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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여섯번째(한티재~검마산휴양림갈림길)-따로 또 같이!! 본문

1대간 9정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여섯번째(한티재~검마산휴양림갈림길)-따로 또 같이!!

강/사/랑 2008. 4. 23. 23:21
 [낙동정맥]여섯번째(한티재~검마산휴양림)



인도네시아에 천혜의 휴양지 '발리(Bali)'가 있다면, 이 땅엔 천지간의 험지(險地) '발리(發里)'가 있다. 인도네시아의 발리는 알 카에다의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가 있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낙원(樂園)의 이미지를 간직한 아름다운 섬으로 전 세계에 그 명성을 떨쳤다.

 

반면 이 땅의 발리는 멀고 험하기로 유명한 봉화에서도 한참을 더 달려, 고개를 몇 개씩이나 넘고 다시 이 땅의 등뼈인 낙동정맥(洛東正脈)을 넘어야 접근이 가능한 멀고 먼 오지(奧地)의 고장이다.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야 만날 수 있는 머나먼 고장인 것이다.

그나마 요즘은 교통이 발달하여 외지인의 발길이 잦아지기는 하였다. 그것은 이 고장에 있는 검마산 휴양림(劍磨山 休養林)의 공이 크다. 생활수준 높아지니 휴양 문화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탓이다. 찾는 사람 많아지니 이 동네 이름도 차츰 알려지게 되었다.


'발리'는 참으로 특이한 이름의 동네이다. 누구나 이 이름을 처음 들으면 인도네시아의 발리를 떠올린다. 그리하여 어느 바닷가 동네인지 먼저 물어 본다. 하지만, 이 고장은 바다와는 너무나 먼 동네이다. 높고 깊은 산 속에 위치해 평지 구경하기도 어려운 곳이다. 


낙동정맥 험준한 산속에 있으면서도 외국 어느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발리는 그 이름에 '필 發' 자를 사용한다. 발(發)은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발리는 '수비면의 첫 동네'라는 뜻이 된다.

아침 일찍 답운치(踏雲峙)에서 헤어졌던 우리 낙동정맥꾼 삼 인은 한티재에서 밤중에 다시 만나서 발리로 내려갔다. 발리는 88번 지방도가 지나는 작은 동네이다. 지방도 지나는 도로 양 쪽으로 작은 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작기는 하여도 명색이 수비면의 면 소재지이다. 찾아보니 식당도 몇 개 있고 여인숙도 하나 영업 중이다.

늦은 시각에 허기진 우리 일행은 일단 눈에 띄는 매운탕집에 들어가 얼큰한 메기매운탕으로 허기를 달래고 청탁(淸濁)의 술 한 잔으로 객고(客苦)도 달랬다. 입심 좋은 주인 아주머니의 우리나라 농촌 현실에 대한 개탄(慨嘆)도 들었다. 그이에 따르면 집집마다 억대의 농협 빚을 지고 사는데, 정부의 농정 실패와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解弛)가 합쳐져서 그런 결과를 가져 왔다고 한다.

농업 부문의 개방을 할 때마다 정부에서는 보조금이나 저리(低利)의 융자(融資)를 남발했는데, 꼭 필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그 융자금을 받아 농기계를 바꾸고 시설투자를 하고 그랬나 보다. 그것이 나중엔 모두를 옭아매는 부메랑이 되어 빚으로 고스란히 남은 것이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수십조 원을 농촌에 쏟아부었지만, 농촌 현실이 전혀 개선되지 않은 이유가 다 거기에 있었다. 쇠고기 개방 후에 또 얼마나 많은 돈이 축산 농가에 풀리고 그 돈이 또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어서 엉뚱한 빚으로 쌓일지 눈에 선하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농촌 문제는 우리 능력 밖의 일이라 젖혀두고 오늘 하루의 잠자리 해결을 위해 잠시 고민하다가 여인숙을 버리고 검마산 휴양림으로 향했다.

아직 시즌 전이라 야영하겠다고 하니 휴양림 관리인은 혼자 결정을 못 하고 이곳저곳 알아보더니 나무 데크로 되어 있는 야영장으로 안내한다. 던지기 텐트 휙 던져 집 한 채 5초 만에 짓고 간단한 주안상으로 산꾼들의 정도 나눴다. 밤새 물소리 솔바람소리 청아하게 들리고 하늘엔 별이 총총하였다.

아~~ 좋타!!!


 


따로 또 같이!!


구간 : 낙동정맥 제 6구간(한티재~검마산휴양림)
거리 : 구간거리(15.5 km), 누적거리(95.4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8년 4월 20일. 해의 날.
세부내용 :

한티재(08:10) ~ 전망대 ~ 묘 3기 ~ 이정표 쉼터 ~ 습지 ~ 우천마을(09:37) ~ 잣나무군락지 ~ 갈림길 ~ 이정표 쉼터 ~ 636.4봉 ~ 묘지 봉우리 ~ 추령(10:40)/휴식후 11:07 出 ~  635봉(11:36) ~ 산불지역 ~ 버드나무 군락지 ~ 집터 ~ 631.4봉 ~ 왕릉봉(13:00)/휴식 후 13:27 出 ~ 옛고개 ~ 덕재(14:10) ~ 600봉 ~ 630봉 ~ 옛고개 ~ 695봉 ~ 휴양림 갈림길(15:10) ~ 검마산휴양림(15:45).

총 소요시간 7시간 35분. 만보계 기준 27,900보.



대자연의 정기(精氣)가 충만한 곳에서 잠을 자서 그런지 그저께 네 시간 동안 운전하여 낙동에 접근했고, 잠은 세 시간 밖에 못 잤으며, 어제 종일 산길 걷느라 힘든 몸으로 이틀간 텐트 잠을 잤지만, 전혀 힘들거나 찌뿌드하거나 한 느낌은 없다.

음~ 고생만 쌔빠지게 하는 정맥길보다는 가볍게 산행하고 이렇게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야영하며 휴양하는 이런 만고강산 산행을 해야 하는데... 맨날 그래야지 하면서도 마약을 찾듯 고생보따리 챙겨 들고 산길 나서는 이 행태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수비면/首比面

 

경상북도 영양군 북부에 있는 면. 면적 217.58㎢, 인구 2,280명(2001)이다. 서쪽은 일월면(日月面)과 영양읍, 북쪽은 봉화군 소천면(小川面), 동쪽은 울진군 서면(西面)·온정면(溫井面), 남쪽은 영덕군 창수면(蒼水面)에 접하는 산간 벽지이다. 9개리로 이루어져 있다. 면의 동쪽에는 백암산(白岩山) 및 금장산(金藏山)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의 지맥이 솟아 있고 특히 북동쪽에 솟아 있는 울련산은 울진군과의 경계를 이루며 주변에는 암자가 많다. 장수천(長水川)이 북동쪽으로 흘러 왕피천(王避川)에 합류하여 독립된 유역을 형성하고, 남부에는 오십봉(五十峰)에서 서류(西流)하는 장파천이 일월면으로 흘러 반변천(半邊川)의 주류를 이룬다. 특산물로는 고추와 잎담배를 들 수 있으며 고추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교통은 면의 중앙부를 동서로 달리는 도로가 울진군 평해읍까지 연장되지만 대체로 불편한 편이다. 문화재로는 낙천정(樂天亭), 이시명 수산유허비(李時明首山遺墟碑) 등이 있다.

검마산자연휴양림/劍磨山自然休養林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신원리에 있는 자연휴양림. 1997년 5월 28일 개장하였고, 구역면적은 7866만㎡, 1일 최대 수용인원은 1,000명, 최적 인원은 600명이다. 영덕국유림관리소에서 관리한다. 낙동정맥 줄기 해발 918m의 검마산 북서쪽 계곡에 있으며, 활엽수와 침엽수가 조화를 이루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휴양림의 소나무숲은 절경을 연출하여 특별히 미림보존단지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휴양림에는 산림문화휴양관, 정자, 취사장, 등산로, 산책로, 어린이놀이터, 야영장, 체력단련시설, 물놀이장, 야외교실, 삼림욕장, 종합운동장 등을 갖추었으며, 한국에 자생하는 여러 종류의 야생화를 모아 심은 자생식물관찰원과 꽃사슴사육장도 있다. 주변에 국내 유일의 방사능 유황온천인 백암온천을 비롯하여 백암폭포, 할매산성,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155), 수하계곡, 일월산, 안동댐 등의 관광지가 있다.

우천/愚川(어리내)

 

어리내(우천)는 해발 600여m의 높은 분지로 된 곳인데, 물이 짧아 골짜기 중심으로 흐르는 냇가의 수면이 보이지 않는다. 늪으로 된 내를 중심으로 발달한 마을이다.

죽파리/竹坡里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에 있는 리(里)이다. 전형적인 산지 마을로 높고 큰 산들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 짐꾼 장사들인 보부상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언덕에 대나무가 많다 하여 죽파리라 불렀다. 마을의 본래 이름은 대두들이라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장파(장파고니), 대산골(大山谷) 등이 있다. 장파는 조선조 때 김충업(金忠業)이란 사람이 마을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장군과 같이 기개와 정기가 높아지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라 한다. 대산골(大山谷)은 높고 큰 산이 둘러싸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이곳은 여러 가지 열매가 많이 나며 산의 기개가 높고 우람하여 정기가 산을 꽉 에워싼 곳이라고 전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동정맥 제 6구간 한티재~검마산 휴양림 갈림길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아침 가볍게 끓여 먹고 화장 마친 후 수비택시 불러서 한티재로 이동했다. 어제는 제각기 다른 곳에서 출발해서 따로 산행을 했지만, 오늘은 같이 구간 진행을 한다. 그야말로 '따로 또 같이'다.

 

08:10. 한티재를 출발했다. 셋이서 함께! 영양군에서 세운 낙동정맥 안내판 좌측 길로 올라가다 곧 바로 우측 숲으로 들어갔다. 소나무 숲길이 순하게 펼쳐져서 워밍업을 도와준다. 계단식으로 밀어 올려 '이정목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섰다. 추령까지 5.9KM 거리라고 적혀 있다

 

 

  

# 영양군에서 세운 낙동정맥 안내판. 

 

 

 

# 안내판 좌측 산길로 올라갔다. 

 

  

  

# 순하게 출발해서 계단식으로 밀어올린다. 

 

 

 

# 이정목이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좌틀하여 내렸다 봉우리 하나를 올랐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다시 떨어져 내린다. 이곳에서 추령까지는 전방으로 직진했다가 좌측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휘감는 형상이다.

 


'묘 3기'를 차례로 지나고 평탄하게 가다가 본격적으로 치고 오른다. 경사가 점점 급해지더니 한 차례 가파르게 밀어 올려 '이정목이 있는 쉼터'에 오른다. 우측 너머로 지난 구간의 정맥길과 일월산이 건너다보인다. 낙동의 산줄기가 정말로 장쾌하다.

  

 

 

# 묘지들을 지나 전방의 산으로 올라간다.

 

 

 

# 진진이의 환영을 받으며 올라간다. 

 

 

 

# 이정목이 있는 쉼터. 우측으로 트인 조망을 보여 준다. 

  

 

 

# 지난 구간의 낙동정맥.

 

 

 

# 자칭 국보라 외쳤던 故 양주동 선생의 시가 적혀 있다. 가곡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시다. "산길을 간다. 말없이. 홀로 산길을 간다..."

 

 

 

# 추령까지 4.3km 남았다. 

 

 

 

잠시 한숨 돌리고 곧바로 급경사 오름을 치고 오른다. 이윽고 '벤치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자마자 우측으로 떨어져 내리며 올라온 고도를 모두 까먹어 버린다. 뭐냐? 이게!!

 

안부까지 내려가면 '물 웅덩이가 있는 습지'가 나오고 다시 한차례 올려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그런데 곧바로 깊게 떨어져 내리라 한다. 이거 오늘도 영 만만치 않겠는 걸...

 

낙엽송 군락지를 따라 깊게 떨어져 내렸다가 당연히 다시 치고 오른다. 그러나 올랐으니 또 내려야지?? 잠시 내렸다가 봉우리 하나를 오르니 좌측으로 꺾어 또 떨어져 내린다. 흐~미~~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급경사 오르막을 치고 올랐다. 그곳에서 잠시 더 오르면 '610'이 찍히는 봉우리에 서게 된다. 당연히 또 내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길고 길게 내리더니 급기야는 마을까지 완전히 내려 버린다. 내리막 군데군데 묘지가 나오는데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완전히 내려 밭둑에 섰다. '우천마을'이다. 09:37  

 

 

 

# 묘지들을 지나 우천마을까지 깊게 떨어져 내렸다.

 

 

 

# 색깔이 고운 솜나물. 

 

 

 

# 솜방망이도 노란 빛이 한창이다. 

 

 

 

# 묘지 꼭대기에 오똑 피었다. 

 

 

 

# 높은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어리내 마을. 

 

 

 

우천마을은 '어리석을 愚'자를 쓰는 마을이라 '어리내'마을이라고도 불린다. 고원 분지에 형성된 마을이기는 하나 낙동하면서 마을을 지나보기는 처음이다.  밭을 가로질러 맞은편 산자락에 서면 추령까지 2.7km가 남았다는 이정목이 서 있다. 이정목 뒤 잣나무 군락지를 치고 올라갔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산을 치고 오른다. 계단식으로 완만하고 꾸준히 치고 오르면 '620이 찍히는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10:10

  

 

 

# 우천마을 밭둑을 지나 맞은 편 산자락으로 올라 갔다.

 

 

 

# 하얀 민들레. 

 

 

 

# 서양민들레. 

 

 

 

# 노루귀 삼형제. 

 

 

 

봉우리엔 벤치와 이정목이 서 있다.  다시 아래로 내리는데 참나무가 빽빽히 자라있는 길을 따라 길게 내려갔다. 그러다 자작나무숲을 지나고 다시 참나무숲을 따라 봉우리 하나를 작게 넘는다. 이후 한차례 길게 밀어 올리면 삼각점이 있는 '636.4봉'에 도착한다.

 

그런데 고도계는 625밖에 안 찍히네? 잠시 더 완만하게 오르면 '묘지가 있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비로소 고도계가 635를 가리킨다. 아마도 이곳이 636.4봉인가 보다. 묘지 때문에 삼각점을 이곳에 설치하지 못하고 직전의 조금 볼록한 곳에 설치한 모양이다.

 

이후 묘지에서 좌틀하여 아래로 내린다. 길고 길게 내려 간다. 전방 숲 너머로 산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심히 위압적이다. 이렇게 길게 내려가면 온전히 다 치고 올려야 하는데... 길게 내려 '추령'에 내려섰다.  10:40.

 

  

 

# 하얀 자작나무 숲을 지난다.

 

 

 

# 삼각점이 있는 636.4봉. 

 

 

 

# 그러나 정작 고도계는 저 산이 636.4봉이라고 알려 준다. 

 

 

 

# 추령.

 

 

 

추령은 가래나무가 많아 '가래나무 楸'자를 넣어 '추령'이라 불렀다. 가래나무는 가죽나무와 그 잎의 생김새가 비슷해 구별이 어렵다. 가죽나무는 어린 순을 잘라 말렸다가 나물로 무쳐 먹으면 풍미가 뛰어난 나무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내가 어릴 때부터 가죽나무로 알고 있던 녀석은 실상은 참죽나무이고, 가죽나무는 먹을 수 없다고 한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나오던 작은 원두막같은 추령 쉼터는 없어졌다. 다만 표지기들만이 성황당에 매단 헝겊들 처럼 빽빽히 매달려 있다.  솔바람이 너무나 시원해서 배낭 벗고 휴식을 취했다. 배낭 속에서 막걸리도 나오고 간식거리도 나온다.

  

 

 

# 산동무가 있어 이런 재미도 쏠쏠하다.

 

 

 

30여 분 쉬고 11:07에 출발했다. 곧장 가파르게 치고 오르는데 쉬었던 몸이 가기 싫다고 난리다. 낑낑 올라 610이 찍히는 봉우리에 오르고 우측으로 길게 모처럼 오르내림 없이 진행한다. 그러다 한차례 밀어 올려 '635봉'에 올라섰다. 11:36 

 

 

 

# 삼각점이 있는 635봉. 

 

 

 

# 두루님이 남긴 출석부. 

 

 

 

휴양림까지 7.5KM 남았다고 적혀 있다. 바로 길게 내려간다. 산불피해지역을 따라 올라온 것보다 더 많이 내려가서 '옛고개'를 지나고 곧바로 다시 치고 오른다. 내려왔던 것 만큼 고스란히 다시 치고 오르는 모양세다. 대단하다.

 

2단으로 밀어 올리면 '585가 찍히는 봉우리'에 이르는데 바로 앞에 봉우리가 또 있다. 잠시 내렸다가 다시 치고 오른다. 봉우리 세 개를 연달아 넘는데 점차 고도를 높이는 형태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버드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계속해서 완만하게 올라 가노라면 '집터'가 나온다.

  

 

 

# 처참한 산불 피해지역.

 

 

 

# 독사 한 마리가 등로를 가로막고 일광욕을 하고 있다. 이 넘은 제 독을 믿는 지라 절대 비켜주지 않는다. 스틱으로 감아 멀리 던져 놓았다.

 

 

 

# 숲 너머로 죽파리에서 덕재로 올라오는 도로가 보인다. 

 

 

 

# 모처럼 버드나무 군락지 사이로 난 편안한 길을 걷는다. 

 

 

 

# 집터. 주인 잃은 솥단지가 나뒹굴고 있다. 

 

 

 

이 산꼭대기에 누가 집을 짓고 살았을까? 흔적만 남고 집은 사라졌는데 솥단지가 아직 남아 이곳에서 삶을 영위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말해준다. 희미한 옛고개가 집터 앞을 지나고 있다.

 

넓은 등로를 따라 잠시 편하게 진행하다가 봉우리를 넘으면 전방에 봉우리 하나가 우뚝한데, 그 봉우리는 4단으로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한다. 헉헉 낑낑 계단식으로 밀어 올리면 1, 2, 3단 중 3단째가 '631.4봉'이고, 한차례 더 낑낑 밀어 올리면 4단째가 '왕릉봉'이다. 13:00 

 

 

 

# 힘들게 올라 온 왕릉봉.

 

 

 

# 왕릉봉이란 이름은 지도에는 없는 산이름이다. 

 

 

 

고도계는 670이 찍힌다. 지도에는 왕릉봉이란 이름이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매달아 둔 팻말에 왕릉봉이라 적혀 있을 뿐이다. 이 봉우리가 왕릉처럼 생겼나?

 

4단으로 올린 게 힘들어 이곳에서 다시 휴식하며 막걸리 파티를 벌렸다. 애초에 점심을 해 먹기로 했었는데 하도 오르내림이 많아 귀찮아 간식으로 때우기로 했다. 역시 30여 분 쉬고 13:27에 출발했다.

 

가파르고 길게 내려가는데 올라온 그만큼 고도를 모두 까먹고 안부에 이르면 '옛 고개'가 나온다. 고개를 지나 다시 치고 오른다. 이후 사람의 진을 완전히 쏙 빼놓게 여덟 차례나 연속으로 봉우리를 넘은 후에 '덕재'에 도착했다. 14:10

 

 

 

# 저 멀리 검마산과 산허리를 휘감는 임도가 보인다.

 

 

 

# 보부상들이 삶의 터전으로 일궜다는 죽파리. 

 

 

 

# 덕재. 

 

 

 

덕재는 넓은 임도가 정맥을 가로질러 넘어 가는데, 검마산이 우측 전방에 올려다 보인다. 덕재 임도 따라 우측으로 내려가면 그 옛날 보부상들이 만든 마을이라는 죽파리로 길은 이어진다. 덕재 가파른 절개지 계단을 올라 한차례 밀어 올리면 '630봉'에 도착한다. 14:30
 
웬일로 평탄하게 조금씩 고도를 낮춰가다가 '옛 고개'를 지난다. 다시 위로 치고 올라 봉우리 하나를 넘고 또 봉우리 하나를 길고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작은 관목숲 사이로 올라야 하므로 뙤약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뒷통수가 따갑다. 게다가 땅에서는 복사열이 올라와 숨이 턱에 찬다.

 

오늘 구간은 그다지 길지 않은 구간인데, 끊임없이 오르내려 진이 빠지게 만든다.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올랐다. 오르막의 좌측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다. 자칫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지면 2박 3일은 떨어지겠다. 14:58. 지겹게 밀어올리던 봉우리 끝에 서는데 고도 695가 찍힌다. 저 멀리 검마산 임도가 보인다. 아, 힘들다!!


마지막으로 봉우리 하나를 넘고 오늘 구간의 종착점인 '검마산 휴양림 갈림길'에 내려섰다. 15:10.


 

 

 

# 덕재에서 올려다 본 검마산.

 

 

 

# 덕재 절개지 위에서 포즈를 잡은 뱌그라님. 

 

 

 

# 엄청난 인내를 요구했던 695봉. 벌겋게 익어서 올라오는 뚜버기님.

   

 

 

#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휴양림 갈림길.  

 

 

 

# 절개지 위에 늠름한 낙락장송들. 

 

 

 

# 선두대장 역할을 하신 뱌그라님. 

 

 

 

# 이틀 동안 먼 길 걸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그대도... 

 

 

 

한티재에서 여기까지 오는데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한티재에서 창수령까지 한 번에 내달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박지성처럼 산소탱크를 달고 사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그렇게는 못한다. 여기서 스톱! 다음 구간인 창수령까지도 1박 2일이다!

 

이곳 갈림길에서 검마산까지는 2.9KM 이고 휴양림까지는 1.5KM 거리다. "더운 날씨에 이틀 연속 산길 걷느라 수고많았습니다." 서로 치하하고 임도 따라 휴양림으로 내려 갔다.

 

길게 임도 따라 내려가는데 다음에 이 길을 다시 올라 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영 많이 손해보는 기분이다. 그래도 오늘 산행 무사히 마쳐서 기분 좋다! 그걸로 만족하자!

 

 

 

# 임도 따라 휴양림으로 향한다. 

 

 

 

# 다음 번에 이 길을 다시 치고 올라야 할 것을 생각하면 억울한 느낌이 든다. 

 

 

 

# 산괴불주머니. 

 

 

 

# 계곡에 물이 풍부하니 연속으로 이어 가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보충하면 된다. 

 

 

 

# 일광욕 중인 다램이. 

 

 

 

# 검마산 휴양림.

 

 

 

# 칼을 빼어든 모습이라 얻은 이름이란다. 그런데 갈 磨자는 왜 들어갔나??

 

 

 

길게 내려 휴양림에 복귀했다. 휴양림 샤워장에 들러 이틀간의 묵은 먼지도 닦아냈다. 아직은 소름이 돋게 차가운 물이지만 산행 후 이렇게 씻을 수 있다는게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잔뜩 열이 오른 근육들이 얼음같이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쓰고는 차분히 가라앉는다.  음~~ 좋다!! 행복하다!!!

  

 

 

# 귀경길 춘양에서 잡고기 매운탕으로 뒷풀이를 했다. 당귀 무침이 맛있다고 칭찬했더니 계속 리필 해준다. 여사장의 말에 의하면 당귀 무침과 함께 술을 마시면 술맛이 부드럽고 취하질 않는단다.

 

 

 

# 각종 산나물이 입맛을 돋군다. 우측이 당귀 무침.

 

 


자, 문제는 이제 낙동에서 서울까지 멀고 먼 귀갓길이다. 낙동길의 제일 큰 애로사항은 이렇게 먼 접근로에 있다.
휴양림을 출발해 최대한 막히지 않는 우회길을 고르고 골라 무사히 귀경했다.

 

이렇게 감사하게 7개월 만의 낙동길을 무사히, 또 동지들과 즐겁게 한걸음 더 보탰다. 첫날은 따로, 뒷날은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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