그 중 어떤 이가 내 배낭에 꽂혀 있는 하이드로 워터백이 신기했는지 보여 달라고 한다. 워터백은 배낭 속에 들어 있고 호스만 배낭 고리에 매달아 놓고 수시로 빨아 먹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잠시 환담하였다.

만복대에 오는 동안 연무는 많이 걷히고 햇볕이 간간이 내려 쬐기 시작했다. 비가 안 와서 다행이기는 한데 습도가 높아서인지 무지무지 무덥다. 땀이 얼마나 났는지 쿨맥스 원단으로 된 상의, 팬티, 바지를 입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다. 물에 푹 담근 옷을 걸치고 있는 셈이다. 너무 더워 모자를 벗고 걸었는데, 목덜미가 벌써 빨갛게 익었다.

시간이 조금 이른 것 같긴 하지만 마눌이 너무 힘들어 해서 일단 만복대에서 점심 식사 및 휴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백두대간 종주의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인 막걸리 정상주(頂上酒). 일단 한잔 가득 따라 시원하게 들이킨다. 그런데 오늘 막걸리 맛이 이상하다. 날씨가 너무 더워선지 유통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시큼한 맛이 느껴진다. 억지로 몇 잔 더 마셔 보지만 맛이 없어 반 병만 마시고 포기했다. 막걸리 마시지 않으면 나머지 구간을 힘차게 할 수 없는데...

어느 산악회에서 구간 종주를 하는지 하나씩 하나씩 시차를 두고 만복대로 올라온다. 올라 오면서 공통적으로 여기가 만복대인지 물어 본다. 만복대 정상엔 여기가 만복대임을 알리는 어떤 표지물도 없으니 처음 오는 사람들은 정상을 인지하기 쉽지 않다.

여기 뿐이 아니라 지리산 구간은 모두 백두대간 표지기가 전부 제거되고 없다. 아마도 자연보호 일환으로 공단에서 없앤 모양인데, 우리 같은 초보 대간꾼은 곤혹스럽기 이를 데 없다. 간혹 어떤 표지기는 플라스틱 결속기나 철사가 내장된 것으로 묶어 두어서 정말 나무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표지기는 단순히 헝겊으로 된 것인데 무슨 방해가 된다는 것인지...

국립공원이야 야간산행이 금지이지만 부득이하게 야간산행을 하게 될 경우 길을 찾지 못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
 만복대 아래 길주의 구간. 대간길은 좌측에서 들어와서 오른쪽으로 90도 꺾어진다. 이곳에서 좌측길을 잡으면 산동면으로 내려가게 된다. 하지만 그 길은 비법정 등로이다.

 

 

# 정령치로 가는 길은 중간중간 산죽길을 지나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잔봉 하나 넘고 길게 내려가는 형국이다.

 

 

# 정령치 직전에 봉우리를 하나 만난다. 그 봉우리에는 산불 감시초소가 있다.

 

 

# 산불감시초소에서 본 정령치 휴게소.

 

 

# 정령치 날머리 나무 계단으로 내려갔다. 성삼재에서 5시간 소요되었다.

 

 

# 정령치 유래 안내. 이걸 보기 전에는 정령치가 '精靈峙', 요정이나 정령과 관련이 있고,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싱거운 유래를 갖고 있다. 마한(馬韓)의 정씨(鄭氏) 성을 가진 장군이 주둔한 곳이어서 '정령치(鄭嶺峙)'라 불렀다는 것이다. 장수 이름이 강씨였으면 강령치(姜靈峙)가 되었을 이름이다.

 

 

# 정령치 휴게소에서 오래 쉬었다. 점심을 만복대에서 먹는 바람에 그냥 휴식만 하였다. 한숨 돌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휴게소 뒷편으로 백두대간 들머리가 열려있다.

 

 

# 정령치로 오르는 구절양장의 737번 지방도. 저 길로 자전거 타고 오르면 허벅지 터지겠다.

 

 

# 잠시 오르면 고리봉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고리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 및 돌길이다.

 

 

# 고리봉의 유래가 된 암릉인 듯. 고리봉은 천지개벽 때 온 천하가 물에 감기고 그 산 봉우리만 남았는데, 그때 그 봉우리에 박혀 있는 고리에 배를 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고리봉 정상(1304.5m). 이 능선따라 계속 가면 세걸산(世傑山)과 바래봉으로 이어진다.

 

 

# 고리봉 정상에서는 지리의 주릉이 건너다 보이지만 짙은 연무 탓에 희미하다.

 

 

고리봉 정상에 오르는 동안 만복대에서 만난 산악회 사람들과 동행했다. 이 분들 그 힘들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계속 큰소리로 떠들며 올라간다. 대화 내용은 온통 불륜이나 바람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고리봉에서 대간길은 좌측으로 90도 꺽어져서 계속 힘들고 지루한 하산길로 이어진다. 산악회의 한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길을 잘못 들어 편도 1시간 40분 거리의 세걸산까지 갔다가 돌아왔단다.

고리봉에서 직진하면 세걸산,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지리태극종주 구간이다. 태극종주란 지리산을 끝에서 끝까지 완벽하게 종주하는 것으로 그 모양이 태극문양을 닮았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총거리가 80km, 삼사십 시간이 걸리는 대단한 코스이다. 산행 고수들은 이 구간을 무박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백두대간이 끝나면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

고리봉에서 고기삼거리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급경사가 끝도 없이 이어져서 무지 힘이 드는 구간이다. 특히 나는 지난 겨울 소백의 희방사 깔딱고개를 하산하면서 무릎에 무리가 간 상태라 하산길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1시간 20분을 걸려서야 고기삼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 고기 삼거리에는 조팝나무가 하얀 꽃을 터뜨리고 있다. 

 

 

# 이 산악회는 산 정상 대신 길에서 시산제를 지내는 모양이다. 시산제(始山祭)가 아니라 시로제(始路祭)라 불러야겠다. 막걸리 한 잔 얻어 먹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빠 인사만 하고 떠났다.

 

 

# 선답자들의 종주기에 자주 나오던 정령치 모텔.

 

 

# 이 구간에서 대간길은 산을 버리고 아스팔트 길을 따라 이어진다. 백두대간 중 산길이 아닌 유일한 곳이다. 이곳도 예전에는 산길이었을 것이다. 세월 흘러 개발 되어 숲 사라지고 인간의 밭과 길이 그곳을 차지해서 지금은 산이 아닌 얕트막한 들길을 걸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물이 넘지 않는 길이라 산의 맥(脈)은 끊어지지 않았다. 


길게 걸어 '노치마을'로 향한다. 평지이지만 아스팔트 길은 바닥이 딱딱해 걷기가 더 힘이 든다. 30분 예상 거리를 40분이 돼서야 도착했다. 

 

 

# 가재 마을로 갈라지는 곳. 뒤쪽으로 가야 할 수정봉이 올려다보인다.

 

 

# 대간길은 마을 회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같은 대간꾼에게 유명한 '노치샘'이 나온다. 시각은 16시 10분이다. 출발지인 성삼재에서 6시간 35분 소요되었다.

 

 

# 노치샘에서 물을 보충했다. 누군가의 종주기에 이 물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무심코 샘물 안을 보니 도룡뇽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 가재마을 뒤쪽에는 위풍당당한 수호목 노송(老松) 네 그루가 있다. 수령 250년이 넘은 노거수(老巨樹)인 이 나무들은 노치마을의 당산목(堂山木)이다. 매년 7월 백중에 이곳에서 당산제를 모신다.

 

 

                     

# 마눌은 제 이름이 솔사랑인 걸 증명하듯 수백 년 세월을 이겨낸 소나무에게 애정을 표현한다.

 

 

# 소나무 아래에선 하늘이 안 보인다.

 

 

# 이후 수정봉까지는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고리봉에서 고기삼거리까지 1시간 20분을 걸어 내려와서 40분 동안 아스팔트를 걸은 뒤 다시 1시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봉우리에서 본 수정봉 정상.

 

 

# 지리산 구간과는 달리 이곳 수정봉엔 얼레지보다는 온통 각시붓꽃의 행렬이다. 붓꽃 무리 중에 각시처럼 작고 아담한 녀석이다. 보랏빛 예쁜 이 붓꽃은 뿌리를 약용으로 쓰는데 인후염이나 해열, 혹은 지혈에 좋다.

 

 

# 매화말발도리. 말발도리 무리 중에 꽃이 매화를 닮아 매화말발도리라 부르는 이 넘은 주로 바위가 있는 암반지대에서 잘 자란다.

 

 

# 이곳의 등로는 빨간 솔잎으로 덮혀 있다. 솔갈비 밟으면 발밑에 느껴지는 감촉이 너무나 좋다. 그만큼 걷기 좋은 길이다.

 

 

# 숲속엔 푸른 신록이 가득하다. 솔향기, 꽃향기, 신록의 향기로 너무나 향기롭고 싱그럽다. 오늘 구간은 전체적으로 꽤 힘이 드는 구간이었고 연무 때문에 조망도 없었지만, 이곳 수정봉 숲에서 제대로 된 숲길을 만났다.

 

 

# "꽃잎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한 잎 주워 찻잔에 띄우면 그만이지." 진달래는 꽃잎 지고도 그 향기 버리지 않았다. 숲속에 각종 야생화가 내뿜는 꽃향기 가득하다.

 

        

# 중간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를 만닜다. 기록에는 없지만 고인돌이 분명해 보였다.

 

 

# 수정봉 주위는 무너진 성터가 즐비하다. 이곳도 복성이재 쪽의 아막성터처럼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전장이었던 모양이다. 막성터는 어느 정도 원형도 남아 있고 기록도 있으나, 여기는 성도 무너지고 기록도 사라졌다.

 

 

# 제법 힘들게 올려 수정봉 정상에 도착했다(804.7m, 18:05). 성삼재에서 8시간 30분 소요되었다. 정상엔 아무 표시도 없고 다만 삼각점만 있다.

 

 

"백두대간 구간 마지막 무명봉 증후군" : 백두대간 매 구간 마지막 코스에서 지친 상태의 대간꾼이 느끼는 현상으로 지도에도 없는 무명봉들이 이제 끝이겠지하면 나타나고 또 끝이겠지하면 나타나는 현상. 이 현상이 나타나면 대간꾼은 거의 탈진 상태라고 보면 됨.

이 말은 내가 백두대간 종주하면서 만들어 낸 신조어(新造語)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 백두대간 구간 마지막 무명봉 증후군은 나타난다. 입망치를 지나면서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이름없는 봉우리들로 환장할 듯한 기분이다.


       

# 입망치. 대간은 좌에서 우로 이어진다.

 

 

# 또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수정봉에서 여원재까지는 그냥 하산하는 내리막길이 아니다. 수정봉에서 길게 내린 후 네다섯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여원재가 나온다.

 

 

# 이름없는 봉우리를 오르는 동안 어느새 땅거미가 드리워진다. 수정봉과 지나 온 무명봉들이 뒤에 누워 있다.

 

 

# 묘지가 있는 무명봉(685m, 19:20). 어두워진 산길을 죽을 힘을 다해 올라왔다. 캄캄하게 어두워 플래쉬를 터뜨려야 사진이 나온다.

 

 

입망치를 지나면서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685봉에 오르자 완전히 캄캄해져 버렸다. 여타 대간길은 주로 마루금을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더라도 길을 찾기도 용이하고 시야도 그렇게 어둡지가 않은데, 수정봉에서 여원재에 이르는 이 길은 숲속으로 대간길이 나있어 그야말로 캄캄한 숲속을 진행해야 했다.

고리봉에서 고기삼거리로 하산하면서 쓸리기 시작한 다리 사이가 이제는 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면팬티 대신 비싼 돈 주고 기능성 속옷을 사 입었는데, 땀을 너무 흘렸더니 재봉선 부분이 땀에 오랜 시간 부풀어 올라 오히려 부드러운 살을 공격하는 흉기로 변한 듯하다.

더 늦어지기 전에 이 숲을 벗어 나야 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 옷을 갈아 입거나 재봉선 부분을 칼로 잘라 버릴 생각보다는 어기적 어기적 다리를 벌리고 아픔을 참으며 걷기만 했다.

마눌은 이게 무슨 고생이냐며 처음으로 한마디 한다. "이 사람아 그래도 이런 고생을 해야 나중에 돌아봤을 때 더 재미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다. 멀리 여원재의 차소리는 들리는데 가도 가도 숲은 끝이 나질 않는다. 길 역시 한쪽 방향으로 나 있지 않고 좌측으로 향했다가 다시 우측으로 꺽어지고 다시 좌측으로... 이거 혹시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것은 아닌가? 슬슬 겁도 난다.


그렇다고 마눌 앞에서 겁난다고 할 수도 없고, 플래쉬 불빛에 둥그런 무덤이 불쑥 드러날 때마다 사실은 가슴이 철렁했다. 수정봉에서 사오 킬로미터 정도 어두운 산길을 더 걸은 후에 여원재가 나타난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여원재에 도착했다(20:15). 성삼재에서 10시간 40분이 걸렸다.



                     

# 여원재 날머리의 돌 벅수, 운성대장군(雲城大將軍). 너무 반가워 감격한 마눌.

 

 


여원재 공터엔 우리 차만 외로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지치고 힘들지만 내일 출근을 위해 다시 열심히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눌은 갈비가, 나는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었다. 새벽에 내려온 길을 역순으로 되짚어 집에 도착하니 12시30분이다.

집에서 샤워하려고 옷을 벗었더니 목덜미는 화상에 가깝게 빨갛게 익었고, 다리 사이의 연한 피부는 속옷에 쓸려 양쪽 다 헐어 버렸고 양쪽 새끼 발가락도 똑같이 물집이 잡혀 있다.

아, 너무나 힘든 구간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게 생각한 구간이었는데... 이번 주에 지리산 1박 2일 종주를 해야 하는데, 그 전에 나을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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