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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그 마지막(개금고개~몰운대)-낙동강 천삼백 리와 함께 바다에 잠기다 본문

1대간 9정맥/낙동정맥 종주기

[낙동정맥]그 마지막(개금고개~몰운대)-낙동강 천삼백 리와 함께 바다에 잠기다

강/사/랑 2009. 5. 13. 00:40
 [낙동정맥]그 마지막(개금고개~몰운대)

 
낙동강 
 
핏재 아래 모여 / 태백 장성 옆으로 돌아 / 검게 검게 / 막장의 고난으로 흐르던 강 // 청량산 육육봉 / 江上에 띄워 / 당초밭 모서리 망연자실하던 / 우리 할머니 눈물 / 말없이 실어갔던 강 // 병든 금호강 / 방직공 염색공의 가슴앓이 소리 / 江心에 가득 품고 / 현풍 남지 삼랑진 나루 돌아 / 끝내는 구포둑에서 / 사상공단 보성 벌교 가이내의 / 고무풀같은 설움 / 한숨 속에 역류하던 강 // 내 숙부님들 통곡의 피 흐르던 강 / 이제는 사라진 / 을숙도 똥다리 아래 / 속깊이 소리없이 흐느끼어도 / 바다로 흐르지 못하는 강.

 

-  권경업


 

낙동강(洛東江)은 긴 강이다. 그리고 큰 강이다. 길이 506.17km, 유역 면적 2만 3384.21㎢로 압록강(鴨綠江) 다음 가는 우리나라 제 2의 강이다. 일반적으로 한강이 가장 길고 클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 규모로는 낙동강이 국내 제 2의 지위를 자랑한다.

 

그 기원(起源)은 강원도 태백의 천의봉 기슭이다. 너덜샘 북쪽 능선에서 발원한 강은 이 땅의 여러 큰 강이 모두 그러하듯 하류로 흘러가며 다양한 지류를 받아들여 몸피를 불린다.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半邊川)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친다. 서쪽으로 굽어 흐르던 강은 함창 부근에서 내성천(乃城川)·영강(嶺江) 등 여러 지류를 다시 구심상(求心狀)으로 받아들인다. 이후 그 흐르는 길을 남쪽으로 돌려 상주 남쪽에서 위천(渭川)을, 선산 부근에서 감천(甘川),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 창녕 남지 부근에서 남강(南江)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三浪津)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천삼백리 긴 흐름이다. 그 긴 흐름을 동고서저(東高西低)하는 한반도 지형의 동고(東高) 쪽 산맥을 따라 남으로 흘러 내린다. 그러면서 그 산맥 골짜기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샛강들의 물을 모두 받아 들여 그 몸피를 불린다. 그렇게 모인 물은 강원도, 경상도 인간세의 젖줄이 되어 물길 닿는 그 지역 인간 문명을 꽃 피우게 하였다.

 

태백시 가운데에 있는 황지(黃池) 연못가에는 "낙동강 천삼백리 예서 시작되다."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태백문화원에서 이곳 황지연못을 낙동강 발원지로 발표하고 기록함으로써 지금까지 일반에게 황지 연못이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왔다. 그들의 주장은 옛 지리서에 기록된 바를 토대한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초 몇몇 전문가들의 측정 결과 백두대간 '천의봉의 너덜샘'이 정확한 낙동강의 발원지로 밝혀졌다. 그 측정은 지형도 상에서 자로 재기도 하였고 현장에서 실측을 하기도 했다.


연구에 의하면 황지의 물과 너덜샘의 물이 합치는 문곡역 남쪽을 기준으로 황지까지는 3.51km이고 너덜샘까지는 13km로 그 길이가 확연하게 차이 났다. 따라서 너덜샘이 정확한 발원인 것은 명확하다.


너덜샘이 낙동강의 발원임을 밝힌 지리연구가 이형석(李炯石)씨에 의하면 낙동강의 길이도 기존에 알려진 525km보다 12km 가량 짧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오랜 옛자료의 기록이라 정확성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태백시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주장도 있고 황지 연못이 관광객 접근이나 상징성에 더 효율적인 면이 있어 이런 연구 결과가 곤혹스럽기는 하겠다. 정확한 발원이 황지이든 천의봉이든 태백에서 출발함은 사실이니 상징성을 내세워 황지로 외부인들에게 홍보하여도 무방하리라 여겨진다.


우리나라 산줄기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에 따라 그 흐름이 나뉜다. 산자분수령이란 산길이 물길을 건너지 않고 물길이 산길을 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산길과 물길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흘러간다.


낙동정맥은 백두대간 태백산의 피재에서 갈래쳐서 태백, 봉화, 울진, 영양, 영덕, 청송, 포항, 영천, 경주, 울주, 양산을 거쳐 부산 다대포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이 땅의 척추같은 산맥이다. 그 흐름 내도록 동고서저의 특징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서쪽으로 완만해지는 골을 따라 긴 물길을 아우른다. 그 긴 물길이 낙동강이다.


산자분수령으로 나란히 흐르는 산길과 물길 중 물길은 길이가 520여km로 천삼백 리 남짓이다. 반면 산길은 산줄기의 마루금만 따라 흘러 내리니 400여km로 꼭 천 리길이 된다.

 

이 땅 동쪽의 낙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과 정맥은 강원도땅 태백에서 같이 출발하여 물길은 낮은 곳을 찾아 천삼백 리를 흘러 흘러 내리고, 산길은 산줄기의 기(氣)가 내뻗는대로 천 리길을 남으로 남으로 내려간다.


그렇게 서로의 길따라 내려가면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부산땅 다대포 몰운대(沒雲臺)에서 바다로 합쳐지며 산(山)과 강(江)이 합일(合一)하게 된다.

 

시(始)와 종(終)이 함께 하니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하고 수미(首尾)가 쌍관(雙關)이다. 이래저래 낙동(洛東)은 그 시사점이 큰 강이고 1대간 9정맥의 상징적 정맥이다.

 

그 큰 두 개의 흐름을 느끼고자 2007년 7월 처음 백두대간 천의봉에서 출발하여 우여곡절(迂餘曲折),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사연들의 발걸음을 보태니 드디어 몰운대 바닷속으로 몰운(沒雲)하게 되는 날이 온다.

 

돌아보면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넘었던 태백의 면산, 비 철철 맞고 어두운 밤길을 헤맸던 주왕산 구간의 아찔한 기억, 완전히 탈진하여 오른 영남알프스 백운산 정상 너머에 시커멓게 버티고 있던 고헌산, 그 정상을 향해 하얗게 끝도 없이 뻗은 눈길을 어둠을 헤치고 오르며 느꼈던 절망감 등 아프고 서늘한 기억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런 아픈 기억보다는 천리길 낙동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발길 닿는 모든 곳들에서 느꼈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훨씬 더 많다.


특히 석개재에서부터 한 팀을 이뤄 천리길을 함께 걸었던 우리 술꾼 낙동팀들과 같이 나눈 인간적인 정(情)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잊지 못할 낙동이 가져다 준 따스한 추억이다.

 

이제 태백에서 출발하여 산길로 물길로 제각각 흘러내린 두 개의 큰 줄기가 합해지는 다대포 몰운대로 같이 잠겨서 장렬히 합일(合一)하기 위해 우리 3인의 낙동팀도 신발끈 동여메고 낙동길 마지막 길을 나선다.



낙동강 천삼백 리와 함께 바다에 잠기다!


구간 : 낙동정맥 제 21구간(개금고개~몰운대)
거리 : 구간거리(19.8km), 누적거리(418.9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9년 5월 9일. 흙의 날.
세부내용 : 개금고개 ~ 백병원 ~ 고원아파트 ~ 503.9봉 ~ 엄광산 ~ 꽃마을 ~ 구덕령 ~ 구덕산 ~ 시약산
/기상레이더관측소 ~ 알바(한샘약수터,동주대학교) ~ 정맥복귀/대치고개 ~ 까치고개 ~ 공동묘지 ~ 우정탑 ~ 괴정사거리 ~ 예비군교육장 ~ 구평고개 ~ 장림고개 ~ 아미산/응봉 봉수대 ~ 홍티고개 ~ 롯데아파트 ~ 다대포 ~ 다대포 객사 ~ 몰운대.


총 소요시간 9시간 00분.

 

5월 9일 흙의 날. 낙동길 마지막 발자국을 찍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씻고 짐 챙겨 집을 나섰다. 원래 우리 계획은 지난 연말이나 올 1월 쯤 낙동을 졸업하는 것이었으나 낙동길 막바지에 백곰님 부부, 호랭이님 부부, 솔숲향기님 등 많은 산꾼들이 몰려 있어 합동 졸업을 하기로 하고 우리팀은 일부러 졸업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결에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제각기 사정들이 있어 아예 졸업을 못하거나 하루 이틀 먼저 졸업들을 해 버렸단다. 음... 기다리다 똥침 맞았다!!

 

새벽 0시 25분 부산행 차표를 예매해 뒀는데 강남고속터미널에 모이니 0시다. 아직 25분 여유가 있는데 그냥 있을 우리팀이 아니다. 25분이면 평양도 같다 오겠다, 얼른 막걸리 한 병 비웁세!

 


낙동강/洛東江

 

낙동강(洛東江)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한다.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던 경북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남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은 모두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 지역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편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 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역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을 ‘낙수(洛水)’ 혹은 ‘낙동강’이라고 썼다.이 책에는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낙동강의 첫 글자인 ‘낙(洛)’은 오늘날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경상북도 지명 유래집에는 ‘상주의 옛이름은 낙양(洛陽)이고, 낙양의 동쪽은 낙동, 서쪽은 낙서, 남쪽은 낙평, 북쪽은 낙원(처음엔 나원으로 불리다가 오늘날 낙상면이 됨)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낙양’이라는 곳이 ‘낙’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낙양은 상주시가지의 서쪽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사직단터’라는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사직단터는 조선 선조 10년(1577년)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지신(땅의 신)과 곡신(곡식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자리이다. 학자들은 낙양에 있는 이 비석이 바로 ‘낙’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말한다. 낙양이 바로 낙동강이란 이름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엄광산/嚴光山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과 부산진구 개금동 사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504m 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의 고원견산으로 불렀으나, 1995년 4월 ‘부산을 가꾸는 모임’의 ‘옛 이름 찾기 운동’으로 엄광산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금정산맥 말단부에 속하며 구덕산, 구봉산과 이어져 있고 주로 안산암질의 암석으로 구성되었다. 엄광산은 주위에서 고도가 가장 높아 동구, 서구, 사하구, 북구, 해운대구 일부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부산이 항구도시임을 실감하게 한다. 능선길의 갈림길이 너무 많아 길 선택의 어려움으로 계곡으로 빠지기가 쉽다. 만약 계곡길로 들어섰다면 다시 원점으로 가서 산길을 살피거나 주위를 지나는 인근 주민들에게 물어서 가면 된다. 

 

몰운대/沒雲臺


부산광역시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16km 떨어진, 다대곶 동편에 있다. 다대곶 일대는 해류의 영향으로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라 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이전 몰운대는 섬이었다가 점차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곳은 대마도와 가까워 일본과 교역하는 주요 해상로로 이용되었으며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해상 노략질을 일삼던 곳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서 이곳 앞바다에서 전사한 녹도만호(鹿島萬戶) 충장공(忠壯公) 정운(鄭運)이 이곳 지명을 듣고 운(雲)과 운(運)이 같은 음인 것을 따라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으며, 정운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1983년 북한의 무장간첩선이 이곳으로 침투하다 괴멸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도 몰운대 최남단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동정맥 제 21구간 개금고개~몰운대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술 사랑함이 님 보듯 하는 이 사람들은 술상 앞에 앉으면 언제나 표정이 화사해진다.


 

 

막걸리 한 잔으로 낙동출정의 의지를 다지고 심야버스에 올랐다. 자다깨다 하며 흔들리다가 까무룩 깊이 잠들었나? 눈 뜨니 버스는 이미 부산 노포동에 들어서고 있다.

 

새벽 4시 40분의 노포동 버스 터미널은 식당도 지하철도 아직 미활동이다. 지하철역으로 이동하여 의자에 앉아 잠시 졸다가 5시 10분 첫차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부산 사람들 얼마나 부지런한지 첫 지하철이 두어 정거장 만에 벌써 만원으로 변한다. 서울 지하철도 이렇게 첫차부터 만원이었나?

 

사람이 너무 많아 졸지도 못하고 흔들리다가 개금역에 도착했다. 개금역을 나와 백병원을 향해 한참을 올라갔다. 이곳은 주택지역이서인지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이 하나도 없다. 한참을 헤매다 백병원 앞 삼거리에서 새벽장사를 하는 식당을 발견하고 그 곳에서 민생고를 해결했다.

 

 

 

# 노포역에서 첫 지하철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 개금역.


 

  

# 백병원을 향해 길게 올라 갔다.


 

  

 

# 아침부터 쐬주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아침식사 후 화장까지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백병원 좌측길로 올라가면 '고원아파트'가 나오고 조금 오르면 '놀이터' 뒤로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등로 입구에 표지기 하나 매달고 무사 졸업을 기원해 본다. 곧바로 엄광산 오름이 시작되는데, 준비 덜된 몸이 힘들다고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한 차례 위로 밀어 올리면 '묘지가 있는 팔각정'이 나온다. 


 

 

 

# 들머리 찾아 올라 가다가 특이한 문패를 보았다. 찾을 심, 역사 사. 한자 이름은 좋은데... 성까지 합하니 한글로는 좀 웃긴다.


  

 

# 백병원과 고원아파트 사잇길로 올라 간다.


 

# 팔각정에서 겉옷 벗고 잠시 한숨 돌렸다.


 

  

팔각정 좌측으로 오르면 바로 뒤에 '운동시설'이 있고 '임도'를 만난다. 임도 너머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처음에 한 번 잡은 경사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가파르게 위로 밀어 올리는데 쎄가 빠질 지경이다.

 

고도를 높여 갈 수록 중간중간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경치 구경한다는 핑계로 잠시잠시 휴식을 취했다. 부산 시내와 지난 구간의 산줄기들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다시 한차례 낑낑 밀어 올리면 봉우리가 하나 나타난다. '503.9봉'이다.


우측으로 조금 내리면 넓은 임도가 정상으로 길게 이어진다. 임도 따라 편하게 올라가면 '엄광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 엄광산 오름은 가파른 비탈길의 연속이다.


 

 

# 바위전망대에서 지난 구간 백양산을 돌아 보았다. 밤중에 두 시간 동안 어렵게 개금동으로 내려왔던 산줄기가 조망된다.


 

  

# 저멀리 금정산 고당봉이 보인다.


 

 

# 서낙동대교.


 

  

# 503.9봉.


 

  

# 정상은 좀 더 가야 한다.


 

  

 # 정상 너머로 구덕산과 시약산이 보인다.


 

  

 

# 넓은 임도 따라 올라 갔다.


  

 

# 그 임도 끝에 엄광산 정상이 있다.


 

  

엄광산 정상은 고생하며 오른 것에 비하면 좀 싱겁게 생겼다. 한 쪽에 팔각정이 있어 한숨돌리며 쉬기에는 적당하다. 팔각정 너머로 구덕산과 시약산의 기상 레이더 기지가 보이고 정맥길이 좌측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팔각정에 짐 내리고 당연히 막걸리 두껑을 딴다. 오늘 갈 길이 먼데 천하태평 우리 낙동팀은 권커니잣커니 막걸리 맛에 취해만 간다.


얼마나 쉬었을까? 시원한 정자에서 한 잠 늘어지게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배낭에 차곡차곡 개어 넣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가파르게 올라온 엄광산 고도를 모두 까먹고 아래로 길게 내려 갔다. 호남정맥의 산들이 모두 이런 식이다며 호남길 준비하고 있는 나를 뚜버기님은 계속 겁을 준다. 호남정맥 걱정은 그때 일이고 당장은 다음 구덕산 오를 일이 큰일이다.

 

가파르고 길게 아래로 내려가면 '구덕령'에 내려서게 된다. 이 동네를 '꽃마을'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 구덕산과 시약산이 건너다보인다.


  

             

# 가까이 땡겨 보았다. 

 

 

 

             

# 용두산 공원과 북항대교, 그리고 앞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배들.


 

  

             

# 초량동 쪽인가?


 

  

             

# 술 사랑함에 산 아래와 위가 따로 없다. 여기 안주 있네!


 

 

                                        

# 이 시기 숲속의 소나무는 송홧가루를 잔뜩 머금고 있다.


 

  

                                         

# 길고 가파르게 내려 구덕령에 내려서고 다시 구덕산을 올라야 한다.


 

                                         

# 구덕령 주변은 맛난 음식점들이 가득하다.


  

                                         

# 사거리에서 기러기탕 집 골목으로 올라 간다.


 

 

  

구덕령 주변은 음식점들이 가득하다. 이 구간은 도시락도 간식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사거리가 나오고 직진하여 기러기탕집 골목으로 올라 간다. 그러면 도로는 휘어서 구덕산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이어져 올라 가고, 전봇대에 직진하여 식물원 안으로 들어가라고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식물원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휘어지며 산 정상을 향해 나무계단길이 이어진다. 한 차례 길게 올라 가면 숲을 벗어나고 구덕령에서 올라 오는 도로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도로를 계속 따르면 승학산으로 갈라지는 넓은 공터를 지나 구덕산 정상까지 올라 갈 수 있고 산길로 치고 올라가도 된다. 한 차례 땀을 찐하게 빼며 치고 오르면 '구덕산' 정상에 이른다.

 

  

             

# 식물원 안으로 들어간다.


  

             

# 나무계단길이 길게 이이진다.


  

             

# 노린재 나무를 자주 만난다.


  

                                         

# 또 한차례 길게 치고 오른다.


 

              

# 구덕산 정상.


  

             

# 통신 안테나와 시약산의 기상 레이더.

 

 

             

# 승학산. 정상에 이르는 능선길이 억새밭이다.

 

  

             

# 시약산의 골프공.


 

              

# 시약정과 암봉.


 

  

구덕산 정상에는 작은 정상석이 서 있고 한북정맥 챌봉에 있는 것과 같은 항공표지국이 위치해 있다. 우측 전방으로 승학산이 길게 누워 있어 잠시 저 길이 정맥길이 아닐까 의심케 한다. 좌측에 기상 레이더가 우뚝 서 있는 시약산이 내려다 보인다. 정맥길은 저쪽으로 가야 한다.

 

아래로 내려 도로에 내려서고 통신 안테나를  지나 골프공 쪽으로 접근한다. 기상 레이더 정문 좌측으로 철조망을 돌아 갔다. 좌측으로 작은 갈림길이 나오고 내려가면 시약정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지도에는 정맥길이 시약정과는 많이 떨어져 있게 표시되어 있다. 마침 표지기도 전혀 없고 좌측길보다는 직진길이 훨씬 더 선명하고 그쪽에서 올라 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별 의심없이 직진길을 선택하여 진행했다.

 

이것이 엄청난 알바의 시작이었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좌틀하여 시약정을 지나 아래로 곧장 떨어져 대티고개로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직진하여 동주대학교 우측 양지말쪽으로 진행해 버렸다.

 

알바인줄도 모르고 편안하게 능선길을 가다가 아래로 길게 떨어져 내렸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넓은 공터에 바람 좋은 쉼터가 나오길래 간식먹으며 한참을 휴식했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해 내려가는데 일반 등산객들로 붐비는 한샘약수터가 나온다. 어? 약수터 이야기는 없었는데? 계속 아래로 내리는데 돌탑들이 나타난다. 우정탑에 벌써 도착했나?

 

마침 하산하시는 어르신이 계시길래 지도 보여드리고 길을 물었더니 이 쪽은 대치고개 가는 길이 아니고 동주대학교 가는 길이란다. 아이구야~~~~

 

그 어르신과 같이 조금 더 내려가 바위 전망대에서 주변 지형지물을 확인하니 시약산 정상에서 전혀 엉뚱한 산줄기를 타고 하산해 버렸다. 이런이런이런....

  

 

                                         

# 도로 따라 시약산 정상 기상레이더 관측소쪽으로 향했다.


 

  

# 시약산 정상에서의 파노라마. 좌측 산줄기를 타고 하산해야 하는데 우측의 넓고 뚜렷한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대형 알바를 했다. 좌측으로 내려가서 대치고개를 지나고 우정탑이 있는 산줄기를 타고 우측으로 가야 한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사진을 보실 수 있음.)


 

             

# 이쪽으로 올라오는 산객들이 많아 무심코 알바를 하게 되었다.

 

 

              

# 엉뚱한 산줄기를 정맥인줄 알고 열심히 촬영이다.


 

             

# 부산항을 땡겨보고,


  

             

# 감천만도 땡겨본다.


             

# 다대포로 향하는 산줄기.


   

            

# 낙동당 하구의 을숙도를 가까이 땡겨본다.

 

 

             

# 우측 산줄기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이곳으로 왔다.


 

                                          

# 알바인줄도 모르고 시약산을 돌아보았다.


 

  

친절하신 어르신과 헤어져 길게 아래로 내려가니 동주대학교 우측 양지말에 내려 서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두 생략하고, 다시 정상적인 정맥길인 '대티고개'에 올라 서게 된다.(時空超越)

 

대티고개 슈퍼에서 아이스바 하나씩 사서 입에 물고 도로를 건넜다. 빨간 우체통이 있는 담배가게 옆 골목으로 올라 간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올라 가는데 골목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양쪽 모두에 표지기가 매달려 있다. 아마도 좌측길은 골목 끝까지 올라서 마루금을 타는 듯하고 우측길은 골목길을 계속 따르게 된다.

 

아파트 담벼락 밑으로 길게 진행하면 '까치고개'에 선다. 주차장을 지나 한차례 길게 올라 서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고 뙤약볕 아래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서야 마루금에 올라 설 수 있다.


다시 긴 오르막을 밀어 올리면 뙤약볕 강렬한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공동묘지가 마루금 위에 길게 누워 있는데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이 마나님 산소인지 부모님 산소인지 모르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깔끔하게 단장을 하시고 계신다. 오뉴월 호시절에 풀이 쑥쑥 자라 봉두난발한 다른 무덤들에 비해 깔끔하게 단장된 묘역이 할아버지의 정성 담긴 마음같아 잠시 모두들 숙연해진다.

 

공동묘지를 지나 잠시 더 가면 어느 산악회에서 돌을 쌓아 만든 커다란 '우정탑'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짐 내리고 막걸리 한잔으로 갈증을 달랬다.

 

             

# 우여곡절을 겪고 올라선 대티고개.


 

                                         

# 좁은 골목길을 올라간다.


 

              

# 마루금에 서면 시약산이 올려다 보인다. 정면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좌측 능선을 타 버렸다.


 

              

# 시약산. 알바의 현장.



             

# 향이 강렬한 찔레꽃.



 

# 아까시도 본격적으로 강렬한 향을 내뿜기 시작한다.

 

 

 

# 길게 한차례 밀어 올린다.


 

 

# 마루금엔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 마루금에 서면 지나온 구간이 돌아다 보인다.


 

 

# 영도쪽 인간세도 내려다 보인다.


 

 

# 부산탑.


  

             

# 영도다리 이다. 그 앞 건물이 자갈치시장이다.

 

 

             

# 영도의 봉래산엔 구름이 서려 있다.


 

  

             

# 감천항.



 

# 오륙도가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 작은 봉우리 하나 넘고,


  

              

# 우정탑에 도착했다. 낙동길 천 삼백리를 함께 걸어 온 우리 우정도 돈독하다.


 

  

한참을 휴식한 후 다시 출발했다. 길게 진행하다 보면 능선이 끝나고 갈림길이 나타난다. 그 너머로 가야 할 정맥길이 길게 조망된다.

 

아래로 내려가면 체육시설이 있고 우측으로 내려가는 시멘트 도로가 나타난다. 그 길을 따라야 하는데 정면의 산길로 내려갔다. 길게 내려가면 삼성중학교가 나오고 잠시후 번화한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이곳에서 도도를 따라 올라가면 '괴정사거리'가 나온다.

 

 

                                         

# 할아버지 무덤에 새기기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한 선시(禪詩).


  

           

             

# 우측 멀리 다대포로 이어지는 정맥길이 보인다.


    

  

             

# 괴정사거리.


  

 

괴정고개에서 육교를 건너 골목길로 올라 갔다. 해동고교 앞을 통과하여 한차례 밀어 올리면 예비군 교육장을 지나게 되고 다시 도로를 따르다 체육공원을 지나고 잠시 올라 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잠시 내리면 군부대 정문을 만나고 좌측으로 철조망을 따르다 아래로 내려가면 대동고교 앞을 통과하여 '구평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구평고개에서 부터는 다시 도로를 건너 봉화산과 구평가구단지를 지나야 하는데, 몰운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고 가구단지가 마루금을 온통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이 구간은 점프하여 도로를 따랐다.

  

 

             

# 괴정사거리에서 육교를 건넜다.


  

 

             

# 대동고교와 부일냉동 앞을 지나 내린다.

  

 

             

# 구평고개. 오늘은 하루 종일 이런 도심지의 고개를 지난다.

 

   

             

# 장림고개.


 

 

 

도로를 따라 '장림고개'에 올라선다. 다시 우측으로 골목을 들어서면 서림사 입구가 나오고 우측으로 올라 가면 아미산 오름이 시작된다. 한차례 밀어 올려 안부고개에 이르고 허물어진 돌탑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곳을 지나 헉헉 소리가 절로 나는 오르막을 찐하게 밀어 올린다.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고 나서  넓은 봉수대가 있는 '아미산'에 오르게 된다.

 

 

             

# 서림사 입구.

 

 

 

             

# 거대한 돌무더기를 통과했다.


 

 

             

# 아미산 정상의 봉수대. 아미산 봉수대는 응봉봉수대라 부른다. 응봉봉수는 조선 시대 봉수 전달 5경로 중 제2경로의 시발점이다. 다대포 ~ 양산 ~ 경주 ~ 안동 ~ 단양 ~ 충주 ~ 광주를 거쳐 한양의 목멱산 경봉수와 연결하였다.

 

 

 

             

# 아미산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 가야 할 다대포와 몰운대가 보인다.


  

             

# 다대포 만을 땡겨보고,

 

 

              

# 낙동정맥의 종점 몰운대도 땡겨본다.


  

                                         

#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으신가요? 응봉 봉수대는 완전 복원을 하지 않고 흔적만 남겨 두었다.


              

# 매봉이란 이름은 참 흔하다.


 

  

아미산(峨媚山)은 고도 163m의 낮은 산이다. 하지만 바닷가에 위치한 산이라 고도감도 있고 조망도 좋다. 아미산이란 이름은 산아래 마을이 예전부터 '아미골'이라 부른데 연유한다. 아미골은 이 산 기슭에 움막집이 많이 있었는데 움막을 예전에는 '애막'이라 불었고 그 말이 변하여 아미로 되었다는 설이 있다. 확실치는 않다.


통상 아미(蛾眉)는 누에 나방의 눈썹처럼 고운 여인의 눈썹을 뜻하는 말인데, 이곳 아미산은 '산봉우리 峨'와 '아첨할 媚'를 쓰고 있다. 눈썹처럼 생겨 얻은 이름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상엔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완전한 봉수대는 아니고 봉수대 터만 복원해 두었다. 할려면 다 하든지... 이곳 아미산의 봉수대는 응봉 봉수대(鷹峰  烽燧臺)라 부르고 있다. 응봉은 또 무엇이냐? 자료 찾아보니 응봉 봉수대는 다대포 동북쪽 두송산 혹은 아미산에 있는 봉수라 적혀있다.


두송산은 또 무엇이냐? 결국 이 산은 아미산, 응봉, 두송산 등으로 불렸다는 얘기다. 응봉은 매봉이란 말이다. 매봉은 매가 많아 매봉이 아니고 산을 뜻하는 뫼가 변하여 매봉이 된 것이다. 두송산(頭松山)은 아마도 정상부에 소나무가 많아 얻은 이름일 것이다. 참 이름이 많은 산이다.

 

우측 너머에 작은 봉우리가 있는데 그곳이 오히려 더 정상 분위기가 난다. 조금 내렸다 그 봉우리에 올라 서는데, 아, 눈앞에 낙동강이 바다와 합쳐지는 기수역이 펼쳐진다.

 

낙동아, 내 너를 따라 천 리 산길을 걸어걸어 이곳까지 왔노라!

너 역시 나를 만나러 천삼백 리 물길을 구비구비 흘러 이곳까지 왔구나!!

 

 

                                         

# 우측에 작은 봉우리가 있다.


 

             

# 눈앞에 낙동강 하구가 바다와 合一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 낙동강과 합일하는 바다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음.) 


  

 

             

# 모래가 퇴적되어 삼각주를 이뤘다.

 

 

 

# 배 한 척 그 물길을 따라 달리고 있다.


  

# 지나온 정맥길도 돌아보고.


  

 

멋진 조망에 가슴 벅차하며 한참을 감상하다가 다시 안부로 내려와 우측으로 꺾어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내려가면 아파트 단지가 있는 '홍티고개'에 내려 선다. 낙동의 끝자락도 산길보다는 인간세를 더 많이 만나게 된다.


롯데 캐슬아파트 사이로 구불구불 길게 내려 가면 '다대포 해수욕장의 횟집단지'에 도착한다. 횟집들의 끝자락에 몰운대 비석이 서 있다. 지난 3월에 이곳에 왔으니 두 달만에 다시 이 비석을 보는 것이다.

 

 

 

# 조은居士.


  

# 홍티고개엔 롯데캐슬아파트가 버티고 있다.


  

 

# 몰운대.


  

 

# 먼 길 같이 걸어온 낙동동지들. 몰운대(沒雲臺) 표지석 앞에 기념사진 한 장 남겼다. 몰운대는 태종대, 해운대와 함께 부산의 3대로 유명하다. 해송이 울창한 곳이다.


  

 

# 다대포. 낙동강 하구 최남단의 포구였다. 조선시대에는 다대포진(多大浦鎭)이 있었다. 다대포진은 압록강변의 만포진(滿浦鎭)과 함께 양대 국방 요충지였다. 다대포란 이름은 큰 포구가 많은 바다란 의미이다. 일본서기에는 다다라(多多羅)로 기록되어 있다.


 

  

졸업을 미루고 기다리던 우리를 제치고 한 발 먼저 졸업을 해버린 백곰님 부부와 호랭이님 부부, 그리고 합동 졸업하는 세 팀을 축하해주기 위해 익산에서 달려온 파키라님, 부산산사의 조은산님을 몰운대에서 만났다. 고마운 분들이다.

 

다함께 몰운대로 올라가 다대포 객사를 지나고 좌측으로 자갈마당쪽으로 내려 갔다. 그리고 길이 바다로 잠기는 그곳에서 낙동정맥 천리길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다대포 객사(多大浦 客舍). 고을 수령(守令)이 초하루와 정월에 대궐을 향해 망배(望拜)를 드리거나, 사신들의 숙소로 이용되던 건물이다.

 

 

 

# 바람 시원한 몰운대.


  

 

# 모두 낙동정맥 졸업 축하합니다. 시기는 다르지만 전원 낙동정맥 졸업자이다.

 

 

                                         

# 마나님들 모시고 낙동을 졸업한 백곰님과 호랭이님.

 

 

 

# 몰운대 전방의 조망. 쥐섬(鼠島)을 중심으로.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음.)


                                     

 

 

# 경도.  지역에서는 모자섬이라고도 부른다. 경도라면 아마도 '고래 鯨'을 쓰지 않았나 싶은데 고래섬이 아니고 모자섬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 시원한 남해바다.


 

 

# 쥐섬. 하얀 등대가 있다.


  

 

# 낙동강물이 바다와 합쳐진 그 속에 발 담궈 천리 낙동길의 마침표를 찍었다.

 

 

 

# 온몸으로 합수(合水했다.


  

# 두 분 덕분에 긴 낙동길이 너무나 즐거웠소이다.

  

 

# 낙동 완주를 축하하며, 위하여!!!


  

# 다대포 해수욕장엔 커다란 연들이 가득 떠 있다.

 

 

 

# 패러서핑하는 사람들이다. 카이트서핑이라고도 한다. 음, 재미있겠다!!

 

 

 

# 허공으로 붕붕 떠 오른다.


  

 

# 역동적인 스포츠다.


 

 

# 다대포 횟집단지에서 뒷풀이를 했다.

 

 

 

# 먼 길 달려와 준 파산적.


  

 

# 부산산사 제이제이님.


  

 

# 조은그룹 회장님.


  

 

# 빛나는 곰돌님.


  

 

# 나름 깜찍이들!


  

 

# 환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몰운대에 도착하는 순간 난 아마 울고 말거야!" 낙동정맥 내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졸업을 하고 나니 그냥 무덤덤할 뿐이다. 같이 졸업을 하려고 너무 많이 기다려서 그런가?

 

하루 이틀의 시차는 있지만 낙동졸업을 함께 한 백곰님 부부, 호랭이님 부부와 함께 몰운대 바닷가에서 졸업 세러머니를 했다. 시원한 남해 바닷물에 발 담그니 지난 2년간의 먼 낙동길의 이야기들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음... 너무 감상적이면 안돼!!!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낙동 천 리의 때를 씻어 넘겼다.

 

그리고  자리를 이동하여 졸업생들과 외지 산꾼들을 환대해주기 위해 달려오신 부산산사 조은산님과 제이제이님, 곰돌님, 그리고 먼 익산에서 찾아온 파키라님과 함께 단촐한 졸업 뒤풀이를 했다.

 

넘치지도 과하지도 않게 술잔을 나눈 후 일정이 바쁜 이들은 모두 떠나고, 우리 낙동팀과 파키라 이렇게 넷은 광안리로 이동하여 부산의 밤을 즐겼다. 

 

 

 

 

# 광안리 해수욕장.

  

 

# 광안대교.


 

 

# 15년 만에 찾은 광안리는 휘황찬란하게 변해 있다.


  

 

# 불꽃놀이도 하고...


 

 

# 광안리 바닷가에서 맥주 한 잔을 나눈다.


  

 

# 울산에서 구경쟁이님과 홀로바우님이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달려와서 졸업 축하를 해 주셨다. 감사한 분들이다.


  

 

# 뒷날 느지막히 일어나 어제 알바하느라 못했던 구간을 정리하고 다시 자갈치시장으로 이동했다.


  

 

# 휴일의 자갈치는 사람들로 붐빈다.

 

 

 

# 새우깡 얻어 먹겠다고 저공비행 중인 갈매기.

 # 

 

 

 

# 이틀 동안 회를 질리게 많이 먹었다. 술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 천리길을 같이 걸어온 신발 세 짝이 자갈치 바닷가에 나란히 도열해 있다.

 

  

# 길고 긴 이틀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야 부산을 떠난다. 파키라, 고마웠네!!

 

 

  

처음 2007년에 낙동정맥을 시작하면서 과연 내 건강으로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구간인 면산을 오를 때는 무더운 날씨와 끝없는 오르내림에 탈진하여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 마칠 수가 있었다.

그러다 뱌그라님과 뚜버기님을 만나 석개재에서부터 같이 동행하여 낙동길을 걸었다. 이후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남기면서 길고도 어려운 낙동길을 함께 하였고 마침내는 무사히 몰운대 바닷가에 설 수가 있었다.

 

그동안 백두대간은 마눌과 둘이서 종주했고, 한남, 금북, 한남금북, 한북, 금남호남정맥은 혼자서 종주했다. 내 건강과 체력이 부실해서 걸음이 느린 데다 사진을 많이 찍고 기록을 하기 때문에 항상 표준시간보다 오버해서 혼자 산 다니는 것이 자유스럽고 속 편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낙동정맥을 두 동지와 함께 다녀보니 그 재미가 또 보통이 아니다. 오며가며 말동무가 되어서 좋고, 같이 나누는 술 한잔의 재미 역시 쏠쏠하다. 무엇보다 같은 산길을 걷는 산꾼끼리 마음 통하고 정 통하니 그 재미가 으뜸이다.

 

자, 이제 세 개의 정맥이 남았는데,

혼자 가야 하나, 동지들 규합해 같이 가야 하나??

우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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