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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네번째(중재~육십령)-멀고 먼 육십령! 본문
'어느 날 문득!' 시작한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가 이제는 인생에 대한 의무(義務)처럼 되어 버렸다. 그 결과 한 주일 내내 백두대간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바라보는 것, 느끼는 것 모두가 백두대간과 연관되어 의미가 부여된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산길을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부부 둘이서 부창부수(夫唱婦隨)로 마음 합하여 머나먼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이어가는 것도 나름 아름다운 일이고, 일생에 한 번 제대로 투자해 볼 만한 과업(課業)이다.
강/사/랑 부부의 백두대간 네 번째 도전 길은 중재에서 육십령까지 20여 킬로미터 거리이다. '육십령(六十嶺)'은 경남 함양과 전북 장수를 잇는 높디 높은 고갯길이다. 삼국시대부터 요해지(要害地)로 유명하였다. 나제국경(羅濟國境) 즉,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고 국경 방어용의 성터와 봉화대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육십령이란 이름은 굽이굽이 60 굽이로 휘감아 올라야 해서 얻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도적 떼를 피하기 위해 60명 이상이 무리를 지어서 넘어야 안심하는 고개라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육십령고개는 전북과 경남의 도계(道界)이다. 대진 고속도로가 뚫리기 이전 고향 진주에 갈 때면 항상 지나다니던 곳이다. 서울에서 진주까지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경부고속도로 옥천 IC에서 나와 금산, 무주 거쳐 장계에서 육십령을 넘어 함양 서상으로 가곤 했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고속도로가 뚫리고 자동차들이 모두 산 아래 터널로 다니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휴게소 관계자는 경영에 심각한 타격이 왔을 것이다. 우리 삼촌의 기적적 생환(生還) 이야기처럼 이 고개가 생긴 이후 무수히 많은 이야기와 전설이 고갯길 굽이굽이 마다 어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식 듣고 고민을 하면서도 막상 다음으로 미룬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가 않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아직은 내 마음이 아주 단단한 모양이다. 일단 부딪혀 보고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중간에 탈출하기로 작정하고 무조건 출발하기로 했다.
구간 : 백두대간 제 8,9 소구간(중재 ~ 육십령)
4월 8일 금요일, 회사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사람으로 인해 힘든 시간이어서 1차만 하고 대리운전 불러 집으로 왔다. 백두대간 가야 할 일이 걱정되기도 하고. 그래도 소주를 두 병이나 마셨다.
경남 함양군 서상면(西上面)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長溪面)의 경계에 있는 고개. 육십현(六十峴) 또는 육복치(六卜峙)라고도 한다. 높이 734 m. 덕유산(德裕山)과 백운산(白雲山) 사이에 있으며 신라 때부터 요충지로 알려져 왔다. 오늘날 이 고개는 영남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주요교통로로 전주~대구 간 국도가 지난다. 고개가 육십 구비여서 육십령이라고도 하고 옛날에 산적이나 산짐승때문에 육십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고 하여 육십령이라고도 한다. 백운산/白雲山 함양 백운산(1279m)은 옛부터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곳은 지리산과 덕유산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로 이용되면서 빨치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산이다. 암봉이 전혀 없는 肉山이지만 산세가 가파른 오르막이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금원, 기백산, 북쪽으로 덕유산, 서쪽으로 장안, 팔공산, 남쪽으로 지리산이 병풍을 두른 듯이 한눈에 보인다. 영취산/靈鷲山 영취산은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는 산이다. 석가모니의 설법 장소로 유명한데 우리나라에도 불교의 영향으로 영취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많다. 백두대간 상의 영취산(1076m)은 무령고개, 장안산을 거쳐 장수 팔공산을 지나 진안 조약봉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나뉜다. <이곳저곳>
# 중재 ~ 육십령 구간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먼 길 달려 도착한 육십령 휴게소.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고 있었다. 이 휴게소는 저렇게 새단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아래로 고속도로가 뚫렸다.
# 수완 좋은 장계택시 편으로 중기마을에 도착했다. 고개 아래에 새로 지은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이 있다.
중기마을에서 택시를 보내고 장비 꾸려 출발했다. 그런데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비 온다는 소리에 우의며 스패츠며 갈아 입을 옷들을 잔뜩 챙겨 왔다. 그 바람에 배낭이 가히 해외원정단 수준이다. 중기마을에서 중재까지 오르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습도 높은 날이라 중재에 도착하니 이미 땀으로 목욕한 상태다.
# 다음 포스트인 중고개재까지는 40분이 소요되었다. 중고개재는 오가는 이 드문 옛고개이다.
# 중고개재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꾸준한 오르막의 연속이다. 백운산은 이 인근에서 가장 우뚝 높이 솟은 산이다. 항상 흰구름 걸려 있어 백운산이라 불렀다. 정상 직전 가파른 암릉 사면을 치고 오른다. 등로가 젖어 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 백운산 정상 부근 이정표.
# 정상 직전에 묘지 한 기가 있다. 1,000m가 넘는 이 고지에 조상을 모신 이들은 누굴까?
# 백운산 정상으로.
# 상당히 힘들게 백운산 정상에 도착했다. 높이는 1,279m이다. 정상석(頂上石)이 작고 아담하다.
중재에서 백운산까지는 두 시간 거리인데, 이날 나에게는 지옥같은 길이었다. 목요일날 네 시간 취침. 금요일날 소주 두 병 마시고 두 시간 밖에 못 잔 데다가 피곤한 몸에 무거운 베낭을 들쳐 메고 오르려니 거의 죽음이다. # 조망 좋은 백운산 임을 알리는 안내판. 지리의 영봉들이 한 눈에 들어 온다지만 이 날은 백운대신 짙은 연무 때문에 시계는 제로 상태이다.
# 백운산부터 대간길은 키높이의 산죽길이다.
# 지친 몸이 비에 젖은 산죽 사이를 지나가려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 암봉을 치고 오르느라 기진한 마눌.
올해 들어 수리, 관악 등 근교산 여섯 차례, 소백, 태백, 지리, 광교-백운-바라 등 네 차례, 그리고 백두대간 세 구간을 한 주도 쉬지 않고 계속 진행해 오면서 한 가지 신기한 경험을 했다. 평소에 전혀 운동을 하지 못해 오던 몸이라 처음 산행을 시작하면 약 두 시간 정도는 거의 죽음인 듯 힘이 든다.
# 1066봉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중재에서 3시간 50분 소요되었다. 정상이 넓은 공터로 되어 있다. 헬기장 용도인 듯하다.
# 점심 먹고 다시 출발하였다. 길게 걸어 선바위고개에 도착했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무령고개로 이어진다. 탈출하려면 여기에서 해야 한다. 더 가면 대간에서 탈출하기가 어렵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비가 많이 내릴 것 같지도 않고 몸 상태로 보아 속도를 내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육십령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선바위고개에서 영취산까지는 다시 한차례 길게 올려야 한다. 영취산 오르는 돌계단 길.
# 꺼이꺼이 올려 영취산 정상에 도착했다. 높이는 1,076m이다. 5시간 15분 소요되었다.
# 영취산 정상의 이정표와 돌탑. 영취산은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이다. 나중에 정맥 종주할 때 다시 한 번 와야 할 곳이다.
# 백두대간 안내판이 서 있다.이곳에서 금남호남정맥이 갈라진다. 금남호남정맥은 장수, 진안을 거쳐 모래재까지 이어진 짧은 정맥이다. 금남호남은 모래재에서 다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갈라진다.
# 무령고개 쪽의 팔각정. 저곳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도 멋진 일일 듯하다.
# 영취산 정상부에는 기괴한 모습의 고목들이 즐비하다.
# 영취산에서 오래 쉬었다. 충분히 쉰 후 다시 출발했다. 한차례 길게 내리면 덕운봉 안부에 고개가 하나 있다. 작은 이정표가 고개 한 쪽에 서있다. 논개 생가로 이어진 길이다.
# 덕운봉 인근의 암봉. 중재에서 6시간 40분 소요.
# 암봉에는 소나무 한 그루 낙랑장송으로 서 있다. 암봉 바깥으로 고개 내민 그 소나무에 표지기들이 많이 매달려 있다.
# 암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대간길. 지금 이 숲과 하늘에는 짙은 연무가 가득하다. 이 연무가 덮치면 후끈한 열기와 나무 타는 듯한 냄새가 난다. 대지의 냄새를 듬뿍 담고 온 연무인 모양이다.
# 민령으로 뻗어가는 백두대간의 능선. 그곳 민령가는 길에 암릉이 있다.
# 오늘 구간의 주요 포스트인 깃대봉과 육십령은 저 연무 한참 뒤쪽에 있다.
# 지나 온 백두대간 길. 뾰족한 봉우리들이 첩첩하다.
# 암릉가는 길. 이 지역 백두대간은 두 개의 도(道)를 분계(分界)한다. 왼쪽은 전북 장수, 오른쪽은 경남 함양이다.
# 대간길 마사토에 뿌리를 내린 할미꽃. 하얀 털로 뒤덮힌 이 꽃은 작고 앙증맞았다.
# 전방의 봉우리에서 보았던 암봉에 도착했다. 대간길은 암릉을 우회한다.
# 암릉 사면은 온통 산죽밭이다. 산죽은 생명력이 아주 강한 넘이다. 이 넘들이 산록을 뒤덮으면 다른 식물들은 자랄 수가 없다. 지금 백두대간의 여러 산록은 산죽이 점령해 가는 중이다.
# 이곳의 산죽은 키가 아주 크다. 키보다 큰 산죽밭을 지나며 그 산죽에 맞아 연신 아야아야 비명을 질러야 했다.
# 977봉 직전에 고개가 하나 있다.
# 우측은 경남의 옥산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 논개 생가로 이어지는 길이다. 논개는 이 지역 장수 출신이다. 하지만 논개는 진주성 싸움 이후의 의로운 행적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리하여 두 고장에서 그녀를 기린다. 전북 장수는 논개 생가가 있어서 논개를 기리고, 진주는 논개가 의로운 목숨을 버린 곳이라 그녀를 받들어 모신다.
# 습기를 잔뜩 머금은 연무가 길을 계속 막는다. 나무 타는 냄새 숲속에 가득하다.
# 그 숲길 중간에 거대한 암봉으로 솟아 오른 북바위가 있다.
# 위험하다고 말리는 마눌의 만류를 뒤로 하고 북바위에 올라가 봤다. 비스듬한 바위 표면을 잡고 중심을 잡았다. 북바위는 거대한 돌덩어리가 산을 뚫고 올라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이곳까지 중재에서 8시간 소요되었다.
# 북바위는 오늘 구간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전북 장수 쪽으로 광할한 조망을 보여주었다.
# 북바위에 올라 서는 순간 멋진 풍광에 입이 딱 벌어졌다. 북바위 아래 광활한 산하 위에 젖빛 연무들이 대자연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밀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모습은 황홀한 그림판이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 북바위에서 아래로 내리면 억새 우거진 '민령'이 나온다. 민령은 경상도 서상 사람들과 전라도 장계 사람들이 소통하던 유서깊은 옛고개이다. 지금은 이 고개 아래로 고속도로가 터널을 통해 통과하고 있다.
# 누군가 오른쪽 서상 방향 하산길에도 표지기를 붙여 놓아 햇갈리게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그 방향으로 탈출한 모양이다.
# 당연히 대간길은 능선을 따라 직진이다.
이곳 민령부터가 오늘 구간의 가장 최악의 구간이었다. 우리는 발걸음 느리고 휴식 시간 많은 느림보 산꾼이다. 오늘은 처음에 비가 내려 속도가 더욱 느렸다. 그 느린 걸음으로 민령에 도착하니 어느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숲속을 감돌던 연무는 땅거미 지면서 더욱 짙어지더니 가시거리(可視距離)가 오 미터를 넘지 못한다. 그러더니 급기야 비까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민령에서 깃대봉까지는 아직 한 시간을 더 가야 하는 거리이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불안감이 밀려든다. '오리무중(五里霧中)'에 다름없다. 어두운 산길 더듬어 대간을 이어갔다. 힘든 구간이었다. 봉우리가 희미하게 보여 저기가 깃대봉인가 하고 올라가면 다시 봉우리가 나타나고, 그 봉우리를 넘으면 다시 봉우리가 나타났다.
#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났던 깃대봉 정상(1,015m). 9시간 20분 소요.
# 깃대봉 정상의 삼각점 쓰다듬어 힘들게 오른 정상 등정의 기쁨을 대신하였다.
# 깃대봉은 일제시대 측량을 위한 깃대를 꽂았던 봉우리다. 백운산과 봉화산처럼 흔한 이름이다. 측량의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사방 막힌 곳이 없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덕유산 조망이 훌륭하다는데 오늘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 시간이 흐를수록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 마음이 급해 잠시 숨을 돌리고 바로 출발했다. 대간길은 깃대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진다.
# 가파른 하산길을 길게 내려가면 깃대봉 약수터가 나온다. 깃대봉 하산에서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각자 준비한 등불 밝히고 이후의 산길을 대비했다.
# 깃대봉 샘물은 쫄쫄쫄 흐르는 수준이기는 해도 끊김없이 꾸준하였다. 시원한 약수물 한 잔 마셔 목을 축였다. 후레쉬를 터뜨렸어도 삼각대가 없으니 사진이 흔들렸다.
깃대봉에서 육십령까지는 다시 1시간 10분 거리이다. 산길로는 꽤 먼 거리다. 게다가 지친 몸으로 어두운 산길을 헤치고 나가자니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후레쉬를 켰지만 연무때문에 빛이 흩어져서 오히려 더 시야가 나쁘다. 힘든 길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봉우리 너머에 봉우리, 봉우리 너머에 또 봉우리가 이어졌다. 어두운 산길에 놓인 바위는 마치 웅크린 짐승 같이 보였다. 무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모든 것이 힘든 상황이었다. 마눌이 무서워할까봐 계속 이야기를 시키며 걸었다. # 어두운 밤길 힘들게 걸어 도착한 육십령 휴게소. 바람이 아주 차갑고 강하게 불지만, 상의를 벗어 재끼고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식혀야 했다. 그만큼 땀을 많이 흘렸다.
짙은 연무와 오락가락하는 빗속을 총 10시간 50분을 걸어 멀고 먼 육십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힘든 여정이었다. 우리같은 초보 산꾼이 쉽게 만날 수 없는 힘든 경험이었다. 때문에 우리의 백두대간 출발은 지리산 국립공원 위수구역 바깥인 남원의 여원재(女院峙)에서 시작해야만 했다. 그곳 지리산이 끝나는 여원재에서 출발하여 덕유산이 시작되는 육십령까지 산방기간 출입금지와 무관한 구간을 걸었다. 국립공원과 국립공원 사이인 그곳은 백두대간 소구간 중 다섯 개 소구간인데 솔방솔방 걸어 4일 만에 마칠 수가 있었다. 그동안 대간길에 접근하기 위해 집과 남원, 장수 등을 네 번 왕복했다. 차량회수를 위헤 주차해 둔 곳까지 네 번 택시를 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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