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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7(관악산/冠岳山)-자하(紫霞)와 관악산! 본문

산이야기/100대 명산

[100대 명산]7(관악산/冠岳山)-자하(紫霞)와 관악산!

강/사/랑 2008. 12. 30. 08:28

 [100대 명산]7(관악산/冠岳山) 



尋花緩步當經車 (심화완보당경차)

黃四孃家花發初 (황사양가화발초)

覓句不須呼紙筆 (멱구불수호지필)

溪逸怡好細沙書 (계일이호세사서)

 

수레 대신 천천히 걸어 꽃을 찾아 나서네

황씨네 네째딸 집에 꽃이 막 피었네

시 쓰겠노라 종이와 붓 찾지 말게

시냇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써 나가리니.

 

- 자하 신위/紫霞 申緯

 


자하(紫霞) 신위(申緯)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영조 45년(1769년)에 태어나 헌종11년(1845년)에 졸(卒)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 혹은 경수당(警脩堂)이라 했다.


평산 신씨 명문가에서 태어나 1799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쳤다. 1812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가서 중국의 학문과 문학을 실지로 보고 안목을 넓혔는데, 특히 중국의 학자 옹방강(翁方鋼)과의 교류는 그의 학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관직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곡산 부사(谷山 府使)로 있을때 피폐한 농촌의 현실을 목격하고 조정에 세금 탕감(蕩減)의 탄원을 올릴 정도로 목민(牧民)의 사명감이 깊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춘천부사 시절 지방 토호(土豪)들의 횡포와 맞서다 파직된 것을 필두(筆頭)로 당쟁의 여파로 인한 파직, 경기 감사 이시원(李是遠)의 실정을 상소하였다가 파직 및 유배 등 우여곡절이 많은 벼슬 생활을 했다.


탄핵(彈劾)으로 인해 파직되었을 때 시흥 자하산에서 은거하였다. 그 시기 시서화(詩書畵)에 몰두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자하는 시서(詩書)에 능했지만 그림에도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그림은 산수(山水)와 함께 묵죽(墨竹)에 능한 자질이 있었다.

 

그의 묵죽은 '강세황(姜世晃)'의 사사(師事)인데, 이정(李霆), 유덕장(柳德章)과 함께 우리나라 삼대 묵죽화가(墨竹畵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위의 시(詩)는 그가 그린 '석죽도(竹石圖)'에 들어 있는 시다.

 

'자주빛 노을'이란 멋드러진 호를 가진 자하는 시서화에 능한 예인(藝人)으로 뿐 아니라 차(茶)를 사랑했던 다인(茶人)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차 사랑은 그가 남긴 이런 시에도 잘 드러난다.

 

책 보기 귀 찮아 / 내던져 놓고 // 을 피우고 / 차를 끊이네 // 작은 집에 손님 자리 / 비가 샌들 무슨 상관 // 새해 인사 오는 이도 / 이젠 없는 걸

 

벼슬길이 순탄치 않았던 자하는 추자도(楸子島)에 유배를 가기도 했다.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정립한 초의선사(草衣禪師)와의 교류도 이때 이뤄진 것인 듯하다.

 

시서화(詩書畵)의 삼절(三絶)인 자하는 관악산 자락에 은거하며 말년을 보냈다. 관악산에는 자하의 흔적이 많다. 지금의 서울대 캠퍼스 안에 자하의 별장터라고 알려진 '자하연(紫霞淵)'이 있고, 과천의 시흥향교에서 연주암으로 올라가는 계곡을 '자하동천(紫霞洞川)'이라 부른다.

 

관악산은 집 근처에 있는 산이라 이미 수십 차례 다녀온 곳이고, 그만큼 무감각하게 다니던 곳이다. 자하동천이 자하 신위와의 인연으로 그런 이름을 얻은 줄도 몰랐다. 그저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이라 혼자서 혹은 주변 사람들이랑 유람 삼아 무심코 오르기만 했었다.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자하(紫霞)와 관악산!


일시 : 2008년 12월 25일.

세부내용 : 과천 종합청사역 ~ 시흥향교 ~ 자하동천 ~ 약수터 ~ 대피소 ~ 깔딱고개 ~ 연주암 ~ 전망대 ~ 연주대/관악산 정상 ~ 전망대 ~ 말바위 ~ KBS 중계소 ~ 8봉 ~ 불성사 ~ 서울대 수목원 ~ 안양유원지.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원래는 호남정맥을 들어 가려고 준비를 했는데, 연휴가 이어져서 그런지 심야 차표를 구할 수가 없다. 대안을 찾다가 가까운 관악산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깝다고 너무 늑장을 부렸나? 점심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선다. 크리스마스라 마눌은 당연히 교회로 가 버리고 강아지 혼자 집 지키라 당부하고 보따리 챙겨 집을 나섰다.



관악산/冠岳山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과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629m이다. 북한산(北漢山)·남한산 등과 함께 서울분지를 이중으로 둘러싼 자연의 방벽으로, 옛 서울의 요새지를 이루었다. 1968년 건설부 고시 제34호에 의거하여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73년 관악구가 영등포구에서 분구되면서 산이름이 구의 명칭이 되었다.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五岳)에 속했던 산으로,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고 그 줄기는 과천 청계산을 거쳐 수원의 광교산까지 이른다. 북서쪽으로 서울대학교, 동쪽으로 과천 정부종합청사, 남쪽으로 안양유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주봉(主峰)은 연주대(戀主臺)이고, 산정의 영주대(靈珠臺)는 세조(世祖)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산중에는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할 때 건축하여 곤란에 대처했다고 전해지는 원각사와 연주암(戀主庵:경기기념물 20)이 있고 그밖에 자왕암(慈王庵)·불성사(佛成寺)·삼막사(三幕寺)·관음사(觀音寺) 등의 산사(山寺)와 과천향교 등이 있다. 이 중 삼막사는 원효·의상 등의 고승들이 수도하였다고 한다. 산정에는 기상청의 기상 레이더 시설이 있다. 산세는 험한 편이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도심에서 가까워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매년 봄 철쭉제가 열린다.

 

자하 신위/紫霞 申緯

 

영조 45년인 1769년 8월 11일에 서울 장흥방에서 출생하였다. 9세에 처음으로 학문을 시작하였으며 일찍부터 재주가 널리 알려져서 정조 임금이 불러 시험해 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31세에 알성시 을과에 합격하고 이듬해 의정부 초계문신으로 발탁. 춘천부사. 도승지. 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그의 시재는 널리 중국까지 알려져 서장관으로 중국에 갔을 때는 용방강 등과 각별한 친교를 맺기도 했으며 국내적으로는 秋史 김정희, 洛下生 이학규, 초의선사와 폭 넓은 교류를 가졌다. 由蘇入杜란 말이 있듯 두보와 소동파의 시를 특히 존중했다. 헌종 11년에 1845년 3월에 장흥방 자택에서 卒했다. 저서로는 경수당전고가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관악산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우리집에서 관악산을 가자면 4호선 전철을 타야 한다. 4호선 전철은 산본역이나 수리산역으로 가야 하는데, 산본역은 버스를 타거나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고 수리산역은 작은 산을 하나 넘어야 갈 수 있다. 도로 따라 걷기는 싫고 뒷산 넘어 수리산 역으로 향했다.

 

                                 

# 수리산역으로 가기 위해 뒷산을 넘는다. 이 산마루금이 이래뵈도 한남정맥 줄기이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명색이 한남정맥 줄기인 작은 뒷산을 넘어 수리산역으로 가서 당고개행 전철을 탔다. 잠시 음악 몇 곡 들으니 과천 종합청사역에 도착한다. 역을 나와 좌측으로 올라가면 청사옆으로 길이 연결된다. 이윽고 시흥향교 앞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 과천청사역 복도. 길고 한산하다.

 

 

 

# 역에서 나오면 전방에 과천청사 위로 관악산이 올려다보인다.

 


 

# 과천향교(果川鄕校). 역사가 조선 태조 때까지 올라간다.

 

 

 

향교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음식점 몇 개가 나타난다. 산행 마치고 과천 방향으로 하산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 곳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고 출발한다.

 

조금 올라 매표소를 지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자하동천을 따라 계속 위로 올라간다. 관악산을 수십 차례 올랐지만, 자하동천이 자하 신위(紫霞 申緯)의 역사가 어린 곳이란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1회 때인지 2회 때인지 대학가요제에 서울대팀의 이름이 자하연이었다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여름에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발 담그고 놀던 저곳이 자하에게 시서화의 영감을 준 곳이었단 말이다. 자하는 이 계곡을 따라 올라 연주대에서 청계산쪽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자기 호를 자줏빛 노을인 자하(紫霞)라고 지었을까?

 

 

 

# 향교 지나 자하동천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 저 대피소가 대피의 목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을텐데..

 

 

  

# 올 가을과 겨울 가뭄이 얼마나 심했던지 자하동천이 완전히 말랐다.

 

 

 

# 어느 산에나 있는 이름인 깔딱고개. 관악산의 깔딱고개도 제법 힘이 드는 곳이다.

 

 

 

# 샘터.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음용수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수도권 산에 있는 상당수 샘터가 저렇게 대장균 수치나 중금속 오염 등의 이유로 음용부적격 상태이다.

 

 

 

# 힘들다 싶을 때쯤 만나게 되는 대피소.

 

 

 

#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빙판진 곳이 많아 이곳저곳 넘어지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 연주암 직전의 긴 계단길. 이곳도 헉헉 소리 나게 만드는 곳이다.

 

   

           

# 몇 년만에 다시 찾은 연주암.

 

  

 

# 여름에 저 법당 마루에 앉으면 시원한 바람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곳이다.


  

연주암은 점심 시간에 맞춰 들러면 무료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오늘은 이미 무료공양이 꿑났다. 잠시 주변 둘러보며 한숨 돌렸다.

 

연주암은 깊고 깊은 화장실로 유명했는데, 옛날 화장실 앞에 신식 화장실이 새로 들어 섰다. 옛날 연주암 화장실에 응가를 하면 볼일 다 보고 문을 닫고 나올 때쯤 첫 번째 응가가 풍덩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깊은 곳이었다.

 

몇 년째 공사 중인 대웅전 뒤로 돌아 올라 연주대로 향한다.

 

 

 

# 연주대 가는 도중에 새워진 전망대.


 

 


 

# 천길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연주대(戀主臺)가 바로 건너다 보인다. 저곳은 신라 문무왕 17년인 677년에 의상(義湘)이 지금의 연주암인 관악사를 창건하면서 함께 세운 것으로 당시는 의상대(義湘臺)라 이름 붙이고 좌선공부했던 곳이다.


연주대란 이름은 조선초에 개칭되었다. 고려 멸망 후 강득룡, 서견, 남을진 등 고려의 유신(遺臣)들이 이곳에서 두문동의 순국 충신들과 고려를 연모하여 이름지어졌다고도 하고,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왕좌를 포기하고 이곳에 올라 한양 왕궁을 바라보며 탄식하여 이름지어졌다고도 한다.


  

# 전망대는 조망이 아주 훌륭하다. 연주대에서 414봉 넘어 사당동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전방에 누워있다.


  

 # 우측은 KBS 중계소.


 

           

# 전방으로 과천 시내와 서울랜드. 그리고 청계산이 보인다. 겨울 까마귀떼가 하늘을 덮었다.


  

#  전망대의 파노라마.(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음.) 


 

 

           

# 연주암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내려다보인다.



          

# 우측 능선의 암자.


 

           

# 정상엔 사람들이 많이 올라 있다.


  

         

# 연주대의 역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 사당동 방면의 414봉. 우뚝한 모습이 일품이다.


 

 

잠시 더 올라 관악산 정상 노릇을 하는 연주대에 오른다. 크리스마스 휴일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올라 와 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춥긴 해도 조망은 역시나 일품이다.

  

 

          

# 관악산 정상.


         

# 정상 바위위엔 성혈이 있고 고인 물이 얼어 있다.


 

# 기상청 레이더와 너머의 방송 중계소.


 

 

# 관악산 정상의 파노라마. 양재동과 강남 일대. 한강도 보인다.(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음.)  


 

           

# 매 주말 함성과 탄식이 엇갈리는 국가 공인 도박장 과천경마장.


  

           

# 서울랜드와 현대미술관. 그리고 청계산.


 

 

# 저멀리 백운호수와 바라, 백운, 그리고 광교산.


            

# 우측의 전망대와 헬기장.


  

한참을 정상에 머물며 주변 조망 구경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 왔다 또 내려간다. 정상 한 쪽에 앉아 이런저런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암봉을 내려 KBS송신소 쪽으로 이동했다.

 

 

 

# 송신소 가기 전 말바위 전경.


            

# 우측 너머 삼성산이 보인다.


 

 # 땡겨보고.


 

# 서울 관악구쪽 조망. 저 동네는 이곳 관악산에서 구 이름을 얻었다.


 

 # 말바위 암봉을 넘어 간다.


 

 # 암릉이 이어진다. 관악산은 악(岳) 자가 들어 가는 골산(骨山)이다.


 

 # 말바위.


 

 # 암릉을 조심조심 건너는 사람들. 가까이 가서 보니 몇 사람은 시각장애인이다. 대단하신 분들이다.


 

# 지나온 능선. 말바위, 기상청 레이더, 연주대.


 

# 저기 빨간옷 입은 할머니는 남편에게 어려운 길로 끌고 왔다고 계속 투정을 부린다. 할아버지는 민망해서 계속 허허 웃기만 하신다.


 

 # 연주암을 내려다 보고.


 

 

 # 전방의 암봉은 앞으로, 중계소는 뒤로 우회한다.


 

 # 서울대쪽 하산길.


 

 # 이곳에서는 어묵까지 판매한다.


 

 # 편안하게 우회해서 


 

 

 # 고개를 넘어 팔봉쪽으로 갔다.



 # 지나온 능선을 잠시 돌아보고.


 

 # 태극기가 펄럭이는 팔봉.


 

 # 암봉 몇 개를 연달아 넘어 간다.


 

# 팔봉능선과 이어지는 삼성산.


 # 암봉의 관문을 지나,


 

 # 팔봉으로 항했다.


 

 # 이정표 있는 능선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팔봉이다.


 

 팔봉 정상의 태극기.


 

 # 육봉 능선. 저 능선을 통해 과천이나 안양 관양동 쪽으로 내려 갈 수 있다.


  

# 팔봉능선과 삼성산.



 # 우뚝한 칠봉과 이어지는 팔봉능선.


  

 

원래 계획은 팔봉 능선을 거쳐 안양유원지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었는데, 팔봉 능선에 빙판이 많아 위험하고 시각이 너무 늦어 그냥 불성사쪽으로 하산하여 계곡길을 통해 안양유원지로 내려가기로 했다.

 

 

 

 # 불두화가 떨어지지 않고 매달린 채 시든 불성사.


 

 # 불성사 바람벽엔 호랑이 한 마리 떡 버티고 앉았다. 떡 하나 주면....


 

 # 불성사 계곡을 길고 길게 내려 가다가 햇살 비취는 절벽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 이 계곡엔 그래도 물이 조금 남았다.


 

 # 예수님 생신 축하 건배!


 

 

 # 불성사에서 유원지까지는 6km가 넘는 긴 하산길이다.


 

 # 예전에는 서울대 수목원 안으로 해서 하산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서울대측에서 철조망으로 막아 두었다.




# 막는다고 막아지나? 사람들이 이미 철조망을 무력화시키는 구멍을 뚫어 두었다.


 

 # 우회로가 너무 멀어 서울대 수목원쪽으로 하산하다가 다시 월담하여 안양유원지로 내려갔다.


  

안양유원지는 원래 서울 시민들의 훌륭한 휴식처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안양이 워낙에 포도밭으로 유명했고 이곳 안양유원지도 함께 위락공간으로 유명했었다.


그때는 오로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위락의 전부라 이곳은 온통 닭도리탕집과 매운탕집들이 즐비하고 각종 유치한 놀이시설들, 이를테면 활쏘기, 야구공던지기, 야바위꾼들이 계곡 주변을 점령하고 있어 술 먹고 고함지르고 싸움질 그치지 않는 말초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변을 완전히 정리하고 재정비하여 예술공원으로 탈바꿈을 했다. 음식점들도 깔끔하게 정비되고 야바위꾼들 넘실대던 곳은 예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깔끔하고 정갈한 것이 좋긴 한데 왠지 그 시절의 질탕한 사람 살냄새가 사라진 것 같아 쬐끔은 아쉬움도 남는다.

 

19년 전 가을. 회사 야유회를 관악산으로 왔는데, 이곳 안양유원지로 하산하였다. 상류의 어느 닭도리탕 집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옆 방갈로의 50대 아저씨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가라오케 기계의 마이크를 잡았다. "아, 푸르던 청춘이 어느듯 사라지고 이 가을이 슬프구나!!!"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슬픈 옛날 노래를 흥얼거렸다. 옆에는 관계 모를 아줌마 둘을 끼고...

 

그때는 웬 신파에 술주정이냐고 빈정댔는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가 그 아저씨 나이 가까이 되어 같은 장소에 서니 희한하게 그때 그 아저씨의 대사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다지 인상적인 광경도 아니었는데...

 

그야말로 朝如靑絲暮成雪(조여청사모성설)인가!

 

 

 

# 예술공원으로 탈바꿈한 안양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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