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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열두번째(추풍령~큰재)-3주 공백으로 그리웠던 대간의 품!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열두번째(추풍령~큰재)-3주 공백으로 그리웠던 대간의 품!

강/사/랑 2007. 6. 25. 19:14
 [백두대간]그 열두번째(추풍령~큰재)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주 5일 근무제가 보편화되고 있다. 국가 전반에 표준(標準)을 제공하는 공무원들부터 주 5일 근무가 시작되어 일반 기업들에게도 확산되더니 웬만한 기업에서는 모두 정착이 되어가고 있나 보다.

배가 막 아파 온다. 주 5일 근무는 선진화의 결과이다. 그런데 내 배가 아픈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 5일 근무를 해오고 있었다.  이번에 시행되는 주 5일 근무제는 기존 시행 기업의 경우 잇점이 전혀 없다.
혜택은 고사하고 오히려 손해가 많다.


일반 기업들은 이번에 주 5일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연월차 휴가를 조정하였다. 급격한 휴일의 증가때문에 월차를 없애고 연차에 축소 통합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 5일 근무 시행 기업의 경우 휴일의 증가 없이 월차만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번 조치가 당연히 손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연월차의 변화 없이 기존 시스템을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합법적으로 연월차 일수를 줄일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다. 그럴 마인드도 아니고. 

처음 십몇 년 전 이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주 5일 근무라는 게 너무 맘에 들었다. 주 5일 근무는 일부 외국계 회사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전 학교 졸업 후 처음 발을 들여놓은 회사는 한 달에 꼭 한 번 쉴 수 있었다. 그것도 직원들끼리 서로 날짜를 조정해가며 이번 일요일은 네가,
다음은 내가 하는 식으로 돌아가며 쉬어야 했다.

 

20대 후반의 팔팔한 젊은 사람들에겐 노동 착취에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 회사를 그만두는 주요 이유 중 하나였다. 그 다음에 선택한 회사가 지금의 회사이다. 이 회사는  당대에 드물게도 주 5일 근무였다. 한 달 1회 휴일에서 8회로 휴일이 늘었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그 당시 금요일날 퇴근하는 전철 속에서 동료들에게 "야, 주말인데 뭐 할거냐?"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전철 속 주변 사람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모두 쳐다보곤 했었다. 그럴 때면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박봉 따위는 잊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주 5일 근무이니 희소성도 없어지고 휴일 축소되니 우리는 오히려 손해가 크다.

주 5일 근무가 이뤄지면 일단 사람들은 주말마다 야외로 놀러 나가기 바빠진다. 효율적이고 계획적인 휴일 문화는 아직 뒷전이고
일단 야외로 차 몰고 나가는 게 우선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돈 깨지고 길에서 시간 깨지고 등등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이틀씩이나 되는 휴일을 감당 못해 금요일 저녁 술 잔뜩 마셔버리고
토요일은 잠으로 때우고, 일요일엔 가족 등쌀에 못 이겨 차 몰고 나가는 식의 반복이 되기도 하고.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듯 이 낯선 휴일 문화도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효율적인 시간관리와 운용 방법의 묘수가 속출할 것이다. 그때까지 약간의 혼란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진작을 통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일이나 지금 당장은 생산 차질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국가 경제는 어려운데 주 5일이다 뭐다 인기 정책에만 쏠리는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건지 이번 장마철 내내 주말마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 주중에는 멀쩡하다가 주말만 되면 비가 오는 것이 예삿일은 아니다. 포퓰리즘에 빠진 대한민국이여! 정신 차려라! 뭐 이런 건가?

 

6월 셋째주 추풍령에서 대간의 품을 벗어 난 이후 연속 3주 비 때문에 대간길을 나서지 못했다. 게다가 주말이면 꼭 집안 행사가 겹치는 바람에 우중산행을 강행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근교의 수리산, 청계산, 광교산 등지를 다니는 걸로 대간 못 간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동네 뒷산 산행이 어디 대간에 비할 바가 있겠는가? 대간의 너른 품이 그립고 그리웠다. 그리운 것을 가까이 못하니 가슴은 답답하고 매사 순조롭지 못했다. 음... 이래선 안 된다. 빨리 대간으로 가자!!




3주 공백으로 그리웠던 대간의 품!!!


구간 : 백두대간 제 17 소구간(추풍령 ~ 큰재)
거리 : 구간거리(19.67 km), 누적거리(273.26 km)
일시 : 2005년 7월16일.
세부내용 :

추풍령(07:45) ~ 묘지 3기 ~ 금산(08:04) ~ 502봉(08:55) ~ 안부 소로(09:28) ~ 436봉(09:45) ~ 사기점고개(10:10)~ 30분 휴식 ~ 난함산갈림길(11:00) ~ 임도 ~ 납골당 ~ 신애원갈림길(11:28) ~ 작점고개(11:44) ~ 10분 휴식 ~ 473.7봉(12:23) ~ 갈현(12:47) ~ 기도터 움막(13:09) ~ 점심 50분 ~ 용문산(710m,14:57) ~ 기도터 제단(15:58) ~ 국수봉(763m,16:20) ~ 683.5봉(17:11) ~ 475봉(17:18) ~ 큰재(18:05)

총 소요시간 10시간20분. 만보계 기준 37,600보.



장마는 한자로 '梅雨(매우)'라고 한다. 매실이 익어 떨어질 무렵에 찾아오는 비라서 얻은 이름이다. 매우(梅雨), 매화 비! 너무나 시(詩)적인 표현이다.

매우로 인하여 3주 연속으로 대간의 품과 떨어져 지냈더니 영 사는 게 시들시들하다. 우리 조국의 큰 근간인 백두대간의 기(氣)를 매주 받아 오다가
3주간 공백이 생겼으니 氣가 떨어질 밖에...

"이래선 안된다. 빨리 대간의 품속으로 들어가 떨어진 氣를 보충해야겠다.
그래서 충만한 기로 기고만장(氣高萬丈)해서 또 열심히 한 세상 살아 봐야겠다."

간만에 비 소식 없고 행사 없는 토요일, 짐 꾸려 차에 시동거니 새벽 1시다. 영동거쳐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니 한 시간도 못가 졸음이 밀려 온다. 몇 번이나 까무룩해서 위험한 순간을 넘긴 후,
큰일나겠다 싶어 망향휴게소로 긴급대피 했다.

1시간여 눈 붙인 후 우동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세수, 양치하고 응가하고 다시 출발. 망향휴게소, 너무 지저분하다. 요즘은 다들 깨끗하게 단장들 하는데... 한참을 달려 추풍령휴게소에 도착하니 6시 45분다.

바람도 자고가고 구름도 쉬어간다는 추풍령엔
바람도 구름도 없고 새벽인 데도 후덥지근한 열기만 느껴진다.




난함산/卵含山

경상북도 김천시의 어모면 은기리와 봉산면 상금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고도 : 733m). 난함산은 속리산에서 추풍령으로 내려오는 백두대간의 능선에서 남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으로 국수봉과 이어지고, 서쪽으로 추풍령을 거쳐 눌의산과 연결된다. 난함산 정상은 난함산 북쪽의 백두대간 능선보다 고도가 더 높다. 난함산의 동사면과 북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아천이 되며, 서사면과 남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직지천을 이룬다. 난함산은 『해동지도』에 처음 기록되어 있다. 산의 서쪽인 추풍령에는 추풍역(秋豊驛)이 있고, 산의 남동쪽에는 두화원(豆花院)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난함산(卵含山)이라는 명칭은 산의 모습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17 소구간 추풍령 ~ 큰재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추풍령 휴게소. 이곳은 특이하게 휴게소 내에 톨게이트가 있다.

 

 

 

추풍령휴게소를 나오자 좌측 방면은 영동, 우측은 김천이다. 지난번 추풍령고개에서 1박할 때 고개 바로 너머가 김천이었던 걸 기억하고 김천 방향으로 우회전. 한참을 달려도 추풍령고개가 안 나온다.

 

지도 상엔 추풍령휴게소 바로 옆이던데?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 차를 돌려야 되는데 괜스레 오기가 생긴다. 좋다, 갈 때까지 가 본다. 이상하게 이정표도 없다. 20여 분 가까이 달리니, 아이구매! 김천시에 들어 와 버린다.

급히 유턴해서 온 길을 되돌아가니 추풍령휴게소 바로 왼쪽에 추풍령고개가 있다. 휴게소에서 나와서 좌회전을 했으면 바로 30초 거리에 있는 곳을 잘못된 선택과 오기로 인하여 40분이나 까먹었다.

추풍령고개 힐튼장모텔 옆의 도로공사하는 곳으로 올라가니 포도밭 비닐하우스가 있고 멀리 들머리에 표지기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도로공사 구간 좌측, 포도밭이 끝나는 곳 시멘트 배수로가 오늘 구간의 들머리다.

 

 

 

등산화 끈 조이고 짐 챙겨 출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스틱이 펼쳐지질 않는다. 지난번 장마비를 철철 맞고 산행을 한 후, 그대로 접어서 보관했더니 내부에서 녹이 생겨 눌러 붙은 모양이다.

 

두랄루민 재질이라더니...(두랄루민은 가벼울 따름이지 녹하고는 상관이 없나?) 20여 분을 씨름을 하고서야 겨우 준비를 마칠 수가 있었다. 길을 잘못 들어 40분, 스틱 때문에 20분. 도합 1시간을 허비하고서야 비로소 출발을 했다.

7시 45분. 비는 내리지 않지만 습도가 아주 높아 후덥지근한 날씨다. 금산을 차고 오르는데 벌써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다. 등로의 수풀은 물기를 흠뻑 머금고 있다가 바지 가랑이와 등산화를 바로 적셔버린다. 이래저래 오늘 산행도 만만치 않을 모양이다.

 

 


# 백두대간의 대표적 자연훼손 지역인 금산. 석산개발로 인하여 산 하나가 통째로 없어져 
버렸다. 절벽 위에 서면 저 아래 밑바닥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인다.

 

 

 

# 이름이 금산(金山? 錦山?)인 걸로 봐서 아름다웠을 산인데...

 

 

 

# 무시무시한 금산의 절개지와 가야 할 대간길.

 

 

 

금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 서서 다시 한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름을 차고 오른다. 오늘 이 구간에선 우리 외엔 선답자가 없는지 등로엔 온통 거미줄 투성이다. 이미 땀으로 완전히 젖어버린 몸에 젖은 수풀로 인하여 더욱 젖은 바지가 척척 휘감기고 얼굴에 휘감겨 드는 거미줄을 떼어 내며 오르자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이렇게 고생할 것을 왜 못들어와 안달이었는지...

 

길게 올라 '502봉'에 올라섰다. 08:55. 정상은 수풀이 우거져 조망은 없고 정상석도 없다. 한 숨 돌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아래로 내려 희미한 옛고개를 하나 지나고 다시 위로 올리면 '435.7봉'에 오를 수 있다.

 

 


# 조망이 없는 502봉.

 

 

 

# 502봉에서 만난 표지기.  "청산이 스승인 걸!" 대간꾼은 누구나 시적 감성이 풍부하다.

 

 

 

# 502봉 아래 안부의 갈림길. 예전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을 고개가 세월 흘러  이제는 희미해졌다.

 

 

 

# 435.7봉엔 고사목 한 그루 수풀 속에 서 있다.

 

 

 

# 추풍령에서 4.3km 거리다.

 

 

 

435.7봉은 추풍령에서 4.3km 거리다. 시간은 2시간 걸렸다. 다시 잔봉 하나를 넘고 좌측으로 휘감아 내려 가면 내리막 길을 한참을 내려서니 '사기점 고개'에 도착한다. 10:10. 

 

아마도 옛날에 사기그릇 파는 가게가 있었나 보다. 이제는 임도만 있다. 햇살이 너무 뜨겁고 높은 습도로 무더워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사기점 고개의 숲길에 들어서니 초록 터널이다. 숲길에서 바라본 사기점 고갯길이 터널밖 세상처럼 아득히 보인다. 너무나 시원하고 아늑하여 다시 가기가 싫다. 간식 먹고 땀을 식히며 한참 동안 쉬었다.

 

 

 

# 사기점 고개.

 

 

 

# 사기점 고개 한 켠 숲속에서 오래 쉬었다.

 

 

 

# 사기점 고개에서 바라 본 난함산의 통신중계소.

 

 

 

난함산은 일부 지도에서는 묘함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자료를 찾아 보니, 卵(알 난)자를 누군가 卯(토끼 묘)자로 잘못 읽어 묘함산이라 표기했고 이를 아무 생각없이 따라 쓴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뼈재가 빼재가 되고 이를 다시 한자말로 수령(秀嶺)이라 표기한 것도 같은 현상이다. 현재 백두대간 상의 많은 지명이 이처럼 잘못 알려진 경우가 허다하다.



# 오늘 구간의 등로엔 높은 습도 때문인지 버섯이 아주 많다.  옛날 만화영화에 나오는 
스머프의 집처럼 생긴 버섯.

 

 

 

# 계란 후라이 닮은 버섯.

 

 

 

# 숲을 벗어나면 난함산 중계소로 오르는 시멘트 도로와 만난다.

 

 

 

사기점 고개를 출발해서 숲길을 잠시 따르다 숲을 벗어나자 난함산 중계소로 오르는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이후 시멘트 도로와 숲속을 들락날락하며 대간길은 이어진다.

 

마치 첫 번째 시작하였던 남원 여원재의 고남산 구간과 흡사하다. 길가엔 산딸기가 중간중간에 빨갛게 열렸고 햇살은 아주 뜨겁다. 좌측의 납골당을 지나자 멀리 신애원이 보인다.

 

 


# 신애원. 정신병원이다.

 

 

 

# 신애원 앞 갈림길.

 

 

 

# 이런 길을 오밀조밀 지난다.

 

 

 

임도길을 편안하게 진행하다 왕복 2차선의 포장도로인 '작점고개'에 도착했다.(11:44). 작점고개는 최근에 붙은 이름이고, 원래는 충북사람들이 고개 너머 경상도 땅에서 여덟마지기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여덟마지기 고개, 성황당이 있다고 해서 성황데이 고개라고도 불렀던 고개이다.


지금은 김천 어모면의 능치리와 추풍령면의 작점리를 잇는 포장도로가 지나고 있다. 고개 한 켠에 넓은 광장과 능치쉼터란 팔각정이 있다. 그늘 좋은 팔각정에서 한숨 돌린 후 다시 건너편 숲으로 올라 갔다.




# 포장도로가 지나는 작점고개.

 

 

 

# 능치쉼터란 현판을 단 팔각정이 있다 .여기서 비박을 하면 좋겠다 싶어 드러 누웠더니 정자 안 들보에 말벌집이 있어 벌들이 잉잉거린다.

 

  

 

# 팔각정 바로 뒤에 473.7봉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있다.

 

 

 

# 구리산악회에서 세워 놓은 팻말. 힘들여 온 길을 놀면서 가도 됨이라 표현했다.

 

 

 

473.7봉 오르는 길은 꽤 숨을 헐떡이게 만든다. 무덥고 습한 날씨 탓에 대간길 진행이 여간 힘이 들지 않다. 한참 오르는데 등산객 한 분이 허위허위 내려온다.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돌아서더니 물을 달래선 마시곤 길을 묻는다. 초보대간꾼이라 자신은 없지만 지도를 보여주며 조금만 더 내려가면 작점고개가 나오고, 그곳에서 김천과 영동으로 나눠진다고 말해줬다.


그 사람 뭔가 알아 듣지도 못하게 중얼중얼하더니 우리를 따라 오겠단다. 기분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길을 잘못 들었으려니 하고 같이 473.7봉을 올랐다. 마눌 뒤에서 바짝 따라오는데 영 신경이 쓰인다.

이 양반 손에는 뭔가 두툼한 인쇄물 뭉치를 들고, 몽둥이처럼 생긴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운동화 차림에 작은 배낭을 맸다. 그거 참!! 그동안 대간길에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고 좋았는데 오늘은 영 기분이~~~

 

 


# 473.7봉엔 삼각점과 측량용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473.7봉에서 잠시 쉬면서 한숨 돌리는데, 반대쪽에서 부부 산꾼이 올라 온다. 아마도 역종주를 하시는 분들이신가 보다. 반갑게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아까 그 사람과 작별하면서 먼저 출발했다.

갈현고개를 향해 내려가는데 그 사람이 급히 뛰어 내려 온다. 일부러 길을 비켜 주면서 먼저 가라고 했다. 거리를 두려고 한참을 쉬었다 출발했는데, 그 사람이 앞쪽에서 몽둥이로 나무들을 두들겨 패고 있다. 그 참 이상한 사람일세...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발걸음을 일부러 늦췄다. 등로 주변의 나무들이 그 사람이 휘두른 몽둥이에 이곳 저곳 상처를 입고 있다.

12시 47분. '갈현고개'에 도착했다. 그 사람 갈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말을 건다. 김천 도치량으로 내려가는 길을 알려 달라고 한다. 지도를 꺼내 보여 주며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했더니 자기가 아까 도치량에서 올라 왔는데, 왼쪽에서 올라 왔다며 아니라는 것이다. 나침반을 꺼내 지도에 정치시키고 분명히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맞다고 알려주었지만, 혼자서 구시렁구시렁 거리기만 한다.

더 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는 용문산을 향해 출발했다. 뒤쪽에서 그 사람 혼자 뭔가 중얼중얼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대간길에서 사람을 만나 이렇게 찝찝한 기분이 든 건 처음이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 갈현고개. 목원대 표언복교수의 표지기가 눈에 띈다.

 

 

 

# 갈현에서 20여 분 오르니 기도터 움막이 나온다.

 

 

 

갈현고개부터는 산 아래쪽에서 계속 이상한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말로만 듣던 용문산 기도원의 기도하는 소리인가 보다. 용문산기도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도원이라는데 내가 느낀 기분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무릇 기도란 간절한 마음의 울림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저 처럼 큰소리로 우웩 우웩! 으아아악! 비명을 질러야 하는 이유가 뭔가? 그들의 하느님이 뭔가 말씀을 주시려다가도 놀라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다.

대간길에 지어 놓은 기도터 움막도 을씨년스럽고 음침한 분위기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샤머니즘적 전통과 융합되어 벌어진 현상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 본다. 제발 정상적이고 조용하고 관용적이며 이타적인 종교활동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눌 역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인 지라 내가 기도원의 저런 모습에 비난해 대는 걸 묵묵부답할 뿐이다. 아까 그 사람도 혹시 저 기도원에서 나온 사람이 아닐까 짐작 해 본다.

 


# 꿀꿀한 기분을 달래려 대간길의 야생화에 눈을 맞춰 본다. 노란색이 예쁜 원추리.

 

 

 

# 패랭이.

 

 

 

# 일월비비추. 잎도 꽃도 다 커다란 녀석이다.

 

 

 

# 돌양지꽃.

 

 

 

# 하늘말나리.

 

 

 

# 마타리.

 

 

 

#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는 용문산 정상(710m).

 

 

 

상당히 꿀꿀한 기분으로 용문산 정상에 도착했다. 14:57. 7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예상 시간은  6시간인데,  중간에 점심 식사하고 휴식하느라 1시간 오버했다.


용문산 정상엔 정상석은 없고 헬기장과 삼각점만 있다. 헬기장엔 돌양지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다.
용문산에서 오늘 구간의 최고봉인 국수봉까지는 예상시간 1시간 거리인데, 상당히 까다로운 구간이다.

 

용문산 하산길은 아주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이다. 이렇게 내려 왔으니 당연히 다시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다 올랐나 싶으면 다시 가파르게 내려 가고, 당연히 다시 가파르게 올라야 하는 것이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 가파른 용문산 하산길.

 

 

 

# 당연히 다시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 국수봉 직전의 기도제단으로 추측되는 곳. 동상 받침대 같아 보여 일부러 동상 모드로 포즈를 취해 보았다. 그런데 왜 이리 나이 들어 보이냐?

 

  

드디어 국수봉에 도착(16:20). 아주 힘들었다. 예상 거리 한 시간인데 우리는 20분 초과했다.  국수봉엔 오늘 구간 중 유일하게 정상석이 있다. 뒤쪽엔 전망대도 있다.


국수봉은 '움킬 국(掬)'자를 쓰는데, '한 웅큼의 물'이란 뜻인가? 아님 물을 품고 있는 산이란 뜻인가? 그것도 아니면 누룩 국(麴) 자를 써 술관 관련된 이름인가?

 

국수봉에서 한숨 돌린 후 다시 출발했다. 한 차례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른다. 삼각점이 있는 '683.5봉'이다.

 

 

 

# 소박한 모양의 국수봉 정상석. 마눌의 표정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 국수봉 정상의 잠자리 한 마리.

 

 

 

# 683.5봉 직전의 봉우리엔 누군가 돌탑을 올려 놓았다.

 

 

 

# 683.5봉 지나 있는 전망대의 시원한 전망.  멀리 큰재가 보인다. 가까워 보이지만 아직 1시간 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 큰재에서 신곡리로 통하는 길. 추풍령으로 가는 최단 코스다.

 


전망대에서 큰재까지는 빤히 보이는 길에 내리막의 연속이라 쉽게 생각되지만, 막상 가보니 만만치 않은 길이다.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만나는 긴 내리막은 무릎에 부담이 많이 간다. 게다가 대간길은 수풀이 마구 엉켜 있어 헤치고 나가기가 어렵다.


그래도 여기만 통과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아픈 무릎에 힘을 실었다. 내리막을 길게 걸어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큰재'에 도착했다. 18:05.  추풍령에서 10시간 20분 걸렸다. 



# 이 숲만 벗어나면 오늘 구간 끝이다.

 


# 긴 내리막을 걸어 드디어 큰재에 도착했다. 오른쪽 집이 박분례 할머니댁이고, 전봇대 지나 인성분교와 사택 사잇길이 다음 구간 들머리다.

 

 

 

#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부서졌을 인성분교는 이제는 폐허가 되어 잡초만 무성하다. 인성분교는 백두대간 상에 있는 유일한 학교다.

 

 

 

# 분수령(分水嶺) 표지판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이 왼쪽으로 구르면 금강물이 되고, 오른쪽으로 구르면 낙동강 물이 된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이 적용되는 곳이다.

 

 

 

# 큰재에는 백두대간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현위치를 보니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다.

 

  

큰재는 상주시 모동면과 공성면을 넘나드는 2차선 포장도로다. 도로 포장은 되어 있지만,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버스가 하루에 세 번만 지나 다닌다.


인성분교 건너 박분례 할머니댁엔 TV를 보시고 계시는지 열린 문틈으로 화면이 보인다. 스틱 접고 배낭 벗어 놓고 한숨 돌리며 히치할 차가 있나 둘러 보지만 간혹 있는 차도 휙휙 지나갈 뿐이다.

추풍령택시에 전화했더니 40분 후에 도착할 수가 있다고 한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보류 시키고 있는데, 마침 상주택시가 한 대 지나간다. 손님 내려주고 5분 뒤에 오겠단다.

그 택시 5분 뒤에 왔는데 추풍령 가는 길도 잘 모르는 눈치고 돈도 25,000원이나 달랜다. 그냥 미터 요금으로 가자고 하고 길도 지도 확인하고 신곡리 방향으로 가는 게 빠르다고 알려주었다. 추풍령까지는 쭈욱 포장이 되어 있고 곳곳에 포도밭이 즐비하다. 추풍령고개에 도착하니 택시비는 16,000원이 나왔다.

원래 1박 2일로 계획하고 신의터재까지 마칠려고 했는데, 마눌의 강력한 주장 때문에 큰재에서 멈췄다. 3주간의 공백으로 연속성이 떨어진 탓인지 공백 기간에 근교산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힘이 들었다. 무덥고 습기 많은 날씨 탓에 땀을 너무 흘려 신체 밸런스가 무너진 것도 한 이유다.

3주간의 공백이 나에게는 빨리 다음 구간을 메꿔야 할 시간으로, 마눌에겐 체력 보강을 위한 시간으로 작용한 듯하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처음 시작할 때 마음 먹은 대로 솔방솔방, 쉬엄쉬엄, 허위허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기로 다짐해 본다.



그 산에 역사가 있었다
-내가 걷는 백두대간1

오랫동안 나는 산길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 산이 있음에 고마워하고 / 내 튼튼한 다리를 주신 어버이께 눈물겨워 했다 / 아무 생각없이 걸어가는 일이야말로 나의 넉넉함 / 내가 나에게 보태는 큰 믿음이었다 / 자동차가 다녀야 하는 아스팔트 길에서는 / 사람이 다니는 일이 사람과 아스팔트에게 / 서로 다 마음 안 놓여 괴로울 따름이다 / 그러나 산길에서는 사람이 산을 따라가고 / 짐승도 그 처처에 안겨 가야 할 곳으로만 가므로 / 두루 다 고요하고 포근하다 / 가끔 눈 침침하여 돋보기를 구해 책을 읽고 / 깊은 밤에 한두 번씩 손 씻으며 글을 쓰고 / 먼 나라 먼 데 마을 말소리를 들으면서부터 / 내가 걷는 산길이 새롭게 어렴풋이나마 / 나를 맞이하는 것 알아차린다 / 이 길에 옛 일들 서려 있는 것을 보고 / 이 길에 옛 사람들 발자국 남아 있는 것을 본다 / 내가 가는 이 발자국도 그 위에 포개지는 것을 본다 / 하물여 이 길이 앞으로도 늘 새로운 사연들 / 늘 푸른 새로운 사람들 / 그 마음에 무엇을 생각하고 결심하고 마침내 큰 역사 만들어갈 것을 내 알고 있음에랴! / 산이 흐르고 나도 따라 흐른다 / 더 높은 곳으로 더 먼 곳으로 우리가 흐른다.

- 이성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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