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삼남길
- 호남정맥
- 한남정맥
- 낙동정맥
- #삼남대로
- 낙남정맥
- 국사봉
- 한북정맥
- 섬산행
- 100대 명산
- 야영산행
- #견지낚시
- 금북정맥
- 시산제
- 자전거 라이딩
- #100대 명산
- 백두대간
- 자전거여행
- 잣나무숲
- 지리산
- 한남금북정맥
- 100대명산
- 견지낚시
- 금남정맥
- 잣숲
- 국토종주 자전거길
- 백운산
- 야영
- #삼남길
- #야영산행
- Today
- Total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백두대간]여섯번째(성삼재~여원재)-향기 가득한 5월의 숲! 본문
당시 나는 챠트병이란 보직을 갖고 있었다. 특별히 필체가 좋거나 뛰어난 달필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대학생 수가 많지 않아서 학교 다니다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보직을 받게 되었다. 어차피 군대 글씨란 네모 반듯한 고딕체가 기본이어서 각 잡히고 질서정연하게 작성하면 되었다. 마냥 무식쟁이이거나 엉터리는 아니어서 기억하기로 내가 만든 결과물이 욕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차트병은 기본적으로 야간 매복근무가 열외(列外)였다. 대신 부대 부착물 재정비 기간 또는 새로운 지침이 내려오거나 챠트 만들 일이 있으면 밤샘 작업하는 일이 예사였다. 일반병들은 전부 야간 매복근무 서고 오전시간 동안 취침하는 오침(午寢)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밤에 내무반에서 홀로 챠트를 그렸다. 그리고 오전에는 남들 오침하는 시간에 상황실에서 상황근무를 섰다. 상황실은 바다가 관측되는 깎아지른 해안 절벽 위에 있다. 5월의 남해 바다는 마치 잔잔한 호수를 연상시킨다. 파도도 없이 조용한 바다는 푸른 색이 아닌 은빛으로 반사되며 고요하기만 하고, 바닷가 높은 절벽에서 자란 풍란(風蘭), 석란(石蘭)이나 각종 야생화들이 풍기는 꽃내음이 온 대기를 가득 채운다. 향기 가득한 5월의 숲!!
세부내용 : 성삼재(09:35) ~ 작은 고리봉(10:15) ~ 묘봉치/헬기장(1108m) ~ 만복대(12:25)/점심(13:10) ~ 길주의구간(10:26) ~ 산불 감시초소 ~ 정령치(14:15) ~ 휴게소 휴식(14:30) ~ 고리봉(14:55) ~ 고기삼거리(16:14) ~ 노치마을(16:40) ~ 노치샘(16:50) ~ 노송지대(17:00) ~ 수정봉(18:05) ~ 입망치(18:48) ~ 무명봉(19:20) ~ 주지사 갈림길 ~ 여원재(20:15).
고리봉/鶻回峰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백두대간 3, 4소구간 성삼재 ~ 여원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기상청에서는 남부지방에 20mm의 비를 예보했다. 저기압 강하니 지리산엔 짙은 연무 가득하다. 그 연무에 가려 지척거리에 있는 성삼재 휴게소가 뵈질 않는다.
# 성삼재 구간 들머리. 철제 펜스 두른 곳에 문이 열려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분위기다.
# 사냥꾼의 그물에 이슬이 맺혔다. 오늘 이 구간에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은 없나보다. 숲 가득 거미줄이 난무하고 있다.
# 싸구려 똑딱이카메라로 그 미시의 세계를 표현해 내기가 쉽지 않다.
# 연무 가득한 숲길을 걸어 작은 고리봉 우회로에 도착했다. 성삼재에서 2km를 걸어왔고 40분 경과하였다. 만복대까지는 4km가 남았다.
# 연무가 온 산을 휘감아 돈다. 바싹 마른 낙엽길을 걷자면 먼지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한데, 간밤에 내린 비로 등로가 촉촉하게 젖어 있어 현재 등로는 쾌적한 상태이다. 다만 나무뿌리나 바위가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 연무로 시야가 나빠 지리의 절경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 거시적(巨視的)인 시야가 사라지면 자연히 미시적(微視的) 시야가 대두된다. 성삼재 구간에는 각종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특히 얼레지는 정령치까지 가는 내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늘 구간의 대세이다.
# 날렵한 몸매의 얼레지. 핑크빛 예쁜 이 작은 야생화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가재무릇'이라고도 한다. 얼레지란 이름은 꽃과 잎에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어린 잎을 나물로 먹는데, 비늘줄기에 질 좋은 전분이 들어 있어 지사제나 건위제 등의 액재로도 쓰인다.
# 돌양지꽃. 이른 봄 노란 꽃을 피우는 이 작고 앙증맞은 꽃은 이래뵈도 장미과이다.
# 개별꽃. 석죽과의 이 작고 귀여운 꽃은 위장약의 약재로 쓰이는데 인삼과 비슷한 효능이 있다 하여 '태자삼'이라고도 부른다.
# 노랑 제비꽃.
# 현호색. '玄胡索'이라는 한자 이름의 꽃이다. 북방계 식물이라 '오랑캐 호(胡)'가 들어간 이름을 얻었다.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어혈을 제거하며 통증을 없애주는 약효가 있다.
# 풀솜대. 중앙에서 꽃대가 올라 와 하얀 꽃이 점점이 길게 피어난다. 백합과이다. 이른 봄 어린 순을 데쳐 나물로 먹는데 가난했던 옛시절 구황식품으로 쓰여 '지장보살'이란 이름으로도 불렸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보살이기 때문이다.
# 쥐오줌풀. 아직 꽃이 피기 전 모습이다. 뿌리에서 쥐오줌 냄새가 나서 얻은 이름이다. 혐오스런 이름과는 달리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약재로 쓴다.
# 묘봉치 헬기장. 누군가 작은 고리봉 표시를 돌려서 큰고리봉쪽으로 방향전환해 두었다.
# 연무에 싸인 만복대 앞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 연무는 한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바람이 부리는 조화이다.
# 지나온 대간 길. 작은 고리봉과 무명봉들.
# 만복대 사면은 수목이 사라진 억새밭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커다란 무덤처럼 보인다. 억새밭 하단은 산죽이 점령하였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고산지대는 산죽밭으로 변해 가는 중이다. 산죽이 우점(優占)하면 다른 식물이 살 수 없어 식물 다양성이 사라지게 된다.
# 달궁 건너 지리의 영봉들이 운무 속에 숨은 채 수줍게 보인다. 지나 온 길과 가야 할 길. 다음 주에 지리 주능 저 길로 걸어야 한다.
# 만복대는 지리에서 억새가 가장 유명한 곳이다.
# 오늘은 억새보다는 잡목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봉우리 위에 바위 하나 댕그러니 얹혀 있다. 멀리서 보면 여인의 젖가슴을 연상시킨다.
# 만복대까지는 1km를 더 가야 한다.
# 만복대로 오르는 등로는 억새밭 사이, 로프로 구획지어져 있다.
# 억새밭 길게 걸어 만복대 정상(1433.4m)에 도착했다. 성삼재에서 2시간 50분 소요되었다.
만복대 정상에는 몇몇 산꾼들이 휴식을 하고 있다. 그 중 어떤 이가 내 배낭에 꽂혀 있는 하이드로 워터백이 신기했는지 보여 달라고 한다. 워터백은 배낭 속에 들어 있고 호스만 배낭 고리에 매달아 놓고 수시로 빨아 먹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잠시 환담하였다.
# 정령치로 가는 길은 중간중간 산죽길을 지나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잔봉 하나 넘고 길게 내려가는 형국이다.
# 정령치 직전에 봉우리를 하나 만난다. 그 봉우리에는 산불 감시초소가 있다.
# 산불감시초소에서 본 정령치 휴게소.
# 정령치 날머리 나무 계단으로 내려갔다. 성삼재에서 5시간 소요되었다.
# 정령치 유래 안내. 이걸 보기 전에는 정령치가 '精靈峙', 요정이나 정령과 관련이 있고,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싱거운 유래를 갖고 있다. 마한(馬韓)의 정씨(鄭氏) 성을 가진 장군이 주둔한 곳이어서 '정령치(鄭嶺峙)'라 불렀다는 것이다. 장수 이름이 강씨였으면 강령치(姜靈峙)가 되었을 이름이다.
# 정령치 휴게소에서 오래 쉬었다. 점심을 만복대에서 먹는 바람에 그냥 휴식만 하였다. 한숨 돌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휴게소 뒷편으로 백두대간 들머리가 열려있다.
# 정령치로 오르는 구절양장의 737번 지방도. 저 길로 자전거 타고 오르면 허벅지 터지겠다.
# 잠시 오르면 고리봉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고리봉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 및 돌길이다.
# 고리봉의 유래가 된 암릉인 듯. 고리봉은 천지개벽 때 온 천하가 물에 감기고 그 산 봉우리만 남았는데, 그때 그 봉우리에 박혀 있는 고리에 배를 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고리봉 정상(1304.5m). 이 능선따라 계속 가면 세걸산(世傑山)과 바래봉으로 이어진다.
# 고리봉 정상에서는 지리의 주릉이 건너다 보이지만 짙은 연무 탓에 희미하다.
고리봉 정상에 오르는 동안 만복대에서 만난 산악회 사람들과 동행했다. 이 분들 그 힘들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계속 큰소리로 떠들며 올라간다. 대화 내용은 온통 불륜이나 바람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 고기 삼거리에는 조팝나무가 하얀 꽃을 터뜨리고 있다.
# 이 산악회는 산 정상 대신 길에서 시산제를 지내는 모양이다. 시산제(始山祭)가 아니라 시로제(始路祭)라 불러야겠다. 막걸리 한 잔 얻어 먹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빠 인사만 하고 떠났다.
# 선답자들의 종주기에 자주 나오던 정령치 모텔.
# 이 구간에서 대간길은 산을 버리고 아스팔트 길을 따라 이어진다. 백두대간 중 산길이 아닌 유일한 곳이다. 이곳도 예전에는 산길이었을 것이다. 세월 흘러 개발 되어 숲 사라지고 인간의 밭과 길이 그곳을 차지해서 지금은 산이 아닌 얕트막한 들길을 걸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물이 넘지 않는 길이라 산의 맥(脈)은 끊어지지 않았다. 길게 걸어 '노치마을'로 향한다. 평지이지만 아스팔트 길은 바닥이 딱딱해 걷기가 더 힘이 든다. 30분 예상 거리를 40분이 돼서야 도착했다.
# 가재 마을로 갈라지는 곳. 뒤쪽으로 가야 할 수정봉이 올려다보인다.
# 대간길은 마을 회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같은 대간꾼에게 유명한 '노치샘'이 나온다. 시각은 16시 10분이다. 출발지인 성삼재에서 6시간 35분 소요되었다.
# 노치샘에서 물을 보충했다. 누군가의 종주기에 이 물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무심코 샘물 안을 보니 도룡뇽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 가재마을 뒤쪽에는 위풍당당한 수호목 노송(老松) 네 그루가 있다. 수령 250년이 넘은 노거수(老巨樹)인 이 나무들은 노치마을의 당산목(堂山木)이다. 매년 7월 백중에 이곳에서 당산제를 모신다.
# 마눌은 제 이름이 솔사랑인 걸 증명하듯 수백 년 세월을 이겨낸 소나무에게 애정을 표현한다.
# 소나무 아래에선 하늘이 안 보인다.
# 이후 수정봉까지는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고리봉에서 고기삼거리까지 1시간 20분을 걸어 내려와서 40분 동안 아스팔트를 걸은 뒤 다시 1시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봉우리에서 본 수정봉 정상.
# 지리산 구간과는 달리 이곳 수정봉엔 얼레지보다는 온통 각시붓꽃의 행렬이다. 붓꽃 무리 중에 각시처럼 작고 아담한 녀석이다. 보랏빛 예쁜 이 붓꽃은 뿌리를 약용으로 쓰는데 인후염이나 해열, 혹은 지혈에 좋다.
# 매화말발도리. 말발도리 무리 중에 꽃이 매화를 닮아 매화말발도리라 부르는 이 넘은 주로 바위가 있는 암반지대에서 잘 자란다.
# 이곳의 등로는 빨간 솔잎으로 덮혀 있다. 솔갈비 밟으면 발밑에 느껴지는 감촉이 너무나 좋다. 그만큼 걷기 좋은 길이다.
# 숲속엔 푸른 신록이 가득하다. 솔향기, 꽃향기, 신록의 향기로 너무나 향기롭고 싱그럽다. 오늘 구간은 전체적으로 꽤 힘이 드는 구간이었고 연무 때문에 조망도 없었지만, 이곳 수정봉 숲에서 제대로 된 숲길을 만났다.
# "꽃잎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한 잎 주워 찻잔에 띄우면 그만이지." 진달래는 꽃잎 지고도 그 향기 버리지 않았다. 숲속에 각종 야생화가 내뿜는 꽃향기 가득하다.
# 중간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를 만닜다. 기록에는 없지만 고인돌이 분명해 보였다.
# 수정봉 주위는 무너진 성터가 즐비하다. 이곳도 복성이재 쪽의 아막성터처럼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전장이었던 모양이다. 막성터는 어느 정도 원형도 남아 있고 기록도 있으나, 여기는 성도 무너지고 기록도 사라졌다.
# 제법 힘들게 올려 수정봉 정상에 도착했다(804.7m, 18:05). 성삼재에서 8시간 30분 소요되었다. 정상엔 아무 표시도 없고 다만 삼각점만 있다.
"백두대간 구간 마지막 무명봉 증후군" : 백두대간 매 구간 마지막 코스에서 지친 상태의 대간꾼이 느끼는 현상으로 지도에도 없는 무명봉들이 이제 끝이겠지하면 나타나고 또 끝이겠지하면 나타나는 현상. 이 현상이 나타나면 대간꾼은 거의 탈진 상태라고 보면 됨.
# 입망치. 대간은 좌에서 우로 이어진다.
# 또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수정봉에서 여원재까지는 그냥 하산하는 내리막길이 아니다. 수정봉에서 길게 내린 후 네다섯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여원재가 나온다.
# 이름없는 봉우리를 오르는 동안 어느새 땅거미가 드리워진다. 수정봉과 지나 온 무명봉들이 뒤에 누워 있다.
# 묘지가 있는 무명봉(685m, 19:20). 어두워진 산길을 죽을 힘을 다해 올라왔다. 캄캄하게 어두워 플래쉬를 터뜨려야 사진이 나온다.
입망치를 지나면서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685봉에 오르자 완전히 캄캄해져 버렸다. 여타 대간길은 주로 마루금을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더라도 길을 찾기도 용이하고 시야도 그렇게 어둡지가 않은데, 수정봉에서 여원재에 이르는 이 길은 숲속으로 대간길이 나있어 그야말로 캄캄한 숲속을 진행해야 했다.
# 여원재 날머리의 돌 벅수, 운성대장군(雲城大將軍). 너무 반가워 감격한 마눌.
|
'1대간 9정맥 > 백두대간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여덟번째(동엽령~빼재)-다시 찾은 동엽령! (0) | 2007.06.25 |
---|---|
[백두대간]일곱번째(육십령~동엽령)-德裕는 넓고 컷으나 매우 광폭했다! (0) | 2007.06.25 |
[백두대간]다섯번째(고치령~박달령)-소백의 고갯길들! (0) | 2007.06.21 |
[백두대간]네번째(중재~육십령)-멀고 먼 육십령! (0) | 2007.06.21 |
[백두대간]세번째(복성이재~중재)-성리 흥부마을과 봉화산 철쭉 (0) | 2007.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