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4구간(금계~동강)
지리산은 높은 산이다. 해발고도 1,915m로 남한 땅의 뭍에서 가장 높다. 게다가 그 혼자 높은 것이 아니라 중봉, 하봉, 제석봉, 연하봉, 삼신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형제봉, 삼각고지,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 노고단, 종석대, 만복대, 바래봉 등 천 미터가 넘는 수십 개의 봉우리를 함께 아우르고 있다.
지리산은 골이 깊은 산이다. 칠선계곡, 한신계곡, 와운골, 뱀사골, 피아골, 도장골, 거림골, 빗점골, 대성골, 큰세개골, 조갯골 등등 아흔아홉 골을 이루고 있다. 그 골들은 화개천, 연곡천, 동천, 경호강, 덕천강 등 10여 개의 하천으로 흘러 내려 지리 12동천을 이룬다. 지리산은 품이 넓은 산이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등 3개 도,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군 등 다섯 개 시군과 주천면, 상동면, 운봉읍, 마천면, 휴천면, 삼장면, 시천면, 악양면, 화개면 등 21개 읍면, 그리고 그 속의 120여 개 크고 작은 마을을 품고 있다. 산 높고, 골 깊으며 품 넓으니 그 골짜기 골짜기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수천 년 지리산에 기대어 뿌리내려 살고 있다. 그 사람들은 대처(大處)에서 탐관오리의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피해 들어오기도 했고, 정감록(鄭鑑錄)에서 말한 십승지지(十勝之地), 즉 병화(兵火)와 흉년이 없는 피장처(避藏處)를 찾아 스며들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마을을 이뤄 삶의 터전을 만들고 자손을 낳아 역사를 이어왔다. 그 역사는 지리산에 뿌리내린 사람들의 역사라 지리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황산 전투와 동학 농민전쟁의 이야기는 물론 빨치산의 이야기도 이곳 마을에 때론 역사(歷史)로 때론 구전(口傳)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 4코스는 금계에서 동강까지 11km 거리이다. 전체적으로 엄천강을 끼고 이어지는데, 그 강변과 산자락 사이에 있는 금계, 의탄, 의중, 세동, 운서, 동강 등 여섯 개의 마을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출발지인 금계와 의탄에서 골을 따라 올라가면 천왕봉으로 곧바로 올라가는 칠선계곡으로 연결되고, 이후 지리산의 흐름이 중봉, 하봉을 거쳐 웅석봉, 왕등재로 흘러가는 동부 능선과 엄천강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이어진다. 그 이어지는 중간중간에 여섯 마을이 아래로는 엄천강에 발 담그고 위로는 지리산에 기대어 징검다리처럼 앉아 있다. 둘레길은 그 징검다리 하나하나를 산길, 들길, 마을길로 이어주고 있어 각 마을에 서린 인간세의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게 하여 긴 세월 역사가 되게 한다. 그리하여 훗날 이 길을 걷는 순례자는 각 마을에 서린 이야기를 하나씩 더듬어 봄으로써 지리산과 그 산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역사를 공감하는 좋은 경험을 얻게 된다.
마을을 잇는 길!!
구간 : 지리산 둘레길 4구간(금계~동강) 거리 : 구간거리(10.8km), 누적거리(56.1km, 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5년 5월 24일, 해의 날 세부내용 : 금계마을 ~ 의탄교 ~ 의탄마을 ~ 의중당산 ~ 의중마을 ~ 용유담 ~ 세동마을 ~ 운서쉼터 ~ 운서마을 ~ 구시락재 ~ 동강마을.
원래 집에서 세운 계획대로라면 오전 일찍 도착했어야 할 금계마을을 정오에 도착했다. 첫날 엄청난 교통정체 때문에 인월 도착이 너무나 늦어진 탓이다. 그나마도 3구간의 전체 거리를 생각하면 비교적 빠른 도착이다. 금계마을은 엄천강에 발을 담그고 있는 마을이다. 강에 인접한 마을 입구에 음식점을 겸한 슈퍼가 있고, 택시들이 서너 대 도열해 있다. 나중에 동강에서 인월로 갈 것을 예상해서 택시비를 물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보다 한참 더 비싼 가격을 부른다. 그래도 눈치는 빨라서 우리가 정확한 가격을 알고 있다 싶으니 얼른 다른 가격으로 정정하는데 그나마도 바가지가 있는 가격이다.
택시에 대한 선택 여부는 나중에 동강 현지의 상황을 보기로 하고 우선 식당에 들러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슈퍼에 들어가니 메뉴에 간단한 식사가 되는 것으로 적혀 있다. 자리 잡고 앉아 주문하는데 상당히 분주해 보이는 주인이 이곳에서는 바빠서 식사 준비를 못 하니 백여 미터 근처에 있는 자기네 식당에서 식사를 하라고 한다. 등구재 양쪽의 중황, 상황, 창원, 금계마을은 둘레길 순례객들이 모여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전국 곳곳에 있는 유원지처럼 변해 버렸다. 외지인들이 밀려들자 돈도 같이 몰려들고 돈맛을 알게 된 지리산 사람들은 순박한 산골사람이 아니라 도회지의 장사꾼과 다를 바 없이 되었다.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기분을 안고 금계마을을 떠났다. 배 고프다. 술 고프고.
지리산 둘레길 4구간(금계~동강)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국립공원이 아닌 주변을 걷는 길이다. 그 말은 산길을 걷되 강과 저수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지리산둘레길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금계-동강 구간은 이러한 지리산둘레길의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구간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과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를 잇는 11km의 지리산둘레길. 지리산 자락 깊숙이 들어온 6개의 산중 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천강을 만나게 된다. 사찰로 가는 고즈넉한 숲길과 등구재와 법화산 자락을 조망하며 엄천강을 따라 걷는 옛길과 임도. 이 길을 걷다보면 산과 강,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요 구간으로는 금계마을을 지나 옻칠로 유명한 의중마을, 칠선계곡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거쳐, 모전마을(용유담), 세동마을, 운서마을을 지난다. 운서마을 이후에 구시락재를 넘으면 동강마을에 다다를 수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지리산 둘레길 4구간(금계~동강)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둘레길 안내 센터에서 구간 정보와 버스 시간 등을 확보하였다. # 오늘 우리가 걸을 4코스의 마을들은 모두 육이오 전쟁 당시 빨치산들이 출몰하고, 그로 인한 여러 피해를 입은 곳이다. # 의탄교를 건너며 4코스를 출발한다. 정면의 골짜기로 올라가면 칠선계곡이 나온다. 저멀리 산이 천왕봉이지 싶다. # 가뭄 오래되어 엄천강(嚴川江)엔 물이 적다. 지리산 노고단, 반야봉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달궁을 거쳐 산내에 이르기까지 만수천이라 불린다. 인월에서 흘러온 광천과 산내에서 합쳐 임천으로 이름을 바꾼 강은 용유담에 이르러 엄천강으로 다시 이름을 바꾼다. 이후 생초, 산청, 원지를 거치며 경호강으로 몸을 부풀렸다가 다시 지리 주능 남쪽의 물길을 만나 남강을 이룬다. # 지리 주능의 골골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곳 엄천강으로 모인다. # 햇살 강렬한 들길을 걸어 의탄리로 들어간다. 이 길을 따라 곧장 가면 칠선계곡 거쳐 천왕봉으로 올라 갈 수 있다. # 의평마을 입구에 어마무시한 크기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다. 햇살 너무 강해 그 느티나무 그늘에서 한참을 쉬었다. # 수령 육백 년이라는 이 나무는 장정 대여섯 명이 안아야 될 정도로 몸피가 두껍다. 아랫쪽 가지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으로 처졌다가 다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이 당산나무는 의평, 의중, 추성의 수호신이다. 육백 년 세월이라면 임진왜란 훨씬 이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왔다는 얘기다. 과히 신목(神木)이라 할 수 있다. # 땀을 식힌 후 다시 길을 나섰다. 가뭄 심하니 감자꽃 꽃잎이 활짝 피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다. # 정수리를 내려쬐는 뙤약볕을 느끼며 길을 나섰다. # 잠시 도로를 따르던 둘레길은 산모퉁이에서 길을 버리고 숲으로 이어진다. 무심코 땅만 보고 걷다가는 놓치기 쉬운 곳이다. 주의가 필요하다. # 경사가 있더라도 숲길이 더 낫다. # 그늘 좋은 숲길을 기대했는데 곧 언덕을 오르더니 숲을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 의중마을이 있고 제일 먼저 느티나무 당산이 기다리고 있다. # 의중(義中)마을은 의탄소(義灘所) 중 가운데 마을이란 뜻이다. 의탄소는 고려시대 숯을 구워 중앙에 공납하던 최하급 마을인 소(所)가 있던 곳이라 한다. 그런데 유래의 설명과는 달리 한자로는 숯 炭 대신 여울 灘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옻나무를 많이 기르는 모양이다. # 당산나무 곁에 갈림길이 있는데, 순방향 둘레길 표시인 빨간 화살표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윗길은 서암정사와 벽송사로 가는 길이고, 아랫길이 동강마을로 가는 길이다. 누군가 펜으로 표시를 해 두었다. # 아랫쪽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로 접어든다. 서암정사와 벽송사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칠선계곡 따라 천왕봉의 맥이 흐르는 곳에 있어 한번쯤 들러보고 싶은 곳이긴 하나 다음 기회를 봐야겠다. # 호피 무늬 선명한 붓꽃이 길가에 무리지어 피어 있다. 원예종인 저 꽃은 의외로 산길에서도 종종 눈에 띈다. # 그 곁엔 자주달개비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동네는 보랏빛이 대세이다. # 굉장히 무덥다. 마을 안 길을 오르내린다. 걸음 빠른 마눌은 앞서 가고 사진 찍으며 천천히 따라간다. 길가에 이름 모를 벌레가 엄청나게 많이 있다. 벌레를 밟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며 걷는다. 고개를 하나 오르자 돌무더기 있는 정자나무가 있고 의호대(義湖臺)란 글귀가 적혀 있다. # 한참을 걸었는데 마눌이 뵈질 않는다. 발걸음을 빨리 해서 걷는데 마눌 대신 다른 둘레꾼들이 보인다. 한참을 걷다가 아루래도 이상해서 스마트폰 지도 작동하여 위치를 확인하니 둘레길을 벗어나 도로를 향하고 있다. 갈림길을 지나쳤나 보다. 앞서가던 두 사람도 나처럼 길을 지나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계속 그 길로 가고 나는 방향을 돌렸다. 강 건너 금계마을 석산 벽에 거대한 불두(佛頭)가 조각되어 있다. 황량한 석산을 활용하는 좋은 방법인 듯하다. 석산 개발회사가 작업 완료 후 보상 차원에서 조각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왕 하는 김에 좀 더 예술성 있게 만들고 주변 정리도 했으면 한다. # 의중마을로 돌아 올라갔다. 갈림길에 마눌이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정목이 길가 수풀에 가려 있어 못 보고 지나쳤던 모양이다. 벌레 밟지 않기 위해 고개를 바닥으로 향한 이유도 있고. # 둘레길은 마을을 벗어나고 있다. # 곧 햇살 강한 마을길을 버리고 숲으로 접어든다. 발걸음을 최대한 빨리 해서 숲으로 들어간다. # 의중마을 산길을 오르내리며 길게 진행한다. 중간에 작은 계곡을 만났다. 가물어 수량이 적다. 때죽나무 꽃잎이 하얗게 덮혀 있다. 물에서 꽃향기가 난다. # 숲속은 그늘이라 좋은데 바람이 없어 만만찮게 무덥다. # 긴 너덜지대를 지난다. 울퉁불퉁하여 발걸음 장단 맞추기가 어렵다. # 다람쥐 한 마리 햇살을 쬐고 있다. # 고개를 하나 치고 오른다. 이곳 이름을 꽃밭등이라 했지 싶다. 꽃은 없지만 바람골이라 시원하고 좋다. 간식 먹으며 한참을 쉬었다. 남겨온 막걸리를 마셨는데 무더운 날씨에 맛이 변해있다. 아깝지만 버려야 했다. # 긴 숲길을 벗어나 도로에 다시 내려 섰다. # 용유담이다. 용(龍)이 노닐던(遊) 연못(潭)이란 뜻이다. 당연히 용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 이 강은 이곳부터 엄천강으로 불리운다. # 물빛이 짙다. 물이 깊고 소용돌이 치는 곳이라 사망사고가 빈번한 곳인데 가족단위로 물놀이하러 내려가는 이들이 많다. 가물어 수량이 적다고는 해도 워낙에 깊은 곳이니 주의가 필요해 보였다. # 또다시 뙤약볕 속으로 들어갔다. # 모전교 위를 걸어가는데 용유담으로 흘러드는 샛강의 물이 맑고 곱다. 이곳에서 식당을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사찰만 있고 식당은 없다. # 무덥고 배고파 더이상 걸을 힘이 없다. 휴식을 위해 계곡으로 내려갔다. # 얼음처럼 차고 맑은 계곡이다. 배낭 내리고 발 담그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배낭 내린 김에 계곡물 받아 라면도 하나 끓여 먹었다.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으니 식당 없음을 아쉬워할 이유 없다. # 이곳도 물에서 때죽나무 꽃향기 그윽하게 난다. 그 물에 발 담그고 오래 쉬었다. 기분같아서는 알탕도 했으면 좋으련만 둘레꾼들이 두어 팀 합류하는 바람에 참아야 했다. # 때죽나무는 열매 껍질에 독성이 있어 찧어서 물에 풀면 물고기가 떼로 죽는다 하여 때죽나무라 부른다. 꽃에는 독성이 없는지 계곡을 꽃잎이 하얗게 덮었는데도 물고기들은 바글바글하다. # 점심 먹고 오래 쉬었다. 마음같아서는 몇 시간 더 쉬었으면 하지만 갈 길 있으니 그럴수는 없다. 용유담 지계곡을 떠나 모전마을 쪽으로 출발했다. 용유담 계곡가에 있는 사찰 이름이 지명선원인가 보다. # 모전마을은 용유담에 기대어 있는 마을이다. 용유담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니 모전마을에는 펜션이나 민박이 여러 채 있다. 둘레길은 엄천강 우측을 따라 길게 이어질 모양이다. #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펜션은 여러 개인데 손님은 눈에 띄지 않는다. # 모전을 지나 세동마을을 만나러 간다. # 우리를 앞서 가던 너댓 명의 둘레꾼은 저 아래 마을로 내려 갔다. 그곳 방향으로 이정목 하나가 있긴 했다. # 우리는 지도가 가리키는대로 길을 잡았다. # 그늘 없는 아스팔트 길이라 무척 힘이 들었다. # 용유담에서 1.5km 거리인데 뙤약볕 때문에 체감거리는 훨씬 멀었다. 세동마을 입구에도 펜션이 자리하고 있다. 세동마을은 송전(松田)이라고도 부른다. 소나무가 많은 동네인가 보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예전에는 닥나무를 많이 심어 한지생산이 많았던 곳이다. 힘 든 종이농사 지을 일손 부족해지고 대량생산의 공장 종이에 밀려 이제는 더이상 한지 생산을 하지 않는다 한다. 육이오 전쟁 전에는 100호 이상이 살던 큰 마을이었다. 지리산 마을 대부분이 그렇듯 전쟁 중에 엄청난 고초를 겪은 곳이다. 밤에는 빨치산이 내려와 식량을 약탈해 가고, 낮에는 군인들이 와서 빨갱이에게 식량을 줬다고 혼을 냈다. 결국에는 빨치산들에 의해 마을이 모두 불타 버렸다 한다. # 세동마을 안으로 들어 가봤다. 마을회관과 정자, 그리고 화장실이 있다. 마을 규모로 보아 가겟집이 있어 보여서 음료수나 아이스크림 같은 주전부리를 좀 사먹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가게는 없다. 통통한 고사리를 다듬고 있던 주민 두 분께 가겟집을 물으니 우리 동네는 산골 오지라 가게가 없다 한다. 마을 주민용 생필품이나 둘레꾼 상대의 먹거리 등을 갖추면 장사는 충분히 될 것 같은데 아직 그것까지 생각한 이는 없나 보다. 주전부리 대신 시원한 물을 보충하고 정자에 앉아 오래 휴식했다. # 충분히 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 비 좀 오고 엄천강에 물이 가득하면 보기 좋겠다. # 다시 긴 아스팔트 길이다. 우리는 이런 길에 영 적응이 잘 안 된다. # 아스팔트의 느낌이 싫어 걸음을 최대한 빨리 했다. 저 네 사람은 용유담에서 엄천강 쪽 마을로 내려갔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세동마을에서 오래 쉬는 바람에 우리를 앞서 갔는데 이곳에서 다시 우리가 추월하게 되었다. 커다란 박배낭을 메고 씽씽 자신들을 추월하니 좀 놀라워한다. 우리가 걸음이 빨라서가 아니라 뜨거운 아스팔트의 느낌이 싫어서 그런 겁니다. # 세동마을에서 1.7km 정도 걸어가니 송문교가 나온다. # 이곳에서부터 강과 자동차 길은 좌측으로 크게 휘감아 멀어지고 둘레길은 직진하여 운서마을로 향한다. 저 멀리 절벽 아래 소에서 천렵하면 좋겠다. # 드디어 뙤약볕에서 벗어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게 된다. # 이제야 비로소 숨통이 좀 트인다. 이 계절에 벌써 이러니 나중 칠팔월 염천에는 둘레길 걷기 어렵겠다. # 소나무숲 고개를 넘고 작은 마을을 지난다. 계곡을 건너 산길을 길게 치고 올라가면 물탱크가 있는 고개가 나온다. # 운서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운서쉼터라 적혀 있다. # 한 숨 돌리고 갔으면 좋으련만 마음 급한 마눌은 벌써 혼자 앞서 가버렸다. # 고개 좌측으로 엄천강 방면 조망이 트여 있다. # 고개를 길게 내려 가면 운서마을이다. 구름 雲, 서녘 西를 쓴다. 구름 형상을 한 바위가 있는 운암동(雲巖洞)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일 듯 싶다. 천왕봉과 연결된 마을이니 산 높고 골 깊은 동네이다. 따라서 산채(山菜)로 유명하다. # 고요한 마을이다. 지나는 동안 인기척도 개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운서 마을을 벗어나 넓은 골짜기를 휘감는다. 전방에 있는 잘록이가 구시락재인가 보다. # 마눌은 벌써 골짜기 상단으로 올라가 버렸다. 오름 중간에 그늘 좋고 물 맑은 계곡이 있다. 짐 내리고 발 좀 담궜으면 좋으련만 성질 급한 사람이 앞서 가버리는 바람에 눈으로만 보고 지나친다. # 바삐 갈 때는 가더라도 쉴만한 곳에서는 쉬어 갑시다~~ # 운서마을은 이런 다랑논에 의지해 삶을 영위해 왔다. # 고개 하나를 치고 오른다. 오늘 구간의 마지막 고개이다. # 구시락재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운서마을에서 동강마을로 넘어가는 오랜 고개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지리산 산행을 하였는데, 당시 점필재는 동강마을에서 이곳 구시락재를 넘어 함양 독바위를 올랐고 이후 천왕봉으로 올라 갔다. 그 기록은 그가 남긴 기행문인 유두류록(遊頭流錄)에 남아 있다. # 구시락재 꼭대기엔 농가 한 채가 있다. 집 마당에서 졸고 있던 강아지가 등짐 진 나그네의 모습이 신기한 듯 가까이 온다. 겁 많은 녀석이라 한 번 안아 주려고 해도 일정 거리 안으로는 들어 오지 않는다. # 전방으로 조망이 툭 트였다. 임진년(壬辰年) 즉, 1472년 지리산을 오르기 위해 이 자리에 섰던 점필재도 이와 같은 풍광을 돌아 보았을 것이다. 이마에 흐르는 땀 닦으며 한 마디 하였겠지. 경치 참 좋다~ # 강이 휘감아 도는 곳이라 들도 제법 넓다. 풍수에서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이라 한다. 용이 맥을 끌고 내려와 돌아 보는 모습을 말한다. # 물 좋고 산 좋고 들 좋은 곳이다. 다만 마을의 향(向)이 북향인 점이 옥의 티다. # 고개 위 농장의 주인인 모양이다. 아주 오래 전 경운기 운전을 배운 적이 있다. 상당히 위험한 기계였다. 숙련이 필요한 도구이다. 다만 이 탈것은 전 세계 타는 기계 가운데 가장 큰 키(key)를 가지고 있다. # 경사지에 조성된 마을이라 조망 전체를 보면서 걸어 내려 간다. 우측에 동강 당산이 있다. 동강마을은 들 넓은 동네라 평촌(坪村)이라 불렀고, 예전엔 엄천면에 속했으며 이곳에 면소재지가 있었다. 동강이라는 이름은 마을 앞 천변에 커다란 오동나무가 있었다 해서 오동나무 桐을 써서 동강(桐江)이라 불렀다. # 덩굴 장미 예쁘다. 잘 지은 펜션이나 전원 주택이 여러 채이다. # 동강 마을 전체를 휘감아 내렸다. 동강마을에도 식당만 있고 가겟집은 없다. 용유담이나 세동, 동강 쯤에서 가겟집을 열면 밥은 굶지 않겠다. 저 식당의 피리찜이 맛나다는데 그 집 벽에 붙어 있는 버스 시간표를 보니 곧 버스가 올 참이라 다음기회를 보기로 했다. # 동강마을 앞에 있는 엄천교를 건넜다. 비가 빨리 오기는 해야할 모양이다. 강물이 너무 적다. 정면 산 사이의 골짜기로 5코스가 이어진다. 방곡마을을 지나 곧장 산청 수철리로 넘어간다. # 그렇게 이틀간의 둘레길 3, 4코스를 마치고 엄천강 건너 원기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 하루만 25km 쯤 걸었다. 대형 배낭을 메고 걸은 거리치고는 꽤 먼 거리이다. # 엄천강 건너 동강마을을 돌아본다. 우측에 구시락재가 있고 뒷 산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함양독바위 거쳐 지리상봉으로 올라갈 수 있다. # 원기마을에서 버스 타고 마천으로 갔다. 그곳에서 곧 바로 인월행 버스를 갈아탈 수 있다. 버스를 두 번 탔지만 시간 상으로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돌아오는 길이 우리가 이틀간 걸었던 둘레길 건너편 자동차 길이라 이틀간의 순례지를 복기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인월에서는서울로 바로 가는 버스편도 있다. # 인월버스정류장에서 걸어 3코스 출발지로 돌아왔다. # 저곳 덕두산과 바래봉에서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 삼정산도 나를 부르고 있다. 어서 오라고! # 2코스를 마친 이들이 인증센터로 향하고 있다. # 차 안에서 간단히 정리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은 후 어탕집으로 향했다. # 이 집 어탕맛은 여전하다. 막걸리 한 잔에 온몸이 녹작지근하게 풀린다. # 초파일 하루 전날이라 길가 연등불빛이 밝다. 그렇게 이틀간의 지리산 둘레길 순례를 마치고 긴 야간 운행을 하여 귀가했다. 첫날 출발이 늦는 바람에 둘째 날에만 25km쯤 걸었다. 그리고 그 거리 절반 정도를 뙤약볕 강한 들길이나 아스팔트 길을 걸었더니 피로도가 극심하였다. 하지만 여섯 마을 모두가 저마다의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반겨주어서 그 역사 더듬느라 그다지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특히 이번 구간은 내내 지리 상봉을 곁에 두고 걷는 길이라 지리산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어 좋았다. 지리산 마루금 곳곳을 누비고 다니다 발길 멈추는 어느 곳에서 머물렀으면 최고였겠지만, 현실이 그것을 허락지 않으니 이렇게 지리산의 곁에서 거니는 것으로 위안을 얻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물사랑의 다음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