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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9구간(덕산~위태)-덕(德)의 산과 강!! 본문

길이야기/지리산 둘레길

[지리산둘레길]9구간(덕산~위태)-덕(德)의 산과 강!!

강/사/랑 2020. 5. 3. 14:41
[지리산 둘레길]9구간(덕산~위태)



'도(道)'와 '덕(德)'은 동양사상의 가장 대표적 개념이다. '도(道)'는 한자 해석 그대로 '길'을 가리킨다. 그 길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올바른 길이다. 따라서 도는 '진리(眞理)' 그 자체를 의미한다.

반면 '덕(德)'은 길을 바른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으로써 인간이 진리를 사고하여 지성으로 획득하며 이를 실천하여 인격으로 갖춤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도(道)와 덕(德)은 진리와 실천이 함께 일어나 '도덕(道德)'이 되고 인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 기준으로 역할한다.

덕(德)의 본 글자는 '덕(悳)'이다. 그 해석의 출발은 '득(得)'이다.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허신(許愼)'이 편찬한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덕을 "升也 多則切(승야 다즉절)"이라 풀었다. "덕은 오르는 것인데 매우 간절하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外得於人 内得於己也(내득어인 내득어기야)라고 해석했다. “덕이란 밖으로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하고 안으로 나에게 획득된 것"이란 뜻이다.

설문해자에 주(注)를 단 청나라 학자 '단옥재(段玉裁)'는 덕이란 "内得於己 謂身心所自得也 外得於人 謂惠澤使人得之也(내득어기 위신심소자득야 외득어인 위혜택사인득지야 : 안으로 나에게 획득된 것이란 몸과 마음에 체득된 것이요, 밖으로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한 것이란 다른 사람이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이처럼 덕이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바람직한 인격과 그 인격의 발현으로 나타난 결과를 말한다. 그리하여 개인적으로는 윤리와 수양의 측면에서 수기치인(修己治人) 하는 군자(君子)의 품성이 되고 정치 사상적으로는 유가 정치사상의 핵심인 덕치주의(德治主義)의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실천 윤리의 대명사라 덕(德)은 예로부터 군자 인격 형성의 이상적 지향점이 되었고 군자의 삶 모든 곳에 공존하게 되었다. 그로서 군자들은 귀한 자식의 이름에 '덕(德)'이란 글자를 넣어 부르기를 좋아했다. (우리 어머님 함자가 바로 그러하다. 한학을 하셨던 우리 외조부께서는 자신의 큰따님에게 '덕(德)'자와 '행(行)'자로 이름을 지으셨다. 그 이름 덕분에 우리 어머님은 일생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시다 일찍 가셨다.)

옛사람들은 인명에만 덕을 즐겨 불렀던 것은 아니다. 마을 이름에도 덕(德)자를 즐겨 넣었다. 대표적인 것이 '덕산(德山)' 이다. 덕산이라는 지명은 이름 그대로 덕이 산을 이룬 고장이란 뜻이다. 고을 이름으로는 가히 최상이라 할 수 있다.

예산의 덕산과 산청의 덕산이 대표적인데 이 두 곳 외에도 전국 각지에 덕산이라는 지명을 가진 고을이 허다하다. 또 이들 외에 대덕(大德), 명덕(明德) 등의 이름도 흔하다. 모두가 '덕(德)'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옛사람들의 사상이 발현된 결과이다.

예산의 덕산은 역사가 오랜 고장이다. 예산은 금북정맥의 맥이 흐르는 고장이다. 고을 중앙에 호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덕숭산(德崇山)'이 우뚝 솟아 산맥의 흐름을 잇고 있다. 덕숭산은 해발 495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그 품속에 천년고찰 '수덕사(修德寺)'를 연꽃처럼 품고 있다. 그리하여 이 고장은 산 이름 '덕숭(德崇)', 절 이름 '수덕(修德)', 마을 이름 '德山(덕산)'을 가진 '삼덕(三德)'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산청의 덕산 역시 이에 못지않다. 산청은 지리산(智異山)의 고장이다. 지리산은 한반도의 으뜸산이다. 달리 두류산(頭流山) 혹은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불렀다. 덕숭산이 사찰을 품었다면 지리산은 인물을 품었다. 바로 '남명(南冥) 조식(曺植)'이다.

남명은 일평생 산림에 거하며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실천궁행(實踐躬行)을 추구한 삶을 산 선비의 표상이다. 그는 일생 벼슬하지 않고 지리산 자락 덕산의 덕천강(德川江) 가에 산천재(山川齋)를 지어 거하며 후학의 양성에 힘썼다. 삼가현(三嘉縣) 출생인 그가 지리산 자락에 산천재를 세운 것은 지리산의 덕(德)이 산(山)을 이루고 지리산의 의기가 강물(川)같이 흐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덕산은 삼장면의 마을 이름이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 중기 이후 삼장과 시천 등을 통틀어 덕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는 시천면 소재지 일대 마을 이름으로만 남았다.

덕산이라는 이름은 덕산사(德山寺)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전해진다. 덕산사는 삼장면 대하리에 있던 신라 말기의 고찰(古刹)이다. 통일 신라 말기에 무염국사(無染國師)가 창건한 사찰인데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다. 지금은 내원사로 이름을 바꿔 1959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신라 시대 사찰에서 시작된 덕산이라는 이름이 지리산이라는 큰 산의 음덕과 동화되어 덕의 산이 되고 그 산에서 발원한 강의 이름으로 흐르다 마침내 긴 세월 고을 이름으로 남았다.

덕(德)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바람직한 인격과 그 인격의 실천 결과이다. 따라서 인간으로 살아감은 덕의 실천 그 자체이다. 이렇게 좋은 가치를 마을 이름으로 삼았으니 이 고장은 이름 만으로도 가치 넘치는 곳이다.

지리산 둘레길 열 번째 길은 덕이 산을 이루고 강물처럼 흐르는 덕산에서 시작된다. 덕산은 내 마음의 고향 중 하나다. 나는 여러 해 전 은퇴 귀촌지를 찾다가 덕산에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 그 설렘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덕산에만 가면 마음이 푸근하고 안정된다. 나중 은퇴했을 때 정말 귀촌을 실행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바람대로 귀촌을 실행한다면 그 대상지는 아마도 덕산이 될 확률 높다.

그런 고장이니 덕산에서의 둘레길 순례는 넉넉하고 안온하다. 좋은 기분 가득 안고 그 길 걷는다.



덕(德)의 산과 강!!


구간 : 지리산 둘레길 9구간(덕산~위태)
거리 : 구간거리(9.7km), 누적거리(117.7km, 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20년 5월 1일. 쇠의 날
세부내용 : 덕산 ~ 천평교 ~ 송하마을 ~ 중태안내소 ~ 유점마을 ~ 중태재 ~ 위태


나에게 지리산 둘레길 순례는 연중행사에 다름없다. 2013년에 남원에서 첫출발했는데 햇수로 8년이 지난 지금도 주행 코스가 8구간에 불과하다. 딱 1년에 한 구간을 한 셈이다. 참으로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다.

직전 구간인 8구간을 2018년 5월에 걸었으니 이번 9구간 도전은 무려 2년 만의 나들이다. 작년 한 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나도 잘 모르겠다. 지리산까지의 접근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는지, 열정이 약해져서 그랬는지, 아니면 밥벌이에 너무 몰입되어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마 셋 모두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뭐, 그래도 괜찮다. 애초에 이 둘레길의 목적은 단기간에 끝낼 욕심으로 시작한 길이 아니라 다리 부상 때문에 높은 산을 못 올라가게 되어 선택한 길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세월은 많이 남았고 지리산은 누천년 그 자리에 묵묵할 것이니 서두르거나 애태울 일 없다. 틈틈이 그리고 사부작사부작 그 길을 걸으면 될 일이다.



지리산 둘레길 9구간(덕산~위태)

덕산-위태구간은 낙동강수계인 덕천강도 만나고 두방산의 경치도 감상하면서 걷는 9.7km의 지리산둘레길이다. 이 구간에서는 남명조식선생의 유적도 둘러보고 지리산 천왕봉의 기운을 느끼면서 임도와 옛길를 걷게된다. 이 구간의 중태마을안내소는 주변에 농작물이 많이 있어 주민들의 소중한 농작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실명제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구간을 지날 때는 책임여행을 실천하는 의미로 안내소를 방문하자. 덕산~위태 구간은 시천면 사리 원리, 천평, 중태, 옥종면 위태(상촌)마을을 지난다.

♠ 안내센터 중태안내소 – 경남 산청군 시천면 송하중태길 280/ 055-973-9850
하동센터 - 경남 하동군 하동읍 중앙로 52-4 / 055-884-0854

♠ 구간 찾아가기
덕산(덕산터미널 or 남명조식기년관) – 산청군 시천면 사리 923-10
위태(버스정류소) - 경남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 783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재작년 5월 이후 2년 만에 다시 둘레길 순례에 나섰다. 지리산은 먼 고장이다. 새벽같이 서둘렀음에도 덕산에 도착하니 점심 때가 넘었다. 4일과 9일인 장날이 아니어서 덕산시장은 한산하다.

 

# 가볍게 몸 풀고 등짐 챙겨 길을 나섰다. 이번 구간은 나홀로 순례다. 덕산위태 구간은 거리는 짧지만, 구간 종료 후 위태에서 덕산으로 돌아오는 대중교통이 전무하다. 택시가 유일한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눌이 택배기사를 하기로 했다. 마눌은 자동차 편으로 위태에 먼저 가서 주변 산책하거나 산나물 냄새 맡기로 한 것이다.

 

# 마눌의 걱정어린 배웅 뒤로 하고 덕산시장을 출발했다. 햇살이 아주 강렬하다. 금세 등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계절이 어느새 이렇게 깊어졌다. 밥벌이에 정신 없어 계절 깊어진줄 모르고 살았다.

 


# 덕산은 덕천강의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다. 하나는 하봉에서 출발한 물줄기가 유평과 대원사를 거쳐 흐르다 웅석봉의 물줄기와 만나고 다시 내원천과 삼장천의 물을 합하고, 다른 하나는 천왕봉 천왕샘의 물이 중산리계곡을 흐르다 거림 내대의 물줄기와 만난 후 다시 고운동계곡과 반천을 흘러내린 물줄기를 합한 물줄기다.

지리 남동부의 주요 봉우리에서 발원한 물줄기를 모두 합하였으니 가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청정하고 기운 좋은 물길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동네는 덕(德)이 산(山)을 이룬 곳이고 강은 덕(德)이 내(川)를 이뤄 흐르는 덕의 고장이 되었다.

 

# 원리교를 건넌다. 저멀리 지리산 방향으로 보이는 산은 웅석봉이지 싶다.

 

# 둘레길은 정면 덕천강둑을 따라 지리산 속으로 들어간다.

 

 

# 원리삼거리에 남명(南冥)의 시조가 바위에 새겨져있다. "지리산 두 갈래 물길에 복사꽃 떠가고 지리산 거꾸로 비쳤으니 여기가 무릉도원이로구나"라는 글이다.

남명 조식선생은 지리산의 사람이다. 그의 지리산 사랑은 일생의 일이었다. 평생 벼슬하지 않고 이곳 지리산 자락 덕산의 산천재(山川齋)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 다시 천평교를 건넜다. 그곳 사거리에 금환낙지라고 적인 비석이 있다. 금환낙지는 풍수지리의 명당 중 하나를 말한다. 금가락지가 떨어진 곳이란 의미다. 맑은 계곡물에 목욕을 마친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곳으로 길지(吉地) 중 길지를 가리킨다.

무릇 여성은 출산할 때나 성행위 시 가락지를 빼는 법이라 금환낙지는 생산활동의 길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금환낙지로는 하동 토지면의 오미리가 유명하다는데 이곳 천평리 일대로 산이 오목하게 둘러싸고 강이 앞으로 흐르는 분지(盆地)형태라 금환낙지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 천평교를 건너자마자 좌측 강둑길을 따른다.

 

 

# 강둑에 노란 애기똥풀 만발하다. 애기똥풀은 줄기를 꺾을 때 노란 진액이 나와 얻은 이름이다. 전국 어디나 흔한 잡초인데 의외로 항암효과와 진통 및 진정효과가 있다 한다. 그리고 피부질환이나 기관지, 위장질환, 면역력 강화에도 효능이 있다 하니 가히 만병통치약이다.

한방에서 백굴채(白屈菜)라고 부르며 약재로 쓴다는데 이름의 유래인 노란 진액에 들어있는 여러가지 알카노이드 성분이 그런 약효를 낸다 한다. 하지만 독성이 있어 법제를 잘 해야하므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넘이다.

 

# 강둑 아래의 이 마을은 송하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소나무 아랫말인데 큰 소나무는 없고 길가 어느 농장에 작은 반송들이 자라고 있다.

 

# 강 건너로 덕산 선비문화원이 보인다. 나는 몇 년 전 이곳 덕산으로의 귀촌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 그 때 마눌과 함께 이 동네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꽤 열심히 방법을 연구했었다. 여러 상황 변화로 조금 알아보다가 그만 두었는데, 그 마음 아직 다 버리지 못했다.

 

# 길게 강둑을 따라 내려가다가 지리산과 진주를 잇는 도로의 다리 아래를 통과한다.

 

# 그곳 강둑길 안쪽에 옥수라는 이름표를 단 약수터가 있다. 이름과는 달리 주변 관리가 되어 있지 않다. 위생 상태를 가늠키 어려워 물맛을 보지는 못했다.

 

# 습기 많은 곳에 노란붓꽃이 꽃을 피웠다.

 

# 햇살이 너무 뜨거워 등짝이 뜨끈뜨끈하다. 짐 내리고 약수터에서 잠시 쉬었다. 잠깐의 휴식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전방에 함미봉이 우뚝하다.

 


# 둘레길은 함미봉 입구에서 우측으로 틀어 골짜기로 접어든다.

 

# 그곳에 중태리 마을이 있다. 마을 입구 어느 집 담벼락에 작약꽃 붉다.

 

#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길 좌측에 큰 느티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작은 건물이 하나 있다.

 

#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소이다. 산청의 성심원 안에 있던 안내소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안내소다. 옆에는 마을회관이 있다. 그곳에는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 가까이 가보니 인증도장이 있다. 내 둘레길 나들이는 연례행사라 8년 전 둘레길 시작하면서 인월안내소에서 구입한 인증수첩의 행방이 묘연하다. 서재 어딘가 있을텐데 하도 오랜만에 둘레길에 나서니 매번 잊어먹게 된다. 그래서 메모지에 우선 인증도장을 찍었다. 나중에 오려붙이면 될 일이다.

도장 찍느라 소란스러웠던지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관리하는 분이 문을 열고 나온다. 갈 길 바빠 그냥 가볍게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 길은 점점 골짜기 안으로 깊게 이어진다. 멀리 보이는 골짜기 모양으로 보아 아직 갈 길은 한참이나 멀었다.

 

# 길가에 감나무 농장이 있다. 내가 꿈꾸는 지리산으로의 귀촌이 바로 저런 모습이다. 작고 단촐한 집 한 채와 나홀로 관리가 가능한 감나무 농장 조금이면 된다. 더이상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 골짜기는 점점 깊어지고 길의 경사도 조금씩 가팔라진다.

 

# 길게 올라가자 놋점골이 나온다. 그곳에는 삼화사란 사찰이 있다. 자료에서 찾아본 삼화사 표지석은 꼿꼿하더니 내 눈에 보이는 표지석은 뒤로 누워 있다. 

 

# 지금 중태마을의 산길은 취나물 천지다. 길 옆 숲 초입에 손만 뻗으면 취를 한 웅큼 꺾을 수 있다. 굳이 산 속으로 올라갈 일도 없다. 지난 번에도 느낀 일이지만 이 동네분들은 이런 취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때 택시기사에게 들은 바로는 돈 되는 딸기농사 일손도 모자라는데 저런 돈 안되는 취 뜯을 일손이 없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한웅큼 뜯었더니 금세 한 아름이다. 손가락 끝에 구수한 취향기 물들어 하루종일 손에서 취냄새가 난다.

 

# 산길이 높아지면서 좌측으로 구불어지는 곳에 작은 페션이 하나 있고 그 곁에 큰 너럭바위 쉼터가 있다. 쉼터 보았으니 쉬어 주어야 한다. 짐 내리고 간식 먹으며 한참 쉬었다.

너럭바위는 놋점골쉼터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놋점'이라면 놋그릇을 파는 점방이라는 뜻이다. 아마 예전에 이 동네에서 놋그릇을 만든 모양이다. 기록 찾아보니 과연 그러하다. 이 윗쪽에 있는 유점마을도 '놋쇠 유(鍮)'를 쓰고 있으니 같은 이름의 동네다.

 

# 골은 점점 깊어진다. 드문드문 독립가옥들이 나타난다. 이렇게 깊은 골짜기에 터전을 잡은 저이들의 일상은 어떠할꼬?

 

# 죽염공장이 나타난다. 젊어 세상 떠난 내 세째 형도 지리산에서 죽염 굽는 법을 배워 고향집에 가마 짓고 죽염사업을 했었다. 

 

# 이 동네는 위로 올라갈 수록 계곡의 수량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 아주 가파른 오르막 끝에 유점마을이 나타난다.

 

# 이 동네는 아주 가파른 경사지에 형성된 동네다. 어찌 이런 골짜기에 터전을 마련했을까? 평지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곳이다.

 

# 고도 높고 골 깊은 곳이라 뙤약볕 강해지는 이 계절에도 아직 군불을 피우고 있다. 

 

# 가파른 마을 끝에 갈림길이 있다. 둘레길은 좌측길이다.

 

 

# 평지 귀한 곳이니 전원주택도 폭이 좁은 형태로 지어졌다.

 

# 잠시 길을 더듬어 올라가면 정자나무 있는 쉼터가 나온다.

 

# 바람골이라 그늘 좋고 바람 좋다.

 

# 짐 내리고 고생한 내 발에 휴식을 주었다. 간식 먹으며 한참 쉬었다. 바람 좋아 땀이 금세 다 식었다.

 

# 이제부터는 인간의 집은 다 끝나고 산길만 남았다. 길은 계속 높아지며 중태재를 향한다.

 

# 그곳 숲에서 마눌을 만났다. 마눌은 자동차 편으로 위태로 가서 그곳에서 길을 더듬어 중태재를 넘어 온 것이다.

 

# 봉지 가득 뭔가를 채우고 있길래 보았더니 취나물은 없고 죄다 쑥이다. 오랜만에 보니 취는 못 알아보겠더란다. 길가에 지천으로 보이는 취를 알려 주었더니 그제서야 알아보겠는 모양이다. 그래도 집에 돌아가 저 청정한 쑥으로 쑥떡을 해주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 조금 더 오르면 임도는 우측 산 위로 올라가고 둘레길은 정면 숲으로 들어가라 한다.

 

 

# 중태고개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돌아보면 중태리 입구에서부터 이곳까지 계속적인 오르막이었다.

 

# 한차례 밀어 올려 중태재에 도착했다. 제법 땀을 흘렸다.

 

# 중태재는 위태와 중태를 잇는 오랜 고갯길이다. 지금은 우리 같은 둘레길 순례자를 위한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고개 오르며 흘렸던 땀이 바람골을 넘는 시원한 바람에 금세 식었다.

 

 

 

# 오래 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고개 아랫쪽은 서늘한 대숲이다. 대숲은 한낮에도 어둡고 습하다. 예전에는 비닐하우스 골재로 대나무를 사용해서 대나무 농사가 제법 돈이 되는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대숲은 그냥 방치되는 실정이다.

 

# 대숲을 벗어나자 홀아비꽃대 무리가 반겨준다.

 

# 숲이 끝나는 곳에 작은 계곡이 있고 쉼터도 있다.

 

# 그 아래 작은 소류지가 있다. '중택지'다. 중택지 앞에 공터가 하나 있다. 마눌은 이곳 중택지 공터에서 야영하자고 말한다. 계곡이 있어 씻을 수도 있고 다른 이들 눈 밖이라 고요하다는 장점이 있어 그랬다. 그러나 내 눈에는 별로였다.

 

# 숲을 벗어나 골짜기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새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 내리막길 곳곳에도 마눌이 못보고 지나친 취가 종종 눈에 띈다.

 

# 완전히 내려와 지나온 중태재를 돌아보았다.

 

# 골짜기를 벗어나 포장도로에 내려섰다. 하동 횡천 뒷쪽으로 이어진 '돌고지로'이다. 잠시 가면 위태마을회관이 나온다. 이로써 오늘 구간을 마무리한다.

 

# 위태마을 앞에는 상촌재라는 소류지가 있다. 나는 지도상으로만 보고 이곳 상촌재에 야영할 만한 공간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보니 야영할 자리는 없다.

 

#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9코스를 마무리했다. 이제부터는 야영지 찾을 일이 급선무다. 자동차 몰고 인근을 돌아보기로 했다. 우선 인근 궁항지를 찾아갔다. 궁항지는 제법 규모가 큰 저수지다. 저 정도 규모면 화장실이나 주차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화장실은 없고 정자에는 쓰레기와 잡풀이 무성하여 머물수가 없었다.

인근 마을 두어 곳을 더 찾아보다가 출발지였던 덕산이 떠올랐다. 덕산은 시장 보기도 좋고 강이 있으니 밤중에 씻기에도 좋다. 게다가 예전에 이미 한번 강변에서 야영한 경험도 있으니 낯설지도 않다. 무엇보다 덕산은 우리가 귀촌을 꿈꾸는 1순위 지역이니 좀더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자동차 몰고 덕산으로 향했다. 저녁 찬거리와 내일 먹을 음식 등을 구하고 산천재 인근 작은 정자에 집을 세웠다. 덕산 강변에는 정자가 두어 개 있는데 큰 정자에는 운동나온 주민들이 자주 쉬고 이곳은 그냥 지나치는 곳임을 이미 알았기 때문이다.

 

# 과연 그러했다. 밤새 어떤 방해도 없이 편하게 잘 쉬었다. 인적 끊길 시간 택해서 강으로 내려가 알탕도 즐겼다. 강물은 차가웠지만 시원하고 좋았다. 

깔끔하게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은 후 저녁만찬을 즐겼다. 오리고기 구워 오늘 산에서 조금 취한 취나물로 쌈을 싸먹었다. 단성막걸리 한잔 곁들이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 막걸리 맛나고 취나물 쌈 아주 맛났다. 이런 재미는 우리 같이 길을 찾아 떠나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다.

 

# 고요하고 상쾌한 밤이었다. 꿈도 없이 깊게 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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