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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열세번째(큰재~신의터재)-고개, 고개, 고개들!!!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열세번째(큰재~신의터재)-고개, 고개, 고개들!!!

강/사/랑 2007. 6. 25. 19:16
 [백두대간]그 열세번째(큰재~신의터재)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여름 휴가다. 직장인에게 여름 휴가가 없다면 어떻게 이 힘들고 팍팍한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팍팍한 일상에 단비 같은 축복인 휴가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언제나 지나고 나면 짧기만한 여름 휴가이지만, 다른 회사보다는 좀 긴 휴가를 주는 회사라 일단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강/사/랑이 다니는 회사는 오래 전부터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 이 회사를 선택하게 된 제일 큰 이유도 주 5일제 근무 형태에 있었다. 그 이유는 그 이전에 학교 졸업하고 처음 취직했던 회사가 한 달에 딱 하루만 휴일을 주는 휴일 가뭄 회사였기 때문이다. 


지금 회사는 다른 것은 몰라도 휴일 하나만큼은 넉넉한 편이다. 여름 휴가의 경우도 전 그룹사가 8월 첫 주 한 주일 전부 일시에 휴가를 간다. 따라서 앞뒤 주말까지 합하면 무려 9일 간의 여름 휴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넉넉한 일정 때문에 해마다 여름 휴가 때는 형님, 누나네와 짧게라도 같이 보내는 시간을 가졌는데, 올해는 각기 휴가 계획이 달라 각개전투로 보내기로 했다. "잘 됐다, 이 참에 백두대간이나 왕창 진행해 보자!"


총 9일의 휴가 기간 중 최소한 4일 이상은 대간의 품속에서 놀기로 작정하고 마눌에게 계획을 얘기했더니, 이 더운 날씨에 누구 죽일 일있냐며 펄쩍 뛴다. 그러면 일단 휴가 시작하면 바로 대간에 들어가서 큰재 ~ 신의터재 구간을 비박 내지는 민박하면서 진행하고 다음날 신의터재 ~ 갈령 구간을 해보고 결정하자 했다.


일단 대간 속에 밀어 넣어 놓으면 어떻게든 따라 오겠지 하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내 전략을 눈치 챘는지 오히려 날도 무덥고 휴가 시작이니 만큼 일단 신의터재까지 한 구간만 해보자고 역제의를 해온다. 이 무더위가 어지간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사실 막상 백두대간에 들어가면 나보다 훨씬 가볍게 산길을 걷는 사람인데, 언제나 계획 세울 때는 이렇게 온갖 걱정과 엄살이 심한 편이다.


"좋다. 이 때 아니면 언제 내가 그대 청을 들어 주겠는가? 일단 한 구간이라도 해 보십시다!"




고개, 고개, 고개들!!!



구간 : 백두대간 제 18,19(일부) 소구간(큰재 ~ 지기재 ~ 신의터재)
거리 : 구간거리(24.47 km), 누적거리(297.73 km)
일시 : 2005년 7월 31일. 해의 날.
세부내용 : 큰재(07:37) ~ 시멘트길 ~ 무명봉 ~ 무명봉 ~ 회룡재(09:09) ~ 무명봉 ~ 임도 ~
무명봉 ~ 철망 ~ 무명봉 ~ 너덜지대 ~ 개터재(09:50) ~ 505봉 ~ 무명봉 ~ 463봉 ~ 윗왕실재(11:45) ~ 점심(12:40) ~ 477봉 ~ 백학산(14:07) ~ 임도(14:34) ~ 계곡 휴식(15:10) ~ 무명봉 ~ 임도갈림길(15:54) ~ 무명봉 ~ 개머리재(16:30) ~ 임도갈림길(16:53) ~ 지기재(17:40) ~ 휴식/물보충(17:55) ~ 무명봉 ~ 금은골 ~ 슬랩지대 ~ 신의터재(19:37).

총 소요시간 12시간.

7월29일 금요일. 월 마감하고 집에 들어가니 이미 토요일 새벽 1시가 넘었다. 월 마감하느라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 받아 바로 출발하기가 어렵다. 긴 휴가 기간이 남아 있다는 여유도 한 몫을 했다.


토요일은 집에서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며 쉬었다. 그리고 일요일 새벽 0시에 짐 챙겨 집을 나섰다. 중간에 금강휴게소에서 잠시 눈 붙이고 아침 먹고 했더니 추풍령 나들목을 나설 때는 이미 날이 훤하게 밝았다. 모동 지나 상판저수지 거쳐 큰재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큰재에는 이미 두 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경기 번호와 서울 번호를 단 차량이다. 아마도 우리처럼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사람들인가 보다.

인성분교 정문 앞에 주차하고 우리도 산행준비를 서둘렀다. 인성분교는 백두대간에 있는 유일한 학교이다. 농촌 인구 급감하고 젊은이 모두 떠난 지금은 폐교되어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스틱 빼내느라 끙끙대고 있는데 큰재 지킴이 박분례 할머니가 다가오시더니 오늘 오기로 한 사람들이냐며 물으신다. 뭐라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노인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서시더니 큰 차로 온다더니 하면서 대답도 듣지 않고 가버리신다. 아마 단체 산악회에서 할머니 댁에 무언가 부탁을 한 모양이다.

큰 차로 온다면 혹시 인성분교 안에 차를 댈지도 모르겠다 싶어 차를 빼서 좀 더 아래쪽 길가에 바짝 대어 주차하고 짐 챙겨 대간 속으로 스며들었다. 7시 37분이다.

오늘 구간엔 고개들이 많다. 큰재, 회룡재, 개터재, 윗왕실재, 개머리재, 지기재, 신의터재. 모두 일곱 개의 고개를 밟아야 오늘 구간이 끝난다. 고개, 고개, 고개라!!!!!!!!!!!!!!



고개의 여러 이름들(嶺,峙,재,峴)

'령(嶺)'


큰 산맥을 가로지르는 고개를 말한다. 태백산맥을 넘는 대관령, 한계령, 미시령 등과 소백산맥을 넘는 추풍령, 죽령, 조령, 이화령등이 대표적. '령'은 큰 산맥을 넘는 큰 고개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따라서 대체로 험하고 높은 곳이 많다. 하지만 관용적으로 '령'을 붙인 것도 있다. 서울에 있는 남태령이나 우이령은 큰 산맥을 가로지르는 고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령'자가 붙어 있다. 이는 이름이 붙을 당시 많은 사람들(서울 사람들)에게 크고 중요한 고개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치(峙)'


본디 높은 언덕을 뜻하는 말이다. '치'는 또 다른 말로 '티'라고도 하는데, 그리 높지는 않지만 완만하다기보다는 가파른 고갯길을 말한다.

'재'


고개의 일반적인 접미사라고 보면 편하다. 특별히 규모나 성격상의 기준은 없는 말이다. 조'령'같은 큰 고개도 한 편으로는 문경 새'재' 라고 부르고, 비행기'재'같은 험준한 고개도 '재'이고, 박달'재'같은 평범한 고개도 '재'이고... 왠만한 데는 다 '재'라고 해도 통한다.

'현(峴)'


작은 고개로, 동네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에 보면 아현동이니, 논현동이니 그런 동네들이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18 소구간 큰재 ~ 신의터재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큰재 들머리가의 마을 표지석. 강모씨와 애마 그리고 뒤쪽의 박할머니댁도 찍혔다.

 

 

인성분교 담벼락을 따라 걸어 가는데, 봉고차 한 대가 도착하더니 대간꾼 몇 사람이 차에서 내린다. 오늘 구간엔 꽤 많은 사람들이 진행을 하나보다.

인성분교 뒤쪽에서 대간길은 바로 산길로 연결된다. 무성하게 자란 수풀이 앞을 가로막아 진행이 어렵다. 당연히 이슬을 듬뻑 머금고 언제라도 적셔 줄 채비를 하고서 말이다. 작은 야산으로 차고 오르니 이미 신발과 아랫도리는 흠뻑 젖어 있다.


                     

# 초입을 지나 한참을 가자 대간길은 오솔길처럼 편하게 펼쳐진다.

 

 

# 몇 개의 묘와 완만한 봉우리를 넘어서자 시멘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이 시멘트 포장길은 지도상의 '이영도 목장'으로 통하는 길이다.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자 철 대문으로 길을 막아 놓았고 대간길은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숲으로 올라간다. 이후 대간길은 계속 이영도 목장을 끼고 길게 이어진다. 상당히 규모가 큰 목장인가 보다. 소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
 교접(交接) 중인 나무.

 

 

# 오늘 구간엔 청개구리가 유난히 많다. 발 아래도 수두룩해서 밟지 않으려고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큰재를 출발한 지 1시간 30분 가량 지나 회룡재(回龍峙)에 도착했다. 세월 지나 삶의 방식도 바뀌어 더이상 사람들이 산길을 걷지 않는 바람에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며 사람들의 삶도 이어 주었을 고개들은 이제는 잡초 속에 묻혀 간다. 회룡재도 이제는 대간길만 사람 발자취가 남아 있을 뿐 상주와 영동을 이어 주던 원래길은 잡초가 무성하다.

                     

# 회룡재(09:09). 용이 휘감고 나간 모양인가? 고개란 것이 원래 구불구불 용이 휘감듯 굽어지기 마련이다.

 

 

오늘 구간은 전체적으로 조망은 볼 수 없고 무성한 수풀 속을 진행하게 된다. 햇볕이 차단되어 다행이기는 하나 바람 한점 불지 않아 푹푹 찌는 찜통 속이다.


일기예보는 강수확률을 30% 정도 예상했으나 비는 올 기미가 없고 단지 습도가 높아 뜨거운 전기 밥통 속을 걷는 기분이다. 기상청은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기록적인 무더위를 외치고 있고 오늘도 최고기온은 35도 라고 한다.  그 예상 증명하듯 옷은 이미 완전히 다 젖어 버렸고 워터백 호스를 자주 입에 물게 된다.


# 오늘 구간의 대세는 며느리 밥풀꽃이다.

 

 

옛날 옛날에 한 새댁이 있었다. 그 새댁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너무 혹독했다. 시어머니는 하루종일 며느리를 감시하면서 괴롭힐 구실이 없나 찾는 그런 아주 독한 시어머니였다고 한다.


어느날 새댁이 밥을 짓다가 밥에 뜸이 잘들었나 밥알 몇 알을 입에 물고 맛을 보았다. 마침 부엌으로 들어오던 시어머니가 그걸 보고 대뜸 며느리를 호통치며 "야이 망할년아 네년이 감히 어른들도 손대지 않은 음식에 손을 대?" 하면서 며느리를 호되게 내리 쳤다.


어찌나 호되게 쳤는지 며느리는 넘어지면서 부엌 모서리에 부딪쳐 그만 죽어버렸다.
며느리가 죽어서 하늘에 올라가자 며느리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던 옥황상제는 그 못된 시어머니를 지옥에 보내고 며느리는 꽃이 되어 세상에 뿌려졌다.

그 꽃이 '며느리 밥풀꽃'이다. 슬픈 전설을 가진 이 꽃은 오늘도 분홍색 꽃잎 끝에 하얀 밥풀 두 개를 달고 애처럽게 흔들리고 있다.

 

                     

# 모싯대. 초롱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이다. 동의보감에는 '계로기'로 기록되어 있다. 뿌리를 채취해 해열, 해독, 거담 등 감기 증상이나 산후 임산부의 이뇨촉진의 약재로 쓴다.

 

 

# 닭의장풀. 닭장 부근에서 흔히 보이고 꽃잎 모양이 닭벼슬을 닮아 얻은 이름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꽃이 피는 대나무'라 하며 가까이 했다 한다.

 

 

# 보랏빛 야생 도라지꽃.

 

 

# 짚신나물.  장미과이다. 한방에서는 용아초(龍芽草)라 하여 지혈제로 쓴다.

 

 

# 회룡재에서 개터재로 가는 대간길. 사면을 가로질러야 한다.

 

 

회룡재에서 개터재 가는 길은 몇 개의 무명봉을 연속으로 오르 내려야 한다. 목장으로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인지 굵은 철사줄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이 구간의 대간길은 산 마루금이 아니라 사면을 가로질러 가겠끔 되어 있다.

산악의 암석이 풍화작용에 의해 부스러져 산기슭에 쌓여있는 테일러스(Talus)지형도 몇 곳 있다. 테일러스는 한자로는 '崖錐(애추)'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너덜겅' 혹은 줄여서 '너덜'이라고 한다.


# 개터재 근처에서는 멀리 효곡리 마을이 전망된다.

 

 

# 개터재(09:50). 큰재에서 2시간10분 정도 소요 되었다.

 

 

개터재는 부근의 개터골에 왕실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로 봉산재, 효곡재, 왕실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개터재 역시 인적 끊긴 지 오래인듯 잡초가 무성하다.

#
 개터재에서 만난 술패랭이. 꽃잎이 특이한 이 야생화는 이뇨, 통경의 약재로 쓴다.

 

 

# 개여뀌와 노린재. 잎과 줄기를 찧어서 냇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기절해서 떠오른다고 해서 어독초(魚毒草)라고도 한다.

 

 

# 노란색의 미나리 아재비.

 

 

# 등골나무. 생긴 것과는 달리 국화과이다.

 

 

# 흰여로. 백합과이고 유독식물이다. 유독식물이지만 뿌리를 법제하여 한약재로도 쓴다. 중풍이나 벌레 독에 효능이 있다.

 

 

개터재에서 윗왕실재에 이르는 길은 아주 멀고 지루한 길이다. 온도가 높고 습도까지 높아 아주 후텁지근한 날씨에 바람까지 없는 숲속을 걷는다는 것이 여간 곤욕스럽지가 않다.


이 정도면 극도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극기훈련 상태이다. 선답자들도 모두 이런 고통을 겪어 냈겠지만 백두대간 종주가 기쁨보다는 고통으로 점철된다면 그것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힘든 데다 수풀이 우거지고 아무런 표식이 없어 505봉과 463봉은 대충 짐작만하고 지나쳤다. 숨이 턱턱 막히는 숲속 길을 한참을 걷다가 문득 앞쪽에 작은 규묘의 동물 이동통로인 에코 브릿지가 불쑥 나타난다. 드디어 '윗왕실재'다. 11시 45분이니 큰재에서 4시간 10분, 개터재에서 1시간 55분 소요되었다.

윗왕실재에는 에코 브릿지를 건설하면서 길을 단장했는지 비포장이긴 하나 깨끗한 길이 고개 양쪽을 이어 주고 있고 대간꾼이 세워 둔 듯 흰색 차량 하나가 뙤약볕 속에 지글지글 끓고 있다.


#
 윗왕실재의 동물 이동통로.

 

 

# 10.3KM를 걸어 왔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쉬고 싶은데 윗왕실재에는 마땅히 쉴 곳이 없다. 배도 너무 고픈데... 다시 산길을 따라 5분여 올라가니 양쪽으로 가파른 비탈이 형성된 안부의 마루금이 나타난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오는 것이 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출발 후 처음으로 베낭 내려 놓고 신발도 벗어 본다. 바람이 솔솔 불어 오는 것이 너무나 좋아서 물이 흥건한 윗옷을 벗어서 나뭇가지에 걸어 말리고 열에 들뜬 몸도 식힌다.

도시락 꺼내서 점심식사를 하자니 허기는 엄청 지는데 입안이 깔깔하다. 아마도 더워서 물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가 보다. 그래도 억지로 밥을 물에 말아서 먹고 후식으로 과일도 먹으니 조금 살 것 같다.

아, 좋다! 한 잠 자고 싶다! 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세 명의 대간꾼이 불쑥 나타났다. 놀라고 미안해서 윗옷을 얼른 챙겨 입는데 괜찮다면서 뒤에 오는 여자는 거의 남자이니 계속 벗고 있어도 된다면서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농담을 한다. 아마도 아침에 큰재에서 우리 바로 뒤쪽에 봉고차에서 내린 사람들인가 보다.
잠시 후 정말 한 명의 여성이 두 명의 남자와 같이 올라 온다. 너무나 여성스럽게 생기셨더만...

일어난 김에 등산화 다시 신고 짐 챙겨 출발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의 점심시간은 1시간이나 걸렸다(12:40 출발). 지금부터는 오늘 구간의 가장 높은 산인 백학산을 향해 치고 올라가야 한다.

평소 대간길을 진행하면서 점심식사 후에는 배도 부르고 긴 휴식으로 인해 몸이 식어버려 산을 차고 올라가는 것이 힘이 들어서 되도록이면 산 정상 부근에서 식사를 하는데, 오늘은 너무 힘들고 피곤하여 오름을 앞에 두고 식사를 하였다. 당연히 산오름을 차고 올라 가기가 너무나 힘이 든다. 가파른 오름을 힘겹게 헉헉대며 올라가니 별 특징이 없는 477봉에 도착한다.


        

# 477봉에서 바라 본 백학산. 아직 한참을 올라야 한다.

 

 

식사 후의 굳은 몸으로 무더위 속에 오름을 차고 오르자니 죽을 맛이다. 백학산은 육산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비슷한 높이이고 맨 마지막 봉우리가 정상이라고 선답자들의 종주기에 나와 있다.

언제나 그렇듯 대간길의 봉우리들은 가야 할 정상을 제일 뒤에 숨겨 두고 있다. 한 개의 봉우리를 힘들게 차고 올라가 보면 당연히 그곳은 정상이 아니고, 또 하나 멀리 보이는 정상을 올라 가 봐야 그곳도 정상은 아니다.

사람의 진을 화끈하게 빼 놓았다 싶은 후에야 드디어 '백학산' 정상에 도착했다. 14시 07분이다. 백학산 정상은 수풀이 우거져 전망은 나쁜데 안정된 서체로 새겨진 작은 정상석과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 백학산 정상. 학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휴식한 후 출발하니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꺾여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직진하는 쪽 숲속에는 아까 만났던 대간꾼들이 휴식 중이다. 가파르게 올라 왔으니 당연히 다시 가파르게 내려가야 한다.


# 한참 가파르게 내려 오자 임도와 만난다.

 

 

                     

# 수량은 적으나 너무나 시원했던 계곡물.

 

 

임도를 따라 내려 오는데, 어디선가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임도 옆 조그만 계곡에 수량은 적지만 물이 흐르고 있다. 일단 작은 PET병에 예비로 물을 두 병 담았다. 집에서 나서면서 물을 충분히 준비했는데 무더운 날씨 탓에 물소비가 많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미리 챙겨 두었다.

등산화 벗고 발을 담그니 수량이 적어 금방 흙탕물이 일긴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내친 김에 웃통을 벗고 손수건을 적셔 등목도 해 본다. 그동안 대간길을 진행해 오는 동안 동엽령 아래 칠연계곡이나 삼도봉 아래 물한계곡에서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면서 탁족을 즐긴 적은 있지만, 대간길 도중에 오늘처럼 호사를 해보기는 처음이다.

물론 앞의 두 계곡에 비하면 여기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최고다. 한참 시원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데 단체 산행객들을 또 만난다. 지나치려다가 웃통 벗고 시원해 하는 나를 보더니 우르르 계곡으로 내려온다. 아이고, 오늘은 이분들께 알몸 보여주기로 작정한 날인가 보다! 얼른 옷 챙겨 입고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단체 산행객들은 물 채우고 손 씻고 수건 적시고 하더니 지기재까지만 진행한다면서 먼저 출발한다. 경상도 사람 특유의 시끌벅적한 목소리를 남겨둔 채...

우리도 짐 챙겨 다시 출발했다(15:10). 30분을 넘게 쉬었다. 서둘러야 할 일이다. 임도에서 바로 작은 무명봉쪽으로 대간길 표지기들이 이어져 있다. 이후 몇 개의 무명봉을 우거진 수풀 헤치고 나아갔다.

대간길을 힘겹게 진행하다 보면 시간개념이 흐려진다. 너무 힘들어서 1시간 이상 걸어 왔겠지 하고 생각하며 시계를 보면 20여 분밖에 안 걸린 경우가 흔하다. 이 구간에서도 달콤한 휴식 후 힘겹게 대간길을 헤치고 나왔더니 문득 대간길을 가로 지르는 재 하나를 만났다. 지도를 보니 백학산 너머에는 개머리재가 바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 외에는 작은 갈림길도 표시가 되어 있질 않다.

여기가 개머리재인가 보다 하고 시계를 보니 15시 43분이다. 임도에서 45분 밖에 안 걸렸다. 지도상엔 1시간 25분이 걸린다고 되어 있는데.... 임도옆 계곡에서 많이 쉰 것은 생각하지 않고 조금 빨리 도착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것이 엄청난 착각이었음이 곧 밝혀진다.


        

# 개머리재로 착각한 임도 갈림길.

 

 

# 무명봉을 하나 넘자 대간길은 논을 끼고 다시 야산으로 꺾여 들어간다.

 

 

# 칡넝쿨이 대간길을 온통 뒤덮어 진행하기가 너무 어렵다.

 

 

# 1시간여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니 과수원길을 따라 멀리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아니, 벌써 지기재에 도착했는가? 지기재에 도착하려면 시간상으로 아직 멀었는데... 오늘 휴식을 많이 해서 걸음이 빨라졌나? 지도를 다시 꺼내 확인해 본다. 그때까지도 여기가 개머리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지도나 선답자들의 종주기에 개머리재는 비포장도로이고 지기재가 2차선 포장도로라고 나와 있었으니까.

2차선 포장도로이니 여기가 지기재가 분명한데, 선답자들의 종주기에서 말한 분수령 표지판이나 커다란 비석은 보이질 않는다. 그 참 이상하네!!! 누구에게 물어 보려고 해도 인적이 없으니 그럴 수도 없고.일단 계속 진행해 보기로 한다.

위 사진의 포도밭 비닐하우스 오른쪽으로 전봇대를 따라 대간길은 연결되어 있다. 다시 오름이 계속 이어진다. 여기가 어딘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니 지친 몸이 더욱 힘이 든다. 작은 오르 내림을 몇 번 계속한다.


        

# 갑자기 임도 하나가 나타난다. 지기재에서 신의터재 가는 길에는 임도와 만나질 않는데...

 

 

임도를 벗어나 숲속으로 다시 들어가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완만한 능선길을 주욱 진행하다가 급경사 내리막을 한참을 내려 가니 넓은 초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야 비로소 여기가 어딘지 감이 잡힌다.


#
 한두 달 전에 지나간 선답자의 종주기에 밀밭이라 표현된 곳. 밀은 다 베어지고 넓은 초지로 변했다.

 

 

초지를 지나자 넓다란 과수원이 펼쳐진다. 과수원에서 틀어 놓았는지 라디오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크게 들려온다. 이 과수원에서 물을 얻을 수 있다 해서 둘러 보니 멀리서 일을 하는지 인기척은 없다.

과수원을 지나자 곧 바로 '지기재'다. 17시 40분. 큰재에서 10시간 걸렸다. 그렇다면 아까 그 포장도로는 개머리재라는 이야기인데... 선답자들의 종주기엔 비포장도로라고 했는데, 근래 포장이 된 듯하다. 그 때문에 위치 확인에 헷갈렸다.

'개머리재'는 재의 지형이 개의 머리 형태를 닮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고, '지기재'는 과거 동네 뒷산에 도둑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적기재'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지기재로 변해서 생긴 이름이다.

이곳 지기재까지를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제 18 소구간으로 나누어 놓았다. 그리고 지기재에서 화령재까지를 제 19 소구간으로 또 나누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은 선답자들이 큰재 ~ 신의터재 까지를 하루 구간으로, 또 신의터재 ~ 갈령까지를 다음 구간으로 조금 길게 잡고 진행한다. 우리도 그렇게 좀 길게 잡고 진행하기로 했다.


        

# 진짜 지기재. 분수령 표지판과 비석이 보인다.

 

 

지기재 분수령 표지판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들어서니 지기재 마을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길가 과수원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땀에 흠뻑 젖어 있는 우리를 의아한 듯 쳐다본다. 복장으로 보니 시골집에 들리러 온 사람들인가 보다.

물이 간당간당해서 지기재 마을로 들어가 얻기로 했다. 마침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시길래 인사 드리고 물을 요청했다. 흔쾌하게 승낙하시더니 물 담을 그릇을 달라고 한다. 워터백과 물병 몇 개를 드렸더니 집안으로 들어가 물을 가득 담아 주신다.

집에 들어 가고 나올 때 문을 꼭꼭 닫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께서 물을 길러 간 잠깐 동안 마당에 서 있었는데,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모기떼가 팔다리를 집중 공격한다. 그래서 문을 꼭꼭 닫고 사시는 가 보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시원한 물 한 모금 들이키고 다시 출발했다.


                     

# 지기재 마을 입구의 작은 연못에 핀 부들.

 

 

                     

# 연못옆 푸른 대밭사이로 대간길은 열려 있다.

 

 

대밭을 헤치고 올라 가니 무명봉과 능선이 이어진다. 허기가 져서 능선에서 잠시 쉬고 간식을 먹었다. 삶은 감자와 과일로 허기를 메우는데 우리보다 더 허기가 져 있었는지 산모기떼가 새까맣게 달려든다. 손을 휘둘러 쫓아 보지만 소용이 없다. 나중에 하산하여 살펴보니 반바지를 입은 마눌은 팔 다리가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다. 무섭다 지기재 산모기떼!!!!!!!!!!!


                      

# 능선을 넘어서자 금은골 마을로 통하는 농로가 나온다. 금은골 마을의 미류나무.

 

 

금은골 마을을 벗어나 대간길은 다시 산을 차고 오르게 나 있다. 이때부터 나는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임도를 개머리재로, 개머리재를 지기재로 착각하여 의외로 빨리 진행되고 있다고 한껏 고무되어 있다가 그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허탈했던 탓일까? 신의터재까지 이르는 1시간 30분여 동안 산길을 오르내리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고관절 부분이 뻣뻣해지고 종아리도 팍팍하게 땡기는 것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마눌 보고 앞장서라 하고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올라 갔다.

지친 몸으로 뻣뻣해진 다리로 마지막 구간을 진행하자니 죽을 맛이다. 대간길이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마지막 구간은 좀처럼 끝을 보여 주지 않는다. 이른바 강모씨 작명(作名)의 '백두대간 구간 마지막 증후군'이다.


                     


# 오늘 구간 마지막의 바위 슬랩지대.

 

 

# 억지로 억지로 힘들게 나아가다 보니 드디어 신의터재가 눈앞에 보인다. 개활지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금불초.

 

 

# 드디어 신의터재에 도착(19:37).지기재에서 1시간 30분 거리인데, 무더위에 지친 우리는 1시간 42분이 걸렸다. 이정표 기둥에 비친 지친 모습의 강씨 내외.

 

 

        

# 신의터재. 표지석과 김준신의사 기념비 그리고 쉼터가 있다. 화장실도 있어 비박하기에 그만이다.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무덥고 습한 날씨 속을 악전고투 끝에 신의터재에 도착했다. 신의터재 쉼터에 짐 풀고 화동택시에 전화했다. 30분 이상 걸리겠단다. 신의터재에는 지나 다니는 차량이 아주 많았지만, 너무 지쳐 히치하거나 차를 갈아 탈 힘도 없다. 기다릴테니 어서 오라 하고 벤치에 드러누웠다.

한참 쉬다가 지기재 마을에서 충분히 얻어 온 물이 많이 남았길래 아쉬운대로 고양이 세수하고 옷도 털고 하니 택시가 도착했다.


그 택시 기사분 평소 대간꾼들을 많이 만나는 모양이다. 오늘도 우리 말고 두 팀을 더 태웠다고 한다. 그 중의 한 분과 지기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지기재에서 아무리 찾아도 손님이 없더란다. 전화를 해보니 지기재에 있는데 왜 않오느냐구 신경질을 내더란다. 그래서 주변 지형을 자세히 물어보니 그 사람도 개머리재에 있으면서 지기재로 착각하고 있었다 한다.

우리처럼 개머리재에서 헤맨 사람이 또 있나 보다. 개머리재가 작년에 포장이 되었는데 지도가 업데이트 되지 않았고 선답자들의 종주기도 몇 년 전의 것이니 당연히 헷갈릴 수 밖에... 오늘 개머리재가 사람 여럿 잡는다. 이름 탓인가.....

기사님과 이런저런 얘기하며 큰재에 오는 동안 주위는 이미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큰재에 있던 차들은 다 떠나고 우리 차만 홀로 서 있다. 택시비 20,000원.

캄캄한 시골길에 차량 통행도 없는 지라 차 앞 뒷문 열어 놓고 그 사이에서 홀라당 벗고 물수건으로 몸을 대충 닦아 내고 옷도 갈아 입었다. 새옷으로 갈아 입으니 이제 조금 사람 비슷한 냄새가 난다. 낮 동안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대간 끝내고 나니
몸에서 쉰내가 보통 나는 것이 아니었다. 택시 타고 오는 동안 기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뒷유리창을 모두 열어 놓고 왔었다.

옷 갈아 입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추풍령쪽 날머리에서 불빛 하나가 내려온다. 홀로 대간을 하고 이곳에서 1박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배낭이 무겁고 매트도 달려 있다. 물을 사려는 듯 박할머니네로 들어가더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도 원래는 신의터재에서 1박하고 갈령까지 내쳐 갈려고 했었는데... 그러나 지금 체력 상태로는 여기서 멈춘 것이 잘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많이 아쉽기는 해도...

모동 거쳐 황간으로 가서 고속도로 진입로를 찾는데 또 한참이나 헤맸다. 분명히 이정표대로 진행했는데 황간 IC가 나타나질 않는 것이다. 추풍령쪽으로 한참 가다가 차를 되돌려서 황간읍내에서 다시 차근차근 찾으니 의외로 가까이 황간 IC가 기다리고 있다.

아, 오늘은 이래저래 길 헤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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