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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다섯번째(애미랑재~한티재)-미인을 품에 안다!! 본문
천지만물(天地萬物) 모든 것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세계관인 애니미즘은 라틴어의 '아니마(anima)'란 말에서 기원한 말이다. '아니마(anima)'는 '영혼'을 뜻하는 라틴어다. 이 용어는 영국의 인류학자인 '타일러(E.B.Tylor)'가 1871년 발간된 그의 저서 '원시사회(Primitive culture)'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책에서 타일러는 "신성한 존재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으로서의 애니미즘이 모든 종교의 기원이자 근본 원리라고주장하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천지만물에 다 영(靈)이나 혼(魂)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왔다. 우리 조상님들에게 있어 애니미즘은 원시종교의 형태라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살아온 문화이자 삶의 일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하늘을 믿고, 땅을 숭배했고, 용왕을 모시고, 산신에게 빌었으며, 들에 강에 골짜기에 모두 신이 깃들어 있고, 삶의 공간인 집에도 부엌에 지붕에 외양간에 화장실에 모두 신령한 존재가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오래된 나무, 큰 바위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어 그에 의지해 삶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고 무사평안(無事平安)을 기원했다. 나역시 이땅의 산꾼으로서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 종주를 하면서 무의식중에 애니미즘적 사고가 많이 형성되고 있음을 느낄 때가 많다. 산에서 맞이하는 하늘과 땅, 마루금과 계곡, 나무와 돌 어느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는 탓이다. 산에서 하룻밤 야영하다 한밤중 올려다보는 하늘. 그곳에는 수백만 광년을 달려온 별빛이 은하(銀河)를 이루고 있다. 그 별빛이 달려온 시간 앞에 인간의 세월은 먼지에 불과하다. 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日出). 구름을 뚫고 올라오는 붉은 불덩이는 잠들었던 대지와 자연을 온기로 깨워낸다. 그 찬란한 광명(光明) 앞에 손 모으지 않을 도리는 없다. 만질 수 없는 해와 달 그리고 별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산행길에 노거수(老巨樹)나 큰 바위를 보노라면 굳이 신앙의 대상까지는 아니지만, 그 나무와 바위가 지나온 세월의 무게가 느껴져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된다. 낙동정맥 다섯 번째 나들잇길에는 아름드리 금강송(金剛松) 군락이 즐비하다. 그 소나무들은 수백 년 세월 그 자리에서 굳건히 뿌리내렸고 푸른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었다. 금강송은 아름다운 나무다. 군더더기 없이 쭉쭉 뻗은 이 미인송(美人松)들을 어찌 그냥 지나치겠는가? 그 미인들 가슴에 품고 오래 교감하고자 하였다. 그러노라면 그들이 지켜냈을 긴 세월의 바람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 미인들을 품안 가득 안고 또 안았다. 자연 예상 시간보다 시간 지체가 심했다. 때문에 나중 시간에 쫓겨 고생 좀 하였다. 미인을 품에 안다!! 구간 : 낙동정맥 제 5구간(애미랑재~한티재)
애미랑재(07:50) ~ 695봉 ~ 묘지 ~ 칠보산(09:38) ~ 새신고개(10:20) ~ 묘지 ~ 헬기장(11:05) ~ 853봉 ~ 십지춘양목(11:42) ~ 깃재(12:20) ~ 842봉(12:37)/점심후 13:10 出 ~ 884.7봉(14:05) ~ 고원습지 ~ 850.8봉 분기봉(15:26) ~ 길주의 ~ 폐헬기장 ~ 벌목지 ~ 612.1봉 ~ 옛고개 ~ 묘지 ~ 길등재(17:20) ~ 한티재(18:35).
마침 길가에 불꺼진 작은 휴게소가 하나 있고 한 켠에 정자도 두 개나 있어 텐트 한 동 짓기 딱 안성맞춤이었다. 얼른 집 한 채 뚝딱 짓고 침낭 속으로 파고 들었다.
소천면은 본래 소천부곡(小川部曲)으로 태백시 황지 본적산(本寂山), 대박산(大朴山)까지 그 영역이었고, 반이군(潘伊郡)이라는 부족국가가 있었다고 한다. 안동부 춘양에 예속되어 있다가 고종 43년(1906)에 봉화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소천면 현동(縣洞), 분천리(汾川里) 일부를 현동리(縣洞里)로, 고선리(古善里)를 고선리로, 대현리(大峴里)를 대현리로, 석포리(石浦里), 승부리(承富里) 일부를 석포리로, 승부리 일부를 승부리로, 서천리(西川里)를 서천리로, 분천리 일부를 분천리로, 두음리(斗音里)를 두음리로, 남회룡리(南回龍里), 분천리 일부를 남회룡리로, 임기리(林基里), 재산면 갈산리(葛山里), 중춘양면 매산리(梅山里) 각 일부를 임기리로 하여 소천면으로 개편했다. 지역 면적이 넓어 1963년 4월 1일 석포 출장소를 설치하여 대현, 승부, 석포리를 관할하게 하다가 1983년 2월 15일 석포면이 설치되어 대현, 승부, 석포리가 석포면으로 편입되어 행정구역이 축소됐다. 토질은 비습(卑濕)하고 돌이 많아 약초와 잡곡 재배에 적합하다. 발리리/發里里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리(里)이다. 수양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고장은 수비면의 중심지가 되어 면사무소, 파출소, 초·중등학교와 우체국이 있다. 발리리의 발(發)은 시작을 뜻하며, 수비면의 첫 마을이란 뜻으로 풀이 할 수 있다. 자연마을로는 창뒷마, 금촌, 용수골, 화랑골 등이 있다. 창뒷마마을은 조선조 중엽에 나라의 곡식 천석을 둘 정도의 큰 창고가 있었다고 하여 창뒷마라 하게 되었다. 용수골은 이곳 용수폭포에 용추(龍湫)가 있었는데 약 200년 전에 갑자기 골짜기의 냇물이 말라 붙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샘을 찾아 헤매던 중 산골에서 큰 용이 목욕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 사람과 마주친 용이 입으로 안개를 내뿜으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티재 수비면 계리에 있는 큰 재. 임란시 의병과 왜군이 이 골짜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바 있어, 지금도 비만 오면 핏물이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고 있으며, 통로의 반석 위에는 많은 말발굽 자국을 선명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저곳>
두어 시간 짧게 눈 붙이고 새벽 일찍 일어나지만, 공기 맑고 기운 청량한 곳이어선지 전혀 피곤하질 않다. 마침 휴게소 식당이 아침 일찍부터 장사를 한다길래 아침밥 끓이는 수고는 면했다. 구수한 된장찌개로 속을 풀고 아침 화장도 간단히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이나 달린 후에 구름을 밟고 서는 답운치(踏雲峙)에 올라 섰다. 07:16
뚜버기님과 뱌그라님은 이곳에서 애미랑재를 거쳐 한티재까지 오늘 하루에 내달려야 한다. 나는 작년 비 내리는 여름날 답운치에서 애미랑재까지 구간을 이미 마쳤으니 두 사람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다.
# 7개월 만에 다시 선 답운치. 오늘 날씨는 화창하다. 다행히 구름을 밟고 설 일은 없다.
# 두 분은 이곳 답운치에서 한티재까지 긴 거리를 내달려야 한다.
구불구불 답운치를 완전히 내려 옥방 쉼터에서 좌틀한다. 남회룡의 구불구불한 물길 따라 길게 진행하여 가다가 다리를 건너 다시 고개를 구불구불 올라가면 지난 여름에 캄캄한 어둠 속에 내려 섰던 애미랑재 깎아지른 절개지 아래 도착한다.
# 애미랑재, 절개지 좌측 사면으로 올라갔다.
햇살은 따사하고 좋은데 아직 바람은 차갑다. 좌측 사면의 통나무 계단을 올라 절개지 위에 서면 지난 구간인 통고산의 위용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한차례 길고 빡세게 위로 밀어 올린다. 아직 바람이 찬 계절이라 조심조심 천천히 몸을 덥혀 가며 워밍업을 시켰다.
# 깎아지른 애미랑재의 절개지.
08:15. 고도계에 695가 찍히는 봉우리에 올라섰다. 숲 너머로 오늘 구간의 첫 포스트인 칠보산이 건너다보인다. 우측으로 능선 마루금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조금 트인 곳이 나와 좌측 전방에 서 있는 칠보산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 우람한 산이다. 일곱 가지 보물을 품고 있다는데 무엇을 어디에 감추고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 칠보산의 우람한 위용.
# 진진이와 미인송의 조화.
# 처녀치마.
그대로 좌측으로 꺾어 '암봉'을 작게 하나 넘고, 아래로 내려 '묘지가 있는 안부'를 지났다. 고도가 680이 찍히는데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칠보산 오름이 시작된다. 정상까지는 고도를 250m이상 올려야 한다.
#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려 정상인가 하지만, 계단식으로 한참 더 올라야 한다.
# 칠보산 정상. 이름에 비해 볼품은 없는 편이다.
# 이 정도가 겨우 허락된 조망이다. 가야 할 정맥길.
# 개별꽃 무리.
정상엔 삼각점과 해병대에서 세운 시멘트 표지석이 있다. 잡목이 무성하여 조망은 전혀 없다. 이름이 주는 무게감에 비해서 실망스러운 광경이다.
# 동생 십지춘양목.
# 전봇대가 정맥을 넘어가는 새신고개.
자료를 찾아보니 새신고개는 산새가 많이 깃들어 살아 얻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새롭게 생긴 마을인 새신마을 뒤에 있는 고개라 새신이라 불렀다고도 하지만,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고도계 확인하니 715가 찍힌다. 260m를 내렸으니 칠보산 올라 갔던 고도를 정확하게 그대로 까먹고 내려 온 셈이다.
# 쭉쭉 뻗은 춘양목들이 나그네를 환영하듯 등로가에 도열하여 있다.
# 잡목이 자라 기능을 상실한 헬기장.
이 헬기장은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헬기장으로서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야영하기에는 안성맞춤이겠다. 이곳에서 정맥길은 좌측으로 꺾인다. 잠시 진행하다 아래로 길게 떨어지더니 곧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리는데, 숲 이곳저곳에서 고라니들이 영역다툼을 하느라 발악적으로 짖어댄다. 바야흐로 춘정(春情)이 발동하는 봄이다.
# 이 정도면 숭례문 복원에 쓸 수 있지 않을까?
# 이 정도의 조망이 그나마 눈을 멀리 두게 만든다.
# 낙동의 스타 십지춘양목. 대단한 위용이었다.
춘양목의 기본 성질이 잔가지 없이 쭉쭉 뻗어 올려 곧게 자라는 것인데, 이 나무는 어떤 연유로 이렇게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뻗어 올렸을까? 아마도 자랄 때 꼭대기의 생장점이 어떤 이유로 손상이 가서 곧게 한 가지로 자라지 못하고 사방으로 맹아(盲芽)를 내뻗어 십지춘양목으로 자랐으리라 짐작해 본다.
어쨌거나 이 나무는 특이한 모양 탓에 이곳을 지나는 정맥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지내온 세월의 무게에 경의를 표하고 품안 가득 껴안아 정기를 나눠받았다.
# 겨우살이들이 나무를 점령했다.
# 일제시대에 생긴 상처를 안고 70여 년을 버텨온 춘양목.
# 춘양목이 상처를 안고 버텨온 세월이 눈물겨워 일일이 안고 쓰다듬는데, 맞은편에서 부부 산꾼이 내려온다.
봉우리를 넘어 아래로 내리자 지도상 '야영 표시'가 있는 넓은 안부가 있다. 전방의 봉우리를 넘어 잠시 가자 '깃재'가 나온다. 12:20 깃재는 고도계가 750이 찍히는 산 꼭대기에 있는 고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로 내려서게 된다. 깃재를 지나 한차례 쭈욱 밀어 올려 '842봉'에 오르고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12:37) 시원하게 거풍까지 한번 즐기고 13:10에 출발했다
# 작은 산새 한 마리 새끼 키우느라 분주하다. 동고비인가?
#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깃재.
# 음~~~~~~
점심 먹고 나른한 상태를 봐주려는지 길게 진행하며 큰 고도차 없이 830, 835, 845가 찍히는 봉우리들을 대여섯 개 차례로 넘었다. 그러다 길게 한차례 밀어 올리면 삼각점과 헬기장이 있는 '884.7봉'에 이른다.(14:05)
# 우측으로 잠시 트인 곳이 나오는데 저 멀리 일월산이 보인다.
# 일월산 정상을 땡겨본다. 일월산은 계룡산, 태백산, 마이산과 더불어 기가 충만한 산으로 알려져 무속인들의 메카인 산이다.
# 작고 앙증맞은 솜나물.
# 숲 너머로 뾰족한 봉우리 하나 나타난다.
# 삼각점과 헬기장이 있는 884.7봉.
한숨 돌리고 출발하면 곧 아래로 내려가는데, 길게 계단식으로 내려게 되어있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오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못볼 정도로 희미하여 길잃을 염려는 없다.
# 지도에는 없는 고원습지가 나타난다.
이후 넓은 마루금을 오르내림 없이 길고 평탄하게 진행한다. VERY가 GOOD이다. 아무리 첩첩산중의 낙동길이지만 가끔은 이런 맛도 있어야쥐~ 그러다 계단식으로 그러나 완만하게 고도를 올린다. 15:26. '850.5봉 분기봉'에 오른다.
# 가끔은 이런 길도 있어야 산길 걸을 맛이 난다.
#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서 새잎을 피워내는 생명력.
# 850.5봉 분기봉.
우측으로 길고 편안하게 내려가다가 다시 완만하게 한차례 올리면 '지도상 길주의 지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좌틀하여 떨어져 내린다. 아주 길게 내려가면 내리막 정맥 좌우로 민가가 내려다보인다. 낙동길에서 민가를 보기는 처음이다. 우측 상류는 저수지 공사가 한창이다.
# 일엽초.
# 저멀리 숲속에 빨간 비닐 천이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이고 있어 줌으로 땡겨보니 낙하산의 천조각이다. 아주 커다란 천이다. 비행기라도 추락했나? 아니면 간첩이 침투했나?
#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을 지나,
# 방화선 벌목지를 지났다.
# 방화선을 따르다 돌아본 모습. 지나온 정맥길.
# 폐삼각점이 있는 무명봉. 저 아래 계리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어? 그런데 고도계는 580이 찍히는데? 고도계가 엉터리인가? 지도가 틀린 건가? 아니면 폐삼각점이 있던 그 봉우리가 612.1봉인가?"
# 진진이 밝게 빛나는 등로 따라 내려갔다.
# ...
# 길등재에서 바라본 일월산 쪽 조망.
# 길등재로 올라오는 도로.
# 길등재.
길등재 한쪽 그늘에 앉아 간식 먹고 한숨 돌렸다. 그리고 절개지를 올라 산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간벌한 잡목들이 등로를 막고 있어 걷기가 불편하다. 잡목 뚫고 올라 두어 번 오르내리다 위로 올리면 조망이 열리는 곳이 나와 한순간 앞이 툭 트인다. 넓은 벌목지와 독가촌이 산아래 보인다.
# 영양군 수비면쪽 조망. 아래에 독가촌이 있다.
# 발리 금촌마을.
정맥은 우측으로 벌목지 상단을 따라 오른다. 벌목지를 넘어 아래로 내리는데 이곳은 모두 산불 피해지역이고 벌목도 산불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오르내리지만 모두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길게 가야 하고 몸이 지친 후라 많이 힘들었다. 그러다 18:35에 드디어 '한티재'에 내려섰다.
# 한티재.
구간 거리가 18.5km이니 9시간 반 정도면 충분한데, 중간에 미인들 모두를 껴안느라 한 시간이나 오버했다. 그러나 미인들 마음껏 품으며 교감하였으니 그 정도는 감수할 수준이다.
그리고 산행 도중에 만났던 경남 마루금의 부부 산꾼이 차를 한티재에 갖다 둬서 차 회수하러 택시 부를 필요가 없으니 정말 좋다. 좋은 인연이었다. 그들은 내 덕분에 택시비와 시간을 아꼈고 나도 그러했다. 좋은 산길 이어가길 빌었다.
# 한티재에서 좌측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발리가 나온다. 저 멀리 검마산 위로 낮달이 떴다.
# 검마산 위에 뜬 낮달.
이제는 뚜벅과 뱌그라님이 내려 오기만 기다리면 된다. 전화해 보니 세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음~~ 두 구간을 한 방에 해치우려니 고생들이 많으시다. "아이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발리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 저녁 먹은 후 인근에 있는 검마산 휴양림으로 가서 하룻밤 야영하였다.
# 검마산 휴양림에서 하룻밤 야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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