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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32코스/덕산해변~추암해변-실직(悉直)의 땅 삼척(三陟)!! 본문

길이야기/해파랑길

[해파랑길]32코스/덕산해변~추암해변-실직(悉直)의 땅 삼척(三陟)!!

강/사/랑 2018. 11. 2. 15:06
 [해파랑길]32코스/덕산해변~추암해변


   

몇 해 전 회사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나름 확장 이전이라 우리와 업무로 관련된 기관이나 대학 등에서 화분이나 축하 메시지 등이 여럿 들어왔다. 그중에 커다란 액자 하나가 있었다. 비석 탁본(拓本)을 액자에 넣은 것인데, 직원들이 그 내용을 나에게 물어왔다.


난감하였다. 글씨가 전서체(篆書體)였던 것이다. 정자로 쓰여진 글씨라면 어느 정도 해독이 가능하겠지만, 전서는 상형문자 같아 한자에 정통하지 못하면 해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전서가 진시황(秦始皇) 시대까지 역사가 올라가는 고대의 문자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어찌어찌 해독하였다.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였다. 그것도 처음에는 동해(東海)를 '차련(車練)'으로 읽었다가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아 거듭 살펴본 후 동해로 읽을 수 있었다. 전서가 원래 한자를 그림처럼 표현하여 사각으로 맞춘 글씨라 그랬다.


자료를 찾아보니 척주동해비는 1661년 현종 2년 삼척부사 허목(許穆)이 동해의 풍랑 피해를 막기 위해 해신을 달래는 동해송(東海頌)을 지어 자신이 직접 전서체(篆書體)로 써 돌에 새긴 비석이었다. '미수(眉叟) 허목(許穆)'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유학자이다. 옛 글씨체인 전서(篆書)에 정통하여 '미수체(眉叟體)'로 알려진 자신의 글씨체를 이룬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송시열(宋時烈)과의 예송논쟁(禮訟論爭)을 벌이다 패배하여 외직(外職)으로 물러나게 되었는데, 임지가 바로 삼척이었다. 그가 부임할 당시 삼척은 해일의 피해가 심해 백성들의 고초가 깊었다. 이에 허목은 척주동해비를 통해 풍랑을 다스리고 흉흉했던 민심을 바로 잡고자 하였다.


비문의 기록은 이랬다. "洲古悉直氏之地在濊墟 南去京都七百里 東臨大海 都護府史孔岩許穆書(주고실직씨지지예허 남거경도칠백리 동임대해 도호부사공암허목서 ; 척주는 옛날에 실직씨의 땅이요, 예나라의 터이다. 남쪽으로 서울로부터 700리요,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임하여 있다. 도호부사 공암 허목 쓰다)"


이어서 동해송은 이렇게 시작된다. "瀛海漭瀁 百川朝宗 其大無窮 東北沙海 無潮無汐 號爲大澤(영해망양 백천조종 기대무궁 동북사해 무조무석 호위대택 ; 큰 바다 가없이 일렁이고 온갖 냇물이 흘러드니 그 크기 다함이 없어라 동북은 모래바다 밀물 썰물 없으므로 대택이라 이름했네)" 


본문의 동해에 대한 예찬 외에 삼척의 옛 이름이 척주와 실직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비문이 척주동해비인 이유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다시 '실직(悉直)'이 궁금해졌다. 답은 삼국사기와 고려사에 나와 있었다.


고려사(高麗史)에 척주와 실직의 기록이 소상하게 나온다. "三陟縣本悉直國 新羅婆娑王時來降 智證王六年 爲州置軍主 景德王更今名爲郡 成宗十四年 改陟州團練使 顯宗九年 降爲縣令 辛禑三年 陞知郡事 別號眞珠 有太白山(삼척현본실직국 신라파사왕시래항 지증왕육년 위주치군주 경덕왕경금명위군 성종십사년 개척주단련사 현종구년 강위현령 신우삼년 승지군사 별호진주 유태백산 ; 삼척현은 본래 실직국으로 신라 파사왕 때 항복하였다. 지증왕 6년에 주로 하여 군주를 두었다. 경덕왕 때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어 군으로 삼았다. 성종 14년에 척주단련사로 고쳤다. 현종 9년에 현령으로 강등시켰다. 우왕 3년에 지군사로 승격시켰다. 달리 진주라 불렀다. 태백산이 있다)"


실직국(悉直國)은 강원도 삼척 지역에 있었던 고대의 소국이다. '실직곡국(悉直谷國)'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신라 파사왕 때 복속되었다. 고대 신라는 국가의 모습을 갖춰나갈 때 주변의 여러 소국을 병합하였는데, 전쟁을 통하기도 하였지만 교묘한 술책을 많이 사용했다.


실직국 역시 그러했다. 실직국은 지금의 경주 안강에 있던 '음즙벌국(音汁伐國)'과 영토분쟁을 했는데, 해결이 되지 않자 신라 파사왕(婆娑王)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개구리끼리 싸우다가 왜가리 더러 판관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셈이었다. 결과는 공멸이었다.


실직은 이후 고려 성종 때 척주(陟州)가 되었고 다시 현종 때 삼척현(三陟縣)이 되었다. '척(陟)'은 산을 의미한다. 삼척(三陟)이라면 세 개의 큰 산을 뜻한다. 삼척에 큰 산이 세 개뿐이었나? 한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삼척군지에 의하면 실직은 실즉·실젹·시젹·시적 등의 고어(古語)로 나중에 '사직'이 되었는데 그 이름이 지금도 사직리로 남아 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실직이 사직으로 또 삼척으로 된 것은 실직을 한자 음독(音讀) 상 고쳐 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소의 모 연구원은 삼척의 원래 이름을 '실모로' 혹은 '시모로'였다 주장했다. 고대에는 직(直)과 지(旨)를 함께 썼는데, 조선 시대 서적인 '유합(類合)'에 의하면 지(旨)의 새김이 'ㅁㄹ'이므로 실직은 실모로 또는 시모로가 된다는 것이다.


'유합(類合)'은 천자문(千字文)을 익히고 나서 배우는 한자 입문서였다. 한자의 뜻과 독음을 기록한 것으로 지금의 자전쯤 되는 책이다. 그곳의 새김에 따라 실직을 시모로라 연결한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 강원대의 모 교수는 '모로'가 '산(山)'의 옛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삼(三)은 단순히 숫자 3이 아니라 '많다'는 뜻을 함께 가진다. 따라서 삼척은 '산이 많은 고을'을 의미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과연 산(山)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 '뫼'나 '메' 외에 '모로'와 '달' 등이 더 있다. '모로'는 '몰'에서 나온 말이다. '몰'이 '모이'가 되었다가 '뫼'로 변하였다. 뫼의 더 오래된 말인 것이다.


결국 삼척(三陟)은 옛 실직(悉直)의 땅인데, 실직은 '실모로' 혹은 '시모로'라는 옛말의 한역(漢譯)이고 이는 산이 많은 고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옛 실직은 지금의 삼척 외에 강릉의 옥계와 태백, 그리고 울진을 포함하는 넓은 강역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지나는 곳이라 산첩첩(山疊疊)한 고장이다. 산 많은 고을인 '시모로'라 불러 이상할 일 전혀 없는 고장인 것이다.


이사 때 축하 선물로 들어온 전각 액자에서 출발한 생각이 척주와 실직으로 이어졌고 삼척의 유래와 역사는 물론 미수 허목의 애민정신을 새기는 데까지 이어졌다. 평소 내 정신세계의 흐름이 이와 같다. 나는 늘 하나의 의문에서 출발한 의식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끝내 제 길을 찾아가기도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삼척에 대한 공부는 잘하였다.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은 안전(安全)에 관한 연구개발과 시스템 구축을 주로 하는 곳이다. 척주동해비는 미수 허목이 삼척 백성들의 풍수해 피해를 막아주고자 하는 애민 정신의 결과물이다. 삼척의 대학교에서는 자기 고장의 자랑스런 방재(防災) 역사를 우리에게 선물하였고 우리 회사가 그런 역할을 하라는 격려였던 것이다. 의미 깊은 선물이다.


강/사/랑의 해파랑길 일곱 번째 걸음은 척주동해비의 역사와 미수의 애민정신이 살아 있는 삼척의 해변을 따라 북상하는 길이다. 척주동해비가 삼척 바다의 풍랑을 잠재웠듯이 이 땅에 휘몰아치고 있는 미친 자들의 광풍(狂風)을 잠재울 이 시대의 척주동해비를 꿈꾸며 그 길을 걸었다. 

 


실직(悉直)의 땅 삼척(三陟)!!


구간 : 해파랑길 32코스(덕산해변~추암해변)
거리 : 구간거리(22.5km), 누적거리(138.7km)
일시 : 2018년  10월 27, 28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덕산해변/ 덕봉대교~ 맹방해수욕장 ~ 하맹방해수욕장 ~ 상맹방해수욕장 ~ 삼척로 ~ 한재소공원 ~ 오분교차로 ~ 오분교 ~ 삼척교 ~ 남양체육공원 ~ 삼척문화예술회관 ~ 죽서교 ~ 삼척장미공원 ~ 삼척교사거리./ 삼척해변 야영


삼척교사거리 ~ 정라파출소 ~ 정라항안길 ~ 나릿골길 ~ 죽동고개 ~ 광진봉수대 ~ 광진길고개 ~ 광진마을 ~ 새천년도로 ~ 비치조각공원 ~ 후진항 ~ 삼척해수욕장 ~ 솔비치호텔 ~ 증산해수욕장 ~ 이사부사자공원 ~ 추암해수욕장 ~ 촛대바위 ~ 추암조각공원 ~ 추암역.

 

나는 매년 여름 휴가가 늦다. 올해도 변함없다. 원래 계획은 8월 중에 잡았는데 이런저런 예기치 못한 일이 연속으로 발생해 올해도 여지없이 늦가을 되어서야 휴가를 가게 되었다.


늦은 휴가이나마 제주로 날아가 남아 있는 올레길 마무리하면 딱 맞겠다 싶었는데, 그마저도 마눌이 일정이 있다 하여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결국, 나혼자 부산에서 1박 2일간 해파랑길 걷는 것으로 휴가를 시작해야 했다. 기장에서 온산과 온양 거쳐 울산으로 들어가는 5코스와 6코스를 중간에 야영하며 걸었는데, 가을 빛 가득한 해파랑길에서 혼자 몸이지만 나름 재미있게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귀경하여 하루 휴식하고 뒷날 마눌과 함께 동해로 넘어갔다. 아무리 여러 일정 때문에 일이 꼬였지만, 그래도 명색이 여름휴가인데 동해 바닷물 정도는 봐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목표는 동해 어느 바닷가에 헝겊집 한 채 올리고 파도소리 들으며 하룻밤 보내는 것으로 했다. 연곡, 고성 등 여러 바다를 생각하다가 이왕 야영하는 김에 해파랑길 한 구간 걷는 것도 좋겠다 싶어 지난 번 한 구간 걸어 둔 삼척으로 야영지를 낙점했다.



해파랑길 32코스

 

바닷길과 오십천 강변길이 마음을 부드럽게 다독여주는 코스다. 덕산해변에서 추암해변까지 조용하고 평화롭게 걷는다. 곳곳에 푸른 바다가 열리는 장소가 있어 쉬엄쉬엄 풍경을 즐기며 걸을 수 있다..


교통편

- 32코스시작점: 덕산해변입구
- 삼척종합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 23번 이용.

   덕산교회주차장 하차 후 도보(약350m)
택시
- 삼척콜택시 033-575-6400 / 동양택시콜 033-573-9858
- 동해콜 033-521-0000 / 뉴동해콜택시 033-535-8000- 4코스시작점: 덕하역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해파랑길 32코스 덕산해변~추암해변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2017년 가을 우리는 두타산 야영을 위해 댓재를 찾았다. 댓재에서 백두대간 길을 따라 두타산으로 오르고 그곳 산정에서 하룻밤 야영하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뒷날 무릉계곡 쪽으로 하산하면 두타의 능선과 속살을 모두 볼 수 있으리라 했다.


그러나 당일 댓재에는 예보에 없던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어 산행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삼척으로 내려가 예정에 없던 해파랑길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정말 느닷없는 해파랑길의 시작이었다. 해파랑길은 언젠가는 걸어야 할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는 해도 당분간은 계획에 없던 길이다.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해파랑길의 첫출발이었는데, 궁촌과 덕산해변을 잇는 31코스였고 덕산해변의 덕봉대교에서 시작하였다. 이제 다시 삼척구간을 잇고자 해를 넘겨 찾았으니 역시나 출발지는 덕봉대교이다. 




# 덕봉대교 아래를 흐르는 마읍천 물빛이 아주 푸르다. 마읍천(麻邑川)은 삼척 사금산의 문의재에서 발원하여 덕산해변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 덕봉대교 쓰다듬어 출발을 알리고 해파랑길 32코스를 시작했다. 곧 덕산해변에 도착한다. 덕봉산이 동쪽으로 바다에 접한 채 우뚝하다. 저 산은 뜬금없이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홀로 우뚝 솟았다. 높이 53.9m에 불과하지만 해발고도 제로의 바다곁에 있어 존재감이 남다르다. 멀리서 보면 어느 옛 왕조의 왕릉 같은 느낌을 준다.




# 덕봉산 앞 해변에 기계소리 요란하다. 가만히 보니 오염된 그물을 터는 중이다. 트랙터에 회전 먼지털이를 달아 세차게 돌려 어망에 묻은 찌꺼기를 청소한다. 아이디어 좋다.




# 덕봉산은 덕산해수욕장과 맹방해수욕장을 경계 짓는다.




# 맹방의 물빛은 짙은 코발트 색이다. 난바다로부터 찬바람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





# 맹방은 상맹방과 하맹방으로 나뉜다. 이 둘과 덕산을 합쳐 근덕해수욕장이라 통칭한다. 근덕면 소재의 해수욕장들이라 그렇다. 맹방은 '매향맹방정(埋香孟芳汀)'이란 표현에서 유래했다. 고려 충선왕 원년에 매향 의식으로 향나무를 근덕 일대의 바다에 묻었다. 매향 의식이란 향나무를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에 묻었다가 300년 후에 꺼내 천하 일품의 향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삼척 근덕 일대도 매향을 한 매향방(埋香坊)이었다. 맹방은 거기에 유래했다. 저 모래사장 아래에 천 년 이상 된 향나무가 묻혀 있을 수도 있다.




# 고요하던 맹방 해안이 떠들썩하다. 관광버스 한 대가 들어오더니 한 무리의 관광객을 부려놓았다.





# 그들의 유쾌한 웃음소리 뒤로 하고 맹방을 떠났다. 차편으로 먼저온 마눌 덕분에 뒷모습 사진 하나 남긴다.




# 지금 맹방 해변에는 강한 바닷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그 바람에 해수욕장의 모래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른다.





# 난바다를 건너온 파도가 해수욕장의 모래를 파먹고 있다.




# 하얀 포말이 해안 가득하다. 우르릉 쾅쾅 파도소리도 요란하다.




# 연봉교 통과.




# 바람 차갑고 파도 거친 해수욕장 끝에 자리잡은 강태공이 낚싯대 끝을 응시하고 있다. 해수욕장에서 원투 낚시로 멀리 던지는 낚시 방법이다. 이렇게 파도가 높으면 보리멸이 잘 나온다.




# 예전에 못 보았던 리조트가 상하맹방 중간에 있다. 새로 생긴 것인가 보다. 저곳에 숙박하면 파도소리는 원없이 듣겠다.




# 해수욕장 가에는 해국이 만발하였다. 해국은 바닷바람에 적응하여 키를 최대한 낮췄다.




# 거친 바닷바람을 뜷고 상맹방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덕봉대교에서 3.5km쯤 걸었다. 해파랑길은 이곳 상맹방에서 좌측으로 꺾어 해변을 떠난다.




# 이정표가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 상맹방리 마을을 지나 삼척으로 올라가는 삼척로에 합류했다.




# 마을 앞 넓은 밭에 푸른 채소가 올라오고 있다. 자세히 보니 유채밭이다. 나중에 자료를 보니 이곳에 유채밭을 만들어 유채꽃축제를 하는 모양이다.




# 삼척로를 따라 올라가면 곧 삼거리를 만난다.




# 우측 길로 계속 가면 몇 개 마을을 지나 길은 해변에서 끝나게 되고 해파랑길은 좌측 길로 가야 한다.




# 삼척로가 계속 이 길로 이어진다. 긴 오르막이 위쪽으로 향하고 있다. 동해안 자전거 길도 이 길과 함께 한다. 간혹 잔차족이 신나는 내리막 라이딩을 즐기며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 고갯길이 '한재'이다. 한재는 '큰 고개'라는 뜻이다. 해안을 따라 삼척으로 넘어가는 옛고개이다.




# 7번 국도인 동해대로는 우측 아래 고가도로를 통해 터널로 이어진다.




# 오르막은 점점 가팔라진다. 길가 우측에 한재소공원이 있다.




#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 한재 인증센터가 있다.




# 한재인증센터 직전에 우측으로 조망이 열렸다. 지나온 맹방의 해변이 그곳에 있다.




# 땀이 등판에 고일 즈음에 한재에 도착했다. 빨간 인증센터가 입구에 있다. 나중에 자전거 길 종주 때 인증도장 찍어야 할 곳이다.




# 길이 우측으로 휘는 곳에 있어서 조망이 아주 훌륭하다. 북쪽으로 삼척항이 건너다보인다.





# 남쪽으로는 맹방해변.




# 찬바람 강렬하다. 야간에 매복근무 서야 할 군인들이 걱정된다.




# 한재를 떠나 삼척으로 향했다.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찬바람 아주 강하다.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배낭에서 비상 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 바닷가 펜션 앞 도로가에 매단 깃발이 강한 바람에 찢어질 듯 펄럭이고 있다.




# 경사가 급해지는 내리막에 갈림길이 있다. 원 해파랑길은 우측 산길로 가서 마을 앞쪽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공사 중이라 막혀 있고 좌측 도로따라 가라고 안내문이 적혀 있다.




# 오분교차로에서 우측 마을로 내려간다.




# 자전거용 데크가 마을 뒤로 내려간다.




# 그러다 마을 정자 앞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가라 한다.




# 오분동 마을 안을 구불구불 돌다가 오십천이 삼척항구와 만나는 하구 쪽으로 내려가서 그곳에 있는 하수처리장 우측을 돌아 가게 되어 있다.




# 이정표 시키는 대로 오십천 강둑을 걷게 되어 있다. 해파랑길은 오십천을 따라 길게 서북진하였다가 죽서루 앞에서 오십천을 건너고 다시 강둑을 따라 동진하여 이곳 건너편으로 와야 한다.




# 시멘트 공장의 긴 파이프라인이 오십천을 건너고 있다. 건너편 산은 봉황산이다.




# 시각이 오래 되어 노을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림자 길어진 강둑을 따라 길게 진행했다. 벚꽃 필 때 이곳을 지나면 제법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겠다.




# 삼척교 아래를 통과.




# 오십천 물빛이 푸르다. 오십천(五十川)은 태백의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이곳 삼척에서 동해와 합일하는 48.8km의 강이다. 백병산은 낙동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십몇 년 전 낙동정맥 종주할 때 홀로 올랐던 산이다. 오십천이라는이름은 이 강을 따라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갈 때 물을 오십 번 정도 건너야 해서 유래한 이름이다. 백병산에서 출발한 강은 통리와 도계, 그리고 미로를 거쳐 삼척으로 흘러내린다. 오십천과 함께 하는 강원도의 지명들이 귀에 익다.




# 강을 가로질러 그물을 설치하였다. 오십천을 찾아 회귀하는 연어를 포획하기 위한 시설이다. 강둑에 저 시설을 관리하기 위한 막사가 있고 관리인도 있다.




# 삼척선 철길 아래를  지나고 오십천교도 지났다. 환경사업소에서 강둑을 2.5km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강둑이 끝나고 야산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




# 강변 절벽지대라 저 야산을 넘어야 하는 곳이다.




# 데크길을 따라 야산을 올랐다. 지친 몸이라 계단이 부담스러웠다. 야산 절벽 위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 아래는 낭떠러지이다. 시간 넉넉하면 오래 쉬었다 갔으면 할만한 곳이다.




# 야산 절벽지대를 넘어 아래로 내려가면 삼척문화예술회관이 나온다. 그곳에서 무슨 박람회 같은 축제를 하고 있다. 몽골텐트 수십 개가 설치되어 있고 오케스트라 공연이 한창이다. 그런데 홍보가 잘 되지 못했는지 외부 관광객은 없고 연주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관람 중이다. 함께 박수 쳐 주고 싶었지만, 역시 시각이 늦어 동참하지 못했다. 




# 죽서교 위에 섰다. 오십천이 크게 휘어지는 절벽 위에 죽서루가 있다.




# 죽서루(竹西樓)는 관동팔경 중 하나로 고려시대 때부터 있던 것으로 알려진 유서 깊은 보물이다. 해파랑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기는 해도 가까워 들렀다 가야 하는 곳이지만, 오늘은 그냥 패스했다. 나중에 따로 시간 여유를 가지고 둘러볼 생각이다.




# 해가 완전히 넘어갔다. 예술회관의 음악소리는 아직 요란하다.




# 좀 전에 지났던 절벽 길이 건너다보인다. 삼척시민들은 좋은 산책로를 가졌다.




# 오십천 북쪽 강변을 따라 다시 삼척항구 쪽으로 내려갔다. 강둑을 따르다가 잠시 후 둔치공원으로 내려갔다.




# 이곳에는 장미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오뉴월에 피었어야 할 장미가 단풍 드는 이 가을에 피어 있다.




# 둔치를 길게 걸어 삼척교까지 내려 갔다. 건너편에 삼표시멘트공장이 보인다.




# 삼척교 사거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일단 해파랑길을 멈추었다. 미리 자동차편으로 와 있던 마눌과 합류했다.




# 이후 삼척 새천년도로 해변에 있는 우리 비밀아지트로 이동하였다. 저곳은 작년에 우리가 해파랑길에 첫 입문할 때 발견했던 장소이다. 도로와 바다에 접해 있지만, 소나무숲에 가려 사람들에게도 파도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곳이다.




# 저녁 식사 후 바닷가 전망대로 나가봤다. 보름달이 휘황하였다. 월주(月柱)가 바다 위에 길게 기둥이 되어 있다.




# 파도 높은 날이다. 장노출로 찍었더니 파도의 포말이 흰눈처럼 보인다.




# 달빛이 좋아 오래 전망대를 소요하였다.




# 편안하게 잘 쉬었다. 그 어떤 방해도 없이 고요하였다. 작년에 왔을 때는 해무가 짙게 끼어 눅눅하였는데 간밤에는 해무도 없고 모든 조건이 최상이었다.




# 새아침을 맞아 전망대로 다시 나갔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였다.




# 새천년도로와 멀리 묵호항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 편안하게 잘 쉬고 자리를 정리했다. 이곳은 우리 취향에 딱 맞는 곳이라 다시 몇 차례 더 올 것 같은 예감이다.




# 어제 저녁에 멈췄던 삼척교사거리로 복귀했다. 오늘은 마눌도 동행하기로 했다.




# 레미콘 공장과 자동차 정비공장의 담벼락을 따라 삼척항으로 향했다.




# 동해대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정라삼거리가 나온다. 이곳 정라삼거리 바로 우측에 육향산이 있다. 원래는 섬이었던 산이다. 육향산 정상에 척주동해비가 있다. 척주동해비는 애초에 육향산에서 조금 떨어진 정라도(汀羅島)에 세웠으나 해일에 소실되고 다시 비문을 받아와 육향산에 옮겨 세웠다. 우리는 갈 길 바빠 멀리서 산을 바라보기만 했다.




# 조금 더 가면 정라파출소가 있는 식당가에 도착한다. 예전 정라진(汀羅津)이 있던 곳이다. 허목이 쓴 척주지에 기록이 남아 있다. "其東麓臨大海爲汀羅津三陟鎭在此前洋小島有東海碑在府東九里(광진산 동쪽 기슭은 큰 바다에 닿아 있고 정라진이라 한다. 삼척포진영이 이곳에 있고 그 앞 바다에는 조그마한 섬이 있으며 이 섬에 척주동해비가 있다. 삼척부의 동쪽으로 9리 거리다)"  




# 삼척항 바닷물 위에 하늘이 내려 앉았다.




#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은 밤새 조업한 어획물을 하역하고 있다.




# 항구 뒤 비탈진 절벽 위에 오래된 마을이 있다. 바다를 보고 있으니 조망은 좋을 것이나 많이 위태로워 보인다.





# 수협 담벼락을 끼고 좌측길을 따른다.




# 건어물 가게 옆 골목을 통해 산으로 올라가라 한다.




#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사이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 이 길은 '정라안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해파랑길이 이 정라안길을 통해 이어지면서 골목을 단장했다.




# 잠시 항구를 뒤돌아 본다.




# 이 가파른 산비탈에도 오래 된 마을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 운전 솜씨 시원찮은 사람은 엄두도 못낼 지형이다.




# 동네 마을 길이 완전히 산행코스이다. 숨을 헐떡이며 길게 동네 안길을 올라갔다.




# 이 동네 사람들은 특별한 운동 없이도 건강하시겠다.




# 언덕 꼭대기에 작은 운동시설과 정자가 있다. 좀 쉬었으면 했지만, 찬바람 강하게 불고 있어 오래 머물 수가 없다.




# 해파랑길은 우측 저 산을 넘어야 한다.




# 바닷가 새천년 도로에 있는 호텔 건물이 건너다보인다. 저 호텔에 숙박하면 바다구경은 실컷 하겠다.




# 높지는 않지만 저 산을 넘어야 한다.




# 저멀리 백두대간의 장쾌한 흐름이 보인다. 중간에 우뚝한 저 산은 두타산이다.




# 산 마루금을 따라 이어진 길을 길게 진행한다. 찬바람 아주 강하게 부는 곳이다. 이 동네는 늘 이런 바람에 노출되어 있는 곳이다. 바람 불어 오는 곳에 시멘트 공장이 있다. 여러가지로 살림살이가 팍팍해 보이는 동네다.




# 산 뒷쪽은 바람이 막혀 걷기가 한결 낫다.




# 광진봉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 멀리 우측 너머로 백두대간의 흐름이 장쾌하다.




# 이 동네 어르신들 산책 코스로 적당해 보이는 길이다. 




# 사거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삼척온천이 나온다. 직진하면 광진봉수대가 있는 광진산이다.




# 구절초 곳곳에 피어 있는 산길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 통신시설을 통과하여 계속 위로 진행했다.




# 동해 방향으로 조망이 열린 전망대가 있다.





# 이 산책코스는 산길을 걸으며 바다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이 고장 사람들에게 인기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 소나무 우거진 숲길을 따라 한가롭게 진행한다.




# 그 끝에 광진산 봉수대가 있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을 봉수대는 세월 흘러 무너져버리고 흔적만 남았다. 이 광진산 봉수대는 동해 어달봉수대 및 근덕 양야산봉수대와 연결된 봉수였다.





# 봉수대 너머는 곧바로 하산길이다. 잠시 내려가면 구름다리가 있는 고갯길이 나온다.




# 이 고개는광진산 중간을 가로질러 삼척 교동과 해안가 새천년도로를 잇고 있다. 도로 이름은 광진로이다.




# 저 구름다리 건너 산길로 가도 후진항으로 연결되겠다.




# 광진로 고갯길을 따라 길게 내려갔다.




# 가파른 산골짜기에 파묻혀 있는 광진마을이 나온다. 햇빛 구경하기 어렵게 생긴 마을이다. 어제 저녁에 자동차 편으로 이 고개를 넘었는데 강원도 산골짜기 어느 깊은 고개를 넘는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 곧 새천년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 이제부터는 바닷길의 연속이다.




# 이름없는 광진마을 앞 포구. 어제 오늘 낚시하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포인트인 듯하다.




# 파도소리 들으며 북상하였다.





# 삼척 인근에 올 때면 늘 우리 아지트가 되어 주는 비치조각공원이 보인다.




# 조각 작품 대여섯 개가 전부인 곳이지만, 우리는 작품 보다는 숨은 우리 아지트 때문에 정이 깊은 곳이다.





# 이곳은 조각공원이라는 거창한 이름 때문에 이 근처에 놀러온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차를 세우고 둘러보는 곳이다.




# 이후는 나무데크길이 후진까지 길게 이어진다. 산책로로 최상의 곳이다.




# 이 길은 경치가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 산책 코스로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곳이다.





# 두꺼비 바위에서 낚시하는 이를 한참 구경하였다. 조과는 그다지 좋지 못한 모양이다.




# 좋은 경치 마음껏 감상하며 천천히 걸었다. 이 길은 이미 두어 차례 걸은 곳이지만 다시 보아도 좋다.




# 곳곳에 낚시꾼들이 포진하고 있다. 나도 오랜 예전 저들처럼 동해안 갯바위 여러 곳을 누비던 시절이 있었다.




# 후진항을 지난다. 삼척시 교동의 자그마한 어항이다.




# 후진항 바로 곁에 '작은 후진해변'이 있다. 누군가 커다란 쉘터 한 동을 설영하고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다.




# 해변 끝나는 곳에 해신당이 있다.




# 곧 삼척해수욕장이 나온다. 저멀리 동해항이 보인다.




# 바람에 밀린 파도가 해변을 향해 갈기 휘날리는 말처럼 내달리고 있다.




# 삼척시에는 이곳에 이사부길을 조성했다.




# 삼척해수욕장을 통과하여 솔비치 리조트를 향해 언덕을 오른다.




# 이곳에 솔비치 리조트가 생기면서 삼척해변은 상전벽해를 이루었다. 원래 이곳은 한적한 바닷가 야산이었다. 우리가 삼척 일대 해변에서 여름을 나던 이삼십년 전에는 산을 넘어야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최고급 리조트가 자리잡았다. 솔비치는 인기 만점의 리조트이다. 회원권이 있어도 객실 잡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모양이다.




# 솔비치 좌측 언덕을 통해 증산으로 내려간다.




# 이곳 증산은 산의 모양이 떡시루를 닮아 '시루 증(甑)'자를 쓰는 동네이다. 우리는 이곳 증산과 오랜 인연이 있다. 구십 년대 초반 단골 비디오 가게 주인이 자기 처가 마을이라고 소개해 준 곳이 증산이었다. 찾는 사람 없는 한적한 곳이라 야영하면서 여름휴가 보내기 최고였던 곳이다. 처음 증산을 찾았을 때 놀라웠던 것은 좁은 산길을 따라 산을 하나 넘어야 해수욕장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고 조용한 곳이었다. 인심도 아주 좋아 마을사람들이 고향 찾은 동향 사람 대하듯 친절하였다. 


이후 십여 년 동안 매해 여름휴가 때면 증산에서 야영과 낚시를 즐기곤 했다. 그런데 아무리 한적한 곳이라도 세월 흐르자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사람들따라 돈도 흘러들자 인심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웃사람처럼 친절했던 주민들은 점점 장사꾼이 되어갔고 동해안 여느 관광지처럼 바가지 요금과 소란스러움이 일상이 되었다.


그 모습 보기 싫어 발길 끊었는데 작년에 해파랑길하면서 십여 년 만에 다시 찾았더니 상전벽해로 바닷가 풍광이 변해있었다. 솔비치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였는데 너무나 큰 변화라 옛 기억과 일치하는 곳은 채 십 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 손바닥만한 해변과 산 아래 작은 동네가 전부였는데 지금은 거대한 리조트와 공원을 좌우로 거느린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 솔비치 리조트.




# TV 방송 시작과 마지막에 나오는 애국가 배경화면에 꼭 등장하는 추암해변이 이곳 증산해변과 붙어 있다.




# 90년대 초반 내 모습이 딱 저랬다. 잔잔한 날은 황어나 보리멸이 나오고 파도 높은 날은 가자미가 잘 나왔다. 해수욕장에서 강한 낚싯대로 멀리 던지는 저런 낚시를 원투낚시라 한다.




# 오랜 추억의 증산 해변을 지나 이사부공원으로 향한다. 저곳 야산 아래 모래밭이 내 오랜 야영장소이다. 작은 시냇물이 있어 몸에 뭍은 짠물을 씻어낼 수 있는 곳이다.




# 이사부공원 앞 데크길을 따라 진행한다.




# 추암의 옆모습 조망지로 최고의 장소이다.




# 인증소가 있다.





# 추암해변. 저곳도 엄청나게 변하였다. 촛대바위와 해수욕장의 모래를 제외하고는 죄 옛 모습과는 딴판이다.




# 예전 증산에서 야영할 때 매일 아침이면 해변을 걸어서 촛대바위까지 왕복하곤 했었다.




# 추암해변을 지나 촛대바위 조망지에 도착. 촛대바위 곁에 있는 저 바위를 형제바위라 했던 것 같다.




# 촛대처럼 우뚝 솟은 촛대바위. 추암은 한자로는 '湫岩'으로 적는다. '송곳 錐'를 쓰지 않고 '다할 湫'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 기록을 보니 원래 이곳은 용추(龍湫)라 부르던 곳을 세조 때 한명회가 훌륭한 경치에 반해 능파대(凌波臺)라 명명하였다 전해진다. 촛대바위 뿐 아니라 이곳 해안 전부를 능파대라 불렀던 것이다. 촛대바위는 원래 두 개였는데 숙종 7년인 1861년에 지진이 나서 바위 하나의 중간 부분이 부러져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 전망대 우측 바위에 능파대란 글씨가 남아 있다.





# 독특한 해변이다.




# 오랜 세월 파도에 씻긴 해변의 바위들이 무른 부분은 죄 닳아 없어지고 단단한 심지만 남았다. 그 모습이 뭇 짐승이 바다로 나가는 듯한 형상이다.




# 추암조각공원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작은 누각 한 채가 있다. 현판에 '해암정(海巖亭)'이라 적혀 있다.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 삼척 심씨(三陟 沈氏)의 시조인 심동로(沈東老)란 이가 낙향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작고 소박하다.




# '유한기유생(有韓己酉生)'이라 적힌 비석이 한쪽에 서 있다. 자료를 보니 기유년인 1909년에 태어난 이들이 동갑계(同甲契)를 만든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국망(國亡)의 시기에 태어난 분들이라 비문의 내용이 비분강개한 내용도 있고 모임의 의의를 설파한 내용도 있고 그렇다.




# 해파랑길은 조각공원으로 올라 가라 한다.





#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곳이다. 볼 것 별로 없어 한바퀴 휭 둘러보고 다시 내려 갔다.




# 이후 추암역에서 해파랑길 32코스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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