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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주저리]2019년 12월 12일 본문

이런저런.../삶의 깊이를 위한 이 한마디

[주저리주저리]2019년 12월 12일

강/사/랑 2019. 12. 12. 17:40
[주저리주저리]2019년 12월 12일


2007년 어느 따스한 봄날의 일이다. 당시 나는 회사의 배려로 신촌에 있는 어느 대학의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었다. 밝은 봄날 새싹처럼 파릇한 젊은 청춘들 틈에 끼여 학교 다니는 재미는 내 인생에서 손꼽을만한 환희였다.

매일매일이 봄날이었다. 봄에는 봄에 어울리는 삶의 행동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십 년 푹 절어 살던 술 담배와 육식을 모두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운동을 엄청나게 하였고 독서와 명상도 꽤 열심히 하였다.

그런 일상의 어느 날. 아침 명상이 너무 길어져서 지각을 하고 말았다. 신촌역에 내려 정신없이 오르막을 뛰어올랐다. 학교 정문을 통과하여 세브란스병원 좌측 언덕을 올라갔다.

등교 시간이 조금 지난 터라 인적 드물고 한적한데, 문득 고개 드니 맞은편 언덕 위에서 하얀 그림자가 내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하얀 환자복 차림의 노신사가 검정 슈트를 입은 젊은 청년의 부축을 받으며 서 있었다.

검정 양복 청년과는 대조적으로 온통 하얀색 일색의 그 노인은 뒤로 빗어 넘긴 하얀 머리에 햇빛 보지 못해 백지장처럼 하얀 피부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김우중 대우 회장'이었다.

엉겁결에 인사를 하자 가볍게 목례로 답해 주었다. 그를 지나쳐 강의동으로 뛰어 들어가다가 돌아보니 느린 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은 시야에서 사라졌어도 하얀 그림자는 길게 남았다. 그제야 싸인이라도 한 장 받아 둘걸 하는 생각과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부탁할 것을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당시 그는 영어(囹圄)의 몸이었다. 99년 DJ 정부에 의해 대우그룹이 해체된 이후 해외를 떠돌다 2006년 국내에 귀국한 후 체포되어 징역 8년 6개월, 추징금 17조 9253억 원이라는 무거운 형벌을 받았고 지병 때문에 세브란스에 입원한 상태였다.

김우중 회장은 대한민국 경제계의 거목이자 풍운아였다. 1967년 단돈 500만 원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한 후 세계적 기업인 대우그룹을 일궈냈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세계 경영을 꿈꾸었다.

그는 한국의 '칭기즈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다. 자원도 자본도 부족하지만, 열정에 가득 찬 인재들을 앞세워 아시아와 동유럽을 발판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고자 하였다.

무릇 세상을 가지고자하는 큰 꿈은 열정만으로는 성취되지 못한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그리고 인화(人和)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탄탄한 기본(基本)의 토대 위에 기초하여야 한다. 그 기본은 기술이기도 하고 자본이기도 하고 인재이기도 하다.

그의 원대한 꿈은 좌절되었다. 그 원인은 그의 무모한 열정 탓이기도 하고 부족한 기본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그의 편이었던 천시와 지리가 그를 외면한 탓이기도 하고 무도한 정치권력의 장난질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잊혀졌다. 간혹 그가 말년에 공을 들였던 베트남에서의 소식이 간간이 들리기도 하고 수십조 원의 추징금 미납자로서 언론에 동정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세상은 곧 그를 다시 잊었다. 초원을 달리던 마상(馬上)에서 끌어 내려진 칭기즈칸은 더 이상 칸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세월이 흘러 2019년 12월.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 소식이 도하 언론을 도배하였다. 경천동지할 뉴스거리 늘 넘쳐나는 대한민국이라 오래 잊혀 있던 김우중 회장의 동정은 그의 사망 소식으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36년생이니 향년 83세이다.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 중이었던 모양이다. 대우그룹이 활발한 세계경영을 꿈꿀 때 그가 설립했던 수원의 아주대학교병원에서 투병하시다 2019년 12월 9일 영면하셨다.

그는 사나이였다. 그중에서도 풍운아(風雲兒)였다. 한국의 칭기즈칸으로 세계를 경영하고자 꿈꾸었던 사람이었다. 한때 대한민국 샐러리맨의 신화였고 대한민국 경제계의 거목(巨木)이었다. 대한민국 경제계에서 다시는 나타나기 어려운 큰 꿈의 소유자였다.

2019년 12월 12일. 김우중 회장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1만 명 조문객들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아주대 병원을 떠나 충남 태안군의 선영에서 영면하였다.

12년 전 봄날, 봄바람처럼 가볍게 스쳐 가버린 짧은 인연이기는 하여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한때 세계를 경영하고자 꿈꾸었던 흰머리의 칭기즈칸을 추모하며 그의 명복을 빌어본다. "오래 수고하셨습니다.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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