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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열세번째(큰재~신의터재)-고개, 고개, 고개들!!! 본문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여름 휴가다. 직장인에게 여름 휴가가 없다면 어떻게 이 힘들고 팍팍한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팍팍한 일상에 단비 같은 축복인 휴가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언제나 지나고 나면 짧기만한 여름 휴가이지만, 다른 회사보다는 좀 긴 휴가를 주는 회사라 일단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강/사/랑이 다니는 회사는 오래 전부터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 이 회사를 선택하게 된 제일 큰 이유도 주 5일제 근무 형태에 있었다. 그 이유는 그 이전에 학교 졸업하고 처음 취직했던 회사가 한 달에 딱 하루만 휴일을 주는 휴일 가뭄 회사였기 때문이다. 지금 회사는 다른 것은 몰라도 휴일 하나만큼은 넉넉한 편이다. 여름 휴가의 경우도 전 그룹사가 8월 첫 주 한 주일 전부 일시에 휴가를 간다. 따라서 앞뒤 주말까지 합하면 무려 9일 간의 여름 휴가가 탄생하는 것이다. 넉넉한 일정 때문에 해마다 여름 휴가 때는 형님, 누나네와 짧게라도 같이 보내는 시간을 가졌는데, 올해는 각기 휴가 계획이 달라 각개전투로 보내기로 했다. "잘 됐다, 이 참에 백두대간이나 왕창 진행해 보자!" 총 9일의 휴가 기간 중 최소한 4일 이상은 대간의 품속에서 놀기로 작정하고 마눌에게 계획을 얘기했더니, 이 더운 날씨에 누구 죽일 일있냐며 펄쩍 뛴다. 그러면 일단 휴가 시작하면 바로 대간에 들어가서 큰재 ~ 신의터재 구간을 비박 내지는 민박하면서 진행하고 다음날 신의터재 ~ 갈령 구간을 해보고 결정하자 했다. 일단 대간 속에 밀어 넣어 놓으면 어떻게든 따라 오겠지 하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내 전략을 눈치 챘는지 오히려 날도 무덥고 휴가 시작이니 만큼 일단 신의터재까지 한 구간만 해보자고 역제의를 해온다. 이 무더위가 어지간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사실 막상 백두대간에 들어가면 나보다 훨씬 가볍게 산길을 걷는 사람인데, 언제나 계획 세울 때는 이렇게 온갖 걱정과 엄살이 심한 편이다. "좋다. 이 때 아니면 언제 내가 그대 청을 들어 주겠는가? 일단 한 구간이라도 해 보십시다!"
구간 : 백두대간 제 18,19(일부) 소구간(큰재 ~ 지기재 ~ 신의터재)
고개의 여러 이름들(嶺,峙,재,峴)
본디 높은 언덕을 뜻하는 말이다.
'치'는 또 다른 말로 '티'라고도 하는데, 그리 높지는 않지만 완만하다기보다는 가파른 고갯길을 말한다. 고개의 일반적인 접미사라고 보면 편하다. 특별히 규모나 성격상의 기준은 없는 말이다. 조'령'같은 큰 고개도 한 편으로는 문경 새'재' 라고 부르고, 비행기'재'같은 험준한 고개도 '재'이고, 박달'재'같은 평범한 고개도 '재'이고... 왠만한 데는 다 '재'라고 해도 통한다. 작은 고개로, 동네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서울에 보면 아현동이니, 논현동이니 그런 동네들이 있다.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18 소구간 큰재 ~ 신의터재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큰재 들머리가의 마을 표지석. 강모씨와 애마 그리고 뒤쪽의 박할머니댁도 찍혔다.
인성분교 담벼락을 따라 걸어 가는데, 봉고차 한 대가 도착하더니 대간꾼 몇 사람이 차에서 내린다. 오늘 구간엔 꽤 많은 사람들이 진행을 하나보다.
# 초입을 지나 한참을 가자 대간길은 오솔길처럼 편하게 펼쳐진다.
# 몇 개의 묘와 완만한 봉우리를 넘어서자 시멘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이 시멘트 포장길은 지도상의 '이영도 목장'으로 통하는 길이다.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 가자 철 대문으로 길을 막아 놓았고 대간길은 거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숲으로 올라간다. 이후 대간길은 계속 이영도 목장을 끼고 길게 이어진다. 상당히 규모가 큰 목장인가 보다. 소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 오늘 구간엔 청개구리가 유난히 많다. 발 아래도 수두룩해서 밟지 않으려고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큰재를 출발한 지 1시간 30분 가량 지나 회룡재(回龍峙)에 도착했다. 세월 지나 삶의 방식도 바뀌어 더이상 사람들이 산길을 걷지 않는 바람에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며 사람들의 삶도 이어 주었을 고개들은 이제는 잡초 속에 묻혀 간다. 회룡재도 이제는 대간길만 사람 발자취가 남아 있을 뿐 상주와 영동을 이어 주던 원래길은 잡초가 무성하다. # 회룡재(09:09). 용이 휘감고 나간 모양인가? 고개란 것이 원래 구불구불 용이 휘감듯 굽어지기 마련이다.
오늘 구간은 전체적으로 조망은 볼 수 없고 무성한 수풀 속을 진행하게 된다. 햇볕이 차단되어 다행이기는 하나 바람 한점 불지 않아 푹푹 찌는 찜통 속이다. 일기예보는 강수확률을 30% 정도 예상했으나 비는 올 기미가 없고 단지 습도가 높아 뜨거운 전기 밥통 속을 걷는 기분이다. 기상청은 연일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기록적인 무더위를 외치고 있고 오늘도 최고기온은 35도 라고 한다. 그 예상 증명하듯 옷은 이미 완전히 다 젖어 버렸고 워터백 호스를 자주 입에 물게 된다.
옛날 옛날에 한 새댁이 있었다. 그 새댁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너무 혹독했다. 시어머니는 하루종일 며느리를 감시하면서 괴롭힐 구실이 없나 찾는 그런 아주 독한 시어머니였다고 한다. 어느날 새댁이 밥을 짓다가 밥에 뜸이 잘들었나 밥알 몇 알을 입에 물고 맛을 보았다. 마침 부엌으로 들어오던 시어머니가 그걸 보고 대뜸 며느리를 호통치며 "야이 망할년아 네년이 감히 어른들도 손대지 않은 음식에 손을 대?" 하면서 며느리를 호되게 내리 쳤다.
# 모싯대. 초롱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이다. 동의보감에는 '계로기'로 기록되어 있다. 뿌리를 채취해 해열, 해독, 거담 등 감기 증상이나 산후 임산부의 이뇨촉진의 약재로 쓴다.
# 닭의장풀. 닭장 부근에서 흔히 보이고 꽃잎 모양이 닭벼슬을 닮아 얻은 이름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꽃이 피는 대나무'라 하며 가까이 했다 한다.
# 보랏빛 야생 도라지꽃.
# 짚신나물. 장미과이다. 한방에서는 용아초(龍芽草)라 하여 지혈제로 쓴다.
# 회룡재에서 개터재로 가는 대간길. 사면을 가로질러야 한다.
회룡재에서 개터재 가는 길은 몇 개의 무명봉을 연속으로 오르 내려야 한다. 목장으로의 진입을 막기 위해서인지 굵은 철사줄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이 구간의 대간길은 산 마루금이 아니라 사면을 가로질러 가겠끔 되어 있다.
# 개터재(09:50). 큰재에서 2시간10분 정도 소요 되었다.
개터재는 부근의 개터골에 왕실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로 봉산재, 효곡재, 왕실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개터재 역시 인적 끊긴 지 오래인듯 잡초가 무성하다.
# 개여뀌와 노린재. 잎과 줄기를 찧어서 냇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기절해서 떠오른다고 해서 어독초(魚毒草)라고도 한다.
# 노란색의 미나리 아재비.
# 등골나무. 생긴 것과는 달리 국화과이다.
# 흰여로. 백합과이고 유독식물이다. 유독식물이지만 뿌리를 법제하여 한약재로도 쓴다. 중풍이나 벌레 독에 효능이 있다.
개터재에서 윗왕실재에 이르는 길은 아주 멀고 지루한 길이다. 온도가 높고 습도까지 높아 아주 후텁지근한 날씨에 바람까지 없는 숲속을 걷는다는 것이 여간 곤욕스럽지가 않다.
# 10.3KM를 걸어 왔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쉬고 싶은데 윗왕실재에는 마땅히 쉴 곳이 없다. 배도 너무 고픈데... 다시 산길을 따라 5분여 올라가니 양쪽으로 가파른 비탈이 형성된 안부의 마루금이 나타난다.
# 477봉에서 바라 본 백학산. 아직 한참을 올라야 한다.
식사 후의 굳은 몸으로 무더위 속에 오름을 차고 오르자니 죽을 맛이다. 백학산은 육산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비슷한 높이이고 맨 마지막 봉우리가 정상이라고 선답자들의 종주기에 나와 있다. # 백학산 정상. 학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휴식한 후 출발하니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꺾여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직진하는 쪽 숲속에는 아까 만났던 대간꾼들이 휴식 중이다. 가파르게 올라 왔으니 당연히 다시 가파르게 내려가야 한다.
# 수량은 적으나 너무나 시원했던 계곡물.
임도를 따라 내려 오는데, 어디선가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임도 옆 조그만 계곡에 수량은 적지만 물이 흐르고 있다. 일단 작은 PET병에 예비로 물을 두 병 담았다. 집에서 나서면서 물을 충분히 준비했는데 무더운 날씨 탓에 물소비가 많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미리 챙겨 두었다. # 개머리재로 착각한 임도 갈림길.
# 무명봉을 하나 넘자 대간길은 논을 끼고 다시 야산으로 꺾여 들어간다.
# 칡넝쿨이 대간길을 온통 뒤덮어 진행하기가 너무 어렵다.
# 1시간여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니 과수원길을 따라 멀리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아니, 벌써 지기재에 도착했는가? 지기재에 도착하려면 시간상으로 아직 멀었는데... 오늘 휴식을 많이 해서 걸음이 빨라졌나? 지도를 다시 꺼내 확인해 본다. 그때까지도 여기가 개머리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지도나 선답자들의 종주기에 개머리재는 비포장도로이고 지기재가 2차선 포장도로라고 나와 있었으니까. # 갑자기 임도 하나가 나타난다. 지기재에서 신의터재 가는 길에는 임도와 만나질 않는데...
임도를 벗어나 숲속으로 다시 들어가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완만한 능선길을 주욱 진행하다가 급경사 내리막을 한참을 내려 가니 넓은 초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제야 비로소 여기가 어딘지 감이 잡힌다.
초지를 지나자 넓다란 과수원이 펼쳐진다. 과수원에서 틀어 놓았는지 라디오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크게 들려온다. 이 과수원에서 물을 얻을 수 있다 해서 둘러 보니 멀리서 일을 하는지 인기척은 없다.
# 진짜 지기재. 분수령 표지판과 비석이 보인다.
지기재 분수령 표지판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들어서니 지기재 마을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길가 과수원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땀에 흠뻑 젖어 있는 우리를 의아한 듯 쳐다본다. 복장으로 보니 시골집에 들리러 온 사람들인가 보다. # 지기재 마을 입구의 작은 연못에 핀 부들.
# 연못옆 푸른 대밭사이로 대간길은 열려 있다.
대밭을 헤치고 올라 가니 무명봉과 능선이 이어진다. 허기가 져서 능선에서 잠시 쉬고 간식을 먹었다. 삶은 감자와 과일로 허기를 메우는데 우리보다 더 허기가 져 있었는지 산모기떼가 새까맣게 달려든다. 손을 휘둘러 쫓아 보지만 소용이 없다. 나중에 하산하여 살펴보니 반바지를 입은 마눌은 팔 다리가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다. 무섭다 지기재 산모기떼!!!!!!!!!!! # 능선을 넘어서자 금은골 마을로 통하는 농로가 나온다. 금은골 마을의 미류나무.
금은골 마을을 벗어나 대간길은 다시 산을 차고 오르게 나 있다. 이때부터 나는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임도를 개머리재로, 개머리재를 지기재로 착각하여 의외로 빨리 진행되고 있다고 한껏 고무되어 있다가 그 모든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허탈했던 탓일까? 신의터재까지 이르는 1시간 30분여 동안 산길을 오르내리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 오늘 구간 마지막의 바위 슬랩지대.
# 억지로 억지로 힘들게 나아가다 보니 드디어 신의터재가 눈앞에 보인다. 개활지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금불초.
# 드디어 신의터재에 도착(19:37).지기재에서 1시간 30분 거리인데, 무더위에 지친 우리는 1시간 42분이 걸렸다. 이정표 기둥에 비친 지친 모습의 강씨 내외.
# 신의터재. 표지석과 김준신의사 기념비 그리고 쉼터가 있다. 화장실도 있어 비박하기에 그만이다.
그 택시 기사분 평소 대간꾼들을 많이 만나는 모양이다. 오늘도 우리 말고 두 팀을 더 태웠다고 한다. 그 중의 한 분과 지기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지기재에서 아무리 찾아도 손님이 없더란다. 전화를 해보니 지기재에 있는데 왜 않오느냐구 신경질을 내더란다. 그래서 주변 지형을 자세히 물어보니 그 사람도 개머리재에 있으면서 지기재로 착각하고 있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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