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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열한번째(삼도봉~추풍령)-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열한번째(삼도봉~추풍령)-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강/사/랑 2007. 6. 25. 19:13
 [백두대간]그 열한번째(삼도봉~추풍령) 


 

'미드라시(midrash)'는 히브리(Hebrew) 용어(用語)이다. 유대교 성경(聖經) 주석(註釋)의 설교 방식을 말한다. 직역하면 '조사(調査)'또는 '연구(硏究)'로 해석된다. 성서 구절을 실제 상황에 적용시켜 해석해 놓은 유대교의 책이라고 보면 된다. 그  미드라시에 '다윗의 반지'라는 다음과 같은 일화(逸話)가 있다.

다윗(David)은 고대 이스라엘의 2대왕이다. 어릴 때부터 힘이 장사였던 그는 팔레스타인의 거인(巨人)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유대의 최고 전사가 되었다. 이후 사울왕 사후에 왕으로 추대되었다. 최고의 전사였던 그는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교를 확립했다.


어느날 다윗왕이 궁중의 보석 세공인에게 명령했다. "나를 위하여 반지를 하나 만들어라. 거기에는 내가 매우 큰 승리를 거둬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그리고 동시에 그 글귀가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보석 세공인은 왕의 명령대로 곧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오랫동안 걱정을 하였다. 그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다. 솔로몬은 다윗왕의 아들이다. '지혜(智慧)의 솔로몬' 바로 그이다.

"왕의 황홀한 기쁨을 절제해 주고 동시에 그가 낙담했을 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떤 말을 써 넣어야 할까요?"

솔로몬이 대답했다.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이런 말을 써 넣으시오. 왕이 승리의 순간에 이것을 보면 곧 자만심(自慢心)이 가라앉게 될 것이고,
그가 낙심(落心) 중에 그것을 보게 되면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그 글귀를 보고 다윗왕이 만족했음은 물론이다. 너무나 유명한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란 말의 어원이다. 하도 많이 인용되어 진부함 마저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진부(陳腐)하기에 진리이고 진리이기에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와 같다. 우리 삶에서 영원한 것이란 없다. 견딜 수 없는 슬픔, 기쁨, 영광(榮光)과 오욕(汚辱)의 순간도 어차피 지나가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아 가는 한, 생명을 영위해 나가는 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어차피 이것 역시 곧 지나갈 것이니까!

이번 백두대간 삼도봉 구간 산행을 하면서 내도록 이 생각을 했다. 날씨는 무지무지 무덥고, 체력은 딸리고, 무릎도 아프고, 가야
할 대간길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또 하나가 나타나고, 그 봉우리를 넘으면 또 하나가 나타나고...


너무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이 구절만 생각하며 한걸음 또 한걸음 걸었다. 걷다 보면 끝날 때가 있겠지! 배낭 내려 놓고 "음~ 힘든 구간이었어!" 한 마디 할 때가 오겠지. 그러면서 내도록 걸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 역시 곧 지나갔다.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구간 : 백두대간 제 14,15,16 소구간(삼도봉안부 ~ 우두령 ~ 궤방령 ~ 추풍령)
거리 : 구간거리(37.87 km), 누적거리(253.59 km)
일시 : 2005년 6월17일, 18일
세부내용 : 우두령(06:30) ~ 헬기장 ~ 870봉(07:00) ~ 985.3봉(07:38) ~ 전망대(08:04) ~
여정봉(08:20) ~ 바람재(08:55) ~ 황악산(10:18) ~ 전망대 ~ 백운봉(770m) ~ 운수암갈림길(11:25) ~ 운수봉(11:40) ~ 수직굴(12:10) ~ 여시골산(12:28) ~ 목장(13:00)/점심식사 ~ 괘방령(14:05) ~ 418봉 ~ 오리실 갈림길 ~ 가성산 전봉(16:14) ~ 가성산(16:40) ~ 장군봉(606m) ~ 663봉 ~ 공터(07:55) ~ 눌의산(18:15) ~ 헬기장 3개 ~   고속도로터널(19:37) ~ 철길 ~ 추풍령(19:45)/힐튼장에서 1박, 익일 추풍령택시로 물한계곡으로 이동(택시비 35,000원)

물한계곡 출발(05:50) ~ 삼마골재(07:55) ~ 헬기장 ~무명봉/아침식사 ~ 1123.
9봉(08:45) ~ 밀목재(09:14) ~ 1089.3봉 ~ 1111봉(11:26) ~ 1175봉(11:38) ~ 화주봉(1207m,12:38) ~ 1162봉 ~ 815봉(13:55) ~ 우두령(14:05).

총 소요시간 1일차 : 13시간15분. 2일차 : 8시간15분. 합계 : 21시간30분.

만보계 기준 1일차 51,000보, 2일차 28,000보, 합계 79,000보.


이번 구간은 우두령에서 추풍령까지를 1일차, 지난번 삼도봉안부에서 물한계곡으로 탈출하는 바람에 끝내지 못한 삼마골재 ~ 우두령구간을 2일차에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조선일보 刊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우리가 계획한 1일차 구간을 하루에 끝내기 어렵다면서 우두령~괘방령, 괘방령~추풍령으로 소구간을 두 개로 나눴다. 그러나 선답자들의 종주기에는 대부분 이 구간을 하룻만에 끝내고 있으며 그나마 10시간 이내에 내달려 버리기가 예사다.


딸리는 체력에 사진까지 수백장을 찍어가며 진행하는 내 입장에서는 꿈같은 얘기지만, 체력이 어느 정도 받쳐주는 1일차에 긴 구간을 하고 2일차엔 좀 널널한 구간을 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렇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일차에 삼마골재~우두령구간을 하자면 부득이 물한계곡에서 삼마골재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그 대간길 접근시간이 두 시간이나 걸린다는 것이다.

고민고민하다가 1일차에 우두령~추풍령 구간을 마친 후 추풍령 힐튼장 모텔에서 1박을 하고 택시로 물한계곡까지 이동한 후 삼마골재로 올라가 우두령에서 끝내는 것으로 했다. 무엇보다 짐을 줄일 수 있다는데 최고 의의를 두었다. 지난 구간에서 무거운 짐 때문에 너무나 곤욕을 치룬 터라...

6월 17일 새벽 0시. 퇴근해서 샤워하고 짐을 꾸렸다. 텐트 빼고, 침낭 빼고, 침낭커버 빼고, 우의 빼고, 베낭커버도 뺐다. 게다가 음식은 첫날은 휴게소, 김밥, 추풍령 매식, 둘쨋날은 빵과 과일로 때우기로 하고 코펠 빼고, 버너도 뺐다. 빼 놓은 짐들을 보니 너무나 상쾌하다.

그러나 짐을 다 꾸리고 무게를 재어보니 애그머니! 그래도 10kg에 육박한다. 짐 줄인 기념으로 오랜만에 막걸리를 넣고 물도 넉넉히 넣고 둘쨋날에 먹을 빵, 과일 등을 넉넉히 준비하고 갈아 입을 옷도 하나 더 챙겼더니 그놈이 그놈이다.

무언가를 줄이고 들어 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해탈에 이르는 제일 첫걸음이 자기가 가진 걸 모두 버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욕심 많은 이 몸은 아무래도 해탈하기는 틀린 모양이다. 욕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니 몸으로 때워야지.

잠 한 숨도 안자고 산본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 진행해 오면서 최소한 고속도로를 세 개는 갈아 타면서 대간길에 접근했었는데 이번부터는 두 개의 고속도로만 타면 된다. 영동고속도로를 잠시 달린 후 바로 경부고속도로만 타면 되는 것이다. 경남, 전남, 전북과는 이제 이별을 한 관계로 더 이상 대진 고속도로나 88고속도로를 탈 일은 없다.

경부고속도로를 한참 달려 대전터널 지나 그동안 우측으로 대진고속도로로 빠지던 길을 무시하고 곧장 옥천, 영동을 거쳐 황간 IC로 빠져 나온다. 중간에 너무 졸려 휴게소에서 약 한 시간 정도 눈 붙이고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며 시간을 보냈더니 우두령엔 6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직지사/直指寺

직지사는 경북 김천시 대항면의 황악산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불교 1천6백년 역사와 그 세월을 같이 하는 고찰이다.직지사는 신라 눌지왕(訥祗王)2년(418) 아도 화상(阿道和尙)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開創되었다. 그 寺名을 직지(直指)라 함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또 일설에는 절을 창건한 아도 화상이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善山)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였다 하여 直指寺라 이름했다는 傳說도 있다. 또는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추풍령/秋風嶺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秋風嶺面)과 경북 김천시 봉산면(鳳山面)의 경계에 있는 고개. 높이 221 m. 소백과 노령의 분기점으로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며 예로부터 영남지방과  중부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지금도 경부선 철도의 추풍령역이 있고,4번 국도가 통하며 경부고속도로의 중간점으로 추풍령휴게소가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군사적 요충이 되어 의병장 장지현(張智賢)이 의병 2,000명을 이끌고 왜군 2만 명을 맞아 분전 끝에 물리쳤고(1차 전투), 다시 밀려온 4만 명의 왜군에게 패하여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추풍령은 백두대간의 긴 허리부분의 고개이다. 그러나 추풍령은 노래말처럼 그렇게 높은 고개가 아니다. 물론 예전의 고개는 험준하고 높은 고개였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겠지만 지금의 추풍령은 그렇게 험준하지가 않다.

괘방령/掛榜嶺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과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을 잇는 977번 지방도로상의 괘방령은, 지금이야 한가롭지만 한때는 꽤 시끌벅적한 고개였다고 한다. 官路였던 추풍령과 달리 商路로 쓰였는데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모두들 추풍령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 秋風落葉을 연상시키는 추풍령보다는 급제자들의 이름을 거는 '괘방(掛榜)'이라는 이름에 집착했을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현재 지도에는 궤방으로 기재가 되어있다. 아마도 이름을 잘못 표시한 오류라 여겨진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14 ~16 소구간 삼도봉안부 ~ 우두령 ~ 추풍령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우두령은 '질매재'라고도 불린다.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다.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이 말이 한자화하여 '우두령(牛頭嶺)'이라고도 불리는 것인데, 지도에는 두 이름이 별개로 표기되어 있다.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우두령에서 김천쪽으로 아래에 질매재라는 또다른 고개가 있다고 하면서 이 재는 우두령이 맞다고 기록되어 있다. 국토정보원의 지도나 여러 지도에서 우두령과 질매재를 따로 표기하고 있으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두령과 질매재가 같은 고개란 생각이다.

꼬불꼬불 한참을 올라 우두령에 도착하니 이미 대여섯 명의 산객들이 들머리에서 산행을 준비 중이다. 이분들 덕분에 거미줄 걱정만은 없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주차 자리를 한참을 찾다가 매일유업 목장 입구 공터에 위태롭게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했다.


 

# 우두령(720m, 06:30). 그나마 이곳 표지판엔 우두령을 한자로 '牛痘嶺'이라고 기록해 두었다. '머리 頭'가 아닌 '마마 痘'자를 쓴 것이다. 명백한 오기(誤記)이다. 혹시 우두를 통해 마마를 다스렸던 지석영선생과 관련된 일화라도 있다면 모를까...

 

 

# 매일유업 목장 정문 곁 작은 공터에 주차했다.

 

 

# 우두령 정상엔 동물 이동통로인 에코 브릿지 공사가 한창이다. 왼쪽이 추풍령 구간 들머리, 오른쪽이 삼도봉 구간 날머리다.

 

 

# 30분 정도 땀이 한바탕 날 쯤에 870봉에 도착.(07:00).  870봉엔 수풀이 우거져 아무 전망도 볼 수 없다.

 

 

# 이 구간 대간길은 우거진 수풀로 정글이 되어 있다. 주종은 덩굴로 자라는 미역줄나무이다. 얼굴을 감싸고 온몸으로 수풀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 짙은 연무가 순식간에 덮쳐 온다.

 

 

# 985.3봉(07:38).  역시 전망이 아주 나쁘다.

 

 

# 대간길은 언제나 이름없는 무명봉들을 오르내려야 한다.

 

 

# 전망대에 도착(08:04)

 

 

# 비로소 특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뒤쪽에 1030봉이 보인다.

 

 

# 기린초. 고산의 바위틈에서 자란다. 돌나물과이다. 연한 순은 식용으로 쓰인다.

 

 

# 낑낑대며 1030봉에 도착했다.(08:20).  여정봉(旅程峰)이라고 적힌 작은 표지판이 있다.

 

 

# 10여 분 내려가니 간이화장실과 폐초소가 나온다.

 

 

# 대간길은 초소 아래 임도로 이어진다.

 

 

# 그러다 임도를 벗어나 임도옆 절개된 산으로 올라 간다.

 

 

# 곧 다시 임도로 내려와야 한다. 굳이 저 작은 봉우리에 오를 필요 없는 것이다. 임도 아래로 바람재가 보인다.  '바람재'는 그 이름이 너무 예쁘다. 높은 산 가운데 있는 바람골이라 바람이 많이 불어 그런 이름을 얻었나 보다.   헬기장과 임도, 목장이 보인다.

 

 

# 바람재 바람에 실려 짙은 연무가 몰려온다.

 

 

# 바람재의 야생화들. '들떡쑥'이다. 처음 이놈을 발견하고 '솜다리', 즉 '에델바이스'인 줄 알았다. 나중에 자료를 확인하니 들떡쑥이었다. 하지만 이 넘도 솜다리속이기는 하다.

 

 


# 엉겅퀴. 

 

 

# 방가지똥. 방가지는 방아깨비의 사투리다.

 

 

# 씀바귀. 씀바귀는 고들빼기와 구별이 쉽지 않다.

 

 

# 바람재의 목장지대.

 

 

# 시원한 바람이 가득한 바람재.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른다.

 

 

# 바람재에서부터는 계속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 신선봉 갈림길. 이후 운수봉에 이르기까지 직지사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무수히 나온다.

 

 

# 형제봉(09:40). 형제봉에서 영동 방향 아래쪽엔 영화 '집으로'를 촬영한 지통마 마을이 있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마눌이 그 영화를 보고 혼자 엉엉 우는 바람에...

 

 

# 김천쪽 북암저수지인듯.

 

 

 

# 무심히 밟으려다 흠찟 놀라게 한 생물.  지렁이도 아니고, 뱃속 기생충처럼 생겼다. 미기록종이며 선충의 일종이란다.

 

 

# 지나온 대간길. 운무가 김천쪽 사면을 뒤덮었다. 바람이 오른쪽 충북 영동쪽에서 왼쪽 경북 김천쪽으로 불어 와서 운무가 마루금을 넘지 못한다.

 

 

       

# 직지사 갈림길. 좌측으로 내려간다.

 

 

       

# 황악산 비로봉(1111m, 10:18), 우두령에서 3시간 48분 소요.

 

 


'황악산(黃岳山)'은 천년고찰 '직지사'를 품에 안고 있어 유명한 산이다. 황악산의 황자는 靑, 黃, 赤, 白, 黑의 5色 중에서도 중앙색을 상징하는 글자라고 한다. 따라서 예로부터 직지사는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직지사 때문인지 등로도 잘 나 있고 단체 등산객이나 쓰레기를 치우는 공익요원들도 많이 눈에 띈다. 
단체 등산객들, 좀 무례한 사람들이었다.



# 정상 아래 헬기장. 길이 헷갈리는 곳이다.

 

 

# 곧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 갈림길이 연속으로 나온다.

 

 


# 운수암 갈림길. 전부 직지사로 갈라지는 곳이다. 길고 지루한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져 고통스럽다. 40분 예상한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려서야 도착했다

       


# 운수봉(680m, 11:40). 시야는 막혔지만 넓은 공터가 있다. 백운봉은 어딘지도 모르고 지나왔다.

 

 

 긴 내리막에 결국 미끄러진 마눌. 일으켜 세워주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고 원망을 들었다. 투철한 저널리즘의 참정신을 모르시나? 

 

 

       

# 기도 예외없이 쓰레기가...

 

 

       

# 등로가에 입을 벌리고 있는 수직굴(12:10). 한번 빠지면 올라 올 수 없을 것 같다.

 

 

                    

# 몇 개의 무명봉을 지나 여시골산에 도착(12:28). 예전에 여우가 많이 살았나 보다. 여시는 여우의 고어(古語)이자 경상도 방언이다. 여시 -> 여수 -> 여우로 변천했다. 무시 -> 무수 -> 무우도 마찬가지다.

 

 

                        

# 으아리. 뿌리는 이뇨, 진통에 효염이 있다.

 

 

       

# 노루오줌. 노루오줌 냄새가 나서 이름 지워졌다. 야생화의 이름을 짓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놀랍다. 그런데 그 사람들, 노루 오줌냄새와 사람 오줌냄새, 쥐 오줌냄새를 구별할 수는 있었을까?




 


# 산수국. 산수국은 변화하는 꽃색깔이 특징적이다. 흰색으로 피기 시작해서 청색, 다시 붉은 기운이 나면서 자색으로 변한다. 토양에 따라 알카리 성분이 강하면 붉은색이 진해지고 산성이 강하면 남색이 짙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꽃말도 '변하기 쉬운 마음'이다.

 

 

# 사스레나무.

 


 

며칠 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청포도', '광야'의 시인 이육사(李陸史·1904~1944)에게 오장환(吳章煥) 이용악(李庸岳) 김기림(金起林), 세 시인이 띄웠던 친필 편지가 발견됐다. 그동안에 발간된 이육사의 전집이나 평전에도 수록돼 있지 않은 자료다. 오장환의 편지는 67년 전인 1938년 4월 18일 일본 일광오지(日光奧地) 탕원온천(湯元溫泉)에서 보낸 것.
백화(白樺) 껍질로 된 희귀한 엽서를 자랑하고 싶어 띄운 듯한 이 편지는 딱 세 줄로 된 짧은 문장이다. "백화 껍질이요. 이곳은 나무가 많소. 동무들에게 소식 전해주시오."

오장환이 육사에게 보낸 엽서의 재질인 백화껍질이 바로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는 껍질이 종잇장처럼 얇게 떨어진다. 추운지방에서 나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옛날 독립운동가들의 노래에 "잘있거라 자작나무야, 예니세 강아!" 이런 구절이 있다는데... 위 사진의 사스레나무가 자작나무의 일종이다. 대간길에 종종 마주치는 녀석이다.



# 이후 괘방령까지는 길고 긴 내리막이다.

 

 

# 무릎보호대를 차고 엉금엉금 내려 온다.

 

 

# 목장으로 내려가는 넓은 임도.

 

 

# 목장건물, 괘방령 도로, 오리실마을과 최고 난코스 가성산이 보인다.

 

 

# 목장가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점심을 먹었다.  풀숲엔 메뚜기의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한창이다.

 

 

# 털중나리의 요염한 자태.

 

 

       

# 괘방령(掛榜嶺)에 도착했다(14:05).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경북 김천시 대항면을 잇는 977번 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괘방령을 지났으니 방을 내걸 좋은 일이 있을라나?

  

 

# 도로를 건너 가성산쪽 들머리로 들어갔다.

 

 

# 418봉 지나 만난 오리실 갈림길. 엄청난 고난의 강행군의 시작점이다.

 


 

가성산 오르는 길은 너무너무 힘이 드는 길이다. 그동안 1,000m가 넘는 산을 연속으로 몇 개씩 넘기도 하고 짙은 연무 속에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길을 끝없이 올라 보기도 했지만, 이렇게 힘이 드는 산은 또 처음이다.

가성산은 고작 710m에 불과한 산이지만, 그 구조가 사람이 엄청 힘들게 되어 있다. 뙤약볕 속에 땀을 뻘뻘 올리며 올라가다 보면 정상인 듯한 봉우리가 나온다. 그 희망으로 열심히 차고 올라 가 보면 그곳은 정상도 아니거니와 봉우리도 아니다. 그냥 가파른 경사면의 한 끝일 뿐이다.


대간길은 다시 수평이나 아래로 약간 이어지다가 다시 가파른 경사길로 이어진다. 끙끙 올라가면 또 정상이 보인다. 그러나 그곳 역시 아까처럼 경사면의 끝이고... 이렇게 힘든 사람에게 희망을 줬다가 여지없이 그 꿈을 깨버리는 반복이 10여 차례나 계속 된다.

차라리 정상 같은 것이 안보이거나 아무리 높게 보이더라도 그냥 길게 이어져만 있다면 그냥 열심히 걸어 올라만 가면 되겠는데, 이건 정상인 듯하다가 아니고 정상인 듯하다가 아닌 것이 10여 차례나 반복되니 환장할 노릇이다. 가성산이 혹시 '거짓 假', '소리 聲'. 즉 거짓말 산이나 아닌지? 혹시 니 같은 얼치기 산꾼의 군기를 잡기 위해 백두대간의 산신령들이 일부러 안배를 해 놓은 것은 아닌지?


계속 걸으면서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 죽을 힘을 다해 도착한 가성산 전위봉.(16:14) . 
이곳 역시 사람을 속이는 대표적인 봉우리다. 이젠 정말 가성산 정상이겠지 하고 도착해 보니 아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나중엔 막 화가 났다. 

 

 

#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가성산(710m, 16:40).  괘방령에서 2시간 35분이나 걸렸다. 가성산 정상은 시멘트 헬기장이고 정상석은 박살이 나 쓰러져 있다. 똑바로 세워보지만 반 이상이 날라가 버려 알아볼 수 없다.

 

 

# 가성산 정상에서는 경부고속도로가 조망된다.

 

 

가성산 하산길은 힘들게 올라온 만큼 가파른 내리막이다. 동계엔 상당히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한참을 치고 올라 600m인 장군봉을 지나고 다시 계속 올라 663봉에 오른다. 너무 지쳐서 사진 찍을 생각도 없고 계속 진행하니 헬기장인 듯한 공터에 도착한다(17:55)


다시 20여분을 더 올라 가서야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눌의산에 도착했다. 눌의산 올라 가면서 너무 힘이 들어 아무 생각도 안들고, 한걸음 한걸음 숫자를 세면서 올라 갔다. 1, 2, 3, 4, 5............ 810을 세고 나서야 눌의산 정상이다.

       

# 눌의산 정상(18:15). 정상석은 없고 삼각점만 있다. 기진맥진한 마눌.

 

 

# 지나온 봉우리들. 어느새 나뭇잎에 석양이 깃든다. 눌의산 정상은 사방으로 전망이 좋다.

 

 

# 누군가 해안(海眼)스님의 선시(禪詩)를 매달아 놓았다.

산을 산이라고 해도 산은 산이 아니고,/ 산을 산이 아니라고 해도 산은 산이다./ 산을 산이라 하고 산이 아닌 것을 산이라 해도,/ 산에 들어가니 산은 하나도 없더라.

 

 

# 맛있게 마셨으면 가져 가야지, 어느 못된 인간들이 쐬주병을 내팽개치고 갔다.

 

 

눌의산 하산길은 다시 아주 급경사의 내리막이다. 경사가 너무나 급해 한발 한발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스틱에 의지하고, 나뭇가지에 매달리면서 조심조심 내려가야 한다. 이후 추풍령까지는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긴 내리막의 연속이다.



# 눌의산의 가파른 하산길을 한발 한발 어렵게 하산하다가 땅 위로 머리만 쏙 내밀고 있는 족제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나무뿌리였다. 이놈이다.

 

 

# 어느새 석양이 물들기 시작한다.

 

 

# 넓은 초지에 잘 손질된 가족묘를 만났다. 그 아래엔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어 있고...

 

 

 


# 임도를 한참 걸어 내려 경부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났다. 남원의 사치재에서 88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난 후 이곳에서 다시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난다.

 


 

굴다리를 지나자 넓은 포도밭이 펼쳐진다. 좌측으로 시멘트길을 한 참 걸으니 경부선 철길이 나타난다. 철길 건널목을 지나면 드디어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이다.

19시 45분. 우두령에서 6시 30분에 출발했으니 13시간 15분이나 걸렸다. 남들은 10시간 이내에 내달린다는데... 체력도 문제지만 사진 찍는 시간이 만만치 않게 걸린 탓이다.

추풍령 마을에서 제일 먼저 아이스 바를 하나씩 사 먹었다. 구멍가게 앞 평상에서 쉬고 있는데, 추풍령 기상대에 근무하신다는 분이 대간하시냐고 물으시더니 대단하고 부럽다면서 이것저것 계속 말을 건낸다. 보니 한잔 거나하게 하셨는데 웃음으로 대답해 드렸다.

저녁은 경상도 땅으로 넘어가서 추풍령할매 갈비집에서 고추장 양념 듬뿍 발린 돼지갈비를 먹었다. 윗지방 사람들에겐 좀 안 맞겠다 싶었지만 배고픈 우리에겐 꿀맛이었다. 이 지방 소주인 참소주도 한병 시켜 맛나게 먹었다.

경상도 땅에서 저녁 먹고 충청도 땅으로 넘어 와서 힐튼장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래봐야 고개 하나 왔다 갔다 하는 것이지만... 허름하고 샤워 물줄기도 쫄쫄 나왔지만 침대에 몸을 눕히니 이런 호사가 지금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주인에게 부탁해서 워터백에 물도 가득 채우고 내일 아침에 물한계곡으로 넘어 갈 택시도 예약해 두었다. TV 성인채널에서는 의상비 전혀 들지 않는 영화가 나오고 있지만, 내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므로 무시하고 꿈나라로 들어 갔다.

 


 

6월 18일 새벽 4시. 알람소리에 졸린 눈 비비고 일어나 간단한 요기하고 샤워하고 짐을 챙겼다. 성질 급한 추풍령 택시기사님은 5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10분 전에 벌써 밑에서 빵빵 거린다.


택시 타고 황간까지 올라 가서 어제 지나갔던 길을 다시 달리다가 상촌마을에서 우두령으로 빠지는 길을 지나쳐서 물한계곡으로 계속 올라갔다. 추풍령에서 물한계곡까지는 상당한 거리이다. 택시비도 35,000원이나 나왔다.

물한계곡 입구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 풀고 짐 챙겨 둘러메고 출발했다.(05:50). 대간길에 접속하기까지 두 시간이나 올라 가야 한다. 은근히 약오르는 일이다. 지난 번에 무리해서라도 우두령까지 끝냈어야 한다고 혼자 투덜거렸다. 나중에 구간 끝내고 나니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서도...


       

# 민주지산 갈림길. 삼도봉 안부는 왼쪽, 민주지산은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 새벽 숲속엔 새소리로 가득하다. 

 

 

       

# 너무나 졸린다면서 주저 앉은 마눌.

 

 

# 표지기를 자세히 보면 누군가 똥개라고 써서 묶어 놓았다.

 

 

# 삼마골재에서 내려와 처음 만나게 되는 계곡. 삼도봉에서 내쳐 달리 때 이곳에서 식수 보충이 가능하다.

 

 

# 삼마골재(07:55). 드디어 대간길에 복귀. 물한계곡에서 2시간 5분 걸렸다. 지난 주에 여기서 물한계곡으로 탈출했었다.

 

 

                     

# 삼도봉, 밀목령, 해인리, 물한계곡으로 갈라진다.

 

 

# 삼마골재에서 작은 무명봉을 하나 지나자 바로 헬기장이 나오고 다시 무성한 정글지대를 헤치고 한참 올라가니 1123.9봉에 도착했다.(08:45). 1123.9봉 앞엔 우회로가 있다는데 수풀이 너무성하여 보이질 않는다. 

 

 

# 1123.9봉부터는 다시 가파른 잡목 숲을 미끌어져 내려 갔다. 가파른 내리막이 계속 길게 이어진다는 것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니다. 내리막의 마지막에 밀목재가 있다.(09:14)

 

 


오늘 구간은 삼마골재를 조금 벗어나서부터 1111봉에 이르기까지 약 두 시간 동안 또 다른 악전고투가 기다리고 있다. 수풀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 정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일부 구간은 아예 길 자체가 보이지를 않는다. 손으로 일일이 헤치고 나아 가자니 너무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모자를 꾹 눌러 쓰고 스틱 든 손을 앞으로 쭉 뻗어 두손을 모아 수영하는 폼을 잡고서는 그냥 온 몸으로 정글을 밀어 붙여버렸다. 나뭇가지들이 얼굴이며 목이며 마구 내 갈기는 통에 아야~아야~ 소리를 수백 번도 더 질러야 했다. 한참 가다 보면 모자가 벗겨져서 돌아 와야 하기 일쑤다. 무성한 수풀 속을 헤치고 가다 보니 목으로 각종 벌레들이 들어가 기어 다니기도 하고 물기도 하고 난리이다.

나중에 집에서 샤워하다가 보니 양쪽 목덜미에 벌레 물린 자국이 10여 곳이 넘는데, 희한하게 물린 곳 마다 작은 고름이 맺혀 있다. 도대체 무슨 벌레인지... 백두대간 참 여러가지로 만만치 않다.


                     

# 무성히 자란 미역줄나무 수풀에 등로가 사라져 버린 대간길.

 

 

       

# 힘들게 수풀 속을 헤치고 나아 가다가 산딸기 밭을 만났다. 새콤하고 달콤한 산딸기가 지천으로 열려 있다. 10여 분 정신없이 맛나게 따 먹어도 아직 많다. 마음 먹고 먹으면 식사 대용도 가능할 정도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위해 조금 먹다가 남겨 두고 왔다.


 


# 둥글레. 참 품위있게 생긴 놈이다. 뒷면을 봤더니 잎 한장 마다 꽃봉우리가 하나씩 달렸다.

 

 

# 범꼬리. 정신분열증에 뿌리를 달여 먹으면 효과가 있다.

 

 

# 등로 주위로 움푹 파인 곳이 여럿 나타난다.

 

 

        #

 폐광지역이란 표지가 있다.  땅을 굴러보니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1111봉 가는 길 안부에서 산나물을 채취하는 세 사람을 만났다. 전문적으로 산나물을 캐시는지 두 사람은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앞치마를 둘렀고 한 사람은 산나물이 가득 든 초대형 배낭을 메고 있었다.


부항면 쪽 산자락에 사신다는데, 세 사람 모두 다 묘하게 서로 닮은 얼굴이다. 표정이 참으로 온화하고 맑아 보였다. 잠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헤어졌는데 삼지구엽초를 한 움큼 쥐어 주었다. 이것 먹고 정력이 너무 세어지면 어떡하지?


# 삼지구엽초. 음양곽(淫羊藿)이라고 한다. 야생의 숫양이 이 풀을 먹고 하루에 100회씩 암양과 사랑을 나눈데 연유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이구야~~


 


# 오르막을 한참 올라 도착한 1111봉(11:26). 전망 좋지 않음.

 

 

 

# 1111봉을 지나 다시 10여 분 더 오르자 사방이 툭 트인 1175봉 정상에  도착(11:38). 전망이 아주 좋고 시원하다. 

 



# 바로 지나온 1111봉과 저 멀리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이 조망된다.

 

 

# 거창 부항면 방향. 중간의 빨간집이 산나물캐던 분들의 집인 듯하다.

 

 

# 화주봉. 저 능선을 따라 올라 가야 한다.

 

 

# 화주봉에서 오른쪽 마루금을 타고 가면 우두령이다.

 

 

# 1175봉 하산길은 아주 위험한 암릉구간이다. 밧줄을 붙잡고 바위에 매달려 내려 와야 한다.

 

 

아주 위험하고 위태로운 암릉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니 저 아래 안부까지 계속 내리막이 이어진다. 이렇게 계속 내려 가니 다시 계속 올라 가야 할 것이다.

1175봉 내리막에서 단체 산객 20여 명을 만났다. 아마도 안내 산악회인 듯하다. 우두령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계속 인사를 주고 받으며 지나쳐서 화주봉 오름을 힘들게 올라갔다. 그래도 화주봉만 지나면 오늘 구간도 끝난다고 생각하니 견딜만 하다. 희망이란 이래야 되는 것이다.


       

# 땀 꽤나 쏟아 내고 나서야 도착한 화주봉 정상(1207m, 12:38). 석교산이라고도 한다. 정상엔 아무 표지도 없고 다만 어느 산악회에서 종이에 화주봉이라고 인쇄하여 돌로 눌러 놓았다.

  

 

# 화주봉은 전망이 아주 좋습니다.  지나 온 1175봉과 1111봉 그리고 뒷쪽의 석기봉과 민주지산의 능선.

 

 

# 가야 할 우두령 방향의 1162봉과 815봉.

 

 

# 궁궁이. 미나리과이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부인병에 쓰인다.

 

 

#  천남성. 꽃이 특이하게 생겼다. 통꽃으로 식충식물처럼 생긴 이 넘은 독성이 강해 사약의 재료로 쓰였다. 하지만 독은 원래 잘 다루면 약이 되기도 한다. 잘 법제해서 중풍이나 반신불수의 약으로 쓴다고 한다.

 

 

# 오늘 구간 역시 마지막은 끝날 듯 끝날 듯 길게 이어진다.

 

 

# 저 봉우리을 넘어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대간은 항상 마지막이 더 힘들다.

 

 

# 815봉 삼각점.

 

 

# 그러나 걷다 보면 언제나 끝은 있게 마련이다. 드디어 우두령에 도착(14:05). 너무 지쳐 한숨을 몰아쉬는 마눌.

 

 


드디어 이틀간의 여정이 끝났다. 짐 무게를 줄이고자 우두령에서 시작해서 추풍령에서 모텔 1박, 택시로 빙 돌아서 물한계곡에서 다시 출발하여 우두령에서 끝내는 삼각형 모양의 여정을 택했다.

지난 주 20Kg이나 나가던 배낭 무게에 비하면 훨씬 가볍게 짊어 졌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해 이것저것 다시 채우는 바람에 1일차 오후부터는 다시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버려야 하느니... 집에 돌아와 확인하니 목덜미는 벌레에 물려 엉망이고 어깨는 배낭 자국이 이제는 꺼뭇하게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백두대간 종주.
하면 할수록 힘들고 새로운 어려움이 찾아든다.
그래도 이제와서 포기도 못하니 이 노릇을 어이할꼬?


# 우두령 아래에서 만난 감자꽃. 감자꽃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꽃이 은근히 이쁘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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