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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다섯번째(애미랑재~한티재)-미인을 품에 안다!! 본문

1대간 9정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다섯번째(애미랑재~한티재)-미인을 품에 안다!!

강/사/랑 2008. 4. 23. 22:56
 [낙동정맥]다섯번째(애미랑재~검마산휴양림)


 
'애니미즘(animism)'이란 용어가 있다. 보통 '정령신앙(精靈信仰)' 혹은 '물신숭배(物神崇拜)' 등으로 번역된다. 고대 원시사회에서부터 기원한 것으로 동식물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事物)에 영혼(靈魂)이 있다고 믿는 신앙(信仰)을 말한다.

 

천지만물(天地萬物)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인 애니미즘은 라틴어의 '아니마(anima)'란 말에서 기원한 말이다. '아니마(anima)'는 '영혼'을 뜻하는 라틴어다.


이 용어는 영국의 인류학자인 '타일러(E.B.Tylor)'가 1871년 발간된 그의 저서 '원시사회(Primitive culture)'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책에서 타일러는 "신성한 존재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으로서의 애니미즘이 모든 종교의 기원이자 근본 원리라고주장하였다.

긴 세월 애니미즘은 원시종교의 형태로서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배척당해 왔다. 이런 경향은 기독교가 주류 종교인 서구사회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애니미즘적 신앙은 우리의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천지만물에 다 영(靈)이나 혼(魂)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왔다. 우리 조상님들에게 있어 애니미즘은 원시종교의 형태라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살아온 문화이자 삶의 일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랜 농경사회의 전통 속에서 모든 삶의 형태가 자연과 더불어 그리고 자연의 힘에 의지해 영위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연을 신격화(神格化)하고 숭배하며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하늘을 믿고, 땅을 숭배했고, 용왕을 모시고, 산신에게 빌었으며, 들에 강에 골짜기에 모두 신이 깃들어 있고, 삶의 공간인 집에도 부엌에 지붕에 외양간에 화장실에 모두 신령한 존재가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오래된 나무, 큰 바위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어 그에 의지해 삶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고 무사평안(無事平安)을 기원했다.

그것은 자연과 깊게 교감(交感)할수록 더욱 깊어지는 신앙이었다. 우리네 종주 산꾼은 이 땅의 모든 산줄기를 두 발로 더듬어 보고자 열망하는 이들이다. 홀로 산길 걷노라면 대자연의 웅장함과 오묘함, 그리고 강인한 힘에 압도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 대자연에 경외감(敬畏感)을 갖게 되고 약간의 신앙적 의존까지 하게 되는 일이 잦다.


나역시 이땅의 산꾼으로서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 종주를 하면서 무의식중에 애니미즘적 사고가 많이 형성되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산에서 맞이하는 하늘과 땅, 마루금과 계곡, 나무와 돌 어느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는 탓이다.


산에서 하룻밤 야영하다 한밤중 올려다보는 하늘. 그곳에는 수백만 광년을 달려온 별빛이 은하(銀河)를 이루고 있다. 그 별빛이 달려온 시간 앞에 인간의 세월은 먼지에 불과하다.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日出). 구름을 뚫고 올라오는 붉은 불덩이는 잠들었던 대지와 자연을 온기로 깨워낸다. 그 찬란한 광명(光明) 앞에 손 모으지 않을 도리는 없다.


만질 수 없는 해와 달 그리고 별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산행길에 노거수(老巨樹)나 큰 바위를 보노라면 굳이 신앙의 대상까지는 아니지만, 그 나무와 바위가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느껴져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된다.

그럴 때면 꼭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나무나 바위를 안거나 터치해 그들이 지나온 오랜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껴 보고, 그들과의 동질감(同質感)을 얻고자 한다. 굳이 신앙심까지는 아니라도 흐흐흡 흐흐흡 그들의 정기를 받고자 애쓰는 것이다. 그러노라면 내 몸과 영혼이 정화(淨化)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그런 자연과의 교감이 꽤 오래되었다. 이러 나의 행동은 남들이 보기에는 꽤 요상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홀로 산행 중일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유명산이나 정맥 산행 중에 지나가던 다른 산객들이 나무나 바위와 껴안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는 것을 보곤 한다.


그런 타인의 시선따위에는 둔감해진지 오래라 크게 신경쓰지 않고 나는 지금도 정성스레 자연과 교감한다. 이러다 보면 어느날 천지기운(天地氣運)을 온 영혼으로 받아들인 강/사/랑이 대자연 섭리(攝理)의 실뿌리 하나라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겠다.

낙동정맥 다섯 번째 나들잇길에는 아름드리 금강송(金剛松) 군락이 즐비하다. 그 소나무들은 수백 년 세월 그 자리에서 굳건히 뿌리내렸고 푸른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었다. 금강송은 아름다운 나무다. 군더더기 없이 쭉쭉 뻗은 이 미인송(美人松)들을 어찌 그냥 지나치겠는가? 



그 미인들 가슴에 품고 오래 교감하고자 하였다. 그러노라면 그들이 지켜냈을 긴 세월의 바람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 미인들을 품안 가득 안고 또 안았다. 자연 예상 시간보다 시간 지체가 심했다. 때문에 나중 시간에 쫓겨 고생 좀 하였다. 

그나저나 이렇게 수많은 미인들을 겁 없이 함부로 많이 안아도 괜찮을라나? ㅎㅎ




미인을 품에 안다!!


구간 : 낙동정맥 제 5구간(애미랑재~한티재)
거리 : 구간거리(18.5 km), 누적거리(79.9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8년 4월 19일. 흙의 날.
세부내용 :

 

애미랑재(07:50) ~ 695봉 ~ 묘지 ~ 칠보산(09:38) ~ 새신고개(10:20) ~ 묘지 ~ 헬기장(11:05) ~ 853봉 ~ 십지춘양목(11:42) ~ 깃재(12:20) ~ 842봉(12:37)/점심후 13:10 出 ~ 884.7봉(14:05) ~ 고원습지 ~ 850.8봉 분기봉(15:26) ~ 길주의 ~ 폐헬기장 ~ 벌목지 ~ 612.1봉 ~ 옛고개 ~ 묘지 길등재(17:20) ~ 한티재(18:35).

총 소요시간 10시간 45분.


2007년 9월말 우리 낙동 종주대는 함께 비 철철 맞으며 답운치에 내려선 후 7개월 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다. 낙동까지의 접근거리가 워낙에 멀고 낙동 못 가는 주에 대타용으로 시작했던 금북정맥에 탄력이 붙어 그냥 내처 안흥진까지 계속 진행해 버린 탓이다.

3월말 역시나 비 내리는 안흥진에 내려서서 서해 바닷물에 손 담궈 금북정맥을 졸업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7개월 동안 제처두었던 낙동으로 발길이 돌려진다. 평소에 산길을 홀로 걷길 좋아하는 홀로 산꾼이지만,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과 함께 산길을 걷고 야영하는 재미도 쏠쏠한 지라 낙동 동지들과 사발통문 돌려 산행 약속을 잡았다.

4월 18일 쇠의 날 분당에서 산꾼들이 모여 갈매기살 번개를 한단다. 퇴근해서 짐 꾸리고 서둘러 분당으로 달려 가 보지만 시각이 늦어 이미 갈매기살집은 파했고,
야탑역 호프집에서 2차 술자리가 낭자하다.

같이 자리 잡고 앉아 권커니 잣커니 밤을 세우고 싶은 맘 간절하였다. 그러나
갈길이 먼 나그네들인지라 보리술 몇 잔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낙동꾼들은 그들과 헤어져 길을 나섰다.

저녁 10:40에 분당을 출발해서 고속도로 세 개 갈아 타고 중앙고속도로 풍기나들목을 나섰다. 다시 국도로 밤길을 달려달려 광비령을 넘는데 졸음이 쏟아져 더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다.

 

마침 길가에 불꺼진 작은 휴게소가 하나 있고 한 켠에 정자도 두 개나 있어 텐트 한 동 짓기 딱 안성맞춤이었다. 얼른 집 한 채 뚝딱 짓고 침낭 속으로 파고 들었다.


 

소천면/小川面

소천면은 본래 소천부곡(小川部曲)으로 태백시 황지 본적산(本寂山), 대박산(大朴山)까지 그 영역이었고, 반이군(潘伊郡)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다고 한다. 안동부 춘양에 예속되어 있다가 고종 43년(1906)에 봉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소천면 현동(縣洞), 분천리(汾川里) 일부를 현동리(縣洞里)로, 고선리(古善里)를 고선리로, 대현리(大峴里)를 대현리로, 석포리(石浦里), 승부리(承富里) 일부를 석포리로, 승부리 일부를 승부리로, 서천리(西川里)를 서천리로, 분천리 일부를 분천리로, 두음리(斗音里)를 두음리로, 남회룡리(南回龍里), 분천리 일부를 남회룡리로, 임기리(林基里), 재산면 갈산리(葛山里), 중춘양면 매산리(梅山里) 각 일부를 임기리로 하여 소천면으로 개편했다. 지역 면적이 넓어 1963년 4월 1일 석포 출장소를 설치하여 대현, 승부, 석포리를 관할하게 하다가 1983년 2월 15일 석포면이 설치되어 대현, 승부, 석포리가 석포면으로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축소됐다. 토질은 비습(卑濕)하고 돌이 많아 약초와 잡곡 재배에 적합하다.

발리리/發里里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리(里)이다. 수양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고장은 수비면의 중심지가 되어 면사무소, 파출소, 초·중등학교와 우체국이 있다. 발리리의 발(發)은 시작을 뜻하며, 수비면의 첫 마을이란 뜻으로 풀이 할 수 있다. 자연마을로는 창뒷마, 금촌, 용수골, 화랑골 등이 있다. 창뒷마마을은 조선조 중엽에 나라의 곡식 천석을 둘 정도의 큰 창고가 있었다고 하여 창뒷마라 하게 되었다. 용수골은 이곳 용수폭포에 용추(龍湫)가 있었는데 약 200년 전에 갑자기 골짜기의 냇물이 말라 붙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샘을 찾아 헤매던 중 산골에서 큰 용이 목욕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사람과 마주친 용이 입으로 안개를 내뿜으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티재

수비면 계리에 있는 큰 재. 임란시 의병과 왜군이 이 골짜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바 있어, 지금도 비만 오면 핏물이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며, 통로의 반석 위에는 많은 말발굽 자국을 선명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동정맥 제 5구간 애미랑재~한티재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두어 시간 짧게 눈 붙이고 새벽 일찍 일어나지만, 공기 맑고 기운 청량한 곳이어선지 전혀 피곤하질 않다. 마침 휴게소 식당이 아침 일찍부터 장사를 한다길래 아침밥 끓이는 수고는 면했다.


구수한 된장찌개로 속을 풀고 아침 화장도 간단히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이나 달린 후에 구름을 밟고 서는 답운치(踏雲峙)에 올라 섰다. 07:16


# 하룻밤 신세진 휴게소. 정자에 집 지어 밤이슬 맞을 일은 없다.

 

 

 

뚜버기님과 뱌그라님은 이곳에서 애미랑재를 거쳐 한티재까지 오늘 하루에 내달려야 한다. 나는 작년 비 내리는 여름날 답운치에서 애미랑재까지 구간을 이미 마쳤으니 두 사람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다.


안전한 산행을 빌며 서로 격려하였다. 한티재에서 만나기로 하고 사진도 한 방 찍어 준 후, 나는 다시 차 시동 걸어 답운치를 내려갔다.

   

 

 

# 7개월 만에 다시 선 답운치. 오늘 날씨는 화창하다. 다행히 구름을 밟고 설 일은 없다.

 

 

 

# 두 분은 이곳 답운치에서 한티재까지 긴 거리를 내달려야 한다.

  

  

구불구불 답운치를 완전히 내려 옥방 쉼터에서 좌틀한다. 남회룡의 구불구불한 물길 따라 길게 진행하여 가다가 다리를 건너 다시 고개를 구불구불 올라가면 지난 여름에 캄캄한 어둠 속에 내려 섰던 애미랑재 깎아지른 절개지 아래 도착한다.

07:50. 가볍게 몸 풀고 절개지 좌측 들머리로 올라갔다.
 

 

  

# 애미랑재, 절개지 좌측 사면으로 올라갔다.

 

 

 

햇살은 따사하고 좋은데 아직 바람은 차갑다. 좌측 사면의 통나무 계단을 올라 절개지 위에 서면 지난 구간인 통고산의 위용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한차례 길고 빡세게 위로 밀어 올린다. 아직 바람이 찬 계절이라 조심조심 천천히 몸을 덥혀 가며 워밍업을 시켰다. 

 

 

 

# 깎아지른 애미랑재의 절개지.

 

 

 

08:15. 고도계에 695가 찍히는 봉우리에 올라섰다. 숲 너머로 오늘 구간의 첫 포스트인 칠보산이 건너다보인다. 우측으로 능선 마루금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조금 트인 곳이 나와 좌측 전방에 서 있는 칠보산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 우람한 산이다. 일곱 가지 보물을 품고 있다는데 무엇을 어디에 감추고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 칠보산의 우람한 위용.

 

 

 

# 진진이와 미인송의 조화.

 

 

 

# 처녀치마.

 

 

 

그대로 좌측으로 꺾어 '암봉'을 작게 하나 넘고, 아래로 내려 '묘지가 있는 안부'를 지났다. 고도가 680이 찍히는데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칠보산 오름이 시작된다. 정상까지는 고도를 250m이상 올려야 한다.

칠보산 오름은 계단식으로 차근차근 밀어 올린다.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린 후 고도를 확인하니 아직 100 밖에 못 올랐다. 한숨 돌리고 쉬는데 전방 숲속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발악적으로 들린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멧돼지의 흔적이 낭자하다.

겁이 나서 얼른 호각을 꺼내 불어 재꼈다. 그래도 녀석은 지지 않고 계속 발악한다. 자세히 들어 보니 멧돼지가 아니라 발정기를 맞은 고라니 수컷의 울음 소리다. 아마도 경쟁자들을 향해 경고를 하고 암컷들을 겁주기 위한 행위인 것 같다.

다시 한차례 밀어 올려 한계단 올라 서 보지만, 정상은 아직 한 계단 더 올려야 한다. 땀이 많이 흘러 자켓을 벗고 간식도 먹었다. 휴식 후 곧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된다.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좌측으로 산의 사면을 우회하는데, 정상은 우회하나 했더니 곧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치고 올라 정상을 향한다.

09:38.  '칠보산' 정상에 섰다.
 

 

 

 

#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려 정상인가 하지만, 계단식으로 한참 더 올라야 한다.

 

 

 

# 칠보산 정상. 이름에 비해 볼품은 없는 편이다.

 

 

 

# 이 정도가 겨우 허락된 조망이다. 가야 할 정맥길.

 

 

 

# 개별꽃 무리.

 

 

 

정상엔 삼각점과 해병대에서 세운 시멘트 표지석이 있다. 잡목이 무성하여 조망은 전혀 없다. 이름이 주는 무게감에 비해서 실망스러운 광경이다.

칠보산이란 이름은 다른 여러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금 아랫 지방인 영덕지방에도 칠보산이 있고, 수원에도 있고, 한남금북정맥 청원 땅에도 칠보산이 있고, 북한에도 같은 이름의 유명한 산이 있다. 모두들 일곱 가지 보물울 품었다고 전해진다.

잠시 한숨 돌린 후 급경사 내리막을 길게 내려갔다. 그러더니 조금 평탄하게 가는 듯하다가 곧 우측으로 꺾어 또 깊게 내려갔다. 정맥길 걸으며 이렇게 고도를 낮춰 내리는 곳을 만나면 정말 싫다. 곧 또 내린 그만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도중에 낙동의 유명스타 중 하나인 십지춘양목을 닮은 가지 많은 춘양목을 하나 만난다. 십지는 안되지만 6지나 7지쯤은 될 듯하다. 작게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새신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10:20

  

 

 

# 동생 십지춘양목.

 

 

 

# 전봇대가 정맥을 넘어가는 새신고개.

 

 

 

자료를 찾아보니 새신고개는 산새가 많이 깃들어 살아 얻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새롭게 생긴 마을인 새신마을 뒤에 있는 고개라 새신이라 불렀다고도 하지만,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고도계 확인하니 715가 찍힌다. 260m를 내렸으니 칠보산 올라 갔던 고도를 정확하게 그대로 까먹고 내려 온 셈이다.

새신고개는 신암리와 새신마을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작은 전봇대가 정맥을 넘어 두 마을을 이어주고 있다. 고개를 건너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려 봉우리를 오르고 잠시 진행하다 아래로 조금 내려 또 진행한다. '묘지'를 지나고 완만하게 고도를 높여 오르면 '헬기장'이 나온다. 11:05

 

 

 

# 쭉쭉 뻗은 춘양목들이 나그네를 환영하듯 등로가에 도열하여 있다.

 

 

 

# 잡목이 자라 기능을 상실한 헬기장.

 

 

 

이 헬기장은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헬기장으로서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야영하기에는 안성맞춤이겠다. 이곳에서 정맥길은 좌측으로 꺾인다. 잠시 진행하다 아래로 길게 떨어지더니 곧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리는데, 숲 이곳저곳에서 고라니들이 영역다툼을 하느라 발악적으로 짖어댄다. 바야흐로 춘정(春情)이 발동하는 봄이다.

'853봉'을 넘고 잠시 편하게 진행하다가 꺾어 내려 가는 부분에 낙동의 스타 '십지춘양목'이 서 있다. 11:42

  

 

 

# 이 정도면 숭례문 복원에 쓸 수 있지 않을까?

 

 

 

# 이 정도의 조망이 그나마 눈을 멀리 두게 만든다.

 

 

 

# 낙동의 스타 십지춘양목. 대단한 위용이었다.

 

  

 

춘양목의 기본 성질이 잔가지 없이 쭉쭉 뻗어 올려 곧게 자라는 것인데, 이 나무는 어떤 연유로 이렇게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뻗어 올렸을까? 아마도 자랄 때 꼭대기의 생장점이 어떤 이유로 손상이 가서 곧게 한 가지로 자라지 못하고 사방으로 맹아(盲芽)를 내뻗어 십지춘양목으로 자랐으리라 짐작해 본다.

 

어쨌거나 이 나무는 특이한 모양 탓에 이곳을 지나는 정맥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지내온 세월의 무게에 경의를 표하고 품안 가득 껴안아 정기를 나눠받았다.

이후 아래로 길게 내렸다가 전방의 우뚝한 산을 치고 올라 걱정이 많은데, 다행히 좌측으로 우회하여 가게 되어 있다. 능선 마루금을 올라 다시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는데, 이곳의 금강송들은 온통 커다란 상처를 모두들 안고 서 있다.

일제시대때 왜놈들이 항공유 제작에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낫으로 나무 밑둥을 벗기고 줄을 쭈욱쭈욱 그어 난도질하여 송진을 채취했다. 그로부터 6, 70년이 지났지만 상처가 워낙 깊어 완전히 아물지 못하고, 그 상처를 그대로 안은 채 세월의 풍파를 이겨냈다.

이 지역의 금강송들이 받은 상채기와 그것을 이겨내고 버텨온 세월이 눈물겨워 나무 하나 하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루만지고 안아주었다.

그렇게 상처입은 미인송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부부산꾼이 내려온다. 경남에서 오신 분들이다. 한티재에서 출발해서 애미랑재까지 나와는 꼭 반대로 진행하고 있다. 일곱시에 출발했다는데, 얼마나 내달렸는지 벌써 이곳까지 왔다. OK목장 싸이트에서 내 산행기도 읽어 보았단다.

이 분들은 차를 한티재에 세워 두었다 한다. 그렇다면 이 분들이 나보다는 훨씬 일찍 산행을 마칠 것이고 어차피 애미랑재에서 한티재까지 돌아가야 하므로
애미랑재에 있는 내 차를 타고 한티재로 가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경남 마루금의 부부 산꾼에게 자동차 키를 맡기고 서로 안전산행을 격려하고 반대 방향으로 헤어졌다.

  

 

 

# 겨우살이들이 나무를 점령했다. 

 

 

 

# 일제시대에 생긴 상처를 안고 70여 년을 버텨온 춘양목.

 

 

 

# 춘양목이 상처를 안고 버텨온 세월이 눈물겨워 일일이 안고 쓰다듬는데, 맞은편에서 부부 산꾼이 내려온다.

 

     

봉우리를 넘어 아래로 내리자 지도상 '야영 표시'가 있는 넓은 안부가 있다. 전방의 봉우리를 넘어 잠시 가자 '깃재'가 나온다. 12:20


깃재는 고도계가 750이 찍히는 산 꼭대기에 있는 고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로 내려서게 된다. 깃재를 지나 한차례 쭈욱 밀어 올려 '842봉'에 오르고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12:37) 시원하게 거풍까지 한번 즐기고 13:10에 출발했다

  

 

# 작은 산새 한 마리 새끼 키우느라 분주하다. 동고비인가?

 

 

 

#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깃재.

 

  

# 음~~~~~~

 

  

점심 먹고 나른한 상태를 봐주려는지 길게 진행하며 큰 고도차 없이 830, 835, 845가 찍히는 봉우리들을 대여섯 개 차례로 넘었다. 그러다 길게 한차례 밀어 올리면 삼각점과 헬기장이 있는 '884.7봉'에 이른다.(14:05)

  

 

 

# 우측으로 잠시 트인 곳이 나오는데 저 멀리 일월산이 보인다.

 

 

 

# 일월산 정상을 땡겨본다. 일월산은 계룡산, 태백산, 마이산과 더불어 기가 충만한 산으로 알려져 무속인들의 메카인 산이다.

 

 

 

# 작고 앙증맞은 솜나물.

 

 

 

# 숲 너머로 뾰족한 봉우리 하나 나타난다.

 

 

 

# 삼각점과 헬기장이 있는 884.7봉.

 

 

 

한숨 돌리고 출발하면 곧 아래로 내려가는데, 길게 계단식으로 내려게 되어있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못볼 정도로 희미하여 길잃을 염려는 없다.

계단식으로 길게 내려 계단끝에 서게 되는데, 돌아보면 884.7봉에서 반원을 그리며 휘감아 내려 왔음을 알 수 있다. 계단 끝에서 좌측으로 꺾어 깊게 내렸다가 안부를 지나 한차례 올렸다. 잠시 진행하다 전방의 산은 좌측 사면으로 우회하여 좌측으로 꺾더니 완만하게 내려가고 곧 넓은 고원지대가 나오는데 그 아래는 '고원습지'다. 14:47

   

 

# 지도에는 없는 고원습지가 나타난다.

 

 

 

이후 넓은 마루금을 오르내림 없이 길고 평탄하게 진행한다. VERY가  GOOD이다. 아무리 첩첩산중의 낙동길이지만 가끔은 이런 맛도 있어야쥐~


그러다 계단식으로 그러나 완만하게 고도를 올린다. 15:26.  '850.5봉 분기봉'에 오른다.

  

 

 

#  가끔은 이런 길도 있어야 산길 걸을 맛이 난다.

 

 

 

#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서 새잎을 피워내는 생명력.

 

 

 

# 850.5봉 분기봉.

 

   

우측으로 길고 편안하게 내려가다가 다시 완만하게 한차례 올리면 '지도상 길주의 지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좌틀하여 떨어져 내린다. 아주 길게 내려가면 내리막 정맥 좌우로 민가가 내려다보인다. 낙동길에서 민가를 보기는 처음이다. 우측 상류는 저수지 공사가 한창이다.

고도를 680까지 내렸다. 이후 대여섯 차례 오르내리며 진행하는데, 전체적으로는 고도를 낮춰가는 형상이다. 16:32. '폐헬기장'을 지나고 아래로 내렸다가 한차례 올리면 '넓은 벌목지'가 나온다.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벌목지를 따라 위로 오르면 '폐삼각점이 있는 무명봉'에 오르게 된다.

벌목이 되어 있어 우측 아래로 '계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아래로 내렸다가 한차례 올리면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612.1봉'이다.  17:00
 

 

 

 

# 일엽초.


 

  

# 저멀리 숲속에 빨간 비닐 천이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이고 있어 줌으로 땡겨보니 낙하산의 천조각이다. 아주 커다란 천이다. 비행기라도 추락했나? 아니면 간첩이 침투했나?

 

 

 

#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을 지나,

 

 

 

# 방화선 벌목지를 지났다.

 

 

 

# 방화선을 따르다 돌아본 모습. 지나온 정맥길.

 

 

 

# 폐삼각점이 있는 무명봉. 저 아래 계리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어? 그런데 고도계는 580이 찍히는데? 고도계가 엉터리인가? 지도가 틀린 건가? 아니면 폐삼각점이 있던 그 봉우리가 612.1봉인가?"

아래로 내렸다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옛고개'가 하나 나오고, 다시 묘지를 지나 조금 더 가면 포장도로가 지나는 '길등재'에 내려선다. 17:20
  

 

 

# 진진이 밝게 빛나는 등로 따라 내려갔다.

 

 

# ...

 

 

 

# 길등재에서 바라본 일월산 쪽 조망. 

 

 

 

# 길등재로 올라오는 도로.

 

 

 

# 길등재.

 

   

길등재 한쪽 그늘에 앉아 간식 먹고 한숨 돌렸다. 그리고 절개지를 올라 산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간벌한 잡목들이 등로를 막고 있어 걷기가 불편하다. 잡목 뚫고 올라 두어 번 오르내리다 위로 올리면 조망이 열리는 곳이 나와 한순간 앞이 툭 트인다. 넓은 벌목지와 독가촌이 산아래 보인다. 

  

 

 

# 영양군 수비면쪽 조망. 아래에 독가촌이 있다.

 

 

 

# 발리 금촌마을.

 

 

 

정맥은 우측으로 벌목지 상단을 따라 오른다. 벌목지를 넘어 아래로 내리는데 이곳은 모두 산불 피해지역이고 벌목도 산불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오르내리지만 모두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길게 가야 하고 몸이 지친 후라 많이 힘들었다. 그러다 18:35에 드디어 '한티재'에 내려섰다.

  

 

 

# 한티재.

 

  

구간 거리가 18.5km이니 9시간 반 정도면 충분한데, 중간에 미인들 모두를 껴안느라 한 시간이나 오버했다. 그러나 미인들 마음껏 품으며 교감하였으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준이다.


한티재는 일월면과 수비면을 이어주는 88번 도로가 지나는 큰 고개다. 고개 바로 아래에 수비면 발리가 있어 걸어서 10분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식당들과 여인숙도 있어 숙식이 해결 가능하다. 동무들 내려오면 함께 발리로 가면 될 일이다.


그리고 산행 도중에 만났던 경남 마루금의 부부 산꾼이 차를 한티재에 갖다 둬서 차 회수하러 택시 부를 필요가 없으니 정말 좋다. 좋은 인연이었다. 그들은 내 덕분에 택시비와 시간을 아꼈고 나도 그러했다. 좋은 산길 이어가길 빌었다.

   

  

# 한티재에서 좌측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발리가 나온다. 저 멀리 검마산 위로 낮달이 떴다.

 

 

 

# 검마산 위에 뜬 낮달.

 

 

 

이제는 뚜벅과 뱌그라님이 내려 오기만 기다리면 된다. 전화해 보니 세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음~~ 두 구간을 한 방에 해치우려니 고생들이 많으시다.

차안에 들어가 의자 뒤로 젖히고 잠을 청해 보지만,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눈이 말똥말똥하다. 음악 크게 틀고 땅거미가 찾아 오는 것을 감상했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나? 인기척이 느껴져 내다보니 두 분이 고개를 내려오고 있다.


"아이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발리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 저녁 먹은 후 인근에 있는 검마산 휴양림으로 가서 하룻밤 야영하였다.

 

 

 

# 검마산 휴양림에서 하룻밤 야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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