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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5구간(동강~수철)-슬픈 역사의 현장!! 본문

길이야기/지리산 둘레길

[지리산둘레길]5구간(동강~수철)-슬픈 역사의 현장!!

강/사/랑 2015. 11. 20. 15:19
  [지리산둘레길]5구간(동강~수철)


 
인간은 전쟁(戰爭)하는 동물이다. 어느 연구에 의하면 우리 인류는 그가 이룩한 역사를 통틀어 단 한 차례도 전쟁을 멈춘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나무 위에서 내려온 호모 사피엔스가 무리를 이뤄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구 역사의 주역이 되고 마침내 문명을 이루기까지 그 역사의 긴 흐름 속에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을 하였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어떤 기록을 보니 최초의 전쟁은 "유인원(類人猿) 한 놈이 다른 유인원 놈의 싸대기를 후려쳤을 때부터 시작됐다."고 적혀있다. 개인의 싸대기가 가족의 대립, 무리의 전쟁으로 확대 재생산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개인의 전쟁이 집단의 광기로 확대되어 인류는 전 역사를 관통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어느 한 집단이 광기(狂氣)에 휩싸일 때 전쟁의 싹은 튼다. "개인에게서 광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 등에는 거의 예외 없이 광기가 존재한다."고 프리드리히 니체는 설파했다.

 

혼자일 때는 약하기 이를 데 없는 순박한 이가 왜곡된 집단에 속하는 순간 광기의 인간으로 뭉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혐한(嫌韓) 시위를 벌이고 역사 왜곡에 앞장서며 군국주의(軍國主義)의 망령을 놓치지 못하는 일본 우익집단이 좋은 예이다. 


평소에는 질서 잘 지키고 수줍음 많은 소시민(小市民)의 모습으로 살던 이가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앞세운 집단이 되어서는 전쟁 국가를 외치는 살벌한 공격 성향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집단 광기에 휩싸여 전쟁으로 돌입한 무리들은 인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무서운 전쟁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육천여 명을 학살하였고, 남경(南京)에서는 삼십만 명의 중국인을 불과 일주일여 만에 학살하는 만행(蠻行)을 저질렀다.


독일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 학살은 그 규모가 육백 만에 이르러 인류 전쟁 역사 최고의 악행으로 기록되어 있다. 스탈린은 정적 숙청과 내전을 통해 천팔백만 명 이상을 학살하였고,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기간 동안 사천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모두가 집단 광기에서 비롯된 악행이고 범죄인 것이다. 우리 민족도 육이오 동란이라는 전쟁을 겪었다. 그 전쟁은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을 앞세운 전쟁이니 집단광기란 점에서 여느 전쟁에 못지않았다.

 

그 결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쟁 범죄들이 남북을 가리지 않고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중에 '산청함양사건'이 있다.

 

산청함양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 공비 토벌 작전을 하던 중 양민을 통비분자(通匪分子)로 간주하여 집단학살한 사건으로 공식적 피해자만 386명에 이르는 처참한 사건이다.

 

1951년이니 전쟁이 한창일 때이고 빨치산에 의한 피해가 극심하던 시절이라 군인들의 적개심(敵愾心)도 최고조(最高潮)에 달한 시절이었을 것이다. 토벌 작전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여 적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높아진 순간 집단의 광기가 폭발하였고 그 대상은 엉뚱하게도 그 지역의 양민이었다.

 

어느 한 집단이 광기에 휩싸이고 그 광기가 증폭되면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슬프고 무서운 사건이 벌어진 곳은 지리산 일대 산청군 금서면 가현마을과 방곡마을, 그리고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 점촌마을, 유림면 서주리 서주마을이다. 지리산 고동재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마을들이고 지금은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곳이기도 하다.

 

무심한 나그네가 그저 지리산이 좋아 둘레길에 들었다가 이 처참한 현장을 보게 되었다. 참담한 심정 금할 길 없었다. 그리하여 집단 광기(狂氣)의 괴멸적 결말을 경계하고 억울한 영령들의 원혼을 위로하고자 고개 숙여 묵념하였다. "부디 영면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기원하나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간절한 기원은 그저 이름 없는 나그네의 메아리 없는 독백일 뿐이다. 인간 세상은 바람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인간사는 그런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전쟁의 동물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처참한 학살의 전쟁 범죄는 여전히 집단 광기에 휩싸인 무리들에 의해 태연히 자행되고 있다.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다.

 

"광기란, 너도 알다시피, 중력(重力)과도 같아. 살짝 밀쳐주기만 하면 되거든!"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악역의 상징 '조커'는 이렇게 속삭였다. 광기란 중력과도 같아 살짝 자극만 주면 저절로 커지게 되어있다고 말이다.


지금 이 땅의 음침한 어느 구석에서 어느 선동가(煽動家)가 집단 광기의 폭발을 꿈꾸며 주변 사람들을 살짝 밀치고 있을 수도 있다... "분노하라!"고 속삭이면서...


슬픈 역사의 현장!!

구간 : 지리산 둘레길 5구간(동강~수철)
거리 : 구간거리(12.3km), 누적거리(68.4km, 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5년 11월 5일. 나무의 날.
세부내용 : 동강마을
 ~ 방곡마을/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 상사폭포 ~ 쌍재 ~ 642봉/산불감시초소 ~ 삼각점봉 ~ 고동재 ~ 수철마을.

  

11월이다. 가을이 한참이나 깊어진 계절이다. 그런데 여름휴가를 이제서야 간다. 해마다 직원들 여름휴가 모두 끝난 다음에 휴가를 갔지만 올해는 최고로 늦다.

 

7월 이후 회사 이사를 연달아 두 건이나 치렀기 때문이다. 그것도 허리병이 들어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치른 일이다. 두 번째 이사를 어느 정도 정리해 놓고 휴가를 가기로 했다. 이렇게 힘들게 휴가를 가는 데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하여 휴가 첫날에 오전 동안 출근해서 몇 가지 일을 정리하였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것인지...

 

휴가 계획하면서 제주 올레길 마무리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이런 상태로는 그 먼 길을 나설 수가 없다. 그래서 제주는 포기하고 지리산 둘레길을 이어가기로 했다.

 

제주 올레와 지리 둘레는 모두 야영짐을 지고 전 구간을 마치자는 계획이었지만, 지금 내 허리 상태로는 아직은 무리이다.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번 지리산 둘레길은 가벼운 차림으로 걷고 하산한 이후 마을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배낭 대신 더플백에 야영짐을 채워 차에 싣고 출발했다. 비록 산속은 아닐지언정 야영의 로망은 버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배낭을 메지 못하니 대중교통 대신 자동차를 몰고 가야 했다.

 


지리산 둘레길 5구간(동강~수철)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와 산청군 금서면 수철리를 잇는 12.1km의 지리산둘레길. 이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걸으며 산행하는 즐거움을 누리며 걷는 산길로, 4개의 마을을 지나 산청에 이르는 길이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며,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되어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가 전하며 지리산자락 장꾼들이 함양, 산청, 덕산을 오가며 생을 이었던 길이기도하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지리산 둘레길 5구간 (동강~수철)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지리산은 정말 먼 고장이다. 아침 일찍 나름 서둘렀지만 고속도로를 나와 함양 휴천면에 도착하니 이미 점심때이다. 휴천면 사무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한가한 고장이다.

 

 

 

# 1001번 지방도를 타고 유림면 입구에서 우틀하여 잠시 달리면 동강마을이 나온다.

 

 

 

# 지난 5월에 왔으니 6개월 만이다. 그때는 때이른 무더위에 엄청 고생했는데 벌써 계절이 만추(晩秋)가 되었다. 동강마을 공터 쉼터엔 느티나무 낙엽이 가득하다.

 

 

 

# 7월에 허리병이 찾아와 둘레길 야영순례에 제동이 걸렸다. 그래서 이번 순례길 우리 짐은 간편하다. 둘레길 가을소풍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매번 무거운 대형 배낭을 메던 우리에게 이번 순례길은 그야말로 소풍길이다.

 

 

 

# 마을 입구 가겟집에서 막걸리 한 잔 거나하게 드신 어르신들께서 귀가하신다. 그 분들과 동반하여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함께 출발했다.

 

 

 

# 동백으로 울타리를 만든 골목을 따라 진행한다.

 

 

 

# 산내면에서 부터 임천이란 이름을 얻은 물줄기가 평지들을 크게 휘감아 돈다.

 

 

 

# 밭일 마치고 가시는 할머니 허리가 꼿꼿하시다. 이웃들과 대화하시는 목소리도 까랑까랑하시고...

 

 

 

# 들길을 잠시 내려가면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 직진하면 상촌마을로 간다. 둘레길은 우측으로 꺾어 방곡마을을 향한다.

 

 

 

# 방곡마을은 육이오 동란 당시 산청함양사건이라 불리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 그 길가에 작은 추모 공간이 있다. 점촌마을 사람들이 이 동네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 이 고장 후손들은 그들이 결코 통비분자가 아니었음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었나보다. 마을 길가에 태극기가 도열해 있다.

 

 

 

# 고개 하나를 길게 치고 오르자 추모공원이 있다.

 

 

 

# 곧 추모행사가 있을 모양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방해될까봐 멀리서 묵념하는 것으로 추모의 마음을 갈음했다. 이데올로기라는 괴물이 얼마나 끔찍한 집단광기를 불러 오는지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 추모공원 입구에 솟대와 솟대를 노래한 시가 적혀 있다.

 

 

 

 

# 방곡마을 고개에서 둘레길은 좌틀하여 숲속으로 내려간다.

 

 

 

# 그 숲속에 낙엽 가득하다. 숲 좌측에 하얀 펜션이 한 채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인기척이 없다.

 

 

 

# 둘레길 5구간은 상사폭포, 쌍재, 고동재를 넘어 수철마을로 이어진다. 우리가 지나온 동강마을과 점촌마을, 그리고 이 방곡마을이 함양산청사건의 피해지이다. 토벌대는 이 둘레길을 따라 이동하며 끔찍한 집단광기의 만행을 저질렀다.

 

 

 

# 지리 동부능선의 왕등능선에서 흘러내린 물이 이곳 방곡마을을 지나 임천에 합류한다. 그 개울을 건넌다.

 

 

 

#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이라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

 

 

 

# 고요하고 한적한 길이다.

 

 

 

# 평일의 둘레길은 평화 그 자체이다. 늦가을 햇살까지 따스하여 모든 것이 아늑하고 안온하다.

 

 

 

# 골짜기마다 흘러내린 물은 맑고 깨끗하기 이를 데 없다.

 

 

 

# 짐이 가벼우니 발걸음도 가볍다. 평소처럼 박배낭이었으면 벌써 땀범벅이었을 것이다.

 

 

 

# 콧노래 나오는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 간다.

 

 

 

# 산동무인 곰바우 내외의 표지기가 매달려 있다. 이곳을 벌써 지나가신 모양이다.

 

 

 

# 상사폭포 아래 이름 없는 작은 폭포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 곧 날 추워지고 얼음 얼 것이다.

 

 

 

# 바위 표면을 따라 구불구불 휘감아 떨어져 내린다. 그 뒤로 단풍이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 한 차례 길게 밀어 올리면,

 

 

 

# 상사폭포가 나타난다. 생각보다 규모가 있는 폭포이다. 등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옛이야기 속 상사병에는 꼭 구렁이가 등장한다. 이 폭포에도 남녀간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과 원망, 그리고 구렁이가 등장한다.

 

 



# 잠시 시원한 물줄기 구경하며 휴식하였다. 폭포 우측은 다시 돌계단길이다.

 



# 규모있는 폭포라 한 바퀴 휘감아 올라야 한다.

 



# 폭포 상단에서 우리가 올라온 골짜기를 내려다본다. 이곳저곳 단풍이 물들고 있다.

 



# 폭포 윗쪽에는 이 동네 유일의 주민이 운영하는 쉼터가 있다. 오늘은 출타 중인지 집이 비어있다. 상사폭포 윗쪽에는 쌍재마을이 있었고 꽤 여러 가구가 살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모두 타지로 떠나고 이 댁만 유일하게 남았다 한다.

 



# 폭포 상단을 지나 산의 우측 사면을 휘감아 올라 간다.

 



# 골이 꽤 깊다.

 



# 그 안쪽에 넓은 공터가 나온다. 아마도 옛 쌍재마을터인듯 싶다. 

 



# 마을터를 지나 좌측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컨테이너 하우스가 나타난다. 도대체 이런 깊은 산골에 저 컨테이너를 어떻게 갖다 두었을지 의문이었다.

 



# 답은 금방 알 수 있다. 바로 위에 길이 있었다.

 



# 숲 너머로 지리 동부의 산줄기가 보인다.

 



# 함양독바위를 품고 있는 와불산이다.

 

 



# 지리산 둘레길로 충분하다. 또 무슨 동의보감 둘레길인가?

 



# 넓은 임도를 따라서 올라 간다. 우측에 펜스로 담을 두른 농장이 있다.

 



# 내내 산길을 걷다 갑자기 이런 포장도로를 산속에서 만나니 당황스럽다.

 



# 이 분들이 농장주인이다. 두 내외만 사는 모양이다. 마침 외출하려고 대문을 열고 다시 잠그면서 우리를 꽤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아마도 둘레길 걷는 이들 중 극성스런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한 기억이 있나 보다.

 



#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 그곳에 쌍재가 있다.

 



# 두 개의 고개가 이곳에서 교차해서 쌍재인 모양이다.

 



# 돌아본 쌍재의 모습이다.

 



# 곧 다시 고개 하나를 만난다.

 



# 둘레길은 이 고개에서 우측으로 갈라진다.

 



# 같은 장소에 두 개의 이정목이 서 있다. 산청군에서 동의보감 둘레길이란 길을 만들며 새로 세운 모양이다.

 



# 그 고개에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다시 시작된다.

 



# 길게 치고 올라 낙엽송 우뚝우뚝한 능선 마루금에 올라선다.

 



# 우측으로 가면 상사폭포 뒤에 있는 524봉으로 이어지고 둘레길은 좌측으로 가야한다.

 



# 그런데 이곳부터 둘레길의 형상이 심상찮다. 일반적인 둘레길의 모습이 아니라 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의 모습을 하고 있다.

 



# 길이야 어떻든 노랗게 물든 가을 산길이 참 예쁘다.

 

 



# 가을색이 곱기는 해도 길은 완전히 산행길로 바뀌었다. 급기야는 암릉을 치고 오르게 한다.

 



# 내 허리부상 때문에 등짐이 가벼워졌기 망정이지 평소처럼 야영배낭을 메고 왔다면 땀 꽤나 흘렸겠다.

 



# 그 힘든 산행길 끝에 봉우리 정상이 나타난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42봉이다.

 




# 전국 대부분 산길에 표지기를 매단 준희님의 정상 표지와 같은 양식의 안내판이 매달려있다. 산그리움이란 닉을 쓰고 있다.




# 지리의 능선이 강한 햇살 아래 검고 우뚝하다.

 

 



# 642봉은 사방으로 훌륭한 조망을 보여준다. 지금까지의 둘레길 중에서는 최고의 조망처이다. 이런 산정상으로 오른 경우가 처음이니 그럴 것이다.





# 왕산을 배경으로 두른 향양리가 내려다보인다.

 



# 그 고장의 다락논이 참으로 정겹다.

 



# 산청 방향의 산줄기도 보인다. 뒷쪽으로는 웅석봉이 우뚝하다. 

 



# 왕산은 좌측에 우뚝 솟아 있다.

 



# 웅석봉을 땡겨본다. 저 산정에서 하룻밤 야영하며 달구경할 날을 고대한다. 

 



# 이 인간세는 산청군의 모습이었는지 함양군의 모습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둘레길 다녀온 지 삼 개월이 흐른 뒤에 산행기를 작성해서 그렇다. 거리상으로는 산청읍내의 모습일 텐데 내가 알고 있는 산청읍과는 달라 보인다. 그래도 여러 정황상 산청읍이지 싶다.

 



# 지리 주능 방향의 조망 안내이다. 




# 해가 지리 주능 위에 있어 그쪽 방향은 역광이다. 왕등습지와 천왕봉, 진주독바위와 함양독바위가 눈앞이다.

 



# 천왕봉을 가까이 땡겨본다. 아, 그리운 지리산!

 



# 진주독바위.

 



# 그리고 우측의 함양 독바위이다.

 



# 지리산에 깃들어 사는 인간세의 모습이다. 나도 저런 곳 하나 점지하여 제2의 삶을 꾸려가고 싶다.

 



 #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42봉은 조망이 정말 좋다. 웅석봉, 밤머리재, 왕등재, 하봉, 중봉, 상봉으로 이어지는 지리 태극의 장쾌한 흐름은 물론 지리산 자락에 깃들어 사는 인간세의 모습까지 좌우사방으로 느낄 수 있다. 그 경치 훌륭하여 오래 머물며 조망 감상을 하였다. 방곡리에서 만났던 저 사람은 홀로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 주천에서부터 연속해서 걷고 있다고 한다. 중간중간 민박이나 펜션에서 묵으며 진행하는 모양이다. 이삼 일 더 걸을 예정이라고. 

 


 

# 산불감시원은 저렇게 야한 달력을 붙여 놓고 홀로 외로움을 달랬나 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산을 다니면서 만나는 상당수의 산불감시초소에서 저런 주류회사 제공의 야한 달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오래 경치 감상을 한 후 642봉을 떠난다.

 



# 힘겹게 올랐던 만큼 긴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다.

 



# 가을 냄새나는 긴 내리막을 걸어 고동재로 향한다. 

 



# 하지만 마냥 내려가는 것만 아니다. 곧 다시 봉우리 하나를 오르게 한다. 삼각점까지 갖추고 있는 봉우리이다.

 



# 봉우리 좌측 전방에는 바위전망대가 있어 전방으로 툭 트인 조망을 보여준다.

 

 



# 지리 주능쪽 조망이다.

 

 



# 지리산은 품이 넓은 산이다. 그 산자락 골골마다 인간세를 허락하고 있다.

 



# 지나온 642봉이 건너다보인다. 뒷쪽으로는 왕산이다.

 



# 642봉은 참나무 군락으로 덮여 있고 모두 가을색으로 노랗게 물들었다.

 



# 이런 구불구불하고 평탄한 산길이 참으로 좋다.

 

 

 

# 아래로 다시 한차례 내려가니 이름 없는 옛고개가 나온다. 아직도 다니는 사람이 있는지 희미하지만 고개를 내려가는 길은 길게 아래로 이어지고 있다. 

 


# 다시 작게 한번 올랐다가 내리면 고동재에 이르게 된다. 고동재는 수철리에서 방곡리와 오봉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지금은 넓은 임도로 되어 있다.

 



# 저 장승에는 센서가 달려 있다. 사람이 나타나면 이마에 불어 들어오면서 산불계도 방송이 나온다. 험상궂게 생긴 커다란 장승이 마빡에 불을 번쩍이며 갑자기 방송을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랬다.

 



#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 수철리까지는 넓고 편안한 임도길로 내려가게 된다.

 



# 그 길이 시방 가을빛 가득한 길이라 걷는 내내 행복한 마음 가득이다.

 



# 올해 가을빛 구경을 이곳에서 다했다.

 




# 구절초 은은한 꽃향기도 맡아보고, 

 

 



# 이제는 향긋한 잎보다는 구절초 닮은 꽃이 예쁜 참취도 만난다.

 



# 쑥부쟁이도 빠질 수 없다.

 

 



# 삽주도 만난다. 삽주의 뿌리는 창출, 뿌리 껍질을 말린 것은 백출이라한다. 한방에서 건위, 이뇨 등의 약재로 쓴다.

 



# 정말 좋은 길이다. 등짐 가볍고 길 편안해 지금까지의 둘레길과는 완전히 다른 진행이다.

 

 



# 임도가 크게 휘감는 곳에 쉼터가 있다. 평일이라 둘레길 걷는 이 없으니 쉼터 문은 잠겨 있다.

 



# 쉼터 너머에는 농장이 있는 모양이다.

 



# 편안한 가을길을 길게 내리면 수철리 초입이 나온다. 펜션이 군데군데 있다.

 



# 날이 어둑해져서야 수철리에 도착했다. 수철리는 물 水, 쇠 鐵을 쓴다. 곳곳의 지명 유래에 무쇠솥을 만들던 곳이라 수철리가 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하지만 일설에는 무시울 혹은 무쇠막이 한역되어 수철리가 되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무시울이나 무쇠막은 물가 마을이란 뜻이다. 물의 고어인 묻이 뭇으로 변하여 뭇울, 뭇막이 되었다가 무시울이나 무쇠막으로 변음된 것이다. 그 무쇠막을 한역하여 수철이 되었고 오히려 한자 그대로 해석하여 무쇠솥 운운하는 유래가 등장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수철리 마을회관 앞 광장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저물었다. 버스정류장이 있지만, 버스는 진작 끊겼다. 광장 넓은 곳에 나락 말린 것을 담는 이들이 있다. 교통편을 물으니 택시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다.


버스정류장에 택시 번호가 붙어 있다. 오늘 내내 만났다 헤어졌다 했던 홀로 순례객은 수철리에서 민박하기로 하고 우리는 수철리 택시편으로 동강마을로 갔다. 그곳에 세워둔 차를 회수해서 다시 수철리로 향했다. 수철리 마을 정자에서 하룻밤 야영하면 될 듯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중에 마눌이 따뜻한 물 목욕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야영짐 모두 챙겨 왔지만 마눌의 의견에 따라 수철리 대신 산청읍으로 갔다. 그곳에서 실망할 수준의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찜질방을 찾았다. 하지만 산청의 찜질방은 24시 운영이 아니다.


할 수 없이 깨끗한 숙박업소를 찾아 그곳에 여장을 풀었다. 따뜻한 물로 목욕하고 포근한 침대에 누우니 안락하고 좋다. 늘 산속에서 한뎃잠을 자던 사람이 가끔은 이런 호사를 누려 보는 것도 괜찮다. 그렇게 지리산 둘레길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대형 배낭이 아닌 작은 배낭, 야영이 아닌 숙박업소 이용의 첫 경험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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