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해파랑길]6코스/덕하역~태화강전망대-산(山)파랑길/울산 지경(地境) 진입!! 본문

길이야기/해파랑길

[해파랑길]6코스/덕하역~태화강전망대-산(山)파랑길/울산 지경(地境) 진입!!

강/사/랑 2018. 11. 2. 10:04
 [해파랑길]6코스/덕하역~태화강전망대


   

居道 失其族姓 不知何所人也 仕脫解尼師今爲干 時于尸山國 居柒山國 介居隣境 頗爲國患 居道爲邊官 潛懷幷呑之志 每年一度 集群馬於張吐之野 使兵士騎之 馳走以爲戱樂 時人稱爲馬技 兩國人習見之 以爲新羅常事 不以爲怪 於是起兵馬 擊其不意 以滅二國(거도 실기족성 불지하소인야 사탈해니사금위간 시우시산국 거칠산국 개거린경 파위국환 거도위변관 잠회병탄지지 매년일도 집군마어장토지야 사병사기지 치주이위희악 시인칭위마기 양국인 습견지 이위신라상사 부이위괴 어시기병마 격기부의 이멸이국)


거도(居道)는 그의 가계와 성씨가 전하지 않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탈해 이사금 때에 벼슬하여 간(干)이 되었다. 그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국경의 이웃에 끼어 있어서 자못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는데, 거도가 변경의 지방관이 되어 그곳을 병합할 생각을 품었다. 매년 한 번씩 여러 말들을 장토(張吐) 들판에 모아놓고 군사들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리면서 유희 놀이를 하게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 놀이를 ‘마기(馬技)’라 불렀다. 두 나라 사람들이 자주 보아 왔으므로 신라의 평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여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다. 이에 병마를 출동하여 불의에 쳐들어가 두 나라를 멸하였다.


이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나오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의 병합에 대한 내용이다. 신라의 지방관인 '거도(居道)'가 마기(馬技)라는 말달리기 놀이를 통한 허허실실(虛虛實實)로 소국들을 안심하게 속였다가 갑자기 침공하여 제압하였다는 기록이다.


이때 거도의 작전에 말려 멸망한 우시산국(于尸山國)은 삼한(三韓) 시대 울주의 웅촌과 웅남면에 있었다 추정되는 고대의 부족 집단이다. 이 소국(小國)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울산설과 영해설로 이견(異見)이 엇갈리지만, 대체로 지금의 울산인 울주지역으로 인정하는 모양이다.


그것은 지금의 울산(蔚山)이라는 지명이 우시산국에서 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우시산국(于尸山國)의 '시(尸)'는 이두(吏讀)에서 'ㄹ'로 표기된다고 한다. '道尸'가 '길'로 읽어질 때도 같은 경우이다. 결국, '우시(于尸)'가 '울'이 된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다른 기록도 있다. "婆娑王時 取屈阿火村置縣 景德王改名 今蔚州 (파사왕시 취굴아화촌치현 경덕왕개명 금울주 ; 파사왕 때 굴아화촌을 빼앗아 현을 설치한 곳인데, 경덕왕이 임관군으로 개칭하였다. 지금의 울주이다)"


파사왕(婆娑王) 때 굴아화촌(屈阿火村)을 합병하였는데, 지금의 울주라는 것이다. 굴아화촌은 우시산국에 속해 있던 읍락(邑落)이었다. 탈해왕 때 미처 합병하지 못한 우시산국 중 일부를 파사왕이 마무리 한 듯싶다.


울산(蔚山)의 옛 지명인 '울주(蔚州)'는 고려사(高麗史)에 등장한다. 그리고 울산의 등장은 조선 태종조(太宗朝)의 일이다. 고려사의 내용은 동일하게 반복되므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蔚山郡 本屈阿火村 新羅 婆娑王置縣 景德王改名河曲 爲臨關郡領縣 高麗改爲蔚州郡 顯宗戊午 置防禦使 本朝太祖六年丁丑 始置鎭 以兵馬使 兼知州事 太宗十三年癸巳 罷鎭 改爲知蔚山郡事 乙未 移左道兵馬都節制使營于郡北巨麿谷 今上八年丙午 罷營 復置鎭 以兵馬僉節制使 兼知郡事 別號恭化鶴城(울산군 본굴화촌 신라 파사왕치현 경덕왕개명하곡 위림관군령현 고려개위울주군 현종무오 치방어사 본조태조륙년정축 시치진 이병마사 겸지주사 태종십삼년계사 파진 개위지울산군사 을미 이좌도병마도절제사영우군북거마곡 금상팔년병오 파영 복치진 이병마첨절제사 겸지군사 별호공화학성)


울산군은 본디 굴아화촌(屈阿火村)인데, 신라 파사왕(婆娑王)이 현(縣)을 설치하였고, 경덕왕이 이름을 하곡(河曲)으로 고치고 임관군(臨關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에서 울주군(蔚州郡)으로 고쳐, 현종(顯宗) 무오년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고, 본조 태조 6년 정축에 비로소 진(鎭)을 설치하고 병마사(兵馬使)로써 지주사(知州事)를 겸하게 하였는데, 태종 13년 계사에 진(鎭)을 폐지하고 지울산군사(知蔚山郡事)로 고치고, 을미년에 좌도 병마 도절제사 영(左道兵馬都節制使營)을 군(郡) 북쪽 거마곡(巨麿谷)으로 옮겼다가, 금상(今上) 8년 병오에 영(營)을 폐지하고 다시 진(鎭)을 두어 병마 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로써 지군사(知郡事)를 겸하게 하였다. 별호(別號)는 공화(恭化), 또는 학성(鶴城)이다.


역사는 기존 기록의 전승과 새로운 기록의 추가로 이어진다. 실록(實錄)의 지리지에서는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내용에 조선조의 변화를 추가하여 울산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굴아화촌을 파사왕이 합병하여 경덕왕이 하곡으로 고쳐부르다 고려 초에 울주가 되었는데, 조선 태종 13년에 울산으로 다시 변경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이 지방을 이렇게 평가한다. '厥土肥風氣暖(궐토비풍기난)'. 궐(厥)은 '그'나 '그것'을 가리키는 지시대명사이다. '그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따듯하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온갖 산물(産物)이 풍부하게 나는 고장이라 적고 있다.


역사 오랜 고장이다. 산으로 병풍을 둘러 북풍과 외적을 막고 앞으로 푸른 바다를 열어 타국과 교역하였다. 비옥하고 너른 들을 갖춰 식량 풍부하며 그 들판을 가로지르는 강을 갖췄으니 고대의 부족국가 하나쯤은 거뜬히 건사할 만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좋은 조건은 좋은 역사로 이어졌다. 이 땅에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이 고장도 함께 기록에 남게 되고 그 역사의 변천에 능동적으로 합류하여 지금도 물산이 풍부하고 외부로 열려 있다.


우리나라는 적극적인 중화학공업의 육성과 수출 지향적 산업구조를 통해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뤄냈다. 울산은 그 산업화 과정의 선도자였다. 1962년 울산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후 울산공업센터가 설립되고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현대그룹의 주요 기업은 물론 SK이노베이션, LG화학, 효성 등 국내 최고 기업의 공장이 가동되어 명실공히 국내 대표 중화학공업도시가 되었다.


나는 울산시와 인연이 그다지 깊지 못하다. 첫 만남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 때문이다. 아주 작고 아담한 체구의 미혼 여성인 선생님은 교대 졸업 후 첫 부임지가 울산이었는데, 몇 년 근무 후 바로 우리 학교로 전근 오셨다. 작은 시골학교이고 학생 수가 80명이나 되어 정신없었지만, 공기가 좋아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건강이 좋아진 점이 아주 좋다고 늘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 당시는 울산의 공업화 초기라 공해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때 방어진으로 수련회 갔던 기억과 군 제대 후 울산 현대에 취업해 있던 친구 만나러 가서 며칠 놀러다녔던 것이 울산과의 스치 듯한 인연이다. 그때도 방어진을 갔던 것 같다.


본격적인 인연은 졸업 후 첫 직장 때 일이다. 마산 지사에 근무할 때 거래처가 울산에 있어 한 달에 두어 차례 울산 출장을 가곤 했다. 그때는 볼링에 미쳐있어서 거래처 볼 일 마치면 태화강 가에 있는 볼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 기억하기로 울산은 도시가 오래되어 건물이 낡고 도로가 아주 좁고 일방통행이 많아 잘못 들어가면 낭패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볼링치고 태화강 가로 나오면 오염된 강물에서 악취가 많이 나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산책 좀 하려고 했다가 금세 마음을 돌려 숙소로 가거나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야 했다. 80년대 후반의 일이니 위생이나 환경 같은 선진적 행정은 무시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리고 울산과는 삼십여 년 인연이 없었다. 낙동정맥 종주하면서 교통 연결 때문에 밤중에 고속버스 터미널을 두어 번 스쳐 지나간 것이 전부다. 밤중에 스쳐 지났으니 울산의 변모를 볼 기회조차 없었다. 


이제 수십 년 세월 흘러 나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고 울산은 우리나라 GDP 1위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항산(恒産)이어야 항심(恒心)이 생기는 법이다. 경제적 풍요 이룩하니 시민의 삶의 질이 자연스레 좋아진다. 그동안 울산은 공업 도시의 공해나 오염 같은 어두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환경이나 복지 등에서 획기적 성장을 이루었다.


나는 올해 들어 갑자기 일시적 부산시민이 되었다. 부산시민이 되었으니 부산에서 출발하는 해파랑길을 걷고자 했다. 그 발걸음이 조금씩 누적되다 보니 어느덧 울산 지경(地境)에 들어서게 되었다.


나는 울산과는 오랜 세월 교류가 없었다. 내 기억 속의 울산은 좁고 번잡하고 냄새나는 곳이었다. 세월 많이 흘렀다. 삶의 질 좋아진 울산은 획기적 변화를 이뤘다 한다.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 변화가 기대된다. 

 

 


산(山)파랑길/울산 지경(地境) 진입!!


구간 : 해파랑길 6코스(덕하역~태화강전망대)
거리 : 구간거리(15.6km), 누적거리(116.2km)
일시 : 2018년  10월 25일. 나무의 날.
세부내용 : 덕하역 ~ 두왕사거리 ~ SK합성수지앞 거리공원 ~ 함월산 ~ 도로공사 현장 ~ 선암호수공원 ~ 끝바우고개 ~ 솔마루길 ~ 신선산 ~ 울산해양경찰서 ~ 활고개 육교 ~ 화리고개길 ~ 대공원전망대 ~ 울산대공원 고개 ~ 문수로 하늘길 ~ 솔마루전망대 ~ 삼호산 ~ 솔마루정 ~ 고래전망대 ~ 남산로 ~ 태화강전망대

  

간밤에 온산읍 체육공원의 주차장 가에 있는 정자에서 하룻밤 야영하였다. 고요하였고 달빛 좋았다. 편안하게 잘 쉬었다. 요즘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들은 서울이나 수도권 못지 않은 휴양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곳 온산도 강변 둔치는 물론 체육시설까지 골고루 잘 갖추고 있다.


여러 인프라 풍부하니 지역주민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 체육공원은 간밤에 늦게까지 불 밝히고 운동 즐기는 사람들이 많더니 아침 일찍부터 운동하는 이들이 많다. 좋은 현상이다.


아침 끓여먹고 화장까지 마쳤다. 시민들 이용이 잦은 체육공원이라 화장실도 깨끗하다. 그동안 정자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거나 간섭하는 이가 없었다. 고마운 일이다. 깨끗이 주변 정리하고 체육공원을 떠났다.


 

해파랑길 6코스

 

덕하역을 출발해 선암호수공원과 솔마루길을 지나는 코스다. 솔향 폴폴 풍기는 호젓한 산길에서 호숫가 산책까지 겸할 수 있다. 비교적 산길이 많아 다른 코스보다 조금 힘들지만, 솔숲과 호숫가를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교통편

- 4코스시작점: 덕하역
  울산고속터미널 정류장에서 시내버스 527번 이용. 덕하역앞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약 110m).
- 시내버스:106, 453번 이용.

택시
- 울산택시 052-216-6999 /학성택시 052-261-7874
- 울산코래콜택시 052-700-1000 /언양콜택시 052-254-4545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해파랑길 6코스 덕하역~태화강전망대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온산읍 체육공원의 정자에서 하룻밤 잘 쉬었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고요하였다. 아침 햇살이 내 빨간 텐트를 찾아왔다.




# 체육공원을 떠나 덕하시장으로 찾아갔다. 자동차로 가니 가까운 거리다. 장날이 아니어서 주차장에 여유가 많았다. 노점으로 잡화를 파는 어르신께 주차해도 되는지 주차비는 얼마나 받는지를 여쭸다. "에이~ 주차비는 무슨? 여는 촌인 기라~" 웃음 많은 대답이 돌아온다. 감사합니다.




# 장터에 있는 마트에 들러 간식과 점심 등 필요한 물품을 구한 후 짐 꾸려 출발했다. 오늘 구간은 대부분 산악지역으로 되어있다. 해파랑길이 아니라 산파랑길인 것이다. 때문에 운동화 대신 등산화를 신고 스틱도 챙겼다. 잠시 상가를 따라 걸어 내려가면 덕하역이 나온다.




# 청량리, 순천 등 이곳과 연결되어 열차가 가는 곳이 많다.




# 덕하역 앞 해파랑길 인증소에서 인증한 후 본격적인 6코스 순례를 시작했다.




# 온산로 갓길로 동해안자전거길이 이어지고 해파랑길도 동행한다. 인도는 좁고 가로수가 점령하여 인도로서의 구실을 못하게 되어 있는 곳이다. 자전거 달려온다면 위험할 길이다.




# 주유소를 지나자 두왕사거리가 나온다. 고가도로와 일반도로, 그리고 철길이 모두 이곳에서 교차한다.




# 두왕사거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펜스로 둘러쳐 있다. 잠시 길 찾느라 방황했다. 사거리 우측 뒤에 공원이 있다. 해파랑길은 그 공원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 이 공원은 꽤 규모가 큰데 이름이 없다. 두왕사거리 곁에 있는 공원이니 두왕거리공원이라 불러야겠다.




# 공원을 관통하는 도로를 건너면 본격적인 함월산 오름이 시작된다.




# 잠시 언덕을 오르면 길을 버리고 좌측 사면으로 치고 오르라 한다. 이제부터 해파랑길 6코스는 구간 끝날 때까지 산길로 구성되어 있다. 해파랑길이라기 보다는 산파랑길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처음 덕하의 일부 도로 구간을 제외하고는 전체 구간의 대부분이 산길이기 때문이다.




# 나는 그 산파랑길을 걷기 위해 해파랑길 시작 이후 처음으로 등산바지와 등산화, 그리고 스틱으로 무장하였다.




# 잠시 언덕을 치고오르면 사면에 누군가 밭을 만들어 두었다. 국유지 일테니 저 밭은 아마도 불법이지 싶은데, 저 밭을 만든 사람은 농작물 보호에 병적인 집착을 가진 이다. 고라니나 멧돼지 피해가 많았는지 밭 전체를 서낭당처럼 정신없게 꾸몄다. 특히 여러 종류의 인형을 매달아 두었는데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섬뜩하여 보기에 좋지 않다.




# 꾸준한 오름의 산길이 윗쪽으로 이어진다.




# 산업단지에 전기를 공급하는 대형 송전탑 아래를 지난다.




# 상개마을 갈림길 통과. 산 아래는 남구 하개동과 상개동으로 되어 있다. 원래 이름은 개운리(開雲里)였던 곳이다. 개운포(開雲浦) 근처의 마을이라 그런 이름을 얻었다. 그 개운리가 상개와 하개 등으로 나뉜 것이다. 




# 숲이 벗겨진 곳이 나온다. 하개동 쪽으로 밭이 꾸며져 있다.




# 울산은 고래의 고장이다. 울산 서남부를 휘감는 이 산길 전부의 이정표는 고래 형상을 하고 있다.




# 그러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지만 숨소리는 저절로 거칠어진다.




# 거친 숨소리 내며 올라가니 함월산이 나온다. 준희님의 정상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준희님은 낙동정맥 졸업할 때 다대포에서 뵌게 마지막인 듯싶다. 팔구 년 되었나 보다.




# 함월산(含月山)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달을 머금은 산'이란 뜻이다. 높이 201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해안가에 있는 산이라 고도감은 충분하니 달 구경하기 좋은 산이고 달을 이마에 이고 있을 산이다. 따로는 크게 밝다는 의미의 '한밝'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주장하는 모양이다. 한밝은 태백(太白)의 옛 이름이다. 너무 거창하게 간 듯싶다.


동역도, 여지도서 등 옛 지도에 꾸준히 함월(含月)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신라시대의 사찰인 백양사(白楊寺)를 품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정상 끝에는 산불감시초소와 벤치가 있다.




# 벤치에 앉으면 전방으로 조망이 트였다. 저멀리 희미한 산줄기는 영남알프스의 준령일 것이다.




# 두 개의 큰 산이 나란하다. 울주군청 뒤에 있는 남암산과 문수산이지 싶다.




# 좌측 중앙 멀리 우뚝한 저 산은 낙동정맥의 천성산이지 싶은데 확신은 없다.




# 함월산에서 땀 식히며 한참 동안 쉬었다. 함월 정상을 나와 잠시 진행하면 산길이 좌측으로 꺾이는 곳에 체육시설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 잠시 더 진행하면 숲을 벗어나게 되는데, 갑자기 도로 공사 현장이 나타난다. 지도와 정보에 없던 현장이다. 기계소리 요란하고 차량 통행도 많다. 대형 공작기계들이 움직이는 곳이라 위험하고 정신이 없다. 기계들 사이로 뛰어 지났다.




# 곧바로 절개지를 넘어 건너편 산으로 올라 갔다. 터널이 포함된 신설 도로를 만드는 모양이다. 현장에서 만난 공사 감독의 말로는 산길을 잇는 고가도로를 만들 예정이란다. 다음에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고가를 통해 이 도로를 건널 수 있겠다.




# 등산객을 막는 차단줄을 넘어 건너편 숲으로 들어갔다.




# 도시 외곽의 산길이라 운동시설이 자주 나타난다.




# 잠시 후 산길을 벗어나 선암호수공원에 내려선다.




# 선암호수공원은 선암댐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일제시대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선암제(仙岩堤)라는 저수지를 만든 게 시초였던 곳이다. 이후 공단에 비상공업용수 공급이 늘어나면서 댐으로 확장 개발한 것을 나중에 시민들의 휴양과 건강을 위한 생태호수공원으로 만들었다 한다.




# 광장 건너편 산 아래에 데크길이 있다.




# 그 데크 따라 호수 건너편으로 간다.




# 잘 가꿔진 호수공원이기는 한데 맑고 푸른 물은 아니다. 유입되는 오염원이 있든지 아니면 퇴적물이 많든지 한 모양이다.





# 호수 중앙의 볼록한 야산을 한 바퀴 휘감게 되어 있다.





# 넓은 수변공원을 잘 가꿨다. 평일인데도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울산과 오랜 세월 격조(隔阻)하였지만, 울산에 사는 분들과 몇몇 소소한 인연이 있다. 선암고원 걷는 내내 산책 나온 울산시민들과 많이 교차하였다. 혹시나 아는 이를 만나지 않을까 궁금하였다. 기대도 되었다. 그러나 스쳐 지난들 얼굴 알아볼 수 있을까 자신은 없었다. 




# 데크길을 따라 길게 진행했다.




# 늘씬하게 생긴 외래종의 닭 몇 마리가 공원길을 겁 없이 다니고 있다.




# 호수 중앙의 돌출된 섬 형태의 야산 끝나는 곳에 '끝바우고개'가 있다. 그런데 고개 이름과 그 아래 지명 설명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기록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픈 것인지 모르겠다.


울산의 옛자료를 보니 선암호수가 만들어지면서 세 곳의 마을이 수몰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꽃바우(花岩)마을'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면 이곳이 '끝바우'인지 '꽃바우'인지가 또 논란이 되겠다. 끝바우라면 신선암 바위 끝 아래에 있는 마을이란 의미이고 꽃바우라면 바위가 꽃처럼 생겼거나 꽃으로 둘러싸인 바위이든가 그랬을 것이다.




# 산책 나온 이들, 색소폰 연주하는 이들, 그림 그리는 이들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즐기고 있다. 혹시 아는 이 있을까 두어 바퀴 돌아 보았다. 그런데 문득 생각하니 모자 눌러쓰고 버프로 얼굴 가린 나를 스쳐지난들 알아볼리 만무하였다. 실없는 웃음 나왔다.




# 끝바우고개에서 선암호수공원과는 작별이다. 좌측 계단을 따라 산으로 다시 올라간다.




# 108계단이라는데 세어보진 않았다.




# 계단이 끝나고도 꾸준히 오르막이 이어진다.




# 그 오르막 끝이 신선암(神仙岩)이다. 선암호수는 이 신선암에서 유래되었다.




# 신선암에 올라서면 수암동, 대현동, 달동 등 울산 남부 일대가 발 아래로 펼쳐진다. 바로 아래에 있는 신선파크 아파트의 이름표가 인상적이다.




# 신선암 바위에 손 얹어 잠시 교감하였다.




# 그 바위 끝에 정자가 있다. 신선정(神仙亭)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다.




# 정자 위는 바람 좋고 조망도 좋다.




# 이 쪽에서 보니 바깥쪽의 저 아파트들이 인간세와 자연을 구획하는 성벽 같은 느낌이다. 판타지 영화를 보면 저런 성벽 위에서 외적과 전쟁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 성벽으로 지켜야 할 인간의 문명처럼 여겨진다.




# 남암과 문수. 그리고 성벽.




# 좌측으로는 지나온 선암호수공원이 내려다보인다.




# 이쪽 풍경을 보니 울산이 공업단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 정상을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이곳은 울산에서 만든 솔마루길 신선산코스와 동행한다. 소나무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솔마루길은 도심 인근의 소나무 숲길 60리를 이어 만든 산책길이다. 총 길이가 24km인데 공업도시 울산의 허파 역할을 하는 생태통로가 되어 시민들을 자연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잘 만든 산책로이다. 





# 소나무숲 계속 이어진 길이라 솔마루라 불렀는데, 그 이름이 정겹다. 잘 만든 이름이다.




# 길게 솔숲길을 걸어 내려가면 산을 벗어나 울산해양경찰서 뒤로 나오게 된다.




# 해양경찰서 뒤 도로를 따라 언덕을 내려가면 활고개가 나온다.




# 고가도로를 통해 활고개를 건넜다. 그리고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이곳부터 솔마루길 울산대공원산코스가 시작된다.




# 그리고 다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 이정목에 화리고개라고 적어두었다. 하늘에서 화로 같은 불덩이가 떨어진 곳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도에는 활고개가 적혀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도 궁현령(弓峴嶺) 즉, 활고개라 적고 있다. 활을 방언으로 '화리'라 부른다는 기록도 있어 사전을 보니 함경도 지방에서 활을 화리로 부르고 경상도에서는 화로를 화리라 부른다고 되어 있다.


헷갈리는 지명 유래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지 개연성이 존재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고개는 흔히 활처럼 둥글게 휘어있기 마련이다. 활고개라 불러 이상할 것 없는 것이고 또 역시 화로처럼 둥글게 생기기도 하였다. 화로라 불러 또한 어색하지 않다. 잘 모르겠다. 화리도 좋고 화로도 좋다. 문제될 것 없다.




# 솔마루길은 파란 돌고래가 길을 안내한다.




# 산길이 서쪽으로 크게 휘는 곳에 전망대 데크와 정자가 있다.




# 전방 좌측으로 큰 오르내림 없는 마루금이 길게 누워 있다. 오늘 구간은 바다나 강물 대신 저런 산 마루금의 경치와 함께 하는 구간이다.




# 현충탑 고개에 내려섰다. 이 고개 바로 우측 아래에 현충탑이 있다.





# 이 구간은 산마루금의 좌우로 근린휴양시설이 많다. 때문에 중간중간 고개도 많다.




# 작게 오르내리며 1km쯤 가면 아스팔트로 포장된 고개에 도착한다. 울산대공원 고개다.




# 좌측으로 내려가면 테마파크인 울산대공원이 있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각종 운동시설을 갖춘 호수공원이 나온다.




# 큰 오르내림 없어도 산길이 멀다. 미니 구름다리 또 통과.




# 울산대공원 고개에서 다시 1km쯤 산길을 걸어가자 순간 앞이 트이며 거대한 공사 현장이 나타난다. 울산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고속도로는 물론 웅촌까지 연결되는 도로 공사현장인데, 예산이 말랐는지 아니면 공사 계획이 틀어졌는지 중단되어 있다. 현장 분위기로 보아 꽤 오래 방치된 듯하다.




# 공사현장을 지나 잔봉을 두어 개 넘자 갈림길이 나타난다. 해파랑길은 우측길이다.




# 문수로 고가다리 직전에 바람 좋은 벤치가 있다. 피곤하고 배 고파 짐 내리고 쉬었다. 바람 좋아 거풍 한 번 했으면 좋으련만, 간혹 오가는 산책객들과 단체 산행 나온 이들이 있어 땀 식히는 것으로 만족했다.




# 간식 먹으며 오래 쉬었다. 휴식 후 길을 나섰다. 곧 문수로를 가로지르는 고가육교가 나타난다. 이곳부터 솔마루길 대공원코스가 끝나고 삼호산코스가 시작된다. 대공원코스는 한 5~6km쯤 되는 것 같다.




# 이 고가육교는 솔마루 하늘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 하늘길에서의 조망. 울산 서남부 시가지가 발 아래 펼쳐진다. 좌측 아래에 문수월드컵경기장이 있다.




# 육교를 건너 삼호산 오르막에 들어섰다. 이곳의 고래는 노란색이다.




# 긴 계단길이 삼호산 정상을 향하고 있다. 육교에서 함께 온 저 아가씨는 계단길이 제법 힘이 드는 모양이다.




# 삼호산 정상은 넓은 공터로 된 삼거리다. 해파랑길은 우측길이다.




# 국화꽃 만발한 산마루가 나온다. 이곳 우측은 울산공원묘원이다. 지도에서 보니 규모가 굉장하다.




# 이곳의 산길은 울산공원묘원의 외곽을 크게 휘감아 도는 형태이다. 이정표에는 성지골이라 적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섬골 혹은 성골로 부르던 골짜기인데 성지(性智)라는 풍수가가 길지로 지정하여 말뚝을 박아 이후 성지골이라 불렀다고 나온다. 좌측 아래에 섬골저수지가 있다.




# 와와삼거리 통과.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곳이다. 아랫마을 와와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자료에는 '와와리(瓦臥里)'라는 이름은 신라 때부터 기와를 구웠던 기와굴터가 있었던 곳이라 그렇게 불렀다 전한다. 나는 이곳에 문수월드컵경기장을 만들면서 축구 응원하는 "와와" 환호 소리를 따 와와리라 부른줄 알았다. 그랬는데 알고보니 역사가 오랜 이름이다.




# 다시 산길을 한참 걸어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올랐다. 그곳에 잘 지은 정자가 있다. '솔마루정'이다.




# 솔마루정에 서자 비로소 태화강 일대의 모습이 온전히 조망된다.




# 울산은 공해도시의 오명을 벗기 위해 도심 곳곳에 생태자원을 많이 가꾸었다. 태화강 남쪽 둔치는 거대한 숲이다.




# 태화강 상류 울산 서쪽 입구의 모습이 좌측으로 보인다. 저멀리 희미하게 영남알프스의 산군(山群)이 보인다.




# 태화강 북쪽 조망.




# 바람 좋고 조망 좋은 곳이라 오래 쉬었다.




# 잠시 산길을 걷다가 아래로 내려갔다. 각종 시설 있는 곳에서 길이 갈라진다. 정자에서 만났던 단체 산객들은 이곳에서 법원 방향으로 하산하고 나는 해파랑길을 따라 좌측으로 갔다.




# 테니스코트 좌측으로 진행.




# 신정중학교 축대 좌측으로 휘감아 올라간다.




# 도심 가까운 곳이라 갈림길이 많다.




# 쉼터도 많고.




# 마지막 힘을 모아 언덕 하나를 오르면 태화강을 향해 열린 고래전망대가 나온다.




# 오늘 구간 최고의 조망처이다. 이 모습 보고자 하루종일 산길을 걸었다. 전망대 앞으로 나가니 전방 태화강의 흐름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태화강 십리 대숲의 장관이다.




# 태화강전망대가 아래로 보인다. 날개 펼치듯 길게 형성된 푸른 대밭이 인상적이다.




# 구불구불 하류로 내려가는 태화강의 모습. 저 멀리 태화루의 모습도 보인다. 그 뒤에는 무룡산이라 지도에 나온다.




# 다음 코스는 저 태화강 남단을 길게 걸어 상류로 갔다가 다리를 건너 다시 북단 둔치를 따라 하류로 가야 한다.




# 고래전망대의 경치가 하 아름다워 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오래 오래 그곳에서 쉬었다.




# 경치에 빠져 혼자 넋을 잃고 있는데 초코렛 색깔 푸들이 주인과 함께 계단을 올라온다.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이라 녀석과 잠시 교감하였다. 우리 순이 생각이 많이 났다.




# 강아지와 작별하고 전망대를 떠났다. 길은 우측 아래로 급하게 떨어져 내린다.




# 그러나 골짜기를 따라 태화강 방향으로 내려간다.




# 태화강 남단을 달리는 남산로가 나온다. 이 길 따라 조금 더 가면 동굴이 있는 모양이다. 그곳은 공간이 적은지 이곳에 주차장을 만들었다. 몸에 묻은 먼지 털고 구간을 종료했다. 원래는 도로 건너 조금 더 가서 태화강 가에 있는 전망대까지 가야 하는데, 나는 사실 이때까지 산 위에서 만났던 그 전망대가 태화강전망대인줄 알았다. 다음 구간할 때 어차피 이곳에서 다시 출발하여 전망대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 버스 어플 확인하니 이곳에서 754번 버스 타고 태화로터리로 가서 다시 버스 갈아타고 덕하역으로 가게 되어 있다.




# 이삼십 분 정도 기다린 후 버스에 승차했다. 이후 로터리에서 다시 버스 갈아타고 덕하역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버스를 오래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비교적 양호하게 연결하여 자동차 회수했다.




그렇게 이틀간의 해파랑길 순례를 마치고 울산을 떠났다. 이후 오래오래 운전하여 귀경하였다. 이번 해파랑길 5, 6코스는 내가 일시적이나마 부산시민이 된 것과 이번 여름 휴가가 정말 힘들고 계획 세울 수 없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만에 연속으로 해파랑길을 걸을 수 있었고 이곳저곳 이야기 많은 고장이라 비록 홀로 몸이지만, 전혀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게 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 길에서 만나는 바다와 산, 그리고 인간세의 마을 곳곳에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어 그 오랜 세월과 도란도란 얘기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이틀이 결코 홀로이지만은 않았다. 그것이 역사의 힘이고 그 역사에 조금이나마 관심 있어 느끼는바 있는 이와의 만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의 다음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