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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6구간(수철~성심원)-인정만발(人情滿發)!! 본문

길이야기/지리산 둘레길

[지리산둘레길]6구간(수철~성심원)-인정만발(人情滿發)!!

강/사/랑 2015. 11. 23. 20:18
  [지리산둘레길]6구간(수철~성심원)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천안 삼거리 지나도 /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 가는 길… // 신을 벗으면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 발꼬락이 또 한개 없다. //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꼬락이 잘릴 때까지 /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 한하운, 「전라도길」

이 시(詩)는 한하운(韓何雲) 시인이 소록도 가는 길에 쓴 시이다. 한하운은 한센병 환자였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을 집단 수용하고 치료하던 곳이다. 그 섬을 찾아 가도가도 붉은 전라도의 황톳길을 걸어가면서 그 황톳빛보다 붉은 피눈물을 토하며 읊은 절창(絶唱)이다.

 

시인의 본명은 태영(泰永)이다. 1920년 함경도 함주에서 출생했다. 부유한 지주의 맏아들로 태어나 이리 농림학교에서 축산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이리 농림 5학년 때 한센병이 발병했다.

 

꾸준한 투병 활동으로 어느 정도 회복하여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대학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 함경도 축산과에 근무하였으나 병이 재발하여 사직하였다. 이후 한하운(韓何雲)이란 필명(筆名)으로 시작(詩作)활동에 몰두하였다.

 

해방 후 재산을 전부 몰수당하고 감옥생활을 하다 월남하여 떠돌이 거지 신세가 되었다. 서울 명동에서 시를 팔아 구걸하며 생활하다가 정지용, 이용악 등 시인들과 친분을 맺으며 시인으로 등단(登壇)하였다. 파란만장한 삶, 천형(天刑) 같은 질병을 문학적 열정으로 이겨낸 그의 삶과 시는 그 애절함과 깊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하운이 앓았던 한센병은 나균(癩菌)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이다. 치료가 어렵고 예후가 나빠 과거에는 문둥병 또는 천형(天刑), 즉 하늘의 형벌이라 불렀다. 현재는 일부 학술적 분야에서만 나병으로 하고 통칭 한센병이라 부른다. 노르웨이 의사인 한센에 의해 나균이 처음 발견되었음에 유래하는데, 그외의 명칭이 편견과 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센병은 치료가 어렵고 사회적 편견도 많아 환자들을 섬이나 오지에 격리 수용하여 치료하였다. 국가는 물론 천주교 등 종교단체의 역할이 컸다. 전라도에 있는 소록도가 대표적인 치료시설이고 전국적으로 여러 곳이 있다.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산청군 경호강 가에도 성심원이란 한센병 공동체가 있다. 천주교 프란치스꼬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1959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가 무려 56년이나 되었다.

 

우리 어린 시절 마을에 가끔 한센병 환자들이 약을 팔러 오곤 했다. 예전에는 약이 귀한 시절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는 약을 남겼다가 시골마을을 돌며 팔았다. 한센병 환자들이 사용하던 연고나 항생제 등은 약효가 강해 피부병에 잘 들었기 때문에 수요가 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무섭게 변한 외모가 무서워 늘 도망 다니곤 했다. 

 

모두가 한센병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의학기술이 발달해 발병 빈도도 낮고 초기에 치료하면 완치가 되는 모양이다. 사회적 인식도 많이 변화하여 둘레길 걸으며 성심원에 들려 보니 둘레길 순례자를 위한 펜션과 쉼터를 운영하며 외부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환자들을 돕기 위한 자원봉사자들도 많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한 이들이다.

 

우리는 그런 봉사 정신과 사명감이 없어 동참은 못 하였으나 남들 쉬 못하는 봉사활동하는 이들을 찬사하고 성심원에 거주하는 이들 모두 건강하시라 마음으로 빌어 드리는 것으로 지리 둘레길에서 만난 성심원의 감회(感懷)를 갈음했다.




인정만발(人情滿發)!!


구간 : 지리산 둘레길 6구간(수철~성심원)
거리 : 구간거리(12.3km), 누적거리(80.7km, 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5년 11월 6일, 쇠의 날
세부내용 : 수철마을
 ~ 지막마을 ~ 평촌마을 ~ 대장마을 ~ 경호1교 ~ 경호강레프팅 오토캠핑장 ~ 내리교 ~ 내리한밭 ~ 바람재 ~ 성심원.


  

산청읍에서 아침 챙겨 먹은 후 수철리로 복귀했다. 수철리는 읍에서 가깝다. 대부분의 시골마을이 그렇듯 거리에 비해 교통편은 좋지 못하다.


어제 조금만 일찍 끝났으면 이곳 산청읍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어제 수철리에 도착했을 때 내심 산청읍까지 계속 걸었으면 했는데 마눌의 눈치가 보여 그만 멈추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라 등불 달고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될 터인데, 요즘들어 무리하게 일정 잡는 것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고있어 그만 두었다.


결과적으로 몸은 편안하지만 교통편과 다음 구간 잇기가 조금 애매해지게 되었다. 그것도 하루에 한 구간씩만 해결하자고 편하게 마음 먹으니 별일 아니게 되더라. 천천히 하자! 세월 넉넉하니!


지리산 둘레길 6구간(수철~성심원)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와 산청읍 내리 풍현마을 성심원을 잇는 12.5km의 지리산둘레길. 지리산 동쪽 기슭의 지막, 평촌, 대장마을을 지나 산청읍을 휘돌아 흐르는 경호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쉼없이 흐르는 강의 흐름을 느끼며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순한 길이다.

 

♠ 안내센터
산청센터(성심원) –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 1381번길 17/055-974-0898
산청군 센터 – 경남 산청군 금서면 친환경로 2605번길 5-7 070-4227-6921


♠ 구간 찾아가기
수철(수철마을회관)- 경남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 897
성심원-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 100번지
  

 

 

 

<이곳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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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둘레길 6구간(수철~성심원)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아침시간 수철리는 고요한 적막이다. 넓은 마을 광장 한 켠에 주차하고 짐을 챙겼다.

 



# 추수한 나락은 햇볕에 바싹 잘 말려야 상품성이 있다. 밤이슬 맞으면 안되니 매일 아침 저녁으로 말렸다 거뒀다를 반복해야 한다. 어릴 때 제일 하기 싫었던 일 중 하나이다. 할아버지 호통을 몇 번 듣고서야 우리 형제들은 꾸물꾸물 움직이곤 했다. 나야 막내라 매번 열외여서 몇 번 해 보지 못했지만, 형들은 엄청 힘들었을 것이다. 어제 보니 이곳은 객지로 나간 자식들이 부모님 일 도와주러 와서 나락을 걷고 있었다. 착하다!

 



# 원래 계획은 저 정자에서 하룻밤 야영할 생각이었다.

 



# 수철마을을 떠나 산청으로 향한다.

 



# 둘레길은 추수 끝난 논두렁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 그러다 산자락의 좁은 소로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 노박덩굴 빠알간 열매가 곱다.

 



# 지막마을을 지난다. 지막마을길은 남명(南冥) 조식(趙植)선생과 덕계(德溪) 오건(吳健)선생의 이야기가 서린 옛길이다. 덕계는 남명선생의 제자이다. 함양사람으로 서른살 비교적 늦은 나이에 남명을 찾아가 수학하였다. 남명은 나이 든 제자를 예우하고 아꼈는데 단순히 나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덕계의 학문에 대한 열정을 인정하였기에 그랬다. 덕계는 남명에게 중용(中庸)을 배우기에 앞서 혹시나 실수할까봐 무려 삼천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덕계가 남명선생을 뵈러 덕산으로 갔다가 공부를 마치고 작별할 때면 남명선생은 그 작별이 아쉬워 십리 밖까지 배웅을 했다고 한다. 작별이 아쉬워 나눈 술에 취해 덕계가 말에서 떨어져 이마에 상처를 입었는데, 사제가 이별주를 나눈 나무 아래를 송객정(送客亭)이라 불렀고, 말에서 떨어진 곳을 면상촌(面傷村)이라 하였다. 덕계와 남명이 작별하였던 길이 이곳 지막 마을 인근의 둘레길이다.

 



# "스승님, 이제 그만 들어가십시오!" "아닐세, 자네가 먼저 가시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 사제가 석별을 아쉬워 머뭇거린 곳이 바로 이 길이다.

 



# 왕산과 필봉산을 배경으로 아늑한 전원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 지막교를 건넌다.

 



# 왕산 자락에 단풍 물들었다.

 



# 길가에 나락을 말린 흔적이 많다. 우리가 잘 살게 된 것은 분명하다. 우리 어릴 때는 단 한 톨의 나락이라도 흘렸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줏어모으면 한 되는 될 듯한 나락이 곳곳에 흩어져있다.

 



# 지막마을을 지나 변답들로 나아간다. 한가롭고 고요하다.

 

 



# 정말로 한가하고 고요한 길이다. 그 길이 주는 아늑한 적막감에 우리도 말 줄이고 천천히 걷기만 하였다.

 

 



# 평촌마을에서 금서천을 만났다.

 



# 평촌마을 끝에서 다리를 건너 다시 숲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라 한다.

 



# 그 언덕 위에 좋은 정자가 하나 있다.

 



# 쉬어가기 딱 좋은 장소이다.

 



# 감 농장에서 수확하는 농부의 손길이 바쁘다.

 



# 대장마을 언덕을 넘어 간다.

 



# 강 건너에 금서농공단지가 있다. 꽤 규모있는 공장이 여러 개 있다.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전방에 있다.

 



# 대장교를 건너 산청읍으로 접근한다.

 

 



# 잠시후 경호강변에 도착했다. 

 



# 머리 위로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햇살 좋고 강바람 좋은 곳이라 배낭 내리고 오래 쉬었다.

 



# 산청을 휘감아 도는 경호강. 경호강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하여 산청을 거쳐 진주로 흘러드는 강이다. 덕천강과 합쳐 진주 남강을 이룬다. 그 강변에서 오래 쉬며 강물의 흐름을 구경하였다.

 



# 경호1교를 건너 산청읍으로 들어간다.

 



# 긴 가뭄 때문에 강물 수량은 적다. 

 



# 강이 맑아 바닥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커다란 누치 여러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한 4, 50cm는 되어 보인다. 예전 낚시꾼 시절 강물 속에서 견지낚시 할 때 주 대상어가 저런 누치였다.

 



# 길이 32km의 경호강. 함양, 산청, 진주를 이어흐른다.

 



# 산청읍 뒤에 작은 산 하나 우뚝하고 그 정상에 정자가 있다. 고속도로를 통해 지나 다닐 때마다 눈여겨 보던 곳이다.

 



# 강변길을 따라 크게 휘감는다. 도중에 규모가 있는 레프팅 업체들이 있다. 레프팅은 한탄강, 영월 동강, 인제 내린천, 금강 상류, 그리고 이곳 경호강에서 활발히 이뤄지고있다. 새로운 레저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여가활용의 재미를 더해주고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의 창출을 가져 왔다. 하지만 수십 척의 보트가 일시에 강바닥을 뒤집어 놓아 물고기들의 서식환경이 아주 나빠져 수변 환경이 파괴되는 부작용도 있다.

 



# 산청고등학교 곁을 지나 읍내를 곧장 벗어난다.

 



# 산청읍이 끝나는 곳에 내리교가 있다.

 



# 둘레길은 이곳에서 두 갈래로 나눠진다. 하나는 강변길을 따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우측 선녀탕계곡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강변을 따라 가는 길로 표기되어 있다. 우리도 편한 그 길을 따른다.

 



# 이 길은 강물소리, 억새밭을 흔드는 바람소리 잔잔히 들리는 길이다.

 



# 어느 펜션 담벼락에 꽂혀 있다 바람에 날아온 바람개비가 땅에 떨어져 있다. 땅에 있으니 돌지 못하고 멈춰있다. 손에 들고 하늘을 향하니 바람을 만난다. 알록달록 예쁜 바람개비가 바람을 만나 제 원래 역할을 다한다. 윙윙윙 돌아가는 바람개비가 예쁜 웃음소리를 낸다.

 



# 한밭마을은 들이 넓다. 강이 크게 휘감아 도는 곳에 위치해 있다. 강이 실어다 준 퇴적 토양이 기름져 농사 잘되는 곳이다. 지금은 둘레길 순례객을 겨냥한 펜션이 많다.

 



#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마음껏 한가롭게 걷는다. 가을이 자작자작 익어가는 이 가을 강변이 참으로 좋다.

 



# 지금껏 걸은 둘레길 중 가장 한가롭고 고요한 길이다. 가장 편안한 길이기도 하다.

 



# 전방에 웅석봉이 우뚝 솟아 있다.

 



# 강변에는 억새와 갈대가 뒤섞혀 있다. 물가이니 갈대가 우점(優占)하여 있다.

 



# 고속도로 곁으로 묵곡리 절벽이 까마득히 솟아 있다.

 



# 고속도로 통해 진주를 오갈 때 늘 보던 절벽이다. 언제나 스쳐 지나던 곳을 이렇게 가까이 올려다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 경호강4교 아래 스쿠버하는 이들이 물속을 들락날락하고 있다. 이 계절에 저 강물 속에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 한 여름에 왔으면 뙤약볕 때문에 고생하였을 길이다. 하지만 지금은 최고로 아늑한 길이 되어 있다.

 



# 강변을 벗어나 우측 계곡 쪽으로 올라간다. 웅석봉에서 흘러내린 계곡수가 거울처럼 맑다.

 



# 펜션과 농가들 사이로 올라간다.

 



# 오름 도중에 진주 방향으로 조망이 트인 곳이 나온다. 건너편 강변에 헝겊집 짓고 하루쯤 머물면 정말 좋을 듯하였다.

 



# 구불구불 휘감다 위로 올리면 바람재가 나온다.

 



# 백두대간 김천 황악산 직전에도 바람재가 있다. 바람 많아 이름 얻은 고개이다. 이곳 바람재도 바람이 많다. 길은 세 갈래로 나뉜다. 내리교에서 계곡길로 올라 갔으면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 바람재 은행나무가 샛노랗게 물들어 있다. 바람 많은 곳이라 바람 방향으로 몸을 눕혔다.

 

 



# 이후는 강변 농원들 사이로 구불구불 휘감는다.

 



# 아직 수확하지 않은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해마다 진주에 사시는 누님이 악양 대봉 홍시감과 단감을 보내 주신다. 올해는 그 외에 곶감용 감을 따로 한 상자 보내주셨다. 덕분에 난생처음 곶감만들기에 도전해 보았다. 하루종일 감을 깎아 테라스 빨래 건조대에 줄줄이 매달았다. 노란 감 빛깔이 정말로 이뻤다. 이 둘레길 걸을 때만 해도 가뭄이 극심했는데 늦가을부터 비가 주구장창 내렸다. 그래서 그 많은 곶감이 모두 곰팡이가 피어 버렸다. 농사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 튼실하게 자란 무가 길가에 널려있다.

 



# 울음소리 요란한 칠면조.

 



# 길게 내려가면 성심원이 나온다.

 



# 성모 마리아 두 손 모아 기도 올리고 있다.

 



# 성심원 안으로 들어가 봤다. 적막하고 고요하다. 잔디밭에 엄청나게 사실적으로 만든 고양이와 비둘기가 떼로 모여 있다. 얼핏 보면 모두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둘레길 순례객을 위한 펜션을 운영 중이다. 그 곁에 둘레길 인증소가 있다. 인증 도장 찍고 물도 한 잔 얻어 마셨다. 

 



# 성심원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프란치스꼬 재단에서 1959년에 설립한 시설이다. 수십 년 성심원 앞 경호강에 낚시 오거나 진주 오가며 고속도로 따라 지나다니기만 했지 이렇게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다. 한센병이 이제는 발병 자체가 드물고 이곳에 계신 분들도 연세 높으셔서 그런지 성심원은 오가는 이 드물고 고즈넉하기만 하다.

 



# 성심원 도착 시각이 1시 50분 쯤 되었다. 다음 구간은 웅석봉 헬기장까지 치고 올라야 하는 산행길이다. 빠르게 진행하면 네 시간 정도면 마칠 수 있다. 막판에 등불 밝혀야 하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마눌은 그런 빡센 일정에 거부감이 많다. 나 역시 간만의 편안한 일정을 즐기고 싶은 맘 크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그만 멈추기로 하였다.

 



# 성심원 전경.

 



# 성심원 화장실에서 가볍게 손 씻고 길을 나섰다. 경호강을 건너가야 버스 정류소를 만날 수 있다.

 



# 경호강의 흐름을 잠시 감상하였다. 예전에는 이곳 성심원 앞이 쏘가리 포인트였다.

 



# 하지만 지금은 옛 명성을 잃어 조황은 별로인 모양이다. 레프팅이 활성화되면서 물고기들의 산란장이 파괴되어 어족자원 자체가 줄어든 탓이다. 

 



# 그래도 바지장화 입고 물 속에서 캐스팅 중인 조사들이 눈에 띈다. 한참을 구경하였지만 스트라잌 되는 것은 못 보았다.

 



# 성심원 버스 정류소에서 짐 내리고 버스를 기다렸다. 10여 분 앉아 있는데 승용차가 지나 치더니 다시 돌아와서 타라고 한다. 성심원에 근무하는 여성인데 근무 마치고 산청으로 가는 길이란다. 성심원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자원봉사하는 이들이 많은 모양이다. 세상에는 참 착한 이들이 많다. 우리가 그들의 선행을 모를 뿐이다. 고마운 분 덕분에 산청까지 쉽게 갔다.


고마운 인사 드리고 산청터미널로 향했다. 마침 산청 장날이라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청국장, 산나물 등 몇 가지 찬거리를 구입했다. 주로 할머니들이 직접 농사지어 팔러 나오신 것으로 샀다. 터미널 앞에서 수철리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무전기를 든 경찰관이 둘레길 나왔느냐며 아는 체를 한다. 행선지를 묻더니 수철리행 버스는 몇 시간 기다려야 한단다. 그리고는 순찰차를 불러 우리를 태운다. 그 방향으로 순찰을 가는 길이니 타고 가라 한다. 


태어나서 경찰 순찰차는 처음 타봤다. 그리고 십 수년 산행 다니면서 전국 방방곡곡 대부분의 고장을 다녀봤지만 오늘같은 경험은 또 처음이다. 각박한 세상이라 좋은 대접보다는 오히려 고약한 인심 때문에 마음 상한 일이 더 많았다. 하지만, 오늘은 우리가 나서지도 않았는데, 이 고장 사람들이 자원하여 친절을 베풀어준다.


산청은 우리 부부 귀농 희망지 1순위 지역이었다. 이로써 우리가 이곳으로 내려 오고픈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좋은 고장이다. 좋은 사람들이고. 수철리에 우리를 내려 주고 돌아가는 고마운 산청 경찰관. 

 



# 수철리에서 차 회수해서 다시 산청읍으로 갔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읍내 구경을 했다. 해 저물어 밤머리재 넘어 산청을 떠났다. 그리고 거림 거쳐 묵계터널을 지나고 다시 고운동재를 올라 갔다. 고운동재는 고운호수로 길이 끝나는 곳이라 캄캄한 어둠 속에 인적 없는 고개이다. 예전 낙남정맥 종주하던 추억을 더듬어 보고자 그 밤중에 일부러 찾은 것이다. 마눌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들려 주었다.


이후 밤길 달려 하동으로 넘어 갔다. 밤이 깊어가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하동까지는 먼 길이었다. 밤 깊은 하동에서 저녁 먹고 하룻밤 다시 묵었다. 하동읍은 이십여 년 만의 방문이다. 뒷날 화개장터를 찾았다. 산동무인 뱌님이 공직 은퇴 후 화개장터에 뿌리를 내리셨다. 산동무 보고파 먼 길 달려 온 것이다. 

 



#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화개장터. 비 내리는 와중에도 관광객들은 계속 밀려들고 있다. 화개장터는 역사 깊은 곳이다. 하지만 삼십여 년 만에 다시 찾아보니 아무 특징 없는 관광지가 되어 있다. 그저 전국 어느 관광지에 있는 물건이나 먹거리들을 그대로 팔고 있다.

 



# 뱌님은 화개장터에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 화개천 건너 터미널에 터를 잡으셨다. 화개장터에는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만이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이다. 냇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장터와 이곳은 상권이 천양지차이다. 천객만래(千客萬來)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짼하였다. 하지만 착하게 세상 살아오신 분이니 곧 술술 풀릴 것이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술 한 잔 나눠야 마땅한데, 뱌님은 장사를 하셔야 하고 나는 건강 때문에 술을 못 마시니 밥 먹고 얘기 나누는 것으로 만남의 정을 대신하였다.

 



# 하동에 왔으니 쌍계사와 불일폭포가 보고 싶었다. 쌍계석문을 따라 올라갔다.

 

 

# 쌍계사는 무려 이십여 년만의 방문이다.

 

 


# 비내리는 사찰 경내에 가을 빛이 곱게 물들었다. 

 

 

 

# 절 경내를 간단히 한 바퀴 둘러 본 후 불일폭포를 향해 출발했다.

 



# 비 내리고 있어 찾는 이 드물다. 덕분에 한가롭게 둘러 볼 수 있었다.

 

 



# 숲길에도 가을빛 곱다. 하지만 점점 비가 굵게 내리기 시작하여 불일폭포는 못 가게 되었다. 비를 맞으며 산길 걸어도 될 만큼의 준비를 못한 탓이다.

 



# 불일폭포는 다음을 기약하고 그저 쌍계사만 구석구석 돌아 보았다.

 



# 이십 년만의 방문인데 다시 이십 년내에 올 수 있으려나? 

 



# 이후 섬진강변을 달려 귀경하였다. 

 



# 섬진강은 여전히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재작년 마눌과 함께 섬진강 자전거 종주를 한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마눌은 자전거 배운지 한 달 만에 섬진강 종주에 나섰다. 미숙한 실력과 먼 거리, 악조건 속 강행군과 쏟아지는 비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을 하였다. 내 여러 자전거 여행 길 중 손 꼽을 만한 강행군이었다.

 



# 가만 생각해 보면 마눌과는 섬진강 여행이 세 번째인데, 모두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신기하다.

 

 

 

그렇게 지리산 둘레길 순례와 하동 여행을 마무리했다. 11월에 떠난 여름휴가도 그렇게 마쳤다. 지리산 둘레길이야 다시 일정 잡아 이어갈 일이지만, 다음 번에 섬진강을 마눌과 함께 찾을 때도 비가 내릴지 궁금하다. 그런 궁금함은 기대감이 될 것이고 기대감은 가슴 뛰는 일이니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게 할 것이다.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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