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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개념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의 개념

강/사/랑 2007. 10. 10. 12:54
백두대간의 개념

 

백두대간이란?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인식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산줄기로서, 총길이는 약 1,400km에 이릅니다.
지질구조에 기반한 산맥체계와는 달리 지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인간의 생활권 형성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산지인식 체계입니다.
백두대간의 구성(체계도)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표시된 15개의 산줄기들은 10개의 큰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자 그것을 구획하는 울타리 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 검증과 고증을 거쳐오면서 발전시켜온 전통지리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두대간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삶의 터전인 이 땅을 가장 정확하게 읽어내고 표현해 낼 수 있다. 산줄기가 강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산맥의 혼돈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대안이 바로 백두대간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일제의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산맥개념은 하루속히 우리의 전통지리관인 백두대간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도만 가지고도 우리의 산줄기와 강줄기의 근본을 알 수 있고, 우리 민족사의 굴곡들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백두대간, 살아 꿈틀거리는 불가항력의 힘이 느껴지는 거대한 산줄기는 바로 이 땅의 역사 다.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 체계를 정착 시켜 나간다면 머지않아 백두대간이라는 가슴 벅찬 이름이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올 것이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이 곧 분수령이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한반도의 등뼈를 이 루는 백두대간은 동과 서를 크게 갈라놓은 산줄기임과 동시에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역할을 한다. 태초에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린 산줄기들은 저마다 대간의 저력 을 닮은 모습으로 한반도 구석구석으로 가지를 쳤다.
그렇게 해서 대간(大幹),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을 일구어 냈다. 기둥 줄기인 대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10대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인 정맥들이 국토의 뼈대가 되고 있다. 백두대간은 1625여km에 이 른다. 우리가 아직 가볼 수 없는 북녘 땅에는 2000m급의 고봉들이 줄이어 있다. 남쪽에는 지리산에서 향로봉까지 약 670km에 이르는 거리에 설악산, 태백산, 속리산, 덕유산 등을 품 고 있다. 한반도를 일군 백두대간은 대륙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하여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기운으로, 이 땅의 근본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 한다.

백두대간의 개념이 언제부터 우리민족의 지리관으로 자리잡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 러나 어느 날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료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은 조선 초부터 지도상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지도상에 반영되었을 것이 란 사실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단지 사료가 없어 고증이 안될 뿐이다. 18세기에 이르러 <산경표>에서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

<산경표>는 지리학자인 여암 신경준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후 19세기에 고산자 김정호는 심혈을 기울여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대동여 지도는 정밀함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제작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도로 인정받고 있 다. 그러나 대동여지도는 김정호 개인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우리 지리관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산경표>는 전국의 산줄기를 1대간(大幹), 1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규정 했고 여기서 다시 가지친 기맥(岐脈)을 기록했다. 산줄기의 순서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중심 산줄기로 하고 여기서 가지친 장백정간과 낙남정맥을 우선하고, 백두대간 의 북쪽으로부터 가지친 차례대로 그 순서를 정했다.

 

백두대간과 정백정간은 산이름을, 해서나 호남은 지역 이름을, 나머지 11개는 강이름에서 따 와 산줄기의 이름을 정했다. 때문에 이름만으로도 강의 위치와 지역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강이름을 따다 이름을 지은 것은 정맥의 정의를 강유역의 경계능선, 즉 분수령으로 해석했 기 때문이다. 또한 강의 위치, 유역의 넓이, 모양을 알아보기 쉽게 하여 강과 그 유역을 파 악하여 지형지세를 쉽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 산이 곧 그 강을 이 루는 물의 산지라는 인식를 비롯하여 산경표는 활용도를 중요시 하여 제작된 지도였다.

1913년 최남선은 조선광문회에서 『산경표』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출판한 적이 있었다. 하 지만 일제의 식민지 정책으로 그 가치는 묻혀버렸고 영영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그러나 1980년 겨울,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씨는 우연히 인사동 고서점에서 "산경표"를 발견했다. 당 시 대동여지도 복간을 준비하던 중 몇가지 의문에 고심했던 이씨에게 "산경표"는 문제를 푸 는 열쇠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우형씨는 백두대간을 알리기 위해 많는 노력을 하였다. 그 결실을 거두어 백두대간은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산맥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일본인 지리학자 야스 쇼에이가 재 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서 기인된 것이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자원 찬탈을 시도하기 앞서 고토분치로로 하여금 1900년부터 1902년까지 우리나라 지질을 탐사토록 한 결과 산맥이 등장하였다. 산맥은 백두산을 매개로 일체가 되는 우리의 민족의 구심점을 없애고 백두대간을 훼절시켜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도입되었다.

백두대간을 마천령산맥, 함경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으로 나누었고, 그렇게 나눈 산맥에 잔 가지를 붙여 백두대간의 본래 모습을 알지 못하게 했다. 또한 낭림산맥을 강조 태배산맥-낭 림산맥의 선을 나라지형의 중심축으로 부각시켰다. 태백, 소백 등 다른 산맥은 모두 산이름 이 들었갔으나 백두산이 있는 마천령 산맥은 고개이름인 마천령을 따서 마천령산맥이라고 지명하였다. 또한 가장 짧은 산맥인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백두산 최고봉을 일왕의 이름인 대정으로 정하여 대정봉이라고 바꿔 놓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고토가 우리나라 땅을 조사한 기간은 1900년 및 1902년 두 차례에 걸친 14개월 동안이었다. 어떻게 기술수준도 미약했던 100전에 한 나라의 지질구조를 단지 14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완전하게 조사하는 일이 가능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3년에 발표된 고토의 지질학 적연구성과는 우리나라 지리학의 기초로 자리잡아 지리교과서에 들어앉게 되었다. 고토는 땅속의 맥줄기를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하였다. 지질구조선 즉, 암석의 기하학적인 형 (形), 이것들의 삼차원적 배치의 층층을 기본선으로 하였다. 그러다보니 땅위의 산줄기들의 흐름은 무시되고 땅속의 모양새만 따지다보니 산맥줄기가 강이나 내를 건너뛰고,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현실임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손으로 이 땅을 조사해 볼 생각조 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의 침략야욕이 만들어낸 지리개념이 현재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해방 후 50년이 넘도록 우리 지형에 맞지도 않는 산맥개념을 쓰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장백정간(長白正幹)
북쪽으로 두만강, 남쪽으로 어랑천·수성천의 분수령. 백두대간의 원산 설령봉에서 시작된 다. 만탑봉(2,205m), 괘상봉(2,136m), 궤상봉(2,541m), 등을 지나 함경북도 내륙을 서북향으 로 관통하는 산줄기. 두만강 하구 서수라곶에서 끝을 맺는다.

낙남정맥(洛南正脈)
북 낙동강이 흐르는 낙남정맥은 남부해안지방의 분계선으로 생활문화와 식생, 특이한 기후 구를 형성시키는 중요한 산줄기.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낙동강 하구 분산(盆山)에서 끝난다. 옥산(614m), 무량산(575m), 여항상(744m), 무학산(763m) 등이 속한다.

청북정맥(淸北正脈)
평안북도 내륙을 관통하며 압록강의 남쪽을0 이룬다.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신의주 남쪽 압록강 하구의 미곶산에서 끝난다. 대암산(1,566m), 삼봉산(1,585m), 등이 속한다.

청남정맥(淸南正脈)
웅어수산에서 시작하여 청천강의 남쪽 유역과 대동강의 북쪽 유역을 경계하는 분수령. 묘향 산(1,365m), 용문산(1,180m), 서래봉(451m), 강룡산(446m), 광동산(396m)을 지나 용강의 남 포에서 대동강 하구 광량진에서 끝난다.

해서정맥(海西正脈)
백두대간 두류산에서 시작하여 서해 장산곶에서 끝난다. 우리나라 북부와 중부지방의 문화 를 경계하는 분수령이다. 화개산(1,041m), 대각산(1,277m), 설봉산(600m)등이 해서정맥에 속한다.

임진북예성남정맥(臨津北禮成南正脈)
북으로 임진강, 남으로 예성강의 분수령. 황해도의 오른쪽 울타리를 이룬다. 해서정맥의 화 개산에서 시작하여 임진강과 한강의 합수점, 즉 개성의 남산인 진봉산(310m)이다. 학봉산 (664m), 수룡산(717m), 천마산(762m) 등이 속한다.

한북정맥(漢北正脈)
한북정맥은 북으로 임진강 남으로 한강의 분수령. 백봉에서 시작한 백암산(1,110m), 법수령 을 지나 철책 넘어 대성산으로 이어진다. 교하의 장명산(102m)에서 끝난다.

낙동정맥(洛東正脈)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매봉산에서 시작하여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난다. 동해 안 지방의 담장 역할을 한다. 백병산(1,259m), 통고산(1,067m), 백암산(1,004m), 주왕산 (720m), 단석산(829m), 가지산(1,240m) 신불산(1,209m) 등이 속한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강과 금강을 나누는 분수령으로 속리산에서 시작하여 칠현산에서 끝난다. 도산(547m), 상 당산성, 좌구산(657m), 보현산(481m)등이 한남금북정맥을 이룬다.

한남정맥(漢南正脈)
한강 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분계령. 한남금북정맥의 칠현산 북쪽 2킬로미터 지점에 위 치한 칠장산(492m)에서 시작 강화도 앞 문수산성에서 끝맺는다. 백운산, 성륜산, 광교산 등 이 속한다.

금북정맥(錦北正脈)
남으로 금강이 흐른다. 한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와 칠현산(516m), 안성 서운산, 천안 흑성산 (519m), 아산 광덕산(699m), 청양 일월산(560m), 예산 수덕산(495m)을 지난다. 태안반도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이다. 장수 영취산(1,076m)에서 시작하여 진안부귀산(806m)까지 이 어진다. 장안산(1,237m) 수분현(530m) 팔공산(1,151m), 임실 성수산(1,059m), 진안 마이산 (667m), 등이 속한다.

금남정맥(錦南正脈)
금강의 남쪽 울타리. 그러나 온전한 울타리를 이루지는 못한다. 애매한 지점(565m)에서 출 발하여 부소산 조룡대에서 끝난다. 대둔산(878m), 계룡산(828m), 운장산(1,126m), 등이 속한 다.

호남정맥(湖南正脈)
정맥의 동쪽은 섬진강, 서쪽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이다. 낙남정맥과 함께 우리나 라 남부해안문화권을 구획하는 경계선. 금남호남정맥에서 갈래친 후 백운산에서 끝난다. 남 도의 큰 산을 모두 끌어앉는다. 만덕산(762m), 내장산(763m), 추월산(729m), 무등산(1,187m), 제암산(779m), 조계산(884m) 등이 속한다.

 

 

<백두대간의 유래>

 

우리국토의 등뼈를 이루는 중심 산줄기인 백두대간의 유래는 우리민족 고유의 성산인 {백두산(白頭山)}의 신성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백두산은 고대 단군신화로부터 시작해서 언제나 크고 높으며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으며 본격적으로 숭배화한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 생각됩니다. 또한 조선 세종때 두만강, 압록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을 확보함에 따라 백두산은 영토의식 성립과 함께 민족의 산으로 명실상부하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백두대간과 산맥체계의 차이>

 

* 최초출현

실질적 내용상의 백두대간이 최초로 나타난 문헌은 10세기 초이 고려 승려 도선이 지은 옥룡기(玉龍記)로서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끝났으니 물의 근원, 나무 줄기의 땅이다."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백두대간을 의미하는 대간(大幹)이라는 용어를 국내에서 최초로 사용한 문헌은 이중환의 [택리지](1751년)로서 "대간은 끊어 지지 않고 옆으로 뻗었으며 남쪽으로 수천리를 내려가 경상도 태백에 까지 통하여 하나의 맥령(脈嶺)을 일루었다."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백두대간과 백두정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문헌은 이익의 [성호사설](1760년)로서, 백두산을 우리나라의 조종산이며 대간의 시작 산으로 보았으며 "백두대간(白頭大幹)"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산맥상황도 나름대로 제시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백두대간을 체계화한 것은 1770년경(영조)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로서 백두대간에 대해서 그 용어뿐만 아니라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연결의 상태·관계·순서를 알기쉽도록 일목요연하게 표로 제시 하였습니다. 다만 산경표의 저자나 제작시기에 대하여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청에서는 ['96 백두대간 연구용역] 결과보고서에 의거 여암의 저서로 추정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여암이 지은 [산수고]에 산경의 내용이 있고 이 저술과 거의 동시기에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여 신경준이라고 보게 되었습니다.)

* 표기의 특징

백두산을 어미산(根,母,始), 백두대간을 몸체(幹,身)로 표현하여 백두산과 백두대간을 인체의 母-體로, 나무의 根-幹관계로 보고 있으며 지질구조나 구조선의 방향등 지표하의 지구 내부적 구조와 관계없이 지표상에 나타난 산천(山川)의 모양과 방향을 기초로하여 표기하였습니다.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를 위주로 한 표기의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 기복은 있으나 단절되지 않은 큰산줄기(大連山脈)
2. 대분수령으로 한반도 北-南走向의 大山脈軸
3. 대간, 정간, 정맥으로 계급화(位階性)
4. 주요 하천의 본류 방향을 기준으로 正脈이름을 붙임.(예 : 낙동강동쪽 → 낙동정맥)
5. 분기(分岐)가 이루어 진 곳에 주요 산들이 위치(두류산 태백산, 속리산등)
6. 지리산은 백두산의 氣가 흘러(頭流)와 축적된 곳으로 보아 두류산으로 표기하고 중요성을 부여하였습니다.

 * 백두대간의 산지체계 인식

수계가 연속적인 것과 같이 산계도 연속되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한반도의 지리적 일체감을 인식할 수 있으며 경관측면에서 첨봉이나 능선 및 생활권역의 연결통로로서 주요고개를 중요시하고 고도가 높은 산능선일수록 위계가 높은 기본줄기로 보았습니다.

 

줄기의 의미로 연결된 선을 설정하고 폭을 가진 띠의 형태인 산지개념 이므로 지질구조, 지형의 형성과정과 변화등은 고려하지 않았으며 인문 적인 생활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분수계 체계를 중시하며 국토의 일체감 측면에서 백두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면서 백두산의 상징성을 한반도 전역으로 전파한다고 인식하였습니다.

 

오늘날 산맥의 표시

 

* 산맥식 표기의 출현은
현행산맥체계는 일본인 지질학자 고또분지로(小藤文次郞)가 1903년 발표 한 [한국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후 1904년, 야쓰쇼에이(失津昌永)가 이를 바탕으로 [한국지리]를 저술 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08년 한국에서 나온 대동서관 편집의 [대한 지지교과서(고등소학 대한지지)]에 산맥식 표기가 그대로 채택된 이후 자연스럽게 도입·사용되었습니다.

 

※ 야쓰쇼에이는 저서 [한국지리]에서 "고또분지로가 1900년부터 약 15개 월간 탐험 여행에 의거하여 한국의 산악계통과 지체구조를 밝혀냈으며 1901년 조선남부의 지세, 1902년 조선북부의 지세, 그리고 1903년에는 조선의 산악에 대해서 각각 논문을 발표 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현행산맥체계에 비해 백두대간 표기는 고려초에 등장한 이후 20세기초까지 약 1,000년간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산맥식 표기의 특징은
지질구조선에 의한 산맥체계입니다.
지도상에 산맥을 표기하면서 산계(山系)나 산맥(山脈)의 용어를 사용 하였습니다.
산맥방향을 3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한국방향, 요동방향, 중국방향)

 

 

두 방식 표기의 장단점

 

백두대간 체계는 지표분수체계에 따라 분류하였고, 현행 산맥체계는 지질구조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 성격과 장단점


구분
내용
산맥체계
성격
- 산과 강에 기초하여 산줄기를 형성
- 산줄기는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짐
- 실제 지형과 일치하는 자연스러운 선
- 지하지질구조선에근거하여 땅위의 산을 분류
- 산맥선이 중간에 강에 의해 끊어짐
- 실제지형과 불일치하는 가공된 지질선
장점
- 경관상 잘 보이는 무단절의 분수령
   중심으로하천, 산줄기등의 파악이 쉬움.
- 따라서 산지이용계획과 실천에 편리함
- 풍수지리적한국지형과 山系의 이해에 편리
- 국제관행에 부합됨.
- 산맥형성의원인과 관련성이 높음.


 

 

<북한의 산맥체계>

북한 지리학계는 '96. 1월에 한반도 산맥체계를"백두산"을 중심으로한 "백두대산줄기" 체계로 전면 개편하였습니다.
 
 개편사유
일제의 낭림·태백산맥을 주맥으로 하는 학설은 {민족지리 말살정책} 으로 간주하여 지리학 분야에 남아있는 일제 유물(잔재)을 청산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개편입니다.
 
특징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백두대산줄기}를 한반도의 주된 산맥으로 삼았으며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을 거쳐 구재봉(하동군)까지 이어집니다.
철령산맥을 남·북한을 연결하는 산맥으로 중요시하고 실체를 인정하였으며, 전통적인 정간, 정맥개념은 사용하지 d았습니다.

* 개편내용
구분
내용
한반도의 주된 산맥
낭림 · 태백산맥 → 백두대산줄기
(백두-부전령-북대봉-마식령-태백-소백-지리산줄기)
새로만듬
마천령산맥(두류산-원산덕산)
철령산맥(623고지-기대봉)
남원산맥(지리산내 백운산-고리봉)
무등산맥(내장산-달마산)
예봉산맥(십개산-예봉산)
실체 불인정
강남산맥
광주산맥(철령-광주)
조정(2개로 나눔)
낭림산맥 : 낭림산맥(중지봉-소마대령), 만풍산맥(사수산-덕화봉)
차령산맥 : 차령산맥(오갑산-장태봉), 계방산맥(두루봉-황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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