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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7구간(성심원~운리)-다시 둘레길 위에 서다!! 본문

길이야기/지리산 둘레길

[지리산둘레길]7구간(성심원~운리)-다시 둘레길 위에 서다!!

강/사/랑 2018. 6. 12. 16:01
  [지리산둘레길]7구간(성심원~운리)


  

내가 지리산 둘레길에 처음 들어선 것이 2013년 겨울이니 햇수로 벌써 5년이 되었다. 집중력 높은 사람들 같으면 둘레길 완주는 물론이요, 지리산 둘레를 벌써 두세 바퀴는 돌았을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겨우 세 번을 둘레길에 나섰고 1박 2일씩 야영하며 걸었으니 구간으로는 여섯 구간을 걸었을 따름이다. 놀라울 정도로 느리고 한심스러운 진행이다.


나는 원래 꽤 몰입도(沒入度)가 높은 성정(性情)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일이든 일단 관심을 가지게 되면 주위에서 놀랄 정도로 집중하게 되고 그 결과 어느 정도는 그럴듯한 성과를 창출하는 편이다. 주관적 잣대이기는 하지만, 학창 시절의 공부나 사회생활의 과업, 그리고 일상에서의 잡다한 목표 대부분에서 그런 경향을 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이 이 지리산 둘레길 만은 이렇게 몰입도 떨어지고 느슨하다 못해 거의 방치된 수준으로 잊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의 나답지 않은 행태(行態)이고 나를 아는 지인들이 의아해할 결과이다.


돌아보면 지리산 둘레길은 일단 적극적 관심의 길이 아니라 대안(代案)의 길이었다. 2013년의 나는 부상병(負傷兵)이었다. 산악자전거를 너무 과도하게 타는 바람에 장경인대염을 앓았던 것이다. 장경인대염은 치료가 어려운 부상이다. 재발도 잦은 질병이어서 운동선수나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자주 걸리고 고생도 오래 하는 부상이다.


장경인대는 무릎에서 고관절에 이르는 인대로 우리 몸에서 가장 길고 단단한 인대이다. 걷거나 달릴 때 우리 몸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 몸의 하중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여기에 염증이 생기면 제대로 걷거나 달릴 수가 없다.


때문에 나는 빠른 진행이나 높은 오르내림을 수행할 수 없었고 그런 내 몸 상태에 적합한 도전 과제로써 둘레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대신 그냥 남들처럼 솔방솔방 산책하듯 걷는 것은 재미없을 것 같아 전 구간을 야영으로 진행하고자 하였다. 내 몸 상태가 온전하지는 못하지만, 산 정상을 넘나드는 종주 산행이 아니라 둘레길이니 무거운 짐 짊어져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2013년 남원 주천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하였고 그 겨울 주천과 운봉에서의 이틀은 꽤 의미 있고 즐거운 순례길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다시 둘레길에 서기까지 일 년이 넘게 걸렸고 최근에는 무려 삼 년의 공백이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방치(放置)의 수준인 것이다.


이유는 있었다. 장경인대염이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견딜만해 져서 다시 자전거 여행과 야영 산행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제일 큰 이유였다.


다음은 내 잡다한 도전 과제의 난립 탓이 컸다. 1대간 9정맥의 완주를 마쳤지만, 내 도전 과제는 여전히 많다. 100대 명산 야영 산행, 섬 산행, 제주 올레길, 이곳저곳의 둘레길, 해파랑길, 자전거 국토 종주와 4대강 종주, 대한민국 해안선 일주, 백두대간 고개 넘기 등등... 이런 여러 도전 과제들이 즐비하니 먼 곳에 있는 지리산 둘레길에는 자연스레 발길이 멀어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2015년에 나를 덮친 병마(病魔)였다. 삶의 중심을 통째로 흔들어버린 그 병마로 인해 꽤 오랫동안 칩거(蟄居)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야외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자연 지리산 둘레길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세월이 5년이었고 내 지리산 둘레길 순례는 지지부진(遲遲不進)으로 규정되게 되었다. 정리하다 보니 지리산 둘레길이 지지부진한 것은 꽤 그럴듯한 사유가 충분히 있기는 하다. 원래 모든 부실과 부진에는 그 열 배의 핑계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핑계와는 별개의 진짜 이유가 있는 것 또한 진리이다.


내 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리산 둘레길이 지지부진했던 여러 가지 잡다한 핑계가 있었지만, 결정적 사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몰입도(沒入度)의 저하였다. 몰입이란 강렬한 주의 집중의 결과이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잡념과 방해를 극복해야만 도달 할 수 있는 경지이다.


지난 몇 년간 지리산 둘레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는 그것이 부족했던 것이다. 다른 여러 이유들은 핑계에 불과하였다. 몰입하면 극복 가능했던 일인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사유 분명하니 극복할 일만 남았다. 몰입의 강도를 높이면 될 일이다. 원래 이 길이 집중하여 몰입하자 시작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너무나 늘어져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그 느슨함 극복해 보고자 짐 꾸려 오랜만에 지리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한 가지 여전한 것은 지리산이란 말만 들어도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는 사실이다. 지! 리! 산!




다시 둘레길 위에 서다!!


구간 : 지리산 둘레길 7구간(성심원~운리)
거리 : 구간거리(13.4km), 누적거리(94.1km, 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8년 05월 20일, 해의 날
세부내용 : 성심원
 ~ 아침재 ~ 웅석사 ~ 웅석봉 하부 헬기장 ~ 웅석봉 임도 ~ 점촌마을 ~ 탑동마을 ~ 단속사지 ~ 정당매 ~ 운리마을.


정말 오랜만의 지리산 둘레길 순례이다. 원래 우리는 이 둘레길을 모두 야영 형식으로 지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내 허리 부상으로 무거운 짐에 대한 부담 높아 격조하게 되었고 이번 순례길에도 마눌의 걱정이 아주 컸다.


그래서 그녀의 근심걱정 덜어주고 즐거운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야영짐은 차에 실어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걷는 계획을 세웠다. 자연 마눌의 콧노래 소리 높아졌다.


다만 지리산까지는 워낙 먼 거리라 주말 정체 뚫고 먼 길 나선다는 일 그 자체는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멀고 먼 길 돌고 돌아 산청 성심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두 시를 넘기고 있었다. 출발이 너무 늦어 걱정이다.


지리산 둘레길 7구간(성심원~운리)

 

경상남도 산청군 읍내리 성심원과 단성면 운리를 잇는 13.4km의 지리산둘레길. 이 구간은 웅석봉 턱밑인 800고지까지 올라가야하는 다소 힘든 오르막과 탑동마을까지 긴 내리막 임도를 품고 있다, 풍현마을과 어천마을을 이어주는 아침재, 웅석봉에서 흘러 경호강에 오르는 어천계곡,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계저수지가 아름답다. 단속사터였던 탑동마을에서 동서삼층석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산청 삼매 중 하나인 정당매를 만나 역사와 걷는 길이다. 

♠ 안내센터
산청센터(성심원) –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 1381번길 17/055-974-0898
산청군 센터 – 경남 산청군 금서면 친환경로 2605번길 5-7 070-4227-6921


♠ 구간 찾아가기

성심원 –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 100번지
운리(운리마을회관) –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515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지리산 둘레길 7구간(성심원~운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산청 성심원에 도착하니 시각은 이미 두 시를 넘기고 있다. 5월 말이라고 하지만 한낮의 뙤약볕은 뜨겁다.





# 성심원에 주차한 후 강변길에 내려 섰다.



# 그곳에 경호강으로 내려가는 대문이 열려 있다. 오래 된 구조물이다. 대문 같기도 하고 건너편으로 이어졌던 다리의 흔적 같기도 하고 그렇다.




# 솔방솔방 걸으며 둘레길 7 구간을 시작하였다.




# 경호강 물빛이 짙다. 예전 이곳 성심원 앞은 쏘가리 낚시터로 유명했다. 진주에서 학교 다닐 때 나는 열성적인 낚시꾼이었다. 여기도 내 놀이터 중 하나였다.




# 경호강을 잇던 다리의 흔적이 있다. 건너편에도 콘크리트 구조물이 남아 있다. 이 다리를 인위적으로 없앤건지 풍수해 때문에 없어진 것인지는 알 길 없다.




# 강바람 시원하였다. 어천 마을 방향으로 길게 강변을 따랐다.




# 그러다 작은 계곡을 만나 길은 우측으로 꺾여 산으로 향한다.




# 작은 다리로 된 갈림길을 만났다. 다리 따라 직진하면 어천마을로 가게 된다. 예전 둘레길은 어천마을까지 갔다가 아침재로 올라 가게 설계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이곳에서 곧장 아침재로 향하는 길로 바뀌었다.




# 꽃향기 가득하다. 찔레꽃이다. 그 향기 아늑해 한참 서 있었다.




# 때죽나무도 하얀꽃을 피웠다. 때죽꽃 보니 지난 5, 6 구간 생각이 난다. 그때도 오월에 둘레길을 걸었고 때죽꽃을 만났다. 삼년 전 이야기이다.




# 윗쪽으로 고도를 높이는 임도를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 임도 우측 농장에서 인기척 요란하였다.




# 길가 어느 묘지에 고사리 가득하였다. 햇살 좋은 곳의 고사리는 이미 억세어져 먹을 수 없는 계절인데, 그늘 아래 자란 것이라 아직 야들야들하였다. 순식간에 한웅큼 손에 잡힌다.




# 한 차례 길게 밀어 올리면 아침재가 나온다.




# 좌측으로 어천마을과 이어진다. 어천(漁川)의 옛 이름은 '어리내'이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있을텐데 찾지 못했다. 다만 뒷사람들이 한자로 어리석을 우(愚)를 넣어 우천(愚川)이라 표기했다. 그러다 나중에 어천(漁川)으로 변음되어 오늘에 이른다.




# 고속도로 나기 전 어천은 지리산 자락의 오지 마을이었다. 지금은 차소리가 일상일 것이다. 지리산 태극종주가 저곳 어천에서 시작된다. 태극종주는 지리산 종주길 중 가장 길고 난이도 높은 길이다. 한 닷새 정도 계획해야 하는데, 중간에 야영하거나 대피소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 지리산은 야영은 불가이고 대피소 이용도 하늘의 별따기이다. 은퇴 후 굉장한 계획하에 시도해야 할 길이다.



# 아침재란 고개 이름은 전국 곳곳에 산재한 이름이다. 대부분 아침에 문안 드리러 넘던 고개 등의 유래를 가지고 있다. 이곳 아침재의 유래는 알 길 없다. 다만 짐작하기를 금서면으로 가기 위해 웅석봉 높은 산을 넘자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날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어서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 잠시 바람 맞으며 쉰 후 웅석봉을 향해 출발했다.



# 어느 농원 입구를 지난다. 우측 길이지 싶었는데 좌측으로 가라 한다.




# 조그만 암자인 웅석사를 만났다.




# 그 사찰 입구에 붓꽃 보랏빛 꽃을 피웠다.




# 이 절 스님은 꽃을 사랑하나 보다. 담장 위에는 작약을 심었다.



# 임도 차단봉 통과.




# 널널한 임도를 따라 순탄하게 진행한다. 길이 순하여 도란도란 얘기 나누기 좋다.




# 쉼터도 있다. 우리는 패스!




# 중간중간 갈림길이 있다. 솔향기 폴폴 나부낀다.




# 그러다 물소리 들리는 곳에서 갈림길을 만났다. 위쪽 길은 넓은데 산으로 향하고 아랫쪽은 계곡으로 향한다. 정황상 윗쪽이다 싶지만, 둘레길 이정표는 계곡을 가리킨다.




# 맑은 물 풍부한 계곡을 만났다. 어리내골이다. 이곳 계곡물이 어천마을로 흘러 간다.




# 좋은 계곡이다. 짐 내리고 머물다 갔으면 하는 마음 굴뚝이었다.





# 갈 길 멀어 물소리 귀에 담기만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웅석봉 오름이 시작된다. 이 구간 때문에 7코스가 지리산 둘레길 중 가장 험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 산행하는 기분으로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야영짐 지고 왔으면 고생 좀 하였을 구간이다. 웅석봉은 '곰 熊' 자를 쓴다.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만큼 가팔랐다는 얘길 것이다. 느릅나무가 많아 유산(楡山)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웅석산정에는 곰 그림도 있고 곰 전설도 적어두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 이름에서 '곰'은 동물인 곰이 아닌 경우가 많다. 곰은 '검'이나 '금' 혹은 '감'의 변형이다. '높다', '신(神)', '임금' 등의 뜻을 가진 말이다. 웅석봉은 높은 산이다. 그 정상은 암봉으로 되어 있다. '감돌뫼', '검돌뫼', '금돌뫼' 등으로 불렀을 수 있다. 그것이 나중에 '곰돌뫼'로 변했다가 한역되어 웅석(熊石)이 되었을 것이다. 추측이다.




# 표지기 나래비를 섰다. 나도 백두대간 할 때는 표지기를 사용했었다. 표지기는 대부분 개인의 자랑이나 산악 모임의 홍보 역할로 제작된다. 하지만 오지의 산길에서는 훌륭한 안내 표식이 된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 경사 제법 가파르다. 중간중간 휴식하며 한숨 돌려야 했다. 그래도 배낭 가벼우니 한결 낫다. 원래 우리 계획대로 야영짐이었다면 허리 휘청하였을 것이다.





# 조금 쉬었으니 다시 가보세! 이 길 먼저 걸어 간 이들이 휴식 겸 기원 겸으로 쌓았을 서낭당 돌무더기를 지난다.




# 숲이 남서쪽으로 열린 곳에서는 바람이 찾아든다. 그 바람 좋아 가끔 멈춰섰다.




# 다시 꺼이 꺼이 오른다.




# 한차례 용을 쓰면 웅석봉 하부 헬기장에 도착한다. 아침재에서 2.5km, 어리내 골에서 1km쯤 올라 왔다.




# 웅석봉이 올려다 보인다. 한 칠백여 미터 거리이니 15분 정도면 올라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저곳에 올라 갈 힘이 없다. 나중에 야영짐 지고 하룻밤 곰의 잠을 자러 와보기로 하고 오늘은 눈으로만 만족하였다.




# 힘들었으니 좀 쉬세!



# 짐 내리고 오래 쉬었다. 간식도 먹고.




# 충분히 휴식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웅석봉이 우측에 우뚝하다.




# 이제 오르막은 없다는 얘기 듣고 많이 고무되었다.




# 민백미꽃이 길가에 피었다. 휴대폰 사진이라 초점 맞추기 어렵다. 민백미꽃은 하얀 꽃이 예쁜 야생초이다. 우리나라 전역의 산지에서 흔히 발견된다. 뿌리는 백전(白前)이라 해서 기침 가래의 약으로 쓴다.




# 포장된 임도를 따라 길게 진행한다. 지금 이곳 길가에는 취나물이 지천이다. 시절이 늦어 약간 억세진 느낌은 있지만, 그늘에 있어 부드러운 것은 얼마든지 향긋하고 야들야들하였다. 굳이 숲속으로 들어가자 하지 않아도 손만 뻗으면 취나물이 한웅큼이었다.


이렇게 지천인 취나물을 이 동네 주민들은 왜 따가지 않았을까? 의문은 나중에 택시 기사가 알려 주었다. 이 동네 주민들은 딸기와 감 농사가 주력이었다. 돈 되는 딸기와 감농사에도 일손이 모자라 난리인데, 굳이 산속 깊이 올라가 취나물 뜯을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취는 동네 주변에도 지천이고.




# 취향기 맡으며 솔발솔방 걸었다. 휴식한지 얼마되지 않아 이 좋은 정자는 그냥 지나쳤다.





# 정자 앞에서 임도는 세 갈래로 나뉜다. 웅석봉은 능선따라 바로 가면 금방인데 임도 따라 구불구불 돌아가면 2km가 넘는다. 청계저수지에서 어천으로 넘어가는 한재까지는 3.8km이고 청계까지는 7km가까이 더 가야 한다.




# 웅석봉 능선을 바라 보며 아랫쪽 임도로 방향을 잡았다.




# 헬기장으로 치고 오르며 가파르게 올랐던 것에 비해 이 길은 콧노래 나오는 편안한 길이다.




# 좌측으로 트인 길이라 바람도 좋다.




#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산책하듯 걸었다.




# 건너편 청계 능선 아래 한재로 넘어가는 임도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저멀리 보이는 산줄기는 진양기맥의 산줄기이지 싶다.




# 조망 트인 곳이라 눈이 호강한다. 바람도 좋고.




# 청계 능선에 벌목한 곳이 사람 머리 바리깡으로 이발한 듯 느껴진다.





# 길고 긴 임도를 아주 오래 걸었다. 임도 차단 시설 통과.




#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 백선이 꽃을 피웠다. 백선은 우리나라 산지 곳곳에서 자생하는 야생초인데 한약제로 쓰인다. 뿌리 껍질인 백선피(白鮮皮)를 한방에서는 청열조습, 거풍지양, 해독 등에 쓴다. 청열조습(淸熱燥濕)은 열을 가라앉히고 습기를 없앤다는 말이고 거풍지양(袪風止癢)은 풍을 제거하고 가려움증을 없앤다는 뜻이다.




# 다시 임도 차단시설을 통과했다. 이것은 거의 마을 가까이 있는 것이다.




# 드디어 산을 벗어나 인간세에 내려서게 된다.




# 이 동네는 청계저수지 안쪽 깊숙히 자리한 단성면 운리 점촌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펜션이나 전원주택으로 되어 있다. 저멀리 어천에서 낑낑 치고 올랐던 웅석봉 헬기장이 올려다 보인다. 저곳에서 산허리를 휘감는 임도를 길고 길게 내려온 것이다.  




#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청계저수지를 보았다.




# 몇 년 전에 이곳을 지난 선답자의 사진에는 이 장소가 청계저수지 조망처인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수풀 우거져 조망은 제한적이다.




# 가파른 마을길을 내려 오면 갈림길이 나온다.




# 점촌(店村)이란 이름으로 보아 예전에 주막이 있던 곳인 모양이다.




# 길가 저 집은 주인 혼자서 황토집을 짓고 있다. 나중에 은퇴하면 목공이나 집 짓는 것을 배워볼 작정이다. 재주 없는 사람이라 가능할지는 의문이지만...




# 이후 가파른 내리막을 구불구불 길게 내려갔다. 체중이 발끝에 몰리니 발끝과 무릎에 부담이 간다. 중간에 벤치 있어 잠시 쉬었다.




# 한재로 넘어가는 도로 앞에 탑동마을 갈림길이 있다.




# 어느새 해 넘어가고 노을빛 찾아 든다. 어둑해지는 탑동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 탑동마을에는 단속사 터가 있고 그곳에 정당매(政堂梅)가 있다.




# 정당매는 통정공(通亭公) 강회백(姜淮伯)이 이곳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은 매화나무이다. 원정매(元正梅), 남명매(南冥梅)와 함께 산청삼매(山淸三梅)라 불린다. 강회백은 조선 전기 문신인 강희맹(姜希孟)의 조부이다. 정당매란 이름은 강회백이 나중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었기 때문에 뒷사람들이 부른 이름이다.




# 육백 년 세월이 매화나무를 쇠약하게 만들었다.




# 비를 세워 강회백과 매화나무의 이야기를 후세에 남겼다.




# 단속사(斷俗寺)는 신라의 고찰(古刹)이다. 신라 경덕왕 때 이순(李純)이 세웠다고도 하고 신충(信忠)이 세웠다고도 한다. 이순이 누구인지 신충이 누구인지 우리는 잘 모른다. 창건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속세(俗)와 인연을 끊는다(斷)는 사찰의 이름이 주는 결연함과 정당매(政堂梅)가 전하는 의지(意志)가 향기로울 뿐이다.




# 천 년의 법통(法統)을 이어오던 사찰은 폐사되고 불탑만 남았다. 1568년 선조 때 유생들이 사찰을 파괴했는데 이후 정유재란 때 불에 타고 말았다 전해진다. 남아 있는 불탑 두 기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 절터를 돌아내려 오자 글자 지워진 낡은 비석 하나가 서 있다. 남명(南冥)의 시비(詩碑)이다.




# 증산인유정(贈山人惟政), 즉 유정 사명대사에게 준 시이다. 남명은 단속사에 머물던 사명대사와 교류가 있었다. "花落槽淵石 春深古寺 別詩勤記取 靑子政堂梅 (돌로 된 물 홈통 위에 꽃잎 떨어지고 옛 절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이별할 때를 잘 기억해 두게나 정당매(政堂梅) 푸른 열매 맺었나니.)"




# 마을을 벗어나 내려가면 한재로 넘어가는 도로가 나오고 버스정류장이 있다.




# 조금 더 내려가면 운리마을 주차장이 나오고 그곳에서 완전히 구간이 끝난다. 우리는 이곳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 그러나 막차는 이미 한참 전에 떠났다. 이제 더이상 대중교통은 없는 것이다. 자동차들이 간혹 지나다니지만 쑥스러움 많이 타는 우리는 히치가 쉽지 않다. 그냥 단성택시 불렀다. 택시 편으로 출발지인 성심원으로 돌아가 차를 회수 했다. 택시 기사에게서 이 동네 정보를 많이 얻었다.


우리는 지리산 자락에서의 노후를 꿈꾸고 있다. 단성 일대는 곶감 농사가 성하다. 노후의 부부가 감당하기 쉬운 농사라 생각했는데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곶감 가격이 예전 같지 않고 감농사도 비료, 농약 등 손이 많이 가는 농사였던 것이다. 대신 요즘 이 동네는 딸기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한다. 기사의 말로는 딸기농사 역시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구하기도 어려워 힘이 든다고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 성심원으로 돌아가 자동차 회수하였다. 이제 야영할 곳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운리 주차장 정자가 적당해 보였는데 저녁 찬거리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흠이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원지로 갔다. 그곳 공용주차장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먼지 털어냈다. 이후 시장 본 후 원지 강가로 가서 집 한 채 지었다. 




# 원지는 산청에서 진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골 마을이었다. 우리 어릴 때는 아주 한적한 시골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도시가 되었다. 지리산을 가자면 꼭 거쳐야 하는 곳이고 진주로 통하는 교통 요지이기 때문이다. 원지 강변에는 산책로와 둔치가 잘 정비되어 있다.




# 그곳 한적한 데크에 집을 지었다. 간혹 산책나온 이들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고요하고 안락하였다.




# 오리고기 구워 막걸리 한 잔 나눴다. 곰취는 지난 주 화악에서 구한 것이고 취는 오늘 둘레길에서 얻은 것이다. 향긋한 나물 향이 아주 좋았다. 막걸리도 맛나고.








# 식사후 가볍게 주변 돌며 산책도 했다. 강바람이 벚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좋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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